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공산주의라는 함정에서 탈출했는가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ㅡ 나는 이제 구분하지 않겠다 ㅡ 틀림없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태로 온다고 예언했다. 그것은 역사와 경제의 연구를 통하여 확실하게 확립될 수 있는 역사의 필연이었다. 그것은 증명될 수 있었다. 공산주의는 틀림없이 도래하는 것이었다. 자본주의는 사회의 사악한 형태였다: 자본주의는 끝장나야 했고,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전복되어야 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다음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평화가 지구를 지배할 완전히 새로운 사회인 훌륭한 사회가 올 터이다. 저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이 교설을 일종의 쥐덫인 함정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리고 나는 쥐였다.
귀하의 자서전에서 귀하는 결국 어떻게 ‘마르크스적 논증의 핵심을 파악했는지’를 기술한다. ‘그 핵심은 다음 도덕적 법칙에 함축적으로 호소하면서 역사적 예언으로 구성된다: 불가피한 것이 발생하도록 도우라!’라고 귀하는 기술했다. 이 ‘함정’이라는 관념에 대하여 귀하는 조금 더 말할 수 있는가?
공산주의 교설은 나은 세상의 도래를 약속하는데 역사법칙에 대한 지식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틀림없이 도래하는 사건의 상황을 일으키거나 야기하는 데 도움을 줄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분명히 모든 사람의, 특히 전쟁과 폭력을 증오하는 나와 같은 사람의 의무였다. 이것이 저항의 대상이 된다고 안다면 당신은 범죄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반드시 도래하는 것에 저항했고, 당신의 저항을 통하여 공산주의가 불가피하게 확립되었을 때 발생할 모든 죽음과 모든 지독한 폭력에 대하여 당신은 자신을 책임지도록 만들었거나 공동으로 책임지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도래한다; 그것은 틀림없이 확립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적은 수의 인간이 희생됨과 함께 최소한의 저항이 있기를 희망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의 불가피성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고 이해한 모든 사람에게 사회주의가 실현되도록 모든 것을 다하는 의무가 있었다. 이것이 공산주의 지도자들이 저 기묘한 일들을 저질러서 매일매일 자신을 부정했던 이유이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공산주의 권력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정당화되었다; 저것은 역사에 대한 결정적 질문이었고, 모든 행동에 대한 주요 이유였고, 모든 선택에 대한 정당화였다. 사람들, 심지어 지도자들도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은 분명했다 ㅡ 그러나 그것은 사소한 문제였다. 주요점은 공산주의자들이 결국 틀림없이 도래하는 것을 위하여 싸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저것이 내가 함정을 언급함으로써 내가 의미했던 것이었고, 나 자신이 얼마 동안 그 함정에 빠져있었다.
몇 개월 동안이다. 그러나 그 후 귀하는 귀하의 생각을 바꾸었다. ㅡ 귀하 친구들의 갑작스러운 변화와 별도로 ㅡ 어떤 다른 일이 일어났는가?
내가 매우 의심스러워하는 다양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몇몇 공산주의자들이 주요 경찰서에 잡혀있던 비엔나에서 공산당은 그들의 석방을 위하여 주로 젊은이들이 참석한 시위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발포했고 여섯 명의 시위자가 살해되었다. 내가 그 사건을 목격했다: 나는 현장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발생한 사건이 더 참혹할수록 상황이 나아진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런 상황은 혁명을 위하여, 위대한 혁명을 위하여 필수적 분노를 촉발하는 데 모두 도움이 될 터이다. 그래서 그들은 발생한 사건들로 후회하지 않았지만 나는 저 젊은 사람들에 대하여 책임감을 정말로 느꼈다.
이 요점은 귀하의 자서전에서나 귀하 삶의 그 시기에 관하여 귀하가 말하는 이전 인터뷰들에서 전혀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몇 명의 젊은 공산주의자들이 비엔나에서 경찰에게 살해되는 동안 귀하는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거리를 두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자들은 희생자들이지 발포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리고 귀하가 공산주의를 포기하는 것은 정확하게 그때였다. 저게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일종의 책임을 느꼈다. 나는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자신이 위험한 곳에 서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고 느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위험한 곳에 서서 총알을 맞으라고 부추기고 있었고, 우리에게 그럴 권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희생해야 한다거나 자신들의 목숨을 걸라고 말할 권리가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없었다. 그 젊은 시위자들은 노동자들이었고, 우리는 마르크시즘을 판단할 수 있고, 말하자면 지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지식인들이었다. 당시 나는 이미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학생들이었고, 우리는 두꺼운 책들을 읽을 수 있어서 사람들에게 지시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상황의 본질은 이렇다; 공산주의는 틀림없이 도래해서 우리는 투쟁에서 공산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껴서 나는 우리가 말했던 것과 상항이 실제로 같은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가 틀림없이 도래한다는 마르크스주의적 증거들이 유효하다고 내가 실제로 알고 있었던가? 그 점을 내가 보장할 수 있었던가? 실제로 나는 스스로 마르크스의 책을 읽을 수 없던 사람들에게 가서 ‘나는 마르크스를 비판적으로 시험하고 검토했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것이 참이라고, 그가 내놓는 증거들이 유효하다고, 공산주의는 틀림없이 도래해서 우리가 승리할 것이고 이 모든 결과가 귀결된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귀하는 그 후에 어떻게 했는가?
나는 이전에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마르크스를 실제로 완벽하게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마르크스를 이용했고, 나는 마르크스를 이용해야 했지만, 그것은 내가 지닌 매우 피상적 지식이었다. 그래서 당시 마르크스의 이론이 증명될 수 있는지를 실제로 검토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ㅡ 칼 포퍼, ‘금세기의 교훈(The Lesson of This Century)’, 1997년, 16-8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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