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발전을 위하여
귀하는 방금 우리에게 민주주의적 개입주의에 대한 귀하의 견해와 귀하가 생각하는 우선순위 목록을 말했다. 이것을 토대로, 어떤 종류의 정치 모형이 우리 시대에 매우 적합하다고 귀하는 생각하는가: 사회민주주의, 자유주의, 서구적 사회주의, 혹은 어떤 아직 고안되어야 하는 어떤 다른 형태의 정치적 관행?
훌륭한 정치 모형은, 결국 자체의 과제를 문화적 지도력을 확립하려는 존재로서 보지 않는 민주주의일 터이다. 그 정치 모형은 방금 내가 언급한 평화와 모든 다른 것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만, 목적은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자유로워서 상층부에 의하여 영도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많은 교육과 기타 등등을 의미한다; 엄청난 양의 문화적 소망이 텔레비전에 의하여 파괴되었음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내가 젊었을 때 모든 방식이 지독하게 열악하였고, 오늘날보다 훨씬 더 나빴다. 사람들은 자유롭지 못했고 굶주리고 있었으며, 특히 하층 여성들에게 선택권도 희망도 어떤 것도 전혀 없었다. 가사를 담당해야 하는 여성들은 처절하게 무시무시한 시간을 겪었다: 그들은 2주에 겨우 하루를 ㅡ 12시간 ㅡ 자유롭게 보냈는데 그들이 어떤 사람과도 알고 지내지 못했다면 저것이 의미하는 바를 당신이 상상할 수 있다. 12시간 ㅡ 노예 상태보다 더 열악하다! 저것이 1914년 이전 미국에서의 상황이었고 유럽에서는 1920년까지의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훨씬 나은 세상에서 살지만, 그 세상은 어린이에 대한 우리의 미친 교육에 의하여 위험에 처한 세상이다. 우리는 이것에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고, 우리가 크게 책임을 지는 교육 유형을 이룩하자마자 우리는 폭력이 드물었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에서 폭력이 점점 더 일상적인 일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것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목표들을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정치적 행동을 시작할 수 있는가? 어떤 에너지로? 그런 우선순위에 대한 사람들의 합의는 어떻게 실제로 이룩될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자유주의에 대한 전통적 반대론에 직면한다: 즉, 자유주의가 반대하는 세력을, 반대하는 열정과 이해관계 및 신념을 이겨내기에 너무 약하다는 것.
전통적 반대론에 대하여 나는 전통적인 자유적 답변으로 대답한다: 우리가 폭력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 30년 전 폭력을 선호하는 어떤 정당도 없었을 터임을 고려하라; 모든 사람은 우리가 폭력 없는 세상을 원한다는 것에 동의했을 터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자명한 전제는 거의 잊혔다. 이탈리아에서 저 소년을 지지하는 편지와 관련된 경우로 인하여 폭력이 어린이들과 젊은이들 사이에 실제적 위협이라는 것과,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일종의 습관으로서 폭력에 빠져든다고 밝혀진다. 한 명의 소년이 돈 때문에 자기 부모를 살해하기 때문에, 그 소년은 말하자면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에 칭송받는다. 그것은 정말로 가공할 상황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상황을 조성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발생시켰다. 우리는 그 사건을 알았으면서도 너무나 어리석어 항의하지 않았다. 이제 그런 상황에 대하여 대책을 세울 때이다 ㅡ 그때 이상이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없다.
종교인, 교회는 그 문제에 해답을 지닌 사람이 세속적 자유주의자나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들이라고 말한다.
나는 종교인과의 협력을 지지한다. 결국 종교인 자신이 자기 관념을 전파하는 데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물론 이라크와 이란 및 기타 지역에서 근본주의자들이 폭력을 사용하는 것처럼 종교인이 폭력을 사용한다면 협력은 있을 수 없다. 나는 비폭력에 대하여 동일한 관념을 지닌 종교인에 ㅡ 예를 들어 기독교인이나 유대인으로 그들이 근본주의자가 아니라면 ㅡ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귀하는 자유주의가 종교에 의하여 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을 터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자유주의는 종교 없이도 생존할 수 있지만 분명히 자유주의는 모든 사람과 협력해야 한다. 물론 거의 모든 사람이 마르크시즘에 의하여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이제 마르크시즘의 붕괴와 동시에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모든 사람이 돈을 뒤쫓고 금과 석유 기타 등등을 뒤쫓는다고 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육된 관념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시즘이 모든 사람은 이기주의자라고, 모든 사람은 부유해지기만을 원하여 돈과 자동차 및 무기와 권력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관념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겨우 궁극적으로 훌륭한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희망은 ㅡ 상황은 항상 이랬고 항상 더 많이 이럴 것이라고 말하는 역사에 대한 절망적으로 이기주의적 해석일 뿐인 ㅡ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 위험이 전적으로 역사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개념과 그 개념의 위기로부터 유래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복합적 요인들이 있다. 이런 유형의 냉소적 접근방식은 전(前)-마르크스주의 교사들의 특징인데 우리가 사회에서 보는 폭력적 장면과 연결된다. 당신은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이 모든 것의 영향력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독일의 경우에서 역사 해석이 세 가지 기간을 통과했다고 주장했다. 먼저 독일은 모든 국가보다 우월하여 세상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헤겔에서 히틀러에 이르는 민족주의적 관념이 있었다. 그다음 역사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이 왔다. 그리고 이제 냉소적 해석이 존재한다. 그리고 헤겔에서 히틀러에 이르는 기간에 독일이 최고여야 한다고 학교에서 교육된 바와 꼭 마찬가지로, 오늘날 권력과 돈이 항상 세상을 지배했고 항상 미래에도 지배할 것이라고 교육된다. 이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일이다. 반대 상황이 사실이다. 흑인의 자유를 위하여 80만 명이 목숨을 바친 미국의 역사를 보기만 하면 된다.
현재 폭력과 전쟁의 가장 심각한 원인 중 한 가지는 민족주의인 듯하다. 유럽을 포함하여 독립 국가를 이루려는 늘어나는 열망을 귀하는 어떻게 보는가? 전쟁과 퇴보의 위험으로서 보는가? 아니면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려는 동질적 언어, 인종 혹은 종교를 지닌 민족들의 권리로서 보는가?
핵심적 쟁점은, 지금처럼 인구가 밀집된 세계에서 민족주의에 의하여 제기되는 모든 문제가 위험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위험하고 법치에도 위험하다. 먼저 내가 알기에 유럽인들의 논쟁에서 충분히 고찰되지 않았지만, 민족성 문제에 핵심적 요점이 있다: 즉, 소수민족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민족-국가라는 전체 관념은 이 원칙을 당신이 먼저 수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결국, 유럽은 아시아로부터 우연한 이민의 결과이다. 유럽은 사람들이 쫓겨 간 아시아의 반도(半島)이고 그 사람들이 대서양에 도달해서 흩어졌다. 그 후 다양한 종족이 다시 섞여서 오늘날 독일을 제외하고 소수민족이 없는 나라는 없다. 저것이 소수민족 보호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이다; 저것이 그 문제가 다루어져야 하는 시각이다. 모든 소수민족이 자신들의 국가를 가질 수는 없지만, 모든 소수민족은 교육, 언어 그리고 종교에 관하여 자신들을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식들로 보호되어야 한다.
ㅡ 칼 포퍼, ‘금세기의 교훈(The Lesson of This Century)’, 1997년, 37-9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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