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스 흄의 문제와 해결책
흄이 밝히려고 시도했던 것을 (나의 견해로 논리에 관한 한 성공적이었다) 기억하자.
(i) 모든 사람이 실제로 의지하는 자연에 무한한 (피상적인) 규칙성과, 이론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과학자에 의하여 수용된 많은 보편적 자연법칙이 있다고 그가 지적했다.
(ii) 그는 귀납적 추론이 ㅡ 단칭이고 관찰될 수 있는 경우들로부터 (그리고 그 경우들이 반복되는 사건으로부터) 규칙성이나 법칙과 같은 것으로 추론 ㅡ 틀림없이 무효함을 밝히려고 시도했다. 그런 추론은 심지어 근접하게나 부분적으로도 타당할 수가 없음을 밝히려고 그가 시도했다. 그런 추론은 심지어 개연적 추론도 될 수가 없었다: 그런 추론은 틀림없이 오히려 완전히 근거가 없으며, 아무리 관찰된 사례의 숫자가 클지라도 틀림없이 근거가 없는 상태로 항상 남는다. 그리하여 알려진 것으로부터 미지의 것으로, 혹은 경험된 것으로부터 경험되지 않은 것으로 (그리하여 예를 들어 과거로부터 미래로) 우리가 타당하게 추론할 수 없음을 밝히려고 그가 시도했다: 태양이 규칙적으로 뜨고 지는 것이 아무리 자주 규칙적으로 관찰되었을지라도, 심지어 관찰된 사례의 최대 숫자도 태양의 뜨고 지는 것에 대한 규칙성이나 법칙을 위한 긍정적 근거라고 내가 불렀던 것이 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 최대 숫자로 인하여 이 법칙이 확립될 수도 없고 개연적이 될 수도 없다.
(iii) 경험에 의하여 제공되는 근거를 제외하고 보편법칙에 대한 소신을 정당화하는 타당한 근거가 있을 리 없다고 그가 지적했다.
(i)을 한편으로 (ii)와 (iii)을 다른 편으로 그 사이의 충돌이 흄의 문제인 귀납의 논리적 문제(the logical Problem of Induction)이다.
요점 (ii)와 (iii)은 다소 더 예리하고도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재언명될 것이다.
(ii) 단칭 관찰서술로부터 보편적 자연법칙으로, 그리하여 과학적 이론으로 타당한 추론이 있을 리 없다.
이것이 귀납의 무효성 원칙이다.
(iii) 우리가 과학적 이론을 채택하고 배척하는 것이 관찰과 경험의 결과에, 그리하여 단칭 관찰서술에 의존해야 한다고 우리가 요구한다.
이것은 경험론의 원칙이다.
이제 (i)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자. 그렇다면 귀납의 논리적 문제의 본질은 (ii)의 귀납의 무효성 원칙과 (iii)의 경험론 원칙 사이의 피상적 충돌이다: 귀납 없이 우리가 과학적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경험론이 암시하는 듯하다.
흄은 (ii)와 (iii) 사이의 충돌이 단지 피상적이라고 깨달았는데 이유인즉 그가 (ii)와 (iii) 모두를 수용하고 합리주의를 포기함으로써 ‘충돌’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법칙에 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이 관찰로부터 ㅡ (iii)에 따라서 ㅡ 귀납에 의하여 습득된다고 그가 결정하여, 귀납이 합리적으로 무효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이성보다 연상(association)에 (반복으로부터 귀결되는 ‘버릇[habit]’) 의존해야 함이 밝혀진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도 (ii)와 (iii)을 수용하지만, 그것들로부터 반(反)-합리주의적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다. (ii)와 (iii)의 양립가능성을 내가 주장할 뿐 아니라 또한 (ii)와 (iii)이 다음 원리 (iv)와도 일관적이라고 주장한다:
(iv) 과학적 이론을 우리가 채택하는 것과 배척하는 것이 우리의 비판적 추론에 ((iii)에 의하여 요구되는 바와 같이 관찰과 실험의 결과와 연계하여) 의존하여야 한다고 우리가 요구한다.
이것이 비판적 합리주의의 원칙이다.
(i)과 (iv)가 일관적임을 알기 위하여 과학적 이론을 우리가 ‘채택하는 것’이 오직 잠정적일 수 있다고 우리가 깨닫기만 하면 된다; 과학적 이론이 항상 짐작이나 추측 또는 가설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우리가 깨닫기만 하면 된다. 과학적 이론이 진리를 자주 놓칠지라도 진리를 떠올리려는 희망으로 물론 제시된다. 과학적 이론은 참이거나 거짓일 것이다. 과학적 이론은 관찰에 의하여 시험될 것이고 (이 시험들을 점점 더 엄격하게 만드는 것이 과학의 주요 과제이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배척될 것이다. 흄의 논증에 시험가능성에 반대하여 말하는 것이 없고, 보편법칙이 관찰서술에 의하여 부정되기 때문에 보편법칙을 배척하는 가능성에 반대하여 말하는 것이 없다. 정말로 우리는 제시된 법칙을 시험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없다: 관찰에 의하여 우리가 보편적 이론을 확립하거나 정당화하거나 개연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해도 소용없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보편적 이론에 대하여 긍정적 근거를 우리가 제시할 수 없다. 보편적 이론은 짐작이나 추측으로 남는다 ㅡ 혹시 잘 시험된 보편적 이론일지라도. 그러나 그 보편적 이론이 해결하는 문제와, 그 이론이 통과한 비판 및 시험을 우리가 고찰하면 다른 이론들보다 그 보편적 이론을 선호하는 데 탁월한 비판적 근거를 우리가 지닐 것이다 ㅡ 비록 단지 잠정적이고 임시적일지라도.
여기서 내가 말한 것은 흄이 지녔던 귀납의 논리적 문제에 완벽한 해결책을 제공한다. 이 해결책의 열쇠는, 심지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이론과 심지어 실제로 참인 우리의 이론도 항상 짐작이나 추측으로 남는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 이론이 사실상 참일지라도 우리는 이 사실을 알 수 없다; 경험으로부터 알 수 없고 다른 근원으로부터도 알 수 없다.
나의 해결책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i) 응용과학과 이론과학 모두에 대하여 이론이 극도로 중요하다는 견해의 수용.
(ii) 귀납에 반대하는 흄의 논증 수용: 우리의 이론을 신뢰하는 데 우리가 긍정적 근거를 소유할 것이라는 희망은 저 논증에 의하여 파괴된다. (그러나 흄의 논증이, 우리의 이론을 반증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이론을 시험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어떤 난제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하라.)
(iii) 경험론의 원칙 수용: 과학적 이론은 실험적이거나 관찰적 시험의 결과에 비추어 배척되거나 채택된다 (비록 단지 일시적이고 잠정적일지라도).
(iv) 비판적 합리주의의 수용: 과학적 이론은 합리적 비판의 결과에 비추어 알려진 다른 이론들보다 낫거나 더 나쁜 것으로서 배척되거나 채택된다 (비록 단지 일시적이고 잠정적일지라도).
이것이 흄의 문제에 ㅡ 귀납의 논리적 문제 ㅡ 대한 나의 해결책을 간단하게 개괄한 것이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 2000년, 31-4쪽 ㅡ
'칼포퍼 원전+번역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지적 감옥으로부터 탈출 (0) | 2026.02.23 |
|---|---|
| 이론을 정당화할 것인가, 오류로 판정할 것인가 (2) | 2026.02.23 |
| 이론의 생존 적합성 (0) | 2026.02.23 |
| Microbe Hunters (pdf), Paul de Kruif (0) | 2026.02.18 |
| 과목은 없고 과학적 방법도 없다 (0) | 2026.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