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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문제는 핵무기, 인구폭발, 텔레비전 폭력

이윤진이카루스 2025. 11. 1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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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문제는 핵무기, 인구폭발, 텔레비전 폭력

 

나의 소망은 마르크시즘의 소멸과 동시에 정치의 핵심으로서 이념이 야기하는 압박감을 우리가 제거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는 점이다. 마르크시즘은 반()-마르크스주의라는 이념을 불러왔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했던 것은 두 가지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 완전히 실성했던 두 가지 이념 사이의 충돌이었다. 그 이념들의 배후에 실재적인 것이 없었고, 오직 잘못된 문제들만 있었다. 내가 열린사회로부터 소망하는 것은 우리가 사회에서 수행되어야 하는 과업들의 우선순위 목록을 재확립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귀하가 말하는 우선순위 목록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첫 번째 요점은 평화다. 평화는 모든 문명사회, 여전히 문명화되고 있는 사회가 혹시 협력해서 암시장에 나오는 사하로프가 만든 폭탄들, 중국에서 만든 폭탄과 기타 등등을 모두 구매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우리는 그 폭탄들을 살 수 있다. 왜 우리가 구매해서는 안 되는가? 그것이 아마도 그 폭탄들을 제거하는 최선의 방식이다. 이 모든 국가는 가능하면, 안보상의 이유로 몇 개만 남기고 그 폭탄들을 제거할 수 있는 문명인들이 그 모든 폭탄을 손에 넣는 것을 보장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 그것이 첫 번째 과업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이념적 요점이 아닐 터이다.

두 번째 요점은 나의 견해로 인구폭발을 중지시키는 것이다. 인구폭발 문제는 진정으로 세계적 쟁점이다. 환경에 대한 모든 대화는 그 대화 배후에 있는 실재적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환경파괴는 인구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만 발생한다. 그래서 이것은 다시 실제로 모든 사람이 협력해야 하는 근본적 요점이다.

모든 사람이 협력해야 하는 세 번째 문제는 교육이다. 몇 년 전에 나는 영국 상원의 사회민주당으로부터 그 문제에 관하여 강연을 요청받았다. 나의 논지는 우리는 텔레비전과 다른 매체를 통하여 아이들을 폭력으로 교육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매우 불행하게도 우리에게 정말로 언론검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귀하 자신과 같은 자유주의자가 그렇게 말해야 했다는 것은 놀랍다. 대중매체의 타락은, 자유주의자들의 방임에 대항하여 흔히 미국에서 ㅡ 그러나 또한 독일의 문화 비판에서 ㅡ 이루어지는 반론의 표적이다. 외설과 폭력에 의하여 발생하는 피해는 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특별한 주제이다.

 

정확하게 내가 자유주의자라는 이유로,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언론검열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는 책임에 달려있다. 모든 사람이 책임을 느끼고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매체의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우리에게 언론검열이 필요하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실은 그렇지 않고, 그러는 동안 사태가 점점 더 악화하였다. 사람들은 더 많은 폭력을 원하고 텔레비전에서 더 많은 폭력을 보고 싶어 한다. 상황이 이렇게 계속될 수는 없다.

나는 신문에서 다른 두 명의 소년과 함께 아버지의 돈을 훔치면서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이탈리아의 소년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그 사건 자체보다 더 많이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그 소년이 받은 수많은 지지 편지이었다. 이제 당신에게 묻는다, 우리가 아이들을 폭력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내가 경고했을 때 이것은 내가 옳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 지지 편지들은 물론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어린이들한테서 오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어서 아이들이 폭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아이들과 영화를 보러 갈 때, 위험한 상황이 나타나면 그들이 눈을 감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아이들이 말처럼 길들고 그들의 공포 감정과 혐오 감정이 습관으로 길들기 때문에 점점 더 폭력을 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것으로써 불합리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법치는 무엇보다도 폭력을 예방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ㅡ 정말로 저것은 법치에 대한 훌륭한 정의(定義)이다. 법에 따라서 나는 당신에게 주먹질할 수 없다. 내 주먹의 자유는 귀하의 코 가격을 금지하는 법규에 의하여 제한된다. 저것이 법치의 근본적 관념이다. 그래서 폭력에 대한 일반적 혐오가 무너지고 바뀌면, 법치를 지키고 폭력을 막아야 한다는 일반적 합의가 실제로 약해진다. 우리의 문명이 약해진다.

 

그래서 귀하가 정한 우선순위 목록의 세 번째 요점은 아이들의 교육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읽기와 쓰기 및 기타 등등을 가르쳐야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합당하게 교육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 대부분이 지닌, 폭력에 대하여 자연적으로 저항하는 마음을 우리가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귀하와 같은 자유주의자에게 완전히 기묘한 일종의 도덕적 간섭주의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때때로 ㅡ 예를 들어 환경주의자들에 반대하여 논증하면서 ㅡ 귀하는 문제의 해결책을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에 맡기는 것을 선호하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대중매체의 타락은 시장의 결과이다.

 

자유 시장은 매우 중요하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유 시장은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절대적 자유란 터무니없다. 칸트가 이것을 언명했던 방식을 수용하자. 각자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양립될 수 있는 사회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당신의 자유에 대한 나의 자유의 양립 가능성은 우리가 각자에 대하여 폭력을 포기하는 데 달려있다. 나는 당신을 때려눕히지 않을 것이고 당신도도 나를 때려눕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가 제한됨을 안다. 우리가 저것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폭력을 금지하는, 살인을 금지하는 법규들이 필요하다. 상황은 항상 동일하다. 사람들이 당신을 때려눕힐 꿈을 꾸지 않는다면 법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당신을 때려눕힐 꿈을 꾼다면, 정말로 이런 종류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바는, 우리가 아이들을 더 잘 교육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자유를 향유할 수 있지만, 우리가 이것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자유를 더 적게 향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치는 비-폭력에 달려있고, 우리가 이 사실을 잊는다면 법률이 출판과 텔레비전과 같은 분야에서 더 많이 개입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항상 동일한 매우 간단한 원칙이다: 다른 사람들의 자유에 의하여 부과되는 한계 안에서 각자의 자유를 최대화하는 것. 그러나 우리가 현재 행동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계속한다면, 우리는 곧 살인이 일상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귀하는 또한 도덕적 원칙이기도 한 정치적 원칙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 대하여 심층적인 도덕적 책무를 지니고 있고, 저것은 우리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하여 고안할 수 있는 최고의 영향력을 포함하여, 우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그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말할까. 실제로 관련된 새로운 원칙은 없고 내 주먹을 움직이는 규칙은 당신의 코에 의하여 제한된다는 자유주의의 근본적 원칙만 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가진 최고로 중요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법치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나는 나의 진보적 원칙으로부터 이탈하지 않는다.

 

귀하는 정치적 의제에서 귀하가 보고 싶을 주요 우선순위들이 무엇인지 ㅡ 평화, 인구폭발 중지, 그리고 비폭력으로 교육 ㅡ 언급했다. 그리고 귀하는 그것들에 모든 면에서 모든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그들이 우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라는 의미인가?

 

우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다. 내가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으로 지칭했던 것을 우리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그들은 우파-좌파적 상황을 실제로 갈음할 수 있을 터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 목표들을 성취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적시해야 하고, 그 목표를 사회 특정 부분의 목표가 아니라 사회 모든 부분의 목표가 실제로 되어야 한다. 저것과 별도로, 우리는 내가 약자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이 ㅡ 상황이 매우 열악하여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이나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과 같은 ㅡ 있는지를 고찰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우선순위 목록에 들어가야 하고, 그 목록은 물론 모든 사람이 논쟁하도록 열려있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지긋지긋한 정당 제도를 갈음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지긋지긋한 정당 제도는 현재 국회의원들이 첫째로 자신이 속한 정당에 의존하고 있고 겨우 두 번째로 그들이 대표하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그들이 정신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능하면 국회의원들이 나는 당신의 대표자이다. 나는 어떤 정당에도 속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국가로 우리가 돌아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것이 이 나라와 다른 나라들에서 예전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 견해로 마르크시즘의 붕괴는 우리가 저 방향으로 가는 기회이다. 나는 어떤 정당이 ㅡ 어떤 정당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ㅡ 자신들의 정당을 위하여 이 우선순위 목록을 수용한다고 말하기를 정말로 소망한다. 저것으로 인하여 다른 정당들도 그 목록을 수용할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할 터이다.

ㅡ 칼 포퍼, ‘금세기의 교훈(The Lesson of This Century)’, 1997, 33-7쪽 ㅡ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