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을 찾은 것인가, 반증을 찾을 것인가
그러나 구획설정의 문제는 실제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하다. 내가 귀납 문제에 흥미를 두기 전과, 내가 방금 언급한 귀납과 구획설정의 문제 사이의 연결 관계를 인지하기 몇 년 전에 나는 이 문제와 이 문제의 해결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것은 1919년이었고 당시 경험과학의 위상을 주장하는 다양한 심리학적이자 정치적 이론을,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psychoanalysis)’과 아들러(Adler)의 ‘개별 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 및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 해석(materialist interpretation of history)’을 내가 의심하게 되었다. 이 이론 모두는 내가 보기에 무비판적 방식으로 논증되었다. 많은 숫자의 논증이 그 논증들을 지지하는 데 결집했다. 그러나 비판과 반대 논증은 적대적으로서, 명백한 진리를 악의적으로 거부하는 증상으로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그 비판과 반대 논증은 논증들보다 적의(敵意)와 마주쳤다.
이 이론들에 관하여 내가 발견한 그렇게 두드러지고 위험한 것은, 그 이론들이 부단히 계속되는 관찰성 증거에 의하여 ‘검증되었(verified)’거나 ‘확인되었(confirmed)’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여러분은 눈을 뜨자마자 검증하는 증거를 도처에서 볼 수 있을 터이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신문을 펼칠 때마다 지도자에서부터 광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문지 면에서 계급투쟁을 검증하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을 터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는 특히 신문이 언급하지 않는 것에서도 그 증거를 또한 발견할 터이다. 프로이트파이든 아들러파이든 정신분석학자는 자신의 이론이 매일, 심지어 매시간 자신의 임상적 관찰에 의하여 검증됨을 발견한다고 여러분에게 확신하여 말할 터이다.
그러나 이 이론들이 시험될 수 있었나? 이 분석들이, 가령 빈번히 ‘검증된’ 점성술사의 점성술보다 실제로 더 잘 시험되었나? 그 이론의 지지자들의 눈에 상상 가능한 어떤 사건에 의하여 그 이론들이 오류로 판정될 터인가? 상상 가능한 모든 사건이 ‘검증’이 아니었나? 그 이론의 지지자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정확하게 이 사실이었다 ㅡ 그 이론들이 항상 맞아떨어졌고, 그 이론들이 항상 ‘검증되었다’는 사실. 이 표면적 힘이 사실상 약점이라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검증’이 논증으로서 간주되기에 너무 싸구려라는 생각이 나에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검증을 찾는 방법은 내가 보기에 불건전하다 ㅡ 정말로 그 방법은 내가 보기에 사이비-과학의 전형적 방법이었다. 나는 이 방법을 저 다른 방법으로부터 ㅡ 가능한 한 엄격하게 이론을 시험하는 방법 ㅡ 다시 말해서 비판의 방법인 오류로 판정하는 사례들을 찾는 방법으로부터 가능한 한 분명하게 구분할 필요를 깨달았다.
검증을 찾는 방법은 무비판적일 뿐 아니라 주창자나 독자 모두에게서 무비판적 자세를 또한 확대했다. 그리하여 그 방법은 합리성의 태도인 비판적 논증의 태도를 파괴하려고 위협했다.
프로이트는 내가 언급하고 있는 이론들의 주창자 중에서 단연코 가장 명쾌하고도 설득력 있는 주창자였다. 그러나 그의 논증 방법은 무엇이었나? 그는 사례들을 제시했다; 그는 사례들을 분석하여 그 사례들이 자신의 이론에 들어맞는다고, 혹은 자신의 이론이 분석된 사례들에 대한 일반화로서 아마도 기술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때때로 자기 독자에게 그들의 비판을 연기하라고 요구했고 모든 합당한 비판에 대하여 나중에 자신이 답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내가 몇 가지 중요한 경우를 다소 더 세밀하게 조사했을 때 그의 답변은 결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많은 독자가 만족했다.
이것들이 단순한 주장도 아니고 공허한 비난도 아님을 밝히기 위하여 프로이트의 대작이자 그와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그의 최고 걸작으로 올바르게 여겨지는 꿈 해석(The Interpretation of Dreams)의 근본적 논지에 대한 프로이트 자신의 토론을 분석함으로써 나는 다소 상세하게 이것들을 입증하겠다. 그의 접근방법이 비판적이었나?
18. 검증주의의 한 가지 경우.
그렇지 않다면 고도로 영리한 환자가 너무 영리하지 않은 근거로
제안을 거부하면 그의 불완전한 논리는 자신의 거부에 대한 한 가지
... 강력한 동기의 존재에 관한 증거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이 절의 목표는 유명한 하나의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구획설정의 문제가 이론을 과학적 및 비과학적 이론으로 구분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문제의 해결책이 과학적 이론이나 과학적 이론이라고 주장되는 이론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데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밝히는 것이다. 나는 이 목적을 위하여 두 가지 이유로 프로이트의 대작 꿈 해석(The Interpretation of Dreams)을 선택했다. 먼저 그 저서의 논증을 분석하려는 나의 시도가, 구획설정에 관한 나의 견해 개진에서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내가 여기서 밝히려고 시도할 몇 가지 심각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 저서는 당연한 의심을 넘어 한 가지 위대한 발견을 포함한다. 의심할 바 없이 불완전하고 (프로이트 자신이 밝히는 바와 같이) 틀림없이(necessarily) 다소 편향적일지라도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고, 그리고 그의 저서에 제시된 프로이트의 꿈 분석은 근본적으로 옳다고 나는 적어도 확신했다. 심지어 ‘순수한’ 관찰도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ㅡ 그 관찰은 반드시(necessarily) 해석의 결과이다 ㅡ 나는 ‘반드시(necessarily)’라고 말한다. (관찰은 우리의 이론에 비추어 항상 수집되어 배열되고 해석되어 측정된다. 부분적으로 이런 이유로 우리의 관찰은 우리의 이론들을 뒷받침하는 경향을 띤다. 이 뒷받침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비판적 태도를 채택해서 우리의 이론에 대한 ‘검증’보다 반증을 찾지 않는다면 거의 가치가 없거나 가치가 전혀 없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ence)’, 2000년, 162-4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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