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버트런드 러셀의 강연

이윤진이카루스 2025. 12. 1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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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의 강연

 

내가 1936년에 방문하여 잘 기억하는 경험 중 한 가지 경험은, 아마도 칸트 이후 최고의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이 강연한 아리스토텔레스 학회(the Aristotelian Society)에 에이어(Ayer)가 나를 데려갔을 때였다.

러셀은 경험론의 한계(The Limits of Empiricism)”에 관한 논문을 강독 중이었다. 경험적 지식은 귀납에 의하여 습득된다고 전제하고 동시에 귀납에 대한 흄(Hume)의 비판에 큰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러셀은, 다음 차례에서 귀납에 근거할 수 없는 어떤 귀납의 원칙을 우리가 채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이 원칙을 채택하면 경험론의 한계가 표시되었다. 당시 나는 나의 저서 지식론에 관한 두 가지 근본적 문제(Grundprobleme)에서 그리고 더 개괄적으로 탐구의 논리(Logik der Forschung)에서 정확하게 이 문제들을 칸트에게 귀속시켰고, 그리하여 러셀의 입장은 이런 면에서 칸트의 선험론과 동등하다고 나는 보았다.

강연 후 토론회가 열렸고 에이어(Ayer)가 나에게 발언하라고 격려했다. 그래서 나는 먼저,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그리고 러셀이 제안한 저 칸트의 한계가 없는 경험론을 내가 신뢰할지라도 나는 귀납론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진술은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자주 더듬거리는 영어로써 가능한 한 간략하고 요점만으로 언명되었는데 그 진술을 농담으로서 받아들이고 웃었던 것으로 보이는 청중에 의하여 잘 받아들여졌다. 나의 두 번째 시도에서, 전체적 문제는 과학적 지식이란 지식의 ㅡ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안다면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이 틀림없이 이라는 그리하여 지식은 진리를 함의한다는 통상적 의미에서 지식 ㅡ 한 종류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기인한다고 나는 제시했다. 그러나 우리가 과학적 지식으로 부르는 것은 가설적이고, 확실하게 참이거나 확률적으로 참인 것은 (확률계산의 의미에서) 말할 것도 없고, 흔히 참이 아니라고 나는 말했다. 다시 청중은 이것을 농담이나 역설로 받아들여서 그들은 웃고 박수쳤다. 내가 이 견해를 진지하게 믿었을 뿐 아니라 합당한 과정을 거쳐 그 견해가 당연한 것으로서 널리 간주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곳에 있었던지 나는 의아하다.

ㅡ 칼 포퍼, ‘끝없는 탐구(Unended Quest)’, 1993, 109-10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