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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강좌

이윤진이카루스 2025. 12. 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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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강좌

 

아인슈타인은 비엔나에서 강좌를 열었는데 그 강좌에 나는 참석했다; 그러나 내가 혼란에 빠졌다는 것만을 나는 기억한다. 이것은 완전히 나의 이해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나는, 뉴튼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기역학이 의문의 여지가 없는 진리로서 나란히 수용되는 환경에서 자랐다. 심지어 역학의 과학(The Science of Mechanics)에서 마흐(Mach), 거기서 그는 뉴튼의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이라는 이론을 비판하는데, 뉴튼의 법칙을 ㅡ 관성 법칙을 포함하는데 그 법칙에 관하여 그는 새롭고 매혹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ㅡ 유지했다. 그리고 그가 비-뉴튼적 이론의 가능성을 정말로 고려했을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시작할 수 있기 이전에 우리가 새로운 경험을 기다려야 할 터라고 그는 생각했고 그 새로운 경험은 아마도, 우리 자신의 태양계에서 발견될 수 있을 터인 것보다 더 빠르고 더 복잡한 운동을 포함하는 우주의 영역에 관한 물리적이거나 천문학적 지식으로부터 아마도 나올 터이다. 헤르츠(Herz)의 역학도, 자체의 표현을 제외하고, 뉴튼 역학으로부터 이탈하지 않았다.

뉴튼 이론에 있는 진리에 대한 일반적 전제는 물론, 해왕성의 발견에서 정점을 이루며 자체의 결과가 믿을 수 없는 성공이었다. 뉴튼의 이론이 반복적으로 자체가 설명하기 시작한 경험적 재료를 수정했기 때문에 (내가 나중에 설명한 것과 같이) 그 성공은 그렇게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경험을 기다리지 않고도 실재적 대안이자 나은 이론으로 보였던 것을 창안하는 데 성공했다. 뉴튼 자신처럼, 그는 우리 태양계 내부의 (그리고 또한 외부의) 새로운 효과를 예측했다. 그리고 이 예측 중 몇 가지 예측은 시험되었을 때 성공적으로 증명되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뛰어난 수학도였던 나의 친구 막스 엘슈타인(Max Elstein)에 의하여 이 관념들을 소개받았는데 그는 1922년에 21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실증주의자가 (아인슈타인이 당시와 그 후 몇 년 동안 그랬던 것과 같이) 아니었고 그리하여 그는 아인슈타인 이론의 객관적 면모를 강조했다: -이론적(-理論的: field-theoretical) 접근방식; 전기역학과 역학 그리고 그것들의 새로운 연계; 그리고 새로운 우주론이라는 ㅡ 확정적이지만 무한한 우주 ㅡ 놀라운 관념. 그 새로운 우주론에 의하여 뉴튼 이론이 진리가 아니라 매우 훌륭한 근사치로서 격하되었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선호하고, 아인슈타인 자신이 그 새로운 우주론을 자기 이론의 주요 논증 중 하나의 논증으로서 간주했다는 사실을 막스 엘슈타인이 나에게 주지시켰다; 또한, 자기 이론이 뉴튼 이론보다 나은 근사치라고 확신했을지라도, 아인슈타인은 자기 이론을 훨씬 더 일반적인 이론을 향한 한 단계로서 간주했다는 사실을 막스 엘슈타인이 나에게 주지시켰다; 리고 나아가 헤르만 바일(Hermann Weyl)이 심지어 일식 관찰 이전에 아인슈타인의 이론보다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이론이 제시된 저서를 (공간, 시간, 물질[Raum, Zeit, Materie], 1918) 이미 발간했다는 사실을 막스 엘슈타인이 나에게 주지시켰다.

의심의 여지 없이 아인슈타인은, 또 다른 문맥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할 때, 이 모든 것을 그리고 특히 자기 이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물리 이론이 더 포괄적 이론으로 향하는 길을 가리켜야 한다는 것보다 물리 이론을 위하여 더 공평한 운명은 있을 리 없을 터이고 그 포괄적 이론 안에서 물리 이론은 제한하는 경우로서 계속 살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자신의 이론이 특정 시험에서 실패한다면 옹호될 수 없는 것으로서 자신이 간주할 것이라는 아인슈타인 자신의 명백한 서술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중력 포텐셜(gravitational potential)에서 기인하는 스펙트럼선의 적색편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반상대성 이론을 옹호될 수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들러(Adler)의 독단적 태도와 전혀 다른 태도가 여기에 있었고 그들의 추종자들의 태도와 훨씬 다른 태도가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자기 예언과 일치한다고 해도 자기 이론이 전혀 확립되지 않을 터인 결정적 실험을 찾고 있었다; 그가 처음에 강조한 바와 같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의 이론은 옹호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질 터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것은 진정한 과학적 태도였다. 그 태도는, 독단적 태도가 가장 좋아하는 이론에 대한 검증을 발견했다고 부단히 주장하는 독단적 태도와 전혀 달랐다.

그리하여 나는 1919년 말경, 과학적 태도는 비판적 태도라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그 비판적 태도는 검증이 아니라 결정적 시험을 찾았다; 시험으로 인하여 이론이 확립될 수 없을 터일지라도 시험되는 이론을 반증할 수 있을 터인 시험.

ㅡ 칼 포퍼, ‘끝없는 탐구(Unended Quest)’, 1993, 37-8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