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개념과 설명 개념의 역할
스무 번째 논지: 진리 개념은, 여기서 전개된 비판적 접근방식에 필수불가결하다. 우리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어떤 이론이 참이라는 주장이다. 어떤 이론에 대한 비판자로서 우리가 밝히려고 시도하는 것은, 분명히, 이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 주장이 허위라는 것.
우리의 오류들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중요한 방법론적 관념은, 진리라는 규제적 관념이 없으면 이해될 수 없다: 어떤 오류도, 우리의 목표이자 객관적 진리에 대한 우리의 기준을 이룩하지 못한 것을 본질로 하는데 그 진리는 우리의 규제적 관념이다.
어떤 명제가 사실들과 일치하거나 사실들에 대응한다면 혹은 사태가 명제에 의하여 기술되는 것과 같다면 우리는 그 명제를 ‘참(true)’이라고 지칭한다. 이것은 소위 진리에 대한 절대적 혹은 객관적 개념인데 그 개념을 우리 각자가 부단히 이용한다. 진리에 대한 이 절대적 개념이 성공적으로 복원된 것은 현대 논리학의 가장 중요한 결과 중 하나다.
이 언급은, 진리에 대한 개념이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말로 이것은, 우리 시대에 지배적인 상대주의적 이념들을 생산해낸 추동력이었다.
이것은, 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알프레드 타스키(Alfred Tarski)에 의하여 현대 수리논리학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결과로서 진리 개념의 복원을 내가 기술하고 싶은 이유이다.
물론 나는 여기서 이 결과를 논의할 수 없다; 타스키(Tarski)가, 사실들에 대한 명제의 일치가 어디에 놓이는지에 관하여 상상 가능한 가장 단순하고 가장 확신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고 나는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과제의 절망적 어려움이 회의론적 상대주의를 ㅡ 여기서 상술할 필요가 없다고 내가 확신하는 사회적 결과들과 함께 ㅡ 초래한 바로 그 과제였다.
내가 이용했고 설명이 필요한 두 번째 개념은 설명의 개념, 혹은 더 정확하게, 인과적 설명의 개념이다.
순전히 이론적 문제는 ㅡ 순수과학의 문제 ㅡ 항상 사실에 대한 혹은 현상에 대한 또는 두드러진 규칙성에 대한 혹은 두드러진 규칙의 예외에 대한 설명인 어떤 설명을 발견하는 과제를 본질로 한다. 우리가 설명하기를 희망하는 것은 피설명항(explicandum)으로 지칭될 것이다. 문제에 대한 잠정적 해결책은 ㅡ 다시 말해서, 설명 ㅡ 항상 연역적 이론체계인 이론으로 구성되는데 그 이론을 다른 사실들과 (소위 초기조건들[initial conditions]) 논리적으로 연결함에 의하여 그 이론으로 인하여 우리는 피설명항을 설명할 수 있다. 완전히 명시적인 설명은 항상, 몇 가지 초기조건들에 의하여 강화된 이론으로부터 피설명항을 논리적으로 도출함을 (혹은 도출 가능성) 지적하는 것이 본질이다.
그리하여 모든 설명의 기초적 도식은, 그 전제들이 이론 및 몇 가지 초기조건으로 구성되고 그 결론이 피설명항인 논리적인 연역적 추론으로 구성된다.
이 기초적 도식에 몇 가지 두드러진 응용사항이 있다. 예를 들어 그 도식은, 임시방편적 가설과 독립적으로 시험될 수 있는 가설을 구분하는 데 이용될 것이다. 나아가 ㅡ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여러분에게 더 흥미로울 것이다 ㅡ 우리는, 이론적 문제들과 역사관련 문제들 및 응용과학의 문제들의 구분을 간단한 방식과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것으로 인하여, 이론과학이나 입법학(立法學: nomothetic science) 및 역사관련 과학이나 표의문자학(表意文字學: ideographic science)에 관한 유명한 구분에 완벽한 논리적 정당화가 있음이 밝혀진다 ㅡ 이 문맥에서 우리가 ‘과학’이라는 용어를, 확정적이고 논리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 문제들의 집합에 대한 관심을 의미한다고 간주한다면.
내가 지금까지 이용한 논리적 개념들에 대한 설명은 이만큼이다.
진리의 개념과 설명의 개념이라는 이 개념들 양자로 인하여, 지식논리학을 위하여 혹은 방법론을 위하여 아마도 훨씬 더 중요한 추가적 개념들이 논리적으로 전개된다. 이 개념 중 첫 번째 개념은, 진리에 대한 근사치라는 개념이고 두 번째 개념은 어떤 이론이 지닌 설명력이나 설명적 내용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은, 명제가 지닌 진리라는 그리고 명제가 지닌 내용이라는 ㅡ 다시 말해서, 어떤 이론이 지닌 논리적 결과들의 등급이라는 ㅡ 순전히 논리적 개념들의 도움을 받아서 정의(定義)될 것인 한, 순전히 논리적 개념들이다. 두 가지 개념 모두는 상관되는 개념들이다. 각각의 명제가 단지 참이거나 허위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명제는 또 다른 명제보다 진리에 대하여 나은 근사치를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자(前者) 명제가 두 번째 명제보다, ‘더 많은’ 참인 논리적 결론들을 그리고 ‘더 적은’ 허위인 논리적 결론들을 지닌다면 이것이 성립할 것이다. (두 가지 명제들이 지닌 결론들 집합들의 참인 부분집합들과 허위인 부분집합들이 비교될 수 있다고 여기서 전제된다.) 그렇다면 케플러의 이론보다 뉴튼의 이론이 진리에 대한 나은 근사치라고 우리가 왜 올바르게 전제하는지가 쉽게 밝혀질 수 있다.
유사하게 케플러 이론의 설명력보다 뉴튼 이론의 설명력이 더 크다는 것이 밝혀질 수 있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76-7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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