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전쟁을 막기 위한 전쟁은 정당하다

이윤진이카루스 2025. 11. 27.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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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막기 위한 전쟁은 정당하다

 

전쟁을 막는 전쟁(war on war)’이라는 관념의 본질은 이미 칸트에게서, 칸트의 영구평화론(Perpetual Peace)’이라는 논문에서 발견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상황이 와서는 안 된다는, 최근의 전쟁은 결과가 전혀 없어 보이는 거대한 노력인 인간 생명의 무의미한 희생이었다는 일반적 느낌을 우리가 아마도 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전쟁 중에도 전쟁을 막는 전쟁이라는 관념이 나타났다. 물론 그 관념은 많은 역설을 포함하여 의문스러운 방식으로 흔히 사용되지만, 본질적으로 매우 진지한 관념이다.

 

전쟁을 막는 전쟁(war on war)’이라는 원칙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2차 세계대전은 처음부터 정확하게 저 원칙으로서 착상되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기간으로 인하여, 평화가 실제로 각 정부의 책무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는지가 밝혀졌다. 네빌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은 나치 독일을 달래는 과제를 떠맡아서 그 과제를 평화라는 이름으로 양보하는 자신의 주요 책무로 보았다. 저것은 정확하게 그가 자신의 과제를 본 방식이다. 그래서 그는 나치의 통치를 강화하는 데 이미 크게 도움을 주어 오랫동안 히틀러를 도왔다.

 

귀하의 말은 완전히 전쟁을 거부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20년 동안 전쟁이 유럽 정부들과 미국 정부에 의하여 많은 선언에서 불법화되었다는 것을 내가 말하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더 많은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1939년 이전 일반적 태도가 그랬다.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은 다양한 분야에서 귀중한 일을 실천한 매우 진지한 기구였다. 예를 들어 국제연맹은 무국적 사람들에게 여권과 서류를 발급했는데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내가 의미하는바, 1차 세계대전 이후 본질적 목표가 인도적 가치에 대한 존중이었던 정책뿐 아니라 강력하게 인도주의적 경향이 의기양양했던 상황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저것이 1차 세계대전의 전형이 아니었다면 저것은 적어도 1차 세계대전의 끝난 후의 결과였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이 분위기는 세계의 대부분에서 수용되고 공유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널리 확산되었다. 그래서 나중에 그 분위기는 처칠이 주창한 국제연합(United Nations)의 토대가 되었다.

 

이것으로부터 귀하는 어떤 결론을 도출할 터인가?

 

오늘날 세계에 2차 세계대전 경의 완벽한 성숙성과 인식에 도달한 정치권력자가 없다. 저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난 한 가지 불행한 결과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사이에 20년이 흐른 반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서 보스니아 전쟁까지의 기간은 매우 훨씬 더 길었다.

 

거의 50년이다.

 

저것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나폴레옹이 벌인 전쟁이 나에게 느껴졌을 터와 같이, 사람들에게 단지 역사로서 보이는 상황을 사람들이 실제로 이해하기에 너무 긴 기간이다. 고대 역사일 따름...

 

분명히 자기 경험의 도움을 받아서 2차 세계대전의 발발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기간을 지적(知的)으로 통달할 수 있는 처칠이나 다른 정치가가 우리에게 없다. 그러나 왜 귀하는 방금 처칠이 주창한 국제연합을 언급했는가? 왜 오늘날 처칠을 생각하는가?

 

처칠의 관념은, 더 많은 전쟁을 겪지 않기 위해서 국제연맹이나 실제로 전쟁에 반대하여 전쟁을 벌이는 국제연합(UN)과 같은 국제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칠의 원칙은 소련의 역할 때문에 결과적으로 무시되었다. 사실상 국제연합은, 서구와 러시아 모두가 지지할 각오가 있어야만 개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수용함으로써 처칠의 원칙으로부터 떠나야 했다. 그리고 처칠이 깨달은 바와 같이 저것은 처칠의 정치노선에 대한 패배였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소련도 냉전도 없다.

 

1989년 이후 나는 우리가 직면할 위험을 인식했지만 나는 또한 우리가 오늘날 겪는 세상에 대한 전망보다 나은 전망을 염두에 두었다. 나는 사하로프가 만든 수소폭탄에 반대하여 항의하고 싶었다. 나는 소련의 핵물리학자 사하로프가 거대한수소폭탄의 실험을 완료하겠다는 결심으로 떠맡았던 가공할 책임을 비판하고 싶었다. 당신이 이탈리아에서 공개한 나 자신의 견해는, 사하로프가 개발한 수소폭탄이 세계 여러 곳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직면해야 했던 위험을 가리킨다. 그러나 나는 또한 출구도 보았다.

 

그 출구는 무엇이었나?

 

1989년 이후 서구에 있는 우리가 러시아에 봐라, 서구는 평화를 원하고 우리는 공포의 무기 없이, 철의 장막 이전에 러시아에 있던 체제와 같은 것 없이 평화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와서 우리와 이 평화를 함께하자라고 말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유럽의 상황은 사실상 매우 평화로워서 우리가 공포 정권으로의 복귀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일본에 대해서 뿐 아니라 대서양을 건너 북미 전체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언급될 수 있을 터이다. 아프리카에 평화가 없었지만, 세계의 거의 다른 모든 곳에 평화가 있었다.

ㅡ 칼 포퍼, ‘금세기의 교훈(The Lesson of This Century)’, 1997, 51-3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