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자유와 자유의 한계

이윤진이카루스 2025. 11. 26. 21:29

자유와 자유의 한계.hwpx
0.08MB

 

 

 

자유와 자유의 한계

 

우리가 안 바와 같이, 우리가 정부에 직접적으로 일부로서 참여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모두 정부에 대하여 공동의 책임을 어느 정도 진다. 우리가 공동으로 지는 책임에 자유, 많은 자유가 필요하다: 언론의 자유, 정보의 습득과 정보 전달의 자유, 출판의 자유,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자유. 국가통제주의(statism)가 과잉되면 자유가 결핍된다. 그러나 자유의 과잉(excess)’과 같은 것도 또한 있다. 불행하게도 국가 권력이 남용될 수 있는 것과 같이 자유도 남용될 수 있다. 우리는 예를 들어 거짓 정보를 유포함으로써, 혹은 폭동을 사주함으로써 연설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남용할 수 있다. 똑같은 방식으로 국가 권력은 자유의 한계를 남용할 수 있다.

국가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하여 우리에게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의 남용을 예방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국가가 필요하다. 분명히 이것은 추상적 법률에 의하여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헌법재판소가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선의(善意)가 필요하다.

그것은 확정적으로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 혹은 더 정확하게, 우리가 도덕적 근거를 토대로 배척해야 하는 독재국가의 독재 원칙으로써 독재에서만 완벽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임을 우리가 수용해야 한다. 우리는 부분적 해결책과 화해에 만족해야 한다; 자유에 대한 우리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자유의 남용 문제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옛날 사상가나 새로운 사상가 모두, 국가 권력의 필요성과 국가 권력의 한계 필요성을 보편적 원칙에 근거시키려고 시도하면서 이 문제들을 확인했다.

토마스 홉스는, 국가가 없다면 모든 사람이 잠재적으로 자기 종()에게 치명적인 적()이라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전제로부터, 그러므로 범죄와 폭력을 억제하기 위하여 가능한 최고로 강력한 국가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했다. 칸트는 그 문제를 다소 다르게 보았다. 칸트 역시 국가와 자유의 제한이 필요하다고 믿었지만, 이것을 최소한으로 감소시키기를 원했다. 그는 각자의 자유가 모든 다른 사람들의 자유와 일관되게 만들어지는 법률에 따라서 가능한 최대치의 인간 자유를 허용하는 헌법을 갈망했다. 칸트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과 양립될 수 있는 한 모든 시민에게 가능한 한 많은 자유를 보장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더 강한 국가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이 자유에 대한 제한을 인간사회의 불가피한 결과로서 보았다; 그 자유의 제한은 다음 이야기의 도움을 받아서 설명될 것이다. 한 미국인이 어떤 사람의 코를 때려서 기소당한다. 그는, 자유 시민으로서 자신에게 자기가 원하는 어떤 방향으로도 자기 주먹을 휘두를 자유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을 옹호한다. 그것에 대하여 판사는 당신의 주먹을 휘두를 자유에 한계가 있어서, 이 한계는 때때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동료 시민의 코는 거의 항상 저 한계 밖에 놓여있다.’

나중 저술인 ‘“이것은 이론으로 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적용되지 않는다라는 흔한 말에 관하여(‘On the Common Saying: “This May Be True in Theory, But It Does Not Apply in Practice”’)’에서, 우리는 국가와 자유에 관하여 훨씬 더 발전한 이론을 발견한다. 홉스를 겨냥한 2부에서 칸트는 이성의 순수 원리(pure principles of reason)’를 시작한다. 첫 번째는 다음과 같다: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인간의 자유는, 공동번영[eines gemeinen Wesens]

관한 헌법의 원리로서,... [그것은] 다음 공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한 자신의 개념에 따라서 나를 행복하라고 강요할 수

없는데 이유인즉 각자는 자신이 합당하다고 보는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

행복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에 대하여 자선(benevolence)

원칙으로 혹시 세워질 정부는 [...] 가부장적 정부(imperium pαternαle)

[...] 상상 가능한 최악의 폭정이다.

 

이 마지막 언급이 (레닌과 스탈린 이후, 무솔리니와 히틀러 이후) 과장된 인상을 나에게 남기지만, 나는 칸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유인즉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ㅡ 홉스에 반대하여 ㅡ 우리의 동료인 늑대들에 대항하여 우리의 삶을 (그 절대 권력 국가의 손아귀에 있는) 보호하기에 충분히 친절한 절대 권력 국가를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의 본질적 과제는 우리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과제는, ㅡ 홉스의 견해와 반대로 ㅡ 모든 사람이 서로에 대하여 천사들처럼 행동할지라도, 여전히 결정적일 터이다. 이유인즉 심지어 그런 경우에도 가장 약한 자에게 가장 강한 자에게 대항할 권리가 없을 것이고 가장 강한 자들의 아량 때문에 그 가장 강한 자에게 신세를 지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법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칸트가 개인의 존엄(the dignity of individual)’이라고 지칭한 것을 낳을 수 있다.

이것이 칸트의 국가 관념이 지닌 그리고, 그가 가부장주의(paternalism)를 배척한 이유가 지닌 힘이다. 그의 관념들은 나중에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에 의하여 발전했는데, 그것은 많은 사람이 칸트 이후 그런 관념들이 독일에서, 특히 프로이센과 주요 정치권에서 더 이상 반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훔볼트의 저서인 국가 행동의 제한에 관한 정의(定義)에 대한 관념(Ideas towards a Definition of the Limits of State) 1851년에 발간되었지만, 훨씬 이전에 집필되었다.

칸트의 관념이 결과 영국에 도달하는 것은 이 저서를 통해서였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자유론(On Liberty)(1859) 훔볼트로부터, 그리하여 칸트로부터 그리고 특히 가부장주의에 대한 칸트의 비판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밀의 자유론(On Liberty)은 영국에서 급진적-진보 운동에 크게 영향을 끼친 저서 중 하나였다.

칸트, 훔볼트 그리고 밀은 모두 국가를 가능한 가장 작은 한계 속에 가두어 두는 방식으로 국가의 필요성을 확립하려고 시도했다. 그들의 관념은, 우리에게 국가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가능한 한 적게 국가를 원한다 ㅡ 전체주의적 국가의 반대; 우리는 가부장적이거나 권위주의적 혹은 관료 체제적 국가를 원하지 않는다; 요컨대 우리는 소(: mini)-국가를 원한다.

ㅡ 칼 포퍼, ‘금세기의 교훈(The Lesson of This Century)’, 1977, 72-5쪽 ㅡ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