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론자가 아니면 과학의 과제를 이해할 수 없다
과학의 과제가 만족스러운 설명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내가 제안했고 우리가 실재론자가 아니라면 이해될 수 없다. 이유인즉 만족스러운 설명이 임시방편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관념은 ㅡ 독립적 증거라는 관념 ㅡ 발견이라는 관념, 설명의 더 깊은 수준으로 진보한다는 관념이 없다면 이해될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가 발견할 것이 있다는 관념이 없다면 이해될 수 없다; 그리고 비판적으로 토론할 것이 있다는 관념이 없다면 이해될 수 없다.
그러나 방법론 내부에서 우리가 형이상학적 실재론을 전제할 필요가 없다고 나는 본다. 또한 직관적 종류의 도움을 제외하고 형이상학적 실재론으로부터 여하한 도움도 우리가 도출할 수 없다. 이유인즉 과학의 목적이 설명하는 것이라는 말을 그리고 가장 만족스러운 설명이 매우 엄격하게 시험될 수 있고 매우 엄격하게 시험되는 설명일 것이라는 말을 우리가 듣자마자, 우리가 방법론자로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그 목적이 실현될 수 있다고 우리가 주장할 수 없다 ㅡ 형이상학적 실재론의 도움을 받고도 주장할 수 없고 그 도움 없이도 주장할 수 없는데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우리에게 단지 약간의 직관적 격려, 약간의 희망을 줄 수 있지만, 여하한 종류의 확신을 줄 수는 없다. 그리고 방법론의 합리적 취급이 전제되거나 추측된 과학의 목적에 의존한다고 언급될지라도, 세상에 대한 참인 구조적 이론이 (만약 있다면) 인간의 언어로 서술될 수 있다는 형이상학적이고 매우 개연적인 거짓 전제에 그 취급이 틀림없이 의존하지 않는다.
현대 과학이 그리는 세상에 대한 그림이 진리 가까운 곳에 온다면 ㅡ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과학적 지식’과 같은 것이 있다면 ㅡ 우주의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하는 조건으로 인하여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종류의 구조적 법칙들의 발견이 ㅡ 그리고 그리하여 ‘과학적 지식’의 달성 ㅡ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이유인즉 우주의 거의 모든 지역이 혼란스러운 방사선으로 가득 차고 나머지 거의 모든 지역이 동일하게 혼란스러운 상태인 물질로 가득 차기 때문이다. 이것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과학의 목적으로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을 향하여 과학이 나아가는 데 기적적으로 성공했다. 이 기묘한 사실은, 너무 많은 것을 증명하지 않고 설명될 수 없다고 내가 생각한다 (3절의 주석1에 대한 원문과 비교하라). 그러나 그 목적에 실제로 도달할 수 있다고 믿을 추가 격려를 우리가 얻지 못할지라도 그 기묘한 사실에 의하여 우리가 그 목적을 추구하도록 격려받을 수 있다; 우리는 그 추가 격려를 형이상학적 실재론으로부터 얻지 못하고 여하한 다른 근원으로부터도 얻지 못한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 2000년, 145-6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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