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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과학도 유의미할 수 있다

이윤진이카루스 2026. 4. 9.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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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과학도 유의미할 수 있다

 

23. 심지어 사이비-과학도 유의미할 이유. 과학에 대한 형이상학적 강령.

구획설정에 ㅡ 다시 말해서, 시험가능성 ㅡ 대한 나의 기준은, 특정 구체적 난제들에서 철학자에게뿐 아니라 과학자에게도 필요하다. 그 기준에 의하여 경험에 관하여 진지하게 토론될 수 있는 저 이론들이 골라진다. 그 기준에 의하여 그렇게 토론될 수 없는 다른 이론들이 있다고 과학자에게 경고된다; 그래서 그 기준에 의하여 이 다른 이론들이 시험될 수 없기 때문에 시험하기와 다른 방법들에 의하여 검토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과학자가 주목하게 된다. 과학자가 그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다른 방법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는 그 이론들을 배척하고 자신이 충분히 정당하다고 간주할 것이다. (‘반증 불가능성은 미덕이 아니라 악덕이다.’ 7참조.)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 과학자는 항상 위험을 감수하고 있을 것이다; 이유인즉 심지어 사이비-과학이나 형이상학적 이론으로부터 실제로 흥미로운 것을 배우기가 간혹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이비-과학의 고전적 사례로서 우리는 점성술을 고려할 것이다. 점성술의 역사는, 천문학의 역사와 함께, 행성들이 신()이라는 종교적 신념까지 (심지어 플라톤도 주장했던 바와 같이)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이 다신론적 신앙은, 점성술과 천문학 모두에서 배척되어서 점성술과 천문학 모두가 행성들이 신()들을 본떠서 단지 명명되었다고 동의했다. 그러나 점성술은 다신론을 배척하는 반면 오래된 신()들의 명칭에 지속적으로 마술적 중요성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계산될 수 있는 영향력들로서 자체가 취급했던 전형적으로 신적(神的)인 위력을 지속적으로 행성들에 귀속시키기도 했다.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학파와 다른 합리주의자들에 의하여 배척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된 이유로 그것을 부분적으로 배척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배척을 너무 멀리 실행했다. 예를 들어 조류(潮流)에 관한 달() 이론은 역사적으로 점성술의 지식이 낳은 것이다. 뉴튼이 그 이론을 수용하기에 앞서 그 이론은 합리주의자 대부분에 의하여 점성술적 미신으로 배척당했다. 그러나 뉴튼의 만유인력 이론으로 인하여, 달이 달 아래의 사건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 아니라 달 위의 천체 몇 개가 중력인 영향력을 지구에 그리하여 지구 아래의 사건들에 정말로 미친다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설과 대조적으로 밝혀졌다. 그리하여 갈릴레오를 포함하는 몇 명의 최고 두뇌에 의하여 신빙성을 잃은 사이비-과학의 일부로서 배척된 교설을, 뉴튼이 주저하지만 의식적으로 수용했다.

이것으로 인하여 사이비-과학적 이론을 손에서 배척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쉽게 매우 중요한 관념을 놓칠 수 있는지 밝혀진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복잡할지에 대한 훌륭한 사례가 케플러(Kepler)에 의하여 제공될 것인데 그의 이론들은 과학과 점성술의 기묘한 혼합물이었다. 단지 주저하면서 점성술적 관념을 수용했던 뉴튼과 달리, 케플러는 플라톤-피타고라스적 전통에 속하여 별들의 영향력을 믿었는데 특히 행성들에 미치는 태양의 영향력을 믿었다. 그러나 케플러는 고도로 정교하고 자기-비판적 천문학자였다: 그는 자신의 가설들을 결코 지치지 않고 독창적이고도 고도로 비판적인 시험에 제출하면서 최고로 이용될 수 있는 천문학적 증거에 비추어 그 가설들의 결과를 검토했다. 그의 탁월한 자기-비판적 태도로 (‘나는 참 바보였구나라고 그가 서술했다) 인하여 ㅡ 그의 아름다운 가설 중 몇 가지 가설의 공상적 특징에도 불구하고 ㅡ 그는 과학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점성술사들은 부수적으로 자신들의 이론이 엄청나게 많은 검증에 ㅡ 압도적인 귀납적 증거에 ㅡ 근거한다고 항상 자랑했다. 이 주장이 진지하게 조사되거나 탐구된 적이 없어서 그 주장이 참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내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 점성술이 검증되었는지는 흥미롭지 않다; 의문은 점성술이 그 점성술을 오류로 판정하려는 성실한 시도에 의하여 진지하게 시험된 적이 있는지이다.

우리는 이제 점성술이라는 사이비-과학에서 고도로 중요한 형이상학적 이론으로 ㅡ 원자론으로 ㅡ 방향을 선회할 것이다. 아무튼 아보가드로(Avogadro) 이전 입자론의 형이상학적 특징은 분명하다. 그 입자론을 반증할 가능성이 없었다. 입자들을 탐지하지 못하는 것이나 입자들에 대한 증거는, 그 입자들이 너무 작아서 탐지될 수 없다고 지적함으로써 항상 설명될 수 있었다. 분자의 크기에 대한 추정치를 낳은 한 이론으로써만 이런 도피 노선이 다소 막혀서 반증이 원칙적으로 가능해졌다. (‘검증은 원칙적으로 이것 이전에 가능했다: 가령 현미경의 발명으로 인하여 현미경으로 관찰될 수 있는 분자들의 발견이 상상컨대 아마도 이룩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원자론은, 분자의 크기에 대한 추정치에 매달리자마자 시험이 가능해졌다. 이 사례로 인하여 시험될 수 없는 이론이 ㅡ 형이상학적 이론 ㅡ 시험이 가능해질 때까지 발전되고 강화될 것이라고 밝혀진다. 그러나 이것이 그러하다면 시험될 수 없는 이론을 무의미한 것으로서 기술하면 심각한 오해를 낳은 듯하다; 그래서 그런 이론을 마흐(Mach)가 그랬던 바와 같이 손에서 배척하면 매우 위험하다.

원자론의 사례가 그렇게 고도로 특징적이고 그렇게 고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그 사례를 내가 반복해서 언급했다. 초기 원자론은 그 이론이 시험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뿐 아니라, 그 이론이 세상을 방대한 일반화에 관하여 가장 원대한 규모로 상상했다는 의미에서도 형이상학적 체계였다: ‘원자들과 공동(空洞)만 있다’ (레우키포스[Leucippus],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그 이론의 근본적 개념인 원자들과 공동(空洞) 모두가 ㅡ 데모크리토스가 엄청나게 충격적인 논리로 밝힌 바와 같이 ㅡ 관찰이 불가능해서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원자론은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써 알려진 것을 설명했다: 원자론은 우리에게 알려진 세상 배후에 있는 알려지지 않고 보일 수 없는 세상을 구축했다. 그리고 원자론은, 바로 그 이유로, 실증주의자들에 의하여 (심지어 1905년 이후에도), 베이컨에서 마흐(Mach)에 이르는 모든 귀납주의자들에 의하여, 그리고 버클리(Berkeley)에서 뒤엠(Duhem)에 이르는 모든 도구주의자에 의하여 끊임없이 공격받았다. 1905년 이래 실증주의자들은 이 요점에 대하여 말을 더 아끼게 되었고 이해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의미한 횡설수설이 변질되어 의미가 될 수 있는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결코 설명하지 않았다. 사실상 원자론이라는 사례에 의하여, 형이상학이 무의미한 횡설수설일 뿐이라는 교설의 불합리성이 확립된다. 그리고 그 사례에 의하여, 무의미함의 교설을 구원하려는 헛된 희망에서 무의미함의 교설에 대하여 이곳저곳에서 하찮고 은밀스러운 변화를 꾀하는 정책의 불합리성이 확립된다.

아무튼 원자론은, 과학에 대한 자체의 영향이 시험될 수 있는 많은 과학적 이론의 영향력을 능가한 시험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이론에 대한 탁월한 사례이다. 이 종류의 또 다른 원대한 이론은, 세상에 대한 데카르트의 시계장치 이론(clockwork theory)이었거나 (모든 물리적 인과성이 추력[push]에 의한다는 교설에 그 이론이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이론을 지칭하는 바와 같이) 그렇게 지칭될 것과 같이 움직이는 확대된 물질에 관하여 물리적 세상을 해석하는 홉스(Hobbes)와 데카르트 그리고 보일(Boyle)의 강령이었다. 그러나 최근이고 당시까지 가장 뛰어났던 이론은 패러데이(Faraday), 맥스웰(Maxwell), 아인슈타인, 드 브로이(de Broglie)와 슈뢰딩거(Schrödinger)의 강령으로 세상을 ㅡ 공동(空洞)뿐 아니라 원자들 ㅡ 연속적 장(: fields)에 관하여 생각하는 강령이었다. 이 훌륭한 강령이 몇 명의 다른 위대한 물리학자에 의하여 파괴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었다(was)’라고 말한다. (후기III권 참조.)

이 형이상학 이론들 각각은, 시험될 수 있기 전에 과학에 대한 연구 강령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그 이론들 각각은 우리의 탐구 방향과, 우리를 혹시 만족시킬 설명의 종류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이론들 각각으로 인하여 이론의 깊이에 대한 평가와 같은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생물학에서 진화론, 세포론 그리고 박테리아 감염 이론 모두가 적어도 일정한 시간 동안 유사한 역할을 담당했다. 심리학에서 감각주의(sensationalism)는 일종의 심리학적 원자론의 (다시 말해서 모든 경험이 예를 들어 감각 자료들과 같이 분석될 수 없는 궁극적 요소들로 구성된다는 이론) 형태와 정신-분석의 형태를 띨 것인데, 또한 형이상학적 연구 강령으로서 언급되어야 한다.)

이 형이상학적 강령들이 과학에 중요했을지라도 그 강령들은, 과학자들이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시험될 수 있는 이론들로부터 구분되어야 한다. 이 강령들로부터 과학자는 자기 목표를 ㅡ 자기가 만족스러운 설명으로 고려할 터인 깊은 곳에 숨겨진것의 실재적 발견 ㅡ 도출한다. 경험적으로 반증이 불가능할지라도 이 형이상학적 연구 강령들은 토론에 개방되어 있다; 그 강령들은 자기들이 고취하는 소망에 비추어, 혹은 자기들이 책임져야 할 실망에 비추어 변경될 것이다.

물론 가치가 없는 (또는 내가 그렇게 믿는) 형이상학적 관념들이 과학에 또한 있다. 과학적 발견의 논리, 15절에서 (27절 또한 참조) 토론된 순수 존재명제중 몇 가지가 여기에 속한다. ‘바다-뱀이 존재한다라는 주장은, 가능한 시험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여하한 지적이라도 그 주장에 덧붙지 않으면, 과학자에게 특별히 흥미롭지 않다. 그러나 그런 순수 존재명제들이, 과학사의 일부가 된 적이 없을지라도, 간혹 암시적이고 심지어 유용했다고 판명되었다. 정말로 비록 오류로 판정될 수 없을지라도 순수 형이상적 이론인 철학자의 돌이 (, 비금속을 금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물질) 존재한다라는 검증된 적이 없고 지금은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는 것보다, 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더 크게 미친 형이상학적 이론은 없다. 철학자의 돌이라는 사례에 의하여, 적어도 이 경우 시험가능성의 결여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것은 명제의 존재적 특징이지 모호하거나 무의미한 용어들의 출현이 아니라고 부수적으로 밝혀진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ence)’, 2000, 189-193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