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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그 적들 제 12장 헤겔과 새로운 종족주의

이윤진이카루스 2010. 7. 31. 18:49

12장: 헤겔과 새로운 종족주의

 

 

 

그리고 헤겔 철학은 너무 심오해서 대부분

이해될 수 없는 사상의 분석이었다..

J. H. 스털링(STIRLING)

 

 

 

 

 

 

 

I

모든 현대 역사주의의 시조인 헤겔은 헤라클리투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직계 후계자였다 (역사주의는 과거 역사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으며, 역사 속에서 진보의 공식도 찾을 수 있다는 비과학적 주장이다 - 역자 주). 헤겔은 최상으로 기적적인 일을 이룩했다. 거장 논리학자로서, 그의 강력한 변증법적 방법이 순전히 형이상학적 비단모자(silk hat)로부터 실제 살아있는 토끼를 꺼내는 것은 애들 장난이었다. 그리하여, 플라톤의 저서 티마이오스(Timaeus)와 그 속의 숫자 신비주의로부터 시작하여, 헤겔은 순전히 철학적 방식으로 (뉴튼의 저서 수학원리[Principia]가 발간된 지 114년 후에) 혹성들이 케플러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케플러의 법칙은 뉴튼의 중력 이론에 의하여 반증되어 거짓으로 밝혀졌다. 이 문장에서 저자는 ‘증명하는 데[proving]’로 묘사하여 그 증명이 거짓임을 밝히고 있다 - 역자 주). 그는 심지어 혹성들의 실제 위치를 연역하는 일을 성취하여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혹성이 위치할 수 없다고 증명했다 (불행하게도, 그런 혹성이 몇 개월 전에 발견되었다는 것을 그는 알아채지 못했다). 유사하게, 그는 자성을 띤 쇠는 그 무게가 늘어난다는 것, 뉴튼의 관성 이론과 중력이론은 서로 모순이 된다는 것(물론 그는 아인슈타인이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의 동일성을 증명하리라고 예견할 수 없었다)과 이런 종류의 많은 다른 것들을 증명했다. 그렇게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사변적 방식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당시 독일 자연과학의 후진성에 의해서 부분적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 그 까닭은, 내가 생각하기에, 사실인즉 그것은 처음에는 쇼펜하우어나 J. F. 프라이스(Fries)같은 엄격한 사람이나, 아무튼 데모크리투스처럼 ‘페르시아의 왕이 되느니 한 가지 인과법칙을 발견하기를 원했던’ 저 과학자들에 의하여 실제로 심각하게 고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겔의 명성은 결국 모든 신비를 벗기는 능력이 없어서 그들을 실망시킬 따름인 힘든 과학의 기술적 언어보다는 세상의 깊은 비밀을 은밀히 재빨리 알려주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그 까닭은 아무것도 그렇게 쉽게 어떤 문제에도 적용될 수 없다는 것과, 동시에 그렇게 인상적인 (겉으로 만이라 할지라도) 난해성과 그렇게 재빠르고 확실하지만 위압적인 성공으로는 ‘황량한 형식적 논리’를 대신했던 비밀스런 방식인 헤겔의 변증법(dialectics)이 그랬던 것과 같이 그렇게 값싸고 과학적 훈련과 지식 없이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과, 어떤 것도 그렇게 장엄한 과학적 분위기를 내놓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들은 곧 알아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문장에서 정통 과학적 방식을 헤겔주의자들이 부르는 ‘황량한 형식적 논리’라고 인용하면서 헤겔주의자들의 얄팍한 사고를 비판하고 있다 - 역자 주). 헤겔의 성공은 ‘거짓의 시대’ (쇼펜하우어가 독일 관념주의 기간을 설명하는 바와 같이)의 시작이었으며 ‘무책임의 시대’ (K. 하이든[Heiden]이 현대 전체주의 시대를 특징짓는 것처럼)의 시작이었다 ; 처음에는 지적(知的) 무책임의 시대이고 나중에는, 지적 무책임의 시대의 결과로 도덕적 무책임의 시대 ; 허세로 가득 찬 말이라는 마술과 은어(隱語)의 힘으로 통제되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

먼저 독자로 하여금 헤겔의 허세적이고 황당한 거짓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그가 소리에 관하여, 특히 소리와 열(熱) 사이의 관계에 관하여 발견했던 놀라운 세부설명 몇 가지를 인용하겠다. 나는 이 횡설수설을 헤겔의 자연철학(Philosophy of Nature)에서 가능한 한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이렇게 쓴다 : ‘§302. 소리는 물질의 부분을 분리하는 특정 상황에서, 그리고 이 상황을 부정(否定)하는 데서의 변화이다 ;- 말하자면, 단지 그 특정성의 추상적이거나 이상적인 관념성. 그러나 이 변화는, 따라서, 그 자체로 즉각 물질적인 특정 존재의 부정(否定)이다 ; 그것은, 그러므로, 특정 중력과 응집의 실제적 관념성(real ideality), 다시 말해서 -(熱: heat)이다. 두드리거나 문지르는 물체와 꼭 마찬가지로 소리를 내는 물체를 가열하는 것은 소리와 함께 개념적으로 나타나는 열(熱)의 출현이다.’ 헤겔의 성실성을 여전히 신뢰하거나, 그의 난해함은 무의미보다는 사고의 심오함과 충만이 아니었던지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이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 - 유일하게 이해가 되는 문장 -을 정독하기를 바라는데, 그 이유는 이 문장 속에서 헤겔은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 문장은 다름과 같이 말할 따름이다 : ‘소리를 내는 물체를 가열하는 것은.. 열(熱)이다.. 소리와 함께.’ 헤겔이 자신의 고무적인 횡설수설에 의하여 최면을 당하여 자신을 속였는지, 혹은 그가 과감하게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여 마술을 걸려고 했던지 의문이 생긴다. 특별히 헤겔이 자신의 한 편지 속에서 써놓은 것을 고려하면 사실은 후자이어서 나는 만족한다. 그의 저서 자연철학(Philosophy of Nature)이 발간되기 몇 년 전의 날짜가 찍힌 이 편지에서, 헤겔은 친구였던 쉘링(Schelling)이 쓴 또 다른 자연철학(Philosophy of Nature)을 언급했다 : ‘나에게는 수학.. 미분학, 화학에 관하여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자연철학의 횡설수설에 의하여, 이 사실에 대한 지식 없는 철학화에 의하여.. 그리고 심지어 천치 같은 환상인 환상만을 아이디어로 취급함으로써 내 자신을 빨려 들어가게 할 수 없다.’라고 이 편지에서 헤겔은 뽐낸다 (그러나 이것은 엄포일 뿐이다). 이것은 적당한 청중에게 전해진다면 성공을 의미하리라고 그가 깨닫고 쉘링의 방식을, 다시 말해서 헤겔 자신이 모방했거나 정확하게 말해서 더 악화시켰던 저 대담한 기만방식을 매우 올바르게 특징짓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헤겔이 독일철학에서 자신의 뒤에 프러시아라는 국가의 권위를 업지 않고는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는 나폴레옹 전쟁이후 봉건 ‘복귀’ 기간에 지명된 프러시아국가주의의 최초 공식 철학자가 되었다. 나중에, 국가는 또한 그의 제자들을 후원하였고 (독일은 과거에도 그랬고,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국가가 통제하는 대학만을 가지고 있다), 제자들은 서로 돕는다. 그리고 헤겔철학이 그 제자들 대다수에 의하여 공식적으로는 부정된다고 할지라도 헤겔 쪽으로 기우는 철학자들이 철학교육을 지배하여, 그 후 간접적으로 심지어 독일의 중등교육을 지배했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대학 중에서, 천주교 국가인 오스트리아의 대학들은, 홍수 속의 섬들처럼,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리하여 대륙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다음에, 헤겔철학은 영국에서 그렇게 강력한 운동은 결국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스털링(Stirling)이 헤겔의 비밀(The Secret of Hegel)이라고 불렀던 것을 찾기 시작했던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은, 물론, 헤겔이 주장하는 ‘고등’ 이상주의와 ‘고등’ 도덕성에 매혹되었고 그들은 또한 제자들의 합창에 의하여 비도덕적이라고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했다 ; 그 까닭은 심지어 더 중도적인 헤겔주의자들도 자신들의 원칙에 대하여 ‘그 원칙들은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가치에 대항하는 영원히 적대적인 힘으로부터 나오는 공격에 직면하여 항상 다시 정복되어야 하는 획득물이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리한 몇 명의 사람들은 (나는 주로 맥태가트[McTaggart]를 생각하고 있다) 헤겔의 수준을 상당히 지나쳐 건설적인 이상주의적 사고에서 커다란 노력을 기울였다 ; 그러나 그들은 동일하게 영리한 비평가들을 위하여 목표를 제시하는 것 외에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유럽대륙 밖에서, 특히 지난 20년 동안, 헤겔에 대한 철학적 흥미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헤겔에 대하여 더 이상 걱정해야 하는가 ? 대답은 헤겔의 영향력은 과학자들이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실과, (‘진화론자들’을 제외하고) 많은 철학자들이 그에게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매우 강력한 힘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헤겔의 영향력과, 특히 그의 헛소리의 영향력은 여전히 도덕과 사회철학 및 정치학에서 (경제학만 제외하고) 매우 강력하다. 특히 역사, 정치, 그리고 교육 철학자들은 여전히 크게 그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정치학에서, 이것은 보수 중도파와 파시스트 극우파뿐만 아니라 마르크스 극좌파, 모두가 자기들의 정치철학을 헤겔에게 의지한다는 사실에 의하여 매우 강력하게 나타난다 ; 좌파는 헤겔의 역사주의적 도식에서 나타나는 국가의 전쟁을 계급 전쟁으로 바꾸고, 극우파는 국가의 전쟁을 종족 전쟁으로 바꾼다 ; 그러나 양쪽 모두 다소 의식적으로 헤겔을 추종한다. (보수적 중도파는 대체로 헤겔에게 진 빚을 덜 의식한다.)

이 엄청난 영향력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 나의 의도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보다는 이 현상과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몇 가지 설명으로 제안을 하겠다. 어떤 이유 때문에, 심지어 오늘날에도, 철학자들은 마술사와 같은 분위기를 자신의 주위에 지녀왔다. 철학은 종교가 다루는 신비를 다루는 이상하고도 심오한 종류의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아기들에게 신비를 밝히거나 일반인에게 밝힐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아기들에게 신비를 밝힌다’는 의미는 성경 구절로 천진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신비가 보인다는 의미이며 ‘일반인에게 밝힌다’는 의미는 사람은 누구나 진실을 이해할 수 있다는 평등사상을 의미한다 - 역자 주) ; 철학은 그것 때문에 너무 심오하고, 지식인들과 박식하고 현명한 사람들의 종교와 신학이라고 여겨진다. 헤겔철학은 이 관점에 훌륭하게 들어맞는다 ; 헤겔철학은 이런 종류의 대중적 미신이 철학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 헤겔철학은 모든 것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 철학은 모든 질문에 답변을 준비해두고 있다. 그리고 정말로, 누가 그 답변이 사실이 아니라고 확실할 수 있다는 말인가 ?

그러나 이것이 헤겔이 성공한 주요 이유는 아니다. 그의 영향력과, 그의 철학에 대항하여 싸울 필요성은 아마도 일반적인 역사적 상황을 간단히 생각해보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중세의 권위주의는 르네상스와 함께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륙에서는, 그 정치적 동반자인 중세 봉건제도가 프랑스혁명 전에는 심각하게 위협을 받지 않았다. (종교혁명은 중세 봉건제도를 강화했을 따름이다.) 열린사회를 위한 투쟁은 1789(프랑스 혁명)년의 이념으로써만 다시 시작되었다 ; 그리고 봉건 제후들은 곧 이 위험의 심각성을 경험했다. 1815년에 반혁명적 정당이 프러시아에서 정권을 탈환하기 시작했을 때, 그 정당은 이념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알았다. 헤겔은 이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지명되었고, 그는 열린사회에 대한 최초의 위대한 적인 헤라클리투스(Heraclitus)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부활시킴으로써 화답했다. 프랑스 혁명이 위대한 세대와 기독교의 항구적 이념인 자유, 평등, 그리고 모든 사람의 형제애를 다시 발견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헤겔은 자유와 이성을 적대하는 항구적 반란 뒤에 숨어있던 플라톤의 사상을 다시 발견했다 (위대한 세대란 저자가 그리스의 민주정치를 실현한 페리클레스, 소크라테스, 안티스테네스 등을 지칭하여 붙인 이름으로 이들 중 안티스테네스는 플라톤과 30인의 참주로 대표되는 그리스의 참주 정치가들과 참혹한 전쟁을 벌려 결국 승리한다 - 역자 주). 헤겔 사상은 종족주의의 부흥이다. 헤겔의 역사적 중요성은 그가 ‘실종된 연결고리’를, 말하자면 플라톤과 전체주의의 현대판 사이의, 대변한다는 사실에서 밝혀질 것이다. 현대 전체주의자 대부분은 자신들의 이념이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도무지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전체주의자는 자신들이 헤겔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고, 현대 전체주의자 전부는 헤겔 철학의 밀폐된 분위기 속에서 양육되었다. 그들은 국가와 역사와 민족을 숭배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헤겔에 대한 나의 관점은, 물론, 내가 이 책에서 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가 플라톤의 가르침을 해석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대적 용어를 사용하면 전체주의적으로 해석했다 ; 그리고 정말로, 그의 플라톤 비판서인 법철학[Philosophy of Law]에서 헤겔의 해석이 우리의 해석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독자에게 헤겔이 지닌 국가에 대한 플라톤화하는 숭배를 즉각적으로 엿보게 하기 위하여, 나는 그의 역사주의 철학을 분석하기 전에 몇 구절을 인용하겠다. 이 구절들은 헤겔의 급진적 집단주의가 프랑스 혁명 동안과 그 후의 결정적인 기간 동안에 프러시아의 왕이었던 프레더릭 윌리엄(Frederick William) 3세에게 의존하는 것만큼 플라톤에게도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구절에서 나타나는 교설은 국가란 모든 것이며,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 그 까닭은 개인이 국가에 자신의 정신적 존재뿐만 아니라 신체적 존재 또한 의지하여 모든 것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플라톤의, 프레더릭 윌리엄의 프러시아 국가주의의, 그리고 헤겔의 요점이다. ‘국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바와 같이 신성한 이데아이다... 우리는 그러므로 국가를 지구상의 신성이 발현된 것으로 숭배해야 하고,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면 국가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무한히 더 어렵다고 생각해야 한다... 국가는 세상을 통하여 하느님이 걷는 것이다... 국가는 유기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의식(意識)과 사고(思考)는 완벽한 국가에 귀속된다. 국가는 자신의 의지를 안다... 국가는 실제이다 ; 그리고.. 진정한 실제가 필요하다, 실제적인 것은 영원히 필요하다... 국가는.. 자신을 위하여 존재한다... 국가는 실제로 존재하는 구현화된 도덕적 삶이다.’ 여기 뽑아놓은 말만으로도 헤겔의 플라톤주의와, 국가의 절대적인 도덕적 권위에 관한 그의 주장이 충분히 드러나며, 국가의 도덕적 권위는 모든 개인의 도덕성과 모든 양심을 다스린다. 이 말은 물론 허세적이고 신경질적인 플라톤주의이지만, 이것은 플라톤주의를 현대적 전체주의와 연결시킨다는 사실을 더욱 명백하게 밝혀줄 따름이다.

이런 작업과, 역사에 끼친 그의 영향력으로써 헤겔이 그의 천재성을 증명하지 않았는지 질문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천재성’이라는 용어로 그렇게 많은 것을 생각한다는 것이 우리가 지닌 낭만성의 일부분일 뿐이기 때문에, 나는 이 질문이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문장에서 저자는 낭만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사람들은 천재성을 낭만적으로 즉, 이성적이 아니고 무심하게 발설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낭만성이라 저자에게 비이성과 동의어로 쓰인다 - 역자 주) ; 그리고 그것과 별도로, 나는 성공이 증명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으며 역사가 우리의 심판관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 문장에서 저자는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그 성공이 학문적이거나 과학적인 업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미래 역사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지 과거의 역사를 기준으로 우리가 행동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 역자 주) ; 이런 신조들은 오히려 헤겔 철학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헤겔에 관한 한, 나는 그가 재능이 있었다고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소화가 되지 않은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를 가장 열렬하게 옹호하는 사람들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그의 문체는 ‘의심할 바없이 추잡하다’. 그리고 그가 쓴 글의 내용에 관한 한, 그는 특별히 독창성이 없다는 데서 유독 최고이다. 헤겔의 글에는 이전에 언급된 적이 없는 말은 없다. 그의 변명술 속에는 변명적인 선배들로부터 빌려오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이 빌려온 사고와 방법을 탁월함의 흔적은 남기지 않았다 할지라도, 단 한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한 가지 목표에 쏟아 부었다 : 열린사회에 대항하여 싸우고, 그리하여 자신의 고용주인 프러시아의 프레더릭 윌리엄 왕에게 봉사하는 것. 헤겔의 혼돈과 이성타락은 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 부분적으로 필요했고, 부분적으로는 그의 정신상태를 우연적이지만 매우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쉽게 어릿광대가 ‘역사 창조자’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더 흉악한 결과가 없다면, 헤겔에 관한 전체 이야기는 진정으로 말할 가치도 없을 것이다. ‘독일 관념론’의 희비극적 발흥은, 그 관념론이 야기한 악랄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희극 오페라를 닮았다 ; 그리고 이 시작은 후기 영웅들 중에서 그들이 바그너의 장엄한 게르만적 오페라나 오펜바하의 익살극 무대로부터 도망쳤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헤겔철학이 다른 동기, 즉 프레더릭 윌리엄 3세의 프러시아 정권을 복원하려는 이해관계에 의하여 고취되었고 그러므로 그 철학이 진지하게 고려될 수 없다는 나의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는 정치적 상황을 알고 있던 사람들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었으며, 충분히 독립적이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몇 사람은 그 이야기를 자유롭게 했다. 최고의 증인은 쇼펜하우어였는데 그 자신이 반혁명주의자는 아니라 할지라도 플라톤식의 이상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였지만, 무엇보다도 진실을 간직하고 있었던 최고로 진실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당시 철학적 문제에서 발견될 수 있던 가장 유능한 심판관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쇼펜하우어는, 헤겔과 개인적으로 친교를 맺었으며 ‘미친놈의 혀지 두뇌는 아닌 것과 같은 것’이라는 섹스피어의 말을 헤겔 철학의 특징으로 제시했는데, 그 거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탁월한 묘사를 했다 : ‘헤겔은, 존재하는 권력에 의하여 위에서부터 임명된 증명된 위대한 철학자로서, 어리석고 무미건조하며 구역질나고 무식한 사기꾼이었는데, 그는 완전히 미친 황당한 헛소리를 휘갈겨 써서 만들어내는 데서 오만의 극치에 도달했다. 이 헛소리는 고용된 추종자들에 의하여 불멸의 지혜로 시끄럽게 선포되었으며 그런 상태로 모든 바보들에 의하여 기꺼이 수용되었는데 그 바보들은 역사상 가장 완벽한 찬양의 합창에 참가했다. 권력자가 헤겔에게 제공한 광범위한 정신적 영향력으로 인하여 헤겔은 한 세대를 지적으로 타락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곳에 쇼펜하우어는 헤겔 철학의 정치놀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칸트에 의하여 새롭게 유명해진 철학은.. 곧 이해관계의 도구가 되어야 했다 ; 위로부터 국가의 이익에 관해, 아래로부터 개인적 이익에 관해... 이 운동의 추동력은, 이 모든 엄숙한 가식과 주장과는 반대로, 이상적이지 않다 ; 그 추동력은 정말로 실제적인 목표인데 즉, 개인적, 공적, 종교적, 정치적, 요컨대, 물질적 이익이다... 정파적 이해관계가 지혜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펜을 강력하게 뒤흔들고 있다... 그들은 진실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철학은 국가의 편에서는 도구로, 다른 편에서는 이익의 수단으로 악용된다... 진실 또한, 단지 부산물로서, 그리하여 밝혀지리라고 누가 실제로 믿을 수 있는가 ?.. 정권은 철학으로 자신들의 국가 이익에 봉사하는 수단을 만들고, 학자들은 철학으로 직업을 삼는다... ’ 프러시아 정권의 급여를 받는 대리인으로 헤겔의 신분을 보는 쇼펜하우어의 관점은, 한 가지 사례를 언급한다면, 헤겔을 찬양하는 제자인 슈베글러(Schwegler)에 의하여 입증된다. 슈베글러는 헤겔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 ‘그의 명성과 활동이 가득 차게 됨은, 그러나, 오직 1818년 그가 베를린을 방문하면서 적합하게 시작된다. 여기서 그의 주위에 넓게 확대되고 수많고, 매우 활동적인 학파가 생겨났다 ; 여기에서 또한 그는 프러시아의 관료조직과 연계되어 관학(官學)으로서 자신의 철학체계를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한 정치적 영향력을 얻었다 ; 그러나 자신의 철학의 내적 자유와 그 철학의 도덕적 가치에 항상 이로웠던 것은 아니다.’ 슈베글러의 글을 편집했던 최초의 영국인 헤겔주의 사도인 J. H. 스털링(Stirling)은 물론 ‘관학(官學)으로서의 헤겔 철학이라는.. 슈베글러의 암시’를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독자들에게 경고함으로써 슈베글러에 대항하여 헤겔을 옹호한다. 그러나 몇 쪽 뒤에서, 스털링은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헤겔 자신이 자기 철학의 정파정치적이고 변명적인 기능을 알고 있었다는 견해뿐만 아니라 슈베글러의 사실 재현 또한 확인한다. (스털링이 인용한 증거는 헤겔이 자기 철학의 기능에 관하여 다소 냉소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조금 후에, 스털링은 부지불식간에 다음과 같은 시적(詩的)이자 예언자적인 계시로 나아가면서 ‘헤겔의 비밀’을 폭로하는데 그가 책을 저술하기 전인 1866년 프러시아가 오스트리아를 전격전으로 공격한 것을 언급한다 : ‘프러시아가 지금 빠르게 개발하고 있는 강력한 삶과 조직은 진정으로 헤겔과 특히 그의 윤리 및 정치 철학 덕분이 아닌가 ? 보이지 않는 두뇌 속에서 충고를 성숙시키며, 대중으로부터 힘을 받은 손으로 벼락처럼 타격을 가하는 조직의 중심은 진정으로 근엄한 헤겔이 아닌가 ? 그러나 이 조직의 가치에 관해서는, 입헌국가인 영국에서는 우선주를 가진 주주와 채권을 가지 사람들이 만연한 상업적 부도덕성에 의하여 망하는 반면 프러시아의 철도 주식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주주는 평균 8.33 퍼센트의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 더 실감이 날 것이라고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해야겠다. 이것은 마침내 헤겔에 관하여 중요한 것을 말해준다 !’ (앞 문장에서 시작된 따옴표가 원문에서 끝나지 않는다. 문맥으로 보아 느낌표 다음에 따옴표가 끝나야하므로 집어넣었다. 원문의 오류로 생각된다 - 역자 주.)

‘헤겔의 근본적인 개념은 이제,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독자에게 명백하다. 나는 헤겔로부터 많은 것을 얻었다.. ’ 스털링은 칭송을 계속한다. 나 또한 헤겔의 개념이 이제 명백하기를 희망하며, 나는 스털링이 얻은 것이 비헤겔적이고 입헌적인 영국 땅에서 상업적 부도덕성의 위협으로부터 구조된 것이라고 믿는다.

(적의 이론이 자신의 계급이익에 의하여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줄 준비가 항상 되어있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이 이 방식을 헤겔에게 습관적으로 적용하지 못하는 사실을 언급하고자 하는 유혹을 이런 환경 속에서 누가 이겨낼 수 있을까 ? 헤겔을 프러시아 절대왕정을 위한 대변인으로서 비난하는 대신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은 변증법 창시자의 저술과 특히 논리에 관한 그의 저술이 영국에서 더 광범위하게 읽히지 않는 것을 유감스럽게 여긴다 - 일반적인 헤겔 철학의 장점과 특히 그의 논리의 장점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러시아와 대조적으로.)

헤겔의 정치적 동기라는 문제로 돌아가면, 내가 생각하기에 그의 철학이 자신이 고용된 프러시아 정부의 이해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할 충분하고도 남는 이유가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프레더릭 윌리엄 3세의 절대왕권 하에서, 그런 영향은 쇼펜하우어나 슈베글러가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 그 까닭은 지난 수십 년 동안에야 이 왕이 모든 학식은 국가의 이익에 완전히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명료함과 일관성을 보여주는 서류가 발간되었기 때문이다, ‘학문의 세계만을 다루어 학문적 집단을 계발하는 데만 도움을 주는 추상적 학문은, 물론 국가의 복리에 가치가 없다 ; 그 학문을 완전히 제한하는 것은 어리석을 일이겠지만 일정한 한계 속에 가두어두는 것은 바람직하다’라는 글을 우리는 그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읽는다. 1818년 헤겔이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반혁명의 기세는 높았고 왕은 ‘해방 전쟁’에서 자신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던 개혁가들과 민족적 자유주의자들을 자신의 정부로부터 숙청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 사실을 고려해서, 우리는 헤겔의 임명이 철학을 건강하게 만들어 ‘국가의 복리’에 다시 말해서 프레더릭 윌리엄과 그의 절대 왕권의 복리에 봉사하도록 ‘일정한 한계 속에 철학을 가두어두는’ 움직임이 아니었던지 물을 것이다. 위대한 찬양가가 헤겔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우리가 읽을 때 동일한 의문이 우리에게 제시된다 : ‘그리고 1831년 죽을 때까지 사상사에서 가장 강력한 철학파 하나의 인정받는 독재자인 그는 베를린에 머문다.’ (그가 철학의 독재자라 할지라도 도대체 독재자가 사상사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상’을 ‘사상 결여’로 바꾸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 폭로적인 구절은 너무 사실적이다. 예를 들어, 이 강력한 학파의 단결된 노력은 침묵을 공범으로 해서 세상으로부터 40년 동안 쇼펜하우어의 존재를 덮어버리는 데 성공한다.) 우리는 헤겔이 ‘철학을 일정한 한계 속에 가두는’ 힘을 정말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서 우리의 의문은 완전히 적합한 것이다.

다음에서 나는 헤겔 철학 전체가 이 의문에 대한 강조적인 대답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 물론 긍정적인 대답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다시 말해서, 프러시아주의를 위한 변호로 그 철학을 해석한다면 나는 헤겔 철학이 얼마나 많이 조명을 받았는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의 분석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이 장의 2, 3, 그리고 4부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2부에서는 헤겔의 역사주의와 도덕적 실증주의를, 이 교설들의 다소 난해한 이론적 배경인 그의 변증법과 소위 동일철학과 함께, 다룰 것이다. 3부에서는 민족주의의 발흥을 다룬다. 4부에서는 버크(Burke)에 대한 헤겔의 관계에 대하여 몇 마디 언급할 것이다. 그리고 5부에서는 헤겔의 교설에 의존하는 현대 전체주의를 다룬다

II

나는 헤겔 철학의 분석을 헤겔의 역사주의와 플라톤의 역사주의를 일반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시작할 것이다. 플라톤은 이데아 즉, 본질은 무상한 사물 이전에 존재한다고, 그리고 모든 발전의 경향은 이데아의 완성으로부터 멀어지는 운동으로서, 그러므로 추락으로서, 부패를 향한 움직임으로서 설명될 수 있다고 믿었다. 국가의 역사는, 특히, 쇠퇴의 역사이다 ;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쇠퇴는 지배계급의 인종적 쇠퇴에 기인한다. (우리는 여기서 플라톤의 개념인 ‘인종’, ‘영혼’, ‘자연’, 그리고 ‘본질’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기억해야 한다.)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이데아 즉, 본질은 무상한 사물의 안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 흑은 더 정확하게 (우리가 헤겔을 정밀하게 다룰 수 있는 한), 헤겔은 그것들이 무상한 사물들과 동일하다고 가르친다 : ‘실제적인 모든 것은 이데아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물의 본질과 사물의 감지 가능한 모습 사이에서 플라톤에 의하여 열린 틈이 닫힌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그 까닭은 헤겔이 이렇게 쓰기 때문이다 : ‘본질에 대한 어떤 언급도 우리가 본질을 (사물의) 존재로부터 구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 본질과 비교하여 후자를 우리는 오히려 단지 모습이나 외모로 간주한다... 모든 것은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는 말해왔다 ; 다시 말해서, 사물은 그것들이 자신을 즉각적으로 보여주는 그것이 아니다.’ 또한 플라톤 및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헤겔은 본질을, 적어도 생명체의 본질을 (그러므로 또한 국가의 본질을), 영혼이나 ‘정신’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플라톤과 달리, 헤겔은 무상한 세계의 발전 경향은 이데아로부터 떨어져 부패를 향하는 추락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스페우시푸스(Speusippus)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헤겔은 전반적인 추세는 오히려 이데아를 향한다고 가르친다 ; 그것은 진보이다. 그가 플라톤과 함께, ‘부패할 수 있는 사물들은 본질에 기초를 두고, 본질로부터 출현한다’고 말할지라도, 헤겔은 플라톤에 반대하여 심지어 본질도 발달한다고 주장한다. 헤겔의 세상에서는, 헤라클리투스(Heraclitus)의 세상에서와 같이, 만물이 유전한다 ; 그리고 본질은, 안정된 것을 얻기 위하여 플라톤에 의하여 당초에 도입되어, 예외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유전은 부패가 아니다. 헤겔의 역사주의는 낙관적이다. 그가 주장하는 본질과 정신은, 플라톤이 주장하는 영혼처럼, 스스로 움직인다 ; 그것들은 스스로 발전하거나, 더 유행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그것들은 ‘출현한다’ 그리고 ‘스스로 창조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목적인’을 향하여 즉, 헤겔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그 자체 안의 스스로 실현하고 스스로 실현되는 목적인’을 향하여 자신을 움직인다. 이 목적인 즉, 본질 발달의 목적이 헤겔이 ‘절대적 이데아’혹은 ‘이데아’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이데아는 헤겔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 다소 복잡하다 : 그것은 통틀어서 미[美]이다 ; 인식이며 실천적 행위이다 ; 지각력이다 ; 최고선이다 ; 그리고 과학적으로 사유된 우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소한 난제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실제로는 없다.) 우리는 헤겔이 주장하는 무상(無常)의 세계가 ’출현하’거나 ‘창조적 진화’ 상태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 ; 그 세계의 각 단계는 앞선 단계를 포함하고, 그 앞선 단계로부터 각 단계는 태어난다 ; 그리고 각 단계는 모든 앞선 단계를 대체하여 점점 더 완벽으로 접근한다. 발전에 관한 일반적인 법칙은 그러므로 진보의 법칙이다 ;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볼 것과 같이, 단순하고 직선적인 진보의 법칙이 아니라 ‘변증법적인’ 진보의 법칙이다.

앞에서 인용 구절이 보여준 바와 같이, 집단주의자인 헤겔은, 플라톤처럼, 국가를 유기체로 시각화한다 ; 그리고 국가에 집단적인 ‘일반적인 의지’를 부여했던 루소(Rousseau)를 따라서 헤겔은 국가에게 의식적이고 사고하는 ‘본질’인 ‘이성’ 즉, ‘정신’을 부여한다. 이 정신은, ‘바로 본질이라는 것이 활동인데’ (그것은 루소에게 의지하고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국가를 형성하는 집단적인 민족정신이다.

본질주의자에게는, 국가를 알거나 이해하는 것은 분명히 국가의 본질이나 정신에 관한 지식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앞장에서 본 바와 같이, 본질과 그 ‘잠재력’은 그 ‘실제적’ 역사로부터만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국가와 같은 사회적 제도에 관한 지식을 얻는 방식은 그 역사를 혹은 그 ‘정신’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라는 역사주의적 방식의 근본적 견해에 도달한다. 그리하여 앞장에서 발달하는 다른 두 가지 역사주의적 결과가 또한 뒤따른다. 민족정신은 그 숨겨진 역사적 운명을 결정한다 ; 그리고 ‘존재로 출현하고자’ 원하는 모든 민족은 ‘역사단계’로 들어감으로써, 다시 말해서, 다른 민족과 투쟁을 함으로써 자신의 개성이나 영혼을 주장해야 한다 ; 투쟁의 목적은 세계지배이다.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헤겔이, 헤라클리투스처럼, 전쟁이 만물의 아버지요 왕이라고 믿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헤라클리투스처럼, 그는 전쟁이란 정의롭다고 믿는다 : ‘세계역사는 세계의 재판정이다’,라고 헤겔은 쓴다. 그리고 헤라클리투스처럼, 헤겔은, 사물의 대조와 반대인 반대되는 것의 양극성, 기타 등등을 일종의 전쟁으로서 그리고 자연적인 발달의 동력으로서 해석하며 이 원칙을 자연의 세계까지 확대함으로써 일반화한다. 그리고 헤라클리투스처럼, 헤겔은 반대되는 것의 통합과 동일성을 믿는다 ; 정말로, 반대되는 것의 통합은 진화에서, ‘변증법적’ 진행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해서 우리는 이 두 가지 헤라클리투스의 개념인 반대되는 것의 전쟁과 그것들의 통합 혹은 동일성을 헤겔이 주장하는 변증법의 핵심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 철학은 아마도 다소 비독창적인 철학이라 할지라도, 인내할 만큼 올바르고 정직한 역사주의로서 나타난다 ; 그리고 쇼펜하우어와 함께, 그 철학을 가짜로 설명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은 우리가 헤겔의 변증법을 분석하는 데로 방향을 바꾸면 변하기 시작한다. 그 까닭은 그가 이 방식을 칸트를 바라보면서 제시하는데, 칸트는 형이상학을 공격하면서 (이 공격의 격렬함은 아마도 내가 쓴 ‘서문’의 인용구에서 밝혀질 것이다) 이런 종류의 모든 사념은 지지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려고 했다. 헤겔은 칸트를 반박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헤겔은 고개를 숙이고, 칸트의 견해를 왜곡하여 그 반대로 만들었다. 이것이 칸트의 ‘변증법’인 형이상학에 대한 공격이 형이상학의 주요 도구인 헤겔식의 ‘변증법’으로 변질된 경로이다.

칸트는, 자신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흄(Hume)의 영향을 받아서, 순수한 사념 즉, 이성은 경험에 의하여 도저히 통제될 수 없는 분야로 감히 들어가고자 할 때마다 이율배반(antinomies)에 빠져서 그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명백하게 묘사하는 것을 야기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 ‘헛소리’ ; ‘망상’ ; ‘무의미한 독단’ ; 그리고 ‘모든 것을 안다는 겉치레 주장’. 그는 모든 형이상학적 주장에는, 예를 들어 시간 속의 우주의 시작이나 신의 존재에 관하여, 대조적인 반대주장 즉, 반론(antithesis)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바, 양쪽 모두 동일한 가정으로부터 출발하여 동일한 정도의 ‘증거’로 증명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경험의 장(場)을 떠날 때 우리의 사념은 과학적 신분을 가질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모든 주장에 대하여 동등하게 유효한 반대주장이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칸트의 의도는 형이상학에 관한 하찮은 작가들의 ‘저주받은 다작(多作)’을 영원히 중단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결과는 매우 달랐다. 칸트가 중단시킨 것은 이성적 논쟁을 펼치려는 하찮은 작가들의 시도였을 뿐이다 ; 그 작가들은 가르치려는 시도를 포기했지만, 대중에게 마술을 걸려는 시도는 포기하지 않았다 (쇼펜하우어가 표현한 바와 같이). 이러한 상황전개에 대하여, 칸트 자신도 의심할 바없이 상당히 큰 비난을 받아야 한다 ; 그 까닭은 그의 작품의 난해한 문체가 (오랫동안 숙고했다 할지라도 그는 서둘러서 글을 썼다) 독일의 이론서에서의 낮은 명료성을 한층 더 낮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칸트 이후의 어떤 하찮은 철학자도 칸트를 반박하려고 시도하지 못했다 ; 그리고 헤겔은, 특히, ‘영예의 위치로 칸트가 복원시킨 변증법이라는 이름을 부활시킨 것’에 대하여 칸트를 과감하게 후원했다. 그는 칸트가 이율배반을 지적하여 완전히 옳았지만, 그 이율배반에 대하여 걱정을 해서 틀렸다고 가르쳤다. 이성이 스스로 분명히 모순을 일으키는 것은 이성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라고 헤겔은 주장했다 ; 그리고 합리성이 모순 및 이율배반으로 작동하는 것은 인간 능력의 취약성이 아니라 모든 합리성의 본질 자체이다 ; 그 까닭은 이것이 바로 이성이 발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칸트가 이성을 마치 정적(靜的)인 것인 양 분석했다고 주장했다 ; 칸트는 인류가 발전하며, 인류와 함께, 우리가 받은 사회적 유산도 발전한다는 것을 잊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가 즐겨 우리 자신의 이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사회적 유산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무리인 민족이, 역사적으로 발전한 산물일 뿐이다. 이 발전은 변증법적으로, 다시 말해서, 3박자 리듬으로 진행한다. 첫째로 정론(正論: thesis)이 제시된다 ; 그러나 정론은 비판을 불러온다, 정론은 그 반대인 반론(反論: antithesis)을 주장하는 상대방에 의하여 부정되는 경향이 있다 ; 그리고 이 견해들의 싸움에서, 종합(synthesis)이, 다시 말해서 보다 높은 수준에서 일종의 반대된 것의 통합이자 타협이며 화해, 나온다. 종합은, 말하자면, 두 가지의 원래 반대되는 견해를 대신하면서 흡수한다 ; 종합은 두 가지의 반대되는 견해를 자신의 요소로 환원하여 그것들을 부정하고 고양하여 보존한다. 그리고 종합이 이룩되면 전체 과정은 지금까지 도달한 더 높은 수준에서 반복된다. 이것이, 요컨대, 헤겔이 ‘변증법적 3총사’라고 불렀던 진보의 3박자 리듬이다.

나는 이것이 비판적 토론과, 그리하여 과학적 사고가 또한 가끔 진행하는 방식을 나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한 준비와 완전히 되어있다. 그 까닭은 모든 비판은 어떤 모순과 불일치를 적시하는 데 달려있으며, 과학적 진보는 주로 우리가 모순을 발견하는 모든 곳에서 모순을 제거하는 데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러나 과학이란 모순은 허용될 수 없고 피할 수 있다는 가정으로 움직여서 모순의 발견으로 인하여 과학자는 그 모순을 제거하려고 모든 노력을 경주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 그리고 정말로, 모순이 인정되면 모든 과학은 분명히 무너진다. 그러나 헤겔은 자신이 주장하는 변증법적 3총사로부터 매우 다른 교훈을 끌어낸다. 어떤 모순은 그것을 이용해서 과학이 진보하기 때문에, 그는 모순은 허용될 수 있고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매우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짓는다. 이것이 모든 주장과 모든 진보를 분명히 파괴하는 헤겔식 원칙이다. 그 까닭은 모순이란 피할 수 없고 바람직한 것이라면, 모순을 제거할 필요가 없어서 모든 진보가 끝장나야 한다.

그러나 이 교설은 헤겔 철학의 주요 신조 중 하나일 뿐이다. 헤겔의 의도는 모든 모순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다. ‘만물은 본질적으로 모순이다’라고 모든 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이성적 논쟁의 종말을 의미하는 견해를 옹호하기 위하여 그는 주장한다. 그리고 그가 모순을 인정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이성적인 논쟁을, 그리고 이성적 논쟁과 함께 과학적이고 지적인 진보를 제지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논쟁과 비판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서, 그는 자신의 철학을 모든 비판으로부터 안전하게 만들고 그 철학 자체가 모든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강화된 독단주의로서 확립되고 모든 철학적 진보의 정복되지 않는 정상(頂上)으로 확립되기를 꾀한다. (우리는 여기서 최초의 전형적인 변증법적 왜곡의 보기를 보게 된다 ; 진보의 개념은, 다윈[Darwin]을 낳은 시대에 인기를 얻었지만 보수적 이해관계와 일치하지는 않았는데 왜곡되어 그 반대가 된다, 즉 종착역에 도착한 발전이라는 개념 - 중단된 발전 - 이 된다.)

헤겔 철학이 의존하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인 헤겔의 변증법적 3총사에 대해서는 이 만큼만 하겠다. 그 이론의 중요성은 내가 그 적용을 다룸으로써 밝혀질 것이다.

헤겔 철학의 두 가지 기둥 중 나머지 하나는 소위 그의 동일철학(philosophy of identity)이다. 그것 또한 변증법을 적용한 것이다. 나는 다른 곳에서 그렇게 했기 때문에,그 철학을 이해하려고 시도함으로써 독자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 ; 그 까닭은 주로, 동일철학이란 파렴치하게 모호한 표현일 따름이며, 헤겔 자신의 말을 이용하면, 그 철학은 ‘환상, 심지어 백치성 환상’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철학은 안에는 루소와 칸트뿐만 아니라 헤라클리투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거 철학의 그림자와 메아리가 갇혀있고, 그 과거의 철학들이 순진한 구경꾼들을 혼동시키고 현혹하려고 미친 듯이 노력하며 일종의 마귀잔치를 즐기는 미궁이다. 그 주요 개념과, 동시에 헤겔의 변증법과 그의 동일철학 사이의 연계는 헤라클리투스의 반대되는 것의 통합 원칙이다. ‘위로 올라가는 길과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동일하다’고 헤라클리투스는 말했고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하여 이것을 반복한다 : ‘서쪽으로 향하는 길과 동쪽으로 향하는 길은 똑같다.’ 반대가 되는 것이 동일하다는 이 헤라클리투스식 교설은 그리하여 헤겔 자신의 체계의 ‘환원된 구성요소’가 되는 옛 철학으로부터 나온 한 무리의 추억에 적용된다. 본질과 이데아, 하나와 다수, 실체와 우연, 형식과 내용, 주관과 객관, 존재와 생성, 모든 것과 아무 것도 아닌 것, 변화와 정지, 실제성과 잠재성, 현실과 표상, 물질과 정신, 과거로부터 나온 이 모든 유령들이 그가 자신이 띄운 풍선을 가지고, 자신이 만든 과장되고 허구인 하느님과 세계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자신의 춤을 추는 동안, 위대한 독재자의 두뇌에 출몰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광증 속에도 방식은 있다, 심지어 프러시아식 방식이. 그 까닭은 이 명백한 혼란 뒤에는 절대군주인 프레더릭 윌리엄의 이해관계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동일철학은 현존하는 질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된다. 그 철학의 주요 귀결은 윤리적 및 사법적 실증주의로 현존하는 기준 외에는 기준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선하다는 원칙이다 ; 그 철학은 힘은 정의다라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어떻게 도출되는가 ? 일련의 모호한 말을 통해서일 뿐이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그가 주장하는 형상이나 이데아가 ‘생각 속의 아이디어’와 완전히 다른 플라톤은 이데아만이 실제적이고 부패하는 만물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헤겔은 이 교설로부터 이상 = 실제라는 등식을 채택한다. 칸트는, 자신의 변증법에서, ‘생각 속의 이데아’에 관하여 말했다. 헤겔은 이것으로부터 이데아란 정신적이거나 이성적인 것으로 이데아 = 이성이라는 등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라는 원칙을 채택한다. 연결하여, 이 두 개의 등식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이 모호한 표현은, 사실적 = 이성이라는 등식을 낳는다 ; 그리고 이로 인하여 헤겔은 합리적인 모든 것은 분명히 실제적이고, 실제적인 모든 것은 분명히 합리적이며, 실제성의 발전은 이성의 발전과 동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성과 이데아의 최근 발전보다 더 높은 기준이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하며, 분명히 선할 뿐만 아니라 합리적이다. (우리가 보게 되는 바와 같이, 특별히 선한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프러시아 국가이다.)

이것이 동일철학이다. 윤리적 실증주의와는 별도로 진리 이론이 또한 밝혀지는데, 부산물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을 사용하면). 그리고 그것은 매우 편리한 이론이다. 합리적인 모든 것은 실제적이란 것을 우리는 보았다. 이것은, 물론, 합리적인 모든 것은 실제성과 일치해야 하고, 그러므로 분명히 진리이다. 진리는 이성이 발달하는 방식으로 발달하고, 발전의 최근 단계에서 이성을 매료시키는 모든 것은 분명히 또한 그 단계에서 진리이다. 다시 말해서, 최신 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느껴지는 모든 것은 분명히 진리이다. 자명(自明)은 진실과 동일하다. 당신이 현재를 살고 있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은 어떤 원칙을 신뢰하는 것이다 ; 이것이, 정의(定義)에 의하여, 원칙을 진리가 되게 만든다. 이런 방식으로, 헤겔이 ‘주관’이라고 부르는 것 즉, 신념과 ‘객관’이라고 부른 것 즉, 진리 사이의 대립이 동일한 것이 된다 ; 그리고 반대되는 것의 이 통합은 또한 과학적 지식을 설명한다. ‘이데아란 주관과 객관의 결합이다.. 과학은 자신과 진실 사이의 분리가 이미 취소되었다고 전제한다.’

그의 역사주의가 건설된 지혜의 두 번째 기둥인 헤겔의 동일철학에 대해서는 이만큼만 하자. 그의 역사주의가 건설됨으로써, 헤겔의 더 추상적인 원칙을 분석하는 다소 피곤한 일이 끝난다. 이 장의 나머지는 이 추상적인 이론에 관하여 헤겔이 만들어낸 실제 정치적 적용에 할애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실제 적용은 그의 노고 전부가 변호적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바, 헤겔의 변증법은 1789년의 이념들을 타락시키려는 주요 목적이 있다. 헤겔은 변증법이 이념을 그 반대로 왜곡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의식하고 있었다. ‘변증법은 철학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토론 중인 주제에 관하여 보다 명료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소망을 자극하곤 했고, 그런 의도로 모든 종류의 질문을 한 다음에, 그는 함께 대화를 나눈 사람들을 처음에 그들의 첫 인상이 옳다고 선언한 것과 반대되는 것으로 데려왔다’라고 헤겔은 쓴다. 소크라테스의 의도에 관한 설명으로서, 헤겔의 이 말은 아마도 그다지 공평하지는 않다 (소크라테스가 지녔던 주목적이 사람들을 그들이 전에 믿었던 것의 반대되는 것으로 돌려놓으려는 것이라기 보다는 성급함을 폭로하려는 것이었음을 고찰하면) ; 그러나 헤겔 자신이 창안한 말로서, 이 말은 실제로 헤겔의 방식이 그의 계획이 보여주는 것보다 더 서투른 것으로 판명된다 할지라도, 탁월하다.

변증법의 이런 이용에 관한 최초의 본보기로서, 법철학에서 그에 의하여 다루어진 것처럼 나는 사상의 자유의, 과학의 독립성의, 객관적 진실의 기준의, 문제를 선정하겠다 (§ 270). 그는 사상의 자유에 대한, 그리고 국가에 의한 그 자유의 보호에 대한, 요구로서 해석될 수만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 ‘국가는 사상을 그 본질적 원칙으로서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사상의 자유와 과학은 오직 국가에서만 나올 수 있다 ; 지오다르노 브르노(Giodarno Bruno)를 화형에 처하고, 갈릴레오로 하여금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도록 강요한 것은 교회였다... 과학은, 그러므로, 국가로부터 보호를 구해야 한다, 과학의 목적은 객관적 진실에 관한 지식이므로.. ’ 라고 그는 쓴다. 자신의 적들에 대한 ‘첫 인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 희망적 출발 뒤에, 헤겔은 ‘그들의 최초 인상이 옳다고 선언한 것의 반대되는 것’으로 그들을 가져와서 교회에 대한 또 다른 가짜 공격으로 자신의 공격방향을 은폐한다 : ‘그러나 그러한 지식은, 물론, 항상 과학의 기준에 맞는 것은 아니다, 그 지식은 단지 견해로 타락할는지도 모른다.. ; 그리고 이런 견해에 대하여.. 그것은 (다시 말해서 과학은) 교회와 같은 동일한 허세적인 요구를 내놓을지도 모른다 - 의견과 신념 속에서 자유롭게 되고자 하는 요구.’ 그리하여 사상의 자유에 대한 요구와,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과학적 주장의 자유에 대한 요구는 ‘허세적’으로 묘사된다 ; 그러나 이것은 단지 헤겔의 왜곡에서 첫걸음이다. 우리는 다음에, 국가전복적인 견해에 직면한다면, ‘국가는 객관적 진실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 객관적인 진실인 것과, 객관적인 진실이 아닌 것을 누가 판단해야 하는가 ? 헤겔은 이렇게 대답한다 : ‘국가는 일반적으로.. 무엇이 객관적 진실로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 답변과 함께, 사상의 자유와, 자신의 기준을 설정하려는 과학의 주장은 마침내 그것들의 반대되는 것에게 무너지고 만다.

변증법의 이런 사용의 두 번째 보기로서, 나는 헤겔이 헌정(憲政: political constitution) 요구를 다루는 방식을 선정하는데, 헤겔은 그 다루는 방식을 자신이 평등자유를 다루는 방식과 연결한다. 헌법 문제를 평가하기 위해서, 프러시아 절대왕정에는 헌법이 없었고 (왕의 절대 권력과 같은 원칙을 제외하고는), 여러 독일 지방에서의 민주적 개혁의 운동 구호는 왕이 ‘국가에 헌법을 하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레더릭 윌리엄은 자신이 ‘몇 년 동안 자신들을 민족으로 설정하고 헌법을 소리쳐 요구하던 저 매우 활동적이고 목소리 큰 사람들의 무리인 성급한 사람들에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신념 하에서 자신의 고문 안실론(Ancillon)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리고 엄청난 압력을 받고 왕이 헌법을 약속했다 할지라도, 왕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왕에게 순진하게 ‘헌법’ 말을 했다가 해고당한 불행한 시의[侍醫]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이제 헤겔은 이 민감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까 ? ‘살아있는 생각으로, 국가는, 다양한 부서로 체계화되어 있으며, 조직된 전체이다... 헌법은 국가권력의 이 체계화나 조직이다... 헌법은 존재하는 정의(正義: justice)이다... 자유와 평등은.. 헌법의 최종 목적이자 결과이다.’ 이것은, 물론, 시작일 뿐이다. 그러나 헌법요구를 절대왕정을 위한 헌법요구로 변증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로 나아가기 전에, 우리는 먼저 어떻게 헤겔이 두 가지 ‘목적과 결과’인 자유와 평등을 그것의 반대가 되는 것을 변모시키는지를 밝혀야 한다.

먼저 어떻게 헤겔이 평등을 불평등으로 왜곡하는지 보자 : ‘시민들이 법 앞에서 평등한 것에는 위대한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고 헤겔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표현되어도, 그것은 단지 불필요한 동어반복이다 ; 그 말은 일반적으로 법적 지위가 존재한다는 것, 법이 지배한다는 것을 진술할 뿐이다. 그러나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민들은.. 법 밖에서 역시 평등한 점에서만 법 앞에서 평등하다. 시민들이 재산, 나이, .. 기타 등등에서 소유하고 있는 저 평등만 법 앞에서 평등한 취급을 받을 자격이 있다. 법률 자체는.. 불평등한 상황을 전제로 한다... 현실에서 개인의 최고의 구체적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현대 국가 속의 위대한 발전과 형태의 원숙함이라고 언급되어야 한다.’

헤겔이 평등주의의 ‘위대한 진리’를 왜곡하여 그 반대로 만든 것을 이렇게 개괄하여, 나는 그의 주장을 근본적으로 요약했다 ; 그리고 나는 독자에게 내가 이 장 내내 똑같은 일을 해야할 것임을 경고해야겠다 ; 그 까닭은 이런 방식으로만, 그의 장광설과 사고의 비약을 쉽게 읽을 수 있게 제시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의 장광설과 사고의 비약은 병적이라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음으로 자유를 고찰할 것이다. ‘자유에 관하여, 과거에는 법적으로 정의된 권리인 도시의 공적 권리뿐만 아니라 개인의 권리도 그것의 “자유”라고 불리었다. 실제로, 모든 진정한 법률은 자유이다 ; 그 까닭은 법률이 합당한 원칙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것은 다른 말로는 법률이 자유를 구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헤겔은 쓴다. 이제 ‘자유’는 ‘한 가지 자유’와 동일하고 그러므로 ‘법’과 동일하다는 것을, 그것으로부터 법이 많을수록 자유가 그만큼 더 많다고 믿는 것이 합당하다, 밝히려고 애를 쓰는 이 주장은 분명히, 플라톤에 의하여 발견되고 위에서 간단하게 논의된, 자유의 역설을 서투르게 진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종의 말장난에 의존하기 때문에 서투르다) ; 자유란 법으로 보호받고 제한되지 않으면 분명히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독재를 야기하기 때문에 무제한적인 자유는 그 반대를 낳는다고 말을 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는 역설. 이 역설은, 루소에 의하여 모호하게 다시 언급되어, 칸트에 의하여 해결되는데 칸트는 각자의 자유는 제한되어야 하지만 모든 사람을 위한 동일한 정도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것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헤겔은 물론 칸트의 해법을 알고 있었지만 그 해법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저자인 칸트를 언급하지 않고 그 해법을 다음과 같이 폄하하여 제시한다 : ‘오늘날, 각자는 다른 사람의 자유와 관련하여 자신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개념보다 더 친숙한 것은 없다 ; 그리고 법률이 제한이라는 개념.’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가며 칸트의 이론을 비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를 불규칙한 쾌락과 자기 의지로 간주하는 그런 종류의 관점을 표현한다.’ 이 불가해한 비평으로 인하여, 칸트의 평등주의적 이론은 일축된다.

그러나 헤겔 자신은 그가 자유와 법률을 등치 하는 데 사용했던 사소한 농담이 자신의 목적에 완전히 충족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 그리고 다소 주저하면서 그는 자신의 당초 문제, 즉 헌법의 문제로 다시 돌아간다. ‘정치적 자유라는 용어는 흔히 국가의 공적인 일에 시민 사회의 특정 목적과 일에서 (그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주요 역할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곤 했다’ (다시 말해서, 평범한 시민이 참여하는)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런 참여가 이룩되는 국가의 측면에만 “헌법”이라는 이름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이것이 공식적으로 행하여지지 않는 국가를 헌법이 없는 국가로 간주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 정말로, 이것은 관습이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그 관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 단지 언어적 속임수에 의하여 - 정의(定義)에 의하여 : 용어를 이렇게 사용하는 것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헌법으로써 우리는 일반적인 법률의 결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의 결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헤겔 자신은 주장의 충격적인 허약함을 느끼고, 절망에 빠져서 집단적 신비주의 (루소가 만든 것)와 역사주의로 뛰어든다 : ‘“누구에게.. 헌법을 만드는 권한이 속하는가 ?”라는 질문은 “누가 민족정신을 만들어야 하는가 ?”와 동일하다. 헌법에 관한 당신의 개념을 집단적 정신에 관한 개념으로부터 분리하라, 마치 집단적 정신에 관한 개념이 헌법 없이 현재 존재하며 과거에도 존재한 것처럼, 그러면 당신의 환상은 당신이 그 관계를’ (이름하여, 정신과 헌법 사이의 관계를) ‘얼마나 피상적으로 이해했는지를 증명한다. 그것은 내재하는 정신이며 민족의 역사이다 - 그것만이 역사의 정신이다 - 그것에 의하여 헌법이 과거에 만들어졌고 지금도 만들어진다’고 헤겔은 소리친다. 그러나 이 신비주의는 아직도 너무 모호해서 절대주의를 정당화할 수 없다. 더 자세해야 한다 ; 그래서 헤겔은 이제 그렇게 하려고 서두른다 : ‘국가와 그 헌법을 보전하고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실제로 살아있는 총체성은 정부이다... 유기적 총체성으로 간주되는 정부안에서는, 주권 즉, 최고권력은.. 국가가 지니는 모든 것을 유지하고 모든 것을 명령하는 의지이다, 국가의 최고봉이자 모든 것에 스며드는 통합이다. 각 요소와 모든 요소가 자신의 자유로운 존재에 도달한 완벽한 국가의 형태 속에서는, 이 의지가 한 가지 실제로 명령하는 개인의 의지이다 (명령하는 의지의 통합이 실제적 존재를 가지지 않을 다수의 의지만이 아니라) ; 그것은 절대왕정이다. 절대왕정의 헌법은 그러므로 발전한 이성의 헌법이다 ; 그리고 모든 다른 헌법은 발전과 이성의 자기 실현의 낮은 단계에 속한다.’ 그리고 한층 더 정확히 해서, 헤겔은 자신의 저서 법철학의 유사한 구절에서 - 앞의 인용문 모두 그의 저서 철학백과(Encyclopaedia)에서 가져왔다 - ‘최종적 결정.. 절대적 자기 결정은 왕의 권한을 그런 상태로 구성한다’, 그리고 ‘전체 속에서의 절대적으로 결정적인 요소는.. 단 한 명의 개인인 절대군주이다’라고 설명한다.

이제 우리는 결론을 내린다. 어떻게 사람이 아무튼 모든 헌법 중에서 최고인 절대왕정으로 축복을 받는 나라를 위하여 ‘헌법’을 요구할 정도로 어리석을 수 있겠는가 ?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분명히, 자유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너무 눈이 멀어 프러시아의 절대왕정에서 ‘각 요소와 모든 요소가 각각의 자유 존재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자기들이 무엇에 관하여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프러시아는 자유의 ‘최고봉’이자 바로 보루라는 헤겔의 절대적인 변증법적 증거를 우리는 여기에서 보게 된다 ; 프러시아의 절대주의적 헌법은 인류가 지향하는 목표 (어떤 사람들이 생각할 것처럼 감옥이 아니라 [여기서 저자는 헤겔이 주장하는 프러시아의 절대왕정은 헤겔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류가 지향하는 목표 - 영어 표현은 goal -이 아니라, 감옥 - 영어 표현은 gaol -이라고 암시적으로 주장한다 - 역자 주])라는 증거 ; 그리고 그 정부는, 말하자면, 자유의 가장 순수한 정신을 집중시켜 보전하고 보관한다.

플라톤의 철학은, 예전에 국가 속에서 지배권을 주장했는데, 헤겔과 함께 철학은 국가의 가장 복종적인 충복이 된다.

이 역겨운 충성은 자발적으로 행하여짐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절대왕정의 행복한 시절에는 전체주의적 협박이 없었다 ; 또한 무수히 많은 자유로운 출판물이 현재 보여주듯이, 출판검열이 그다지 효과적이지도 않았다. 헤겔이 자신의 저서 철학백과를 출간했을 때 자신은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교수였다. 그리고 출간 바로 직후에 그는 베를린으로 소환되어, 그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철학의 ‘인정받는 독재자’가 되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은 헤겔의 변증법 철학의 우수성에 반대하거나 혹은 철학자로서 그의 위대함에 반대해서 어떤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할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주장에 대하여, 쇼펜하우어의 답변이 이미 주어졌다 : ‘철학은 오용된다, 국가의 편에서는 도구로, 다른 편에서는 소득의 수단으로. 진리가, 단지 부산물로서, 그리하여 밝혀지리라고 누가 실제로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

이 구절은 우리로 하여금 헤겔의 변증법이 실제로 적용되는 방식을 엿보게 한다. 이제 나는 변증법과 동일철학을 결합하여 적용해보겠다.

헤겔은,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만물은 무상하며 심지어 본질도 무상하다고 가르친다. 본질과 이데아와 정신은 발전한다 ; 그리고 그것들의 발전은, 물론, 스스로 움직이고 변증법적이다. 그리고 모든 발전은 최근 단계가 합리적이고, 그리하여 선하고 진실한데 그 까닭은 그 단계가 전 단계 모두를 대신하면서 모든 과거 발전의 절정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만물은 점점 더 향상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실제적 발전은, 실제적 과정이기 때문에, 동일철학에 따라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역사에 또한 분명하게 적용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헤라클리투스는 역사에는 숨겨진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헤겔에게는, 역사란 펼쳐진 책이 된다. 그 책은 순전히 변명적이다. 그 책은 섭리라는 지혜에 호소함으로써 프러시아 군주제의 우월성을 위한 변명을 내놓는다 ; 그 책은 프러시아 군주제의 우월성에 호소함으로써 섭리라는 지혜를 위한 변명을 내놓는다.

역사는 사실적인 것의 발전이다. 동일철학에 따르면, 역사는 그러므로 분명히 이성적이다. 실제 세계의 진화는, 그 역사가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헤겔에 의하여 일종의 논리적 작용과, 즉 추리적 과정과 ‘동일하다’고 받아들여진다. 역사는, 그가 보는 바, ‘절대정신’이나 ‘세계정신’의 사고 과정이다. 역사는 이 정신의 발현이다. 역사는 일종의 거대한 변증법적 삼단 논법이다 ; 말하자면, 섭리에 의하여 추론된다 ; 삼단 논법은 섭리가 추종하는 계획이다 ; 그리고 도출된 논리적 결론은 섭리가 추구하는 목적이다 - 세상의 완성이다. 헤겔은 자신의 저서 역사철학에서 ‘철학이 이용하여 역사에 접근하는 유일한 사고는 이성에 관한 단순한 개념이다 ; 그것은 이성이란 세상의 주권자이며, 그리하여 세계 역사가 우리에게 이성적인 과정을 제공한다는 교설이다. 이 신념과 직감은.. 철학의 영역에서 가설(假說)이 아니다. 이성은.. 무한 권력.. 무한 형상.. 무한 물질.. 무한 에너지일 뿐만 아니라 본질이라는 것이 철학에서 증명된다... 이 “이데아” 혹은 “이성”이 진리이며 영원하며 절대적으로 강력한 본질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 이성은 세상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그 세상 안에서는 이성과 이성의 영예와 영광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것도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 - 이것이, 우리가 말한 바와 같이, 철학에서 증명되었고, 밝혀진 것으로 여기에서 간주된다’라고 쓴다. 이 감정 분출은 우리를 크게 감동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헤겔이 언급하는 ‘철학’ 속의 구절을 (다시 말해서 그의 저서 철학백과 속에서) 찾아보면, 우리는 그의 변명적 목적을 조금 더 본다. 그 까닭은 우리가 다음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역사, 그것도 무엇보다도 보편적인 역사가 본질적이고 실제적인 목적을 기초로 세워지고, 그 목적은 역사 속에서 실현되어 실제로 존재하며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 - 섭리의 계획 ; 요컨대, 역사 속에 이성이 있다는 것은 엄격하게 철학적인 토대 위에서 결정되어야 하며 그리하여 본질적이고 사실상 필수적이라고 밝혀져야 한다.’ 이제 섭리의 목적이 역사의 결과 속에서 ‘실제로 실현되었기’에, 이 실현이 실제 프러시아에서 발생했다고 생각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 이 실현이 프러시아에서 발생했다 ; 이 목적이 이성의 역사적 발전이라는 세 가지 변증법적 단계 속에서, 혹은 헤겔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 ‘생명이.. 진보적 구현의 주기’인 ‘정신’의 역사적 발전이라는 세 가지 변증법적 단계 속에서 어떻게 도달되는지 우리들에게 심지어 밝혀진다. 이 단계의 첫 번째는 동양적 독재이고, 두 번째는 그리스와 로마의 민주정치 및 귀족정치에 의하여 형성되며 세 번째이자 가장 높은 것은 독일 군주제인데 독일 군주제는 물론 절대군주제이다. 그리고 헤겔은 자신이 미래의 유토피아적 군주제를 의미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 ‘정신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지만 본질적으로 현재이다 ; 이것은 정신의 현재 형태가 앞 단계 모두를 포함하고 능가함을 반드시 의미한다’라고 헤겔은 쓴다.

그러나 헤겔은 그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말을 할 수 있다. 그는 역사의 세 번째 기간인 독일 군주제, 즉 ‘독일 세계’를 세 부분으로 다시 나누어 이렇게 말한다 : ‘첫째로, 우리는 - 우리가 중세기의 종말에 보았던 여명의 붉은 빛을 따라온 완전히 계몽적인 태양종교혁명을 본질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 그 다음에는, 종교혁명을 뒤를 이은 상황의 펼쳐짐 ;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세기말로부터 시작되는 현대’로 1800년에서부터 1830년까지(이 강좌가 행하여지던 마지막 해)의 기간을 ‘본질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그리고 헤겔은 이 현재의 프러시아가 자유의 정점이자 보루이며 목표라고 다시 증명한다. ‘보편적 역사의 무대 위에서, 우리는 정신을 관찰하고 파악할 수 있는데, 정신은 가장 구체적인 실제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고 헤겔은 쓴다. 그리고 헤겔은 정신의 본질은 자유라고 가르친다. ‘자유는 정신의 유일한 진실이다.’ 따라서 정신의 발전은 자유의 발전이어야 하며, 최고의 자유는 역사적 발전의 마지막 세분화를 의미하는 독일 군주제의 저 30년 동안에 이룩되었던 것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읽는다 : ‘독일정신은 새로운 세계의 정신이다. 그 정신의 목적은 자유의 무제한적 자주 결정으로서 절대적 진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 정부가 ‘공적(公的: official) 세계에 기초하고 그 최고점은 군주의 개인적인 결정인데 그 까닭은 최종적 결정은, 위에 밝혀진 바와 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헤겔을 우리에게 확신시키고 프러시아를 찬양한 후에, 헤겔은 자신의 저서의 완성적 결론에 도달한다 : ‘이것이 의식이 도달한 요점이며 이것들은 자유가 그 속에서 스스로 실현하는 형태의 가장 중요한 단계들이다 ; 그 까닭은 세계 역사는 자유의 이데아가 발전하는 것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세계 역사는.. 정신의 실현이라는 것, 이것은 진정한 신(神)의 정당화이며 역사 속에서 신(神)의 정당화이다... 일어난 일과 일어나고 있는 일은.. 본질적으로 신의 작품이다..’라고 헤겔은 말한다.

내가 헤겔이 우리에게 신과 프러시아를 동시에 변호한다고 말했을 때 내가 옳지 않았는지, 그리고 헤겔이 우리에게 지구상의 신성한 이데아로서 숭배하라고 추천하는 국가는 1800년에서 1830년까지 프레더릭 윌리엄이 지배했던 프러시아만이 아닌 것이 분명하지 않은지를 나는 묻는다. 그리고 나는 정당한 모든 일을 역겹게 타락시키는 이 행동을 능가하는 행동이 가능한지를 묻는다 ; 이성, 자유, 평등, 그리고 열린사회의 다른 이념들뿐만 아니라 신에 대한 성실한 믿음과 심지어 성실한 애국심을 타락시킨 행동.

진보적이고 심지어 혁명적으로 보이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그리고 지금쯤은 독자들에게 익숙할 사물을 왜곡하는 일반적인 변증법적 방식으로 나아가서, 헤겔이 어떻게 최종적으로 놀랄 정도로 보수적인 결과에 도달하는지를 설명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역사철학을 자신의 윤리적이고 법률적인 실증주의와 연결하여 그 실증주의에 일종의 역사주의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역사는 우리를 판결한다. 역사와 섭리가 현존하는 권력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힘은 분명히 정당하다, 심지어 신성스럽게 정당하다.

그러나 이 도덕적 실증주의는 헤겔을 완전하게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그는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그가 자유와 평등을 반대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는 인간의 형제애인 인도주의 즉, 그가 말하는 바와 같이, ‘자비심’에 반대한다. 양심은 맹목적 복종과 명성과 운명이라는 헤라클리투스의 낭만적 윤리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형제애는 전체주의적 민족주의로 대체되어야 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지는 이 장의 3부, 특히 4부에서 밝혀질 것이다.

III

나는 이제 다소 이상한 이야기 - 독일 민족주의 발흥에 관한 이야기 -를 매우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의심할 바없이 이 용어가 의미하는 경향은 이성과 열린사회에 대항하는 반란과 강력한 연관성을 지닌다. 민족주의는 우리가 지닌 종족적 본능, 열정과 편견을 매료한다. 그리고 민족주의가 집단적 책임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긴장으로부터, 쉬고자 하는 우리가 지닌 향수성 열망을 민족주의는 매료한다. 우리가 정치이론에 관한 가장 오래된 작품들, 심지어 옛 과두독재자의 이론, 그러나 더욱 두드러지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이 단호하게 민족주의적 관점을 피력하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이 경향과 일치한다 (여기서 옛 과두독재는 아테네의 민주혁명에 맞서서 공포정치를 실시했던 반민주적 과두독재자를 의미한다 - 역자 주) ; 그 까닭은 이 작품들이 열린사회와, 제국주의와 세계주의(cosmopolitanism)와 평등주의라는 새로운 이념과 싸우려는 시도로 쓰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제국주의에 반대하지 않고 전통적 종족주의 사회에서 열린사회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가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 역자 주). 그러나 민족주의적 정치이론의 이러한 초기 발전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갑자기 멈춘다. 알렉산더의 제국과 함께, 진정한 종족적 민족주의는 정치적 관행에서 영원히, 그리고 정치이론에서 오랫동안 사라진다. 알렉산더에서 시작하여 계속, 유럽과 아시아의 모든 문명국가는 무한히 혼합된 지역의 인구를 포함하는 제국이었다. 유럽문명과 그 문명에 속하는 모든 정치단위는 그 후 계속해서 국제적으로, 즉 정확하게 말해서 종족 혼합적으로 남았다. (알렉산더가 우리로부터 떨어진 만큼 다시 알렉산더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고대 수메르 제국은 최초의 국제적 문명을 이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치적 관행에 유효한 것은 정치이론에도 유효하다 ; 약 100년 전까지,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적 민족주의는 실제로 정치원리에서 사라졌다. (물론, 종족적이어서 편협한 감정은 늘 강력했다.) 민족주의가 백년 전에 부흥했을 때, 민족주의는 독일과, 유럽의 완전히 혼합된 지역 모두 중에서 가장 혼합된 지역의 한 지역 안에, 특히 주로 슬라브 인구를 지니고 있었던 프러시아 안에 있었다. (겨우 백년 전에 당시 슬라브 인구가 우세적이었던 프러시아가 전혀 독일국가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 프러시아의 왕들이 브란덴부르그의 왕자로서 독일제국의 ‘선출권을 가진 자들’이었는데, 독일 왕들로 여겨졌다 할지라도. 비엔나 회의에서, 프러시아는 ‘슬라브 왕국’으로 둥록되었다 ; 그리고 1830년 헤겔은 심지어 브란덴부르그와 메클렌부르그[Mecklenburg]에 ‘독일화된 슬라브인들’이 살고 있다고 여전히 말했다.)

그리하여 민족국가라는 원칙이 정치이론에 재등장한 것은 짧은 시간일 따름이다. 이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원칙이 우리 시대에 널리 인정되어 보통 당연시되고, 흔히 무의식적으로 당연시된다. 그 원칙은 이제, 말하자면, 대중적인 정치사상이라는 함축적인 가정을 형성한다. 그 원칙은 특히 의도는 좋았지만 잘 고찰되지 못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이래,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정치윤리의 기본 원리로 심지어 여겨진다. 유럽의 역사에 관하여, 모든 종류의 종족이 이동하고 섞이는 것에 관하여, 그들의 원래 아시아의 주거지로부터 나와서 유럽대륙이라고 불리는 반도의 미궁에 도달했을 때 분리되고 뒤섞인 민족들의 무수한 물결에 관하여 조금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적용이 불가능한 원칙을 제시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설명을 하자면, 성실한 민주주의자였던 (그리고 열린사회를 위한 모든 투사 중 가장 위대한 투사 한 명이었던 마사리크[Masaryk] 또한 [마사리크는 체코의 철학자로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체코의 대통령이 됨 - 역자 주]) 윌슨이 순종적이고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던 인류에게 부과된 가장 반혁명적이고 노예근성적인 정치철학으로부터 나온 운동의 희생물이 되었던 것이다. 윌슨은 플라톤과 헤겔의 형이상학적 정치이론에서 양육되어 희생물이, 그리고 플라톤과 헤겔에게 기초를 둔 민족주의적 운동의 희생물이 되었다.

민족국가의 원리는, 다시 말해서, 모든 국가의 영토가 한 만족이 거주하는 영토와 일치해야 한다는 정치적 주장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것처럼 전혀 그렇게 자명하지 않다. 자신이 민족성에 관하여 말을 할 때도 자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고 할지라도, 민족성이 예를 들어 종교보다 더 중요하게, 근본적인 정치적 범주로서나 한 왕조에 대한 충성심으로서나 민주주의 같은 정치적 신조로서 (민주주의는 다언어 국가인 스위스의 통합적 요인을 형성한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왜 인정되어야 하는지 전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종교나 영토, 혹은 정치적 신조가 다소 분명하게 결정되는 반면, 아무도 실제 정치의 근간으로서 사용될 수 있는 방식으로 민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물론, 우리가 민족이란 특정 국가에 살거나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 그러나 이것은 국가는 민족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지 민족이 국가에 의하여 결정될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민족 국가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민족이란 공동의 근원이나 공동 언어나 공동 역사에 의하여 단합된다고 주장하는 어떤 이론도 실제로 수용되거나 적용될 수 없다. 민족주의적 국가라는 원칙은 적용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분명한 개념을 지녔던 적도 없다. 그 원칙은 비이성적이고 낭만적이며 유토피아적 꿈으로 자연주의에 대한 그리고 종족적 집단주의에 대한 꿈이다.

원칙이 지니는 내재적인 반혁명적이고 비이성적인 경향에도 불구하고, 현대 민족주의는, 참으로 이상하게도, 헤겔 이전의 짧은 역사 속에서 혁명적이고 자유주의적 신조였다. 역사적 우연과 같은 것에 의해서 - 최초의 민족적 군대인 나폴레옹의 지휘 하의 프랑스 군대가 독일 땅을 침략하고 이 사건으로 야기된 반응 - 그 원칙은 자유의 진영에 들어갔다. 이렇게 전개된 역사를, 그리고 플라톤이 그리스인들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처럼 야만인들과 관련되어 있다고 최초로 주장한 때부터 민족주의가 속했던 전체주의 진영으로 헤겔이 민족주의를 다시 가져왔던 방식을, 그려보는 것은 재미없는 것이 아니다.

플라톤은 불행하게도 자신의 근본적인 정치적 문제를 이렇게 질문하여 공식화했다는 것이 기억될 것이다 :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 ? 누구의 의지가 법률이 되어야 하는가 ? 루소 이전에는, 이 질문에 대한 평범한 대답은 왕이었다. 루소는 새롭고 매우 혁명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왕이 아니라 민중이 통치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의지가 통치를 해야 한다고. 이런 방식으로, 루소는 민중의 의지, 집단적 의지, 혹은 그가 명명하는 바와 같이 ‘일반적인 의지’를 창안하게 된다 ; 그리고 민중은, 한 번 의지를 부여받으면, 초월적 개성으로 고양(高揚)되었다 ; ‘민중 외적인 것에’ (다시 말해서 다른 민족에) ‘관해서는 민중이 단 하나의 존재, 하나의 개인이 된다’고 루소는 말한다. 이 창안 속에는 상당한 양의 낭만적 집단주의는 있지만 민족주의를 향한 경향은 없다. 그러나 루소의 이론은 분명히 민족주의의 씨앗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씨앗의 가장 특징적인 원리는 다양한 민족은 개성으로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주의적 방향으로 거대한 실제적 발걸음이 놓인 것은 프랑스 혁명이 국가적 징집에 기초하여 국민의 군대를 창설했던 때였다. 허더는 훌륭한 국가란 자연적인 국경, 이름하여 자신의 ‘민족’이 거주하는 장소와 일치하는 국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그가 자신의 저서 인류의 역사에 관한 철학을 향한 사상(Ideas towards a Philosophy of the History of Mankind)(1785)에서 처음으로 제안한 이론. ‘가장 자연스런 국가는 단 하나의 민족적 특성을 지닌 단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이다... 민족이란 단지 더 멀리 퍼지는 가족과 같은 자연스러운 성장이다... 모든 인간 공동체에서와 같이,.. 국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자연적 질서가 가장 훌륭한 것이다 - 다시 말해서, 자연이 자신에게 준 기능을 모든 사람이 그 속에서 성취하는 질서’라고 그는 썼다.

민족주의 이론에 다음으로 기여한 한 사람은 J. G. 허더(Herder)로 칸트의 이전 제자이자 동시에 개인적인 친구였다. 이 이론은, 국가의 ‘자연적인’ 국경의 문제에 답변, 즉 민족의 ‘자연적인’ 국경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따름인 답변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처음에는 많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칸트가 허더의 이 저술에서 위험한 비이성적인 낭만주의를 즉각 알아채는 것을 보면 흥미로운데, 칸트는 허더를 노골적으로 비판하여 그를 원수로 만들었다. 나는 칸트의 비판으로부터 한 구절을 인용할텐데 그 이유는 그 구절이 허더 뿐만 아니라 피히테와 쉘링과 헤겔 같은 이후 예언적 철학자와 그들을 추종하는 모든 현대 철학자들의 사상을 탁월하게 단정적으로 요약하기 때문이다 : ‘유추를 집어내는 영민함과 유추를 이용하는 데 과감한 상상력이 그 목적을 위한 이익을 얻기 위하여 감정과 열정을 사로잡은 능력과 결합한다 - 항상 수수께끼에 감추어진 목적. 이 감정은 강력하고 심오한 사상의, 혹은 적어도 매우 중요한 암시의 노력으로 쉽게 오해된다 ; 그리고 그 감정은 그리하여 냉정한 판단력이 정당하다고 보는 것보다 더 높은 기대를 일으킨다... 동의어가 설명으로 그릇되게 제시되고 상징이 진실로 제시된다’고 칸트는 썼다.

독일 민족주의에 최초의 이론을 제공한 것은 피히테였다. 그가 주장하는 바 민족의 경계선은 언어에 의하여 결정된다. (이런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 방언의 차이점이 언어의 차이점이 되는가 ? 얼마나 많은 다른 언어를 슬라브족이나 튜턴족이 사용하는가, 혹은 차이점이 단지 방언만인가 ?)

피히테의 견해는 매우 기묘한 전개를 낳았는데, 특히 그가 독일 민족주의의 창안자 한 사람이라는 것을 고찰하면 그렇다. 1793년에, 그는 루소와 프랑스 혁명을 옹호하고 1799년에 그는 여전히 이렇게 선언했다 : ‘지금부터 프랑스 공화국만이 정직한 사람의 조국이 될 수 있다는 것, 정직한 사람이 모든 나라 중에서 이 나라에만 자신의 능력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은 인류가 지닌 가장 소중한 희망뿐만 아니라 바로 그 희망의 존재도 프랑스의 승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명백하다... 나는 내 자신과 나의 능력 모두를 프랑스 공화국에 바친다.’ 피히테가 이 말을 했을 때 그는 당시 프랑스인들이 관할하던 장소인 마인쯔(Mainz)에 있는 대학에서 자리를 협상하고 있었다는 것이 주목될 것이다. ‘1804년, 피히테는.. 프러시아에서의 직업을 떠나서 러시아로부터의 부름을 수용하고 싶어했다. 프러시아 정부는 그가 원하는 급여의 가치가 있다고 그를 평가하지 않아서 그는, 러시아 정부가 세인트 피터스버그 과학원의 교수로 임명하고 400불 루불 이상의 월급을 지급한다면 “죽을 때까지 그들의 소유가 될 것이다”라고 러시아측 협상가에게 편지를 쓰면서, 러시아로부터 더 많은 인정을 기대했다’고 E. N. 앤더슨(Anderson)은 자신의 저서인 민족주의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서에서 쓴다. 계속해서 앤더슨은 ‘2년후 세계주의자 피히테의 변신이 민족주의자 피히테로 완결되었다’고 쓴다.

베를린이 프랑스인들에 의하여 점령되었을 때, 피히테는 애국심 때문에 떠났다 ; 앤더슨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가 프러시아 왕과 정부가 주목하지 않기를 원하지 않았던’ 행동. A. 뮤엘러(Mueller)와 W. 폰 흄볼트(von Humboldt)가 나폴레옹에 의하여 환대를 받았을 때, 피히테는 화를 내며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 ‘나는 뮤엘러와 흄볼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 나는 내가 그런 수치스러운 영예를 받지 않아서 기쁘다.. 사람이 훌륭한 대의명분에 공개적으로 헌신한다면.. 그 사람의 양심과 분명히 또한 그 사람의 나중 성공도 달라진다.’ 이것에 대하여 앤더슨은 이렇게 비평한다 : ‘사실상, 그는 이익을 보았다 ; 의심할 바없이 그가 베를린 대학으로 부름을 받은 것은 이 일화 때문이다. 이것은 그의 행동이 보이는 애국심을 훼손하지 않고 다만 그 애국심을 올바르게 조명한다.’ 이 모든 것에 우리는 철학자로서 피히테의 생애는 처음부터 사기극에 기초한다는 것을 보태야 한다. 그의 최초 저술은 모든 계시에 대한 비판(Critique of All Revelation)이라는 제목으로 익명으로 출간되었는데, 당시 칸트의 종교에 관한 철학서가 출간될 예정이었다. 피히테의 저술은 매우 재미가 없었고 칸트의 문체를 교묘하게 모방한 것이었다 ; 그리고 그 저술이 칸트의 작품이라고 사람들로 하여금 믿도록 만들기 위하여 소문을 포함한 모든 것이 작동되었다. 피히테가 칸트의 친절로 출판인을 얻었을 따름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그 문제는 제대로 밝혀진다 (칸트는 그 책의 몇 쪽 이상을 읽을 수 없었다). 언론이 피히테의 저서를 칸트의 저서로 극찬했을 때, 칸트는 그 책이 피히테의 작품이라고 공개적인 발표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피히테는 자신에게 갑자기 명성이 내려와서 예나(Jena)에서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칸트는 이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놓기 위하여 또 다른 선언,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진 선언을 어쩔 수 없게 하게 된다 : ‘신이여 우리들의 친구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소서. 우리들의 적들로부터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허풍’이 칸트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딛고 올라서서, 현대의 관념철학 뿐만 아니라 현대의 민족주의를 낳았던 사람의 생애에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이렇게 구별을 고집하는 것이 아마도 다소 현학적이라는 것을 내가 인정해야 한다 할지라도, 나는 피히테의 ‘허풍’과 헤겔의 ‘가짜’를 구별함에서 쇼펜하우어를 따른다.) 전체 이야기는 흥미로운데 주로 그 이유는 그 이야기가 폭로하는 ‘철학의 역사’와 일반적인 ‘역사’ 때문이다. 그런 얼간이들이 진지하게 고찰된다는 추잡하기보다는, 일종의 숭배의 대상이 된다는, 자주 피곤할지라도 엄숙한 연구의 대상이 된다는 추잡하기보다는 (그리고 시험문제의 대상이 된다는 추잡하기보다는) 아마도 더 웃기는 사실을 나는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허풍선이 피히테와 돌팔이 헤겔이 데모크리투스, 파스칼,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 흄, 칸트, J. S. 밀(Mill)과 버드런드 러셀 같은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사람으로 취급받으며, 두 사람의 도덕적 가르침이 진지하게 고찰되어 심지어 이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가르침보다 더 우수하다고 아마도 여겨지는 충격적인 사실만을 나는 의미하지 않는다. 철학에 대한 이 찬양적 역사가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선악을 구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색과 환상을 구분할 수도 없어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역사가 우리의 심판관이라거나, 철학에 대하여 그들이 주장하는 역사가 다른 ‘사상체계’에 대한 함축적 비판이라고 감히 선언한다는 것을 나는 또한 의미한다. 그 까닭은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의 과찬이 철학에 관하여 그들이 주장하는 역사에 대한 함축적 비판이 될 따름이며, 그리고 철학이라는 일이 영예롭게 되는 잡소리로 된 음모와 횡설수설에 대한 함축적인 비판이 될 따름이라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사상결핍에 정비례하고 인간의 복지에 제공되는 봉사의 양에는 반비례하여 허장성세가 커진다는 것은 이 사람들이 즐겨 ‘인간의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의 법칙으로 보인다.

피히테가 민족주의의 사도가 되었을 때, 본능적이고 혁명적인 민족주의가 독일 땅에서 나폴레옹의 침략에 대한 반발로서 고조되고 있었다. (그 민족주의는 초민족적 제국의 확장에 대항하는 저 전형적인 종족적 반발의 하나였다.) 민중은, 루소와 프랑스 혁명의 의미로 이해했지만 자신들이 프랑스인 정복자들 없이 원했던, 민주적 개혁을 요구했다. 민중은 왕들과 황제에게서 동시에 돌아섰다. 이 초기 민족주의는, 그 속에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인도주의적 갈망이 포장된 일종의 외투로서, 새로운 종교의 힘으로써 일어났다. ‘민족주의는 정통 기독교가 쇠퇴할 때 자신만의 불가사의한 경험을 믿으며 그 기독교를 대신하여 성장했다’고 앤더슨은 쓴다. 그것은 압박을 받는 종족이라는 다른 구성원들이 있는 공동체에 대한 불가사의한 경험, 기독교뿐만 아니라 특히 전제정치가 남용되어 파괴되었던 왕에 대한 신뢰와 충성의 감정을 또한 대체했던 경험이었다. 그렇게 새로워서 길들여지지 않고 민주주의적인 종교는 지배계급에게는, 특히 프러시아의 왕에게는 커다란 성가심과 심지어 위험의 근원이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 위험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 해방전쟁이 끝나고, 프레더릭 윌리엄은 먼저 자신의 민족주의적 고문들을 해고하고 그 다음에는 헤겔을 임명함으로써 민족주의에 대처했다. 그 까닭은 프랑스 혁명이 철학의 영향력을 증명했고 그 점은 헤겔에 의하여 합당하게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철학은 헤겔 자신이 하는 일의 기초이기 때문에) : '정신적인 것은 이제 잠재적인 조직의 본질적인 기초이다, 그리고 철학이 그리하여 지배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이 철학으로부터 일어났다고 일컬어지며 그래서 철학이 세계 지혜로 묘사되었던 것은 근거 없는 일이 아니다 ; 철학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그 자체로 진리일 뿐만 아니라.. 세속적 문제에서 밝혀지는 바와 같은 진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혁명이 그 최초의 충동을 철학으로부터 받았다는 주장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헤겔은 말한다. 이것은 헤겔이 자신의 즉각적인 임무를 통찰한 것 즉, 반대 충동을 내놓으려는 것을 암시한다 ; 최초의 충동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충동에 의하여 철학이 반발의 힘을 강화할지도 모르는 충동. 이 임무의 일부는 자유, 평등, 기타 등등의 이념을 왜곡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훨씬 더 화급한 임무는 혁명적인 민족주의적 종교를 순치하는 것이었다. 헤겔은 이 임무를 ‘자신의 에너지를 감정을 파괴하려는 헛된 노력에 낭비하지 말고 감정을 이용하라’는 파레토(Pareto)의 충고의 정신으로 완료했다. 그는 분명한 반대가 아니라 민족주의를 잘 훈련된 프러시아의 권위주의로 변형시킴으로써 민족주의를 길들였다. 그리고 그가 강력한 무기를 닫힌사회 진영으로 가져오는 일이 발생했는데, 그 무기는 근본적으로 그곳에 속해있었다.

이 모든 일은 다소 어설프게 행하여졌다. 헤겔은, 정부에 아첨하려는 자신의 욕심으로, 때때로 민족주의자들을 너무 공개적으로 공격했다. ‘어떤 사람들은 군주의 주권에 반대하여 “민중의 주권”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중의 주권이 군주의 주권과 대비될 때, “민중의 주권”이라는 말은 “민중”이라는 조잡한 개념으로부터 발생하는 단지 저 혼탁한 개념의 하나로 밝혀진다. 자신들의 군주가 없다면.. 민중은 단지 형태 없는 무리이다’라고 헤겔은 법철학(Philosophy of Law)에서 썼다. 그보다 앞서 철학백과(Encyclopaedia)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 ‘사적 인간의 총화가 흔히 민족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그런 총화는 민족이 아니라 오합지졸이다 ; 그리고 그 점에 관하여, 그런 총화로서 민족이 존재하거나 힘을 얻어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국가의 한 가지 목표이다. 민족의 그런 상태는 무법과 사기저하와 야만적인 상태이다. 그런 상태 속에서, 민족은 민족이 - 정신적인 요소가 - 그러할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파멸적이지는 않은 폭풍우가 이는 자연의 힘이 있는 바다의 힘처럼, 다만 형체가 없고 난폭하고 맹목적인 힘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상태가 순수한 자유로서 묘사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이곳에는 분명히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그들을 왕은 마치 질병처럼 증오했다. 그리고 독일제국을 재건하려는 초기 민족주의자들의 꿈을 헤겔이 언급한 것을 우리가 보면 이것은 한층 더 분명해진다 : 그는 최근 프러시아에서 일어나는 일을 칭송하여 말한다, ‘제국이라는 허구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허구는 부서져서 주권국가가 되었다.’ 그가 지녔던 반 자유주의적 경향으로 인하여 헤겔은 영국을 나쁜 의미에서 민족의 가장 특징적인 사례로 언급했다. ‘영국의 경우를 고찰하라. 사적인 개인이 공적인 일을 많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자유로운 헌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경험에 의하면 그 나라는 유럽의 다른 문명국과 비교하여 민형법에서, 법률과 재산의 자유에 있어서, 예술과 과학을 위한 정책에서, 가장 뒤떨어졌고 객관적 자유나 합리적인 권리는 공식적 권리와 특정한 사적인 이익에 희생당한다 : 게다가 이런 일은 심지어 종교에게 바쳐진 제도나 재산 속에서도 발생한다’라고 그는 쓴다. 베를린 대학이 나폴레옹 전쟁의 영향을 받고서만, 왕이 말한 바와 같이 ‘국가는 물리적 힘에서 잃은 것을 지적(知的) 관단성으로 대신해야 한다’는 이념으로 설립되었던, 프러시아보다 더 후진적일 수 있었던 국가는 없었기 때문에 정말로 놀라운 말이다. 몇 쪽을 나아가면 헤겔은 영국의 예술과 과학에 대하여 자신이 말했던 것을 잊는다 ; 그 까닭은 그곳에서 ‘역사적 기술의 방식이 정화과정을 거쳐서 더 견고하고 더 성숙한 특성에 다다른 영국’에 관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헤겔이 자신의 임무가 민족주의가 지녔던 자유주의적이며 심지어 제국주의적인 경향과 싸우는 것임을 알고 있었음을 우리는 안다. 그는 민족주의자들에게 그들의 집단주의적 요구는 전능한 국가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실현된다고, 그래서 민족주의자들이 할 필요가 있는 것은 국가의 힘을 강화하는 일을 돕는 것이라고 설득함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이행한다. ‘민족국가는 그 실제 합리성과 근접 실제성에서 정신이다’라고 그는 쓴다 ; ‘그러므로 민족국가는 지구상에서 절대적인 권력이다.. 국가는 민중의 정신 자체이다. 실제 국가는 자신의 모든 특정 업무에서, 전쟁과 제도에서, 이 정신에 의하여 움직인다... 하나의 특정 민족의 자의식은 집단적 정신을 발달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 .. 그 속으로, 시대정신이 자신의 의지를 투입한다. 이 의지에 거슬러서는, 다른 민족적 정신이 어떤 권리도 가지지 못한다 : 민족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그는 쓴다. 역사의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은 그러므로 민족과 민족정신과 민족의 의지이다. 역사는 다양한 민족정신이 세계지배를 위하여 경쟁하는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민족과 민족정신은 어떤 방식으로든 지휘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개혁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 ; 게다가, ‘모든 민족은.. 자신에게 알맞아서 자신에게 속하는 헌법을 가지고 있다’. (법률적 실증주의.) 우리는 헤겔이 플라톤-프러시아식 국가숭배 뿐만 아니라 역사숭배로써, 역사적 성공을 숭배함으로써 민족주의 속의 자유주의적 요소를 대체함을 본다. (프레더릭 윌리엄 왕은 나폴레옹에 대항하여 성공했다.) 이런 방식으로, 헤겔은 민족주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에 새로운 이론을 부여하기도 했다. 피히테는,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민족주의는 언어에 기초한다는 이론을 민족주의에 부여했다. 헤겔은 민족에 대한 역사적 이론을 도입했다. 민족이란, 헤겔에 따르면, 역사 속에서 활동하는 정신에 의하여 단결된다. 민족은 공동의 적에 의하여, 그리고 민족이 싸우는 전쟁의 동료애에 의하여 단결된다. (인종은 인간의 역사와 관련하여 인간의 근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동의 오류에 의하여 단결되는 인간의 집합체라고 일컬어졌다.) 이 이론이 어떻게 헤겔의 역사주의적 본질주의와 연결되는지는 분명하다. 민족의 역사는 민족의 본질 즉, ‘정신’의 역사이며 ‘역사의 무대’ 위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민족주의 발흥의 개괄을 마치면서, 나는 비스마르크의 독일제국 건설에 이르기까지의 사건에 관하여 언급할 것이다. 헤겔의 정책은 민족주의적 감정을 파괴하려는 헛된 노력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그 감정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이 유명한 기교는 다소 이상한 결과를 낳는 것으로 보인다. 중세에 기독교가 권위적 종교로 바뀌었지만 기독교의 인도주의적 경향을 완전히 억압하지는 못했다 ; 반복적으로, 기독교는 권위적 외피를 뚫고 나왔다 (그리고 이단으로 박해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파레토(Pareto)의 충고는 지배계급을 위험에 빠뜨리는 경향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줄뿐만 아니라, 또한 바로 이 경향을 보존하는 데 비의도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유사한 일이 민족주의에도 발생했다. 헤겔은 민족주의를 길들여서, 독일 민족주의를 프러시아 민족주의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리하여 자신이 주장하는 (그 자신의 은어를 사용하여) 프러시아주의의 ‘한 요소로 민족주의를 환원함’으로써 헤겔은 민족주의를 ‘보존했다’ ; 그리하여 프러시아는 독일 민족주의 감정을 이용하는 길로 어쩔 수 없이 나아가야 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프러시아가 1866년에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였을 때, 프러시아는 독일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그리고 ‘독일’의 지도력을 확보한다는 구실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프러시아가 크게 확장된 1871년의 프러시아를 새로운 ‘독일제국’, 새로운 ‘독일민족’으로 홍보를 해야했다 - 헤겔이 주장하는 민족에 대한 역사적 이론에 따라 전쟁을 통하여 한 단위로 합쳐진.

IV

우리 시대에, 헤겔의 신경질적인 역사주의는 여전히 현대의 전체주의가 그 급성장을 빚지고 있는 자양분이다. 이 장의 5부에서 밝혀질 것처럼, 헤겔의 역사주의를 사용하여 그 토대가 마련되었고 지식인들은 교육을 받아 지적(知的)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적 솔직함이란 우리가 간직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근본적인 것이라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까 ? 그리고 그것은 정당한 것인가 ? 헤겔의 위대함은 그가 사고에 관한 새로운, 역사적인 방식을 -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 창안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놓여있다는 주장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

나의 친구 여러 명은 헤겔을 대하는 나의 자세 때문에, 그의 위대함을 보지 못하는 나의 무능력 때문에 나를 비판하였다. 내가 그의 위대함을 정말로 볼 수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내 친구들은, 물론, 옳다. (나에게 아직도 그런 능력이 없다.) 이 잘못을 고치기 위하여, 나는 어디에 헤겔의 위대함이 놓여있는가 ?라는 의문을 상당히 체계적으로 조사하였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의심할 바없이, 역사적 드라마의 방대함과 위대함에 관한 헤겔의 말은 역사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의심할 바없이, 그의 방대한 일반화와 기간구분 및 해석은 몇몇 역사가들을 매혹하여 그들로 하여금 가치 있고 세밀한 역사연구를 (그 연구는 거의 변함 없이 헤겔의 방식뿐만 아니라 헤겔이 발견한 것의 허약함을 폭로했다) 하도록 자극했다. 그러나 이 도전적인 영향력은 역사가의 업적이었을까, 혹은 철학자의 업적이었을까 ? 오히려 그 영향력은 선전가의 업적이 아니었을까 ? 역사가들이란, 내가 알아낸 바, 헤겔을 (조금이라 할지라도) 철학자로서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철학자들은 그의 공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역사를 이해한 것이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역사주의는 역사가 아니다, 그리고 역사주의를 신뢰한다고 역사 이해력이나 역사적 감각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헤겔의 위대성을 역사가나 철학자로서 평가하기를 원한다면, 사람들이 역사에 대한 그의 감지력이 고무적이라고 아는지를 우리 자신에게 물어서는 안 되고 이 감지력 속에 많은 진실이 있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나는 중요하고 헤겔철학 속에서 함축적이라고 주장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이념을 발견했다. 그것은, 이성이 전통에 지고 있는 빚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추상적인 이성주의와 지성주의를 공격하도록, 헤겔을 이끄는 이념이다. 그 이념은 사람이란 무(無)로부터 사상의 세계를 창조하여, 공간으로 시작할 수는 없다는 사실 (그 사실을, 그러나, 헤겔은 자신의 논리에서 망각한다)에 대한 어떤 자각이다 ; 그러나 사람의 사상이란, 주로, 지적 유산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대한 어떤 자각.

나는 이것이 중요한 점이라는 것, 누가 그것을 기꺼이 찾으려고 한다면 헤겔에게서 발견될 수 있는 요점이라는 것을 인정한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요점이 헤겔만의 공로라는 것을 부인한다. 그 요점은 낭만주의자들의 공동 재산이었다. 모든 사회적 실체가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 ; 이성적으로 계획된 발명품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변덕스러움으로부터, 생각과 이해관계가 상호작용을 하여, 고통으로부터 그리고 열정으로부터 나와서 형성되는 이 모든 것은 헤겔보다 오래되었다. 그것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모든 사회제도의 작동과 관련된 전통의 중요성을 그가 파악함으로써 독일 낭만주의 운동의 정치적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버크가 끼친 영향의 흔적이 헤겔에게서 발견될 수 있지만, 오직 역사적 및 진화적 상대주의라는 과장되고 지지 받을 수 없는 형태로서 이다 - 오늘날 믿어지는 것은 사실상 오늘날 진리라는 위험한 원칙의 형태로, 그리고 어제 진리였던 것 (‘믿어지는’ 뿐만 아니라 진리)은 내일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동등하게 위험한 추론으로 - 확실히 전통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일을 고취할 것같지 않는 원칙.

V

나는 이제 헤겔철학을 다루면서 마지막 부분, 헤겔이 주장하는 교설에 새로운 종족주의나 전체주의가 의존하는 것을 분석하는 데로 나아간다.

전체주의의 발흥에 관한 역사를 쓰는 것이 나의 목적이라면, 나는 먼저 마르크스주의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 그 까닭은 파시즘이 부분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정신적 및 정치적 붕괴로부터 자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게 되는 바와 같이, 유사한 말이 레닌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될 것이다.) 나의 주요 의제는, 그러나, 역사주의이기 때문에, 나는 파시즘을 먼저 다루고 지금까지 발흥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역사주의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나중에 다룰 것을 제안한다.

현대 전체주의는 자유와 이성에 대항하는 지속적인 반란 내부의 일화일 뿐이다. 더 오래된 일화들로부터 현대 전체주의가 구분되는 것은 그 이념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그 전체주의 지도자들이 전임자들의 대담한 꿈 한 가지를 성취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에 의해서이다 ; 그 지도자들은 자유에 대항하여 반란을 대중적 운동으로 만들었다. (그 인기는, 물론, 과대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 ; 지식인은 민중의 일부일 뿐이다.) 그것은, 관련된 국가에서, 또 다른 대중 운동인 사회 민주주의 즉, 마르크스주의의 민주주의적 해석이 붕괴함으로써만 가능해졌는데, 사회 민주주의는 노동자들의 생각으로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대표했다. 이 운동이 1914년 전쟁에 반대하여 단호하게 저항하는 데 실패한 것은 우연만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졌을 때 ; 이 운동이 평화문제를 다루는 데, 무엇보다도 실업과 경제 불황의 문제를 다루는 데 무기력하다는 것이 명확해졌을 때 ;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운동이 파시스트의 공격에 저항하여 겨우 멈칫거리며 자신을 방어했을 때, 자유의 가치에 대한 그리고 평등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았고, 자유에 대항하는 지속적인 반란은 어떤 수단을 쓰던지 다소 인기 있는 대중적 후원을 얻을 수 있었다.

파시즘이 마르크스주의의 유산 일부를 넘겨받아야 했던 사실은 파시즘 이념의 ‘원초적’ 특징 하나를, 그 속에서 파시즘이 자유에 대항하는 반란의 전통적 구조로부터 방향을 바꾸는 한 가지 점을 설명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점은 파시즘이란 초자연적인 것을 공개적으로 사로잡는 데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파시즘이 반드시 무신론적이요, 내밀하거나 종교적인 요소가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를 통하여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이 퍼지자 노동계급 가운데서 인기를 겨냥했던 정치적 주의(主義)는 전통적 종교형태 어느 것에도 자신을 연결할 수가 없었다 (이 문장에서 불가지론은 신을 인간이 알 수없다는 이론이다 - 역자 주). 이것이 파시즘이 자신의 공식 이념에, 적어도 그 초기 단계에서, 19세기 진화주의적 유물론의 어떤 혼합물을 덧보탠 이유이다.

그리하여 파시즘의 태동 공식은 모든 국가에서 똑같다 : 헤겔에 19세기 유물론을 보태는 것 (특히 해켈[Haeckel]이 부여한 다소 조잡한 형태의 다윈론). 인종주의 속의 ‘과학적’ 요소는 해켈에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해켈은 1900년 어느 경품대회의 책임을 맡고 그 주제가 ‘국가의 내부적 및 정치적 발전에 관하여 우리는 다윈론의 원리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 이었다. 일등상은 W. 샬마이어(Schallmeyer)의 방대한 인종주의적 저술에 배당되었는데, 그는 그리하여 인종 생물학의 원조가 되었다. 이 유물론적 인종주의가, 그 매우 다른 뿌리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의 자연주의와 얼마나 강력하게 닮았는지를 관찰하면 흥미롭다. 양쪽의 경우에, 근본 개념은 쇠퇴란, 특히 상류계급의 쇠퇴는, 정치적 부패의 뿌리에 있다는 것이다. (열린사회의 전진에 뿌리가 있다고 읽어라 [이 말은 저자가 플라톤이 말하는 정치적 부패란 열린사회의 전진으로 보면서 하는 것이다 - 역자 주]). 게다가, 피와 땅이라는 현대 신화는 플라톤이 말하는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신화 속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헤겔 + 플라톤’이 아니라 ‘헤겔 + 해켈이 현대 인종주의의 공식이다. 우리가 보게 되는 바와 같이, 마르크스는 헤겔이 주장하는 ’정신’을 물질로 대체했고,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이해관계로 대체했다. 동일한 방식으로, 인종주의는 헤겔의 ‘정신’의 자리에 물질적인 것을, 즉 혈액이나 인종에 관한 유사생물학적 개념을 대체한다. ‘정신’ 대신에, 혈액이 스스로 발전하는 본질이다 ; ‘정신’ 대신에, 혈액이 세계의 주권자이며 역사의 무대에서 자신을 표출한다 ; 그리고 민족의 ‘정신’ 대신에 민족의 피가 민족의 본질적 운명을 결정한다.

헤겔철학이 인종주의로 실체변화를 하거나 정신이 혈액으로 실체변화를 한다고 해서 헤겔철학의 주요 경향이 크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실체변화는 헤겔철학에게 생물학과 현대 진화론의 특징을 부여하기만 한다. 결과는 스스로 발전하는 생물학적 본질이라는 유물론적이고 동시에 밀교적 종교로서, G. B. 쇼(Shaw)가 심오하게 라기보다는 예언자적으로 예전에 ‘인류를 장악했던 모든 종교의 첫 번째 조건에 일치하는 종교 : 이름하여, 그것은 분명히.. 초월적 생물학’으로서 특징지은 종교인, 창조적 진화의 종교를 (그 예언자는 헤겔주의자인 베르그송이었다) 매우 밀접하게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정말로, 인종주의라는 이 새로운 종교는 초월적 구성요소와 생물학-구성요소, 말하자면, 즉 헤겔적인 황당한 형이상학과 해켈적인 유물론적 생물학을 분명히 보여준다.

현대 전체주의와 헤겔철학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이만큼만 하자. 대중성이라는 관점에서의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현대 전체주의와 헤겔철학에 관한 한 이 차이점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유사점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현대 전체주의의 더 중요한 이념 거의 모두는 헤겔에게서 계승되었는데, 헤겔은 A. 짐머른(Zimmern)이 ‘권위주의 운동의 무기고’라고 부르는 것을 수집하고 보존했다. 이 무기 대부분이 헤겔 자신에 의하여 주조되지 않고 자유에 대항하는 지속적인 반란의 다양한 고대 전쟁 보물창고에서 그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할지라도, 그 무기들을 발견하고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손에 쥐어준 것은 의심할 바없이 헤겔이었다. 여기에 이 이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이념의 간단한 목록이 있다. (나는 플라톤의 전체주의와 종족주의를 생략하는데, 주인과 노예의 이론에 덧붙여 그것들이 이미 논의되었다.)

(a) 국가는 국가를 창조하는 민족 (혹은 인종)의 정신의 (혹은 지금은, 혈액의) 화신이라는 역사주의적 개념의 형태로의 민족주의 ; 하나의 선택된 민족은 (지금은 선택된 인종) 세계를 지배할 운명을 지닌다. (b) 다른 모든 국가에 대한 자연적인 적으로서 국가는 전쟁에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해야 한다. (c) 국가는 어떤 종류의 도덕적 의무에서도 제외된다 ; 역사, 다시 말해서, 역사적 성공이 유일한 심판관이다 ; 집단적 효용성은 개인적 행동의 유일한 원칙이다 ; 선전주의적 거짓말과 진실왜곡은 허용될 수 있다 ; (d) 전쟁에 대한 ‘윤리적’ 개념 (전체적이고 집단주의적), 특히 늙은 민족 대(對) 젊은 민족의 전쟁에 대한 ‘윤리적’ 개념 ; 매우 바람직한 상품으로서의 전쟁, 운명과 명성. (e) 위대한 사람, 세계역사적 인물, 깊은 지식과 커다란 열정을 지닌 사람의 창조적인 역할 (지금은 지도력의 원칙). (f) 영웅적 삶이라는 이상 (‘위험하게 살아라’), 그리고 소시민과 그의 삶이 지니는 얄팍한 범용함에 반하여 ‘영웅적인 사람’이라는 이상.

정신적 보고(寶庫)의 이 목록은 체계적이지도 않고 완결적이지 못하다. 그 보물 모두는 옛 세습재산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보물들은 저장되어, 헤겔과 그의 추종자들의 저술에서뿐만 아니라 독점적으로 3 세대의 긴 기간동안 그렇게 부패한 정신적 자양분을 먹은 지식인들의 정신 속에도 또한 이용될 준비가 되어, 일찍이 쇼펜하우어에 의하여 ‘지성을 파괴하는 가짜 철학’과 ‘언어의 악의적이고 범죄적 악용’으로 인정된다. 나는 이제 이 목록의 다양한 요점을 더 세밀하게 검토하겠다.

(a) 현대 전체주의의 교설에 따르면, 국가는 최고의 목적이 아니다. 국가는 오히려 피요 민중이요 인종이다. 고등 인종일수록 국가를 창조할 힘을 가지고 있다. 인종이나 민족의 최고 목표는 자신을 보존하는 강력한 도구로서 일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정신 대신에 피를 대체한 것을 제외하고) 헤겔에 기인하는데, 헤겔은 이렇게 썼다 : ‘민족의 존재에서, 근본적인 목표는 국가가 되어 자신을 국가로 보전하는 것이다. 국가로 자신을 형성하지 못한 민족은 - 민족에 지나지 않는 - 엄밀하게 말해서 야만의 상태에서 존재했던 민족들처럼,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민족에게 발생하는 일은.. 국가와 관련하여 그 본질적 중요성을 지닌다.’ 그렇게 형성된 국가는 전체주의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힘은 국가의 모든 기능에서 국민의 전체 삶에 퍼져야 하고 그 삶을 통제해야 한다 : ‘국가는 그러므로 민족의 생활에서 모든 구체적인 요소의 근본이자 중심이다 : 예술, 법률, 도덕, 종교, 그리고 과학에 관하여... 국가라는 구체적 실체 안에 존재하는.. 본질은 국민의 정신 그 자체이다. 실제 국가는 그 모든 특정 사건에서, 전쟁, 제도, 기타 등등에서 이 정신으로 움직인다.’ 국가는 강력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국가의 힘과 싸워야 한다. 국가는 ‘역사의 무대’에서 자신을 주장해야 하고, 자신의 역사적 행위에 의하여 자신의 고유한 본질이나 정신과 ‘엄밀하게 정의된’ 민족적 특성을 증명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세계지배를 목표로 해야 한다. 여기에 헤겔이 말하는 이 역사주의적 본질주의의 개요가 있다 : ‘정신의 본질은 활동이다 ; 정신은 자신의 잠재력을 실제화하고, 자신을 자신의 행위로, 자신의 작업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정신은 민족정신과 함께 한다 ; 그 정신은 역사를 구성하는 사건과 변이 속에서 존재하고 지속되는.. 엄밀하게 정의된 특징을 지닌 정신이다. 그것이 그 작업이다 - 그것이 이 특정 민족의 실재이다. 민족은 그 민족들의 행위이다... 민족은 자신의 고귀한 목표를 실현하는 데 몰두하는 한 도덕적이고, 정의로우며, 활기차다... 그 아래서 세계역사적 민족들이 최고점에 다다르는 헌법은 그 민족들에게 고유하다.. 그러므로, 고대 세계역사적 민족들의 정치제도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 특정한 민족적 천재 각자는 보편적 역사 과정 속에서 단지 한 명의 개인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정신이나 민족적 천재는 세계지배에서 최종적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 특정 민족의 자의식은.. 그 속에서 시대정신이 자신의 의지를 투입하는 객관적 실제이다. 이 절대적 의지에 대항하여 다른 특정한 민족적 정신은 어떤 권리도 가지지 못한다 : 민족이 세계를 지배한다.’

그러나 헤겔은 민족주의의 역사적이고도 전체주의적인 이론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민족주의의 심리학적 가능성도 분명하게 예견했다. 그는 민족주의가 어떤 필요에 - 세계 속에서 자신들의 분명한 장소를 발견하여 알고자하는, 그리고 강력한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사람의 욕망에 - 부응하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그는 저 독일 민족주의의 두드러진 특징, 특히 영국민족을 향한 독일민족의 강하게 발전된 열등의식을 (더 최신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민족주의와 종족주의로써, 내가 (10 장에서) 문명의 긴장(strain of civilization)으로 설명한 저 감정을 매혹시키는 것이다 : 헤겔은 이렇게 쓴다, ‘모든 영국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우리는 바다를 항해해서 세계의 상권을 갖는 사람들이다 ; 동인도와 그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개인과 저 정신의 관계는.. 정신이 개인으로 하여금 세상에서 분명한 장소를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 중요한 것이 되게 한다는 것. 그 까닭은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람들에게서 이미 확립되어 확고한 세계.. 자신을 소속시켜야 하는 세계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민족정신이 하는 일과 그러므로 민족정신의 세계와 민족정신이 자신의 존재를 즐기고 만족을 발견한다.’

(b) 헤겔과 그를 인종주의적으로 추종하는 사람 모두에게 공통적인 이론은 국가란 바로 그 본질에 의하여 다른 개별 국가와의 대조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독일의 주요 사회학자 한 명인 H. 프라이어(Freyer)는 이렇게 쓴다 : ‘자신의 핵심 주변으로 자신을 끌어당기는 존재는 심지어 비의도적으로도 경계선을 만든다. 그리고 국경선은 - 심지어 비의도적이라 할지라도 - 적을 만든다.’ 유사하게 헤겔은 : ‘개인이란 다른 사람에게 연계되어 있지 않다면 실제 인간이 아닌 것과 꼭 마찬가지로 국가도 다른 국가에 연계되어 있지 않다면 실제적 개별체가 아니다... 한 특정 국가의 다른 국가에 대한 관계는 열정, 이해관계, 목적, 재능, 미덕, 힘, 불의, 악덕, 그리고 단순히 외적 기회가.. 가장 변혁적인 연극을 제공한다. 그것은 그 속에서 심지어 윤리적 전체, 국가의 독립이 우연에 노출되는 연극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방연합으로써 영구적 평화를 세우려는 칸트의 계획을 채택함으로써 불행한 사태를 통제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은가 ? 칸트의 평화 계획에 관하여 비평하면서 헤겔은 분명히 아니다라고 말한다 : ‘칸트는 왕들의 동맹을 제안했다’고 헤겔은 다소 부정확하게 말한다 (그 이유는 칸트가 우리가 요즘 말하는 민주국가의 연맹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왕들의 동맹은 국가의 논란을 해결해야 한다 ; 그리고 신성동맹(the Holy Alliance : 1815년에 러시아․오스트리아․프러시아 사이에 체결 - 역자 주)은 아마도 이런 종류의 제도가 되기를 갈망했었다. 국가는, 그러나, 개별체이다 ; 그리고 개별성 안에는 부정(negation: 否定)이 본질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몇 개의 국가는 자신들을 한 가족으로 구성할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연합은, 개별체로서, 분명히 반발을 유발하여 적을 낳는다.’ 그 까닭은 헤겔이 주장하는 변증법에서, 부정은 제한과 동일하며 그리하여 국경선이 경계선뿐만 아니라 반대, 적을 낳기 때문이다 : ‘다른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국가들의 행운과 행위는 이 정신의 유한한 성질에 관한 변증법을 표출한다.’ 이 인용구절은 법철학(Philosophy of Law)에서 가져온 것이다 ; 그러나 그의 이전 작품인 철학백과(Encyclopaedia)에서, 헤겔의 이론은 현대 이론들, 예를 들어 프라이어(Freyer)의 이론을 훨씬 더 밀접하게, 앞서 다룬다 : ‘국가의 최종 모습은 직접적 실제성 속에서 단 하나의 민족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단 하나의 개체로서 국가는 다른 같은 개체들을 배척한다. 그 개체들의 상호관계에서, 비예견성과 우연이 자리를 차지한다... 이 독립성은.. 개체들 사이의 분쟁을 상호간의 폭력의 관계로, 전쟁상태로 환원시킨다... 그 속에서 국가의 전능(全能)이 출현하는 것은 이 전쟁상태이다..’ 그리하여 프러시아의 역사가 트라이츠케(Treitschke)는 다음과 같이 헤겔의 말을 복창하여 얼마나 자신이 헤겔의 변증법적 본질주의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따름이다 : ‘전쟁은 실제로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필요한 것, 논리적으로 필수적인 것이다. 국가라는 개념은 전쟁이라는 개념을 함축하는데, 그 까닭은 국가의 본질은 힘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주권으로 조직된 국민이다.’

(c) 국가는 법이다, 사법적 법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국가는 어떤 다른 기준에 종속될 수가 없는데, 특히 시민들의 도덕성이라는 기준에 종속될 수 없다. 국가의 역사적 책무는 더 깊다. 국가에 대한 유일한 심판관은 세계역사이다. 국가에 대하여 유일하게 가능한 판단기준은 국가의 행동에 관한 세계역사적 성공이다. 그리고 이 성공인 국가의 권력과 확장은 시민들의 사적인 삶에서 모든 다른 고려사항에 우선한다 ; 국가의 힘에 봉사하는 것은 정의이다. 이것이 플라톤의 이론이다 ; 그것은 현대 전체주의의 이론이다 ; 그리고 그것은 헤겔의 이론이다 ; 그것은 플라톤-프러시아적 도덕성이다. 헤겔은 이렇게 쓴다, ‘국가는 윤리적 이데아의 실현이다. 국가는 드러나고, 스스로 의식하고, 본질적인 의지로서 윤리적 정신이다.’ 결과적으로, 국가 위에는 어떤 윤리적 이데아도 있을 수 없다. ‘국가의 특정 의지가 동의를 얻지 못하면, 논쟁은 전쟁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어떤 위반이 조약위반으로, 혹은 존경과 명예의 훼손으로 간주될 것인지는 분명히 불분명한 상태로 남는다... 국가는 자신의 무한성과 명예를 자신이 지닌 모습 모두와 동일시 할 것이다.’ 그 까닭은 ‘.. 국가 간의 관계는 변화무쌍하여, 국가들의 차이점을 조정할 재판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 ‘국가에 대항하여 무엇이.. 옳은지를 결정할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는.. 상호조약을 맺을 수 있지만 국가는, 동시에, 이 조약보다 우월하다’ (다시 말해서, 국가는 조약을 지킬 필요가 없다)... ‘국가 간의 조약은.. 궁극적으로 특정 주권적 의지에 의존하고, 그 이유 때문에, 국가 간의 조약은 분명히 신뢰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오직 한 가지 종류의 ‘판결’만 세계역사적 행위와 사건에 관하여 내려질 수 있다 : 그 행위나 사건의 결과, 성공. 그리하여 헤겔은 ‘본질적인 운명 - 절대적인 목표, 혹은 그와 동일한 것 - 세계역사의 진정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성공하는 것, 다시 말해서, 힘을 위한, 세계지배를 위한 다양한 민족적 정신의 변증법적 투쟁으로부터 최강자로 출현하는 것이 그러므로 유일하고 궁극적인 목표이자 유일한 판단기초이다 ; 혹은 헤겔이 더 시적(詩的)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 ‘이 변증법으로부터 보편적 정신, 무한한 세계정신이 세계역사의 유한한 민족에게 자신의 판결을 내리면서 떠오른다 - 그리고 그 판결은 최고이다 - ; 그 까닭은 세계역사는 세계의 재판정이기 때문이다.’

프라이어(Freyer)는 매우 유사한 생각을 가졌지만, 그 생각을 더 솔직하게 표현한다 : ‘남자답고 대담한 음조가 역사에서 우세하다. 통제력을 가진 사람이 전리품을 얻는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끝장난다.. 표적을 적중시키기를 원하는 사람은 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개념들은, 궁극적으로, 헤라클리투스(Heraclitus)의 말의 반복일 뿐이다 : '전쟁은.. 어떤 사람은 신으로 다른 사람은 단지 사람으로 증명하여 후자는 노예로 전자는 주인으로 바꾸어놓는다... 전쟁은 정의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공격을 받는 전쟁과 우리가 이웃을 공격하는 전쟁 사이에 도덕적 차이점이 있을 수 없다 ; 유일하게 가능한 차이점은 성공이다. 주인 인종과 주인 도덕성에 관한 예언자이자 노예제도 : 그 생물학적 기초와 도덕적 정당성(Slavery : Its Biological Foundation and Moral Justification) (1923)의 저자인 F. 하이저(Haiser)는 이렇게 주장한다 :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면, 침략자가 있어야 한다.. ; 그렇다면, 왜 우리 자신이 침략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가 ?’ 그러나 심지어 이 교설도 (그 선구는 클라우제비츠[Clausewitz]의 공격은 항상 가장 효과적인 방어이다라는 유명한 교설이다) 헤겔적이다 ; 그 까닭은 헤겔이, 전쟁을 유발하는 위반사항에 관하여 말할 때, ‘정복전쟁’으로 바뀌는 ‘방어전쟁’을 위한 필요성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강력한 개성을 지닌 국가는, 자신이 완곡어법으로 ‘강렬한 활동’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된 때와 장소를 얻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흥분하는 경향이 더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다른 국가나 민족에 관련된 문제에서 역사적 성공을 유일한 심판관으로 설정함으로써, 그리고 공격과 방어 사이의 도덕적 구분 같은 것을 부수려는 시도로써, 양심의 도덕성에 반대하여 주장하는 일이 필요하게 된다. 헤겔은 자신이 ‘거짓 도덕성’에 반대하여 ‘진정한 도덕성 혹은 더 정확하게 사회적 미덕’이라고 부르는 것을 설정함으로써 이 일을 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가 ‘단지 형식적 정직’으로 또한 설명하는 ‘거짓 도덕성’이 개인적 양심의 도덕성인 반면, 이 ‘진정한 도덕성’은 역사주의가 조금 섞인 플라톤식 전체주의 도덕성이다. 헤겔은 이렇게 쓴다, ‘우리는 거짓 도덕성에 반하여 도덕성의 진정한 원칙을, 즉 더 정확히 말해서 사회적 미덕의 원칙을 훌륭하게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 그 까닭은 세계역사는 특성상 개인적인 도덕성의 - 개인의 양심, 개인의 특정 의지와 행동양식 - 기반보다 더 높은 기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정신의 절대적 목표가 요구하고 성취하는 것, 섭리가 행하는 것은 선악의 동기가 귀속되는 것을.. 초월한다... 결과적으로 고대의 권리와 질서를 확고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은 살아있는 정신과 신(神)에 의하여 버림받은 형식적인 정직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예를 들어 신약성경을 언급하는 도덕주의자들.) ‘위대한 사람의, 세계역사의 인물들의 행위는,.. 무관한 도덕적 주장과 충돌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개인적 미덕, 올바름, 겸손, 자비심, 그리고 인내의 연도(連禱 :선창자를 따라 회중이 제창하는 기도 형식 - 역자 주)는 그 사람들에게 대항하여 제시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역사는, 원칙적으로, 도덕성이.. 놓여있는 영역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마침내, 우리는 양심의 윤리학과 함께 1789년도의 (프랑스 혁명 - 역자 주) 이념 중 세 번째 이념의 변질, 우정의 변질, 혹은 헤겔은 말하는 바와 같이 자비심의 변질을 보게 된다. 이 플라톤-헤겔식의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은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유명한 역사학자 E. 마이어(Meyer)는, 예를 들어, ‘국가와 역사적 책임이라는 더 깊고 진정으로 도덕적인 요인을 무시한 채 시민의 도덕성이라는 기준으로 위대한 정치적 업적을 판결하는 고착되고 설교화하는 평가’에 대하여 말한다.

그런 견해가 유지되면, 선전적인 거짓말과 진실왜곡에 관한 모든 망설임은 사라져야만 하는데, 특히 국가권력을 증대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그렇다. 이 문제에 관한 헤겔의 접근방식은 다소 미묘하다 : 그는 이렇게 쓴다, ‘한 위대한 정신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지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해답은 국민은 자신들의 근본적 기본에 관하여 자신들이 속임을 당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거장 도덕주의자인 F. 하이저[Haiser]는 말한다 : ‘인종적 영혼이 명령하는 곳에는 오류가 일어날 수 없다’) 헤겔은 계속해서 말한다, ‘그러나 국민은, 이것을 자신이 알고 있는 방식에 관하여, 스스로를 속인다... 여론은 그러므로 경멸을 받을 만큼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여론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위대한 것을 이룩하는 첫 번째 조건이다... 그리고 위대한 업적은 분명히 결과적으로 인정받고 여론에 의하여 승인된다..’ 요컨대 중요시되는 것은 항상 성공이다. 거짓말이 성공했다면 국민은 자신들의 근본적 기본에 관하여 속임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d) 우리는 국가가, 특히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도덕성으로부터 제외가 된다는 것 - 국가는 초(超)도덕적이다 -을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쟁이란 도덕적 악이 아니고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라는 것을 들으리라고 기대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헤겔의 이론은 이 기대를 무시한다 ; 헤겔의 이론은 전쟁이란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암시한다. ‘전쟁에는 윤리적 요소가 있다’고 우리는 읽는다. ‘재산이나 생명과 같이 유한한 것은 우연적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필요성은 먼저 자연의 힘이라는 형태 하에서 나타나는데 그 까닭은 유한한 만물은 죽으며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윤리적 질서 속에서, 국가 안에서,.. 이 필요성은 자유의 작품인 윤리적 법률로 고양된다... 전쟁은.. 이제 권리..의 한 요소가 된다... 전쟁은 전쟁에 의하여 민족의 윤리적 건강이 보존되고 민족의 유한한 목표가 뿌리뽑힌다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쟁은 영원한 평화가 가져올 부패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 역사는 성공적인 전쟁이 내부의 불화를 어떻게 막았는지를 설명하는 단계를 보여준다... 이 민족들은, 내부갈등으로 찢어졌는데, 해외에서의 전쟁의 결과로 국내에서 평화를 얻는다.’ 이 구절은, 법철학에서 가져왔는데, ‘번영의 위험’에 관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드러낸다 ; 동시에, 이 구절은 도덕을 건강과, 윤리를 정치적 위생학과, 권리를 힘과 동일시하는 훌륭한 사례이다; 이것은, 이제 밝혀지는 바와 같이, 헤겔의 법철학에서 인용한 다음 구절이 보여주는 것처럼 미덕과 힘을 동일시하게 된다. (이 구절은 이미 인용한 구절 바로 뒤에 나타나서 민족주의를 사람이 열등의식을 극복하는 한 방법으로 다루고, 그리하여 심지어 전쟁도 그 고귀한 목적을 위한 합당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암시한다.) 동시에, 사악하고 늙은 부자 국가에 대한 젊고 가난한 국가의 도덕적 침략이라는 현대적 이론이 분명하게 함축된다. 헤겔은 이렇게 쓴다, ‘민족은 민족의 웅대한 목적을 실현하는 데 몰두하는 동안 도덕적이고 올바르며 활기차다... 그러나 이것이 달성되면, 민족정신으로 보여지던 활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민족은 전쟁과 평화 속에서 아직도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지만 살아있는 본질적 영혼 자체는 그 활동을 중지했다고 일컬어질 것이다... 민족은 성인에서 노년기로 옮겨갈 때 개인과 동일한 종류의 삶을 영위한다... 이 단순한 관습적 삶은 (시계는 태엽이 감기고 스스로 간다) 자연사를 불러오는 삶이다... 그리하여 개인은 사멸하고, 그리하여 민족도 자연사로 인하여 사멸한다... 민족은 본질적으로 자연사를 했을 때 격렬한 죽음을 죽을 따름이다.’ (마지막 말은 쇠망 전통에 속한다.)

전쟁에 관한 헤겔의 생각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그는 심지어 기계화의 도덕적 귀결을 시각화한다 ; 혹은 더 정확하게, 그는 기계적인 전쟁 속에서 전체주의나 집단주의의 윤리적 정신의 결과를 본다 : ‘여러 종류의 용감성이 있다. 동물이나 강도의 용기, 명예감으로부터 나오는 용기, 기사도적 용맹은 용기의 진정한 형태가 아직 아니다. 문명 국가에서는 진정한 용기란 자신을 통째로 국가에 봉사하는 데 주어 개인이란 다수 중에서 한 명으로만 여겨지도록 하는 각오에 달려있다.’ (국민 개병제에 대한 언급.) ‘개인적 용기는 중요하지 않다 ; 중요한 면은 보편적인 것에 자신을 종속시키는 데 달려있다. 이 고등 형태로 인하여.. 용기는 더 기계적으로 보인다... 적대감은 분리된 개별인간에게 대한 것이 아니라 적대적인 전체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총력전 원칙을 예상하게 된다) ; ‘.. 개인적인 용기는 비개인적으로 보인다. 이 원칙은 대포의 발명을 초래했다 ; 그것은 우연한 발명이 아니다..’ 비슷한 생각으로, 헤겔은 화약의 발명에 관하여 말한다 : ‘인류에게는 화약이 필요해서 화약은 즉시 출현했다.’ (섭리는 얼마나 친절한가 !)

그러므로 1911년에 철학자 E. 카우프만(Kaufmann)이 칸트가 주장하는 자유인의 공동체라는 이상에 반대하여 주장을 펼 때 순전히 헤겔주의였다 :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승리하는 전쟁이 사회적 이상이다.. 국가가 자신의 진정한 특징을 보여주는 것은 전쟁에서이다’ ; 혹은 유명한 ‘군사과학자’인 E. 반스(Banse)가 1933년에 이렇게 썼을 때 : ‘전쟁은 한 세대의 모든 정신적 에너지를.. 최고도로 강화한 것을 의미한다.. 전쟁은 국민의 정신력의 최대 노력을 의미한다.. 정신과 행동은 함께 연결되었다. 정말로, 전쟁은 인간의 영혼이 최고의 높이에서 출현할 기초를 제공한다... 인종의 .. 의지가 전쟁에서와 같이 그렇게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루덴도르프(Ludendorff) 장군은 1935년에 말을 이어간다 : ‘이른바 평화시에는, 정치란.. 총력전에 대비하는 한 의미를 가질 뿐이다.’ 그리하여 그는 유명한 본질주의 철학자 막스 쉘러(Max Scheler)가 1915년에 말한 개념을 더 정확하게 공식화할 따름이다 : ‘전쟁은 가장 실제적으로 성장하고 발흥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 전쟁은 정치를 의미한다.’ 동일한 헤겔의 교설이 프라이어(Freyer)에 의하여 1935년에 다시 공식화된다 : ‘국가는, 존재하는 첫 순간부터, 전쟁 분야에 자리를 잡는다... 전쟁은 국가행위의 가장 완벽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국가가 둘러 싸여있는 바로 그 요소이다 ; 지연되고, 중단되고, 위장되고, 회피된 전쟁도 물론 이 용어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대담한 결론은 F. 렌츠(Lenz)에 의하여 내려지는데, 그는 자신의 저서 가치원리로서의 인종(The Race as the Principle of Value)에서 잠정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 ‘그러나 인류가 도덕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결국 잘못된 편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는, 물론, 다음과 같이 대답함으로써 이 터무니없는 제안을 즉시 취소한다 : ‘우리는 물론 인류가 전쟁을 저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인류를 저주하는 것은 전쟁이다.’ 이 생각은 E. 융(Jung)의 역사주의와 결합되어 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인도주의 즉, 인류에 대한생각은.. 역사를 규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래 반(反)인도주의적 주장을 한 사람은 쇼펜하우어에 의하여 ‘허풍선이’로 불렸던 헤겔의 선배인 피히테였다. ‘인류’라는 단어에 대하여 말하면서 피히테는 이렇게 썼다 : ‘만약 독일인에게 라틴어인 “친절함”이라는 말 대신에 그 합당한 번역인 “남성 성인임”을 제시했다면, 독일인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그것은 결국 야수라는 것 대신에 사람이라는 것도 아니다 !” (이 문장을 서울대 이명현 교수는 “그것은 결국 야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이외에 별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라고 해석했다. - 역자 주) 이것은 로마인들에게는 불가능했을 방식으로, 독일인이 말했을 방식이다. 그 까닭은 독일어에는, ‘성인 남성임’은 단지 현상적 개념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서 ‘manhood'는 “manhood"로 표기함이 옳다. 그 까닭은 이 문장에서 작은 따옴표 ‘ ’가 큰따옴표 역할을 하면서 피히테의 말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역자 주) ; 그 말은 로마인들 사이에서 초현상적 개념이 되었던 것처럼 초현상적 개념이 되지 못했다. 이 이국적 로마의 상징’을 (다시 말해서, ‘친절함’이라는 말) ‘교활하게 독일인들의 말로 밀수입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하여 독일인들의 윤리적 기준을 분명히 타락시킬 것이다..’ 피히테의 교설은 슈펭글러(Spengler)에 의하여 반복되는데 그는 이렇게 썼다 : ‘남성 성인임은 동물학적 표현이거나 빈 말이다’ ; 그리고 로젠버그(Rosenberg)에 의해서도 반복되는데 그는, ‘사람의 내부 생활은 이국적 동기가 그의 생각에 각인될 때.. 타락하게 된다 : 구원, 인도주의, 그리고 인류문화’라고 쓴다.

콜나이(Kolnai)는, 그가 내놓은 많은 자료가 없었더라면 내가 얻을 수 없었던 그 자료에 관하여 나는 크게 빚을 지고 있는데, 매우 두드러지게 말한다 : ‘우리 모두는.. 정부와 사회조직의 이성적이고 개화된 방식을 지지하는데.. 전쟁은 본질적으로 악이라는 데 동의한다...’ 우리들 대부분의 의견에서 (평화주의자들을 제외하고), 특정 상황에서, 전쟁은 필요악이 될 것이라고 부연하면서 그는 계속 말을 잇는다 : ‘비록 영속적이거나 잦은 전쟁에 관한 열망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 할지라도 민족주의적 견해는 다르다. 민족주의적 견해는, 특별한 축제라는 드문 때를 위하여 보관된 매우 독한 포도주처럼, 위험한 이익이라 할지라도 전쟁 속에서 악보다는 선을 본다.’ 전쟁은 흔하고 풍부한 악이 아니라 드물지만 귀중한 선이다 : - 이것은 헤겔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요약한다.

헤겔의 공로 중 하나는 운명에 관한 헤라클리투스의 생각을 복원한 것이다 ; 그리고 그는, 인간적 혹은 민족적 본질의 의미를 표현하는, 운명에 관한 이 훌륭한 그리스의 생각은, 자연에 관해서든 혹은 도덕에 관해서든 보편적 법칙에 관한 유명론적(唯名論的) 유태인의 개념과 반대라고 주장했다. 운명에 관한 본질주의적 교설은 (앞장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민족의 본질은 단지 그 민족의 역사에서 드러날 수 있다는 견해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 그 교설은 비활동을 고취한다는 의미에서 ‘운명론적’은 아니다 ; ‘운명(destiny)’은 ‘미리 정해진 운명(predestination)'과 동일시 될 수 없다. 그 반대는 가능하다. 자신, 자신의 실제 본질, 자신의 가장 깊은 영혼,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는 (이성보다는 의지와 열정) 사람의 운명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헤겔이 이 이론을 확대한 이래, 운명에 관한 개념은 총애하는 강박관념이 되었는데, 말하자면, 자유에 대항하는 반란의 강박관념이 되었다. 콜나이(Kolnai)는 인종주의와 (사람을 자신의 인종의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은 운명이다) 자유에 대한 적대감 사이의 연관성을 올바르게 강조한다 : 콜나이는 말한다, ‘인종에 관한 원칙은, 인간자유의 완전부정과 평등권의 부인과 인류가 직면한 도전을, 구체화하고 표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인종주의는 ‘운명으로써 자유를, 통제와 논쟁을 초월하는 강력한 피의 충동으로써 개인적인 의식을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는 올바르게 주장한다. 심지어 이 경향은 평소와 같이 다소 모호한 방식이라 할지라도 헤겔에 의하여 표현된다 : 헤겔은 이렇게 쓴다, ‘소위 원칙, 목적, 운명, 혹은 정신의 성질이나 개념이라는 것은 숨겨지고, 미개발된 본질인데, 그런 상태로서 - 본질적으로 아무리 진실하다 할지라도 - 완전히 실제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들에게.. 실재를 부여하는.. 동력은 인간의 욕구, 본능, 경향 그리고 열정이다.’ 전인교육(全人敎育)의 현대 철학자인 E. 크리크(Krieck)는 운명주의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 ‘개인이 지닌 모든 이성적 의지와 활동은 자신의 일상생활에 한정된다 ; 이 범위를 벗어나면 그는 운명의 우월한 능력에 잡히는 한 더 높은 운명과 업적을 성취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가 다음과 같이 이어 말할 때 마치 개인적인 경험처럼 들린다 : ‘사람은 자신의 이성적 계획을 통하여 창조적이고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의 위와 아래서 작동하는, 자신의 자아에서 출발하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통과하여 길을 휩쓸고 움직여 가는 힘을 통해서만 그런 사람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 철학자가 ‘“객관적인” 즉, “자유로운” 과학의 시대’ 뿐만 아니라 ‘순수 이성’의 시대 또한 ‘끝났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가장 친숙한 개인적 경험에 관한 부당한 일반화이다.)

운명에 관한 개념과 함께, 그 짝인 명성에 관한 개념이 또한 헤겔에 의하여 부활한다 : ‘개인은.. 도구이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얻는 것은.. (그들과 독립적으로 준비되고 약속된) 현실적 사업에서 그들이 얻는 개인적 몫을 통하여.. 명성인데, 명성은 개인이 가지는 보상이다.’ 그리고 새로이 이교화된 기독교 포교자인 스타펠(Stapel)은 즉각 되뇐다 : ‘모든 위대한 행위는 명성이나 명예를 위하여 행하여졌다.’ 그러나 이 ‘기독교’ 도덕주의자는 헤겔보다 훨씬 더 극단적이다 : ‘형이상학적 명예는 하나의 진정한 도덕성이다’라고 그는 가르치며 이 하나의 진정한 도덕성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을 따라서 이렇게 적는다 : ‘명예를 의미하는 것과 같은 그런 행위를 하라 !’

(e) 그러나 모든 사람이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명예라는 종교는 반(反)평등주의를 의미한다 - 그 종교는 ‘위대한 사람’에 대한 종교를 의미한다. 현대 인종주의에는 따라서 ‘영혼들 사이에 평등도 없고 사람들 사이에 평등도 없다’ (로젠버그). 그리하여 자유에 대항하는 지속적인 반란의 무기고에서, 혹은 헤겔이 이름짓는 바와 같이, 세계역사적 개성이라는 이념으로부터 지도자 원칙을 채택하는 데 장애물이 없다. 이 이념은 헤겔이 가장 선호하는 주제의 하나이다. ‘국민을 속이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지’라는 불경스러운 ‘질문’을 토론하면서 (위를 참조),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여론에서는 모든 것이 거짓인 동시에 진실이기도 하지만 여론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위대한 사람이 할 일이다. 그 시대의 위대한 사람은 그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는 사람이다 ; 그 시대에 그 시대가 의지하는 것을 말하는 사람 ; 그리고 그 시대의 의지를 실천하는 사람. 그는 자신의 시대의 내부 정신과 본질에 따라서 행동하여 그 정신과 본질을 실현한다. 그리고 여론을 무시하는 방법을, 여론이 여기 저기서 드러날 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위대한 것을 이룩할 수 없을 것이다.’ 선전담당자로서의 지도자 - 위대한 독재자 - 에 대한 이 탁월한 묘사는 위대한 사람의 위대함에 대한 정교한 신화와 연결되어 있는데, 그 신화는 그가 역사 속의 정신의 최상의 도구라는 데 의존한다. ‘역사적 인간 - 세계역사적 인물’에 관한 토론에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 ‘그들은 실용적이고 정치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사고하는 사람들로, 시대의 욕구에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 발전을 위하여 완숙된 것에 통찰력을... 세계역사적 인물은 - 시대의 영웅 - 그러므로 그 시대의 분명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 그들의 행위, 그들의 말은 그 시대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다... 사건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들이었다 ; 그들로부터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정책을 배우고 승인하거나 적어도 묵인한다. 그 까닭은 역사에서 이 신선한 조치를 취한 정신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깊은 영혼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위대한 사람을 일깨운 무의식 상태 속에서... 그들의 동료는, 그러므로, 저 영혼지도자를 추종하는데, 그 까닭은 그 지도자들이 그렇게 구현된 그들 내부 영혼의 억제할 수 없는 힘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은 커다란 이해력과 지혜를 지닌 사람일뿐만 아니라 위대한 열정을 지닌 사람이기도 하다 - 물론 무엇보다도 정치적 열정과 야망을 지닌. 그 사람은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서 열정을 일깨울 수 있다. ‘위대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을 만족시키는 목적을 구성했다... 그들은 위대한 것을 의도했고 성취했기 때문에 위대한 인물이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것도 열정 없이 이룩되지 않았다... 이것은 이성의 교활함이라고 불릴는지도 모르겠다 - 위대한 것이 자신을 위하여 열정을 작동시킨다는 것... 열정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완전히 적합한 말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여기서, 의지와 인격의 전체 에너지가 그 성취에 바쳐진다는 조건과 함께, 사적인 이해관계로부터 나오는 인간행동만을 의미한다 - 특히, 또는 여러분이 원한다면 스스로 구하는 의도... 열정, 사적인 목표, 그리고 이기적인 욕망의 만족은.. 행동의 매우 효과적인 근원이다. 그것들의 힘은 그것들이 정의와 도덕성이 자신에게 부과할 제한을 하나도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놓여있다; 그리고 이 자연스런 충동은 질서라는 법과 도덕성인 질서와 자기억제에 주의하는 인위적이고 피곤한 원리보다 동료들에게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놓여있다.’ 루소(Rousseau)에서 시작하여 계속, 낭만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이란 주로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인도주의자들이 목표로서 이성에 매달린 반면, 이성에 대항하는 반란은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위하여 인간의 비이성을 이렇게 심리적으로 통찰하여 이용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파시스트의 호소는 우리들이 지닌 열정에 대한, 우리가 지닌 집단주의적 황당한 욕구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인간’에 대한 것이다. 방금 인용한 헤겔의 말을 채택하면, 이 호소는 이성에 대항하는 반란의 교활함이라고 불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교활함의 최고봉은 헤겔의 이 대담한 변증법적 왜곡 속에서 헤겔에 의하여 이룩되었다. 이성주의에 입에 발린 말을 하면서, 자신의 전후 어떤 사람보다도 ‘이성’에 관하여 더 시끄럽게 말하면서, 그는 비이성주의에서 끝을 맺는다 ; 열정뿐만 아니라 잔인한 힘을 신격화하는 데서 끝을 맺는다 : 헤겔은 쓴다, ‘이 도덕적 전체가’ (다시 말해서 국가) ‘존재해야 하는 것은 이성의 절대적인 이익이다 ; 그리고 - 그들이 아무리 잔인했다 할지라도 - 이곳에 국가의 설립자들인 영웅들의 정당성과 장점이 놓여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다른 위대하고 심지어 성스러운 이해관계를 무심하게 다룰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강력한 형태는 많은 죄없는 꽃을 짓밟아야 한다 ; 그것은 자신의 진로에 놓여있는 물체를 산산조각 내어야 한다.’

(f) 이성적 동물이라기 보다는 영웅적인 동물로서의 존재인 인간에 관한 개념은 이성에 대항하는 반란으로 창안된 것이 아니다 ; 그 개념은 전형적으로 종족주의적 이상이다. 우리는 영웅적 인간에 관한 이 이상과 영웅적 행동에 대한 더 합리적인 존경을 구분해야 한다. 영웅적 행동은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찬양 받을 만하다 ; 그러나 우리가 보내는 찬양은, 내가 생각하기에, 영웅이 헌신하는 대의명분을 우리가 평가하는 데 주로 매달려야 한다. 폭력행위 속의 영웅적 요소는, 내가 생각하기에, 평가를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스코트 대장과 그의 동료들을 찬양해야 하고, 가능하면 훨씬 더, X선이나 황열병을 연구한 영웅들을 찬양해야 한다; 그리고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물론.

영웅적인 인간에 대한 종족적 이상은, 특히 그 파시스트적 형태 속에서, 다른 견해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 이상은 우리들 대부분에게 영웅적 행동을 찬양 가능하도록 만드는 저 일들을 - 문명을 증진시키는 것과 같은 그런 일들 - 직접적으로 공격한다. 그 까닭은 그 이상이 시민 생활 자체의 개념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 시민생활은 그 생활이 간직하고 있는 안전 개념 때문에 얄팍하고 물질주의적이라고 비난을 받는다. 위험하게 살아라 !가 종족적 이상의 명령이다 ; 이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당신이 떠맡는 대의명분이란 부차적이다 ; 혹은 W. 베스트(Best)가 말하는 바와 같이 : ‘그런 상태로 훌륭한 투쟁이란, “훌륭한 대의명분”이 아니고.. 국면을 결정짓는 일이다... 어떤 목적을 위하여가 아니고 어떻게 우리가 싸우는가가 중요하다.’ 다시 우리는 이 주장이 헤겔의 생각을 상술한 것임을 발견한다 : ‘평화시에, 시민의 생활은 더 확대된다, 모든 분야는 보호되고.. 마침내 모든 사람이 정체된다... 강단으로부터 세속적인 것의 위험과 허영과 불안정이 설교되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은 적어도 자신의 재산에 성공적으로 매달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재산과 생명을.. 우연적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안이 충실한 활동을 보이도록 하라’고 헤겔은 쓴다. 다른 곳에서, 헤겔은 자신이 ‘단지 관습적인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음울한 그림을 그린다 ; 그는 그 삶으로써 문명화된 사회의 평범한 삶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듯이 보인다 : ‘관습이란 반대가 없는 행위인데.. 그 속에서 충만이나 열정은 불가능하다 - 자신을 열정적으로 목표에 던지기를 중단한 외적이고 감각적인’ (다시 말해서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물질주의적’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것) ‘존재, 지성이나 활기는 없는 존재만이 존재한다.’ 헤겔은, 항상 자신이 주장하는 역사주의에 충실한데, 자신의 반(反)실용주의적 자세를 (‘번영의 위험’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용적 비평과 구별하여) 자신의 역사 해석에 기초한다 : ‘세계역사는 행복의 극장이 아니다. 행복의 기간은 그 역사 속에서 공간인데, 그 까닭은 그 기간이 화합의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유주의, 자유와 이성은 평소처럼 헤겔의 공격 목표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원한다 !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원한다 ! 우리는 우리의 투쟁을 원한다 ! 우리는 우리의 쇠사슬을 원한다 !는 신경질적인 구호가 헤겔철학의 구조물을 통하여, 닫힌사회와 자유에 대항하는 반란의 보루를 통하여 메아리친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라는 자신의 이론에 기초를 둔 헤겔의, 말하자면, 공식적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현대 인종적 철학자들 중에서 더 지성적인 철학자에게 매우 특징적인 비관론을 추적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 아마도 이전 철학자들 (라가르드[Lagarde], 트라이츠케[Treitschke], 모엘러 반 덴 브루크[Moeller van den Bruck]처럼)에게 특징적이라기 보다는 유명한 역사주의자인 슈펭글러(Spengler)의 후배들에게 특징적인. 슈펭글러의 생물학적 전체주의, 직감적 이해력, 집단정신과 시대정신도, 심지어 그의 낭만주의도 이 점쟁이가 (슈펭글러 - 역자 주) 매우 비관적인 관점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을 도와주지 못한다 (저자는 낭만주의를 매우 경계한다. 낭만주의는 쉽게 이성을 배격하고 인간의 동물적 본능으로 회귀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 역자 주). 미래를 예견하고 미래의 도래에 매체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남겨진 ‘음울한’ 행동주의 속에서 철저한 절망의 요소가 분명히 드러난다. 사물에 대한 이 음울한 관점이 ‘기독교’ 파벌뿐만 아니라 인종주의자들인 ‘무신론자’ 파벌 모두에 의하여 공유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흥미롭다.

스타펠(Stapel)은 후자에 속하는데 (예를 들어 고가르텐[Gogarten] 같은 다른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쓴다 : ‘사람은 자신의 총체성에서 원죄의 지배를 받는다.. 기독교도는 자신이 죄를 벗어나서 산다는 것이 엄밀하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는 도덕적으로 세밀하게 따지는 일을 피한다... 윤리화된 기독교는 완전히 반(反)기독교이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멸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세상은 파멸될 운명이다. 그러므로 운명에 따라서 이 세상이 파멸되기를 ! 자신이 세상을 낫게 말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등” 도덕성을 창조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항하여 웃기는 쓸데없는 반란을 시작하고 있다... 하느님의 희망은 축복 받은 자들이 지닌 행복에 대한 기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 하느님의 희망은 복종과 전우애를 의미한다.’ (종족으로의 복귀.) ‘만약 신이 자신이 창조한 사람에게 지옥에 가라고 명령한다면, 신에게 맹세한 추종자는.. 따라서 지옥으로 갈 것이다.. 만약 신이 그 추종자에게 영원한 고통을 나누어준다면 이 고통도 역시 인내되어야 한다... 신앙은 승리에 대한 또 다른 말일뿐이다. 주님이 요구하는 것은 승리이다..’

매우 유산한 정신이 현대 독일의 대표적 철학자 두 명인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와 야스퍼스(Jaspers)의 저술 속에 살아있는데 그 두 사람은 원래 본질주의 철학자 후설(Husserl)과 쉘러(Scheler)를 추종하던 사람이다. 하이데거는 헤겔의 ()의 철학을 부활시킴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 헤겔은 ‘순수한 존재’와 ‘순수한 무(無)’는 동일하다는 이론을 ‘세웠’다 ; 헤겔은 만약 당신이 순수한 존재에 대한 개념을 생각해내려면, 그 개념으로부터 모든 특정한 ‘대상에 대한 결정’을 제거해야 하므로 헤겔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무(無)가 남는다’. (이 헤라클리투스식 방식은 모든 종류의 아름다운 동일시, 즉 순수한 부(富)와 순수한 가난의, 순수한 주인상태와 순수한 노예상태의, 순수한 아리안주의와 순수한 유대주의의 동일시를 증명하는 데 사용될지도 모른다.) 하이데거는 교묘하게 헤겔의 무(無)의 이론을 실용적인 삶의 철학, 즉 ‘존재’의 철학에 적용한다. 삶 즉, 존재는 무(無)를 이해함으로써만 이해될 수 있다. 그의 저선 형이상학은 무엇인가 ?(What is Metaphysics ?)에서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한다 : ‘탐구는 존재하는 것이나 아니면 무(無)에서 행하여져야 한다 ; .. 존재한 것만에서, 그리고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는 무(無)에서.’ 무(無)에 대한 탐구는 (‘어디에서 우리는 무[無]를 찾을 수 있는가 ? 어디에서 우리는 무[無]를 발견할 수 있는가?’) ‘우리는 무(無)를 안다는 사실에 의하여 가능해진다 ; 우리는 공포를 통하여 무(無)를 안다 : ‘공포는 무(無)를 드러낸다.’

공포 ; 무(無)에 대한 공포 ; 죽음에 대한 고민 ; 이것들은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존재의 철학의 기본적 범주이다 ; 그 진짜 의미가 ‘죽음을 향하여 방향을 잡고, 존재 속으로 억눌려버린’ 삶의 철학. 인간의 존재는 ‘강철의 폭풍우’로서 해설될 수 있다 ; 한 인간의 ‘확고한 존재’는 ‘완전한 자의식과 고민 속에서.. 열정적으로 자유롭게 죽을 수 있는 자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음울한 고백에는 위로되는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은 하이데거의 죽으려는 열정에 의하여 완전히 압도당할 필요는 없다. 그 까닭은 권력에 대한 의지와 살려는 의지가 그의 스승 헤겔과 비교하여 하이데거 안에서도 결코 덜 발달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1933년에 이렇게 쓴다, ‘본질에 대한 독일 대학의 의지는 과학에 대한 의지이다 ; 그것은 자신의 국가 안에서 자신을 경험하는 민족으로서 독일민족의 역사적-정신적 임무에 대한 의지이다. 과학과 독일의 운명은 힘을 얻어야 하는데, 특히 본질적인 의지에서 그러하다.’ 이 구절은, 독창성이나 명료성의 기념비는 아니라 할지라도, 분명히 자신의 스승들에 대한 충성심이다 ; 그리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하이데거의 ‘존재의 철학’의 심오함을 믿는 저 하이데거 찬양자들에게 쇼펜하우어의 말을 상기시켜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 ‘진실은 단지 부산물로서, 또한 밝혀질 것이라고 누가 실제로 믿을 수 있는가 ?’ 그리고 인용한 하이데거의 마지막 말을 고찰하면, 하이데거 찬양자들은 부정직한 수호자에게 주는 쇼펜하우어의 충고가 독일 안팎에서 많은 교육자들에 의하여 장래가 유망한 많은 젊은이들에게 성공적으로 주어지지 않았든 지를 자문해야 한다. 나는 다음 구절을 염두에 두고 있다 : ‘젊은이의 재기를 둔화시켜 그의 두뇌가 어떤 종류의 사고도 불가능하도록 만들려는 의도라면, 헤겔을 읽으라고 그에게 주는 것보다 더 잘하는 일은 없다. 그 까닭은 말을 서로 없애고 부정하는 이 괴물스러운 말의 축적은 그 말들과 관련된 무엇이든지 생각하려는 헛된 시도로써 생각으로 하여금 생각을 괴롭히도록 몰아가서, 마침내 생각은 완전히 탈진하여 무너진다. 그리하여 사고능력이 완전히 파괴되어 마침내 텅비고 공허한 장광설을 사실적인 사상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의 계획과 비교하여 피보호자가 너무 영리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보호자는 천진스럽게 헤겔을 읽을 것을 제안하여 자신의 불행을 예방할는지도 모르겠다.’

야스퍼스(Jaspers)는 헤겔보다 가능하면 더 솔직하게 자신의 염세주의적 경향을 선언한다. 여러분이 무(無)와, 즉 멸절(滅絶)과 마주칠 때만 여러분은 존재를 경험하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야스퍼스는 가르친다. 본질적 의미 속에서 살기 위하여, 사람은 위기 속에서 살아야 한다. 삶을 맛보기 위해서 사람은 위험을 무릅쓸 뿐만 아니라, 잃기도 해야 한다 ! - 야스퍼스는 변화와 운명에 대한 역사주의적 개념을 가장 음울한 극단까지 위험하게 몰고 간다. 만물은 분명히 사멸한다 ; 만물은 실패로 끝난다 : 이런 방식으로 발전에 관한 역사주의적 법칙이, 그가 지녔던 환멸에서 깨어난 지성에, 드러난다. 그러나 파멸을 직시하라 - 그러면 여러분은 삶의 짜릿함을 얻을 것이다 ! ‘한계적 상황’ 속에서만, 존재와 무(無) 사이의 가장자리에서만, 우리는 실제로 살아간다. 삶의 환희는 항상 삶의 이해가능성의 끝과 일치한다, 특히 신체의 극단적 상황과 일치하며 무엇보다도 신체적 위험과 일치한다. 여러분은 실패를 맛보지 않고는 삶을 맛볼 수 없다 !

이것은 도박꾼의 철학이자 조직폭력배의 철학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충동과 공포의, 승리하거나 아니면 사냥 당한 금수’ (콜나이)의 이 악마적 ‘종교’, 단어의 가장 완벽한 의미에서 이 절대적인 염세주의는 대중적인 신조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이성과, 그리고 그 이성과 함께 자신들의 인간성을 포기한 내밀한 지식인 무리들의 특징적인 고백이다.

또 다른 독일, 자신의 두뇌가 고등교육이라는 파멸적 체계에 의하여 독살되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독일이 있다. 그러나 이 ‘다른’ 독일은 물론 독일이 가졌던 사상가들의 독일이 아니었다. 독일에는 몇 명의 ‘다른’ 사상가들이 (그들 중 최고는 칸트) 있었다 ; 그러나, 금방 끝난 조사는 고무적이지 않고, 나는 콜나이의 비평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 ‘아마도 독일문화에 대한 우리들의 절망을 결국, 프러시아의 사상가들 외에도 프러시아 장군들로 구성된 또 다른 독일이 있다는 고찰로써 위로한다는 것은 역설이.. 아니다.’

VI

나는 헤겔의 역사주의가 현대 전체주의가 지닌 철학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 일치는 충분히 분명하게 이해된 적이 없다. 헤겔의 역사주의는 여러 무리의 지식인들, 심지어 솔직한 ‘반(反)파시스트’와 ‘좌파’ 무리들의 언어가 되었다. 헤겔의 역사주의는 그 사람들의 지적 분위기의 많은 부분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숨쉬는 공기보다 더 감지되지도 않고 그 역사주의의 가공할 거짓말은 그들이 숨쉬는 공기보다 더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몇 명의 인종 철학자들은 그들이 헤겔에게 진 빚을 완전히 의식하고 있다. 한 가지 사례는 H. O. 지글러(Ziegler)인데, 그는 자신의 연구서인 근대민족(The Modern Nation)에서 ‘인격으로 이해되는 집단적 정신’에 대한 헤겔과 (그리고 A. 무엘러[Mueller])의 개념 도입을 ‘민족에 관한 철학에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으로 옳게 묘사한다. 헤겔철학의 중요성에 관한 이 인식의 또 다른 예화는, 아마도 특히 영국 독자들에게 흥미를 줄 것인데, 영국철학에 관한 최근의 독일역사에서 가해진 평가에서 (1935년, R. 메츠[Metz]에 의하여) 발견될 수 있다. T. H. 그린(Green)이라는 사람의 탁월함이 여기서 비판을 받는데, 물론 그가 헤겔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영국인들의 전형적인 개인주의에 다시 빠진다... 그는 헤겔이 도출한 그런 급진적인 귀결로부터 물러서기’ 때문이다 (저자는 개인주의를 박애주의와 동일시한다. 즉, 개인주의는 나를 포함한 모든 개인을 중시하는 사상으로 이기주의가 결단코 아니며 집단주의나 전체주의에 반대가 되는 개념이다. 그리고 ‘급진적 귀결’은 영국적 사상이나 문화와 거리가 멀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저자는 영국적 전통이란 이성적 합리주의라고 보고 있으며 따라서 점진적 개혁을 지향한다고 단정한다 - 역자 주). 홉하우스(Hobhouse)는, 헤겔철학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싸웠는데, ‘부르주아 자유주의가 국가에 의하여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국가의 전능(全能)에 대항하여 부르주아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전형적 형태’를 대표한다고 경멸적으로 묘사된다 - 어떤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느낌. 보상케(Bosanquet)는 물론 그가 지닌 순수한 헤겔철학 때문에 찬사를 듣는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대부분의 영국의 평가자들에 의하여 완전히 진지하게 수용된다는 것이다.

이 얄팍한 헛소리에 (이것을 헤겔도 자신의 철학을 ‘최고의 깊이’를 가진 것으로 묘사할 때 정확하게 이해했다) 대항하는 쇼펜하우어의 싸움을 계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동시에 얼마나 시급한지를 내가 보여주고 싶다는 주요 이유 때문에 나는 이 사실을 언급한다. 적어도 새로운 세대는 아마도 우리 문명사에서 가장 큰 지적(知的) 사기극으로부터, 그리고 그 세대의 적들과의 싸움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마도 새로운 세대는 쇼펜하우어의 기대에 따라서 살 것인데, 쇼펜하우어는 1840년에 ‘이 거대한 황당함은 후세에게 야유의 무한한 근원을 제공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지금까지 이 위대한 염세주의자는 후세에 관하여 격렬한 낙관주의자로 밝혀졌다.) 헤겔의 광대놀음은 충분히 해독을 끼쳤다. 우리는 그 광대놀이를 중지시켜야 한다. 우리는 말을 해야 한다 - 불행하게도 아무런 성과도 없이, 100년 전에 분명하게 폭로되었던 이 추잡한 것에 손을 대어 우리 자신이 더러워지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너무 많은 철학자들이 쇼펜하우어가 끊임없이 반복했던 경고를 무시했다 ; 그 철학자들은 쇼펜하우어의 경고를 자신들의 위험을 보고 무시하지 않고 (그들은 나쁘게 생활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가르치는 사람들의 위험과 동시에 인류의 위험을 보고도 무시했다.

100년 전에 헤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던 반(反)민족주의자였던 쇼펜하우어에게 내가 마지막 말을 맡긴다면 이 장에 걸맞은 결론으로 보인다 : ‘그는, 철학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독일문학에 파멸적인, 즉 더 엄밀하게 말해서, 혼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또한 말할 수 있는 바, 질병과 같은 영향력을 끼쳤다. 이 영향력과 강력하게 그리고 상시적으로 싸우는 것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수 있는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 그 까닭은 만약 우리가 침묵한다면, 누가 말을 할 것인가 ?이기 때문이다’

-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제 2권 헤겔과 마르크스 ”, 칼 포퍼 -

CHAPTER 12: HEGEL AND THE NEW TRIBALISM

The philosophy of Hegel, then, was.. a scrutiny

of thought so profound that it was for the most

part unintelligible...

J. H. STIRLING

I

Hegel, the source of all contemporary historicism, was a direct follower of Heraclitus, Plato, and Aristotle. Hegel achieved the most miraculous things. A master logician, it was child's play for his powerful dialectical methods to draw real physical rabbits out of purely metaphysical silk-hats. Thus, starting from Plato's Timaeus and its number-mysticism, Hegel succeeded in 'proving' by purely philosophical methods (114 years after Newton's Principia) that the planets must move according to Kepler's laws. He even accomplished the deduction of the actual position of the planets, thereby proving that no planet could be situated between Mars and Jupiter (unfortunately, it had escaped his notice that such a planet had been discovered a few months earlier). Similarly, he proved that magnetizing iron means increasing its weight, that Newton's theories of inertia and of gravity contradict each other (of course, he could not foresee that Einstein would show the identity of inert and gravitating mass), and many other things of this kind. That such a surprisingly powerful philosophical method was taken seriously can be only partially explained by the backwardness of German natural science in those days. For the truth is, I think, that it was not at first taken really seriously by serious men (such as Schopenhauer, or J. F. Fries), not at any rate by those scientists who, like Democritus , 'would rather find a single causal law than be the king of Persia'. Hegel's fame was made by those who prefer a quick initiation into the deeper secrets of this world to the laborious technicalities of a science which, after all, may only disappoint them by its lack of power to unveil all mysteries. For they soon found out that nothing could be applied with such ease to any problem whatsoever, and at the same time with such impressive (though only apparent) difficulty, and with such quick and sure but imposing success, nothing could be used as cheaply and with so little scientific training and knowledge, and nothing would give such a spectacular scientific air, as did Hegelian dialectics, the mystery method that replaced 'barren formal logic'. Hegel's success was the beginning of the 'age of dishonesty' (as Schopenhauer described the period of German Idealism) and of the 'age of irresponsibility' (as K. Heiden characterizes the age of modern totalitarianism) ; first of intellectual, and later, as one of its consequences, of moral irresponsibility ; of a new age controlled by the magic of high-sounding words, and by the power of jargon.

In order to discourage the reader beforehand from taking Hegel's bombastic and mystifying cant too seriously, I shall quote some of the amazing details which he discovered about sound, and especially about the relations between the sound and heat. I have tried hard to translate this gibberish from Hegel's Philosophy of Nature as faithfully as possible ; he writes : Ԥ302. Sound is the change in the specific condition of segregation of the material parts, and in the negation of this condition ;- merely an abstract or an ideal ideality, as it were, of that specification. But this change, accordingly, is itself immediately the negation of the material specific subsistence ; which is, therefore, real ideality of specific gravity and cohesion, i.e. -heat. The heating up of sounding bodies, just as of beaten or rubbed ones, is the appearance of heat, originating conceptually together with sound.' There were some who still believe in Hegel's sincerity, or who still doubt whether his secret might not be profundity, fullness of thought, rather than emptiness. I should like them to read carefully the last sentence - the only intelligible one - of this quotation, because in this sentence, Hegel gives himself away. For clearly it means nothing but : 'The heating up of sounding bodies.. is heat.. together with sound.' The question arises whether Hegel deceived himself, hypnotized by his own inspiring jargon, or whether he boldly set out to deceive and bewitch others. I am satisfied that the latter was the case, especially in view of what Hegel wrote in one of his letters. In this letter, dated a few years before the publication of his Philosophy of Nature, Hegel referred to another Philosophy of Nature, written by his former friend Schelling : 'I have had too much to do.. with mathematics.. differential calculus, chemistry', Hegel boasts in this letter (but this is just bluff), 'to let myself be taken in by the humbug of the Philosophy of Nature, by this philosophizing without knowledge of fact.. and by the treatment of mere fancies, even imbecile fancies, as ideas.' This is a very fair characterization of Schelling's method, that is to say, of that audacious way of bluffing which Hegel himself copied, or rather aggravated, as soon as he realized that, if it reached its proper audience, it meant success.

In spite of all this it seems improbable that Hegel would ever have become the most influential figure in German philosophy without the authority of the Prussian state behind him. As it happened, he became the first official philosopher of Prussianism, appointed in the period of feudal 'restoration' after the Napoleonic wars. Later, the state also backed his pupils (Germany had, and still has, only state-controlled Universities), and they in their turn backed one another. And although Hegelianism was officially renounced by most of them, Hegelianizing philosophers have dominated philosophical teaching and thereby indirectly even the secondary schools of Germany ever since. (Of German-speaking Universities, those of Roman Catholic Austria remained fairly unmolested, like islands in a flood.) Having thus become a tremendous success on the continent, Hegelianism could hardly fail to obtain support in Britain from those who, feeling that such a powerful movement must after all have something to offer, began to search for what Stirling called The Secret of Hegel. They were attracted, of course, by Hegel's 'higher' idealism and by his claims to 'higher' morality, and they were also somewhat afraid of being branded as immoral by the chorus of the disciples ; for even the more modest Hegelians claimed of their doctrines that 'they are acquisitions which must.. ever be reconquered in the face of assault from the powers eternally hostile to spiritual and moral values'. Some really brilliant men (I am thinking mainly of McTaggart) made great efforts in constructive idealistic thought, well above the level of Hegel ; but they did not get very far beyond providing targets for equally brilliant critics. And one can say that outside the continent of Europe, especially in the last twenty years, the interest of philosophers in Hegel has slowly been vanishing.

But if that is so, why worry any more about Hegel ? The answer is that Hegel's influence has remained a most powerful force, in spite of the fact that scientists never took him seriously, and that (apart from the 'evolutionists' ) many philosophers are beginning to lose interest in him. Hegel's influence, and especially that of his cant, is still very powerful in moral and social philosophy and in the social and political sciences (with the sole exception of economics). Especially the philosophers of history, of politics, and of education are still to a very large extent under his sway. In politics, this is shown most drastically by the fact that the Marxist extreme left wing, as well as the conservative centre, and the fascist extreme right, all base their political philosophies on Hegel ; the left wing replaces the war of nations which appears in Hegel's historicist scheme by the war of classes, the extreme right replaces it by the war of races ; but both follow him more or less consciously. (The conservative centre is as a rule less conscious of its indebtedness to Hegel.)

How can this immense influence be explained ? My main intention is not so much to explain this phenomenon as to combat it. But I may make a few explanatory suggestions. For some reason, philosophers have kept around themselves, even in our days, something of the atmosphere of the magician. Philosophy is considered as a strange and abstruse kind of thing, dealing with those mysteries with which religion deals, but not in a way which can be 'revealed unto babes' or to common people ; it is considered to be too profound for that, and to be the religion and theology of the intellectuals, of the learned and wise. Hegelianism fits these views admirably ; it is exactly what this kind of popular superstition suppose philosophy to be. It knows all about everything. It has a ready answer to every question. And indeed, who can be sure that the answer is not true ?

But this is not the main reason for Hegel's success. His influence, and the need to combat it, can perhaps be better understood if we briefly consider the general historical situation.

Medieval authoritarianism began to dissolve with the Renaissance. But on the Continent, its political counterpart, medieval feudalism, was not seriously threatened before the French Revolution. (The Reformation had only strengthened it.) The fight for the open society began again only with the ideas of 1789 ; and the feudal monarchies soon experienced the seriousness of this danger. When in 1815 the reactionary party began to resume its power in Prussia, it found itself in dire need of an ideology. Hegel was appointed to meet this demand, and he did so by reviving the ideas of the first great enemies of the open society, Heraclitus, Plato, and Aristotle. Just as the French Revolution rediscovered the perennial ideas of the Great Generation and of Christianity, freedom, equality, and the brotherhood of all men, so Hegel rediscovered the Platonic ideas which lie behind the perennial revolt against freedom and reason. Hegelianism is the renaissance of tribalism.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Hegel may be seen in the fact that he represents the 'missing link', as it were, between Plato and the modern form of totalitarianism. Most of the modern totalitarians are quite unaware that their ideas can be traced back to Plato. But many know of their indebtedness to Hegel, and all of them have been brought up in the close atmosphere of Hegelianism. They have been taught to worship the state, history, and the nation. (My view of Hegel presupposes, of course, that he interpreted Plato's teaching in the same way as I did here, that is to say, as totalitarian, to use this modern label ; and indeed, it can be shown?, from his criticism of Plato in the Philosophy of Law, that Hegel's interpretation agrees with ours.)

In order to give the reader an immediate glimpse of Hegel's Platonizing worship of the state, I shall quote a few passages, even before I begin the analysis of his historicist philosophy. These passages show that Hegel's radical collectivism depends as much on Plato as it depends on Frederick William III, king of Prussia in the critical period during and after the French Revolution. Their doctrine is that the state is everything, and the individual is nothing ; for he owes everything to the state, his physical as well as his spiritual existence. This is the message of Plato, of Frederick William's Prussianism, and of Hegel. 'The State is the Divine Idea as it exists on earth... We must therefore worship the State as the manifestation of the Divine on earth, and consider that, if it is difficult to comprehend Nature, it is infinitely harder to grasp the Essence of the State... The State is the march of God through the world... The State must be comprehended as an organism... To the complete State belongs, essentially, consciousness and thought. The State knows what it wills... The State is real ; and.. true reality is necessary. What is real is eternally necessary... The State.. exists for its own sake... The State is the actually existing, realized moral life.' This selection of utterances may suffice to show Hegel's Platonism and his insistence upon the absolute moral authority of the state, which overrules all personal morality, all conscience. It is, of course, a bombastic and hysterical Platonism, but this only makes more obvious the fact that it links Platonism with modern totalitarianism.

One could ask whether by these services and by his influence upon history, Hegel has not proved his genius. I do not think this question very important, since it is only part of our romanticism that we think so much in terms of 'genius' ; and apart from that, I do not believe that success proves anything, or that history is our judge? ; these tenets are rather part of Hegelianism. But as far as Hegel is concerned, I do not even think that he was talented. He is an indigestible writer. As even his most ardent apologists must admit??, his style is 'unquestionably scandalous'. And as far as the content of his writing is concerned, he is supreme only in his outstanding lack of originality. There is nothing in Hegel's writing that has not been said better before him. There is nothing in his apologetic method that is not borrowed from his apologetic forerunners??. But he devoted these borrowed thoughts and methods with singleness of purpose, though without a trace of brilliancy, to one aim : to fight against the open society, and thus to serve his employer, Frederick William of Prussia. Hegel's confusion and debasement of reason is partly necessary as a means to this end, partly a more accidental but very natural expression of his state of mind. And the whole story of Hegel would indeed not be worth relating, were it not for its more sinister consequences, which show how easily a clown may be a 'maker of history'. The tragi-comedy of the rise of 'German Idealism', in spite of the hideous crimes to which it has led, resembles a comic opera much more than anything else ; and these beginnings may help to explain why it is so hard to decide of its latter-day heroes whether they have escaped from the stage of Wagner's Grand Teutonic Operas or from Offenbach's farces.

My assertion that Hegel's philosophy was inspired by ulterior motives, namely, by his interest in the restoration of the Prussian government of Frederick William III, and that it cannot therefore be taken seriously, is not new. The story was well known to all who knew the political situation, and it was freely told by the few who were independent enough to do so. The best witness is Schopenhauer, himself a Platonic idealist and a conservative if not a reactionary??, but a man of supreme integrity who cherished truth beyond anything else. There can be no doubt that he was as competent a judge in philosophical matters as could be found at the time. Schopenhauer, who had the pleasure of knowing Hegel personally and who suggested?? the use of Shakespeare's words, 'such stuff as madmen tongue and brain not', as the motto of Hegel's philosophy, drew the following excellent picture of the master : 'Hegel, installed from above, by the powers that be, as the certified Great Philosopher, was a flat-headed, insipid, nauseating, illiterate charlatan, who reached the pinnacle of audacity in scribbling together and dishing up the craziest mystifying nonsense. This nonsense has been noisily proclaimed as immortal wisdom by mercenary followers and readily accepted as such by all fools, who thus joined into as perfect a chorus of admiration as had ever been heard before. The extensive field of spiritual influence with which Hegel was furnished by those in power has enabled him to achieve the intellectual corruption of a whole generation.' And in another place, Schopenhauer describes the political game of Hegelianism as follows : 'Philosophy, brought afresh to repute by Kant.. had soon to become a tool of interests ; of state interests from above, of personal interests from below... The driving forces of this movement are, contrary to all these solemn airs and assertions, not ideal ; they are very real purposes indeed, namely personal, official, clerical, political, in short, material interests... Party interests are vehemently agitating the pens of so many pure lovers of wisdom... Truth is certainly the last thing they have in mind... Philosophy is misused, from the side of the state as a tool, from the other side as a means of gain... Who can really believe that truth also will thereby come to light, just as a by-product ?.. Governments make of philosophy a means of serving their state interests, and scholars make of it a trade... ' Schopenhauer's view of Hegel's status as the paid agent of the Prussian government is, to mention only one example, corroborated by Schwegler, and admiring disciple?? of Hegel. Schwegler says of Hegel : 'The fullness of his fame and activity, however, properly dates only from his call to Berlin in 1818. Here there rose up around him a numerous, widely extended, and.. exceedingly active school ; here too, he acquired, from his connections with the Prussian bureaucracy, political influence for himself as well as the recognition of his system as the official philosophy ; not always to the advantage of the inner freedom of his philosophy, or of its moral worth.' Schwegler's editor, J. H. Stirling??, the first British apostle of Hegelianism, of course defends Hegel against Schwegler by warning his readers not to take too literally 'the little hint of Schwegler's against.. the philosophy of Hegel as a state-philosophy'. But a few pages later, Stirling quite unintentionally confirms Schwegler's representation of the fact as well as the view that Hegel himself was aware of the party-political and apologetic function of his philosophy. (The evidence quoted?? by Stirling shows that Hegel expressed himself rather cynically on this function of his philosophy.) And a little later, Stirling unwittingly gives away the 'secret of Hegel' when he proceeds to the following poetic as well as prophetic revelations??, alluding to the lightning attack made by Prussia on Austria in 1866, the year before he wrote : 'Is it not indeed to Hegel, and especially his philosophy of ethics and politics, that Prussia owes that mighty life and organization she is now rapidly developing ? Is it not indeed the grim Hegel that is the centre of that organization which, maturing counsel in invisible brain, strikes, lightning-like, with a hand that is weighted from the mass ? But as regards the value of this organization, it will be more palpable to many, should I say, that, while in constitutional England, Preference-holders and Debenture-holders are ruined by the prevailing commercial immortality, the ordinary owners of Stock in Prussian Railways can depend on a safe average of 8.33 per cent. This, surely, is saying something for Hegel at last ! (감탄부호 다음에 따옴표가 닫혀야 할 것으로 보이며 원문의 오류로 생각됨 - 역자 주.)

'The fundamental outlines of Hegel must now, I think, be evident to every reader. I have gained much from Hegel.. ' Stirling continues his eulogy. I too hope that Hegel's outlines are now evident, and I trust that what Stirling had gained was saved from the menace of the commercial immortality prevailing in an un-Hegelian and constitutional England.

(Who could resist mentioning in this context the fact that Marxist philosophers, always ready to point out how an opponent's theory is affected by his class interest, habitually fail to apply this method to Hegel ? Instead of denouncing him as an apologist for Prussian absolutism, they regret?? that the works of the originator of dialectics, and especially his works on logic, are not more widely read in Britain - in contrast to Russia, where the merits of Hegel's philosophy in general, and of his logic in particular, are officially recognized.)

Returning to the problem of Hegel's political motives, we have, I think, more than sufficient reason to suspect that his philosophy was influenced by the interests of the Prussian government by which he was employed. But under the absolutism of Frederick William III, such an influence implied more than Schopenhauer or Schwegler could know ; for only in the last decades have the documents been published that show the clarity and consistency with which this king insisted upon the complete subordination of all learning to state interest. 'Abstract sciences', we read in his educational programme??, 'that touch only the academic world, and serve only to enlighten this group, are of course without value to the welfare of the State ; it would be foolish to restrict them entirely, but it is healthy to keep them within proper limits.' Hegel's call to Berlin in 1818 came during the high tide of reaction, during the period which began with the king's purging his government of the reformers and national liberals who had contributed so much to his success in the 'War of Liberation'. Considering this fact, we may ask whether Hegel's appointment was not a move to 'keep philosophy within proper limits', so as to enable her to be healthy and to serve 'the welfare of the State', that is to say, of Frederick William and his absolute rule. The same question is suggested to us when we read what a great admirer says?? of Hegel : 'And in Berlin he remained till his death in 1831, the acknowledged dictator of one of the most powerful philosophic schools in the history of thought.' (I think we should substitute 'lack of thought' for 'thought', because I cannot see what a dictator could possibly have to do with the history of thought, even if he were a dictator of philosophy. But otherwise, this revealing passage is only too true. For example, the concerted efforts of this powerful school succeeded, by a conspiracy of silence, in concealing from the world for forty years the very fact of Schopenhauer's existence.) We see that Hegel may indeed have had the power to 'keep philosophy within proper limits', so that our question may be quite to the point.

In what follows, I shall try to show that Hegel's whole philosophy can be interpreted as an emphatic answer to this question ; an answer in the affirmative, of course. And I shall try to show how much light is thrown upon Hegelianism if we interpret it in this way, that is to say, as an apology for Prussianism. My analysis will be divided into three parts, to be treated in sections II, III, and IV of this chapter. Section II deals with Hegel's historicism and moral positivism, together with the rather abstruse theoretical background of these doctrines, his dialectic method and his so-called philosophy of identity. Section III deals with the rise of nationalism. In section IV, a few words will be said on Hegel's relation to Burke. And section V deals with the dependence of modern totalitarianism upon the doctrines of Hegel.

II

I begin my analysis of Hegel's philosophy with a general comparison between Hegel's historicism and that of Plato.

Plato believed that the ideas or essences exist prior to the things in flux, and that the trend of all developments can be explained as a movement away from the perfection of the Ideas, and therefore as a descent, as a movement towards decay. The history of states, especially, is one of degeneration ; and ultimately this degeneration is due to the racial degeneration of the ruling class. (We must here remember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the Platonic notions of 'race', 'soul', 'nature', and 'essence'??.) Hegel believes, with Aristotle, that the Ideas or essences are in the things in flux ; or more precisely (as far as we can treat a Hegel with precision), Hegel teaches that they are identical with the things in flux : 'Everything actual is an Idea', he says??. But this does not mean that the gulf opened up by Plato between the essence of a thing and its sensible appearance is closed ; for Hegel writes : 'Any mention of Essence implies that we distinguish it from the Being' (of the thing) ; '.. upon the latter, as compared with Essence, we rather look as mere appearance or semblance... Everything has an Essence, we have said ; that is, things are not what they immediately show themselves to be.' Also like Plato and Aristotle, Hegel conceives the essences, at least those of organisms (and therefore also those of states), as souls, or 'Spirits'.

But unlike Plato, Hegel does not teach that the trend of the development of the world in flux is a descent, away from the Idea, toward decay. Like Speusippus and Aristotle, Hegel teaches that the general trend is rather towards the Idea ; it is progress. Although he says??, with Plato, that 'the perishable thing has its basis in Essence, and originates from it', Hegel insists, in opposition to Plato, that even the essences develop. In Hegel's world, as in Heraclitus', everything is in flux ; and the essences, originally introduced by Plato in order to obtain something stable, are not exempted. But this flux is not decay. Hegel's historicism is optimistic. His essences and Spirits are, like Plato's souls, self-moving ; they are self-developing, or, using more fashionable terms, they are 'emerging' and 'self-creating'. And they propel themselves in the direction of an Aristotelian 'final cause', or, as Hegel puts it??, towards a 'self-realizing and self-realized final cause in itself'. This final cause or end of the development of the essence is what Hegel calls 'The absolute Idea' or 'The Idea'. (This Idea is, Hegel tells us, rather complex : it is, all in one, the Beautiful ; Cognition and Practical Activity ; Comprehension ; the Highest Good ; and the Scientifically Contemplated Universe. But we really need not worry about minor difficulties such as these.) We can say that Hegel's world of flux is in a state of 'emergent' or 'creative evolution'?? ; each of its stages contains the preceding ones, from which it originates ; and each stage supersedes all previous stages, approaching nearer and nearer to perfection. The general law of development is thus one of progress ; but, as we shall see, not of a simple and straightforward, but of a 'dialectic' progress.

As previous quotations have shown, the collectivist Hegel, like Plato, visualizes the state as an organism ; and following Rousseau who had furnished it with a collective 'general will', Hegel furnishes it with a conscious and thinking essence, its 'reason' or 'Spirit'. This Spirit, whose 'very essence is activity' (which shows its dependence on Rousseau), is at the same time the collective Spirits of the Nation that forms the state.

To an essentialist, knowledge or understanding of the state must clearly mean knowledge of its essence or Spirit. And as we have seen?? in the last chapter, we can know the essence and its 'potentialities' only from its 'actual' history. Thus we arrive at the fundamental position of historicist method, that the way of obtaining knowledge of social institutions such as the state is to study its history, or the history of its 'Spirit'. And the other two historicist consequences developed in the last chapter follow also. The Spirit of the nation determines its hidden historical destiny ; and every nation that wishes 'to emerge into existence' must assert its individuality or soul by entering the 'Stage of History', that is to say, by fighting the other nations ; the object of the fight is world domination. We can see from this that Hegel, like Heraclitus, believes that war is the father and king of all things. And like Heraclitus, he believes that war is just : 'The history of the World is the World' court of justice', writes Hegel. And like Heraclitus, Hegel generalizes this doctrine by extending it to the world of nature, interpreting the contrasts and oppositions of things, the polarity of opposites, etc., as a kind of war, and as a moving force of natural development. And like Heraclitus, Hegel believes in the unity or identity of opposites ; indeed, the unity of opposites plays such an important part in the evolution, in the 'dialectical' progress, that we can describe these two Heraclitean ideas, the war of opposites, and their unity or identity, as the main ideas of Hegel's dialectics.

So far, this philosophy appears as a tolerably decent and honest historicism, although one that is perhaps a little unoriginal?? ; and there seems to be no reason to describe it, with Schopenhauer, as charlatanism. But this appearance begins to change if we now turn to an analysis of Hegel's dialectics. For he proffers this method with an eye to Kant, who, in his attack upon metaphysics (the violence of these attacks may be gauged from the motto to my 'Introduction'), had tried to show that all speculations of this kind are untenable. Hegel never attempted to refute Kant. He bowed, and twisted Kant's view into its opposite. This is how Kant's 'dialectics', the attack upon metaphysics, was converted into Hegelian 'dialectics', the main tool of metaphysics.

Kant, in his Critique of Pure Reason, asserted under the influence of Hume that pure speculation or reason, whenever it ventures into a field in which it cannot possibly be checked by experience, is liable to get involved in contradictions or 'antinomies' and to produce what he unambiguously described as 'mere fancies' ; 'nonsense' ; 'illusion' ; 'a sterile dogmatism' ; and 'a superficial pretension to the knowledge of everything'??. He tried to show that to every metaphysical assertion or thesis, concerning for example the beginning of the world in time, or the existence of God, there can be contrasted a counter-assertion or antithesis ; and both, he held, may proceed from the same assumption, and can be proved with an equal degree of 'evidence'. In other words, when leaving the field of experience, our speculation can have not scientific status, since to every argument there must be an equally valid counter-argument. Kant's intention was to stop once and forever the 'accursed fertility' of the scribblers on metaphysics. But unfortunately the effect was very different. What Kant stopped was only the attempts of the scribblers to use rational argument ; they only gave up the attempt to teach, but not the attempt to bewitch the public (as Schopenhauer puts it??). For this development, Kant himself undoubtedly bears a very considerable share of the blame ; for the obscure style of his work (which he wrote in a great hurry, although only after long years of meditation) contributed considerably to a further lowering of the low standard of clarity in German theoretical writing??.

None of the metaphysical scribblers who came after Kant made any attempt to refute him?? ; and Hegel, more particularly, even had the audacity to patronize Kant for 'reviving the name of Dialectics, which he restored to their post of honour'. He taught that Kant was quite right in point out the antinomies, but that he was wrong to worry about them. It just lies in the nature of reason that it must contradict itself, Hegel asserted ; and it is not a weakness of our human faculties, but it is the very essence of all rationality that it must work with contradictions and antinomies ; for this is just the way in which reason develops. Hegel asserted that Kant had analysed reason as if it were something static ; that he forgot that mankind develops, and with it, our social heritage. But what we are pleased to call our own reason is nothing but the product of this social heritage, of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social group in which we live, the nation. This development proceeds dialectically, that is to say, in a three-beat rhythm. First a thesis is proffered ; but it will produce criticism, it will be contradicted by opponents who assert its opposite, an antithesis ; and in the conflict of these views, a synthesis is attained, that is to say, a kind of unity of the opposites, a compromise or a reconciliation on a higher level. The synthesis absorbs, as it were, the two original opposite positions, by superseding them ; it reduces them to components of itself, thereby negating, elevating, and preserving them. And once the synthesis has been established, the whole process can repeat itself on the higher level that has now been reached. This is, in brief, the three-beat rhythm of progress which Hegel called the 'dialectical triad'.

I am quite prepared to admit that this is not a bad description of the way in which a critical discussion, and therefore also scientific thought, may sometimes progress. For all criticism consists in pointing out some contradictions or discrepancies, and scientific progress consists largely in the elimination of contradictions wherever we find them. This means, however, that science proceeds on the assumption that contradictions are impermissible and avoidable, so that the discovery of a contradiction forces that scientist to make every attempt to eliminate it ; and indeed, once a contradiction is admitted, all science must collapse??. But Hegel derives a very different lesson from his dialectic triad. Since contradictions are the means by which science progresses, he concludes that contradictions are not only permissible and unavoidable but also highly desirable. This is a Hegelian doctrine which must destroy all argument and all progress. For if contradictions are unavoidable and desirable, there is no need to eliminate them, and so all progress must come to an end.

But this doctrine is just one of the main tenets of Hegelianism. Hegel's intention is to operate freely with all contradictions. 'All things are contradictory in themselves', he insists??, in order to defend a position which means the end not only of all science, but of all rational argument. And the reason why he wishes to admit contradictions is that he wants to stop rational argument, and with it scientific and intellectual progress. By making argument and criticism impossible, he intends to make his own philosophy proof against all criticism, so that it may establish itself as a reinforced dogmatism, secure from every attack, and the unsurmountable summit of all philosophical development. (We have here a first example of a typical dialectical twist ; the idea of progress, popular in a period which leads to Darwin, but not in keeping with conservative interests, is twisted into its opposite, that of a development which has arrived at an end - an arrested development.)

So much for Hegel's dialectic triad, one of the two pillars on which his philosophy rests. The significance of the theory will be seen when I proceed to its application.

The other of the two pillars of Hegelianism is his so-called philosophy of identity. It is, in its turn, an application of dialectics. I do not intend to waste the reader's time by attempting to make sense of it, especially since I have tried to do so elsewhere?? ; for in the main, the philosophy of identity is nothing but shameless equivocation, and, to use Hegel's own words, it consists of nothing but 'fancies, even imbecile fancies'. It is a maze in which are caught the shadows and echoes of past philosophies, of Heraclitus, Plato, and Aristotle, as well as, of Rousseau and Kant, and in which they now celebrate a kind of witches' sabbath, madly trying to confuse and beguile the naive onlooker. The leading idea, and at the same time the link between Hegel's dialectics and his philosophy of identity, is Heraclitus' doctrine of the unity of opposites. 'The path that leads up and the path that leads down are identical', Heraclitus had said, and Hegel repeats this when he says :'The way west and the way east are the same.' This Heraclitean doctrine of the identity of opposites is applied to a host of reminiscences from the old philosophies which are thereby 'reduced to components' of Hegel's own system. Essence and Idea, the one and the many, substance and accident, form and content, subject and object, being and becoming, everything and nothing, change and rest, actuality and potentiality, reality and appearance, matter and spirit, all these ghosts from the past seem to haunt the brain of the Great Dictator while he performs his dance with his balloon, with his puffed-up and fictitious problems of God and the World. But there is method in this madness, and even Prussian method. For behind the apparent confusion there lurk the interests of the absolute monarchy of Frederick William. The philosophy of identity serves to justify the existing order. Its main upshot is an ethical and juridical positivism, the doctrine that what is, is good, since there can be no standards but existing standards ; it is the doctrine that might is right.

How is this doctrine derived ? Merely by series of equivocations. Plato, whose Forms or Ideas, as we have seen, are entirely different from 'ideas in the mind', had said that the Ideas alone are real, and that perishable things are unreal. Hegel adopts from this doctrine the equation Ideal = Real. Kant talked, in his dialectics, about the 'Ideas in the mind'. Hegel adopts from this the doctrine the Ideas are something mental or spiritual or rational, which can be expressed in the equation Idea = Reason. Combined, these two equations, or rather equivocations, yield Real = Reason ; and this allows Hegel to maintain that everything that is reasonable must be real, and everything that is real must be reasonable, and that the development of reality is the same as that of reason. And since there can be no higher standard in existence than the latest development of Reason and of the Idea, everything that is now real or actual exists by necessity, and must be reasonable as well as good??. (Particularly good, as we shall see, is the actually existing Prussian state.)

This is the philosophy of identity. Apart from ethical positivism a theory of truth also comes to light, just as a by-product (to use Schopenhauer's words). And a very convenient theory it is. All that is reasonable is real, we have seen. This means, of course, that all that is reasonable must conform to reality, and therefore must be true. Truth develops in the same way as reason develops, and everything that appeals to reason in its latest stage of development must also be true for that stage. In other words, everything that seems certain to those whose reason is up to date, must be true. Self-evidence is the same as truth. Provided you are up to date, all you need is to believe in a doctrine ; this makes it, by definition, true. In this way, the opposition between what Hegel calls 'the Subjective', i.e. belief, and 'the Objective', i.e. truth, is turned into an identity ; and this unity of opposites explains scientific knowledge also. 'The Idea is the union of Subjective and Objective.. Science presupposes that the separation between itself and Truth is already cancelled.'??

So much on Hegel's philosophy of identity, the second pillar of wisdom on which his historicism is built. With its erection, the somewhat tiresome work of analysing Hegel's more abstract doctrines comes to end. The rest of this chapter will be confined to the practical political applications made by Hegel of these abstract theories. And these practical applications will show us more clearly the apologetic purpose of all his labours.

Hegel's dialectics, I assert, are very largely designed to pervert the ideas of 1789. Hegel was perfectly conscious of the fact that the dialectic method can be used for twisting an idea into its opposite. 'Dialectics', he writes??, 'are no novelty in philosophy. Socrates.. used to stimulate the wish for some clearer knowledge about the subject under discussion, and after putting all sorts of questions with that intention, he brought those with whom he conversed round to the opposite of what their first impression had pronounced correct.' As a description of Socrates' intentions, this statement of Hegel's is perhaps not very fair (considering that Socrates' main aim was the exposure of cocksureness rather than the conversion of people to the opposite of what they believed before) ; but as a statement of Hegel's own invention, it is excellent, even though in practice Hegel's method turns out to be more clumsy than his programme indicates.

As a first example of this use of dialectics, I shall select the problem of freedom of thought, of the independence of science, and of the standards of objective truth, as treated by Hegel in the Philosophy of Law (§ 270). He begins with what can only be interpreted as a demand for freedom of thought, and for its protection by the state : 'The state', he writes, 'has.. thought as its essential principle. Thus freedom of thought, and science, can originate only in the state ; it was the church that burnt Giordano Bruno, and forced Galileo to recant... Science, therefore, must seek protection from the state, since.. the aim of science is knowledge of objective truth.' After this promising start which we may take as representing the 'first impressions' of his opponents, Hegel proceeds to bring them 'to the opposite of what their first impressions pronounced correct', covering his change of front by another sham attack on the Church : 'But such knowledge does, of course, not always conform with the standards of science, it may degenerate into mere opinion.. (이 문장에서는 두 개의 절을 연결하는 접속사가 없다. 즉, the standards of science와 it 사이에 접속사 and나 so that 같은 것이 필요하다. 문법적 오류이다 - 역자 주) ; and for these opinions.. it' (i.e. science) 'may raise the same pretentious demand as the church - the demand to be free in its opinions and convictions.' Thus the demand for freedom of thought, and of the claim of science to judge for itself, is described as 'pretentious' ; but this is merely the first step in Hegel's twist. We next hear that, if faced with subversive opinions, 'the state must protect objective truth' ; which raises the fundamental question : who is to judge what is, and what is not, objective truth ? Hegel replies : 'The state has, in general, .. to make up its own mind concerning what is to be considered as objective truth.' With this reply, freedom of thought, and the claims of science to set its own standards, give way, finally, to their opposites.

As a second example of this use of dialectics, I select Hegel's treatment of the demand for a political constitution, which he combines with his treatment of equality and liberty. In order to appreciate the problem of the constitution, it must be remembered that Prussian absolutism knew no constitutional law (apart from such principles as the full sovereignty of the king) and that the slogan of the campaign for democratic reform in the various German principalities was that the prince should 'grant the country a constitution'. But Frederick William agreed with his councillor Ancillon in the conviction that he must never give way to 'the hotheads, that very active and loud-voiced group of persons who for some years have set themselves up as the nation and have cried for a constitution'??. And although, under great pressure, the king promised a constitution, he never fulfilled his word. (There is a story that an innocent comment on the king's 'constitution' led to the dismissal of his unfortunate courtphysician.) Now how does Hegel treat this ticklish problem ? 'As a living mind', he writes, 'the state is an organized whole, articulated into various agencies... The constitution is this articulation or organization of state power... The constitution is existent justice ... Liberty and equality are.. the final aims and results of the constitution.' This, of course, is only the introduction. But before proceeding to the dialectical transformation of the demand for a constitution into one for an absolute monarchy, we must first show how Hegel transforms the two 'aims and results', liberty and equality, into their opposites.

Let us first see how Hegel twists equality into inequality : 'That the citizens are equal before the law', Hegel admits??, 'contains a great truth. But expressed in this way, it is only a tautology ; it only states in general that a legal status exists, that the laws rule. But to be more concrete, the citizens.. are equal before the law only in the points in which they are equal outside the law also. Only that equality which they possess in property, age, .. etc., can deserve equal treatment before the law.. The laws themselves.. presuppose unequal conditions... It should be said that it is just the great development and maturity of form in modern states which produces the supreme concrete inequality of individuals in actuality.'

In this outline of Hegel's twist of the 'great truth' of equalitarianism into its opposite, I have radically abbreviated his argument ; and I must warn the reader that I shall have to do the same throughout the chapter ; for only in this way is it at all possible to present, in a readable manner, his verbosity and the flight of his thoughts (which, I do not doubt, is pathological??).

We may consider liberty next. 'As regards liberty', Hegel writes, 'in former times, the legally defined rights, the private as well as public rights of a city, etc., were called its "liberties". Really, every genuine law is a liberty ; for it contains a reasonable principle.. ; which means, in other words, that it embodies a liberty...' Now this argument which tries to show that 'liberty' is the same as 'a liberty' and therefore the same as 'law', from which it follows that the more laws, the more liberty, is clearly nothing but a clumsy statement (clumsy because it relies on a kind of pun) of the paradox of freedom, first discovered by Plato, and briefly discussed above?? ; a paradox that can be expressed by saying that unlimited freedom leads to its opposite, since without its protection and restriction by law, freedom must lead to a tyranny of the strong over the weak. This paradox, vaguely restated by Rousseau, was solved by Kant, who demanded that the freedom of each man should be restricted, but not beyond what is necessary to safeguard an equal degree of freedom for all. Hegel of course knows Kant's solution, but he does not like it, and he presents it, without mentioning its author, in the following disparaging way : 'To-day, nothing is more familiar than the idea that each must restrict his liberty in relation to the liberty of others ; and that the laws are restrictions. But', he goes on to criticize Kant's theory, 'this expresses the kind of outlook that views freedom as casual good-pleasure and self-will.' With this cryptic remark, Kant's equalitarian theory of justice is dismissed.

But Hegel himself feels that the little jest by which he equates liberty and law is not quite sufficient for his purpose ; and somewhat hesitatingly he turns back to his original problem, that of the constitution. 'The term political liberty', he says??, 'is often used to mean a formal participation in the public affairs of the state by.. those who otherwise find their chief function in the particular aims and business of civil society' (in other words, by the ordinary citizen). ‘And it has.. become a custom to give the title "constitution" only to that side of the state which establishes such participation.., and to regard a state in which this is not formally done as a state without a constitution.' Indeed, this has become a custom. But how to get out of it ? By a merely verbal trick - by a definition : 'About this use of the term, the only thing to say is that by a constitution we must understand the determination of laws in general, that is to say, of liberties..' But again, Hegel himself feels the appalling poverty of the argument, and in despair he dives into a collectivist mysticism (of Rousseau's making) and into historicism?? : 'The question "To whom.. belongs the power of making a constitution ?" is the same as "Who has to make the Spirit of a Nation ?". Separate your idea of a constitution', Hegel exclaims, 'from that of a collective Spirit, as if the latter exists, or has existed, without a constitution, and your fancy proves how superficially you have apprehended the nexus' (namely, that between the Spirit and the constitution). '.. It is the indwelling Spirit and the history of the Nation - which only is that Spirit's history - by which constitutions have been and are made.' But this mysticism is still too vague to justify absolutism. one must be more specific ; and Hegel now hastens to be so : 'The really living totality,' he writes, 'that which preserves, and continually produces, the State and its constitution, is the Government... In the Government, regarded as an organic totality, the Sovereign Power or Principate is.. the all-sustaining, all-decreeing Will of the State, its highest Peak and all-pervasive Unity. In the perfect form of the State in which each and every element.. has reached its free existence, this will is that of one actual decreeing individual (not merely of a majority in which the unity of the decreeing will has no actual existence) ; it is monarchy. The monarchical constitution is therefore the constitution of developed reason ; and all other constitutions belong to lower grades of the development and the self-realization of reason.' And to be still more specific, Hegel explains in a parallel passage of his Philosophy of Law - the foregoing quotations are all taken from his Encyclopaedia - that 'ultimate decision.. absolute self-determination constitutes the power of the prince as such', and that 'the absolutely decisive element in the whole.. is a single individual, the monarch.'

Now we have it. How can anybody be so stupid as to demand a 'constitution' for a country that is blessed with an absolute monarchy, the highest possible grade of all constitutions anyway ? Those who make such demands obviously know not what they do and what they are talking about, just as those who demand freedom are too blind to see that in the Prussian absolute monarchy, 'each and every element has reached its free existence'. In other words, we have here Hegel's absolute dialectical proof that Prussia is the 'highest peak', and the very stronghold, of freedom ; that its absolutist constitution is the goal (not as some might think, the gaol) towards which humanity moves ; and that its government preserves and keeps, as it were, the purest spirit of freedom - in concentration.

Plato's philosophy, which once had claimed mastership in the state, becomes with Hegel its most servile lackey.

These despicable services??, it is important to note, were rendered voluntarily. There was no totalitarian intimidation in those happy days of absolute monarchy ; nor was the censorship very effective, as countless liberal publications show. When Hegel published his Encyclopaedia he was professor in Heidelberg. And immediately after the publication, he was called to Berlin to become, as his admirers say, the 'acknowledged dictator' of philosophy. But, some may contend, all this, even if it is true, does not prove anything against the excellence of Hegel's dialectic philosophy, or against his greatness as philosopher. To this contention, Schopenhauer's reply has already been given : 'Philosophy is misused, from the side of the state as a tool, from the other side as a means of gain. Who can really believe that truth also will thereby come to light, just as a by-product ?'

These passages give us a glimpse of the way in which Hegel's dialectic method is applied in practice. I now proceed to the combined application of dialectics and the philosophy of identity.

Hegel, we have seen, teaches that everything is in flux, even essences. Essences and Ideas and Spirits develop ; and their development is, of course, self-moving and dialectical??. And the latest stage of every development must be reasonable, and therefore good and true, for it is the apex of all past developments, superseding all previous stages. (Thus things can only get better and better.) Every real development, since it is a real process, must, according to the philosophy of identity, be a rational and reasonable process. It is clear that this must hold for history also.

Heraclitus had maintained that there is a hidden reason in history. For Hegel, history becomes an open book. The book is pure apologetics. By its appeal to the wisdom of Providence it offers an apology for the excellence of Prussian monarchism ; by its appeal to the excellence of Prussian monarchism it offers an apology for the wisdom of Providence.

History is the development of something real. According to the philosophy of identity, it must therefore be something rational. The evolution of the real world, of which history is the most important part, is taken by Hegel to be 'identical' with a kind of logical operation, or with a process of reasoning. History, as he sees it, is the thought process of the 'Absolute Spirit' or 'World Spirit'. It is the manifestation of this Spirit. It is a kind of huge dialectical syllogism?? ; reasoned out, as it were, by Providence. The syllogism is the plan which Providence follows ; and the logical conclusion arrived at is the end which Providence pursues - the perfection of the world. 'The only thought', Hegel writes in his Philosophy of History, 'with which Philosophy approaches History, is the simple conception of Reason ; it is the doctrine that Reason is the Sovereign of the World, and that the History of the World, therefore, presents us with a rational process. This conviction and intuition is.. no hypothesis in the domain of Philosophy. It is there proven.. that Reason.. is Substance ; as well as Infinite Power ; .. Infinite Matter .. ; Infinite Form .. ; Infinite Energy ... That this "Idea" or "Reason" is the True, the Eternal, the absolutely Powerful Essence ; that it reveals itself in the World, and that in that World nothing else is revealed but this and its honour and glory - this is a thesis which, as we have said, has been proved in Philosophy, and is here regarded as demonstrated.' This gush does not carry us far. But if we look up the passage in 'Philosophy’ (i.e., in his Encyclopaedia) to which Hegel refers, then we see a little more of his apologetic purpose. For here we read : 'That History, and above all Universal History, is founded on an essential and actual aim, which actually is, and will be, realized in it - the Plan of Providence ; that, in short, there is Reason in History, must be decided on strictly philosophical grounds, and thus shown to be essential and in fact necessary.' Now since the aim of Providence 'actually is realized' in the results of history, it might be suspected that this realization has taken place in the actual Prussia. And so it has ; we are even shown how this aim is reached, in three dialectical steps of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reason, or, as Hegel says, of 'Spirit', whose 'life.. is a cycle of progressive embodiments'?? The first of these steps is Oriental despotism, the second is formed by the Greek and Roman democracies and aristocracies, and the third, and highest, is the Germanic Monarchy, which of course is an absolute monarchy. Hegel makes it quite clear that he does not mean a Utopian monarchy of the future : 'Spirit.. has not past, no future,' he writes, 'but is essentially now ; this necessarily implies that the present form of the Spirit contains and surpasses all earlier steps.'

But Hegel can be even more outspoken than that. He subdivided the third period of history, Germanic Monarchy, or 'the German World', into three divisions too, of which he says?? : 'First, we have to consider Reformation in itself - the all-enlightening Sun, following on that blush of dawn which we observed at the termination of the medieval period ; next, the unfolding of that state of things which succeeded the Reformation ; and lastly, Modern Times, dating from the end of the last century', i.e. the period from 1800 down to 1830 (the last year in which these lectures were delivered). And Hegel proves again that this present Prussia is the pinnacle and the stronghold and the goal of freedom. 'on the Stage of Universal History', Hegel writes 'on which we can observe and grasp it, Spirit displays itself in its most concrete reality.' And the essence of Spirit, Hegel teaches, is freedom. 'Freedom is the sole truth of Spirit.' Accordingly, the development of Spirit must be the development of freedom, and the highest freedom must have been achieved in those thirty years of the Germanic Monarchy which represent the last subdivision of historical development. And indeed, we read?? : 'The German Spirit is the Spirit of the new World. Its aim is the realization absolute Truth as the unlimited self-determination of Freedom.' And after eulogy of Prussia, the government of which, Hegel assures us, 'rests with the official world, whose apex is the personal decision of the Monarch ; for a final decision is, as shown above, an absolute necessity', Hegel reaches the crowning conclusion of his work : 'This is the point', he says, 'which consciousness has attained, and these are the principal phases of that form in which Freedom has realized itself ; for the History of the World is nothing but the development of the Idea of Freedom... That the History of the World.. is the realization of Spirit, this is the true Theodicy, the justification of God in History... What has happened and is happening.. is essentially His Work..'

I ask whether I was not justified when I said that Hegel presents us with an apology for God and for Prussia at the same time, and whether it is not clear that the state which Hegel commands us to worship as the Divine Idea on earth is not simply Frederick William's Prussia from 1800 to 1830. And I ask whether it is possible to outdo this despicable perversion of everything that is decent ; a perversion not only of reason, freedom, equality, and the other ideas of the open society, but also of a sincere belief in God, and even of the a sincere patriotism.

I have described how, starting from a point that appears to be progressive and even revolutionary, and proceeding by that general dialectical method of twisting things which by now will be familiar to the reader, Hegel finally reaches a surprisingly conservative result. At the same time, he connects his philosophy of history with his ethical and juridical positivism, giving the latter a kind of historicist justification. History is our judge. Since History and Providence have brought the existing powers into being, their might must be right, even Divine right.

But this moral positivism does not fully satisfy Hegel. He wants more. Just as he opposes liberty and equality, so he opposes the brotherhood of man, humanitarianism, or, as he says, 'philanthropy'. Conscience must be replaced by blind obedience and by a romantic Heraclitean ethics of fame and fate, and the brotherhood of man by a totalitarian nationalism. How this is done will be shown in section III and especially?? in section IV of this chapter.

III

I now proceed to a very brief sketch of a rather strange story - the story of the rise of German nationalism. Undoubtedly the tendencies denoted by this term have a strong affinity with the revolt against reason and the open society. Nationalism appeals to our tribal instincts, to passion and to prejudice, and to our nostalgic desire to be relieved from the strain of individual responsibility which it attempts to replace by a collective or group responsibility. It is in keeping with these tendencies that we find that the oldest works on political theory, even that of the Old Oligarch, but more markedly those of Plato and of Aristotle, express decidedly nationalist views ; for these works were written in an attempt to combat the open society and the new ideas of imperialism, cosmopolitanism, and equalitarianism??. But this early development of a nationalist political theory stops short with Aristotle. With Alexander's empire, genuine tribal nationalism disappears for ever from political practice, and for a long time from political theory. From Alexander onward, all the civilized states of Europe and Asia were empires, embracing population of infinitely mixed region. European civilization and all the political units belonging to it have remained international or, more precisely, inter-tribal ever since. (It seems that about as long before Alexander as Alexander was before us, the empire of ancient Sumer had created the first international civilization.) And what holds good of political practice holds good of political theory ; until about a hundred years ago, the Platonic-Aristotelian nationalism had practically disappeared from political doctrines. (Of course, tribal and parochial feelings were always strong.) When nationalism was revived a hundred years ago, it was in one of the most mixed of all the thoroughly mixed regions of Europe, in Germany, and especially in Prussia with its largely Slav population. (It is not well known that barely a century ago, Prussia, with its then predominantly Slav population, was not considered a German state at all ; though its kings, who as princes of Brandenburg were 'Electors' of the German Empire, were considered German princes. At the Congress of Vienna, Prussia was registered as a 'Slav kingdom' ; and in 1830 Hegel still spoke?? even of Brandenburg and Mecklenburg as being populated by 'Germanized Slavs'.)

Thus it is only a short time since the principle of the national state was reintroduced into political theory. In spite of this fact, it is so widely accepted in our day that it is usually taken for granted, and very often unconsciously so. It now forms, as it were, an implicit assumption of popular political thought. It is even considered by many to be the basic postulate of political ethics, especially since Wilson's well meant but less well-considered principle of national self-determination. How anybody who had the slightest knowledge of European history, of the shifting and mixing of all kinds of tribes, of the countless waves of peoples who had come forth from their original Asian habitat and split up and mingled when reaching the maze of peninsulas called the European continent, how anybody who knew this could ever have put forward such an inapplicable principle, is hard to understand. The explanation is that Wilson, who was a sincere democrat (and Masaryk also, one of the greatest of all fighters for the open society??), fell a victim to a movement that sprang from the most reactionary and servile political philosophy that had ever been imposed upon meek and long-suffering mankind. He fell a victim to his upbringing in the metaphysical political theories of Plato and of Hegel, and to the nationalist movement based upon them

The principle of the national state, that is to say, the political demand that the territory of every state should coincide with the territory inhabited by one nation, is by no means so self-evident as it seems to appear to many people to-day. Even if anyone knew what he meant when he spoke of nationality, it would be not at all clear why nationality should be accepted as a fundamental political category, more important for instance than religion, or birth within a certain geographical region, or loyalty to a dynasty, or a political creed like democracy (which forms, one might say, the uniting factor of multi-lingual Switzerland). But while religion, territory, or a political creed can be more or less clearly determined, nobody has ever been able to explain what he means by a nation, in a way that could be used as a basis for practical politics. (Of course, if we say that a nation is a number of people who live or have been born in a certain state, then everything is clear ; but this would mean giving up the principle of the national state which demands that the state should be determined by the nation, and not the other way round.) None of the theories which maintain that a nation is united by a common origin, or a common language, or a common history, is acceptable, or applicable in practice. The principle of the nationalist state is not only inapplicable but it has never been clearly conceived. It is a myth. It is an irrational, a romantic and Utopian dream, a dream of naturalism and of tribal collectivism.

In spite of its inherent reactionary and irrational tendencies, modern nationalism, strangely enough, was in its short history before Hegel a revolutionary and liberal creed. By something like an historical accident - the invasion of German lands by the first national army, the French army under Napoleon, and the reaction caused by this event - it had made its way into the camp of freedom. It is not without interest to sketch the history of this development, and of the way in which Hegel brought nationalism back into the totalitarian camp where it had belonged from the time when Plato first maintained that Greeks are related to barbarians like masters to slaves.

Plato, it will be remembered??, unfortunately formulated his fundamental political problem by asking : Who should rule ? Whose will should be law ? Before Rousseau, the usual answer to this question was : The prince. Rousseau gave a new and most revolutionary answer. Not the prince, he maintained, but the people should rule ; not the will of one man but the will of all. In this way, he was led to invent the people's will, the collective will, or the 'general will', as he called it ; and the people, once endowed with a will, had to be exalted into a superpersonality ; 'in relation to what is external to it' (i.e. in relation to other peoples), Rousseau says, 'it becomes one single being, one individual'. There was a good deal of romantic collectivism in this invention, but no tendency towards nationalism. But Rousseau's theories clearly contained the germ of nationalism, whose most characteristic doctrine is that the various nations must be conceived as personalities. And a great practical step in the nationalist direction was made when the French Revolution inaugurated a people's army, based on national conscription.

One of the next to contribute to the theory of nationalism was J. G. Herder, a former pupil and at the time a personal friend of Kant. Herder maintained that a good state should have natural borders, namely those which coincide with the places inhabited by its 'nation' ; a theory which he first proffered in his Ideas towards a Philosophy of the History of Mankind (1785). 'The most natural state', he wrote??, 'is a state composed of a single people with a single national character... A people is a natural growth like a family, only spread more widely... As in all human communities,.. so, in the case of the state, the natural order is the best - that is to say, the order in which everyone fulfills that function for which nature intended him.' This theory, which tries to give an answer to the problem of the 'natural' borders of the state??, an answer that only raises the new problem of the 'natural' borders of the nation, did not at first exert much influence. It is interesting to see that Kant at once realized the dangerous irrational romanticism in this work of Herder's, of whom he made a sworn enemy by his outspoken criticism. I shall quote a passage from this criticism, because it excellently sums up, once and for all, not only Herder, but also the later oracular philosophers like Fichte, Schelling, Hegel, together with all their modern followers : 'A sagacity quick in picking up analogies', Kant wrote, 'and an imagination audacious in the use it makes of them are combined with a capability for enlisting emotions and passions in order to obtain interest for its object - an object that is always veiled in mystery. These emotions are easily mistaken for the efforts of powerful and profound thoughts, or at least of deeply significant allusions ; and they thus arouse higher expectations than cool judgement would find justified... Synonyms are passed off as explanations, and allegories are offered as truths.'

It was Fichte who provided German nationalism with its first theory. The borders of a nation, he contended, are determined by language. (This does not improve matters. Where do differences of dialect become differences of language ? How many different languages do the Slavs or the Teutons speak, or are the differences merely dialects ?)

Fichte's opinions had a most curious development, especially if we consider that he was one of the founders of German nationalism. In 1793, he defended Rousseau and the French Revolution, and in 1799 he still declared?? : 'It is plain that from now on the French Republic alone can be the fatherland of the upright man, that he can devote his powers to this country alone of all, since not only the dearest hopes of humanity but also its very existence are bound up with the victory of France... I dedicate myself and all my abilities to the Republic.' It may be noted that when Fichte made these remarks he was negotiating for a university position in Mainz, a place then controlled by the French. 'In 1804', E. N. Anderson writes in his interesting study on nationalism, 'Fichte.. was eager to leave Prussian service and to accept a call from Russia. The Prussian government had not appreciated him to the desired financial extent and he hoped for more recognition from Russia, writing to the Russian negotiator that if the government would make him a member of the St. Petersburg Academy of Science and pay him a salary of not less than four hundred roubles, "I would be theirs until death".. Two years later', Anderson continues, 'the transformation of Fichte the cosmopolitan into Fichte the nationalist was completed.'

When Berlin was occupied by the French, Fichte left, out of patriotism ; an act which, as Anderson says 'he did not allow.. to remain unnoticed by the Prussian king and government'. When A. Mueller and W. von Humboldt had been received by Napoleon, Fichte wrote indignantly to his wife : 'I do not envy Mueller and Humboldt ; I am glad that I did not obtain that shameful honour.. It makes a difference to one's conscience and apparently also to one's later success if.. one has openly shown devotion to the good cause.' on this, Anderson comments : 'As a matter of fact, he did profit ; undoubtedly his call to the University of Berlin resulted from this episode. This does not detract from the patriotism of his act, but merely places it in its proper light.' To all this we must add that Fichte's career as a philosopher was from the beginning based on a fraud. His first book was published anonymously, when Kant's philosophy of religion was expected, under the title Critique of All Revelation. It was an extremely dull book, which did not prevent it from being a clever copy of Kant's style ; and everything was set in motion, including rumours, to make people believe that it was Kant's work. The matter appears in its right light if we realize that Fichte only obtained a publisher through the kindheartedness of Kant (who was never able to read more than the first few pages of the book). When the press extolled Fichte's work as one of Kant's, Kant was forced to make a public statement that the work was Fichte's, and Fichte, upon whom fame had suddenly descended, was made professor in Jena. But Kant was later forced to make another declaration, in order to dissociate himself from this man, a declaration in which occur the words?? : 'May God protect us from our friends. From our enemies, we can try to protect ourselves.'

These are a few episodes in the career of the man whose 'windbaggery' has given rise to modern nationalism as well as to modern Idealist philosophy, erected upon the perversion of Kant's teaching. (I follow Schopenhauer in distinguishing between Fichte's 'windbaggery' and Hegel's 'charlatanry', although I must admit that to insist on this distinction is perhaps a little pedantic.) The whole story is interesting mainly because of the light it throws upon the 'history of philosophy' and upon 'history' in general. I mean not only the perhaps more humorous than scandalous fact that such clowns are taken seriously, and that they are made the objects of a kind of worship, of solemn although often boring studies (and of examination papers to match). I mean not only the appalling fact that the windbag Fichte and the charlatan Hegel are treated on a level with men like Democritus, Pascal, Descartes, Spinoza, Locke, Hume, Kant, J. S. Mill, and Bertrand Russell, and that their moral teaching is taken seriously and perhaps even considered superior to that of these other men. But I mean that many of these eulogist historians of philosophy, unable to discriminate between thought and fancy, not to mention good and bad, dare to pronounce that their history is our judge, or that their history of philosophy is an implicit criticism of the different 'system of thought'. For it is clear, I think, that their adulation can only be an implicit criticism of their histories of philosophy, and of that pomposity and conspiracy of noise by which the business of philosophy is glorified. It seems to be a law of what these people are pleased to call 'human nature' that bumptiousness grows in direct proportion to deficiency of thought and inversely to the amount of service rendered to human welfare.

At the time when Fichte became the apostle of nationalism, an instinctive and revolutionary nationalism was rising in Germany as a reaction to the Napoleonic invasion. (It was one of those typical tribal reactions against the expansion of a super-national empire.) The people demanded democratic reforms which they understood in the sense of Rousseau and of the French Revolution, but which they wanted without their French conquerors. They turned against their own princes and against the emperor at the same time. This early nationalism arose with the force of a new religion, as a kind of cloak in which a humanitarian desire for freedom and equality was clad. 'Nationalism', Anderson writes??, 'grew as orthodox Christianity declined, replacing the latter with belief in a mystical experience of its own.' It is the mystical experience of community with the other members of the oppressed tribe, an experience which replaced not only Christianity but especially the feeling of trust and loyalty to the king which the abuses of absolutism had destroyed. It is clear that such an untamed new and democratic religion was a source of great irritation, and even of danger, to the ruling class, and especially to the king of Prussia. How was this danger to be met ? After the wars of liberation, Frederick William met it first by dismissing his nationalist advisers, and then by appointing Hegel. For the French Revolution had proved the influence of philosophy, a point duly emphasized by Hegel (since it is the basis of his own services) : 'The Spiritual', he says??, 'is now the essential basis of the potential fabric, and Philosophy has thereby become dominant. It has been said that the French Revolution resulted from Philosophy, and it is not without reason that Philosophy has been described as World Wisdom ; Philosophy is not only Truth in and for itself.. but also Truth as exhibited in worldly matters. We should not, therefore, contradict the assertion that the Revolution received its first impulse from Philosophy.' This is an indication of Hegel's insight into his immediate task, to give a counter impulse ; an impulse, though not the first, by which philosophy might strengthen the forces of reaction. Part of this task was the perversion of the ideas of freedom, equality, etc. But perhaps an even more urgent task was the taming of the revolutionary nationalist religion. Hegel fulfilled this task in the spirit of Pareto's advice 'to take advantage of sentiments, not wasting one's energies in futile efforts to destroy them'. He tamed nationalism not by outspoken opposition but by transforming it into a well-disciplined Prussian authoritarianism. And it so happened that he brought back a powerful weapon into the camp of the closed society, where it fundamentally belonged.

All this was done rather clumsily. Hegel, in his desire to please the government, sometimes attacked the nationalists much too openly. 'Some men', he wrote?? in the Philosophy of Law, 'have recently begun to talk of the "sovereignty of the people" in opposition to the sovereignty of the monarch. But when it is contrasted with the sovereignty of the monarch, then the phrase "sovereignty of the people" turns out to be merely one of those confused notions which arise from a wild idea of the "people". Without its monarch.. the people are just a formless multitude.' Earlier, in the Encyclopaedia, he wrote : 'The aggregate of private persons is often spoken of as the nation. But such an aggregate is a rabble, not a people ; and with regard to it, it is the one aim of the state that a nation should not come into existence, to power and action, as such an aggregate. Such a condition of a nation is a condition of lawlessness, demoralization, brutishness. In it, the nation would only be a shapeless wild blind force, like that of a stormy elemental sea, which however is not self-destructive, as the nation - a spiritual element - would be. Yet one can often hear such a condition described as pure freedom.' There is here an unmistakable allusion to the liberal nationalists, whom the king hated like the plague. And this is even clearer when we see Hegel's reference to the early nationalists' dreams of rebuilding the German empire : 'The fiction of an Empire', he says in his eulogy of the latest developments in Prussia, 'has utterly vanished. It is broken into Sovereign States.' His anti-liberal tendencies induced Hegel to refer to England as the most characteristic example of a nation in the bad sense. 'Take the case of England,' he writes, 'which, because private persons have a predominant share in public affairs, has been regarded as having the freest of all constitutions. Experience shows that that country, as compared with the other civilized states of Europe, is the most backward in civil and criminal legislation, in the law and liberty of property, and in arrangements for the arts and sciences, and that objective freedom or rational right is sacrificed to formal?? right and particular private interest : and that this happens even in the institutions and possessions dedicated to religion.' An astonishing statement indeed, especially when the 'arts and sciences' are considered, for nothing could have been more backward than Prussia, where the University of Berlin had been founded only under the influence of the Napoleonic wars, and with the idea, as the king said??, that 'the state must replace with intellectual prowess what it has lost in physical strength'. A few pages later, Hegel forgets what he has said about the arts and sciences in England ; for he speaks there of 'England, where the art of historical writing has undergone a process of purification and arrived at a firmer and more mature character'.

We see that Hegel knew that his task was to combat the liberal and even the imperialist leanings of nationalism. He did it by persuading the nationalists that their collectivist demands are automatically realized by an almighty state, and that all they need do is to help to strengthen the power of the state. 'The Nation State is Spirit in its substantive rationality and immediate actuality', he writes?? ; 'it is therefore the absolute power on earth... The state is the Spirit of the People itself. The actual State is animated by this spirit in all its particular affairs, its Wars, and its Institutions... The self-consciousness of one particular Nation is the vehicle for the.. development of the collective spirit ; .. in it, the Spirit of the Time invests its Will. Against this Will, the other national minds have no rights : that Nation dominates the World.' It is thus the nation and its spirit and its will that act on the stage of history. History is the contest of the various national spirits for world domination. From this it follows that the reforms advocated by the liberal nationalists are unnecessary, since the nation and its spirit are the leading actors anyway ; besides, 'every nation.. has the constitution which is appropriate to it and belongs to it'. (Juridical positivism.) We see that Hegel replaces the liberal elements in nationalism not only by a Platonic-Prussianist worship of the state, but also by a worship of history, of historical success. (Frederick William had been successful against Napoleon.) In this way, Hegel not only began a new chapter in the history of nationalism, but he also provided nationalism with a new theory. Fichte, we have seen, had provided it with the theory that it was based on language. Hegel introduced the historical theory of the nation. A nation, according to Hegel, is united by a spirit that acts in history. It is united by the common foe, and by the comradeship of the wars it has fought. (It has been said that a race is a collection of men united not by their origin but by a common error in regard to their history.) It is clear how this theory is connected with Hegel's historicist essentialism. The history of a nation is the history of its essence or 'Spirit', asserting itself on the 'Stage of History'.

In concluding this sketch of the rise of nationalism, I may make a remark on the events down to the foundation of Bismarck's German empire. Hegel's policy had been to take advantage of nationalist sentiments, instead of wasting energy in futile efforts to destroy them. But sometimes this celebrated technique appears to have rather strange consequences. The medieval conversion of Christianity into an authoritarian creed could not fully suppress its humanitarian tendencies ; again and again, Christianity breaks through the authoritarian cloak (and is persecuted as heresy). In this way, Pareto's advice not only serves to neutralize tendencies that endanger the ruling class, but can also unintentionally help to preserve these very tendencies. A similar thing happened to nationalism. Hegel had tamed it, and had tried to replace German nationalism by a Prussian nationalism. But by thus 'reducing nationalism to a component' of his Prussianism (to use his own jargon) Hegel 'preserved' it ; and Prussia found itself forced to proceed on the way of taking advantage of the sentiments of German nationalism. When it fought Austria in 1866 it had to do so in the name of German nationalism, and under the pretext of securing the leadership of 'Germany'. And it had to advertise the vastly enlarged Prussia of 1871 as the new 'German Empire', a new 'German Nation' - welded by war into a unit, in accordance with Hegel's historical theory of the nation.

IV

In our own time, Hegel's hysterical historicism is still the fertilizer to which modern totalitarianism owes its rapid growth. Its use has prepared the ground, and had educated the intelligentsia to intellectual dishonesty, as will be shown in section V of this chapter. We have to learn the lesson that intellectual honesty is fundamental for everything we cherish.

But is this all ? And is it just ? Is there nothing in the claim that Hegel's greatness lies in the fact that he was the creator of a new, of a historical way of thinking - of a new historical sense ?

Many of my friends have criticized me for my attitude towards Hegel, and for my inability to see his greatness. They were, of course, quite right, since I was indeed unable to see it. (I am so still.) In order to remedy this fault, I made a fairly systematic inquiry into the question, Wherein lies Hegel's greatness ?

The result was disappointing. No doubt, Gegel's talk (Hegel's talk로 써야 함. 원문의 오류임 - 역자 주) about the vastness and greatness of the historical drama created an atmosphere of interest in history. No doubt, his vast historicist generalizations, periodizations, and interpretations fascinated some historians and challenged them to produce valuable and detailed historical studies (which nearly invariably showed the weakness of Hegel's findings as well as of his method). But was this challenging influence the achievement of either a historian or a philosopher ? Was it not, rather, that of a propagandist ? Historians, I found, tend to value Hegel (if at all) as a philosopher, and philosophers tend to believe that his contributions (if any) were to the understanding of history. But historicism is not history, and to believe in it reveals neither historical understanding nor historical sense. And if we wish to evaluate Hegel's greatness, as a historian or as a philosopher, we should not ask ourselves whether some people found his vision of history inspiring, but whether there was much truth in this vision.

I found only one idea which was important and which might be claimed to be implicit in Hegel's philosophy. It is the idea which leads Hegel to attack abstract rationalism and intellectualism which does not appreciate the indebtedness of reason to tradition. It is a certain awareness of the fact (which, however, Hegel forgets in his Logic) that men cannot start with a blank, creating a world of thought from nothing ; but that their thoughts are, largely, the product of an intellectual inheritance.

I am ready to admit that this is an important point, and one which might be found in Hegel if one is willing to search for it. But I deny that it was Hegel's own contribution. It was the common property of the Romantics. That all social entities are products of history ; not inventions, planned by reason, but formations emerging from the vagaries of historical events, from the interplay of ideas and interests, from sufferings and from passions, all this is older than Hegel. It goes back to Edmund Burke, whose appreciation of the significance of tradition for the functioning of all social institutions had immensely influenced the political thought of the German Romantic Movement. The trace of his influence can be found in Hegel, but only in the exaggerated and untenable form of an historical and evolutionary relativism - in the form of the dangerous doctrine that what is believed to-day is, in fact, true to-day, and in the equally dangerous corollary that what was true yesterday (true, and not merely 'believed') may be false to-morrow - a doctrine which, surely, is not likely to encourage an appreciation of the significance of tradition.

V

I now proceed to the last part of my treatment of Hegelianism, to the analysis of the dependence of the new tribalism or totalitarianism upon the doctrines of Hegel.

If it were my aim to write a history of the rise of totalitarianism, I should have to deal with Marxism first ; for fascism grew partly out of the spiritual and political breakdown of Marxism. (And, as we shall see, a similar statement may be made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Leninism and Marxism.) Since my main issue, however, is historicism, I propose to deal with Marxism later, as the purest form of historicism that has so far arisen, and to tackle fascism first.

Modern totalitarianism is only an episode within the perennial revolt against freedom and reason. From older episodes it is distinguished not so much by its ideology, as by the fact that its leaders succeeded in realizing one of the boldest dreams of their predecessors ; they made the revolt against freedom a popular movement. (Its popularity, of course, must not be overrated ; the intelligentsia are only a part of the people.) It was made possible only by the breakdown, in the countries concerned, of another popular movement, Social Democracy or the democratic version of Marxism, which in the minds of the working people stood for the ideas of freedom and equality. When it became obvious that it was not just by chance that this movement had failed in 1914 to make a determined stand against war ; when it became clear that it was helpless to cope with the problems of peace, most of all with unemployment and economic depression ; and when, at last, this movement defended itself only half-heartedly against fascist aggression, then the belief in the value of freedom and in the possibility of equality was seriously threatened, and the perennial revolt against freedom could by hook or by crook acquire a more or less popular backing.

The fact that fascism had to take over part of the heritage of Marxism accounts for the one 'original' feature of fascist ideology, for the one point in which it deviates from the traditional make-up of the revolt against freedom. The point I have in mind is that fascism has not much use for an open appeal to the supernatural. Not that it is necessarily atheistic or lacking in mystical or religious elements. But the spread of agnosticism through Marxism led to a situation in which no political creed aiming at popularity among the working class could bind itself to any of the traditional religious forms. This is why fascism added to its official ideology, in its early stages at least, some admixture of nineteenth-century evolutionist materialism.

Thus the formula of the fascist brew is in all countries the same : Hegel plus a dash of nineteenth-century materialism (especially Darwinism in the somewhat crude form given to it by Haeckel??). The 'scientific' element in racialism can be traced back to Haeckel, who was responsible, in 1900, for a prize-competition whose subject was : 'What can we learn from the principles of Darwinism in respect of the internal and political development of a state ?' The first prize was alloted to a voluminous racialist work by W. Schallmeyer, who thus became the grandfather of racial biology. It is interesting to observe how strongly this materialist racialism, despite its very different origin, resembles the naturalism of Plato. In both cases, the basic idea is that degeneration, particularly of the upper classes, is at the root of political decay (read : of the advance of the open society). Moreover, the modern myth of Blood and Soil has its exact counterpart in Plato's Myth of Earthborn. Nevertheless, not 'Hegel + Plato', but 'Hegel + Haeckel' is the formula of modern racialism. As we shall see, Marx replaced Hegel's 'Spirit' by matter, and by material and economic interests. In the same way, racialism substitutes for Hegel's 'Spirit' something material, the quasi-biological conception of Blood or Race. Instead of 'Spirit', Blood is the self-developing essence ; instead of 'Spirit', Blood is the Sovereign of the world, and displays itself on the Stage of History ; and instead of its 'Spirit', the Blood of a nation determines its essential destiny.

The transubstantiation of Hegelianism into racialism or of Spirit into Blood does not greatly alter the main tendency of Hegelianism. It only gives it a tinge of biology and of modern evolutionism. The outcome is a materialistic and at the same time mystical religion of a self-developing biological essence, very closely reminiscent of the religion of creative evolution (whose prophet was the Hegelian?? Bergson), a religion which G. B. Shaw, more prophetically than profoundly, once characterized as 'a faith which complied with the first condition of all religions that have ever taken hold of humanity : namely, that it must be.. a meta-biology'. And indeed, this new religion of racialism clearly shows a meta-component and a biology-component, as it were, or Hegelian mystical metaphysics and Haeckelian materialist biology.

So much about the difference between modern totalitarianism and Hegelianism. In spite of its significance from the point of view of popularity, this difference is unimportant so far as their main political tendencies are concerned. But if we now turn to the similarities, then we get another picture. Nearly all the more important ideas of modern totalitarianism are directly inherited from Hegel, who collected and preserved what A. Zimmern calls?? the 'armoury of weapons for authoritarian movements'. Although most of these weapons were not forged by Hegel himself, but discovered by him in the various ancient war treasuries of the perennial revolt against freedom, it is undoubtedly his effort which rediscovered them and placed them in the hands of his modern followers. Here is a brief list of some of the most precious of these ideas. (I omit Platonic totalitarianism and tribalism, which have already been discussed, as well as the theory of master and slave.)

(a) Nationalism, in the form of the historicist idea that the state is the incarnation of the Spirit (or now, of the Blood) of the state-creating nation (or race) ; one chosen nation (now, the chosen race) is destined for world domination. (b) The state as the natural enemy of all other states must assert its existence in war. (c) The state is exempt from any kind of moral obligation ; history, that is, historical success, is the sole judge ; collective utility is the sole principle of personal conduct ; propagandist lying and distortion of the truth is permissible. (d) The 'ethical' idea of war (total and collectivist), particularly of young nations against older ones ; war, fate and fame as most desirable goods. (e) The creative role of the Great Man, the world-historical personality, the man of deep knowledge and great passion (now, the principle of leadership). (f) The ideal of the heroic life ('live dangerously') and of the 'heroic man' as opposed to the petty bourgeois and his life of shallow mediocrity.

This list of spiritual treasures is neither systematic nor complete. All of them are part and parcel of an old patrimony. And they were stored up, and made ready for use, not only in the works of Hegel and his followers, but also in the minds of an intelligentsia fed exclusively for three long generations on such debased spiritual food, early recognized by Schopenhauer?? as an 'intelligence-destroying pseudo-philosophy' and as a 'mischievous and criminal misuse of language'. I now proceed to a more detailed examination of the various points in this list.

(a) According to modern totalitarian doctrines, the state as such is not the highest end. This is, rather, the Blood, and the People, the Race. The higher races possess the power to create states. The highest aim of a race or nation is to form a mighty state which can serve as a powerful instrument of its self-preservation. This teaching (but for the substitution of Blood for Spirit) is due to Hegel, who wrote?? : 'In the existence of a Nation, the substantial aim is to be a State and preserve itself as such. A nation that has not formed itself into a State - a mere Nation - has strictly speaking no history, like the Nations.. which existed in a condition of savagery. What happens to a Nation.. has its essential significance in relation to the State.' The state which is thus formed is to be totalitarian, that is to say, its might must permeate and control the whole life of the people in all its functions : 'The State is therefore the basis and centre of all the concrete elements in the life of a people : of Art, Law, Morals, Religion, and Science... The substance that.. exists in that concrete reality which is the state, is the Spirit of the People itself. The actual State is animated by this Spirit in all its particular affairs, in its Wars, Institutions, etc.' Since the state must be powerful, it must contest the powers of other states. It must assert itself on the 'Stage of History', must prove its peculiar essence or Spirit and its 'strictly defined' national character by its historical deeds, and must ultimately aim at world domination. Here is an outline of this historicist essentialism in Hegel's words : 'The very essence of Spirit is activity ; it actualizes its potentiality, and makes itself its own deed, its own work.. Thus it is with the Spirit of a Nation ; it is a Spirit having strictly defined characteristics which exist and persist.. in the events and transitions that make up its history. That is its work - that is what this particular Nation is. Nations are what their deeds are... A Nation is moral, virtuous, vigorous, as long as it is engaged in realizing its grand objects... The constitutions under which World-Historical Peoples have reached their culminations are peculiar to them.. Therefore, from.. the political institutions of the ancient World-Historical Peoples, nothing can be learned... Each particular National Genius is to be treated as only one Individual in the process of Universal History.' The Spirit or National Genius must finally prove itself in World-Domination : 'The self-consciousness of a particular Nation.. is the objective actuality in which the Spirit of the Time invests its Will. Against this absolute Will the other particular national minds have no rights : that Nation dominates the World..'

But Hegel not only developed the historical and totalitarian theory of nationalism, he also clearly foresaw the psychological possibilities of nationalism. He saw that nationalism answers a need - the desire of men to find and to know their definite place in the world, and to belong to a powerful collective body. At the same time he exhibits that remarkable characteristic of German nationalism, its strongly developed feelings of inferiority (to use more recent terminology), especially towards the English. And he consciously appeals, with his nationalism or tribalism, to those feelings which I have described (in chapter 10) as the strain of civilization : 'Every Englishman', Hegel writes??, 'will say : We are the men who navigate the ocean, and who have the commerce of the world ; to whom the East Indies belong and their riches... The relation of the individual man to that Spirit is.. that it.. enables him to have a definite place in the world - to be something. For he finds in.. the people to which he belongs an already established, firm world.. with which he has to incorporate himself. In this its work, and therefore its world, the Spirit of the people enjoys its existence and finds satisfaction.'

(b) A theory common to both Hegel and his racialist followers is that the state by its very essence can exist only through its contrast to other individual states. H. Freyer, one of the leading sociologists of present-day Germany, writes?? : 'A being that draws itself round its own core creates, even unintentionally, the boundary-line. And the frontier - even though it be unintentionally - creates the enemy.' Similarly Hegel : 'Just as the individual is not a real person unless related to other persons so the State is no real individuality unless related to other States... The relation of one particular State to another presents.. the most shifting play of.. passions, interests, aims, talents, virtues, power, injustice, vice, and mere external chance. It is a play in which even the Ethical Whole, the Independence of the State, is exposed to accident.’ Should we not, therefore, attempt to regulate this unfortunate state of affairs by adopting Kant's plans for the establishment of eternal peace by means of a federal union ? Certainly not, says Hegel, commenting on Kant's plan for peace : 'Kant proposed an alliance of princes', Hegel says rather inexactly (for Kant proposed a federation of what we now call democratic states), 'which should settle the controversies of State ; and the Holy Alliance probably aspired to be an institution of this kind. The State, however, is an individual ; and in individuality, negation is essentially contained. A number of States may constitute themselves into a family, but this confederation, as an individuality, must create opposition and so beget and enemy.' For in Hegel's dialectics, negation equals limitation, and therefore means not only the boundary-line, the frontier, but also the creation of an opposition, of an enemy : 'The fortunes and deeds of States in their relation to one another reveal the dialectic of the finite nature of these Spirits.' These quotations are taken from the Philosophy of Law ; yet in his earlier Encyclopaedia, Hegel's theory anticipates the modern theories, for instance that of Freyer, even more closely : 'The final aspect of the State is to appear in immediate actuality as a single nation... As a single individual it is exclusive of other like individuals. In their mutual relations, waywardness and chance have a place... This independency.. reduces disputes between them to terms of mutual violence, to a state of war... It is this state of war in which the omnipotence of the State manifests itself..' Thus the Prussian historian Treitschke only shows how well he understands Hegelian dialectic essentialism when he repeats : 'War is not only a practical necessity, it is also a theoretical necessity, an exigency of logic. The concept of the State implies the concept of war, for the essence of the State is Power. The State is the People organized in sovereign Power.'

(c) The State is the Law, the moral law as well as the juridical law. Thus it cannot be subject to any other standard, and especially not to the yardstick of civil morality. Its historical responsibilities are deeper. Its only judge is the History of the World. The only possible standard of a judgement upon the state is the world historical success of its actions. And this success, the power and expansion of the state, must overrule all other considerations in the private life of the citizens ; right is what serves the might of the state. This is the theory of Plato ; it is the theory of modern totalitarianism ; and it is the theory of Hegel : it is the Platonic-Prussian morality. 'The State', Hegel writes??, 'is the realization of the ethical Idea. It is the ethical Spirit as revealed, self-conscious, substantial Will.' Consequently, there can be no ethical idea above the state. 'When the particular Wills of the States can come to no agreement, their controversy can be decided only by war. What offence shall be regarded as a breach of treaty, or as a violation of respect and honour, must remain indefinite... The State may identify its infinitude and honour with every one of its aspects.' For '.. the relation among States fluctuates, and no judge exists to adjust their differences.' In other words : 'Against the State there is no power to decide what is.. right... States.. may enter into mutual agreements, but they are, at the same time, superior to these agreements' (i.e. they need not keep them)... 'Treaties between states.. depend ultimately on the particular sovereign wills, and for that reason, they must remain unreliable.'

Thus only one kind of 'judgement' can be passed on World-Historical deeds and events : their result, their success. Hegel can therefore identify?? 'the essential destiny - the absolute aim, or, what amounts to the same - the true result of the World's History'. To be successful, that is, to emerge as the strongest from the dialectical struggle of the different National Spirits for power, for world-domination, is thus the only and ultimate aim and the only basis of judgement ; or as Hegel puts it more poetically : 'Out of this dialectic rises the universal Spirit, the unlimited World-Spirit, pronouncing its judgement - and its judgement is the highest - upon the finite Nations of the World's History ; for the History of the World is the World's court of justice.'

Freyer has very similar ideas, but he expresses them more frankly?? : 'A manly, a bold tone prevails in history. He who has the grip has the booty. ‘He who makes a faulty move is done for.. he who wishes to hit his mark must know how to shoot.' But all these ideas are, in the last instance, only repetitions of Heraclitus : 'War.. proves some to be gods and others to be mere men, by turning the latter into slaves and the former into masters... War is just.' According to these theories, there can be no moral difference between a war in which we are attacked, and one in which we attack our neighbours ; the only possible difference is success. F. Haiser, author of the book Slavery : Its Biological Foundation and Moral Justification (1923), a prophet of a master race and of a master morality, argues : 'If we are to defend ourselves, then there must also be aggressors.. ; if so, why then should we not be the aggressor ourselves ?' But even this doctrine (its predecessor is Clausewitz's famous doctrine that an attack is always the most effective defence) is Hegelian ; for Hegel, when speaking about offences that lead to war, not only shows the necessity for a 'war of defence' to turn into a 'war of conquest', but he informs us that some states which have a strong individuality 'will naturally be more inclined to irritability', in order to find an occasion and a field for what he euphemistically calls 'intense activity'.

With the establishment of historical success as the sole judge in matters relating to states or nations, and with the attempt to break down such moral distinctions as those between attack and defence, it becomes necessary to argue against the morality of conscience. Hegel does it by establishing what he calls 'true morality or rather social virtue' in opposition to 'false morality'. Needless to say, this 'true morality' is the Platonic totalitarian morality, combined with a dose of historicism, while the 'false morality' which he also describes as 'mere formal rectitude' is that of personal conscience. 'We may fairly', Hegel writes??, 'establish the true principles of morality, or rather of social virtue, in opposition to false morality ; for the History of the World occupies a higher ground than that of morality which is personal in character - the conscience of individuals, their particular will and mode of action... What the absolute aim of Spirit requires and accomplishes, what Providence does, transcends.. the imputation of good and bad motives... Consequently it is only formal rectitude, deserted by the living Spirit and by God, which those who take their stand upon ancient right and order maintain.' (That is to say, the moralists who refer, for example, to the New Testament.) 'The deeds of Great Men, of the Personalities of World History,.. must not be brought into collision with irrelevant moral claims. The Litany of private virtues, of modesty, humility, philanthropy, and forbearance, must not be raised against them. The History of the World can, in principle, entirely ignore the circle within which morality.. lies.' Here, at last, we have the perversion of the third of the ideas of 1789, that of fraternity, or, as Hegel says, of philanthropy, together with the ethics of conscience. This Platonic-Hegelian historicist moral theory has been repeated over and over again. The famous historian E. Meyer, for example, speaks of the 'flat and moralizing evaluation, which judges great political undertakings with the yardstick of civil morality, ignoring the deeper, the truly moral factors of the State and of historical responsibilities'.

When such views are held, then all hesitation regarding propagandist lying and distortion of the truth must disappear, particularly if it is successful in furthering the power of the state. Hegel's approach to this problem, however, is rather subtle : 'A great mind has publicly raised the question', he writes??, 'whether it is permissible to deceive the People. The answer is that the People will not permit themselves to be deceived concerning their substantial basis' (F. Haiser, the master moralist, says : 'no error is possible where the racial soul dictates') 'but it deceives itself', Hegel continues, 'about the way it knows this... Public opinion deserves therefore to be esteemed as much as to be despised... Thus to be independent of public opinion is the first condition of achieving anything great... And great achievements are certain to be subsequently recognized and accepted by public opinion..' In brief, it is always success that counts. If the lie was successful, then it was no lie, since the People were not deceived concerning their substantial basis.

(d) We have seen that the State, particularly in its relation to other states, is exempt from morality - it is a-moral. We may therefore expect to hear that war is not a moral evil, but morally neutral. However, Hegel's theory defies this expectation ; it implies that war is good in itself. 'There is an ethical element in war', we read??. 'It is necessary to recognize that the Finite, such as property and life, is accidental. This necessity appears first under the form of a force of nature, for all things finite are mortal and transient. In the ethical order, in the State, however,.. this necessity is exalted to a work of freedom, to an ethical law... War.. now becomes an element.. of.. right... War has the deep meaning that by it the ethical health of a nation is preserved and their finite aims uprooted... War protects the people from the corruption which an everlasting peace would bring upon it. History shows phases which illustrate how successful wars have checked internal unrest... These Nations, torn by internal strife, win peace at home as a result of war abroad.' This passage, taken from the Philosophy of Law, shows the influence of Plato's and Aristotle's teaching on the 'dangers of prosperity' ; at the same time, the passage is a good instance of the identification of the moral with the healthy, of ethics with political hygiene, or of right with might ; this leads directly, as will be seen, to the identification of virtue and vigour, as the following passage from Hegel's Philosophy of Law shows. (It follows immediately after the passage already mentioned, dealing with nationalism as a means of getting over one's feelings of inferiority, and thereby suggests that even a war can be an appropriate means to that noble end.) At the same time, the modern theory of the virtuous aggressiveness of the young or have-not countries against the wicked old possessor countries is clearly implied. 'A Nation', Hegel writes, 'is moral, virtuous, vigorous while it is engaged in realizing its grand objects... But this having been attained, the activity displayed by the Spirit of the People.. is no longer needed... The Nation can still accomplish much in war and peace.. but the living substantial soul itself may be said to have ceased its activity... The Nation lives the same kind of life as the individual when passing from maturity to old age... This mere customary life (the watch wound up and going of itself) is that which brings on natural death... Thus perish individuals, thus perish peoples by a natural death... A people can only die a violent death when it has become naturally dead in itself.' (The last remarks belong to the decline-and-fall tradition.)

Hegel's ideas on war are surprisingly modern ; he even visualizes the moral consequences of mechanization ; or rather, he sees in mechanical warfare the consequences of the ethical Spirit of totalitarianism or collectivism?? : 'There are different kinds of bravery. The courage of the animal, or the robber, the bravery that arises from a sense of honour, chivalrous bravery, are not yet the true forms of bravery. In civilized nations true bravery consists in the readiness to give oneself wholly to the service of the State so that the individual counts but as one among many.' (An allusion to universal conscription.) 'Not personal valour is significant ; the important aspect lies in self-subordination to the universal. This higher form causes.. bravery to appear more mechanical... Hostility is directed not against separate individuals, but against a hostile whole' (here we have an anticipation of the principle of total war) ; '.. personal valour appears as impersonal. This principle has caused the invention of the gun ; it is not a chance invention..' In a similar vein, Hegel says of the invention of gunpowder : 'Humanity needed it, and it made its appearance forthwith.' (How kind of Providence !)

It is thus purest Hegelianism when the philosopher E. Kaufmann, in 1911, argues against the Kantian ideal of a community of free men : 'Not a community of men of free will but a victorious war is the social ideal.. it is in war that the State displays its true nature'?? ; or when E. Banse, the famous 'military scientist', writes in 1933 : 'War means the highest intensification.. of all spiritual energies of an age.. it means the utmost effort of the people's Spiritual power.. Spirit and Action linked together. Indeed, war provides the basis on which the human soul may manifest itself at its fullest height... Nowhere else can the Will.. of the Race.. rise into being thus integrally as in war.' And General Ludendorff continues in 1935 : 'During the years of the so-called peace, politics.. have only a meaning inasmuch as they prepare for total war.' He thus only formulates more precisely an idea voiced by the famous essentialist philosopher Max Scheler in 1915 : 'War means the State in its most actual growth and rise : it means politics.' The same Hegelian doctrine is reformulated by Freyer in 1935 : 'The State, from the first moment of its existence, takes its stand in the sphere of war... War is not only the most perfect form of State activity, it is the very element in which the State is embedded ; war delayed, prevented, disguised, avoided, must of course be included in the term.' But the boldest conclusion is drawn by F. Lenz, who, in his book The Race as the Principle of Value, tentatively raises the question : 'But if humanity were to be the goal of morality, then have not we, after all, taken the wrong side ?' and who, of course, immediately dispels this absurd suggestion by replying : 'Far be it from us to think that humanity should condemn war : nay, it is war that condemns humanity.' This idea is linked up with historicism by E. Jung, who remarks : 'Humanitarianism, or the idea of mankind.. is no regulator of history.' But it was Hegel's predecessor, Fichte, called by Schopenhauer the 'wind-bag', who must be credited with the original anti-humanitarian argument. Speaking of the word 'Humanity', Fichte wrote : 'If one had presented, to the German, instead of the Roman word "humaneness" its proper translation, the word "manhood", then.. he would have said : "It is after all not so very much to be a man instead of a wild beast !" This is how a German would have spoken - in a manner which would have been impossible for a Roman. For in the German language, 'manhood' has remained a merely phenomenal notion (이 문장에서 ‘manhood'는 “manhood"로 표기함이 옳다. 그 까닭은 이 문장에서 작은 따옴표 ‘ ’가 큰따옴표 역할을 하면서 피히테의 말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역자 주) ; it has never become a super-phenomenal idea, as it did among the Romans. Whoever might attempt to smuggle, cunningly, this alien Roman symbol' (viz., the word 'humaneness') 'into the language of the Germans, would thereby manifestly debase their ethical standards..' Fichte's doctrine is repeated by Spengler, who writes : 'Manhood is either a zoological expression or an empty word' ; and also by Rosenberg, who writes : 'Man's inner life became debased when.. an alien motive was impressed upon his mind : salvation, humanitarianism, and the culture of humanity.'

Kolnai, to whose book I am deeply indebted for a great deal of material to which I would otherwise have had not access, says?? most strikingly : 'All of us.. who stand for.. rational, civilized methods of government and social organization, agree that war is in itself an evil...' Adding that in the opinion of most of us (except the pacifists) it might become, under certain circumstances, a necessary evil, he continues : 'The nationalist attitude is different, though it need not imply a desire for perpetual or frequent warfare. It sees in a war a good rather than an evil, even if it be a dangerous good, like an exceedingly heady wine that is best reserved for rare occasions of high festivity.' War is not a common and abundant evil but a precious though rare good : - this sums up the views of Hegel and of his followers.

One of Hegel's feats was the revival of the Heraclitean idea of fate ; and he insisted?? that this glorious Greek idea of fate as expressive of the essence of a person, or of a nation, is opposed to the nominalist Jewish idea of universal laws, whether of nature, or of morals. The essentialist doctrine of fate can be derived (as shown in the last chapter) from the view that the essence of a nation can reveal itself only in its history. It is not 'fatalistic' in the sense that it encourages inactivity ; 'destiny' is not to be identified with 'predestination'. The opposite is the case. oneself, one's real essence, one's innermost soul, the stuff one is made of (will and passion rather than reason) are of decisive importance in the formation of one's fate. Since Hegel's amplification of this theory, the idea of fate or destiny has become a favourite obsession, as it were, of the revolt against freedom. Kolnai rightly stresses the connection between racialism (it is fate that makes one a member of one's race) and hostility to freedom : 'The principle of Race', Kolnai says??, 'is meant to embody and express the utter negation of human freedom, the denial of equal rights, a challenge in the face of mankind.' And he rightly insists that racialism tends 'to oppose Liberty by Fate, individual consciousness by the compelling urge of the Blood beyond control and argument'. Even this tendency is expressed by Hegel, although as usual in a somewhat obscure manner : 'What we call principle, aim, destiny, or the nature or idea of Spirit', Hegel writes, 'is a hidden, undeveloped essence, which as such - however true in itself - is not completely real... The motive power that.. gives them.. existence is the need, instinct, inclination and passion of men.' The modern philosopher of total education, E. Krieck, goes further in the direction of fatalism : 'All rational will and activity of the individual is confined to his everyday life ; beyond this range he can only achieve a higher destiny and fulfilment in so far as he is gripped by superior powers of fate.' It sounds like personal experience when he continues : 'Not through his own rational scheming will he be made a creative and relevant being, only through forces that work above and beneath him, that do not originate in his own self but sweep and work their way through his self..' (But it is an unwarranted generalization of the most intimate personal experiences when the same philosopher thinks that not only 'the epoch of "objective" or "free" science is ended', but also that of 'pure reason'.)

Together with the idea of fate, its counterpart, that of fame is also revived by Hegel : 'Individuals.. are instruments... What they personally gain.. through the individual share they take in the substantial business (prepared and appointed independently of them) is.. Fame, which is their reward.'?? And Stapel, a propagator of the new paganized Christianity, promptly repeats : 'All great deeds were done for the sake of fame or glory.' But this 'Christian' moralist is even more radical than Hegel : 'Metaphysical glory is the one true morality', he teaches, and the 'Categorical Imperative' of this one true morality runs accordingly : 'Do such deeds as spell glory !'

(e) Yet glory cannot be acquired by everybody ; the religion of glory implies anti-equalitarianism - it implies a religion of 'Great Men'. Modern racialism accordingly 'knows no equality between souls, no equality between men'?? (Rosenberg). Thus there are no obstacles to adopting the Leader Principle from the arsenal of the perennial revolt against freedom, or as Hegel calls it, the idea of the World Historical Personality. This Idea is one of Hegel's favourite themes. In discussing the blasphemous 'question whether it is permissible to deceive a people' (see above), he says : 'In public opinion all is false and true, but to discover the truth in it is the business of the Great Man. The Great Man of his time is he who expresses the will of his time ; who tells his time what it wills ; and who carries it out. He acts according to the inner Spirit and Essence of his time, which he realizes. And he who does not understand how to despise public opinion, as it makes itself heard here and there, will never accomplish anything great.' This excellent description of the Leader - the Great Dictator - as a publicist is combined with an elaborate myth of the Greatness of the Great Man, that consists in his being the foremost instrument of the Spirit in history (이 문장에서 관계대명사 that은 앞에 쉼표를 없애거나 쉼표를 그냥 두고 that을 which로 바꾸어야 한다. that은 관계대명사 계속적 용법으로 쓸 수 없다 - 역자 주). In this discussion of 'Historical Men - World Historical Individuals' Hegel says : 'They were practical, political men. But at the same time they were thinking men, who had an insight into the requirements of the time - into what was ripe for development... World Historical Men - the Heroes of an epoch - must therefore be recognized as its clear-sighted ones ; their deeds, their words are the best of that time... It was they who best understood affairs ; from whom others learned, and approved, or at least acquiesced in - their policy. For the Spirit which has taken this fresh step in History is the inmost soul of all individuals ; but in a state of unconsciousness which aroused the Great Men... Their fellows, therefore, follow those Soul-Leaders, for they feel the irresistible power of their own inner Spirit thus embodied.' But the Great Man is not only the man of greatest understanding and wisdom but also the Man of Great Passions - foremost, of course, of political passions and ambitions. He is thereby able to arouse passions in others. 'Great Men have formed purposes to satisfy themselves, not others... They are Great Men because they willed and accomplished something great... Nothing Great in the World has been accomplished without passion... This may be called the cunning of reason - that it sets the passions to work for itself... Passion, it is true, is not quite the suitable word for what I wish to express. I mean here nothing more than human activity as resulting from private interests - particular, or if you will, self-seeking designs - with the qualification that the whole energy of will and character is devoted to their attainment... Passions, private aims, and the satisfaction of selfish desires are.. most effective springs of action. Their power lies in the fact that they respect none of the limitations which justice and morality would impose on them ; and that these natural impulses have a more direct influence over their fellow-men than the artificial and tedious discipline that tends to order and self-restraint, law and morality.' From Rousseau onwards, the Romantic school of thought realized that man is not mainly rational. But while the humanitarians cling to rationality as an aim, the revolt against reason exploits this psychological insight into the irrationality of man for its political aims. The fascist appeal to 'human nature' is to our passions, to our collectivist mystical needs, to 'man the unknown'. Adopting Hegel's words just quoted, this appeal may be called the cunning of the revolt against reason (분사구문 Adopting Hegel's words just quoted는 주문장의 주어가 this appeal이므로 분사구문으로 쓸 수 없고 If we adopt Hegel's words just quoted로 써야한다 - 역자 주). But the height of this cunning is reached by Hegel in this boldest dialectical twist of his. While paying lip-service to rationalism, while talking more loudly about 'reason' than any man before or after him, he ends up in irrationalism ; in an apotheosis not only of passion, but of brutal force : 'It is', Hegel writes, 'the absolute interest of Reason that this Moral Whole' (i.e. the State) 'should exist ; and herein lies the justification and merit of heroes, the founders of States - however cruel they may have been... Such men may treat other great and even sacred interests inconsiderately... But so mighty a form must trample down many an innocent flower ; it must crush to pieces many an object on its path.'

(f) The conception of man as being not so much a rational as an heroic animal was not invented by the revolt against reason ; it is a typical tribalist ideal. We have to distinguish between this ideal of the Heroic Man and a more reasonable respect for heroism. Heroism is, and always will be, admirable ; but our admiration should depend, I think, very largely on our appreciation of the cause to which the hero has devoted himself. The heroic element in gangsterism, I think, deserves little appreciation. But we should admire Captain Scott and his party, and if possible even more, the heroes of X-ray or of Yellow Fever research ; and certainly those who defend freedom.

The tribal ideal of the Heroic Man, especially in its fascist form, is based upon different views. It is a direct attack upon those things which make heroism admirable to most of us - such things as the furthering of civilization. For it is an attack on the idea of civil life itself ; this is denounced as shallow and materialistic, because of the idea of security which it cherishes. Live dangerously ! is its imperative ; the cause for which you undertake to follow this imperative is of secondary importance ; or as W. Best says?? : 'Good fighting as such, not a "good cause".. is the thing that turns the scale... It merely matters how, not for what object we fight'. Again we find that this argument is an elaboration of Hegelian ideas : 'In peace', Hegel writes, 'civil life becomes more extended, every sphere is hedged in.. and at last all men stagnate... From the pulpits much is preached concerning the insecurity, vanity, and instability of temporal things, and yet everyone.. thinks that he, at least, will manage to hold on to his possessions... It is necessary to recognize.. property and life as accidental.. Let insecurity show its earnest activity !' In another place, Hegel paints a gloomy picture of what he calls 'mere customary life' ; he seems to mean by it something like the normal life of a civilized community : 'Custom is activity without opposition.. in which fullness and zest is out of the question - a merely external and sensuous' (i.e. what some people in our day like to call 'materialist') 'existence which has ceased to throw itself enthusiastically into its object.., an existence without intellect or vitality.' Hegel, always faithful to his historicism, bases his anti-utilitarian attitude (in distinction to Aristotle's utilitarian comments upon the 'dangers of prosperity') on his interpretation of history : 'The History of the World is no theatre of happiness. Periods of happiness are blank pages in it, for they are periods of harmony.' Thus, liberalism, freedom and reason are, as usual, objects of Hegel's attacks. The hysterical cries : We want our history ! We want our destiny ! We want our fight ! We want our chains ! resound through the edifice of Hegelianism, through this stronghold of the closed society and of the revolt against freedom.

In spite of Hegel's, as it were, official optimism, based on his theory that what is rational is real, there are features in him to which one can trace the pessimism which is so characteristic of the more intelligent among the modern racial philosophers ; not so much, perhaps, of the earlier ones (as Lagarde, Treitschke, or Moeller van den Bruck) but of those who came after Spengler, the famous historicist. Neither Spengler's biological holism, intuitive understanding, Group-Spirit and Spirit of the Age, nor even his Romanticism, helps this fortune-teller to escape a very pessimistic outlook. An element of blank despair is unmistakable in the 'grim' activism that is left to those who foresee the future and feel instrumental in its arrival. It is interesting to observe that this gloomy view of affairs is equally shared by both wings of the racialists, the 'Atheist' as well as the 'Christian' wing.

Stapel, who belongs to the latter (but there are others, for example Gogarten), writes?? : 'Man is under the sway of original sin in his totality.. The Christian knows that it is strictly impossible for him to live except in sin.. Therefore he steers clear of the pettiness of moral hair-splitting... An ethicized Christianity is a counter-Christianity through and through... God has made this world perishable, it is doomed to destruction. May it, then, go to the dogs according to destiny ! Men who imagine themselves capable of making it better, who want to create a "higher" morality, are starting a ridiculous petty revolt against God... The hope of Heaven does not mean the expectation of a happiness of the blessed ; it means obedience and War-Comradeship.' (The return to the tribe.) 'If God orders His man to go to hell, then his sworn adherent.. will accordingly go to hell... If He allots to him his eternal pain, this has to be borne too... Faith is but another word for victory. It is victory that the Lord demands..'

A very similar spirit lives in the work of the two leading philosophers of contemporary Germany, the 'existentialists' Heidegger and Jaspers, both originally followers of the essentialist philosophers Husserl and Scheler. Heidegger has gained fame by reviving the Hegelian Philosophy of Nothingness : Hegel had 'established' the theory?? that 'Pure Being' and 'Pure Nothingness' are identical ; he had said that if you try to think out the notion of a pure being, you must abstract from it all particular 'determination of an object', and therefore, as Hegel puts it - 'nothing remains'. (This Heraclitean method might be used for proving all kinds of pretty identities, such as that of pure wealth and pure poverty, pure mastership and pure servitude, pure Aryanism and pure Judaism.) Heidegger ingeniously applies the Hegelian theory of Nothingness to a practical Philosophy of Life, or of 'Existence'. Life, Existence, can be understood only by understanding Nothingness. In his What is Metaphysics ? Heidegger says : 'The enquiry should be into the Existing or else into - nothing ; .. into the existing alone, and beyond it into - Nothingness.' The enquiry into nothingness ('Where do we search for Nothingness ? Were can we find Nothingness ?') is made possible by the fact that 'we know Nothingness' ; we know it through fear : 'Fear reveals Nothingness.'

Fear ; the fear of nothingness ; the anguish of death ; these are the basic categories of Heidegger's Philosophy of Existence ; of a life whose true meaning it is?? 'to be cast down into existence, directed towards death' (이 문장에서 it은 불필요하다. 문법적 오류로 보인다 - 역자 주). Human existence is to be interpreted as a 'Thunderstorm of Steel' ; the 'determined existence' of a man is 'to be a self, passionately free to die.. in full selfconsciousness and anguish'. But these gloomy confessions are not entirely without their comforting aspect. The reader need not be quite overwhelmed by Heidegger's passion to die. For the will to power and the will to live appear to be no less developed in him than in his master, Hegel. 'The German University's Will to the Essence', Heidegger writes in 1933, 'is a Will to Science ; it is a Will to the historico-spiritual mission of the German Nation, as a Nation experiencing itself in its State. Science and German Destiny must attain Power, especially in the essential Will.' This passage, though not a monument of originality or clarity, is certainly one of loyalty to his masters ; and those admirers of Heidegger who in spite of all this continue to believe in the profundity of his 'Philosophy of Existence' might be reminded of Schopenhauer's words : 'Who can really believe that truth also will come to light, just as a by-product ?' And in view of the last of Heidegger's quotations, they should ask themselves whether Schopenhauer's advice to a dishonest guardian has not been successfully administered by many educationists to many promising youths, inside and outside of Germany. I have in mind the passage : 'Should you ever intend to dull the wits of a young man and to incapacitate his brains for any kind of thought whatever, then you cannot do better than give him Hegel to read. For these monstrous accumulations of words that annul and contradict one another drive the mind into tormenting itself with vain attempt to think anything whatever in connection with them, until finally it collapse from sheer exhaustion. Thus any ability to think is so thoroughly destroyed that the young man will ultimately mistake empty and hollow verbiage for real thought. A guardian fearing that his ward might become too intelligent for his schemes might prevent this misfortune by innocently suggesting the reading of Hegel.'

Jaspers declares?? his nihilist tendencies more frankly even, if that is possible, than Heidegger. only when you are faced with Nothingness, with annihilation, Jaspers teaches, will you be able to experience and appreciate Existence. In order to live in the essential sense, one must live in a crisis. In order to taste life one has not only to risk, but to lose ! - Jaspers carries the historicist idea of change and destiny recklessly to its most gloomy extreme. All things must perish ; everything ends in failure : in this way does the historicist law of development present itself to his disillusioned intellect. But face destruction - and you will get the thrill of your life ! only in the 'marginal situation', on the edge between existence and nothingness, do we really live. The bliss of life always coincides with the end of its intelligibility, particularly with extreme situations of the body, above all with bodily danger. You cannot taste life without tasting failure. Enjoy yourself perishing !

This is the philosophy of the gambler - of the gangster. Needless to say, this demoniac 'religion of Urge and Fear, of the Triumphant or else the Hunted Beast' (Kolnai??), this absolute nihilism in the fullest sense of the word, is not a popular creed. It is a confession characteristic of an esoteric group of intellectuals who have surrendered their reason, and with it, their humanity.

There is another Germany, that of the ordinary people whose brains have not been poisoned by a devastating system of higher education. But this 'other' Germany is certainly not that of her thinkers. It is true, Germany had also some 'other' thinkers (foremost among them, Kant) ; however, the survey just finished is not encouraging, and I fully sympathize with Kolnai's remark?? : 'Perhaps it is not.. a paradox to solace our despair at German culture with the consideration that, after all, there is another Germany of Prussian Generals besides the Germany of Prussian Thinkers.'

VI

I have tried to show the identity of Hegelian historicism with the philosophy of modern totalitarianism. This identity is seldom clearly enough realized. Hegelian historicism has become the language of wide circles of intellectuals, even of candid 'anti-fascists' and 'leftists'. It is so much a part of their intellectual atmosphere that, for many, it is no more noticeable, and its appalling dishonesty no more remarkable, than the air they breathe. Yet some racial philosophers are fully conscious of their indebtedness to Hegel. An example is H. O. Ziegler, who in his study, The Modern Nation, rightly describes?? the introduction of Hegel's (and A. Mueller's) idea of 'collective Spirits conceived as Personalities', as the 'Copernican revolution in the Philosophy of Nation'. Another illustration of this awareness of the significance of Hegelianism, which might specially interest British readers, can be found in the judgements passed in a recent German history of British philosophy (by R. Metz, 1935). A man of the excellence of T. H. Green is here criticized, not of course because he was influenced by Hegel, but because he 'fell back into the typical individualism of the English... He shrank from such radical consequences as Hegel has drawn'. Hobhouse, who fought bravely against Hegelianism, is contemptuously described as representing 'a typical form of bourgeois liberalism, defending itself against the omnipotence of the State because it feels its freedom threatened thereby' - a feeling which to some people might appear well founded. Bosanquet of course is praised for his genuine Hegelianism. But the significant fact is that this is all taken perfectly seriously by most of the British reviewers.

I mention this fact mainly because I wish to show how difficult and, at the same time, how urgent it is to continue Schopenhauer's fight against this shallow cant (which Hegel himself accurately fathomed when describing his own philosophy as of 'the most lofty depth'). At least the new generation should be helped to free themselves from this intellectual fraud, the greatest, perhaps, in the history of our civilization and its quarrels with its enemies. Perhaps they will live up to the expectations of Schopenhauer, who in 1840 prophesied?? that 'this colossal mystification will furnish posterity with an inexhaustible source of sarcasm'. (So far the great pessimist has proved a wild optimist concerning posterity.) The Hegelian farce has done enough harm. We must stop it. We must speak - even at the price of soiling ourselves by touching this scandalous thing which, unfortunately without success, was so clearly exposed a hundred years ago. Too many philosophers have neglected Schopenhauer's incessantly repeated warnings ; they neglected them not so much at their own peril (they did not fare badly) as at the peril of those whom they taught, and at the peril of mankind.

It seems to me a fitting conclusion to this chapter if I leave the last word to Schopenhauer, the anti-nationalist who said of Hegel a hundred years ago : 'He exerted, not on philosophy alone but on all forms of German literature, a devastating, or more strictly speaking, a stupefying, one could also say, a pestiferous, influence. To combat this influence forcefully and on every occasion is the duty of everybody who is able to judge independently. For if we are silent, who will speak ?'

-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Vol. II Hegel and Marx", Karl R. Popper -

12장_헤겔과_새로운_종족주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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