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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시즘에 대한 주요 비판
그때 귀하는 마르크시즘에 대한 귀하의 핵심적 비판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귀하는 그 비판에 착수했는가?
나는 자본론을 읽기 시작했고 그 책의 주요 논증들이 다음과 같음을 깨달았다. 1: 자본주의는 개혁될 수 없고 파괴될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가 나은 사회를 가지려면 자본주의는 파괴되어야 한다. 2: 비참함의 증가에 대한 논증으로 노동자들의 운명이 점점 더 악화한다는 관념이다; 그리고 저것이 자본주의를 파괴해야 할 필요에 대한 이유이다. 세 번째이자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논증은 자본가들은 개별적으로 비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가들 자신이 체제의 희생자이다. 물론 공산주의자들이 언급하지 않음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이 점을 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란 자본가가 노동자만큼 잡혀있어서 그 기계로 인하여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을 제외하고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일종의 기계라고 말한 반면, 공산주의자들은 자본가를 인격적으로 비난해서 자본가들에 대하여 인격적 증오를 부추기려고 애를 썼다. 마르크스는 실제로, 자본가는 악의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 나쁜 사람이라는 견해를 ‘속류 마르크시즘(vulgar Marxism)’이라고 지칭했다. 나는 여기서 공산주의자들의 주요 선전에 반대가 되는 흥미로운 논증을 발견했는데 그 주요 선전은 ‘속류 마르크시즘’에 의하여 정확하게 규정되었다. 그리고 물론 공산당은, 혁명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공산당에게 도움을 주는 여하한 것도 수행할 권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속류 마르크시즘을 지지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다시 함정이 있다. 공산당의 기능은, 도래하는 공산주의를 촉진하기 위하여 공산당이 할 수 있는 한 많은 증오를 유발하는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것이 당시 마르크스에 대한 나의 연구를 통하여 내가 도달한 기본적 분석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시즘에 대한 귀하의 비판의 주요점 모두가 거기에 있지 않았다. 다른 주요점들이 나중에 나타났다.
한 가지 다른 주요 논증이 특히 있는데 내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발간한 후에 겨우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기술한 바와 같은 자본주의란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란 허구일 따름이고 악마가 꾼 꿈이다. 물론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가난한 사람은 항상 고통을 당하여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약자를 도우라는 도덕적 요구가 항상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약자가 노동자라고 ㅡ 우리는 나중에 내가 생각하는 약자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ㅡ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오늘날 여전히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지만, 굶주림 및 노동자가 처한 상황의 문제는 더 이상 마르크스 시대의 상황이 아니다. 나는 당시 사회가 여러 가지 면에서 나빴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 사회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로서 기술했던 사회가 아니었다; 마르크스의 주요 주장은 자본주의가 파괴될 수 있을 따름인 반면, 자본주의는 개혁될 수 있었다. 나중에 마르크스 자신이 아마도 영국에서 ㅡ 게다가 영국에서만 ㅡ 사회적 혁명이 폭력 없이 도래할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사회가 개혁될 수 있다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저것은 그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사실은, 마르크스의 생애에 훌륭하고 매우 중요한 개혁인 엄청난 개혁들이 영국 및 특히 비스마르크 치하의 독일에서 정말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관하여 말한 것은 실제로 자신의 생애에 발생한 사실에 의하여 반증되었다. 그러므로 그가 자본주의라고 지칭한, 자본가 및 노동자가 상황을 점점 악화시키는 구조에 사로잡혀 있는 사회는 존재한 적이 없다. Ein Kapitalist schlagt vielen tot은 ㅡ 한 명의 자본가가 많은 다른 사람을 살해한다 ㅡ 자본가가 점점 줄어들어 거의 모든 사람이 그 후 희생자와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그의 관념을 표현하는 많은 언명 중 하나였다. 그러나 저 종류의 사회는 존재한 적이 없어서 우리가 우리 사회를 마르크스적 의미로 자본주의적 사회로 지칭한다면 우리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인데 왜냐하면 마르크스가 표현한 용어는 우리의 사회에 현재에도, 그렇게 과거에도 적용될 수 없고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르크시즘에 대한 나의 주요 비판이지만, 또 다른 비판이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국가의 숨은 독재자들이라고, 자본주의하에서 국가는 독재체제이며 자본가들은 독재자들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꿈이다. 자본가들이 정치적으로 결정적 권력을 지녔던 사회는 존재한 적이 없다; 상황은 항상 훨씬 더 복잡했다. 경제적 조건은 사회의 생활에서 큰 중요성을 띤다는 매우 중요한 관념을 ㅡ 예를 들어 역사가들이 이전에 믿었던 것과 반대로 ㅡ 사회과학과 역사과학에 도입했다고 언급되어야 한다. 마르크스 이전에 진지한 경제역사학과 같은 것이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발견했던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자신의 발견을 엄청나게 과장하여 경제를 통하여 모든 것을 설명했다. 그는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는데, 이것은 분명히 실수다. 왜냐하면 사회란 고도로 복잡한 실재이기 때문이다: 사회에는 종교, 국적, 우정이나 학연과 같은 다른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비엔나에는 거의 모든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이 학교의 동창생들이고 그 후 친구 관계를 계속했다. 그리고 영국에서 옥스퍼드 대학이 정치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모든 정당의 거의 모든 정치가가 그 대학 동창들이다. 이 모든 원인이 역할을 수행하여 자본가들의 독재체제라는 단순한 관념은 실제 상황과 전혀 일치한 적이 없다.
ㅡ 칼 포퍼, ‘금세기의 교훈(The Lesson of This Century)’, 1997년, 19-21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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