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30년경 아테네에 나타난 서적 시장과 민주주의
아테네에서 기원전 530년경 서적을 자유롭게 파는 시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시장은 필사된 서적들이 파피루스 두루마리 형태로 판매되는 장소였다, 최초로 판매된 책은 호메로스의 위대한 서사시 두 권이었다: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Odyssey).
약 500년 후 키케로(Cicero)의 설명에 따르면, 아테네의 참주(僭主)인 페이시스트라토스(Pisistratus)는 호메로스의 시를 옮겨 쓴 사람으로 믿어진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위대한 개혁가였다. 그가 시행한 일 중 한 가지는 연극을 시작한 것이다: 즉, 그는 우리가 극장이라고 부르는 제도를 세웠다. 아마도 정말로 매우 개연적으로, 그 자신은 호메로스의 작품을 처음으로 발간한 사람이었다: 그는 글쓰기 재료를 (이집트산 파피루스) 배로 수입하여, 교육받은 많은 노예를 사서 호메로스의 시가 낭독되는 대로 받아 적게 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축제일에 아테네인들에게 연극과 많은 문화행사를 제공하던 부유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몇 명의 다른 아테네인이 ㅡ 기업가들 ㅡ 또한 서적 발행인의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아테네에서 호메로스 작품들에 대한 수요가 무한하다는 사실에 매혹되었다: 모든 사람이 호메로스의 작품에 의하여 글자를 배웠고, 모든 사람이 호메로스의 작품을 읽었다.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그의 작품은 아테네의 성경이자 독서지침서가 되었다. 곧 다른 서적들도 출판되고 있었다. 서적 시장이 없으면 출판도 없다는 것을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한다. 원고가 (혹은 오늘날 인쇄본) 서재에 있다는 사실은 시장 수요로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약 200년간) 아테네는 유럽에서 서적 시장이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코린토스(Corinth)와 테바이(Thebes)가 아마도 아테네의 뒤를 이은 최초의 도시들이었다.
이전에 틀림없이 많은 시인이 ㅡ 많은 원고가 ㅡ 있었다. 그러나 문학작품은 (발간 제도가 필요하다) 아테네에서만 발전할 수 있었다; 아테네에서만 우리는 작가, 역사가, 정치사상가, 철학자, 과학자 그리고 수학자가 번창하는 것을 본다. 그 사람 중 많은 사람이, 투키디데스(Thucydides)처럼, 실제로 아테네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는 그들을 꼼짝 못 하게 사로잡았다.
자신의 저서를 아테네에 와서 출간한 외부 저술가 가운데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낙사고라스(Anaxagoras)와 그의 조금 어릴 뿐 동시대인 헤로도토스(Herodotus)가 있었다. 두 사람은 소아시아로부터 정치적 피난민으로서 아테네로 왔다. 헤로도토스가 자신의 긴 역사 이야기를 출판할 생각으로 집필했다고 내가 생각하지 않지만, 아낙사고라스는 틀림없이 자신의 (다소 더 간략한) 자연사를 출판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당시 어떻게 출판이 실제로 실행되는지에 여전히 확신하지 못했다; 출판은 겨우 도입된 단계여서 아무도 당시 출판이 중요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을 터이다.
유럽에서 최초로 출판된 책에서 구텐베르크의 혁명까지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문화적 기적은, 나의 견해로, 주로 서적 시장이 만들어진 데 기인한다. 그리고 이 서적 시장의 출발에 의하여 또한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설명된다.
물론 참주(僭主) 히피아스(Hippias)를 아테네로부터 추방하여 민주주의를 세운 일이 서적 시장의 설치와 연관이 있는지는 증명될 수 없지만, 이 가설을 선호하는 많은 것이 있다. 읽기와 쓰기 (아테네를 통하여 빠르게 퍼졌다); 호메로스에 대한 커다란 인기와 (틀림없이 결과적으로) 훌륭한 아테네의 극작가, 화가, 조각가에 대한 커다란 인기; 많은 새로운 관념이 토론되었으며 광범위한 지식의 발전 ㅡ 이것들은 서적 시장이 세워짐으로써 틀림없이 영향받은 모든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별개로 민주주의가 스스로 확립된 것을 우리가 허용할지라도, 방대한 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한 해방전쟁에서 아테네의 어린 민주주의가 크게 성공한 것은 분명히 그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이 성공은, 아테네인들이 예술과 시가(詩歌)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과 명징성에 대하여 그들이 독립적으로 얻은 열정 및 취향과 함께, 아테네인들이 비상한 문화적이고 교육적인 유산을 통하여 스스로 획득한 새로운 자의식에 비추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아무튼 15세기에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과, 뒤따라 서적 시장이 크게 확대된 것은 유사한 문화 혁명을 초래했다: 인문주의(humanism)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것. 고대 문학이 새로운 생기를 받자 모든 예술이 번창했다. 새로운 자연과학이 태어났고, 영국에서 종교혁명이 두 가지 혁명을 ㅡ 1648-49년의 유혈혁명과 1688년의 무혈혁명 ㅡ 낳았고 그 혁명들을 통하여 의회는 민주주의를 향한 자체의 꾸준한 진보를 시작했다. 이 경우 그 연관성은 더 명백하게 보일 수 있었다.
ㅡ 칼 포퍼, ‘금세기의 교훈(The Lesson of This Century)’, 1997년, 65-7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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