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위대한 과학자들의 겸손

이윤진이카루스 2025. 9. 6. 18:32

위대한 과학자들의 겸손.hwpx
0.08MB

 

위대한 과학자들의 겸손

 

소크라테스의 무지라는 교설은, 나의 견해로, 극도로 중요하다. 뉴튼의 자연과학이 지식에 대한 고전적 개념을 통하여 칸트에 의하여 해석되었음을 우리는 알았다. 이 해석은 아인슈타인 이래 수용이 불가능해졌다. 심지어 자연과학에서 습득된 최고의 지식도 고전적 의미에서 지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그 지식은 일상 언어의 지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안다. 이것으로 인하여 지식 개념의 진정한 혁명이 발생한다: 자연과학의 지식은 추측성 지식이다; 그 지식은 대담한 추측이다. 그래서 뉴튼의 기념비적 업적에 대한 칸트의 동조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옳다. 그러나 지식은 합리적 비판에 의하여 단련된 추측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독단적 사고에 대항하는 싸움이 의무로 변한다. 이것으로 인하여 또한 최고의 지성적 겸손이 의무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것으로 인하여 단순하고 허식 없는 언어를 가꾸어야 할 의무가 생긴다: 모든 지성인의 의무.

위대한 자연 철학자들 모두는 지성적으로 겸손했다; 그리고 뉴튼은 다음과 같이 말해서 그들 전부를 대변한다: ‘내가 세상에 무엇을 보일지 나는 모르지만, 거대한 진리의 바다가 전혀 발견되지 않은 채 내 앞에 놓여 있는 반면, 내가 보기에 나는 해변에서 놀면서 평범한 조개껍데기보다 더 부드럽고 더 아름다운 조개껍데기를 간혹 발견하는 소년일 뿐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반짝 인기몰이(a nine-day wonder)라고 불렀다.

게다가 위대한 과학자들 모두는, 과학적 문제에 대한 모든 해답에 의하여 많은 새롭고 미해결인 문제가 제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더 많이 알수록,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자 우리의 무지에 대하여 우리가 지닌 소크라테스적 지식은 점점 더 의식적이고 상세하고 정확해진다. 과학적 탐구는, 우리 자신에 관하여 그리고 우리의 무지에 관하여 정보를 얻기 위하여 우리가 지닌 최고의 방법이다. 과학적 탐구로 인하여, 우리가 혹시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의 사소한 세부사항들과 관련하여 우리 사이에 커다란 차이점들이 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우리의 무한한 무지에서 동등하다는 통찰에 우리가 다다른다.

 

XII

과학주의에 ㅡ 다시 말해서, 자연과학의 방법의 권위에 대하여 그리고 그 방법의 결과들에 대하여 독단적 믿음을 갖는 ㅡ 대한 비난은 그리하여, 자연과학의 비판적 방법을 겨냥하거나 혹은 위대한 자연과학자들을 겨냥한다면 전혀 합당하지 않다; 특히 지식 개념의 개혁을 우리가 소크라테스, 니콜라스 다 쿠사(Nicolas da Cusa), 에라스무스, 볼테르, 레싱(Lessing), 괴테 그리고 아인슈타인에게 빚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괴테는, 위대한 과학자 모두가 또한 그러한 것처럼, 과학주의인 권위에 대한 믿음에 반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뉴튼의 광학(光學: Optics)을 자신이 비판하는 문맥에서 과학주의에 반대하여 싸웠다. 뉴튼에 반대하는 그의 논증들은 아마도 타당하지 않았지만, 위대한 자연과학자 모두가 때때로 오류를 저질렀다; 권위에 대한 뉴튼의 독단적 믿음에 반대하는 괴테의 강력한 공격은 틀림없이 합당했다. 과학주의에 대한 공격은 ㅡ 다시 말해서 독단론에 대한, 권위의 그리고 지식에 대한 오만한 전제의 믿음에 대한 공격 ㅡ 지식사회학과 과학의 희생양인 위대한 자연과학자들보다 지식사회학과 과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빈번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추측하는 정도까지 나는 여기서 심지어 그렇게 멀리 나아갈 터이다. 사실상 자신을 과학주의에 대한 비판자들로서 간주하는 많은 사람이 실제로 자연과학들을 독단적으로, 이념적으로 그리고 권위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인데 그것들에 대하여 그들은 슬프게도 이해하는 게 너무 없다.

무엇보다 자연과학에 객관적이고 비-이념적 진보 기준이 있다는 것을 그들을 알지 못한다: 진리를 향한 진보의 기준 있다는 것을 그들을 알지 못한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케플러 그리고 뉴튼 이래, 파스퇴르와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 이래 자연과학의 발전을 지배한 것은 저 간단하고 합리적 기준이었다. 그 기준은 항상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연과학자들은 (심지어 몇몇 훌륭한 물리학자에게 발생했던 바와 같이, 그 과학자들이 유행에 희생되었을 때를 제외하고), 자신들이 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완전히 의식하는 경우가 드물지라도, 일반적으로 그 기준을 확신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사용한다. 사회과학에서 이 합리적 기준의 힘이 훨씬 적게 확보된다. 그리하여 이성에 대한 그리고 자연과학에 대한 반대와 함께, 유행성 이념들과 감정적 단어들의 힘이 발달했다.

괴테는 이 반()-과학적 이념을 또한 잘 알았고 그리하여 그는 그 이념을 비난했다. 악마 자신은 우리가 그 이념을 포옹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괴테가 악마의 입을 빌려 표현하는 단어들은 명백하다:

 

이성과 과학을 너는 경멸하지,

정신이 지닌 최고의 능력들인?

지옥의 기꺼운 노예! 네 종류의 다른 사람들과 동시에

너는 나의 사업이 거두는 소득들이지.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 1996, 40-2쪽 ㅡ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