우리가 사는 세계 1, 2, 3의 상호작용
생명체와 그의 환경에서의 개선사항들은, 동물 의식(意識: consciousness)의 확대 및 향상과 연관된다. 문제-해결인 발명은 완벽하게 의식적 행위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시행착오라는 수단에 의하여 항상 이루어진다: 시험들과 오류 제거라는 수단에 의하여; 그것은, 생명체와 그의 세계인 생명체의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상호작용의 과정에 의식이 때때로 개입한다. 세계 2인 의식은 아마도 바로 처음부터 문제-해결 의식인 평가하는 그리고 감지하는 의식이었다. 물리적 세계의 생물적 부분에 대하여, 나는 모든 생명체가 문제 해결자라고 말했다. 세계 2에 관한 나의 기본적 전제는, 세계 1 생물 부분의 이 문제-해결 활동인 의식의 세계가 세계 2의 창발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의하여 나는, 생명체들에 대하여 내가 주장했던 바와 같이, 의식이 항상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생명체들은 매일 문제-해결에 몰두하지만, 문제들의 해결이 의식의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기능일지라도 의식은 문제들의 해결에 관심을 갖는 것만은 아니다. 나의 가설은, 의식의 원래 과제는 문제-해결에서 성공 및 실패를 예상하여 생명체가 문제해결로 가는 올바른 혹은 잘못된 통로에 있는지를 즐거움과 고통의 형태로 생명체에게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통로[path]’는 우선 ㅡ 아메바의 경우에서처럼 ㅡ 생명체의 물리적 방향에 대한 통로로서 전적으로 문자 그대로 이해될 수 있다.) 즐거움과 고통의 경험을 통해서 의식은 생명체의 발견 여행들에서 그리고 생명체의 학습 과정에서 생명체를 돕는다. 그리하여 의식은 기억의 기제(mechanisms) 중 많은 기제에 개입하는데 그 기제들 ㅡ 다시 생물학적 이유들 때문에 ㅡ 모두가 의식적인 것은 아니다. 기억의 기제 중 다수가 의식적임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의식의 기제 다수는 서로 개입할 터이다. 서로 완벽하게 밀착되는 의식적이고 무의식적 사건들이 있다는 것은 바로 이 이유 ㅡ 이것은 거의 선험적으로 밝혀질 수 있다 ㅡ 때문이다.
그리하여 거의 불가피하게 무의식의 영역이, 근본적으로 우리의 기억 장치와 연결되어 나타난다. 그 영역은 무엇보다, 우리의 환경에 관해서인 우리의 지역적 생물학적 지위에 관한 일종의 무의식적 지도를 포함한다. 이 지도를 그리고 그 지도가 포함하는 기대들을 조직하여 기대들을, 즉 이론들을 이어서 언어적으로 정식화하면 인지 장치의 과제가 되고 그 장치에 그리하여 물리적 세계이자 세계 1인 세포들과 상호작용하는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면모들의 있다; 사람에게서 두뇌와 상호작용하는.
그래서 나는 세계 2를, 마흐(Mach)가 감각들과 시각들, 청각들 및 기타 등등으로서 서술한 것으로서 간주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들 모두를, 우리의 다변적 경험들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거나 분류하는 데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세계 2에 대한 이론에 도달하는 데 완전히 성공하지 못한 시도들로서 간주한다.
우리의 근본적 출발점은 의식의 생물학적 기능이 무엇이고 이 기능 중 어느 기능이 가장 기본적인가라는 질문이어야 한다. 어떻게 우리가, 세상에 관한 정보를 능동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감각들을 발명하는지를 우리는 또한 물어야 한다: 어떻게 우리가 촉감 기술을 배우고 광영향성(光影響性: phototropy), 시각과 청각을 발전시키는지. 그리하여 우리는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하고 환경에 관하여 새로운 기대들로써 그리고 새로운 이론들로써 대응한다. 그리하여 세계 2가 세계 1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나타난다.
(자연스럽게 그리하여 재빠른 행동들을 위하여 신호들을 발견하는 추가적 문제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감각들은 이것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VI
나는 곧 세계 1과 세계 2로 돌아오겠다; 그러나 먼저 나는 물리적 세계인 세
계 1에 관하여 그리고 창발의 개념에 관하여 몇 마디 말을 하고 싶은데 창발
의 개념을, 단계라는 개념의 도움을 받아서 나는 도입하고 싶다.
어떻게 세계 1이 나타났는지 그리고 그 세계가 나타나기나 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빅뱅 이론이 참이라면, 존재하게 된 첫 번째 것은 아마도 빛이었다. ‘빛이 있어라!’라는 창세기의 첫 번째 단계였을 터이다. 그러나 이 첫 번째 빛은, 자외선 영역을 충분히 건너뛰는 단파장(short wavelength)을 지니고 있었을 터이고 그리하여 사람에게 보이지 않았을 터이다. 그다음 전자들과 중성미자들이 왔고 그다음 최초의 원자핵이 ㅡ 수소와 헬륨의 핵만 ㅡ 왔다고 물리학자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세계는 원자들에게 여전히 너무 뜨거웠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물질적이거나 물질 이전의 세계 1이 있다고 상상할 것이다. 빅뱅으로부터의 세계 팽창이라는 이론을 (나의 견해로 매우 의심스러운) 우리가 수용한다면, 세계가 자체의 팽창 덕택에 서서히 식고 있다고 그리하여 옛 유물론적 철학의 의미에서 점점 더 ‘물질적’이 되고 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 1996년, 17-19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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