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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튼의 중력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

이윤진이카루스 2025. 9. 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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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튼의 중력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

 

V

사실상 뉴튼의 중력이론으로 인하여 완전히 다른 상황이 발생했다. 이 이론은, 2000년 이상이 지나서 소크라테스 이전 자연 철학자들의 원래 연구 강령이 실현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뉴튼 자신은, 자신의 저서 제목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로 선택했을 때, 자기 이론을 이것에 비추어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고대 세계의 대담한 꿈들을 뒤로 멀리 떨쳐낸 깨달음이었다.

그것은 전례 없는 진보였다. 데카르트의 이론은, 뉴튼 이론에 의하여 차츰 대체되었는데, 비교되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이론은 행성 움직임에 대하여 매우 모호한 정성적(定性的: qualitative) 설명만 제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당시에도 잘 확립된 사실들과 모순을 이루었다. 다른 것 가운데서, 태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행성들이 가장 빨리 움직여서 관찰들뿐 아니라 가장 중요하게 케플러의 제3 법칙과도 모순을 이루는 파멸적 결과를 데카르트의 이론이 불러왔다.

대조적으로 뉴튼의 이론은 케플러의 법칙들을 설명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법칙들 수정하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그 이론이 이 법칙들로부터의 사소한 일탈들을 올바르게 정량적으로(定量的으로: quantitative)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VI

그래서 뉴튼 이론으로 인하여 새로운 지성적 상황이 발생했다; 그것은 독보적인 지성적 승리였다. 뉴튼 이론의 예측들은 믿을 수 없이 정확하게 입증되었다. 그리고 천왕성에 대하여 뉴튼에 의하여 예측된 사소한 궤도 이탈들이 발견되었을 때, 애덤스(Adams)와 르베리에(Leverrier)가 뉴튼 이론의 도움을 받아서 (그리고 수많은 행운의 도움을 받아서) 새롭고 미지의 한 행성의 위치를 계산한 것은 바로 이 일탈들로부터였는데 그 행성은 그다음에 갈레(Galle)에 의하여 즉시 발견되었다. 게다가 뉴튼 이론은 천체들의 움직임뿐 아니라 지구 표면에서의 물체 움직임인 지구역학도 설명했다.

여기에 정말로 지식이 있었던 듯이 보였다; 참이고 확실하고 충분히 정당화된 지식. 그것에 대해서 추가적 의심이 확실히 있을 리 없었다.

그 지성적 상황의 참신함이 파악되기까지 두드러지게 긴 시간이 걸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극소수였다.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위대한 진보가 이룩된 것을 알았지만, 인간 지식에서 이 진보가 실제로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근본적인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이것을 여전히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나는 우려한다.

 

VII

이마누엘 칸트는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한 최초의 사상가였다. 흄에 의하여 회의론으로 전향하여 그는 이 새로운 지식에 있는 역설적이고 거의 비논리적 특성을 알았다. 뉴튼 과학과 같은 것이 어떻게 조금이라도 가능할 수 있는지 자문했다.

이 질문과 칸트의 답변이 칸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의 핵심적 쟁점이 되었다. 이 저서에서 칸트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했다:

 

어떻게 순수수학은 가능한가?

 

그리고

 

어떻게 순수 자연과학은 가능한가?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이 과학들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떻게 그 과학들이 존재하는지를 묻는 것은 전적으로 합당하다; 이유인즉 그 과학들이 틀림없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 과학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하여 증명되기 때문이다.’

칸트의 경악은 ㅡ 뉴튼 이론의 존재에 대한 그의 합당한 경악인데 그 존

재를 칸트는 순수 자연과학으로서 규정했다 ㅡ 분명하게 인식된다.

그 문제에 관하여 견해를 지녔던 모든 사람과 달리, 뉴튼의 이론은 실험적이거나 귀납적 방법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 정신인 인간 지성의 창조물임을 칸트는 알았다.

어떻게 순수 자연과학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칸트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의 지성은 자체 법칙들을 [자연의 법칙들] 자연에서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의 법칙들을 자연에 부과한다.

 

다시 말해서 뉴튼의 법칙들은 자연으로부터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뉴튼의 작품으로 그 법칙들은 뉴튼의 지성의 산물이고 뉴튼이 발명한 것이다: 인간의 지성은 자연법칙들을 발명한다.

칸트가 믿은 이 극도로 참신한 인식론적 입장은 칸트 자신에 의하여 지식론에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으로서 기술되었다. 칸트의 견해로, 뉴튼의 과학은 고전적 의미에서의 지식이다: 진리이고 확실하고 충분히 정당화된 지식. 게다 이와 같은 지식은 가능한데 왜냐하면 인간의 경험 자체가, 우리의 인식 장치에 의하여 특히 우리의 지성에 의하여 감각 자료들을 능동적으로 처리하여 해석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칸트의 이 지식론은 중요하고 대부분 옳다. 그러나 어떻게 지식이, 다시 말해서, 고전적 의미에서의 지식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자기 이론이 답변했다는 그의 믿음에서 칸트는 틀렸다.

진리이고 안전하고 충분히 정당화된 지식으로서 과학의 고전적 개념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번성한다. 그러나 그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혁명에 의하여 60년 전에 추월당했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에 의하여.

이 혁명의 결과는, 참이든 허위이든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고전적 의미에서의 지식인 안전한 지식이자 확실성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밝힌다는 것이다. 칸트는 옳았다: 우리의 이론들은 우리의 지성이 자유롭게 창조한 것들인데 우리가 그 이론들을 자연에 부과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진리를 추측함에서 우리는 성공하기가 드물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성공했는지를 결코 확신할 수 없다. 우리는 추측성 지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VIII

여기서 나는, 뉴튼의 중력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 사이의 논리적 연관성들에 관하여 몇 가지 간략한 논평을 해야겠다.

뉴튼의 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서로 모순이 된다: 특정 배경지식을 고려하면 양립될 수 없는 두 가지 이론의 특수한 결과들이 있다. 그래서 두 가지 이론 모두가 참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두 가지 이론들은 근사치를 통하여 서로 관련된다. 그 이론들이 지닌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결론들 사이의 격차들이 너무 작아서, 뉴튼 이론을 입증하고 뒷받침하는 셀 수 없이 많은 관찰된 모든 사례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동시에 입증하고 뒷받침한다.

내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뉴튼의 이론은 탁월한 경험적 입증에 의하여 뒷받침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최적의 입증이라고 언급될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이론의 발견과 창안으로 인하여 이 탁월한 입증들을, 심지어 이 두 가지 이론 중 한 가지 이론이 참이고 확실한 것으로서 간주하기 위한 이유들로서 우리가 간주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똑같은 이유들 때문에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이론의 수용을 참이고 확실한 것으로서 또한 지지할 터이다. 그러나 두 가지 양립될 수 없는 이론 모두가 참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심지어 제일 잘 입증된 과학이론들도 고전적 의미에서의 지식으로서 해석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배운다. 심지어 가장 잘 시험되어 가장 잘 입증된 우리의 과학이론들도 성공적 가설들이자 추측들일 뿐이고 그것들은 영원히 추측들이나 가설들로 남는다는 선고를 받는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 1996, 35-8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