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주의와 공산주의의 몰락
여러분은 원하는 만큼 역사를 연구할 수 있지만, 강(江)이나
강(江)과 같은 것은 항상 은유일 따름일 것이다. 역사에 실재성이
없다. 여러분은 과거에 있던 것을 연구하지만, 그것이 끝났음을
고려하면 여러분은 그것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나 혹은 여러분 자신이
그것과 함께 헤엄치기 위해서 어떤 것도 예견할 수 없다.
열린사회라는 관념과 대응하는 것은 열린 미래라는 포퍼의 관념이다. 많은 것이 과거로부터 습득될 수 있지만 사건을 예견하는 방식으로서 우리가 과거를 미래 속으로 투사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없다. 역사의 미래 과정을 안다는 주장으로 인하여 현재의 도덕적 책임감은 공허해지고 사람들은 어떤 일이 발생해도 발생할 ‘운명’의 대리인으로 변신한다. 이유인즉 포퍼의 근본적 반(反)-역사주의인 인간적 사건의 ‘방향’에 대한, 역사에 대한 ‘의미’라는 바로 그 관념이 ‘위험한 어리석음’이기 때문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폭력과 전횡의 합법화를 ㅡ 우리에게 발생할 수 있는 최악 ㅡ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포퍼가 다음과 같이 말할 위치에 놓이기를 거부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나는 그것이 그와 같이 끝날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건들의 과정에서 겸손이나 당황의 표현 문제가 아니다: 포퍼는 공산주의의 몰락에 진정으로 만족했다. 그에게 요점은, 더 정확하게, 역사의 물결을 타는 자신감이 정치에서뿐 아니라 모든 인간적 영역인 심지어 예술에서도 자체가 드러나는 곳마다 투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적 문제를 주조하는 것에 권한을 부여하는 역사‘법칙’과 목적론을 토대로, 현재 상황을 폐지하는 실제적 운동으로서 공산주의에 대하여 신념을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틀렸다는 사실은 그것의 거울에 비친 상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공산주의의 종말은 역사의 다른, ‘참된’ 법칙의 성취가 아니다.
우리가 반(反)-역사주의적으로서뿐 아니라 반(反)-숙명론적으로서 아마도 기술할 이 입장을 지지하여 포퍼는 면밀한 고찰을 받을만한 대담에서 두 가지 진술을 내놓는다. 먼저, 소비에트 정권은 아마도 훨씬 더 길게, 아마도 영원히 지속되었을 것이다; 소비에트 정권은 어떤 법칙이나 운명이 아니라 자체의 붕괴를 초래한 일련의 명백한 사건이었다 ㅡ 그리고 자신들이 위험에 처한 실생활의 사람들이 결정한 명백한 결정이었다. 두 번째, 마르크스주의적 이념과 공산주의 정권의 존재로 인하여 반(反)-마르크스주의적이자 반(反)-공산주의적 이념이 필연적이 되었고 금세기의 수십 년간에 걸쳐 ‘어떤 의미에서 두 가지 모두 완벽하게 미친’ 두 가지 이념 사이에 대립이 전개되었다. 이 마지막 주장은 탐구에 관한 몇 가지 가능한 방향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두 가지 이념에 ‘광기’의 요소가 있다고 합의된다면 ㅡ 포퍼가 마르크스주의에 귀속시키는 책임을 묻지 않고 ㅡ 마르크스주의적 기획에 의하여 고무된 정권의 최종적 파산으로 인하여 세계가 반대 이념에 넘어가야 한다는, 적어도 충돌이 진행 중이던 때 세계가 넘어가지 않았던 것과 같이, 의미가 아니다. 공산주의와 같기는커녕 반대로 공산주의에 반대했던 좌파-민주주의 운동에 대항하여 싸우는 반(反)-공산주의를 반동적이고 보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우리가 무시할지라도, 포퍼의 진술에 의하여 진보적 사유가 10월 혁명 이후에 점차 퇴조하던 기능을 전제하고 있거나 다시 전제하고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ㅡ 칼 포퍼, ‘금세기의 교훈(The Lesson of This Century)’, 1997년, 3-4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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