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예언
18 장 : 사회주의의 도래
I
경제적 역사주의는 마르크스가 우리 사회 속의 임박한 변혁을 분석하는 데 적용하는 방법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모든 특정 사회체제는 다음 역사적 기간을 만들어내는 힘을 창조해야하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파괴해야 한다. 봉건제도를 충분히 통찰하여 분석한 것은, 산업혁명 바로 전에 행하여졌는데, 봉건제도를 막 파괴하려던 힘을 아마도 탐지하였을 것이고, 다가오는 기간인 자본주의가 지니는 가장 중요한 특징을 아마도 예언하였을 것이다. 유사하게, 자본주의의 발전을 분석하면, 우리는 자본주의 파괴를 위하여 작동하는 힘을 탐지하여,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역사적 기간이 지니는 가장 중요한 특징들을 아마도 예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까닭은 모든 사회체제 중에서 자본주의가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확실히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산에 관한 물질적 조건과, 그와 함께, 인간 생활의 방식은 자본주의 하에서 그것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그렇게 빠르게 변한 적이 없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토대를 이런 식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자신을 변화시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기간을 만들어내게 되어있다.
위에서 논의된 교설인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방법에 따르면, 자본주의를 파괴하거나 변형시킬 근본적인 즉, 필수적인 힘은 생산에 관한 물질적 수단의 진화에서 탐색되어야 한다. 이 근본적인 힘이 일단 발견되면, 그 힘이 사법적이고 정치적인 체제에 뿐만 아니라 계급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할 수 있다.
그가 ‘자본주의’라고 불렀던 기간이 지녔던 근본적인 경제적 힘과 자살적인 역사적 경향들에 대한 분석은 마르크스에 의하여 그의 생애의 위대한 작품인 자본론 속에서 행하여졌다. 그가 다루었던 역사적 기간과 경제체제는, 약 18세기 중반부터 1867년(자본론이 초판으로 발행되었던 해)까지로, 서유럽의 것이었는데 특히 영국의 것이었다. 마르크스가 서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저서의 궁극적 목표’는 현대사회의 운명을 예언하기 위하여 ‘현대사회의 움직임에 관한 경제적 법칙을 밝히는 것’이었다. 부차적 목표는 자본주의를 변호하는 사람들에게 반박하는 것, 버크(Burke)와 함께 ‘상업의 법칙은 자연의 법칙이며, 그러므로 하느님의 법칙이다’라고 선언하는, 생산의 자본주의적 양식에 관한 법칙을 마치 자연에 관한 철칙인양 제시했던 경제학자들에게 반박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이 주장되는 철칙들을 그가 사회에 관한 유일한 움직일 수 없는 법칙 즉, 사회의 발전법칙들이라고 주장한 법칙들과 대조했다 ; 그리고 그는 경제학자들이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법칙이라고 선언했던 것들은 실제로, 자본주의 자체와 함께 파괴될 운명을 지닌, 일시적인 규칙성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역사적 예언은 촘촘하게 짜인 주장으로서 묘사될 수 있다. 그러나 자본론은 내가 이 주장의 ‘첫 번째 단계’라고 부를 것뿐인, 자본주의가 지닌 근본적인 경제적 힘과 그 힘이 계급들 사이의 관계에 미친 영향들을 분석한 것을 상술한다. ‘두 번째 단계’는 사회혁명은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낳으며, ‘세 번째 단계’는 계급이 없는 즉, 사회주의 국가의 출현을 예언하는데 이 두 단계는 개략적으로 설명되기만 한다. 이 장에서, 나는 먼저 내가 마르크스주의적 주장의 세 단계라고 부른 것을 보다 명료하게 설명할 것이고 그 다음에 세 번째 단계를 자세하게 논의할 것이다. 다음 두 장에서, 나는 두 번째와 첫 번째 단계를 논의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단계의 순서를 뒤집는 것은 상세한 비판적 토론을 위하여 매우 좋은 것으로 판명된다 ; 이점(利點)은 주장 속 각 단계의 전제가 지니는 진실성을 편견 없이 상정(想定)하는 것과, 이 특정 단계에서 도달된 결론이 전제를 고찰하여 반드시 사실인지의 의문에 완전히 집중하는 것은, 그렇다면 더 쉽다는 사실에 놓여있다. 여기에 세 단계가 있다.
이 주장의 첫 번째 단계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분석한다. 그는, 자신이 생산수단의 증가하는 축적이라고 부르는 것에 뿐만 아니라 기술적 향상에도 관련하여, 작업의 생산성이 증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곳에서 출발하여, 그 주장은 계급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의 영역 속에서 이 경향이 점점 더 소수의 손 안에 점점 더 많은 부(富)를 분명히 축적하게 된다는 결론으로 그를 이끌어간다 ; 다시 말해서, 부(富)와 비참함이 증대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 지배계급인 부르주아 계급에게는 부(富)의 증대, 피지배계급인 노동자들에게는 비참함의 증대. 첫 번째 단계는 20 장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자본주의와 그 운명’).
주장의 두 번째 단계에서, 첫 번째 단계의 결과는 당연시된다. 그것으로부터, 두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 첫째는, 작은 지배 부르주아 계급과 착취당하는 큰 노동계급을 제외하고, 모든 계급은 사라지거나 무의미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 ; 두 번째로, 이 두 계급 사이의 증가하는 긴장이 틀림없이 사회혁명을 야기한다는 것. 이 단계는 19 장에서 분석될 것이다 (‘사회혁명’).
주장의 세 번째 단계에서, 순서대로 두 번째 단계의 결론이 당연시 된다; 그리고 부르주아 계급에 대하여 노동자들이 승리한 다음에 한 계급만으로 구성된 사회, 그러므로 계급 없는 사회이자 착취 없는 사회가 올 것이라는 최종적 결론에 도달한다 ;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가 올 것이라는 결론.
II
이제 나는 세 번째 단계를, 사회주의 도래에 대한 최종적 예언을, 토론하는 데로 나아간다.
이 단계의 주요 전제들은, 다음 단계에서 비판될 것이지만 여기서는 당연시되는데, 이것들이다 : 자본주의의 발달은 작은 부르주아 계급과 거대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두 계급만 제외하고 모든 계급의 소멸을 불러온다 ; 그리고 비참함의 증가 때문에 후자(後者)는 자신을 착취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결론은 첫째로 노동자들은 투쟁에서 분명히 승리하고, 둘째로, 부르주아 계급을 제거함으로써, 오직 한 계급만 남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틀림없이 계급 없는 사회를 설립한다.
이제 나는 전제를 (우리가 의문시 할 필요가 없는 몇 가지 사소한 전제와 연결하여) 고찰하여 첫 번째 결론이 반드시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한 준비가 되어있다. 부르주아 계급의 숫자가 작을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의 물리적 존재인 그들의 ‘신진대사’는 프롤레타리아에게 의존한다. 착취자인 수벌은 피착취자가 없으면 굶주린다 ; 아무튼, 착취자인 수벌이 피착취자를 파괴하면 수벌로서 자기 자신의 일생을 끝장낸다. 그리하여 그는 승리할 수가 없다 ; 기껏해야 그는 길어진 투쟁을 계속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는 자신의 물질적 삶을 위하여 자신을 착취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노동자가 기존질서에 도전하겠다고 결심을 하면, 착취자에게는 더 이상 필수적인 사회적 기능이 없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존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도 자신의 계급 적(敵)을 격파할 수 있다. 따라서 단지 한 가지 가능한 결과만 있다. 부르주아 계급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결론은 반드시 사실일까 ? 노동자들의 승리가 계급 없는 사회를 틀림없이 낳는다는 것은 사실일까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두 계급 중에서 한 계급만 남는다는 사실을 고찰하면, 계급 없는 사회가 오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 아니다. 전투에 참가하는 두 개의 계급이 있다면 그 두 계급이 거의 개인처럼 행동한다고 우리가 인정한다 할지라도, 계급들은 개인과 같지 않다. 마르크스 자신의 분석에 따르면, 한 계급의 통합성 즉, 단결은 그들이 지닌 계급의식의 한 부분이고, 따라서 주로 계급투쟁의 산물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형성하는 개인들이 공동의 계급 적(敵)에 대한 투쟁압력이 그친 후에도 왜 자신들의 계급 통합성을 지녀야 하는지 적절한 이유가 없다. 이해와 관련된 어떤 잠재적 갈등이 이제 이전에 단결했던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새로운 계급으로 나누어서, 새로운 계급투쟁으로 발전할 것 같다. (변증법의 원리는 새로운 반론[反論] 즉, 새로운 계급 대립이 분명히 곧 발달한다고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변증법은 충분히 애매모호하고 유통성이 있어서 어떤 것도 조금이라도 설명하므로, 그러므로 계급 없는 사회 또한, 반론적 전개에 대한 변증법적으로 필요한 종합[綜合]으로서, 설명한다).
가장 개연적인 상황전개는, 물론, 승리의 순간에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들이 - 간부들과 함께, 권력을 위한 투쟁과 다양한 숙청에서 살아남은 혁명지도자들 - 새로운 계급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 일종의 새로운 귀족정치나 관료주의인 새로운 사회의 새로운 지배계급 ; 그리고 그들이 이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하리라는 것은 매우 개연성이 높다. 이 짓을 그들은, 혁명이념을 가능한 한 많이 간직함으로써, (파레토[Pareto]가 모든 통치자들에게 준 충고에 순응하여), 이 감정을 파괴하려는 자신들의 노력에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에 이 감정을 이용하면서, 가장 편리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이 반(反)혁명적 상황전개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한다면 그들은 혁명이념을 최대한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 충분히 개연적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으로, 혁명이념은 변명적 목적으로 그들에게 봉사할 것이다 : 혁명이념은 그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정당화로서, 그리고 그 권력을 안정화시키는 수단으로서, 그들에게 작동할 것이다 ; 요컨대, 새로운 ‘인민들을 위한 아편’으로서.
이런 종류의 일은, 마르크스 자신의 전제를 기초로, 발생할 것 같은 사건이다. 그러나 역사적 예언을 하는 것은 (혹은 많은 혁명의 과거 역사를 해석하는 것) 여기서 나의 임무가 아니다. 나는 마르크스의 결론인 계급 없는 사회의 도래 예언이 전제를 고찰하여 틀림없는 사실은 아님을 보여주고 싶을 따름이다. 마르크스의 주장의 세 번째 단계는 확실한 결과가 아니라고 선언되어야 한다.
이것 이상을 나는 주장하지 않는다. 나는, 더욱 특별히, 사회주의가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거나, 그 주장의 전제가 사회주의 도입을 매우 비개연적 만든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길어진 투쟁과 승리의 열정이, 착취와 권력오용을 예방하는 법률이 입법될 때까지 계속될 정도로 충분히 강한 결속감정에 기여할는지도 모른다. (통치자를 민주주의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제도 설립은 착취를 없애기 위한 유일한 보장이다.) 그런 사회를 설립할 기회는,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 계급의 즉각적인 이해관계와 반대로,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와 자유라는 이념에 헌신하는 데 주로 달려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쉽게 예견될 수 없는 문제들이다 ; 확실하게 언급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런 상태로의 계급투쟁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항상 지속적인 결속을 낳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결속에 관한, 그리고 공동의 대의명분에 크게 헌신하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 그러나 자신들의 특정 이익이 다른 노동자들의 이익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결속이라는 이념과, 심지어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곳에서 자신들의 특정 이익을 추구하는 노동자들의 집단에 대한 사례도 있다. 노동자 집단이 덜 운 좋은 집단을 착취하는 것과 동일한 특권을 습득할 것이 완전히 가능하기 때문에, 착취는 부르주아 계급과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승리하면 가능한 역사적 발전 전체가 실제로 발생할 것임을 안다. 역사적 예언의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너무 많은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특히 우리가 그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몇몇 가능성에 대하여 우리의 눈을 감는 것은 매우 비과학적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희망적 사고(思考)는 분명히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희망적 사고는 과학적 사고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과학적 예언이라고 주장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도피구를 제공함을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 지고 있는 책임으로부터 미래의 천국으로 도피하게 만든다 ; 그리고 그 예언이 지금 이 순간의 압도적이고 악마적인 경제력이라고 묘사하는 것에 직면한 개인의 고립무원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그 예언은 이 천국에 대한 알맞은 보조물을 제공한다.
III
이제 우리가 이 힘과, 우리 자신의 현재 경제체제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 우리의 이론적 비판이 경험에 의하여 입증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고 유일하게 가능한 후계자라는 마르크스주의적 편견을 고찰하여 경험을 잘못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 속에서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하여 정당하다는 결합체’의, 계급 없는 사회라는 의미에서의, 사회주의는 그가 1세기 전에 (1845년에) 최초로 묘사했던, 그리고 그가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부여했던, 저 경제체제의 잔인한 착취에 대한 유일하게 가능한 체제라는 것을 마르크스나 다른 누구도 증명한 적이 없다. 그리고 정말로, 사회주의가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무제한적인 ‘자본주의’에 대하여 유일하게 가능한 계승자라는 것을 누군가가 증명하려고 시도한다면,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그에게 반박할 수 있을 뿐이리라. 그 까닭은 자유방임주의가 지구상에서 사라졌지만, 자유방임주의는 마르크스가 이해하는 바와 같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의하여 대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의 6분의 1인 러시아에서만 우리는, 마르크스의 예언에 따라서, 생산수단이 국가에 의하여 소유된 경제체제를 발견하는데, 그 국가의 힘은, 마르크스의 예언과 반대로, 소멸되는 경향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상 도처에서, 조직화된 정치력이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경제적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무제한적인 자본주의는 새로운 역사적 시대에게, 정치적 간섭주의의 우리 자신의 시대에게, 국가가 경제적으로 개입하는 우리 자신의 시대에게, 길을 내주었다. 간섭주의는 여러 가지 형태를 띠었다. 러시아식 변종이 있다 ; 전체주의의 파시즘적 형태가 있다 ; 그리고 영국의, 미국의, 그리고 스웨덴을 필두로 하는 ‘작은 민주정부들’의, 민주주의적 간섭이 있는데, ‘작은 민주정부들’에서는 민주주의적 간섭 기술이 이제까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이 간섭을 낳은 발전은, 영국의 공장입법과 동시에, 마르크스 자신의 시대에 시작되었다. 간섭주의는 주당 48시간 노동의 도입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실업보험과 다른 형태의 사회보험 도입으로, 최초로 결정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현대 민주국가의 경제체제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라고 불렀던 체제와 동일시하는 것이 얼마나 철저하게 터무니없는지는, 그 경제체제를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10 가지 강령과 비교함으로써, 첫눈에 알 수 있다. 우리가 이 강령의 다소 무의미한 점들을 생략하면 (예를 들어, ‘4. 모든 이민자와 반란자의 재산 압류’), 우리는 민주국가에서 이 강령 대부분이, 완전히 혹은 상당한 정도까지,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 그리고 그 강령들과 함께, 마르크스가 생각하지 못했던 훨씬 더 많은 중요한 조치들이 사회 안전의 방향으로 이룩되었다. 나는 그의 강령 중에서 다음만을 언급한다 : 2. 중과된 누진 소득세. (실현됨.) 3. 모든 상속권 폐지. (상속세 중과세로 대부분 실현됨. 더 많은 과세가 바람직한지는 적어도 의심스러움.) 6. 교통 및 통신 수단의 국가 중앙 통제. (군사적 이유 때문에 이것은, 1914년의 전쟁 전 중부유럽에서, 크게 유익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실현되었다. 그것은 또한 작은 민주정부 대부분에 의하여 성취되었다.) 7. 국가가 소유한 공장과 생산도구의 숫자와 크기의 증대.. (작은 민주정부에서 실현됨 ; 이것이 항상 유익한지는 적어도 회의적임.) 10. 공립 (다시 말해서 국립) 학교에서의 모든 아동의 무상교육. 현재 형태로의 아동들의 공장노동 폐지.. (첫 번째 요구는 작은 민주정부에서 이룩되었고, 다른 모든 곳에서 어느 정도 실제적으로 이룩됨 ; 두 번째 요구는 초과 달성됨.
마르크스의 몇 가지 강령은 (예를 들어 : ‘1. 모든 토지재산의 폐지’) 민주주의 국가에서 실현되지 않았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 국가들은 ‘사회주의’를 설립하지 않았다고 옳게 주장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판단하여 이 나라들은 아직도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의미에서 ‘자본주의적’이라고 그들이 추론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대안은 없다는 자신들의 전제가 지닌 독단적 특성을 드러낼 따름이다. 이것은 선입관으로 만들어진 체제의 섬광에 의하여 눈이 멀어버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마르크스주의는 미래에 대한 나쁜 안내자일 뿐만 아니라, 그 추종자들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역사적 기간 속에서, 그리고 때때로 심지어 그들의 협력으로도,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없도록 만들기도 한다.
IV
그러나 이 비판이 어떤 정도로든 그런 상태로의 대규모 역사적 예언 방법에 반대하여 말하는지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유효한 결론을 얻도록 예언적 주장의 전제를 강화할 수 있지 않을까 ? 물론 우리는 이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전제를 충분히 강하게 만들기만 한다면, 우리는 좋아하는 결론을 얻는 것은 항상 가능하다. 그러나 상황 때문에, 거의 모든 대규모 역사적 예언을 위하여, 우리는 경제적 요인으로 환원하려는 우리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과 같은 마르크스에 의하여 ‘이념적’으로 지칭된 이런 종류의 도덕적 및 다른 요인에 관한 상정(想定)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것이 매우 비과학적인 과장이리라고 인정한 최초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의 예언방법 전체는, 이념적 영향은 독립적이고 예언 불가능한 요소로서 취급될 필요가 없다는, 그러나 이념적 영향은 관찰 가능한 경제적 조건으로 환원이 가능하고 그 조건에 의존적이어서 그러므로 예언이 가능하다는, 상정(想定)에 의존한다.
사회주의 도래는 역사적 발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 때때로 심지어 특정 비정통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서 인정된다 ; ‘우리는’, 사회주의의 도래와 관련한 ‘산고(産苦)를 줄이거나 경감할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진술은, 발전의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인 적당한 정책과 비교하여, 잘못된 정책은 사회주의 도래를 심지어 수세기 동안 지연시킬지도 모른다고 진술하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히 애매모호하다. 이 해석으로 인하여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혁명의 결과가 사회주의적 사회일지 아닐지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의존할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 다시 말해서, 혁명의 결과가 사회주의적 사회일지 아닐지는 우리가 지닌 목표에, 우리의 헌신과 성실성에, 그리고 우리의 지성에, 다시 말해서, 도덕적이거나 ‘이념적’ 요인에, 의존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예언은 도덕적 격려의 거대한 근원이요, 그러므로 그 예언은 사회주의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고 그들은 부언할 것이다. 마르크스가 실제로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오직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지독한 세상이 영원이 계속될 것이거나, 더 나은 세상이 결국 틀림없이 출현한다는 것 ; 그래서 첫 번째 대안을 심각하게 숙고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치가 거의 없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정책은 완벽하게 정당화된다. 그 까닭은 사람이 두 번째 대안을 이룩할 수 있다고 그만큼 더 분명하게 깨달을수록, 그만큼 더 확실하게 그들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결정적인 도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더 분명한 예언은 만들어질 수 없다.
이것은 감소될 수 없는 도덕적이자 이념적인 요인이 역사의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그리고 그 영향과 함께 마르크스주의적 방법의 적용불가능성을, 인정하는 주장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려는 주장의 그 부분에 대해서, 누구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가지 가능성만 있다고 증명한 적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우리는 매우 불만족스러운 세상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을 숙고하는 데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에 대하여, 나는 완전히 동의한다. 그러나 그 대안은 더 나은 세상의 예언된 도래를 숙고하는 것이나, 그 세상의 탄생을 정치선전과 다른 비이성적 수단으로써, 아마도 심지어 폭력으로써 도우려는 것일 필요는 없다. 그 대안은, 예를 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즉각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기술개발인 민주주의적 간섭을 위한 점진적 공학의 방법을 개발이 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물론 역사란 세상을 향상시키기 위한 이성적 계획에 따라서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간섭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매우 이상한 결론을 낳는다. 그 까닭은 이성(理性)을 사용하여 사태가 개선될 수 없다면, 역사의 비이성적 힘이 스스로 더 낫고 더 이성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은 정말로 역사적이거나 정치적인 기적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과학적 예언의 분야에 속하지 않는 도덕적 및 다른 이념적 요인들이 역사의 과정에 폭넓은 영향을 미친다는 상황으로 내쳐진다. 이 예언 불가능한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사회적 기술의 영향과 경제문제에서 정치적 간섭의 영향이다. 사회 공학가(工學家)와 점진적 공학가는 새로운 제도 구축이나, 옛 제도의 변혁을 계획할 것이다 ; 그들은 이 변혁을 실행하는 방법과 수단을 계획하기조차 할지도 모른다 ; 그러나 ‘역사’는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더 예언가능해지지 않는다. 그 까닭은 그들이 사회 전체를 목적으로 계획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실행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실제로, 그들이 세운 계획은, 계획 구축 동안에 우리의 경험이 확장되는 부분적 이유 때문에, 우리가 타협을 해야 하는 부분적 이유 때문에, 크게 수정되지 않고는 거의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르크스가 ‘역사’는 종이 위에서 계획될 수 없다고 주장했을 때 그는 완전히 옳았다. 그러나 제도는 계획될 수 있다 ; 그리고 제도는 계획되어지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제도가 자유를, 특히 착취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계획을 세움으로써만,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이룩하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V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역사주의적 이론이 지니는 실제 정치적 중요성을 밝히기 위하여, 그의 역사적 예언이 근세 유럽역사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몇 가지 비평을 함으로써 나는 그가 주장하는 세 단계를 다루는 세 개의 장(chapter) 각각을 예시하고자 한다. 그 까닭은 이 영향이, 중부와 동부 유럽에서 두 개의 커다란 마르크스주의 정당인 공산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행사한 영향 때문에, 폭넓었기 때문이다.
이 두 개의 정당 모두는 사회변혁과 같은 그런 임무에 완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처음으로 권력에 다다른 자신들을 발견하는데, 앞에 놓인 중대한 문제들 및 고통뿐만 아니라 희생의 거대함을 완전히 의식하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중부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들의 기회가 조금 늦게 왔는데, 공산주의자들이 그렇게 기꺼이 떠맡았던 책임으로부터 여러 해 동안 위축되었다. 그들은, 아마도 옳게, 러시아 황제들에게 매우 잔인하게 압제를 받았던 러시아 국민들을 제외하고, 어떤 국민이 그들로부터 혁명, 내전, 그리고 처음에는 자주 성공하지 못하는 실험을 하는 긴 기간에 의하여 요구되는 고통과 희생을 견디어낼 것인지 의심했다. 게다가, 1918년부터 1926년까지의 결정적인 시간 동안, 러시아의 실험 결과는 그들에게 매우 불안정하게 보였다. 그리고 정말로, 러시아의 실험 전망을 판단할 근거가 틀림없이 없었다. 중부유럽의 공산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분리는 러시아식 실험의 최종적 성공에 대하여 일종의 비이성적인 신뢰를 보이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보다 합리적으로, 그 실험에 회의적이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분리였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내가 ‘비이성적’이나 ‘보다 합리적으로’라고 말할 때, 나는 그들 자신의 기준인 마르크스주의로 그들을 판단한다 ; 그 까닭은 마르크스주의에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산업화의 최종적 결과였어야지 그 역순은 아니기 때문이다 ;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고도 산업사회에서 먼저 왔어야 하고, 러시아에는 훨씬 더 늦게 왔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 비평에는 자신들의 정책이 마르크스주의적 예언에 의하여, 사회주의가 틀림없이 온다는 자신들이 지닌 함축적 믿음에 의하여, 완전히 결정된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을 옹호하려는 의도가 없다. 그러나 이 믿음은, 그 지도자들에게서, 그들 자신이 지닌 즉각적인 기능과 임무 및 바로 앞에 놓여있던 것에 관한 희망 없는 회의론과 흔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임무인 인류해방에 대한 진정으로 훌륭한 신념을 고취시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약속 실현에 대비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교과서를 잘 배웠고, 그들은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하여 완전히 알고 있었으며, 그들은 미래에 대한 처방 준비는 비과학적 유토피아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르크스 자신이 실증주의 평론(Revue Positiviste)에서 실용적 프로그램을 무시했다고 자신을 비난했던 콩트(Comte)의 추종자를 비웃지 않았던가 ? 마르크스는 경멸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실증주의 평론(Revue Positiviste)은 경제를 형이상학적으로 다루었다고 나를 비난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 여러분은 그것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 미래가 요리되는 주방을 위하여 지시사항을 처방하는 (아마도, 콩트주의적 처방 ?) 대신에, 실제 사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만 내 자신을 국한시킨다고.’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 지도자들에게는 기술과 같은 그런 문제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더 지식이 많다. ‘모든 국가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 - 이것은 그들이 지닌 실천 강령을 망라한다. 그들 국가의 노동자들이 단결했을 때, 정부의 책임을 떠맡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초석을 놓을 기회가 있었을 때, 그들의 시간이 왔을 때, 그들은 노동자들을 고립무원의 상태에 버려두었다. 지도자들은 무엇을 할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약속된 자본주의의 자살을 기다렸다. 피할 수 없는 자본주의 붕괴 후에, 사태가 완전히 잘못되었을 때, 모든 것이 해체되었고 자신들에 대한 불신과 불명예 위험이 상당히 줄어들었을 때, 그들은 인류의 구세주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는 러시아에서 공산주의자의 성공이 의심할 바 없이, 부분적으로, 그들이 권력을 잡기 전에 발생했던 비참한 사건들에 의하여 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에 약속된 붕괴로 환영했던 대공황이 자연적인 과정을 거쳐 없어지자, 그들은 노동자들이 역사해석으로 핑계만 대는 것에 싫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 노동자들에게 마르크스가 주장한 무오류의 과학적 사회주의에 따라서 파시즘은 분명히 임박한 자본주의 몰락 이전의 마지막 저항이라고 말하기는 충분하지 않았다. 고통을 당하는 대중에게는 그것 이상이 필요했다. 서서히 지도자들은 기다리면서 거대한 정치적 기적을 바라는 정책의 무시무시한 결과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때가 너무 늦었다. 그들의 기회는 사라졌다.
이 비판은 개괄적이다. 그러나 이 비판은 사회주의 도래에 대한 마르크스의 예언이 초래한 실제 결과를 다소 지적한다.
19 장 : 사회혁명
마르크스의 예언적 주장의 두 번째 단계에는 가장 적용 가능한 전제로서 자본주의가 부(富)와 비참함의 증대를 분명히 초래한다는 상정(想定)이 있다 ; 숫자로 감소하는 부르주아 계급 속에서 부(富)의 증대와, 숫자로 증가하는 노동계급 속에서 비참함의 증가. 이 상정(想定)은 다음 장에서 비판될 것이지만 여기서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치부된다. 그 상정으로부터 도출된 결론은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자본주의가 지니는 계급투쟁의 발전에 관한 예언이다. 그 예언은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제외한 모든 계급과, 특히 소위 중간계급은 사라지게 되어있으며,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사이의 커지는 긴장의 결과로, 후자(後者)는 점점 계급 의식적이 되어 단결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확언한다. 두 번째 부분은 이 긴장이 도저히 제거될 수 없으며, 그 긴장이 프롤레타리아의 사회혁명을 유발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두 가지 결론 중 어느 것도 전제에 비추어 실제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나의 비판은, 주로, 앞 장에 제시된 것과 유사하다 ; 다시 말해서, 나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가능한 무수한 상황전개를 무시하는 것을 밝히려고 노력할 것이다.
I
첫 번째 결론 즉, 계급의식과 단결심이 틀림없이 증가하는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제외하고, 모든 계급이 사라지게 되어 있다거나, 무의미해지게 되어 있다는 예언을 즉시 고찰하자. 증대하는 부(富)와 비참함이라는 마르크스의 이론인 전제는 특정 중간계급의 소멸을, 더 약한 자본가들과 쁘띠 부르주아 계급의 소멸을, 정말로 준비한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마르크스가 표현하는 바와 같이 ‘자본가는 불경기 때 자기의 많은 동료를 쓰러뜨린다 (이 따옴표 속의 번역문은 문맥상으로 의미를 유추하여 서울대 이명현 교수의 번역문을 그대로 인용한다. 그러나 원문 Each capitalist las many of his fellows low은 이명현 교수의 번역문으로 해석될 수 없다. 아마도 커다란 원문부분이 누락된 듯하다. - 역자 주)’ ; 그리고 이 동료 자본가들은 정말로 임금노동자의 상황으로 환원될는지도 모르는데, 그 상황은 마르크스에게 프롤레타리아와 동일하다. 이 움직임은 부(富)의 증대인 점증하는 자본의 축적이자 그 자본이 점점 적은 손에 집중되고 중앙집권화 되는 것의 한 부분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흡사한 운명이 ‘중간계급의 하부 계층’에 배분된다. ‘작은 상인들, 가게운영자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은퇴한 상인들, 수공업자와 소작농, 이 모든 사람들은 점차 프롤레타리아로 하강한다 ; 그들이 가진 작은 자본은, 현대 산업이 운영되는 규모에 비하여 불충분하기 때문에, 더 큰 자본가들과의 경쟁에서 압도당하는 부분적인 이유로 ; 그들이 가진 전문적 기술이 새로운 생산 수단에 의하여 쓸모가 없어진다는 부분적 이유로.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는 인구의 모든 계급으로부터 모인다.’ 이 설명은 틀림없이 상당히 정확한데, 특히 수공업에 관한 한 그렇다 ; 그리고 많은 프롤레타리아가 소작농 가계(家系)에서 유래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관찰이 찬탄을 받을만하다 할지라도, 설명에는 오류가 있다. 그가 조사한 움직임은 산업의 움직임이다 ; 그가 주장하는 ‘자본가’는 산업 자본가이고, 그가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는 산업 노동자이다. 그리고 많은 산업 노동자들이 소작농 가계(家系)에서 나온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이 농부와 소작농은, 예를 들어, 모두 산업 노동자의 상황으로 점차 변화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농업 노동자들도 결속과 계급의식이라는 공동의 감정에 의하여 산업 노동자들과 반드시 결합되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손 안에 자본이 집중되어 도시 노동자들의 저항력이 증가할 바로 그 때 농촌 노동자들은 넓은 지역에 흩어져서 그들이 지닌 저항력이 무너진다.’고 마르크스는 인정한다. 이것은 한 가지 계급 의식적 전체로의 통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적어도 분열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농업 노동자들은 때때로 자신의 주인인 농부나 소작농에 너무 의존하여 산업 노동자와 공동의 대의명분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러나 농부들이나 소작농들이 노동자들보다는 부르주아 계급을 지지하기로 쉽게 결정할 것이라고 마르크스 자신이 언급했다 ; 그리고 공산당 선언의 한 강령과 같은 그런 노동자 강령은, 그 첫째 요구가 ‘모든 토지재산의 폐지’인데, 이런 경향을 상쇄하도록 고안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농촌의 중간 계급이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과, 농촌의 프롤레타리아가 산업 프롤레타리아와 합쳐지지 않으리라는 것이 적어도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마르크스 자신의 분석은 부르주아 계급이 임금노동자들 가운데서 분열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그리고 마르크스 자신이 목격한 바와 같이, 이것은 적어도 두 가지 방식으로 아마도 이룩될 것이다. 한 가지 방식은 새로운 중간 계급을, 육체노동자들에게 우월감을 느끼고 동시에 통치자의 자비에 의지할 임금노동자들의 특권을 부여받은 무리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방식은 마르크스가 ‘천민-프롤레타리아’로 이름을 붙인 사회의 최하층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계급 적(敵)에게 자신을 팔 준비가 되어있을 범죄자들을 위한 모집장소이다. 비참함이 증가하면, 마르크스가 인정하는 바와 같이, 이 계급의 숫자가 늘어나는 경향이 틀림없이 있다 ; 모든 피압박자들의 단결에 기여하지 못할 상황전개.
그러나 심지어 산업 노동자 계급의 단결도 증대하는 비참함의 필연적인 결과는 아니다. 인정되는 바와 같이, 증대하는 비참함은 분명히 저항을 불러오고, 심지어 반란성 봉기를 불러올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주장이 상정(想定)하는 바는 사회혁명에서 승리가 쟁취될 때까지는 비참함이 완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저항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개선하려는 헛된 노력에서 반복해서 패배당할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전개는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노동자들을 계급 의식적으로, 다시 말해서, 자신들의 계급을 자랑스러워하고 자신들의 임무를 확신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 그런 상황전개는, 오히려, 노동자들을, 자신들이 패배한 군대에 속한다는 사실을 의식한다는 의미에서, 계급 의식적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잠재적 경제력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숫자 또한 계속해서 증가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런 상황전개는 아마도 노동자들을 자신들이 패배한 군대에 속한다는 의미에서 계급 의식적으로 만들 것이다. 마르크스가 예언하는 바와 같이, 자신들의 계급과 자본주의자들의 계급을 제외하고 모든 계급이 소멸되는 경향을 보인다면, 이것이 아마도 실제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이 예언은 사실이 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심지어 산업 노동자들이 패배의식에 의하여 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하여, 틀림없이 두 계급이 분명하게 분리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의 예언과 반대로, 우리는 마르크스 자신의 상정(想定)을 토대로 다음 계급 구조가 아마도 발달할 것임을 발견한다 : (1) 부르주아 계급, (2) 대지주, (3) 다른 지주, (4) 농촌 노동자들, (5) 새로운 중간 계급, (6) 산업 노동자들, (7) 천민 프롤레타리아. (이 계급들의 다른 결합이, 물론,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게다가, 그러한 상황전개가 아마도 (6)의 단결을 해칠 수도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르크스의 주장 중 두 번째 단계의 첫 번째 결론이 반드시 실제로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세 번째 단계를 비판한 것에서처럼, 여기서도 또한 나에게는 마르크스의 예언을 또 다른 예언으로 바꾸려는 의도가 없다고 말해야겠다. 나는 예언이 사실이 될 수 없다거나, 내가 묘사한 대안적 상황전개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정말로, 이 가능성은, 배반과 뇌물과 불충분한 계급단결을 예언적 예정표에 일치하지 않는 상황전개를 설명해버리기 위한 총애하는 장치로 이용하는 급진적 마르크스주의 파벌의 구성원에 의하여, 부인되기 힘들다.) 그런 일들이 발생할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파시즘을 불러온 상황전개를 관찰한 사람 누구에게나 틀림없이 명백한데, 파시즘 속에서는 내가 언급한 모든 가능성이 한 가지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가능성만으로도 마르크스의 주장 중 두 번째 단계에서 도달한 첫 번째 결론을 파괴하기가 충분하다.
이것은 물론 두 번째 결론인 사회혁명의 도래에 관한 예언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내가 이 예언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비판을 시작할 수 있기 전에, ‘사회혁명’이라는 용어를 마르크스가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체 주장 안에서 그 예언이 하는 역할을 좀 자세하게 토론할 필요가 있다.
II
마르크스가 사회혁명에 관하여 말했을 때 그가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처음 보기에는 충분히 명백하게 느껴진다. 그가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사회혁명’은 역사적 개념이다. 그것은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기간에서 사회주의라는 역사적 기간으로 다소 빠르게 전이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두 가지 주요 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이라는 전환기에서 노동자들이 최후로 승리하는 때까지의 이름이다. ‘사회혁명’이라는 용어가 두 계급 사이의 폭력적 내전을 함축하고 있는지 질문을 받고 마르크스는 그것이 필수적으로 함축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러나, 내전을 피할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고 부언했다. 그리고 역사적 예언의 관점에서, 그 문제는 아마도 완전히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아무튼 부차적인 중요성은 지니고 있는 듯 보인다고 그는 아마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언했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바, 사회생활은 폭력적이고 계급전쟁은 매일 희생자를 낸다.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결과인 사회주의이다. 이 결과를 성취하는 것은 ‘사회혁명’의 본질적 특징이다.
이제 우리가 자본주의 뒤에 사회주의가 따라올 것임을 확정된 것으로, 혹은 직감적으로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사회혁명’이라는 용어에 대한 이 설명은 아마도 완전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혁명의 원리를 사회주의 도래를 설정하려고 노력하는 저 과학적 주장의 한 부분으로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그 설명은 정말로 매우 불만족스럽다. 그러한 주장에서 우리가 사회혁명을 사회주의로의 전이로 특징지으려고 애를 쓴다면, 그 주장은 환자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예언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고 질병의 증상이나 다른 어떤 것도 알지 못하고 오직 그 질병이 ‘치명적인 질병’으로 변할 것이라고 고백해야 했던 의사의 주장처럼 원점을 돈다. (환자가 죽지 않는다면, 아직 ‘치명적 질병’이 아직 아닐 것이다 ; 그리고 혁명이 사회주의를 낳지 않는다면, 아직 ‘사회적 혁명’이 아직 아니다.) 예언적 주장의 세 단계 안에서 우리가 나중 단계에서만 추론될 수 있는 어떤 것도 상정(想定)해서는 안 된다는 간단한 형식을 우리는 또한 이 비판에 덧붙일 수 있다.
이러한 고찰은, 마르크스의 주장을 합당하게 재구성하기 위하여, 사회주의에 대하여 말하지 않으며, 사회혁명이 이 주장 속에서 최대한으로 잘 그 역할을 수행하도록 허용하는, 사회혁명의 그런 특성화를 우리가 발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특성화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사회혁명은, 이 목표를 이룩하기 위하여 폭력이 필요하면 폭력사용을 회피하지 않는 단호한 결심으로 수행되는, 완벽한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되찾으려는 적들의 어떤 노력에도 저항하는 주로 통일된 프롤레타리아의 노력이다. 이 특성화에는 방금 언급한 난제들이 없다 ; 이 특성화는, 세 번째 단계에게 그 단계가 틀림없이 지닌 저 정도(程度)의 합당성을 부여하면서, 이 세 번째 단계가 유효한 한 그 주장의 세 번째 단계에 적합하다 ; 그리고 그 특성화는, 이제 밝혀질 바와 같이, 마르크스주의와, 특히 폭력이 실제로 역사의 이 단계에서 사용될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분명한 진술을 회피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주의적 경향과, 일치한다.
그러나 역사적 예언으로 간주된다면 제시된 특성화가 폭력사용에 관하여 분명치 않다 할지라도, 도덕적 혹은 법률적 관점에서 고찰하면 그 특성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고찰되면, 여기에 제시된 사회혁명에 대한 특성화는 의심할 바 없이 그 혁명을 폭력적 봉기로 만든다 ; 그 까닭은 폭력이 실제로 사용되는지는 의도보다 덜 중요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폭력이 운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폭력사용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우리는 지녔다. 폭력사용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폭력적 봉기로서의 사회혁명의 특징에 결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도덕적 및 법률적 관점에 뿐만 아니라 문제에 관한 평범한 관점에도 일치한다. 그 까닭은 사람이 자신의 목표를 이룩하기 위하여 폭력을 사용하겠다고 결심하면, 폭력이 특정 경우에 실제로 사용되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그가 의도와 목적에 폭력적 자세를 채택한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정되는 바와 같이, 이 사람의 미래 행동을 예측하려고 애를 쓰면서, 우리는 그가 실제로 폭력을 행사할지 알지 못한다고 말하며 마르크스주의와 꼭 마찬가지로 우리는 틀림없이 불명확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제시한 특성화는 이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관점과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적인 예언을 시도하지 않고 그의 자세를 평범한 방식으로 특징지으려고 노력한다면 이 명료성 부족은 분명히 없어진다.
이제 내가 생각하기에, 실제 정치의 관점에서 고찰하여, 마르크스주의 속에서 단연코 가장 해로운 요소는 폭력적 혁명의 가능성을 지닌 이 예언이라는 것을 나는 완전히 분명하게 밝히고 싶다 ; 그리고 나의 분석을 계속하기 전에 나의 견해에 대한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모든 경우와 모든 상황 하에서 폭력적 혁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폭군살해가 용인될 수 있음을 가르쳤던 몇몇 중세와 르네상스 기독교 사상가들과 함께 나는, 독재정치 하에서, 정말로 다른 가능성이 없어서, 폭력적 혁명이 정당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그런 혁명이 민주주의 확립을 자신의 유일한 목표로서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고 또한 믿는다 ; 그리고 민주주의로써 나는 ‘국민의 통치’나 ‘다수의 지배’처럼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라, 피통치자가 통치자를 통제하고 해임할 수 있고, 피통치자들이 심지어 통치자의 의지에 반하여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개혁을 이룩할 수 있는 제도들을 (그 제도들 가운데는 특히 총선거, 다시 말해서 자신의 정부를 해임할 국민들의 권리가 있다)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폭력사용은 폭력 없이는 개혁이 불가능한 독재체제 하에서만 정당화되며, 오직 한 가지의 목표를 가지는데, 다시 말해서, 폭력 없이 개혁이 가능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폭력적 수단으로 그것 이상을 이루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그 까닭은 내가 그런 노력이 합당한 개혁에 대한 모든 전망을 파괴하는 위험을 포함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폭력사용은 감정이 배제된 이성의 지배가 아니라 강자(强者)의 지배를 야기하기 쉽기 때문에, 길어지면 결국 자유의 상실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독재정체를 파괴하는 것 이상을 시도하려는 폭력적 혁명은 적어도 그 실제적 목표를 성취할 것과 같이 또 다른 독재정치를 불러오기 쉽다.
정치적 불화 속에서 내가 정당화된다고 생각해야 하는 유일하게 한 걸음 더 나아간 폭력사용이 있다. 나는, 민주주의가 이룩되었을 때, 민주주의적 헌법과 민주주의적 방법 사용에 반하는 여하한 공격에 대한 저항을 (국가의 내부에서 오든 외부에서 오든) 의미한다. 여하한 그런 공격은, 특히 그 공격이 정권을 쥔 정부로부터 온다면, 혹은 그 공격이 그 정부에 의하여 허용된다면, 모든 충성스러운 시민들에 의하여 심지어 폭력을 사용해서도 저지되어야 한다. 실제로, 민주주의의 작동은 주로 자신의 권력을 오용하여 자신을 독재정체로 확립하려고 시도하는 (혹은 다른 사람에 의하여 독재체제가 세워지는 것을 허용하는) 정부가 자신을 탈법화하고, 시민들은 그런 정부의 행동을 범죄행위로서, 그리고 그 정부의 구성원을 위험한 범죄자 단체로서, 간주할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 또한 소유하고 있다는 이해에 달려있다. 그러나 나는 민주주의를 전복하려는 시도에 대한 그런 폭력적 저항이 명료하게 방어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저항의 유일한 목표는 민주주의를 구하는 것이라는 데 조그만 의심의 흔적도 남겨져서는 안 된다. 반(反)독재체제를 위하여 상황을 이용하겠다는 위협은 독재체제를 도입하겠다는 당초의 시도만큼 꼭 마찬가지로 범죄적이다 ; 그런 위협의 사용은, 민주주의의 적(敵)을 저지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구하겠다는 솔직한 의도로 행하여진다 할지라도,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나쁜 방법일 것이다 ; 진정으로, 그런 위협은 위험한 시기에 민주주의 수호자들의 계층을 혼란시켜서 그리하여 적을 이롭게 할 것 같다.
이 비판은 성공적인 민주주의적 정책이 그 수호자에게 특정 규칙을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규칙 몇 가지는 이 장의 후반에 목록화 될 것이다 ; 여기서 나는 단지 왜 내가 폭력을 향한 마르크스주의적 자세가 마르크스를 분석하는 데 다루어질 가장 중요한 요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지를 분명히 하고 싶다.
III
사회혁명에 대한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두 가지 주요 무리인 급진파와 온건파로 (공산주의 정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따라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개략적으로) 구분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폭력적 혁명이 ‘정당화’될 것인지 아닌지의 질문을 토론하기를 흔히 거부한다 ; 그들은 자신들이 도덕주의자들이 아니고 과학자이며, 그래서 존재해야 하는 것에 관한 사념이 아니고 존재하거나 존재할 것에 대한 사실을 다룬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자신들을 발생할 것에 관한 질문에 국한시키는 역사적 예언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로 하여금 사회혁명의 정당성을 토론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상정 (想定)하자. 이 경우에, 우리가 모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원칙적으로 폭력적 혁명은 독재체제에 대항하여 겨냥이 되었을 때만 정당화된다는 옛 의견에 동의하는 것을 틀림없이 발견하리라고 나는 믿는다. 여기서 시작하여, 두 정파의 의견이 달라진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급진파는 모든 계급 통치는 반드시 독재체제 즉, 전제정치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그러므로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함으로써만, 필요하다면 자본주의적 독재체제를 전복함으로써, 이룩될 수 있다. 온건파는 이 견해에 동조하지 않고, 민주주의란 심지어 자본주의 하에서도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사회혁명은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개혁으로 수행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심지어 이 온건파도 그러한 평화적인 상황전개가 불확실하다고 주장한다 ; 온건파는 민주주의적 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패배당할 전망에 직면하면 무력을 이용하기 쉬운 사람들은 부르주아 계급이라고 지적한다 ; 그리고 이 경우에 노동자들은 폭력적 수단으로 보복하여, 자신들의 통치를 세우는 것이 정당하리라고 온건파는 주장한다. 양 정파는 마르크스의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를 대표한다고 주장하고, 어느 정도는 양 정파의 주장은 옳다. 그 까닭은,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마르크스의 역사주의적 접근방식으로 인하여, 이 문제에서 마르크스의 견해는 다소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 게다가, 처음에 급진주의자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보다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그는 자신의 삶 동안에 자신의 견해를 바꾼 듯이 보인다.
급진적 관점은 자본론과 마르크스의 예언적 주장이 지닌 전체 경향에 들어맞는 유일한 관점으로 나에게 보이기 때문에, 나는 먼저 급진적 관점을 조사할 것이다. 그 까닭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적대감은 반드시 증가하며, 그래서 가능한 화해가 없어 자본주의는 개선되지 않고 파괴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 자본론의 주요 교설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최종적으로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을 요약한 자본론의 근본적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매우 좋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쓴다 : ‘이 상황전개의 모든 이익을 찬탈하고 독점하는 거물 자본가들의 숫자가 꾸준히 증가함과 함께, 비참함, 억압, 노예상태, 강등과 착취의 정도가 늘어난다 ; 그러나 동시에, 숫자로 꾸준히 증가하는 중이고, 자본주의적 생산방법의 바로 그 작동에 의하여 훈련되어지고 통합되고 조직되고 있는 노동계급의 반란성 분노가 높아진다. 궁극적으로 자본의 독점은, 자본과 함께, 그리고 자본 밑에서, 번성했던 생산양식에게 족쇄가 된다. 소수의 손에 생산수단이 집중되는 것과 노동의 사회적 조직화 모두는 그것들의 자본주의적 외피가 속박이 되는 지점에 도달한다. 그 지점은 터져서 산산조각이 난다.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의 시간은 종말을 고했다. 탈취자는 탈취 당한다.
이 근본적인 구절을 고찰하면, 자본론에서 마르크스의 가르침의 핵심은 자본주의를 개혁하는 것에 대한 불가능성과 자본주의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는 예언이었다 ; 급진파의 교설과 일치하는 교설. 그리고 이 교설은 우리가 가진 예언적 주장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그 까닭은 우리가 두 번째 단계의 전제뿐만 아니라 첫 번째 결론 또한 인정한다면, 우리가 자본론으로부터 인용한 구절에 따라서 사회혁명에 대한 예언은 정말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 장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노동자들의 승리 또한 사실일 것이다.) 정말로, 그들의 비참함이 다른 수단으로 경감될 수 없다면, 궁극적으로 사회질서를 전복하려고 단호한 시도를 꾀하지 않을 철저히 단결되고 계급 의식적인 노동계급을 그려보는 것은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두 번째 결론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첫 번째 결론이 무효임을 우리는 이미 증명했기 때문이다 ; 그리고 오직 그 전제로부터, 증가하는 부(富)와 비참함의 이론으로부터, 사회혁명의 불가피성은 도출될 수 없다. 첫 번째 결론을 우리가 분석하면서 지적된 바와 같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반란성 폭동들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 그러나 우리가 노동자들 사이의 계급단결이나 발달된 계급의식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폭동들을 사회혁명과 일치시킬 수 없다. (그 폭동들이 반드시 승리하지 않아서, 사회혁명을 대표한다는 상정[想定]은 세 번째 단계에 들어맞지도 않을 것이다.)
예언적 주장과 적어도 완전히 들어맞는 급진적 관점과 반대로, 온건적 관점은 예언적 주장을 철저히 파괴한다. 그러나 전에 언급된 바와 같이, 온건적 관점 또한 마르크스가 지닌 권위의 지지를 받는다. 마르크스는 오래 살아서 자신의 이론에 따라서, 불가능했었을 개혁이 수행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운명에서 이 개선이 자신의 이론을 동시에 반박하는 것임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그가 지녔던 사회혁명에 대한 모호한 역사주의적 관점으로 인하여 그는 이 개혁을 사회혁명의 전주곡이나 심지어 사회혁명의 시작으로 해석했다. 엥겔스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와 같이, 영국에서는 아무튼 ‘불가피한 사회혁명이 평화롭고도 합법적인 수단으로써 수행될는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마르크스는 도달했다. ‘그는 영국의 지배계급이,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반란” 없이는 이 평화롭고 합법적인 혁명에 승복하리라고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틀림없이 잊지 않고 부언했다.’ 이 보고는, 자신이 죽기 겨우 3년 전에 마르크스가 다음과 같이 썼던 편지와 일치한다 : ‘나의 당(黨)은.. 영국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 역사적인 전례에 따라서 -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진술의 첫 부분에, ‘온건파’의 이론이 명백하게 표현된 것은 주목되어야 한다 ; 이른바, 지배계급이 승복하지 않는다면, 폭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이론.
이 온건한 이론들은 전체 예언적 주장을 파괴하는 듯 나에게 보인다. 그 이론들은 타협의, 자본주의를 점진적으로 개혁하겠다는, 그리하여 계급 적대감을 줄이는,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예언적 주장의 유일한 토대는 증가하는 계급 적대감에 대한 상정(想定)이다. 타협에 의하여 이룩되는, 점진적 개혁이 왜 자본주의 체제의 완전한 파괴를 불러와야 하는지 논리적 필연성이 없다 ; 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점진적 개혁으로 향상시킬 수 없다고 경험으로 터득했는데, 이 방식이 ‘완벽한 승리’를 다시 말해서 지배계급의 복종을 낳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방식을 고수하기를 선호하지 말아야 하는지; 왜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계급과 타협하여, 요구사항이 폭력적 충돌을 불러오기 쉽게 만들어 자신들의 모든 이익이 위험에 처하는 것보다, 부르주아 계급이 생산수단을 소유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될까. 우리가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자신들의 족쇄를 빼고 잃을 것이 없다’고 상정(想定)한다면, 우리가 증가하는 비참함의 법칙이 유효하거나 그 법칙이 적어도 개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상정(想定)한다면, 그럴 경우에만 노동자들이 전체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것이라고 우리는 예언할 수 있다. ‘사회혁명’에 대한 진화적 해석은 그러므로 첫 단계에서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마르크스의 주장 전체를 파괴한다 ; 마르크스주의에서 남은 유일한 것은 역사주의적 접근방식일 것이다. 역사적 예언이 여전히 시도된다면, 그 예언은 완전히 새로운 주장에 기초해야 한다.
우리가 마르크스의 후기 관점과 온건파의 관점에 따라서, 가능한 한 많이 원래 이론을 보존하면서, 수정된 그런 주장을 구축하려고 노력한다면, 노동계급은 현재 혹은 미래에 국민의 과반수를 대표한다는 주장에 완전히 기초를 둔 주장에 우리는 도달한다. 그 주장은 이렇게 펼쳐질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회혁명’에 의하여 변화될 것인데, 사회혁명으로써 우리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투쟁이 진전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혁명은 점진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방법으로 진행되거나, 혹은 그 혁명이 폭력적이거나, 혹은 그 혁명이 교차되는 무대에서 점진적이고 폭력적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부르주아 계급의 저항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리고 특히 전개상황이 평화롭다면, 공산당 선언이 말하는 바와 같이, 노동자들이 지배계급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그 전개상황은 틀림없이 종료된다 ; 그들은 분명히 ‘민주주의의 전투에서 승리한다’ ; 그 까닭은 ‘프롤레타리아의 운동이 거대한 다수가 거대한 다수의 이익을 위하여 하는 자기 의식적인 독자적인 운동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온건하고 수정된 형태에서도, 예언은 옹호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유는 이렇다. 증가하는 비참함에 관한 이론은, 점진적 개혁에 관한 가능성이 인정된다면, 포기되어야 한다 ; 그러나, 그와 함께, 심지어 산업 노동자들은 어느 날 ‘거대한 다수’를 분명히 형성한다는 주장에 대한 정당화와 유사한 것도 사라진다. 이 이론이 농부와 소작농의 주목을 충분히 받지 않았기 때문에, 증가하는 비참함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으로부터 이 주장이 반드시 실제로 사실로 나타남을 나는 의미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증가하는 비참함의 법칙이, 중간계급을 프롤레타리아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으로 예상되는데, 효과가 없다면 매우 많은 중간계급이 계속해서 존재하고 (또는 새로운 중간계급이 떠오르고) 다른 노동자들이 권력을 차지하려는 시도에 대항하여 그 계급이 다른 비(非)프롤레타리아 계급과 협력할 것임을 우리는 발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그래서 아무도 그런 경쟁의 결과가 무엇이 될는지 확신하여 말할 수 없다. 정말로, 통계는 산업 노동자들의 숫자가 인구의 다른 계급과 비교하여 증가하는 경향을 더 이상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도구의 축적이 계속되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 경향이 나타난다. 이 사실만으로도 수정된 예언적 주장의 유효성이 반박된다. 그 주장에서 남는 유일한 것은 사회적 개혁은 주로 피압박자들이 압력을 가하여, 혹은 (이 용어가 선호된다면) 계급투쟁의 압력 하에서, 수행된다는 중요한 관찰이다 (그러나 이 관찰은 역사주의적 예언의 과장된 기준을 다룰 수 없다) ; 다시 말해서, 피압박자들의 해방은 주로 피압박자들 자신의 업적이 될 것이라는 것.
IV
예언적 주장은, 급진적이든 온건적이든, 그 모든 해석에서, 옹호될 수 없으며, 수정될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마르크스주의 정파의 급진파와 온건파 모두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폭력문제에 대한 애매한 자세를 조사하는 것이 또한 필요하다. 이 자세는 ‘민주주의의 전투’가 승리할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나는 주장한다 ; 그 까닭은 마르크스주의 온건파가 총선거에서 승리하거나 승리에 근접한 곳마다, 한 가지 이유는 중간계급의 큰 부분을 매혹시켰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지닌 인도주의인 자유를 지지하고 압제를 반대하는 입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폭력에 대한 그들의 자세가 드러내는 체계적인 애매함은 그들의 매력을 중화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반(反)민주주의자이자 반(反)인도주의자인 파시스트들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촉진하기도 한다.
마르크스주의 교설에는 두 가지 밀접하게 연결된 애매성이 있고, 두 가지 모두 이 관점에서 고찰하면 중요하다. 한 가지는, 역사주의적 접근방식에 기초하여 세워진, 폭력에 대한 애매한 자세이다. 다른 한 가지는, 공산당 선언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정치권력 정복’에 관하여 말하는 애매한 방식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리고 때때로 그렇게 해석되는데, 노동자 정당이 모든 민주주의적 정당이 가지는 해롭지 않고 분명한 목표인 과반수를 얻어 정부를 구성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고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하여 그런 의미라고 자주 암시되는데, 그 정당이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그 위치를 고수하려는 의도를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 다시 말해서, 그 정당은 다른 정당들이 평범한 민주주의적 수단으로 권력을 탈환하는 것이 매우 어렵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과반수의 표를 이용할 것. 이 두 가지 해석의 차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특정한 시기에 소수인 어느 정당이 폭력을 써서든 과반수 표 획득을 통해서든 다른 정당을 억압하려고 계획을 세운다면, 그 정당은 현재 다수당이 똑같이 할 권리를 암시적으로 인정한다. 그 정당은 억압에 대하여 불평한 여하한 도덕적 권리도 잃는다 ; 그래서, 진정으로, 그 정당은 야당을 폭력으로 억누르려는 현재 여당 안에 있는 저 무리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
나는 이 두 가지 애매함을 간단하게 폭력의 애매성과 권력정복의 애매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두 가지 애매성은 모두 역사주의적 접근방식이 지닌 애매함에 뿌리를 박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에 또한 뿌리를 두고 있다. 국가가, 본질적으로, 계급독재 체제라면, 한편으로, 폭력은 허용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실행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바꾸는 것이다.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하여 너무 많이 걱정하는 것은 역사적 감각의 결여를 드러낼 따름이다; 결국 레닌이 말하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는.. 역사적 발전과정 속의 단계 중 하나일 뿐이다’.
이 두 가지 애매성은 급진파와 온건파 모두의 전술적 교설에서 그 역할을 한다. 체계적인 애매성으로 인하여 미래의 추종자들이 모아질 영역을 온건파들이 확대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이해가능하다. 이것은,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불이익을 쉽게 초래할 전술적 이점이다 ; 그것은 폭력적 행동을 취할 시간이 왔다고 가장 급진적인 당원이 생각할 때마다 내분을 초래할는지도 모른다. 급진파가 폭력에 관한 모호성을 체계적으로 이용할 방식은 파크스(Parkes)가 최근 마르크스주의를 비판적으로 해부한 것에서 인용된 다음 발췌문으로 예시될 것이다. ‘미국의 공산당이 자신은 혁명을 옹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혁명을 옹호하지도 않았다고 이제 선언하기 때문에, (1928년에 초안된) 코민테른의 강령에서 몇 문장을 인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파크스(Parkes)는 그 다음에 다른 구절들 가운데서 다음 구절을 이 강령에서 인용한다 :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의회의 다수를 통하여 기존의 부르주아 국가를 평화적으로 “포획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권력 장악은.. 부르주아 권력을 폭력적으로 전복하는 것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기구를 파괴하는 것이다... 당(黨)은..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대중을 이끌 임무에 직면한다. 이것은 정치선전.. 과.. 대중행동에.. 의하여 수행된다... 이 대중행동에는.. 최종적으로, 무장봉기와 함께 총파업이 포함된다... 무장봉기 형태는.. 최상의 형태인데, 전쟁규칙에 따라서 수행되어야 한다..’ 이 인용 구절로부터 사람들은 강령의 이 부분이 완전히 명확함을 안다 ; 그러나, 이것은 전술적 상황이 요구하면, ‘사회혁명’이라는 용어를 비(非)폭력적으로 해석하는 데로 후퇴하면서, 당(黨)이 폭력에 관한 모호성을 체계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 ; 그리고 이것은 (1928년의 강령에 포함된)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단에 구애받지 않는다 :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견해나 목표를 숨기는 일을 경멸한다. 그들은 현존하는 모든 사회 조건을 무력적으로 전복함으로써만 자신들의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그러나 온건파가 권력 장악에 관한 모호성뿐만 아니라 폭력에 관한 모호성 또한 체계적으로 이용했던 방식은 훨씬 더 중요하다. 그 방식은, 위에 인용된 마르크스의 더 온건한 관점을 기초로, 특히 엥겔스에 의하여 개발되었고, 이후 상황전개에 크게 영향을 미친 전술적 교설이 되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교설은 다음과 같이 제시될는지도 모르겠다 :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우리가 가질 수 있다면, 사회주의를 향한 평화롭고도 민주주의적인 상황전개를 훨씬 더 선호한다. 그러나 정치적 현실주의자들로서 우리는, 우리가 다수를 얻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부르주아 계급이 조용히 기다리지 않을 개연성을 예견한다. 그들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 경우에, 우리는 움츠리지 말고 저항해서 싸워서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 상황전개가 개연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상황전개에 대하여 노동자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틀림없이 우리가 지닌 대의명분을 배신하게 된다. 여기에 그 문제에 관한 엥겔스의 글 한 구절이 있다 ; ‘현재로서.. 합법성은.. 우리에게 호의적으로 잘 작동하여 합법성이 지속되는 한 그 합법성을 포기하면 틀림없이 우리는 제정신이 아니다. 우리를 폭력으로 압살하기 위하여 먼저 합법성을 포기할 것이.. 부르주아 계급이 아닐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부르주아 계급의 신사들이여, 먼저 발사하라 ! 그들이 먼저 발사할 것을 의심하지 말라. 어느 화창한 날.. 부르주아 계급은 급격히 증가하는 사회주의의 힘을 보는 것에.. 지쳐서, 불법과 폭력을 사용할 것이다.’ 그 다음에 발생할 것은 체계적으로 모호하게 남겨져있다. 그리고 이 모호성은 위협으로 이용된다 ; 그 까닭은 나중 구절에서, 엥겔스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신사들’에게 연설을 하기 때문이다 ; ‘만약.. 당신들이 헌법을 위반한다면.. 사회민주당은, 당신들에 대항하여, 자유롭게 행동하거나 자유롭게 행동을 삼간다 - 그 당(黨)이 총애하는 무엇이든지. 그러나 그 당(黨)이 무엇을 하려는지 그 당(黨)은 당신들에게 오늘 밝히지 않는다 !’
자본가들에게 미치는 성공적인 노동계급 운동의 증가하는 압력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자본주의의 증가하는 압력의 결과로서 혁명이 오리라고 예언했던 마르크스주의의 당초 개념과 이 교설이 얼마나 크게 다른지를 보는 것은 흥미롭다. 전선(前線)의 가장 두드러진 이 변화는 감소하는 비참함이라는 상황전개로 밝혀진 실제 사회적 상황전개의 영향을 드러낸다. 그러나 엥겔스의 새로운 교설은, 혁명적 혹은 더 정확하게 반(反)혁명적 주도권을 지배계급에게 맡기는데, 전술적으로 터무니가 없어서 실패할 운명이다. 당초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노동자들의 혁명이 불황의 심연에서, 즉 정치체제가 경제체제의 붕괴로 약화된 순간인 노동자들의 승리에 크게 기여할 상황에서 발발할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부르주아 계급의 신사들’이 먼저 발사하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그들이 자신들의 기회를 현명하게 선택하지 않을 정도로 어리석을 것이라고 상상될 수 있을까 ? 그들은 자신들이 시작할 전쟁을 위하여 합당한 대비를 하지 않을까 ? 그리고, 이론에 따라서, 그들이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그런 대비는 노동자들이 대항하여 조금이라도 승리할 가능성이 없는 힘을 동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 그런 비판은 노동자들은 다른 편이 공격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 힘을 예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이론을 수정함으로써 충족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이론이 상정(想定)하는 바에 의하여, 틀림없이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준비를 먼저 하기가 항상 쉽기 때문이다 - 노동자들이 막대기를 준비한다면, 소총을 준비하는 것, 노동자들이 소총을 준비하면 대포를, 노동자들이 대포를 준비하면 급강하 폭격기를, 기타 등등.
V
그러나 이 비판은, 실용적이고 경험에 의하여 입증된다 할지라도, 피상적일 따름이다. 교설의 주요 결점은 더 깊은 곳에 놓여있다.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비판은 교설의 전제와 교설의 전술적 결과 양쪽이, 이론이 예측은 하지만 혐오한다고 (모호하게) 주장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반(反)민주주의적 반발을 정확하게 초래할 것 같은, 그런 것임을, 밝히려고 시도한다 : 부르주아 계급에서 반(反)민주주의적인 요소의 강화,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전(內戰).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패배와, 파시즘을 초래할 것임을 알고 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비판은, 간단하게, 엥겔스가 주장하는 전술적 교설과, 더 일반적으로, 폭력에 관한 모호성과 권력 장악에 관한 모호성이, 일단 주요 정당에 의하여 채택되면,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이 비판을 민주주의는 주요 정당이 아래와 같은 (7 장의 II 부와 또한 비교하라) 몇 가지 규칙으로 요약될 그 기능에 관한 관점을 고수한다는 조건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는 주장에 기초한다 :
(1) 민주주의는, 총선거 제도가 매우 중요하다 할지라도, 다수의 통치로 완전히 특징지어질 수 없다. 그 까닭은 다수가 독재 방식으로 통치할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키가 6피트 이하인 사람들 다수는 6피트 이상의 키를 가진 사람들이 모든 세금을 내야한다고 결정한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에서 통치자들의 권력은 제한되어야 한다 ;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기준은 이러하다 : 민주주의에서, 통치지들은 - 다시 말해서, 정부는 - 피를 흘리지 않고 피통치자들에 의하여 해고될 수 있다. 그리하여 권력을 쥔 사람들이 소수에게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위하여 노력할 가능성을 확보해주지 않는 저 제도들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통치는 독재체제이다.
(2) 우리에게는 두 가지 형태의 정부, 즉 이런 종류의 제도를 지닌 정부와, 다른 모든 정부들을 구별만 할 필요가 있다 ; 다시 말해서 민주정권과 독재정권.
(3) 일관적인 민주헌법은 법률체제에서 단 한 가지 형태의 법개정을 제외시켜야 하는데, 이른바 그 헌법의 민주주의적 특성을 위협할 법개정이다.
(4) 민주주의에서는, 소수를 완전히 보호하는 것이 법을 위반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되어서는 안 되며, 특히 민주주의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사주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5)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제도의 틀을 잡는 정책은 통치자들 가운데서 뿐만 아니라 피통치자들 가운데서도 잠재적인 반(反)민주주의적 경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기초로 항상 진행되어야 한다.
(6) 민주주의가 파괴되면, 모든 권리가 파괴된다. 피지배자들이 향유하는 특정 경제적 이익이 분명히 지속된다 할지라도, 그 이익은 묵인 하에서만 지속될 것이다.
(7) 민주주의는, 폭력 없이 개혁을 허용하기 때문에, 이성적인 개혁을 위하여 무한히 가치가 있는 전투장을 제공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보존이 이 전투장에서 투쟁되는 특정 전투에서 첫 번째 고려사항이 되지 않는다면, 항상 현존하는 (그리고 우리가 10 장에서 지칭한 바와 같이, 문명의 긴장 하에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잠재적인 반(反)민주주의적인 경향들이 민주주의의 붕괴를 야기할 것이다. 이 원리에 대한 이해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면, 그 개발을 위한 싸움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 반대 정책은 치명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 그 반대 정책은 가장 중요한 전투인 민주주의 자체를 위한 전투를 패배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 정책과 반대로,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정책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민주주의를 의심하게 만드는 정책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실제로 국가는 다른 계급이 한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기계에 지나지 않는데, 이것은 군주제에 못지않게 민주주의에서도 유효하다’라고 엥겔스는 말한다. 그러나 그런 견해는 다음 사항을 초래한다 :
(a) 민주주의자들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인정하는 대신에, 민주주의가 예방하지 못하는 모든 악에 대하여 민주주의를 비난하는 정책, 그리고 다수보다는 반대파를 보통 그 못지않게 비난하는 정책. (모든 반대파는 합당한 다수를 가지고 있다.)
(b) 피통치자들로 하여금 국가를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것으로 간주하도록 교육하는 정책.
(c) 피통치자들에게 상황을 개선할 단 한 가지 방법, 즉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는 방법 만 있다고 말하는 정책.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에 관한 한 가지 실제로 중요한 것인 민주주의가 권력을 제한하고 균형을 잡는다는 것을 무시한다.
그러한 정책은 열린사회의 적들이 하는 일을 하는 것과 동일하다 ; 그러한 정책은 열린사회의 적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내부 동조자를 제공한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혁명에서 첫 단계는 프롤레타리아를 지배계급의 위치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 민주주의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하여’라고 모호하게 말하는 공산당 선언에 대항하여, 나는 이것이 첫 단계로서 수용된다면 민주주의의 전투는 패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엥겔스가 주장하는 전술적 교설에 관한, 사회혁명에 기초한 모호성에 관한, 일반적인 결과가 있다. 궁극적으로, 그 결과들은 플라톤이 ‘누가 국가를 다스려야 하는가?’라고 (7 장과 비교하라) 정치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의 마지막 결과일 뿐이다. 이제 ‘권력은 어떻게 행사되는가?’와 ‘얼마나 많은 권력이 행사되는가?’라는 문제와 비교하여 ‘국가에서 누가 권력을 행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배울 바로 그 때다. 결국, 모든 정치적 문제는 인간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적 문제 즉, 법률적 틀의 문제이며, 더 많은 평등을 향한 진보는 권력을 제도적으로 통제함으로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터득해야 한다.
VI
앞 장에서와 같이, 그 예언이 최근의 역사적 상황전개에 영향을 미친 정도 같은 것을 밝힘으로써 나는 이제 두 번째 단계를 예시할 것이다. 모든 정당은 자신들의 적이 인기 없이 행동하는 데서 일종의 ‘기득권’을 지닌다. 그들은 기득권으로써 살아가며 그리하여 기득권을 오래 끌고, 강조하고, 심지어 기대하기 쉽다. 그 실수에 대한 책임에 연루되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들은 심지어 자신의 적들의 정치적 실수를 부추길 것이다. 이것은, 엥겔스의 이론과 함께, 몇몇 마르크스주의 정당으로 하여금 자신의 적들이 민주주의에 반하여 저지르는 정치적 움직임을 기대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그런 움직임에 대항하여 온 힘을 다하여 싸우는 대신에, 그 정당들은 추종자들에게 기꺼이 이렇게 말했다 : ‘이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라. 저것이 그들이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저것이 그들이 자유와 평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올 때 그것을 기억하라.’ (선거일이나 혁명일을 언급할는지도 모르는 모호한 구절.) 자신의 적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폭로하게 만드는 이 정책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움직임까지 확대된다면, 분명히 재앙을 불러온다. 그것은 민주주의적 제도에 대한 실제적이고 증가하는 위험에 직면하여 큰소리는 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정책이다. 그것은 전쟁을 말하면서 평화로 행동하는 정책이다 ; 그래서 그 정책은 파시스트들에게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으로 행동하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방법을 가르친다.
방금 언급된 모호성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싶어 하는 저 파시스트 무리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까닭은 그러한 무리가 있으리라는 가능성과, 이른바 부르주아 계급 안에서 그 무리들의 영향력은 노동자 정당이 채택하는 정책에 주로 의존하는 가능성을 우리는 참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치투쟁에서 (임금 논쟁, 기타 등등과 반대로) 혁명의 위협이나 정치적 노동쟁의의 위협을 이용하는 것을 더 자세히 고찰해보자. 위에서 설명된 것과 같이,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는 그런 수단이 공격적 무기로서 혹은 민주주의 방어를 위해서만 사용될 것인 지이리라. 민주주의 안에서, 그런 수단은 순전히 방어적 무기로서 정당화될 것이고, 방어적이고 명확한 요구와 관련하여 단호하게 적용되었을 때 그 수단들은 이런 방법으로 성공적으로 사용되었다. (급속히 붕괴한 카프의 반란을 기억하라 [1920년 바이마르 공화국을 전복하고 우익 독재를 확보하기 위하여 볼프강 카프Wolfgang Kapp가 일으킨 반란. - 역자 주].) 그러나 공격적인 무기로 사용된다면 그 수단들은 적의 진영에서 반(反)민주주의적인 경향을 강화하는 결과를 분명히 불러오는데, 그 까닭은 그 수단들이 분명히 민주주의를 작동 불가능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사용법은 방어를 위해서도 무기를 틀림없이 비효율적으로 만든다. 심지어 개가 말을 잘 들을 때 당신이 회초리를 사용한다면, 개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막으려고 당신이 회초리를 필요로 한다면 회초리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 방어는 반(反)민주주의적 실험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만드는 데 달려있어야 한다 ; 민주주의적 타협보다 훨씬 더 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노동자들이 여하한 종류의 비(非)민주주의적인 압력을 사용하는 것은 유사하거나, 심지어 반(反)민주주의적인 반대압력을 초래하기 쉽다 - 민주주의에 반하는 움직임을 촉발하는 것. 통치자들 편에서의 그런 반(反)민주주의적 움직임은, 물론, 피통치자들 편에서의 유사한 움직임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위험한 것이다. 이 위험한 움직임과 단호하게 싸우는 것, 그 움직임의 드러나지 않는 시초에서 저지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임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어떻게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이제 싸울 수 있을까 ? 노동자 자신의 반(反)민주주의적 행동은 그들의 적과 민주주의의 적에게 기회를 분명히 제공한다.
설명된 상황전개에 관한 사실들은, 누가 원한다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 그 사실들은 민주주의란 ‘훌륭하지 않다’는 결론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정말로 수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내린 결론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전술적 교설을 공식화하는 순간 패배했던) 민주주의의 투쟁이라고 믿었던 것에서 패배당한 후,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너무 관대했고, 너무 인자했다 - 다음번에 우리는 진실로 피로 얼룩진 혁명을 할 것이다 !’ 권투시합에서 패한 사람이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것과 같다 : 권투는 소용이 없다 - 나는 곤봉을 사용했어야 했다... 사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계급전쟁의 이론을 노동자들에게 가르쳤지만, 그 이론의 실습을 부르주아 계급의 반동적 골수분자에게 가르쳤다. 마르크스는 전쟁을 말했다. 그의 적들은 주의 깊게 들었다 ; 그 다음에 그들은 평화를 말하며 호전성에 대하여 노동자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 계급전쟁이 그들의 구호였기 때문에, 이 혐의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파시스트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지금까지, 분석은 주로 자신들의 정책을 전적으로 엥겔스가 주장한 모호한 전술적 교설에 기초하였던 더 ‘급진적인’ 어떤 사회민주당들을 포함한다. 엥겔스가 주장한 전술의 파멸적 효과는 사회민주당들의 경우에 앞 장에서 논의된 실용적 강령의 결여에 의하여 확대되었다. 그러나 특정 국가들과 특정 기간에, 특히 다른 노동자 정당들이, 예를 들어 사회민주주의자들이나 노동당이 민주주의적 규칙을 준수했던 곳에서, 공산주의자들 또한 여기서 비판된 전술을 채택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강령을 가지고 있었던 한 공산주의자들과 관련된 관점은 달랐다. 그 관점은 ‘러시아를 본받아라!’였다. 이것으로 인하여 공산주의자들은,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체제를 의미할 뿐이라는 그들의 주장에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혁명적 교설에서도, 더 분명해졌다. 이 주장에 따르면, 저 숨겨진 독재체제가 공개된 독재체제가 되어 모든 사람에게 분명해지면, 잃을 것은 별로 없고 중요한 것이 얻어질 것이다 ; 그 까닭은 이것이 혁명을 보다 가까이 가져올 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지어 중부유럽의 전체주의적 독재체제가 문제를 촉진시키기를 희망했다. 결국, 혁명은 오게 되어 있기 때문에, 파시즘은 혁명을 낳는 수단의 하나 일 수 있을 뿐이다 ; 그리고 혁명이 분명히 오랫동안 지체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더욱 특히 그러하다. 러시아는 자신의 후진적 경제조건에도 불구하고 혁명을 경험했다. 민주주의에 의하여 만들어진 헛된 희망들만이 더 발전한 나라에서 혁명을 억제하고 있다. 그리하여 파시스트들을 통한 민주주의 파괴는 민주주의적 방법에 대한 노동자들의 궁극적 환멸을 성취함으로써 혁명을 촉진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과 함께, 마르크스주의의 급진파는 자신이 파시즘의 ‘본질’과 ‘진정한 역사적 역할’을 발견했다고 느꼈다. 파시즘은, 본질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마지막 저항이었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싸우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싸우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없었다.) 그 까닭은 공산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지체되었다고, 파시즘이라는 막간휴식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촉진하는 데 필수적인데 몇 개월 이상을 지탱할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떤 행동도 요구되지 않았다. 공산주의자들은 해롭지 않았다. 파시즘이 권력을 장악하는 데 ‘공산주의의 위협’은 없었다. 아인슈타인이 예전에 강조한 바와 같이, 공동체의 모든 조직된 단체 중에서, 진지하게 저항했던 것은 교회, 즉 더 정확하게 교회의 한 지파 만이었다.
20 장 : 자본주의와 그 운명
마르크스주의의 교설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자신 몰락을 가져오도록 위협하는 내부모순 하에 고생을 한다. 이 모순들과 그 모순들이 사회에 강요하는 역사적 운동을 자세히 분석하는 것이 마르크스의 예언적 주장의 첫 번째 단계를 구성한다. 이 단계는 그의 전체 이론에서 가장 중요할 뿐만 아니라 그가 자신의 노력 대부분을 쏟아 부은 이론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실제로 자본론 세 권 전체가 (초판이 2,200 쪽이 넘는다) 이 단계를 상술하는데 바쳐진다. 그 단계는 통계로 뒷받침되어 그가 살던 시대의 경제체제를 묘사적으로 분석한 것에 기초하기 때문에 주장의 가장 비추상적인 단계이기도 하다. - 무제한적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 레닌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동시대 사회가 지닌 운동의 경제법칙으로부터 전체적으로 그리고 독점적으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사회가 사회주의로 이전하는 불가피성을 추론한다.’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예언적 주장의 첫 번째 단계를 좀 자세하게 설명하는 데로 나아가기 전에, 나는 그 주요 개념을 매우 간단한 개략적 형태로 설명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경쟁이 자본가들의 손을 강제로 움직인다고 믿었다. 자본주의적 경쟁은 자본가로 하여금 자본을 축적하도록 강요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본가는 자기 자신의 장기적 경제 이익에 반하여 활동한다 (자본의 축적이 자신의 이익감소를 초래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개인적 이익에 반하여 활동한다 할지라도, 그는 역사적 상황전개에 도움이 되도록 활동한다 ; 그는, 알지 못한 채, 경제적 진보를 위하여, 사회주의를 위하여, 활동한다. 이것은 자본축적이 (a) 증가된 생산성 ; 부(富)의 증가 ; 그리고 소수의 손에 부(富)의 집중 ; (b) 빈곤과 비참함의 증대를 의미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 주로 ‘산업 상비군’으로 불리는 잉여 노동자가 임금을 최대한으로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사실에 의하여 노동자들은 생존수준이나 기아임금 수준에서 부양된다. 경기순환은, 여하한 기간 동안, 잉여 노동자가 성장하는 산업에 의하여 흡수되는 것을 저지한다. 이것은 자본가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도 자신들에 의하여 변할 수 없다 ; 그 까닭은 자신들의 이익이 감소하는 비율이 그들 자신의 경제적 위치가 어떤 효과적인 행동을 하기에는 너무 많이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자본축적은, 사회주의를 향한 기술적이고 경제적이고 역사적인 진보를 촉진한다 할지라도, 자살적이고 자기 모순적 과정으로 판명된다.
I
첫 번째 단계의 전제들은 자본주의적 경쟁과 생산수단의 축적에 관한 법칙이다. 결론은 증가하는 부(富)와 비참함이라는 법칙이다. 나는 나의 토론을 이 전제와 결론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쟁전’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생산된 상품을 가능하다면 경쟁자가 수용할 여유가 있을 것보다 더 낮은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수행된다. ‘그러나 상품의 저렴한 가격은, 다른 것들이 동등하다면, 노동의 생산성에 달려있다 ; 그리고 이것은, 다시, 생산규모에 달려있다’고 마르크스는 설명한다. 그 까닭은 대규모 생산은 일반적으로 더 전문화된 기계류를 더 많은 양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 이것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증가하고, 자본가는 더 낮은 가격에 생산하여 판매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거대 자본가는 작은 자본가들 이긴다... 경쟁은, 많은 소자본가들의 몰락으로, 그리고 그들의 자본이 정복자의 손에 들어감으로써, 항상 끝난다.’ (이 운동은, 마르크스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신용제도에 의하여 더욱 가속도가 붙는다.)
마르크스의 분석에 따르면, 묘사된 과정인 경쟁으로 인한 축적에는 두 가지 다른 국면이 있다. 한 가지 국면은 자본가가 생존하기 위하여 점점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거나 집중하도록 강요당한다는 것이다 ; 이것은 실제로 점점 더 새롭고 점점 더 많은 기계류에 점점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하여, 그리하여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축적의 다른 국면은 다양한 자본가들과, 자본가 계급의 손에 점점 더 많은 부(富)가 집적되는 것이다 ; 그리고 그것과 함께 마르크스에 의하여 (단순한 축적[accumulation]이나 집적[concentration]과 대비하여) 자본의 집중(centralization)라고 불리는 운동인 자본가의 숫자 감소가 일어난다.
이제 경쟁, 축적, 그리고 증가하는 생산성이라는 세 가지 용어는, 마르크스에 따르면, 모든 자본주의적 생산의 근본적인 경향을 표시한다 ; 그것들은 내가 첫 번째 단계의 전제를 ‘자본주의적 경쟁과 축적의 법칙’으로 묘사했을 때 내가 언급했던 경향들이다. 그러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용어인 집적(concentration)과 집중(centralization)은 첫 번째 단계의 결론의 한 부분을 형성하는 한 가지 경향을 가리킨다 ; 그 까닭은 그 용어들이 지속적인 부(富)의 증가가 점점 더 적은 손 안에 집중되는 경향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결론의 다른 부분인 증가하는 비참함이라는 법칙은, 그러나, 훨씬 더 복잡한 주장에 의하여 도달될 따름이다. 그러나 이 주장을 설명하기 전에, 나는 먼저 두 번째 결론 자체를 설명해야 한다.
‘증가하는 비참함’이라는 용어는, 마르크스에 의하여 사용되는 바와 같이, 두 가지 다른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 용어는, 비참함의 범위가 증가하는 숫자의 사람들에게 퍼진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비참함의 범위를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될 것이다 ; 아니면 그 용어는 사람들의 고통의 강도(强度)가 증가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사용될는지도 모른다. 비참함은 범위와 강도(强度) 양쪽 모두에서 증가하고 있다고 마르크스는 의심할 바 없이 믿었다. 이것은, 그러나, 자신이 주장하는 요점을 제시하기 위하여 그가 필요했던 것 이상이다. 그 까닭은 예언적 주장의 목적인 ‘증가하는 비참함’이라는 용어를 더 넓게 해석하면 (더 뛰어나지는 않을지라도) 그 만큼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 한 가지 해석은, 즉 그 해석에 따라서 비참함의 범위가 증가하는데, 비참함의 강도(强度)가 증가하거나 증가하지 않는 반면, 아무튼 뚜렷한 감소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고 훨씬 더 중요한 말이 있다. 증가하는 비참함은, 마르크스에게는, 고용된 노동자들을 점점 더 착취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포함한다 ; 숫자에서 뿐만 아니라 강도(强度)에서도 또한. 게다가 증가하는 비참함은, 마르크스에 의하여 (비교적) ‘잉여인구’나 ‘산업 상비군’으로 불리는 실업자의, 숫자뿐만 아니라 고통의 증가도 포함한다는 것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업자들의 기능은, 이 과정에서,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그리하여 고용된 노동자들로부터 이익을 창출하려는, 즉 고용된 노동자들을 착취하려는, 자본가들의 노력에서 자본가들을 돕는 것이다. ‘산업 예비군은, 자본주의 구성원들이 자본가들의 비용으로 자본가들에 의하여 양육되었던 듯 자본주의에 속한다. 그 까닭은 자본의 다양한 욕구로 인하여 자본은 착취 가능한 인간재료를 항상 준비된 공급물로 만들기 때문이다... 경기침체와 반(半)호황 기간 동안에, 산업 예비군은 고용된 노동자 계층에 압력을 유지한다 ; 그리고 과잉생산과 과도 호황기 동안에는, 그것은 고용된 노동자들의 열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증가하는 비참함은, 마르크스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노동력을 확대하여 착취하는 것이다 ; 그리고 실업자들의 노동력이 착취되지 않기 때문에, 실업자들은 이 과정에서 고용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가들의 무급 조력자로서만 활동할 수 있다. 후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실업을 비참함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예언을 증명하는 경험적 사실 하나로 자주 언급하기 때문에 이 요점은 중요하다 ; 그러나 실업은 고용된 노동자들을 더 착취함과 더불어, 즉 긴 노동시간과 낮은 실질 임금과 더불어 발생한다는 조건에서만 마르크스의 이론을 입증한다고 주장될 수 있다.
이것은 ‘증가하는 비참함’이라는 용어를 설명하는 데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발견했다고 주장했던 증가하는 비참함이라는 법칙을 설명할 필요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것으로써 나는 전체 예언적 주장이 근거하는 마르크스의 교설을 의미한다 ; 즉, 자본주의적 축적이라는 구조는 자본가가 굴복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노동자들에게 이전하는 강력한 경제압력 하에 자본가를 두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도저히 노동자들의 비참함을 줄일 여유가 가지지 못한다는 교설. 이것이, 자본가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도, 자본가들이 타협할 수 없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중요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이유이다 ; 이것이 ‘자본주의는 개혁될 수 없고 파괴될 수만 있는’ 이유이다. 이 법칙이 첫 번째 단계의 결정적 결론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결론인 증가하는 부(富)는, 부(富)의 증가가 다른 노동자들에 의하여 공유되는 것이 가능한 조건에서만 해롭지 않는 문제가 될 것이다. 이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그러므로 우리가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주요 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도움이 되도록 마르크스의 주장을 제시하여 비판하는 데로 나아가기 전에, 나는 결론의 첫 번째 부분인 증가하는 부(富)에 관한 이론을 간단하게 비판할 것이다.
부(富)가 축적되고 집적되는 경향은, 마르크스가 관찰했는데, 의문시 될 수 없다. 증가하는 생산성에 관한 그의 이론 또한, 주로, 예외적일 수 없다. 기업의 성장이 그 생산성에 미치는 이로운 효과에는 한계가 있을지라도, 기계류를 개선하고 축적하는 이로운 효과에는 한계가 거의 없다. 그러나 자본이 점점 더 적은 손에 집중되는 경향에 관해서는, 문제가 완전히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의심할 바 없이,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경향은 있고, 무제한적인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상쇄적인 힘이 별로 없음을 우리는 인정할 것이다. 무제한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묘사로서 마르크스의 분석의 이 부분에 대하여 말할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예언으로서 고찰되면, 그것은 옹호되기가 더 어렵다. 그 까닭은 입법으로 개입할 수단이 이제는 많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세와 상속세가 집중을 막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과세와 상속세는 그렇게 사용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덜 효과적이라 할지라도 반(反)트러스트 입법 또한 이용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예언적 주장이 지니는 힘을 평가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방향으로의 커다란 움직임의 가능성을 고찰해야 한다 ; 그리고 앞 장에서처럼, 마르크스가 집중이나 자본가 숫자의 감소에 관한 예언을 기초하는 그 주장은 확정적이 아니라고 나는 선언해야 한다.
첫 번째 단계의 주요 전제와 결론을 설명하고, 첫 번째 결론을 제거한 다음에, 우리는 이제 마르크스의 다른 결론유도인 증가하는 비참함에 대한 예언적 법칙에 완전히 우리의 주의를 집중할 수 있다. 이 예언을 설정하려는 그의 시도 속에서 세 가지 다른 사고경향이 구분될 것이다. 그 경향들은 이 장의 다음 4개 부에서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 II : 가치 이론 ; III : 잉여인구가 임금에 미치는 영향 ; IV : 경기순환 ; V : 이윤의 감소하는 비율의 효과.
II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은, 반(反)마르크스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서도 보통 마르크스주의 신조의 초석으로 여겨지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다소 사소한 부분의 하나다 ; 정말로, 내가 그 이론을 다루려는 유일한 이유는, 다음 부분으로 즉각 진행하는 대신에, 그 이론이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과, 그 이론을 토론하지 않고는 그 견해와 달라지는 나의 이유를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치이론은 마르크스주의의 과잉적인 부분이라고 주장하면서 내가 마르크스를 공격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옹호한다는 것을 나는 즉각 명백히 하고 싶다. 그 까닭은 가치이론이 본질적으로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증명한 많은 비판자들이 주로 완벽하게 옳다는 데는 의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비판자들이 틀렸다 할지라도, 마르크스주의의 결정적인 역사적-정치적 교설이 그런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이론과 완전히 독립적으로 개발될 수 있다는 것이 확립될 수 있다면 마르크스주의의 위치는 강화될 수 있을 따름일 텐데.
이른바 노동가치설이라는 개념은, 자신의 선배들에게서 (그는 특히 아담 스미스[Adam Smith]와 데이비드 리카르도[David Ricardo]를 언급한다) 자신이 발견한 제안으로부터 이 목적을 위하여 마르크스에 의하여 채택되는데, 아주 간단하다. 여러분에게 목수가 필요하다면, 여러분은 목수에게 시간당으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여러분이 그에게 왜 어떤 직업은 다른 직업보다 더 돈을 더 주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는 그 직업에는 일이 더 많다고 지적할 것이다. 노동에 덧붙여, 여러분은 물론 목재에 대해서도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 속으로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 보면, 여러분은, 간접적으로, 삼림조성, 나무 베기, 운반, 나무 켜기, 기타 등등에 포함된 노동에 대해서도 돈을 지불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런 고찰로 인하여, 대략 공산품 속에 있는 일의 양에 비례하여, 즉 그 공산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 수에 비례하여 여러분은 직업이나 구매할 어떤 공산품에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이론이 제시된다.
실제 가격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나는 ‘대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가격 뒤에는 보다 안정된 것인 실제가격이 그 주변에서 동요하는 일종의 평균가격이, ‘교환가격’이나 간단하게 사물의 ‘가치’라고 명명되어, 항상 존재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이 일반적인 개념을 사용하여, 마르크스는 공산품의 가치를 그 공산품 생산을 위하여 (혹은 그 공산품의 재생산을 위하여) 필요한 노동시간의 평균 숫자로 정의하였다.
그 다음 개념인 잉여가치설이라는 개념은 동등하게 간단하다. 그 개념 역시 자신의 선배들로부터 마르크스에 의하여 채택되었다. (엥겔스는 - 아마도 틀리게, 그러나 나는 그의 문제제기를 따를 것이다 - 마르크스의 주요 근원은 리카르도[Ricardo]라고 주장한다.) 잉여가치설은, 노동가치이론의 한계 안에서, ‘자본가는 어떻게 이윤을 창출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는 시도이다. 우리가 자본가의 공장에서 생산된 공산품이 시장에서 그 공산품의 진짜 가치로, 즉 그 공산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필요한 노동 시간 수에 따라서 팔린다고 상정(想定)한다면, 자본가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의 완전한 가치보다 덜 노동자들에게 돈을 지불함으로써 이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노동자들이 일한 시간수와 동일하지 않은 가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의 근로일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가 자신이 받는 임금과 동등한 자신이 생산에 쓴 시간과 자신이 자본가를 위하여 가치를 생산하면서 쓴 시간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에 의하여 생산된 전체 가치를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신의 임금에 상응하는 가치와 그 나머지로 잉여가치라고 불린다. 이 잉여가치는 자본가에 의하여 착복되며 자본가의 이윤을 위한 유일한 토대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다. 그러나 이제 이론적 난제들이 출현한다. 전체 가치이론은 모든 공산품이 교환되는 실제 가격을 설명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 그리고 자본가는 시장에서 자신의 생산품의 완전한 가치를, 즉 그 생산품에 쓴 전체 시간 수에 상응하는 가격을, 얻을 수 있다고 아직도 상정(想定)된다. 그러나 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자본가에게 파는 상품의 전체 가격을 얻지 못하는 듯싶다. 노동자는 사기당하고 강탈당하는 듯싶다 ; 아무튼, 그는 가치이론에 의하여 상정된 일반적인 법칙, 즉 지불된 모든 실제 가격은, 적어도 최초의 근사치에서, 공산품의 가치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에 따라서 돈을 받지 않는 듯. (엥겔스는 그 문제가 마르크스에 의하여 ‘리카르도[Ricardo] 학파’라고 불리던 것에 속했던 경제학자들에 의하여 이해되었다고 말한다 ; 그리고 그 문제를 풀 수 없는 그 경제학자들의 무능 때문에 이 학파가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그 난제에 대한 다소 분명한 해결책으로 보이는 것이 나타났다.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독점한다, 그래서 이 우월한 경제력은 노동자들을 협박하여 가치에 대한 법칙을 위반하는 협정을 수용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해결책은 (나는 상황을 매우 합당하게 묘사한다고 생각한다) 노동가치설을 완전히 파괴한다. 그 까닭은 특정 가격, 이른바, 임금이, 심지어 최초의 근사치에서도, 임금의 가치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사한 이유 때문에 다른 가격에도 사실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마르크스가 노동가치설을 파멸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현장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상황은 그러했다. 또 다른 간단하지만 뛰어난 개념의 도움을 받아서 그는 잉여가치설이 노동가치설과 양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가치설로부터 엄격하게 추론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밝히는 데 성공했다. 이 추론을 성립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하기만 하면 된다 :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파는 상품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 마르크스의 대답은 : 노동자의 노동 시간이 아니라, 노동자가 지닌 전체 노동력이다. 자본가가 노동시장에서 사거나 고용하는 것은 노동자의 노동력이다. 이 상품이 실질가치로 팔린다고, 임시적으로, 상정(想定)하자. 그 상품의 가치는 무엇인가 ? 가치의 정의(定義)에 따르면, 노동력의 가치는 상품을 생산하거나 재생산하기 위하여 필요한 평균 노동시간 수이다. 그러니 이것은, 분명히, 노동자의 (그리고 그의 가족의) 생존수단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필요한 시간 수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그리하여 다음 결과에 도달했다. 노동자의 전체 노동력에 대한 실질가치는 자신의 생존수단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과 동일하다. 노동력은 이 가격을 얻기 위하여 자본가에게 팔린다. 노동자가 그보다 더 오래 일할 수 있다면, 그의 잉여노동은 구매자나 그의 힘을 고용한 사람에게 귀속된다. 노동생산성이 클수록, 다시 말해서, 노동자가 시간당 더 많이 생산할수록, 자신의 생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더 시간이 적게 필요할 것이고, 더 많은 시간이 노동자의 착취를 위하여 남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토대가 노동의 높은 생산성임을 보여준다. 노동자가 하루에 자신이 필요한 것만 생산할 수 있다면, 착취는 가치법칙을 위반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 착취는 사기(詐欺), 강탈, 혹은 살인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생산성이, 기계류의 도입에 의하여, 높이 솟아서 한 사람이 자신이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면, 자본가의 착취는 가능해진다. 심지어 노동력을 포함하여 모든 상품이 실질가격에 구매되고 판매된다는 의미에서 ‘이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착취는 가능하다. 그런 사회에서, 착취라는 불의(不義)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에 비해서 ‘정당한 가격’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가는 대량으로 노동력을 구매하여 그 노동력으로부터 이윤을 창출할 정도로 충분히 부유한 반면 그는 너무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는 사실에 놓여있다.
그러나 잉여가치설을 이렇게 도출하여,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을 파멸로부터 당분간 구해냈다 ; 그리고 내가 (그 둘레에서 가격이 요동치는 ‘객관적’ 실제 가치라는 의미에서) 전체 ‘가치문제’가 무관하다고 여긴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꺼이 이것이 최고로 중요한 이론적 성공이었다고 인정하겠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부르주의 경제학자들’에 의하여 당초에 개진된 이론을 구원하는 것 이상의 일을 했다. 단번에, 그는 착취이론과 왜 노동자들의 임금이 생존 (혹은 기아) 수준에서 요동치는 경향이 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가장 큰 성공은 법률체제에 대한 그의 경제이론과 일치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자유주의의 법률적 외피를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에 관한 설명을 당시 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새로운 이론으로 인하여 그는 새로운 기계류 도입이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면, 잔혹한 힘 대신에 자유시장을 이용한, 그리고 정의와 법 앞의 평등과 자유를 ‘형식적으로’ 준수하는 데 기초한, 새로운 형태의 착취 가능성이 나타났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자유경쟁’ 체제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착취함으로써 또한 유지되는, 형식적 의미에서, 자유로운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유지되는’ 체제였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가치이론에 대하여 행한 정말로 놀라운 숫자의 추가 적용을 내가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론에 대한 나의 비판이 가치이론이 이 모든 조사로부터 제거될 수 있는 방식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불필요하다. 나는 이제 이 비판을 전개하겠다 ; 그 비판의 세 가지 요점은 (a) 마르크스가 주장한 가치이론은 착취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b) 그런 설명을 위하여 필요한 추가 상정(想定)은 충분한 것으로 밝혀져서, 가치이론은 군더더기로 판명된다, (c)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가치이론은 본질주의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이론이다.
(a) 가치이론의 근본법칙은 임금을 포함하는 실제로 모든 상품의 가격이 상품의 가치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즉 더 정확하게, 상품들은 적어도 최초의 근사치에서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과 정비례한다는, 법칙이다. 이제 이 ‘가치법칙’은, 내가 그렇게 지칭할 것과 같이, 즉시 문제를 제기한다. 왜 그 법칙은 유효한가? 분명히, 상품의 구매자나 판매자는, 힐끗 보고, 그 상품의 생산을 위하여 몇 시간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 그리고 그 사람들이 알 수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가치법칙을 설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까닭은 구매자는 가능한 한 값싸게 구매할 뿐인 것과, 판매자는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만큼 많이 가격을 매긴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장가격에 대한 이론의 근본적 상정(想定)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가치이론을 설명하기 위하여, 왜 구매자는 상품의 ‘가치’ 이하로 구매하지 못하고 판매자는 상품의 ‘가치’ 이상으로 판매하지 못할 것 같은지를 밝히는 것이 우리의 임무일 것이다. 이 문제는 노동가치설을 신뢰했던 사람들에 의하여 다소 명료하게 포착되었고, 그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단순화를 목적으로, 그리고 최초의 근사치를 얻기 위하여, 자유경쟁을 완벽하게 상정(想定)하자, 그리고 동일한 이유로 (노동을 이용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만) 실제로 무한정한 수량으로 제조될 수 있는 그런 상품만을 상정(想定)하자. 이제 우리는 그런 상품의 가격이 그 가치를 넘는다고 상정하자 ; 이것은 과도한 이윤이 이 특정 생산 지류에서 창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다양한 제조업자들로 하여금 이 상품을 제조하도록 격려하여, 경쟁이 가격을 낮출 것이다. 반대 과정은 가치 이하로 팔리는 상품의 가격인상을 야기할 것이다. 그리하여 가격 동요가 일어날 것이고, 이 동요는 상품의 가치 주변에 몰리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경쟁 하에서 가치의 법칙에 힘을 더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구조이다.
이와 같은 고찰은 마르크스에게서 흔히 발견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자본론 3권에서 그는 왜 다양한 제조 지류에서 모든 이윤이 특정 평균이윤에 근접하고 자체를 조절하는 경향이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이윤은 1권에서 특히 왜 임금은 거의 생존수준으로 낮게 유지되는지, 혹은 동일한 것이지만 기아수준 바로 위에서 유지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또한 이용된다. 이 수준 아래의 임금으로써, 노동자들은 실제로 굶주리고 노동시장에서의 노동력 공급이 사라질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간다면, 사람은 2세를 낳을 것이다 ; 그래서 마르크스는 왜 자본가들의 축적이 틀림없이 잉여인구 즉, 산업예비군을 낳는지를 자세히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우리가 IV 부에서 볼 것과 같이). 그래서 임금이 기아수준 바로 위에 있다면 노동시장에는 충분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과도한 노동력 공급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 그리고 마르크스에 따르면, 임금인상을 막는 것은 이 과도한 공급이다 : ‘산업예비군은 고용된 노동자 계층에 압력을 계속 가한다 ; .. 그리하여 잉여인구는 그 앞에서 노동의 수요공급 법칙이 작동하는 배경이다. 잉여인구는 그 내부에서 이 법칙이 착취와 지배를 위한 자본가들의 탐욕에 가장 잘 맞는 그런 한계까지 작동하도록 허용된 한계를 제한한다..’
(b) 이제 이 구절은 마르크스 자신이 가치의 법칙을 보다 구체적인 이론으로 옹호할 필요성을 깨달았음을 보여준다 ; 여하한 특정한 경우에, 어떻게 수요와 공급의 법칙들이 설명되어야 하는 효과를 초래하는지를 밝히는 이론 ; 예를 들어, 기아임금. 그러나 이 법칙들이 이 효과들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면, 노동가치설이 첫 번째 근사치로서 옹호될 수 있든 아니든 간에 (나는 옹호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노동가치설이 전혀 필요 없다. 게다가, 마르크스가 깨달은 바와 같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자유경쟁이 없고, 그리하여 그의 가치법칙이 분명히 작동할 수 없는 저 모든 경우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하다 ; 예를 들어, 독점이 변함없이 ‘가치’ 이상으로 가격을 유지시키는 경우. 마르크스는 그런 경우를 예외로 간주했는데, 그것은 올바른 견해가 아니다 ; 그러나 이것이 어떻든 간에, 독점의 경우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들이 그가 주장한 가치의 법칙을 보충하는 데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법칙들이 더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가 했던 바와 같이 우리가 만성적으로 과도한 노동공급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노동시장을 상정(想定)한다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들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가 관찰한 모든 ‘착취’현상을 설명하기에 충분하기도 하다 - 더 정확하게, 기업가들의 부(富)와 나란히 노동자들의 비참함이라는 현상. (이 과도한 공급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론은 아래 IV 부에서 더 완전하게 토론될 것이다.) 마르크스가 밝히는 바와 같이, 노동자들이 그런 환경에서 강제로 낮은 임금에 긴 시간동안 일을 하는 것은, 다시 말해서 자본가가 ‘노동자들의 노동의 열매 중 가장 좋은 부분을 강탈하게’ 허용하는 것은, 충분히 명백하다. 그래서 이 하찮은 주장에서, 그 주장은 마르크스 자신의 주장의 한 부분인데, ‘가치’를 심지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리하여 가치이론은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착취이론에서 완전히 과잉적인 부분으로 판명된다 ; 그리고 이것은 가치이론이 사실인지 아닌지의 의문과 독립적으로 유효하다. 그러나 우리가 잉여인구에 관한 교설을 수용한다면, 가치이론이 배제된 다음에 남는 마르크스의 착취이론의 부분은 의심할 바 없이 옳다. (국가를 통한 부[富]의 재분배가 없는 상태에서) 잉여인구의 존재가 기아임금을 틀림없이 낳고, 생활수준에서 도발적인 격차를 낳는다.
(그다지 분명하지 않고, 또한 마르크스에 의하여 설명되지도 않은 것은 왜 노동공급이 계속해서 수요를 능가해야 하는가이다. 그 까닭은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 그렇게 이윤을 남긴다면, 자본가들이 경쟁에 의하여 더 많은 노동을 고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윤을 높이려고 억지로 노력하지 않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 다시 말해서, 왜 그들은 노동시장에서 서로 경쟁하여, 임금이 더 이상 충분히 이윤을 내지 못하게 되어 착취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정도까지 임금을 올리지 않을까 ? 마르크스는 이렇게 대답했었을 것이다 - 아래 V 부를 보라 - ‘경쟁으로 인하여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기계류에 더 많이 자본을 투자하여, 그들이 임금으로 쓸 자본의 그 부분을 증액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본을 기계류에 쓴다 할지라도 기계류를 만들 노동력을 구매함으로써 혹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노동을 구매하도록 함으로써 노동수요를 증가시키며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대답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마르크스가 관찰한 ‘착취’ 현상은 그가 믿었던 바와 같이 완전히 경쟁적인 시장의 구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요인들에 - 특히 낮은 생산성과 불완전하게 경쟁적인 시장의 혼합에 - 기인한 듯 보인다. 그러나 그 현상에 대한 자세하고도 만족스러운 설명은 여전히 없는 듯싶다.)
(c) 가치이론과 마르크스의 분석에서 그 이론이 행하는 역할에 대한 토론으로부터 떠나기 전에, 나는 그 이론의 또 다른 면을 간단하게 언급하고 싶다. 가격 뒤에는 가격이 단지 ‘표면의 형태’인 객관적이거나 실제적이거나 진짜 가치인 중요한 것이 있다는 전체 개념은 - 마르크스가 고안한 것은 아니지만 - 숨겨진 본질적이거나 진정한 실재와 우연적이거나 기만적인 표상을 구분함과 함께 플라톤적 관념론의 영향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객관적 ‘가치’의 이 황당한 특성을 파괴하려고 커다란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언급되어야 한다. 그는 가격의 형태로 나타나는 실재처럼 관찰될 수 있고 중요한 것만을 - 노동시간 - 수용하려고, 현실적이 되려고 노력했다 ; 그래서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수 즉, 그 상품의 ‘가치’가 중요한 것임은 의문시될 수 없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이 노동시간을 상품의 ‘가치’로 불러야 하는지 아닌지는 확실히 언어적 문제이다. 그러나 특히 우리가 마르크스와 더불어 노동 생산성이 증가한다고 상정(想定)한다면, 그런 용어사용은 매우 오해를 낳게 되며 기묘하게 비현실적이 될 것이다. 그 까닭은 증가하는 생산성과 함께 모든 상품의 가치는 감소한다는 것과, 그러므로 임금과 이윤의 다시 말해서 그것들에 쓰인 시간의 감소와 함께 실질이윤에서 뿐만 아니라 실질임금에서도 다시 말해서 노동자와 자본가가 각자 소비하는 상품에서의 증가가 가능하다는 것이 마르크스 자신에 의하여 지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단축된 노동시간과 (금[金]으로 계산된다 할지라도, 돈으로 더 높은 소득은 완전히 제외하고) 크게 개선된 노동자들의 생활수준과 같은 진정한 진보를 발견하는 곳마다, 그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동시에 마르크스의 ‘가치’인 노동자들의 소득의 실질적 본질이 감소되어 사라진다고 거세게 불평할 수 있었다. (유사한 불평이 자본가에게서 나올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마르크스 자신에 의하여 인정된다 ;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가치 용어가 분명히 얼마나 오해를 낳는지, 그리고 그것이 노동자들의 실제 사회경험을 얼마나 적게 대표하는지가 드러난다. 노동가치설에서, 플라톤식의 ‘본질’은 경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다...
III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과 잉여가치설을 제거한 다음에, 우리는 물론 잉여인구가 고용된 노동자들의 임금에 끼치는 압력을 그가 분석한 것을 (II 부의 (a) 끝을 보라) 여전히 지닐 수 있다. 자유로운 노동시장과 잉여인구 즉, 광범위하고 만성적인 실업이 있다면 (그리고 실업이 마르크스의 시대와 그 후에 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임금은 기아임금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은 부인될 수 없다 ; 그리고 동일한 가정 하에서, 위에서 전개된 축적 교설과 함께, 마르크스가 증가하는 비참함의 법칙을 선포하면서 정당화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높은 이윤과 증가하는 부(富)의 세상에서 기아임금과 비참한 생활이 노동자들의 영원한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한 것은 옳았다.
마르크스의 분석에 결점이 있다 할지라도, ‘착취’ 현상을 설명하려는 그의 노력은 가장 큰 존경을 받을 만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앞의 부 (b) 끝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심지어 지금에도 실제로 만족스러운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 듯싶다.) 마르크스는 자신이 관찰했던 상황이 혁명에 의하여 바뀌지 않는다면 영원할 것이라고 예언했을 때 틀렸으며, 상황이 더 악화하리라고 예언했을 때 훨씬 더 틀렸다는 것이 물론 언급되어야 한다. 사실이 이 예언을 반증했다. 게다가, 무제한적이고 비(非)간섭주의적 체제의 유효성을 우리가 인정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의 예언적 주장은 확정적이 아니다. 그 까닭은 마르크스의 자신의 분석에 따라서, 증가하는 비참함의 경향은 노동시장이 완전히 자유로운 체제 하에서만 - 완벽하게 무제한적인 자본주의에서 -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의, 파업의 가능성을 인정하면, 그 분석이 상정(想定)하는 바는 더 이상 적용될 수 없으며, 전체 예언적 주장이 무너진다. 마르크스 자신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는 그런 상황전개가 억압되거나, 혹은 사회혁명과 대등할 것이라고 예상해야만 한다. 그 까닭은 단체협상이 일종의 노동독점을 확립함으로써 자본에 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단체협상은 자본가가 산업예비군을 임금인하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단체협상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더 낮은 이윤에 만족하도록 강요한다. 우리는 여기서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는 구호가,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왜 진정으로 무제한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유일하게 가능한 대답이었던 지를 본다.
그러나 우리는 왜 이 구호가 국가 간섭의 전체 문제를 분명히 열어놓는지, 그리고 왜 그 구호가 무제한적인 체제에 종말을 고하고 매우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될 새로운 체제인 간섭주의를 불러올 것 같은지를 또한 본다. 그 까닭은 자본가들이, 노동조합이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의 자유를 분명히 위협한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자들의 단결권에 이의를 제기할 것은 거의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비(非)간섭주의는 그리하여 문제에 직면한다 (그것은 자유의 역설의 한 부분이다) : 어떤 자유를 국가는 보호해야할까 ? 노동시장의 자유, 혹은 가난한 자들이 단결할 자유 ? 어떤 결정을 하든, 그 결정은, 경제조건 분야에서, 국가의 간섭을,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국가의 조직된 정치권력의 사용을, 유발한다. 모든 상황 하에서, 그 책임이 의식적으로 수용되든 아니든 그 결정은 국가의 경제적 책임 확대를 유발한다. 그래서 이것은 마르크스의 분석이 기초한 상정(想定)이 소멸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증가하는 비참함이라는 역사적 법칙의 도출은 무효이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백 년 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노동자들의 비참함에 대한 충격적인 묘사와, 레닌과 함께 마르크스의 ‘당시 사회 움직임에 대한 경제적 법칙’이라고 (다시 말해서, 백 년 전의 무제한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가 부를 것의 도움을 받아서 그 비참함을 설명하려는 용감한 시도이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적 예언으로서 의도되는 한, 그리고 이것이 특정한 역사적 상황전개의 ‘불가피성’을 추론하는데 사용되는 한, 그 도출은 무효이다.
IV
마르크스가 분석한 것의 중요성은 주로 잉여인구가 그의 시대와 우리 시대까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에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아직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설명을 받지 못한 한 가지 사실) 놓여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고용된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게 유지하기 위하여 자본주의 생산구조가 필요한 잉여인구를 항상 만들어내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구조 자체라는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우리는 아직 논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이론은 본질적으로 기발하고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 그 이론에는 동시에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경기순환과 일반적인 경기침체에 관한 이론인 그 체제가 분명히 유발하는 견딜 수 없는 비참함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의 추락에 대한 예언과 분명히 관계가 있는 이론이 포함되어 있다. 가능한 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위하여 강력한 사례를 만들기 위하여, 나는 그 이론을 다소 바꾸었다 (즉, 하나는 생산 확대만을 위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생산 강화를 위한 두 종류의 기계류 구분을 도입함으로써). 그러나 이 수정은 마르크스주의 독자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다 ; 그 까닭은 내가 그 이론을 조금도 비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잉여인구와 경기순환의 수정된 이론은 다음과 같이 개괄될 것이다. 자본축적은 자본가가 자신의 이윤 일부를 새로운 기계류에 쓰는 것을 의미한다 ; 자본가의 실질이윤 일부가 기계에 놓여있는 반면, 그 이윤의 일부만이 소비재에 놓여있다고 말함으로써 이것은 또한 표현될 것이다. 이 기계들은, 나중에, 산업의 확장을 위해서, 새로운 공장들, 기타 등등을 위해서나, 현존하는 산업에서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생산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전자(前者)의 기계류는 고용증가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후자(後者)는 노동자들을 넘쳐나게 만드는, 이 과정이 마르크스 시대에 불리었던 것처럼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만드는’, 효과를 지닌다. (오늘날 그것은 간혹 ‘기술적 실업’이라고 불린다.) 이제 자본가들의 생산구조는, 경기순환에 관한 수정된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에 의하여 예상되는 바와 같이, 대략 이렇게 작동한다. 우리가, 우선, 이런저런 이유로 산업이 일반적으로 확대된다고 상정(想定)한다면, 산업예비군의 일부는 흡수될 것이고 노동시장에 가해지는 압력은 완화될 것이며 임금은 인상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호황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임금이 상승하는 순간, 생산을 강화하고 전에는 낮은 임금 때문에 이롭지 않던 어떤 기계적 개선이 이롭게 된다 (그런 기계류의 비용이 상승하기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하여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만드는’ 종류의 기계류가 더 많이 생산될 것이다. 이 기계들이 생산되는 과정에 있을 따름이라면, 호황은 계속되거나 증가한다. 그러나 새로운 기계 자체가 생산을 시작하면, 상황은 변한다. (이 변화는,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익률 감소에 의하여 강화되는데, 아래 (v)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될’ 것인데, 즉 굶주림에 처해진다. 그러나 많은 소비자들이 사라짐으로 해서 내수시장의 붕괴가 분명히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확대된 공장의 수많은 기계들이 놀게 되고 (효율이 떨어지는 기계류가 먼저), 이것은 더 심한 실업증가와 더 심한 시장붕괴를 불러온다. 다수의 기계류가 이제 운휴상태에 있다는 사실은 많은 자본이 쓸모가 없어졌음과, 많은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이룩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 그리하여 금융위기가 전개되고 자본재, 기타 등등의 생산에서 완전한 침체가 발생한다. 그러나 불황이 (혹은, 마르크스가 지칭하는 바와 같이 ‘위기’가) 지나가는 동안, 상황은 회복을 위하여 치닫는다. 이 상황은 산업예비군의 증가와 기아임금을 수용하려는 노동자들의 결과적인 각오에 주로 달려있다. 매우 낮은 임금으로, 생산은 심지어 불황에 처한 시장의 낮은 가격에도 이윤을 낼 수 있게 된다 ; 그래서 생산이 시작되면, 자본가는 다시 축적을 하고 기계류를 구매하기 시작한다. 임금이 매우 낮기 때문에, 자본가는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만드는 종류의 (아마도 그 동안에 발명된) 새로운 기계류를 사용하는 것이 아직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처음에 그는 생산을 확대할 계획으로 오히려 기계류를 구매할 것이다. 이로 인하여 서서히 고용이 확대되고 내수시장이 회복된다. 호황이 다시 한번 찾아온다. 그리하여 우리는 출발점에 다시 선다. 순환은 닫히고, 과정은 한 번 더 시작될 수 있다.
이것이 실업과 경기순환에 관한 수정된 마르크스의 이론이다. 내가 약속한 바와 같이, 나는 그 이론을 비판하지 않을 것이다. 경기순환에 관한 이론은 매우 어려운 문제여서, 우리는 확실히 그 이론에 관하여 충분히 아직 알지 못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개괄된 이론이 불완전하다는 것과, 특히, 신용창출에 부분적으로 기초한 화폐체제의 존재와 같은 그런 면과 매점매석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이것이 어떠하든, 경기순환은 쉽게 얼버무려질 수 없는 사실이며, 그 중요성을 사회적 문제로서 강조한 것은 마르크스의 가장 큰 장점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인정되어야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경기순환 이론에 기초를 두려는 예언을 비판할 것이다. 우선, 그는 불황이, 그 범위에서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의 강도(强度)에서도, 점점 더 악화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뒷받침하는 주장을 내놓지 않는다 (아마도, 곧 논의될 수익률의 감소에 관한 이론을 별도로 하고). 그래서 우리가 실제 상황전개를 바라본다면, 노동자들이 이제는 실업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나라에서조차 실업의 효과와 특히 심리적 효과가 지독하다 할지라도 노동자들의 고통은 마르크스 시대에 비교될 수 없이 더 나빴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우리는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요점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시대에, 아무도 지금은 ‘역(逆)경기순환 정책(counter-cycle policy)’이라고 불리는 국가 간섭의 기법을 생각하지 않았다 ; 그리고, 정말로, 그런 생각은 무제한적인 자본주의 체제에는 완전히 낯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심지어 마르크스 시대 이전에도, 불황기 동안의 영국은행이 편 신용정책의 지혜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고 심지어 조사가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발견한다.) 그러나 실업보험은 국가의 간섭을, 그리하여 국가의 책임 증가를, 의미하여 역경기순환 정책에서 실험을 유발하기 십상이다. 나는 이 실험들이 반드시 성공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 문제는 결국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밝혀지며, 특히 스웨덴이 이 분야에서 무슨 일이 수행될 수 있는지를 이미 증명했다고, 나는 믿지 않을지라도). 그러나 실업을 점진적 조치로써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은 하늘을 비행하는 문제가 항상 해결 불가능한 채로 남을 것이라는 (심지어 마르크스 이후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하여 제시된) 수많은 물리적 증거와 동일한 독단의 단계에 놓여있다고 나는 가장 강조하여 주장하고 싶다. 그들이 때때로 그러는 것처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가 역경기순환 정책과 유사한 점진적 조치의 유용성을 증명하였다고 말할 때, 그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을 따름이다 ; 마르크스는 무제한적인 자본주의를 조사했고 간섭주의를 꿈꾼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경기순환에 체계적으로 간섭할 가능성을 조사한 적이 없고, 그 불가능에 대한 증거를 제시한 적은 더욱 없다. 인간의 고통에 직면한 자본가들의 무책임에 대하여 불평하는 동일한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독단적 주장으로, 어떻게 인간의 고통을 경감할지와 (마르크스가 말했을 바와 같이, 어떻게 사회적 환경의 주인이 되는가), 우리의 행동이 낳는 몇 가지 원치 않는 사회적 파장을 어떻게 억제할지를 우리가 배울지도 모르는 실험에 반대할 정도로 무책임하다는 것을 발견함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변호자들은 자신들이 지닌 기득권의 이름으로 자신들이 진보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있음을 완전히 인식하지 못한다 ; 그들은, 마르크스주의가 곧 모든 종류의 기득권을 대표하게 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 같은 운동의 위험이라는 것과, 물질적인 투자뿐만 아니라 지적(知的) 투자 또한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또 다른 요점이 여기서 진술되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실업이 근본적으로 임금을 낮게 유지하는 기능을 지닌 자본주의적 구조의 장치이며, 고용된 노동자의 착취를 더 수월하게 만드는 장치라고 믿었다 ; 증가하는 비참함은 항상 그에게는 고용된 노동자의 증가하는 비참함을 또한 포함하였다 ; 그리고 이것이 바로 구상의 전체 요점이다. 그러나 이 관점이 그의 시대에는 정당화되었다고 우리가 상정(想定)할지라도 예언으로서 그 관점은 나중 경험에 의하여 명백하게 반박되었다. 고용된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마르크스 시대이래 모든 곳에서 높아졌다 ; 그리고 (파크스[Parkes]가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고용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임금보다 가격이 더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불황기에 심지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임금은, 예를 들어, 지난 대공황 동안에도 증가했다). 이것이 마르크스에 대한 명백한 반박인데, 특히 실업보험의 주요 부담을 노동자들이 아니고 기업가들이 지게 되어, 기업가들은 그리하여 마르크스의 계획 속에서처럼 간접적으로 이익을 보는 대신에, 실업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손해를 보았다.
V
지금까지 논의된 마르크스 이론의 어떤 것도 첫 번째 단계 안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점을 증명하려고 심지어 진지하게 시도하지도 않는다 ; 즉, 축적으로 인하여 자본가는, 자신이 파멸당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도록 강요당하는 강력한 경제적 압력을 받게 된다는 것 ;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파괴될 수 있을 따름이지 개혁될 수는 없다. 이 요점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수익률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법칙의 설정을 겨냥하는 저 마르크스의 이론에 포함된다.
마르크스가 수익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자율과 일치한다 ; 그것은 전체 투자자본에 대한 연평균 자본가 이익의 백분율이다. 이 비율은 자본투자의 급격한 증가 때문에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 그 까닭은 이익이 증가할 수 있는 것보다 자본투자가 틀림없이 더 빨리 축적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이용하여 이것을 증명하려는 주장은 다시 다소 교묘하다. 자본주의적 경쟁 때문에,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자본가들은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는 투자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이 생산성의 증가로써 자본가들이 인류에게 커다란 봉사를 한다는 것을 심지어 인정했다 : ‘(노예상태, 농노상태, 기타 등등과 같은) 이전 형태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사회를 재건하기 위한 사회조건에게 뿐만 아니라 생산적 능력의 발전에도 더 이로운 방식으로 그리고 더 이로운 상황에서 자본주의가 잉여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지닌 교화적(敎化的 : civilizing) 면의 하나이다. 이것을 위하여, 자본주의는 요소를 심지어 창출한다 ; .. 그 까닭은 주어진 시간 안에 생산된 유용한 상품의 수량은 노동생산성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에 대한 이 봉사는 자본가들에 의한 어떤 의도가 없이 제공될 뿐만 아니라 ; 자본가들이 경쟁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내몰리는 행동은 다음 이유 때문에 또한 그들 자신의 이익에도 역행한다.
산업가의 자본은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다. 한 부분은 토지와 기계류와 원료와 기타 등등에 투자된 것이다. 다른 부분은 임금을 위하여 쓰인다. 마르크스는 첫 번째 부분을 ‘불변자본’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 부분을 ‘가변자본’이라고 부른다 ; 그러나 내가 이 용어를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두 부분을 ‘부동자본’과 ‘임금자본’으로 부르겠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만 이윤을 남길 수 있다 ; 다시 말해서, 그의 임금자본을 사용함으로써. 부동자본은 자본가가 경쟁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함께 지탱해야 하고, 심지어 지속적으로 증가시켜야 하는 일종의 무거운 짐이다. 그러나 이 증가에는 자본가의 이윤증가가 수반되지 않는다 ; 오직 임금자본의 확대만이 이 건강한 효과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산성 증가를 향한 일반적인 경향은 자본의 임금 부분에 비례하여 자본의 물질적 부분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본총액이 또한 증가하며, 이윤증가를 보상하지 않는다 ; 다시 말해서, 수익률은 틀림없이 감소한다.
이제 이 주장은 흔히 의문시된다 ; 정말로, 그 주장은, 함축적으로, 마르크스 오래 전에 공격을 받았다. 이 공격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르크스의 주장에는 중요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특히 우리가 경기순환에 관한 그의 이론과 함께 그 주장을 고찰한다면. (나는 다음 장에서 잠시 이 요점으로 돌아오겠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의문시하고 싶은 것은 이 주장이 증가하는 비참함이라는 이론에 미치는 관련성이다.
마르크스는 이 관련성을 다음과 같이 본다. 수익률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면, 자본가는 파멸에 직면한다. 자본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노동자들로부터 이윤을 꺼내는’ 시도, 즉 착취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자본가는 노동시간을 확대함으로써 할 수 있다 ; 일을 가속하는 것 ; 임금을 낮추는 것 ; 노동자의 생활비를 올리는 것(인플레이션) ; 더 많은 여성과 아동을 착취하는 것 ; 자본주의의 내부 모순이, 경쟁과 이윤추구가 상충된다는 사실에 기초하는데, 여기서 절정으로 발전한다. 첫째로, 그 모순으로 인하여 자본가들은 어쩔 수 없이 축적하여 생산성을 증가시키며, 그래서 수익률을 감소시킨다. 다음으로, 이 모순들로 인하여 자본가는 어쩔 수 없이 착취를 인내할 수 없는 정도까지 확대하고, 착취와 함께 계급 사이의 긴장도 증가한다. 그리하여 타협은 불가능하다. 모순은 제거될 수 없다. 모순은 마침내 자본주의의 운명을 틀림없이 봉해버린다.
이것이 주요 주장이다. 그러나 그 주장이 확정적일까 ? 증가된 생산성은 바로 자본가들이 착취하는 토대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 노동자가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필요한 것 이상으로 생산할 때만 자본가가 잉여노동을 탈취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용어사용에서, 증가된 생산성은 증가된 잉여노동을 의미한다 ; 증가된 생산성은 자본가가 사용할 수 있는 증가된 시간 수와, 게다가, 시간당 생산된 상품의 증가된 숫자 양쪽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증가된 생산성은 크게 증가된 이윤으로 남는다. 이것은 마르크스에 의하여 인정된다. 마르크스는 이윤이 줄어든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 그는 총자본이 이윤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여 수익률이 감소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자본가는, 자신이 좋아하든 아니든, 어쩔 수 없이 노동자들에게 전가해야 하는 경제적 압력 하에서 고생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자본가가 자신의 수익률이 감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마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가의 소득이 감소하지 않고, 반대로, 증가한다면, 실제적인 위험은 없다. 성공적인 평범한 자본가를 위한 상황은 이럴 것이다 : 자본가는 자신의 소득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자본은 훨씬 더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본다 ; 다시 말해서, 자본가의 저축은 자신이 소비하는 소득의 부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한다. 이것이 자본가로 하여금 필사적인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거나, 노동자와의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것은 완전히 인내할 수 있는 것으로 나에게 느껴진다.
물론, 그 상황에는 위험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은 사실이다. 부단히 상승하는 수익률에 관한 상정(想定)을 숙고하는 자본가들은 곤경에 빠질는지도 모른다 ;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은, 불황을 심화시킴으로써, 경기순환에 정말로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르크스가 예언한 포괄적 결과와 관련이 없다.
이로써, 증가하는 비참함이라는 법칙을 증명하기 위하여 마르크스에 의하여 제시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주장에 대한 나의 분석은 끝난다.
VI
마르크스가 자신의 예언에서 어떻게 철저하게 틀렸는지와, 동시에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는 자신의 요구에서 뿐만 아니라 무제한적인 자본주의라는 지옥에 대항하는 자신의 타오르는 항의에서 그가 얼마나 정당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그가 ‘자본축적에 대한 일반적 법칙’을 논하는 자본론의 장(章)에서 몇 구절을 인용하겠다. ‘공장에서.. 젊은 남성노동자들은 성인연령에 도달하기 전에 단체로 소모된다 ; 그 다음에, 매우 적은 부분만 산업에 유용하게 남아서, 그들은 끊임없이 대규모로 해고당한다. 그때 그들은 산업의 성장과 함께 증가하는 유동 잉여인구의 한 부분을 형성한다.. 노동력은 자본에 의하여 매우 빠르게 소모되기 때문에 중년 노동자는 보통 탈진한 사람이 된다.. 보건사인 리(Lee) 박사는 얼마 전에 “리버풀에서는 노동계급의 평균수명이 15세이고 중상층 계급의 평균수명이 35세인 반면 ; 맨체스터의 노동계급의 평균수명이 17세이고, 중상층 계급의 평균수명은 38세이다..”라고 밝혔다.. 노동계급 아동 착취는 그들의 생산을 중시한다.. 노동생산성이 높아질수록.. 노동자의 생존조건은 그만큼 더 불안정해진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모든 방법은.. 지배와 착취의 수단으로 변모한다 ; 그 방법들은 노동자를 갈가리 찢어 인간조각으로 만들고, 그 방법들은 인간을 기계의 톱니로 전락시키고, 그 방법들은 노동을 고문(拷問)으로 만들고, 자본주의적 맹목적 우상이라는 바퀴 아래로 노동자의 아내와 자식을 끌어 들인다.. 자본이 축적되는 정도에 따라서 노동자의 급여가 얼마이건 간에 노동자의 상황은 틀림없이 악화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 .. 사회적 부(富)와 운용중인 자본과 그 자본의 범위와 힘이 클수록 잉여인구는 그만큼 더 커진다... 산업예비군의 규모는 부(富)의 힘이 자람에 따라서 커진다. 그러나.. 산업예비군이 커질수록 자신들의 비참함이 고역의 고통 증가에 의해서만 경감되는 노동자들의 무리는 그만큼 더 커진다 ; 그리고 .. 공식적으로 최빈민층으로 인정되는 사람들의 숫자도 커진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축적에 대한 절대적이고도 일반적인 법칙이다... 사회의 한 축(軸)에 부(富)가 축적되면 동시에 비참함, 고역의 고통, 노예상태, 무지(無智), 잔혹한 대우와 도덕적 타락이 다른 축에 쌓인다...’
자신의 시대의 경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처절한 묘사는 너무나 진실하다. 그러나 축적과 함께 비참함도 틀림없이 증가한다는 그의 법칙은 유효하지 않다. 그가 살았던 시대이래, 그가 가능하다고 심지어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생산수단이 축적되었고 동시에 노동생산성도 증가했다. 그러나 아동노동, 근로시간, 고역의 고통, 그리고 노동자 삶의 불안정은 증가하지 않았다 ; 그것들은 감소했다. 나는 이 과정이 틀림없이 계속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진보의 법칙은 없고,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파크스(Parkes)에 의하여 한 문장으로 간단하고도 솔직하게 요약된다 : ‘마르크스가 예언한 바와 같이, 낮은 임금과 긴 시간, 그리고 아동노동은 자본주의의 늙은 나이가 아니고, 자본주의의 유아기의 특징이었다.’
무제한적인 자본주의는 사라졌다. 마르크스 시대이래, 민주주의적 간섭은거대한 진전을 이루었고, 향상된 노동생산성은 - 자본축적의 결과 - 비참함을 거의 없애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중대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이 이룩되었고, 그 이룩된 많은 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이 이룩될 수 있다고 믿도록 틀림없이 격려함을 보여준다. 그 까닭은 많은 일이 이룩될 수 있고 이룩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적 간섭주의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을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나는 나의 주장이 지니는 힘에 관한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경험은 마르크스의 예언이 거짓이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경험은 항상 얼버무려질 수 있다. 그래서 진정으로, 마르크스 자신과 엥겔스는 증가하는 비참함이라는 법칙이 왜 그들의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는지를 설명하려고 고안된 부가적 가설을 상술하면서 시작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수익률 감소를 향한 경향은, 그 경향과 함께 증가하는 비참함은, 식민지 착취의 효과에 의하여, 즉 일반적으로 지칭되는 바와 같이 ‘현대적 제국주의’에 의하여 상쇄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식민지 착취는 경제적 압력을 식민지 프롤레타리아인,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본국의 산업 프롤레타리아보다 훨씬 더 약한 무리에게 전가하는 방법이다. ‘식민지에 투자된 자본은 자본주의적 발전이 여전히 후진 단계인 그곳에서 수익률이 더 높다는 단순한 이유와 노예나 저임금노동자, 기타 등등으로 인하여 노동력을 더 착취할 수 있다는 추가 이유 때문에 더 높은 수익률을 초래할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보다 높은 수익률이.., 본국으로 보내졌을 때, 본국에서 요소로서 평균 수익률에 가산되어, 균형적으로, 평균 수익률을 유지해서는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마르크스는 쓴다. (‘현대적’ 제국주의 이론의 뒤에 있는 이 이론의 주개념은 160년 이상을 거슬러 아담 스미스[Adam Smith]에게 올라가는데, 그는 식민지 무역이 ‘수익률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기여했다’고 말했음을 언급할 가치가 있다.) 엥겔스는 자신의 이론 전개에서 마르크스보다 할 걸음 더 나아갔다. 영국에서 우세한 경향은 비참함의 증가가 아니라 상당한 개선임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어, 그는 이것은 영국이 ‘전 세계를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할 것이라고 암시한다 ; 그리고 그는 자신이 예상했던 고통 대신에 ‘실제로 점점 더 부르주아가 되는 영국 노동계급’을 조롱조로 공격한다. 그리고 그는 계속한다 :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부르주아적인 이 민족은 문제를 부르주아 계급과 나란히 부르주아 귀족계급과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를 가질 정도의 그런 상황으로 가져가기를 원한다.’ 이제 엥겔스에게서의 이 국면전환은 적어도 내가 앞 장에서 언급한 그의 다른 국면전환만큼 두드러진다 ; 그리고 그것처럼, 이 국면전환은 감소하는 비참함이라는 상황전개로 밝혀진 사회적 발전의 영향 하에서 만들어졌다. 마르크스는 ‘중간 계급과 낮은 부르주아 계급을 프롤레타리아화하기’ 때문에, 그리고 노동자를 극빈으로 몰고 가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비난했다. 엥겔스는 노동자를 부르주아로 만들기 때문에 이 체제를 이제 비난한다 - 그 체제는 여전히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엥겔스의 불평 중에서 가장 멋진 암시는 그로 하여금 마르크스주의의 예언을 왜곡시킬 정도로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영국인을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부르주아적 민족’이라고 부르도록 만드는 분노이다. 마르크스의 교설에 따라서, 우리는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부르주아적인 민족’으로부터 인내할 수 없는 정도까지 비참함과 계급긴장이 전개되는 것을 기대해야 한다 ; 대신에, 우리는 그 반대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선량한 프롤레타리아를 나쁜 부르주아로 변화시키는 자본주의 체제의 믿을 수 없는 사악함을 들을 때 선량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머리칼은 곤두선다 ; 그 체제의 사악함이 반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놓여있다는 것을 마르크스가 밝힘을 완전히 망각하고. 그리하여 우리는 레닌의 분석에서 현대 영국 제국주의의 사악한 원인과 무서운 효과에 관하여 읽는다 : ‘원인 : (1) 이 나라에 의한 전 세계 착취 ; (2) 세계시장에서 그 나라의 독점적 위치 ; (3) 그 나라의 식민지 독점. 효과 : (1) 영국 프롤레타리아 일부의 부르주아화 ; (2) 프롤레타리아 일부는 자신이 부르주아 계급에 의하여 매수되었거나, 적어도 그 계급에게서 돈을 받는 사람들에 의하여 지도되는 것을 허용한다.’ ‘프롤레타리아의 부르주아화’라는 그렇게 예쁜 이름을 혐오스러운 경향에 붙이고 - 마르크스에 따라서 세상이 가야하는 방향에 맞지 않는다는 주요 이유 때문에 혐오스러운 - 레닌은 그것이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이 되었다고 분명히 믿었다. 마르크스 자신은 전 세계가 자본주의적 산업화라는 필수적인 역사적 기간을 빠르게 통과할 수 있을수록, 더 낫다고 주장했으며, 그리하여 그에게는 제국주의적 발전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레닌은 매우 다른 결론에 다다랐다. 영국의 식민지 소유가 본국의 노동자들이 공산주의자들 대신에 ‘부르주아 계급에 매수된 지도자들’을 따르는 이유이기 때문에, 그는 식민지를 가진 제국 속에서 잠재적인 방아쇠나 도화선을 보았다. 그곳에서 혁명은 증가하는 비참함이라는 법칙을 본국에서 작동하게 만들어서, 본국에서 혁명이 뒤따를 것이다. 그리하여 식민지는 그곳으로부터 불이 퍼지는 장소였다...
내가 그 역사를 개괄한 부가적 가설이 증가하는 비참함이라는 법칙을 구원할 수 있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 그 까닭은 이 가설 자체가 경험에 의하여 반박되기 때문이다. 예들 들어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스칸디나비아의 민주국가, 체코슬로바키아, 캐나다, 오스트렐리아, 뉴질런드가 있는데 그곳에서 민주주의적 간섭주의는, 그곳에 식민지 착취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거나 그 가설을 뒷받침하기에는 아무튼 너무 하찮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에게 높은 생활수준을 확보해주었다. 게다가, 네덜런드나 벨기에처럼 식민지를 ‘착취하는’ 어떤 나라들을, 식민지를 ‘착취하지’ 않는 덴마크와 스웨덴과 노르웨이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우리가 비교하면, 산업 노동자들이 식민지 소유로부터 이득을 보았음을 발견하지 못하는데, 그 까닭은 저 모든 나라들의 노동계급의 상황이 두드러지게 유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식민지화를 통하여 원주민에게 강요된 비참함은 문명사(文明史)에서 가장 암울한 장의 하나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비참함이 마르크스 시대이래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정반대 현상이 실제로 일어났다 ; 상황이 크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부가적 가설과 원래 이론 모두가 옳다면 증가하는 비참함은 그곳에서 분명히 매우 두드러질 것이다.
VII
앞 여러 장에서 두 번째 및 세 번째 단계로 내가 한 바와 같이, 나는 이제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전술에 미치는 그 실제적 영향 중 중요한 것을 밝힘으로써 마르크스의 예언적 주장의 첫 번째 단계를 예시할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명백한 사실의 압력을 받고서, 비참함의 강도가 증가한다는 이론을 묵시적으로 포기한다 ; 그러나 그들의 전체 전술은 증가하는 비참함의 범위라는 법칙이 유효하다는, 다시 말해서,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수적인 힘은 틀림없이 계속해서 증가한다는 상정(想定)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것이, 동시에 자신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대표하는 중이거나 곧 대표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자신의 정책을 산업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데 기초한 이유이다. 그들은 ‘모든 이전 역사적 운동은 소수의 운동이었다...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거대한 다수의 이익을 위한, 거대한 다수의 자의식적이고 독자적인 운동이다’라는 공산당 선언을 의심한 적이 없다. 그들은 그러므로 산업노동자들의 계급의식과 계급확신이 선거에서 자신들에게 다수표를 줄 날을 확신하면 기다렸다. ‘종국에는 누가 승리할 것인지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 소수의 착취자 혹은 거대한 다수인 노동자들.’ 그들은 산업노동자들이 ‘거대한 다수’는 말할 것도 없고 어디에서도 다수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과, 통계는 그들 숫자가 증가하는 경향을 더 이상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민주적 노동자들의 정당의 존재가, 그런 정당이 다른 정당과 예를 들어 소작농이나 중간 계급을 대표하는 어떤 정당과, 타협하거나 심지어 협력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조건에서만, 완전히 정당화(正當化)되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다수 인구의 대표로서만 국가를 통치하기를 원한다면, 자신들이 자신들의 전체 정책을 변경해서 산업노동자를 주로 혹은 독점적으로 대표하는 것을 중단해야 할 것임을 알지 못했다. 물론, 그런 프롤레타리아 정책이 (마르크스가 말한 바와 같이) ‘농촌생산자들을 그들 지역의 주요 읍내의 지식적 지도력을 받게 할 뿐이어서, 그 읍내에서 산업노동자 속에서 농촌생산자들에게 이익을 보호하는 자연적인 관리인을 확보해 준다...’고 순진하게 주장하는 것은 이 정책변화에 대한 대체물이 아니다.
공산당의 처지는 달랐다. 공산당은, 노동자들의 일시적인 부르주아화(化)의 원인이 없어지자마자, 증가하는 비참함의 범위뿐만 아니라 강도(强度)의 증가 또한 믿으면서, 증가하는 비참함에 관한 이론을 고수했다. 이 믿음은 마르크스가 그들 정책의 ‘내부모순’이라고 불렀던 것에 상당히 기여했다.
전술적 상황은 충분히 간단하게 보인다. 마르크스의 예언 덕분에, 공산주의자들은 비참함이 곧 분명히 증가하리라고 확신하며 알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당(黨)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그리고 자신들과 함께, 자신들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하여, 투쟁하지 않고는 노동자들의 신임을 얻을 수 없다고 알았다. 이 두 가지 근본적인 상정(想定)은 분명히 그들의 일반적인 전술의 원칙을 결정했다. 노동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몫을 요구하도록 만들라, 노동자들이 빵과 집을 얻기 위해 벌이는 부단한 투쟁 속의 모든 특정 사건에서 노동자들을 지원하라.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노동자들의 실제적인 요구를 성취하기 위하여 악착같이 그들과 함께 투쟁하라. 그리하여 당신들은 노동자들의 신임을 얻을 것이다. 동시에, 노동자들은 이 자질구레한 싸움으로써 자신들의 운명을 향상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전반적인 혁명에 못 미치는 것은 향상을 초래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 까닭은 이 모든 사소한 싸움이 성공하지 못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마르크스로부터 자본주의자들은 타협을 계속할 수 없을 따름이며, 궁극적으로, 비참함이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자신들을 압제하는 사람들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투쟁의 유일한 결과는 - 가치 있는 것이지만 - 그들의 계급의식 증가이다 ; 오직 혁명만이 그들의 비참함 속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절박한 인식과 함께, 유일하게 투쟁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그 단결감이다. 이 단계가 이룩되면, 마지막 결전을 위한 시간이 당도했다.
이것이 이론이고 공산주의자들은 그에 따라서 행동했다. 처음에 그들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개선하려는 투쟁에서 노동자들을 지원한다. 그러나 모든 예상과 예언과 반대로, 투쟁은 성공적이다. 요구사항은 허용된다. 명백하게, 이유는 요구사항들이 너무 미약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더 많이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요구사항은 다시 허용된다. 그리고 비참함이 줄어듦에 따라서, 노동자들은 덜 원한을 갖게 되고, 혁명을 위하여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임금을 위하여 협상할 준비를 더 하게 된다.
이제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정책이 뒤집혀야 함을 발견한다. 증가하는 비참함이라는 법칙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행하여져야 한다. 예를 들어, 식민지의 소요가 폭발되어야 하고 (심지어 성공적인 혁명의 기회가 없는 곳에서도), 노동자들의 부르주아화를 막는 일반적인 목표와 함께, 모든 종류의 파멸을 불러오는 정책이 채택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정책은 노동자들의 신뢰를 파괴한다. 공산주의자들은, 현실적 정치투쟁에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자신들의 당원을 잃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확하게 ‘노동계급의 전위대’로 묘사하는 사람들을 잃는다 ; 그들이 지닌 묵시적으로 함축된 원리 ‘비참함이 틀림없이 혁명을 재촉하기 때문에, 상황이 악화될수록 상황은 호전된다’는 노동자들을 의심하게 만든다 - 이 원리가 잘 적용될수록 노동자들이 가진 의심은 악화한다. 그 까닭은 그들이 현실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그들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하여 일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정책은 다시 뒤집혀야 한다 ;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노동자들의 운명을 즉각적으로 개선하기 위하여 투쟁해야 하고, 동시에 그 반대를 희망해야 한다.
이것으로써, 그 이론의 ‘내부 모순’이 혼란의 마지막 단계를 만들어낸다. 배신은 충성일 것이고 충성이 배신일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누가 배신자인지 알기 어려운 단계이다. 그것은 당(黨)을 추종했던 사람들이 당(黨)이 그들에게 (나에게 유감스럽게도, 옳게) 인도주의적 목적을 지닌 유일한 활기찬 운동으로 보였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특히 그것이 과학적 이론에 근거한 운동이었다는 이유로, 당(黨)을 떠나든지, 자신들의 지적(知的) 솔직함을 희생해야 하는 단계이다 ; 그 까닭은 이제 그들이 어떤 권위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그들은 틀림없이 신비주의자가 되어 이성적 논쟁에 적대적이 된다.
자본주의의 몰락을 초래하려고 위협하는 내부 모순 하에서 고생을 하는 것은 자본주의만이 아닌 듯 보인다...
21 장 : 예언에 대한 평가
마르크스의 예언의 기초를 이루는 주장은 효력이 없다. 동시대의 경제적 경향을 관찰함으로써 예언적 결론을 도출하려는 그의 교묘한 시도는 실패했다. 이 실패의 원인은 그 주장의 경험적 기초가 불충분한 데 놓여있지 않다. 동시대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의 사회학적 및 경제적 분석은 다소 일방적이었을 것이지만 그 분석들이 지닌 편견에도 불구하고, 그 분석들이 묘사적인 한 탁월했다. 예언가로서 그의 실패 원인은 그런 상태로의 역사주의의 빈곤에 온전히 놓여있는데, 우리가 오늘날 역사적 경향이나 조류로 보이는 것을 관찰한다 할지라도 내일 그 경향이나 조류가 동일한 모습을 지닐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는 간단한 사실에 놓여있다.
마르크스가 많은 것들을 올바른 관점에서 보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가 알고 있었던 바와 같이 무제한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훨씬 더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그리고 그 자본주의 체제가 영원히 지속되리라 생각했던 그 체제의 옹호자들은 틀렸다는, 그의 예언만을 우리가 고려한다면, 우리는 그가 옳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는, 무제한적 자본주의 체제를 새로운 경제체제로 변모시키려고 예정된 것은 주로 ‘계급투쟁’, 즉 노동자들의 연합이었다고 주장하여, 역시 옳았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가 저 새로운 체제인 간섭주의를 또 다른 이름인 사회주의 하에서 예언했다고 말하는 정도까지 가서는 안 된다. 사실 그에게는 무엇이 앞에 놓여있는지에 대한 작은 지식도 없었다. 그가 ‘사회주의’라고 불렀던 것은 어떤 형태의 간섭주의와도 매우 달랐는데 러시아의 형태와도 심지어 매우 달랐다 ; 그 까닭은 그가, 간섭주의는 모든 곳에서 국가의 영향력을 증가시킨 반면, 임박한 상황전개가 경제적 뿐만 아니라 정치적 국가 영향력을 감소시키리라고 강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마르크스를 비판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까지는, 민주주의의 점진적 간섭주의를 (특히 17장 7부에서 설명된 제도적 종류의 간섭주의) 기리고 있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국가 영향력 감소를 희망한 것에 내가 많이 동정한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하고 싶다. 민주주의의 점진적 간섭주의가 국가권력과 관료주의의 증대를 유발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간섭주의가 지닌 가장 큰 위험이다 - 특히 직접적 간섭주의가 지닌. 대부분의 간섭주의자들은 이것에 신경을 쓰지 않거나, 그들은 그것에 눈을 감는데, 그것이 위험을 증대시킨다. 그러나 위험을 솔직하게 직시하면, 그 위험을 극복할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 까닭은 이것이 다시 사회적 기술의 그리고 사회에 대한 점진적 공학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일찍 다루는 것이 중요한데, 그 까닭은 그 문제가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만이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면, 자유를 목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하며, 안보만을 목적으로 계획을 세워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예언으로 돌아가자. 그가 발견했다고 주장했던 역사적 경향 한 가지는 다른 경향들 보다 더 지속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 나는 생산수단의 축적을 향한, 그리고 특히 증가하는 노동생산성을 향한 경향을 의미한다. 물론 우리가 계속해서 문명이 진행되도록 한다면, 이 경향은 얼마동안 지속될 것으로 정말로 느껴진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 경향과 그 경향이 지닌 ‘개화적(開化的) 면(面)’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그 경향 속에 내재한 위험을 보았다. 더욱 특별히, 그는 자신이 그 속에서 ‘역사적 임무와 자본의 정당성’을 보았던 ‘생산적 힘’과, - 산업화의 급격한 융성을 고무시켰던 듯한 체제인 - 신용제도의 저 최고도로 파괴적인 현상인 경기순환 사이의 관련성을 강조한 (그에게는 몇 명의 선배, 예를 들어, 푸리에[Fourier]가 있다 할지라도) 최초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경기순환에 관한 마르크스 자신의 이론은 (앞 장 6부에서 논의되었다) 아마도 다음과 같이 다시 진술될 것이다 : 자유시장의 내재적 법칙이 완전고용을 향한 경향을 낳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완전고용을 향한 즉, 노동부족을 향한 모든 단 한 가지 접근은 발명가와 투자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노동력 절약형 기계류를 만들어 도입하도록 자극하여, (처음에는 짧은 호황을, 그 다음에는) 새로운 실업한파와 불황을 낳는다. 이 이론 안에 진실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앞 장에서 내가 말한 바와 같이, 경기순환에 관한 이론은 다소 어려운 주제이어서, 내가 시작할 의도를 갖고 있지 않은 주제이다. 그러나 생산성 증가가 경기순환에 기여하는 요인의 하나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나에게 중요한 듯하기 때문에, 내가 그 주장을 지지하는 다소 명백한 고찰 몇 가지를 전개하는 일이 허용될는지도 모르겠다.
가능한 상황전개에 대한 다음 목록은, 물론, 완전히 불완전하다 ; 그러나 그 목록은 노동생산성이 증가할 때마다, 적어도 아래 전개의 한 가지가, 그리고 가능하다면 한 번에 많은 전개가, 틀림없이 시작되고 틀림없이 생산성증가를 균형 잡기에 충분한 정도로 진행되는 그런 방식으로 구축된다.
(A) 투자가 증가한다, 다시 말해서, 다른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힘을 강화하는 그런 자본재가 생산된다. (이것은 생산성을 한층 더 증가시키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효과를 길게 균형 잡을 수 없다.)
(B) 소비가 증가한다 - 생활수준이 올라간다 :
(a) 전체 인구의 소비나 생활수준
(b) 전체 인구의 특정 부분의 소비나 생활수준 (예를 들어, 특정 계급).
(C) 노동시간이 줄어든다.
(a) 하루 근로시간이 감소한다 ;
(b) 산업 근로자가 아닌 사람들의 숫자가 증가한다, 특히
(b1) 과학자, 의사, 예술가, 사업가, 기타 등등의 숫자가
증가한다.
........................................................................................................................
(b2) 실업노동자의 숫자가 증가한다.
(D) 생산되었지만 소비되지 않은 상품의 양이 증가한다.
(a) 소비재는 파괴된다 ;
(b) 자본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공장이 휴업 중이다) ;
(c) 소비재와 (A) 형태의 상품을 제외한 상품이 생산되는데,
예를 들어, 무기이다 ;
(d) 노동은 자본재를 파괴하는 데, (그리하여 생산성을 낮추는
데) 사용된다.
(C, b2)에서부터 계속해서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불황과 무기제조와 전쟁을 의미하는 상황전개가 오는 반면, 점선까지 아래는 즉, (C, b1)까지 아래는 그런 상태의 상황전개는 일반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인정되는 그런 방식으로 나는 상황전개를 목록화했다 - 물론 이 목록은 세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 할지라도, (A)만으로는 영구히 균형을 복원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상황전개 중 하나 혹은 몇 가지 사태가 자리를 잡아야한다. 게다가, 바람직한 상황전개가 증가된 생산성을 균형 잡기에 충분한 정도로 진행되는 것을 보증할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전개 몇 가지가 시작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무기생산을 가능하면 제외하고, (A)를 급격히 감소시킬 것 같은 그런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틀림없이 상황을 심각하게 악화시킨다.
나는 위와 같은 그런 고찰이, 실업과의 전쟁에서 전체주의적 국가의 성공을 설명한다 할지라도, 단어의 어떤 의미로도 무기나 전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나는 그 고찰들이, 아마도 그런 설명에 중요한 공헌을 한다 할지라도, 경기순환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경기순환 속에서는 신용과 화폐의 문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 ; 그 까닭은 (A)의 감소는, 예를 들어,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투자되었을 그런 저축의 퇴장(退藏)에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 많이 논의되고 중요한 요인.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이익감소율의 법칙이 (이 법칙이 조금이라도 합당하다면) 퇴장(退藏)을 설명하기 위하여 암시를 또한 줄 것이다 ; 그 까닭은 빠른 축적의 기간이 그런 이익감소를 낳을 것이라고 상상하여, 이것이 투자를 위축시키고 퇴장(退藏)을 촉진하여 아마도 (A)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모두가 경기순환에 대한 이론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이론은 다른 임무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 주요 임무는 자유시장 제도가 왜, 수요 공급을 평준화시키기 위하여 그렇게 매우 효율적인 도구로서, 불황, 다시 말해서 과잉 생산이나 소비부족을 막기 위하여 충분하지 않은지 설명하는 것이리라. 다시 말해서, 시장에서 구매와 판매가, 우리 행동이 낳는 원치 않는 사회적 파장으로서, 경기순환을 유발하는지 우리는 밝혀야 할 것이다. 경기순환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정확하게 이 목적을 관점으로 지니고 있다 ; 그래서 증가하는 생산성을 향한 일반적인 경향의 효과에 관하여 여기에서 개괄된 고찰들은 기껏해야 이 이론을 보충할 뿐이다.
나는 경기순환에 관한 이 모든 상상의 장점을 판단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 장점들이, 현대적 이론에 비추어도 이제는 완전히 대체되어야 한다 할지라도 매우 귀중한 것임이 아주 분명한 듯하다. 마르크스가 이 문제를 확산적으로 다루었다는 사실만도 그에게는 큰 명예이다. 적어도 그의 예언의 이만큼은, 당분간, 사실이었다 : 생산성 향상을 향한 경향은 계속된다 : 경기순환도 역시 계속된다, 그리고 경기순환이 지속되면 간섭주의적 반대 조치가 생겨나고 그러므로 자유시장 체제를 한층 더 제한하게 될 것이다 ; 경기순환이 틀림없이 무제한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요인 중 하나일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과 일치하는 상황전개. 그리고 이것에, 우리는 성공적인 예언의 다른 작품 즉, 노동자들의 결속이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일 것이라는 것을 첨부해야 한다.
중요하고도 주로 성공적인 이 예언 목록을 고찰하여, 역사주의가 지닌 빈곤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 마르크스의 역사적 예언이 부분적으로 성공했더라면, 우리가 그의 방법을 가볍게 내팽개쳐서는 틀림없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성공을 보다 자세히 관찰하면, 그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것은 그의 역사주의적 방법이 어디에서도 아니고, 항상 제도를 분석하는 방법이었다. 그리하여 자본가가 경쟁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생산성을 증대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역사주의적이 아니라 전형적인 제도적 분석이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경기순환과 잉여인구 이론을 기초하는 것은 제도적 분석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의 계급투쟁론도 제도적이다 ; 계급투쟁론은 그에 따라 부(富)와 권력의 분배가 통제되는 원리의 한 부분인데, 가장 넓은 의미에서 단체협상을 가능케 하는 원리이다. 이 분석 어디에서도 전형적인 역사주의적 ‘역사적 발전 법칙’, 혹은 단계, 혹은 기간, 혹은 경향이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가 내놓는 보다 야심에 찬 역사주의적 결론 어느 것도, 그가 주장하는 ‘필연적 발전법칙’과 그가 주장하는 ‘도약으로 넘어갈 수 없는 역사의 단계들’도, 성공적인 예언으로 판명된 바가 없다. 마르크스는 자신이 제도와 그 제도의 기능을 분석하는 한에서만 성공했다. 그리고 그 반대진술 또한 사실이다 : 그가 내놓았던 더 야심적이고 포괄적인 역사적 예언 어느 것도 제도분석 범위 안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 분석으로써 그 예언을 뒷받침하려는 시도가 행하여질 때마다, 논리전개는 무효다. 정말로, 마르크스가 지녔던 높은 수준과 비교되면, 보다 포괄적인 예언은 다소 낮은 지적(知的) 수준에 놓여있다. 그 예언에는 많은 희망사항이 담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상상력이 또한 부족하다. 개략적으로 말해서, 마르크스는 진보적 산업주의자인 당시 ‘부르주아’의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 진보의 법칙에 대한 믿음. 그러나 헤겔과 콩트의, 마르크스와 밀의, 이 순진한 역사주의적 낙관론은 플라톤과 슈펭글러의 주장과 같은 비관적 역사주의보다 결코 덜 미신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틀림없이 역사적 상상력을 제한하기 때문에, 예언가를 위하여 매우 나쁜 도구이다. 진정으로, 인간사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정치의 공평한 관점에 관한 원리 하나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 그리고 더욱 특별하게는 상상 가능한 어떤 상황전개도 그 상황전개가 소위 인간의 진보 경향이나 ‘인간본성’에 관해서 주장되는 어떤 다른 법칙을 위반할는지 모른다는 이유로 제외될 수 없다는 것을 정치의 공평한 관점에 관한 원리 하나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H. A L 피셔(Fisher)는 이렇게 쓴다, ‘진보에 관한 사실은 역사의 페이지에 분명하고 크게 적혀있다 ; 그러나 진보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다. 한 세대가 습득한 분야를 다음 세대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원리에 따라서 마르크스의 예언이 사실이 될 것임을 지적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19세기의 진보주의적 낙관론과 같은 믿음은 강력한 정치적 힘이 될 수 있다 ; 그것은 자신이 예언한 것을 초래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하여 심지어 옳은 예언도 이론에 대한, 그리고 그 이론의 과학적 특징에 대한, 입증으로서 너무 쉽게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 예언은 오히려 그 예언이 지닌 종교적 특징이며 그 예언이 사람에게 불어넣을 수 있었던 종교적 신념의 힘에 대한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서 더욱 특히 종교적 요소는 뚜렷하다. 노동자들이 처했던 혹심한 비참함과 영락(零落)의 시간 속에서, 마르크스의 예언은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사명에 대한, 그리고 그들의 운동이 전 인류를 위하여 준비할 예정인 위대한 미래에 대한, 고무적인 믿음을 주었다. 1864년부터 1930년까지 일어났던 사건들의 과정을 돌아보면서, 마르크스가 사회적 기술 연구를 방해했던 다소 우연한 사실이 없었더라면 이 예언적 종교의 영향을 받아서 유럽의 사건들이 아마도 비(非)집단적 형태의 사회주의를 향하여 발전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부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편에서, 사회공학을 위한, 자유에 관한 기획을 위한, 완벽한 준비가 아마도 명백한 성공을 낳아 열린사회의 모든 친구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적 예언에 대한 입증이 아니었으리라. 그것은 종교적 운동의 결과 - 우리가 지닌 이성을 세상을 변화시킬 목적으로 비판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결합된, 인도주의에 대한 신념의 결과 - 였으리라.
그러나 상황은 다르게 전개되었다, 마르크스의 신조 속에 있는 예언적 요소는 그의 추종자들의 생각을 지배했다. 그 요소는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고 침착하고도 비판적인 판단력을 쫓아냈으며, 이성을 사용함으로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파괴해버렸다. 마르크스의 가르침에서 남은 유일한 것은 헤겔의 수수께끼 같은 철학으로, 그 철학은 마르크스주의의 장식을 달고 열린사회를 위한 투쟁을 마비시키려 위협한다.
- “열린사회와 그 적들, 2권 헤겔과 마르크스”, 칼 포퍼 -
MARX'S PROPHECY
CHAPTER 18 : THE COMING OF SOCIALISM
I
Economic historicism is the method applied by Marx to an analysis of the impending changes in our society. According to Marx, every particular social system must destroy itself, simply because it must create the forces which produce the next historical period. A sufficiently penetrating analysis of the feudal system, undertaken shortly before the industrial revolution, might have led to the detection of the forces which were about to destroy feudalism, and to the prediction of the most important characteristic of the coming period, capitalism. Similarly, an analysis of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 might enable us to detect the forces which work for its destruction, and to predict the most important characteristics of the new historical period which lies ahead of us. For there is surely no reason to believe that capitalism, of all social systems, will last for ever. on the contrary, the material conditions of production, and with them, the ways of human life, have never changed so quickly as they have done under capitalism. By changing its own foundations in this way, capitalism is bound to transform itself, and to produce a new period in the history of mankind.
According to Marx's method, the principles of which have been discussed above, the fundamental or essential forces which will destroy or transform capitalism must be searched for in the evolution of the material means of production. once these fundamental forces have been discovered, it is possible to trace their influence upon the social relationships between classes as well as upon the juridical and political system.
The analysis of the fundamental economic forces and the suicidal historical tendencies of the period which he called 'capitalism' was undertaken by Marx in Capital, the great work of his life. The historical period and the economic system he dealt with was that of western Europe and especially England, from about the middle of the eighteenth century to 1867 (the year of the first publication of Capital). The 'ultimate aim of this work', as Marx explained in his preface, was 'to lay bare the economic law of motion of modern society', in order to prophesy its fate. A secondary aim was the refutation of the apologists of capitalism, of the economists who presented the laws of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as if they were inexorable laws of nature, and therefore the laws of God.' Marx contrasted these allegedly inexorable laws with those which he maintained to be the only inexorable laws of society, namely, its laws of development ; and he tried to show that what the economists declared to be eternal and immutable laws were in fact merely temporary regularities, doomed to be destroyed together with capitalism itself.
Marx's historical prophecy can be described as a closely knit argument. But Capital elaborates only what I shall call the 'first step' of this argument, the analysis of the fundamental economic forces of capitalism and their influence upon the relations between the classes. The 'second step', which leads to the conclusion that a social revolution is inevitable, and the 'third step', which leads to the prediction of the emergence of a classless, i.e. socialist, state, are only sketched. In this chapter, I shall first explain more clearly what I call the three steps of the Marxist argument, and then discuss the third of these steps in detail. In the two following chapters, I shall discuss the second and the first steps. To reverse the order of the steps in this way turns out to be best for a detailed critical discussion ; the advantage lies in the fact that it is then easier to assume without prejudice the truth of the premises of each step in the argument, and to concentrate entirely upon the question whether the conclusion reached in this particular step follows from its premises. Here are the three steps.
In the first step of this argument, Marx analyses the method of capitalist production. He finds that there is a tendency towards an increase in the productivity of work, connected with technical improvements as well as with what he calls the increasing accumulation of the means of production. Starting from here, the argument leads him to the conclusion that in the realm of the social relations between the classes this tendency must lead to the accumulation of more and more wealth in fewer and fewer hands ; that is to say, the conclusion is reached that there will be a tendency towards an increase of wealth and misery ; of wealth in the ruling class, the bourgeoisie, and of misery in the ruled class, the workers. This first step will be treated in chapter 20 ('Capitalism and its Fate').
In the second step of the argument, the result of the first step is taken for granted. From it, two conclusions are drawn ; first, that all classes except a small ruling bourgeoisie and a large exploited working class are bound to disappear, or to become insignificant ; secondly, that the increasing tension between these two classes must lead to a social revolution. This step will be analysed in chapter 19 ('The Social Revolution').
In the third step of the argument, the conclusions of the second step are taken for granted in their turn ; and the final conclusion reached is that, after the victory of the workers over the bourgeoisie, there will be a society consisting of one class only, and, therefore, a classless society, a society without exploitation ; that is to say, socialism.
II
I now proceed to the discussion of the third step, of the final prophecy of the coming of socialism.
The main premises of this step, to be criticized in the next step but here to be taken for granted, are these :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 has led to the elimination of all classes but two, a small bourgeoisie and a huge proletariat ; and the increase of misery has forced the latter to revolt against its exploiters. The conclusions are, first, that the workers must win the struggle, secondly that, by eliminating the bourgeoisie, they must establish a classless society, since only one class remains.
Now I am prepared to grant that the first conclusion follows from the premises (in conjunction with a few premises of minor importance which we need not question). Not only is the number of the bourgeoisie small, but their physical existence, their 'metabolism', depends upon the proletariat. The exploiter, the drone, starves without the exploited ; in any case, if he destroys the exploited then he ends his own career as a drone. Thus he cannot win ; he can, at the best, put up a prolonged struggle. The worker, on the other hand, does not depend for his material subsistence on his exploiter ; once the worker revolts, once he has decided to challenge the existing order, the exploiter has no essential social function any longer. The worker can destroy his class enemy without endangering his own existence. Accordingly, there is only one outcome possible. The bourgeoisie will disappear.
But does the second conclusion follow ? Is it true that the workers' victory must lead to a classless society ? I do not think so. From the fact that of two classes only one remains, it does not follow that there will be a classless society. Classes are not like individuals, even if we admit that they behave nearly like individuals so long as there are two classes who are joined in battle. The unity or solidarity of a class, according to Marx's own analysis, is part of their class consciousness, which in turn is very largely a product of the class struggle. There is no earthly reason why the individuals who form the proletariat should retain their class unity once the pressure of the struggle against the common class enemy has ceased. Any latent conflict of interests is now likely to divide the formerly united proletariat into new classes, and to develop into a new class struggle. (The principles of dialectics would suggest that a new antithesis, a new class antagonism, must soon develop. Yet, of course, dialectics is sufficiently vague and adaptable to explain anything at all, and therefore a classless society also, as a dialectically necessary synthesis of an antithetical development.)
The most likely development is, of course, that those actually in power at the moment of victory - those of the revolutionary leaders who have survived the struggle for power and the various purges, together with their staff - will form a New Class : the new ruling class of the new society, a kind of new aristocracy or bureaucracy ; and it is most likely that they will attempt to hide this fact. This they can do, most conveniently, by retaining as much as possible of the revolutionary ideology, taking advantage of these sentiments instead of wasting their time in efforts to destroy them (in accordance with Pareto's advice to all rulers). And it seems likely enough that they will be able to make fullest use of the revolutionary ideology if at the same time they exploit the fear of counter-revolutionary developments. In this way, the revolutionary ideology will serve them for apologetic purposes : it will serve them both as a vindication of the use they make of their power, and as a means of stabilizing it ; in short, as a new 'opium for the people'.
Something of this kind are the events which, on Marx's own premises, are likely to happen. Yet it is not my task here to make historical prophecies (or to interpret the past history of many revolutions). I merely wish to show that Marx's conclusion, the prophecy of the coming of a classless society, does not follow from the premises. The third step of Marx's argument must be pronounced to be inconclusive.
More than this I do not maintain. I do not think, more particularly, that it is possible to prophesy that socialism will not come, or to say that the premises of the argument make the introduction of socialism very unlikely. It is, for instance, possible that the prolonged struggle and the enthusiasm of victory may contribute to a feeling of solidarity strong enough to continue until laws preventing exploitation and the misuse of power are established. (The establishment of institutions for the democratic control of the rulers is the only guarantee for the elimination of exploitation.) The chance of founding such a society will depend, in my opinion, very largely upon the devotion of the workers to the ideas of socialism and freedom, as opposed to the immediate interests of their class. These are matters which cannot be easily foreseen ; all that can certainly be said is that class struggle as such does not always produce lasting solidarity among the oppressed. There are examples of such solidarity and great devotion to the common cause ; but there are also examples of groups of workers who pursue their particular group interest even where it is in open conflict with the interest of the other workers, and with the idea of the solidarity of the oppressed. Exploitation need not disappear with bourgeoisie, since it is quite possible that groups of workers may obtain privileges which amount to an exploitation of less fortunate group.
We see that a whole host of possible historical developments may follow upon a victorious proletarian revolution. There are certainly too many possibilities for the application of the method of historical prophecy. And in particular it must be emphasized that it would be most unscientific to close our eyes to some possibilities because we do not like them. Wishful thinking is apparently a thing that cannot be avoided. But it should not be mistaken for scientific thinking. And we should also recognized that the allegedly scientific prophecy provides, for a great number of people, a form of escape. It provides an escape from our present responsibilities into a future paradise ; and it provides the fitting complement of this paradise by overstressing the helplessness of the individual in face of what it describes as the overwhelming and demoniacal economic forces of the present moment (이 문장에서 in face of는 in the face로 써야 한다. - 역자 주).
III
If we now look a little more closely at these forces, and at our own present economic system, then we can see that our theoretical criticism is borne out by experience. But we must be on our guard against misinterpreting experience in the light of the Marxist prejudice that 'socialism' or 'communism' is the only alternative and the only possible successor to 'capitalism'. Neither Marx nor anybody else has ever shown that socialism, in the sense of a classless society, of 'an association in which the free development of each is the warrant for the free development of all', is the only possible alternative to the ruthless exploitation of that economic system which he first described a century ago (in 1845), and to which he gave the name 'capitalism'. And indeed, if anybody were attempting to prove that socialism is the only possible successor to Marx's unrestrained 'capitalism', then we could simply refute him by pointing to historical facts. For laissez-faire has disappeared from the face of the earth, but it has not been replaced by a socialist or communist system as Marx understood it. only in the Russian sixth of the earth do we find an economic system where, in accordance with Marx's prophecy, the means of production are owned by the state, whose political might however shows, in opposition to Marx's prophecy, no inclination to wither away. But all over the earth, organized political power has begun to perform far-reaching economic functions. Unrestrained capitalism has given way to a new historical period, to our own period of political interventionism, of the economic interference of the state. Interventionism has assumed various forms. There is the Russian variety ; there is the fascist form of totalitarianism ; and there is the democratic interventionism of England, of the United States, and of the 'Smaller Democracies', led by Sweden, where the technology of democratic intervention has reached its highest level so far. The development which led to this intervention started in Marx's own day, with British factory legislation. It made its first decisive advances with the introduction of the 48-hour week, and later with the introduction of unemployment insurance and other forms of social insurance. How utterly absurd it is to identify the economic system of the modern democracies with the system Marx called 'capitalism' can be seen at a glance, by comparing it with his 10-point programme for the communist revolution. (If we omit the rather insignificant points of this programme (for instance, '4. Confiscation of the property of all emigrants and rebel'), then we can say that in the democracies most of these points have been put into practice, either completely, or to a considerable degree ; and with them, many more important steps, which Marx had never thought of, have been made in the direction of social security. I mention only the following points in his programme : 2. A heavy progressive or graduated income tax. (Carried out.) 3. Abolition of all right of inheritance. (Largely realized by heavy death duties. Whether more would be desirable is at least doubtful.) 6. Central control by the state of the means of communication and transport. (For military reasons this was carried out in Central Europe before the war of 1914, without very beneficial results. It has also been achieved by most of the Smaller Democracies.) 7. Increase in the number and size of factories and instruments of production owned by the state.. (Realized in the Smaller Democracies ; whether this is always very beneficial is at least doubtful.) 10. Free education for all children in public (i.e. state) schools. Abolition of children's factory labour in its present form.. (The first demand is fulfilled in the Smaller Democracies, and to some extent practically everywhere ; the second has been exceeded.)
A number of points in Marx's programme (for instance : '1. Abolition of all property in land') have not been realized in the democratic countries. This is why Marxists rightly claim that these countries have not established 'socialism'. But if they infer from this that these countries are still 'capitalist' in Marx's sense, then they only demonstrate the dogmatic character of their presupposition that there is no further alternative. This shows how it is possible to be blinded by the glare of a preconceived system. Not only is Marxism a bad guide to the future, but it also renders its followers incapable of seeing what is happening before their own eyes, in their own historical period, and sometimes even with their own co-operation.
IV
But it could be asked whether this criticism speaks in any way against the method of large-scale historical prophecy as such. Could we not, in principle, so strengthen the premises of the prophetic argument as to obtain a valid conclusion ? Of course we could do this. It is always possible to obtain any conclusion we like if only we make our premises sufficiently strong. But the situation is such that, for nearly every large-scale historical prophecy, we would have to make such assumptions concerning moral and other factors of this kind called by Marx 'ideological' as are beyond our ability to reduce to economic factors. But Marx would have been the first to admit that this would be a highly unscientific proceeding. His whole method of prophecy depends on the assumption that ideological influences need not be treated as independent and unpredictable elements, but that they are reducible to, and dependent on, observable economic conditions, and therefore predictable.
It is sometimes admitted even by certain unorthodox Marxists that the coming of socialism is not merely a matter of historical development ; Marx's statement that 'we can shorten and lessen the birth-pangs' of the coming of socialism is sufficiently vague to be interpreted as stating that a mistaken policy might delay the advent of socialism even for centuries, as compared with the proper policy which would shorten the time of the development to a minimum. This interpretation makes it possible even for Marxists to admit that it will depend largely upon ourselves whether or not the outcome of a revolution will be a socialist society ; that is to say, it will depend upon our aims, upon our devotion and sincerity, and upon our intelligence, in other words, upon moral or 'ideological' factors. Marx's prophecy, they may add, is a great source of moral encouragement, and it is therefore likely to further the development of socialism. What Marx really tries to show is that there are only two possibilities : that a terrible world would continue forever, or that a better world should eventually emerge ; and it is hardly worth our while to contemplate the first alternative seriously. Therefore Marx's prophecy is fully justified. For the more clearly men realize that they can achieve the second alternative, the more surely will they make a decisive leap from capitalism to socialism ; but a more definite prophecy cannot be made.
This is an argument which admits the influence of irreducible moral and ideological factors upon the course of history, and with it, the inapplicability of the Marxist method. Concerning that part of the argument which tries to defend Marxism, we must repeat that nobody has ever shown that there are only two possibilities, 'capitalism' and 'socialism'. With the view that we should not waste our time in contemplating the eternal continuation of a very unsatisfactory world, I quite agree. But the alternative need not be to contemplate the prophesied advent of a better world, or to assist its birth by propaganda and other irrational means, perhaps even by violence. It can be, for instance, the development of a technology for the immediate improvement of the world we live in, the development of a method for piecemeal engineering, for democratic intervention. Marxists would of course contend that this kind of intervention is impossible since history cannot be made according to rational plans for improving the world. But this theory has very strange consequences. For if things cannot be improved by the use of reason, then it would be indeed an historical or political miracle if the irrational powers of history by themselves were to produce a better and more rational world.
Thus we are thrown back to the position that moral and other ideological factors which do not fall within the scope of scientific prophecy exert a far-reaching influence upon the course of history. one of these unpredictable factors is just the influence of social technology and of political intervention in economic matters. The social technologist and the piecemeal engineer may plan the construction of new institutions, or the transformation of old ones ; they may even plan the ways and means of bringing these changes about ; but 'history' does not become more predictable by their doing do. For they do not plan for the whole of society, nor can they know whether their plans will be carried out ; in fact, they will hardly ever be carried out without great modification, partly because our experience grows during construction, partly because we must compromise. Thus Marx was quite right when he insisted that 'history' cannot be planned on paper. But institutions can be planned ; and they are being planned. only by planning, step by step, for institutions to safeguard freedom, especially freedom from exploitation, can we hope to achieve a better world.
V
In order to show the practical political significance of Marx's historicist theory, I intend to illustrate each of the three chapters dealing with the three steps of his prophetic argument by a few remarks on the effects of his historical prophecy upon recent European history. For these effects have been far-reaching, because of the influence exercised, in Central and Eastern Europe, by the two great Marxist Parties, the Communists and the Social Democrats.
Both these parties were entirely unprepared for such a task as the transformation of society. The Russian Communists, who found themselves first within reach of power, went ahead, entirely unaware of the grave problems and the immensity of sacrifice as well as of suffering which lay ahead. The Social Democrats of Central Europe, whose chance came a little later, shrank for many years from the responsibilities which the Communist had so readily taken upon themselves. They doubted, probably rightly, whether any people but that of Russia, which had been most savagely oppressed by Tsarism, would have stood up to the sufferings and sacrifices demanded from them by revolution, civil war, and a long period of at first often unsuccessful experiments. Moreover, during the critical years from 1918 to 1926, the outcome of the Russian experiment appeared to them most uncertain. And, indeed, there was surely no basis for judging its prospects. one can say that the split between the Central European Communists and Social Democrats was one between those Marxists who had a kind of irrational faith in the final success of the Russian experiment, and those who were, more reasonably, sceptical of it. When I say 'irrational' and 'more reasonably', I judge them by their own standard, by Marxism ; for according to Marxism, the proletarian revolution should have been the final outcome of industrialization, and not vice versa ; and it should have come first in the highly industrialized countries, and only much later in Russia.
This remark is not, however, intended as a defence of the Social Democratic leaders whose policy was fully determined by the Marxist prophecy, by their implicit belief that socialism must come. But this belief was often combined, in the leaders, with a hopeless scepticism concerning their own immediate functions and tasks, and what lay immediately ahead. They had learned from Marxism to organize the workers, and to inspire them with a truly wonderful faith in their task, the liberation of mankind. But they were unable to prepare for the realization of their promises. They had learned their textbooks well, they knew all about 'scientific socialism', and they knew that the preparation of recipes for the future was unscientific Utopianism. Had not Marx himself ridiculed a follower of Comte who had criticized him in the Revue Positiviste for his neglect of practical programmes ? 'The Revue Positiviste accuses me', Marx had said scornfully, 'of a metaphysical treatment of economics, and further - you would hardly guess it - of confining myself to a merely critical analysis of actual facts, instead of prescribing recipes (Comtist ones, perhaps ?) for the kitchen in which the future is cooked.' Thus the Marxist leaders knew better than to waste their time on such matters as technology. 'Workers of all countries, unite !' - that exhausted their practical programme. When the workers of their countries were united, when there was an opportunity of assuming the responsibility of government and laying the foundations for a better world, when their hour had struck, they left the workers high and dry. The leaders did not know what to do. They waited for the promised suicide of capitalism. After the inevitable capitalist collapse, when things had gone thoroughly wrong, when everything was in dissolution and the risk of discredit and disgrace to themselves considerably diminished, then they hoped to become the saviours of mankind. (And, indeed, we should keep in mind the fact that the success of the Communist in Russia was undoubtedly made possible, in part, by the terrible things that had happened before their rise to power.) But when the great depression, which they first welcomed as the promised collapse, was running its course, they began to realize that the workers were growing tired of being fed and put off with interpretations of history ; that it was not enough to tell them that according to the infallible scientific socialism of Marx fascism was definitely the last stand of capitalism before its impending collapse. The suffering masses needed more than that. Slowly the readers began to realize the terrible consequences of a policy of waiting and hoping for the great political miracle. But it was too late. Their opportunity was gone.
These remarks are very sketchy. But they gave some indication of the practical consequences of Marx's prophecy of the coming of socialism.
CHAPTER 19 : THE SOCIAL REVOLUTION
The second step of Marx's prophetic argument has as its most relevant premise the assumption that capitalism must lead to an increase of wealth and misery ; of wealth in the numerically declining bourgeoisie, and of misery in the numerically increasing working class. This assumption will be criticized in the next chapter but is here taken for granted. The conclusion drawn from it can be divided into two parts. The first part is a prophecy concerning the development of the class struggle of capitalism. It affirms that all classes apart from the bourgeoisie and the proletariat, and especially the so-called middle classes, are bound to disappear, and that, in consequence of the increasing tension between the bourgeoisie and the proletariat, the latter will become increasingly class-conscious and united. The second part is the prophecy that this tension cannot possibly be removed, and that it will lead to a proletarian social revolution.
I believe that neither of the two conclusions follows from the premise (이 문장은 think, suppose, believe 등의 동사가 주절에 쓰이면서 부정문인 경우에는 주절 동사로 먼저 부정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I don't believe that either of the two conclusions follows from the premise로 쓰는 것일 옳다. - 역자 주). My criticism will be, in the main, similar to that propounded in the last chapter ; that is to say, I shall try to show that Marx's argument neglects a great number of possible developments.
I
Let us consider at once the first conclusion, i.e. the prophecy that all classes are bound to disappear, or to become insignificant, except the bourgeoisie and the proletariat whose class consciousness and solidarity must increase. It must be admitted that the premise, Marx's theory of increasing wealth and misery, provides indeed for the disappearance of a certain middle class, that of the weaker capitalists and the petty bourgeoisie. 'Each capitalist las many of his fellows low', as Marx puts it ; and these fellow capitalists may indeed be reduced to the position of wage-earners, which for Marx is the same as proletarians (이 문장에서 las는 has의 오기로 보인다. 원문의 오류이지만 이 부분으로 문맥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커다란 부분이 누락된 듯싶다. - 역자 주). This movement is part of the increase of wealth, the accumulation of more and more capital, and its concentration and centralization in fewer and fewer hands. An analogous fate is meted out to 'the lower strata of the middle class', as Marx says. 'The small tradespeople, shopkeepers, and retired tradesmen generally, the handicraftsmen and the peasants, all these sink gradually into the proletariat ; partly because their small capital, insufficient as it is for the scale on which modern industry is conducted, is overwhelmed in the competition with the bigger capitalists ; partly because their specialized skill is rendered worthless by new means of production. Thus the proletariat is recruited from all classes of the population.' This description is certainly fairly accurate, especially so far as handicrafts are concerned ; and it is also true that many proletarians come from peasant stock.
But admirable as Marx's observations are, the picture is defective. The movement he investigated is an industrial movement ; his 'capitalist' is the industrial capitalist, his 'proletarian' the industrial worker. And in spite of the fact that many industrial workers come from peasant stock, this does not mean that the farmers and peasants, for instance, are all gradually reduced to the position of industrial workers. Even the agricultural labourers are not necessarily united with the industrial workers by a common feeling of solidarity and class consciousness. 'The dispersion of the rural workers over large areas', Marx admits, 'breaks down their power of resistance at the very time when the concentration of capital in a few hands increases the power of resistance of the urban workers.' This hardly suggests unification in one class-conscious whole. It shows, rather, that there is at least a possibility of division, and that the agricultural worker might sometimes be too dependent upon his master, the farmer or peasant, to make common cause with the industrial proletariat. But that farmers or peasants may easily choose to support the bourgeoisie rather than the workers was mentioned by Marx himself ; and a workers' programme such as the one of the Manifesto, whose first demand is the 'abolition of all property in land', is hardly designed to counteract this tendency.
This shows that it is at least possible that the rural middle classes may not disappear, and that the rural proletariat may not merge with the industrial proletariat. But this is not all. Marx's own analysis shows that it is vitally important for the bourgeoisie to foment division among the wage-earners ; and as Marx himself has seen, this might be achieved in at least two ways. one way is the creation of a new middle class, of a privileged group of wage-earners who would feel superior to the manual worker and at the same time dependent upon the rulers' mercy. The other way is the utilization of that lowest stratum of society which Marx christened the 'rabble-proletariat'. This is, as pointed out by Marx, the recruiting ground for criminals who may be ready to sell themselves to the class enemy. Increasing misery must tend, as he admits, to swell the numbers of this class ; a development which will hardly contribute to the solidarity of all the oppressed.
But even the solidarity of the class of industrial workers is not a necessary consequence of increasing misery. Admittedly, increasing misery must produce resistance, and it is even likely to produce rebellious outbreaks. But the assumption of our argument is that the misery cannot be alleviated until victory has been won in the social revolution. This implies that the resisting workers will be beaten again and again in their fruitless attempts to better their lot. But such a development need not make the workers class-conscious in the Marxist sense, i.e. proud of their class and assured of their mission ; it may make them, rather, class-conscious in the sense of being conscious of the fact that they belong to a beaten army. And it probably will do so, if the workers do not find strength in the realization that their numbers as well as their potential economic powers continue to grow. This might be the case if, as Marx prophesied, all classes, apart from their own and that of the capitalists, were to show a tendency to disappear. But since, as we have seen, this prophecy need not come true, it is possible that the solidarity of even the industrial workers may be undermined by defeatism.
Thus, as opposed to Marx's prophecy which insists that there must develop a neat division between two classes, we find that on his own assumptions, the following class structure may possibly develop : (1) bourgeoisie, (2) big landed proprietors, (3) other landowners, (4) rural workers, (5) new middle class, (6) industrial workers, (7) rabble proletariat. (Any other combination of these classes may, of course, develop too.) And we find, furthermore, that such a development may possibly undermine the unity of (6).
We can say, therefore, that the first conclusion of the second step in Marx's argument does not follow. But as in my criticism of the third step, here also I must say that I do not intend to replace Marx's prophecy by another one. I do not assert that the prophecy cannot come true, or that the alternative developments I have described will come to pass. I only assert that they may come to pass. (And, indeed, this possibility can hardly be denied by members of the radical Marxist wings who use the accusation of treachery, bribery, and insufficient class solidarity as favourite devices for explaining away developments which do not conform to the prophetic schedule.) That such things may happen should be clear to anybody who has observed the development which has led to fascism, in which all the possibilities I have mentioned played a part. But the mere possibility is sufficient to destroy the first conclusion reached in the second step of Marx's argument.
This of course affects the second conclusion, the prophecy of the coming social revolution. But before I can enter into a criticism of the way in which this prophecy is arrived at, it is necessary to discuss at some length the role played by it within the whole argument, as well as Marx's use of the term 'social revolution'.
II
What Marx meant when he spoke of the social revolution seems at first sight clear enough. His 'social revolution of the proletariat' is a historical concept. It denotes the more or less rapid transition from the historical period of capitalism to that of socialism. In other words, it is the name of a transitional period of class struggle between the two main classes, down to the ultimate victory of the workers. When asked whether the term 'social revolution' implied a violent civil war between the two classes, Marx answered that this was not necessarily implied, adding, however, that the prospects of avoiding civil war were, unfortunately, not very bright. And he might have added further that, from the point of view of historical prophecy, the question appears to be perhaps not quite irrelevant, but at any rate of secondary importance. Social life is violent, Marxism insists, and the class war claims its victims every day. What really matters is the result, socialism. To achieve this result is the essential characteristic of the 'social revolution'.
Now if we could take it as established, or as intuitively certain, that capitalism will be followed by socialism, then this explanation of the term 'social revolution' might be quite satisfactory. But since we must make use of the doctrine of social revolution as a part of that scientific argument by which we try to establish the coming of socialism, the explanation is very unsatisfactory indeed. If in such an argument we try to characterize the social revolution as the transition to socialism, then the argument becomes as circular as that of the doctor who was asked to justify his prediction of the death of a patient, and had to confess that he knew neither the symptoms nor anything else of the malady - only that it would turn into a 'fatal malady'. (If the patient did not die, then it was not yet the 'fatal malady' ; and if a revolution does not lead to socialism, then it is not yet the 'social revolution'.) We can also give to this criticism the simple form that in none of the three steps of the prophetic argument must we assume anything whatever that is deduced only in a later step.
These considerations show that, for a proper reconstruction of Marx's argument, we must find such a characterization of the social revolution as does not refer to socialism, and as permits the social revolution to play its part in this argument as well as possible. A characterization which fulfils these conditions appears to be this. The social revolution is an attempt of a largely united proletariat to conquer complete political power, undertaken with the firm resolution not to shrink from violence, should violence be necessary for achieving this aim, and to resist any effort of its opponents to regain political influence. This characterization is free from the difficulties just mentioned ; it fits the third step of the argument in so far as this third step is valid, giving it that degree of plausibility which the step undoubtedly possess ; and it is, as will be shown, in agreement with Marxism, and especially with its historicist tendency to avoid a definite statement about whether or not violence will actually be used in this phase of history.
But although if regarded as an historical prophecy the proposed characterization is indefinite about the use of violence, it is important to realize that it is not so from a moral or legal point of view. Considered from such a point of view, the characterization of the social revolution here proposed undoubtedly makes of it a violent uprising ; for the question whether or not violence is actually used is less significant than the intention ; and we have assumed a firm resolution not to shrink from violence should it be necessary for achieving the aims of the movement. To say that the resolution not to shrink from violence is decisive for the character of the social revolution as a violent uprising is in agreement not only with the moral or legal point of view, but also with the ordinary view of the matter. For if a man is determined to use violence in order to achieve his aims, then we may say that to all intents and purposes he adopts a violent attitude, whether or not violence is actually used in a particular case. Admittedly, in trying to predict a future action of this man, we should have to be just as indefinite as Marxism, stating that we do not know whether or not he will actually resort to force. (Thus our characterization agrees in this point with the Marxist view.) But this lack of definiteness clearly disappears if we do not attempt historical prophecy, but try to characterize his attitude in the ordinary way.
Now I wish to make it quite clear that it is this prophecy of a possibly violent revolution which I consider, from the point of view of practical politics, by far the most harmful element in Marxism ; and I think it will be better if I briefly explain the reason for my opinion before I proceed with my analysis.
I am not in all cases and under all circumstances against a violent revolution. I believe with some medieval and Renaissance Christian thinkers who taught the admissibility of tyrannicide that there may indeed, under a tyranny, be no other possibility, and that a violent revolution may be justified. But I also believe that any such revolution should have as its only aim the establishment of a democracy ; and by a democracy I do not mean something as vague as 'the rule of the people' or 'the rule of the majority', but a set of institutions (among them especially general elections, i.e. the right of the people to dismiss their government) which permit public control of the rulers and their dismissal by the ruled, and which make it possible for the ruled to obtain reforms without using violence, even against the will of the rulers. In other words, the use of violence is justified only under a tyranny which makes reforms without violence impossible, and it should have only one aim, that is, to bring about a state of affairs which makes reforms without violence possible.
I do not believe that we should ever attempt to achieve more than that by violent means. For I believe that such an attempt would involve the risk of destroying all prospects of reasonable reform. The prolonged use of violence may lead in the end to the loss of freedom, since it is liable to bring about not a dispassionate rule of reason, but the rule of the strong man. A violent revolution which tries to attempt more than the destruction of tyranny is at least as likely to bring about another tyranny as it is likely to achieve its real aims.
There is only one further use of violence in political quarrels which I should consider justified. I mean the resistance, once democracy has been attained, to any attack (whether from within or without the state) against the democratic constitution and the use of democratic methods. Any such attack, especially if it comes from the government in power, or if it is tolerated by it, should be resisted by all loyal citizens, even to the use of violence. In fact, the working of democracy rests largely upon the understanding that a government which attempts to misuse its powers and to establish itself as a tyranny (or which tolerates the establishment of a tyranny by anybody else) outlaws itself, and that the citizens have not only a right but also a duty to consider the action of such a government as a crime, and its members as a dangerous gang of criminals. But I hold that such violent resistance to attempts to overthrow democracy should be unambiguously defensive. No shadow of doubt must be left that the only aim of the resistance is to save democracy. A threat of making use of the situation for the establishment of a counter-tyranny is just as criminal as the original attempt to introduce a tyranny ; the use of such a threat, even if made with the candid intention of saving democracy by deterring its enemies, would therefore be a very bad method of defending democracy ; indeed, such a threat would confuse the ranks of its defenders in an hour of peril, and would therefore be likely to help the enemy.
These remarks indicate that a successful democratic policy demands from the defenders the observance of certain rules. A few such rules will be listed later in this chapter ; here I only wish to make it clear why I consider the Marxist attitude towards violence one of the most important points to be dealt with in any analysis of Marx.
III
According to their interpretation of the social revolution, we may distinguish between two main groups of Marxists, a radical wing and a moderate wing (corresponding roughly, but not precisely, to the Communist and the Social Democratic parties).
Marxists often decline to discuss the question whether or not a violent revolution would be 'justified' ; they say that they are not moralists, but scientists, and that they do not deal with speculations about what ought to be, but with the facts of what is or will be. In other words, they are historical prophets who confine themselves to the question of what will happen. But let us assume that we have succeeded in persuading them to discuss the justification of the social revolution. In this case, I believe that we should find all Marxists agreeing, in principle, with the old view that violent revolutions are justified only if they are directed against a tyranny. From here on, the opinions of the two wings differ.
The radical wing insists that, according to Marx, all class rule is necessarily a dictatorship. i.e. a tyranny. A real democracy can therefore be attained only by the establishment of a classless society, by overthrowing, if necessary violently, the capitalist dictatorship. The moderate wing does not agree with this view, but insists that democracy can to some extent be realized even under capitalism, and that it is therefore possible to conduct the social revolution by peaceful and gradual reforms. But even this moderate wing insists that such a peaceful development is uncertain ; it points out that it is the bourgeoisie which is likely to resort to force, if faced with the prospect of being defeated by the workers on the democratic battlefield ; and it contends that in this case the workers would be justified in retaliating, and in establishing their rule by violent means. Both wings claim to represent the true Marxism of Marx, and in a way, both are right. For, as mentioned above, Marx's views in this matter were somewhat ambiguous, because of his historicist approach ; over and above this, he seems to have changed his views during the course of his life, starting as a radical and later adopting a more moderate position.
I shall examine the radical position first, since it appears to me the only one which fits in with Capital and the whole trend of Marx's prophetic argument. For it is the main doctrine of Capital that the antagonism between capitalist and worker must necessarily increase, and that there is no compromise possible, so that capitalism can only be destroyed, not improved. It will be best to quote the fundamental passage of Capital in which Marx finally sums up the 'historical tendency of capitalist accumulation'. He writes : 'Along with the steady decrease in the number of capitalist magnates who usurp and monopolize all the advantages of this development, there grows the extent of misery, oppression, servitude, degradation, and exploitation ; but at the same time, there rises the rebellious indignation of the working class which is steadily growing in number, and which is being disciplined, unified, and organized by the very mechanism of the capitalist method of production. Ultimately, the monopoly of capital becomes a fetter upon the mode of production which has flourished with it, and under it. Both the centralization in a few hands of the means of production, and the social organization of labour, reach a point where their capitalist cloak becomes a strait-jacket. It bursts asunder. The hour of capitalist private property has struck. The expropriators are expropriated.
In view of this fundamental passage, there can be little doubt that the core of Marx's teaching in Capital was the impossibility of reforming capitalism, and the prophecy of its violent overthrow ; a doctrine corresponding to that of the radical wing. And this doctrine fits into our prophetic argument as well as can be. For if we grant not only the premise of the second step but the first conclusion as well, then the prophecy of the social revolution would indeed follow, in accordance with the passage we have quoted from Capital. (And the victory of the workers would follow too, as pointed out in the last chapter.) Indeed, it seems hard to envisage a fully united and class-conscious working class which would not in the end, if their misery cannot be mitigated by any other means, make a determined attempt to overthrow the social order. But this does not, of course, save the second conclusion. For we have already shown that the first conclusion is invalid ; and from the premise alone, from the theory of increasing wealth and misery, the inevitability of the social revolution cannot be derived. As pointed out in our analysis of the first conclusion, all we can say is that rebellious outbreaks may be unavoidable ; but since we can be sure neither of class unity nor of a developed class consciousness among the workers, we cannot identify such outbreaks with the social revolution. (They need not be victorious either, so that the assumption that they represent the social revolution would not fit in with the third step.)
As opposed to the radical position which at least fits quite well into the prophetic argument, the moderate position destroys it completely. But as was said before, it too has the support of Marx's authority. Marx lived long enough to see reforms carried out which, according to his theory, should have been impossible. But it never occurred to him that these improvements in the workers' lot were at the same time refutations of his theory. His ambiguous historicist view of the social revolution permitted him to interpret these reforms as its prelude or even as its beginning. As Engels tells us, Marx reached the conclusion that in England, at any rate, 'the inevitable social revolution might be effected entirely by peaceful and legal means. He certainly never forgot to add that he hardly expected the English ruling class to submit, without a "pro-slavery rebellion", to this peaceful and legal revolution'. This report agrees with a letter in which Marx wrote, only three years before his death : 'My party.. considers an English revolution not necessary but - according to historic precedents - possible.' It should be noted that in the first at least of these statements, the theory of the 'moderate wing' is clearly expressed ; the theory, namely, that should the ruling class not submit, violence would be unavoidable.
These moderate theories seem to me to destroy the whole prophetic argument. They imply the possibility of a compromise, of a gradual reform of capitalism, and therefore, of a decreasing class-antagonism. But the sole basis of the prophetic argument is the assumption of an increasing class-antagonism. There is no logical necessity why a gradual reform, achieved by compromise, should lead to the complete destruction of the capitalist system ; why the workers, who have learned by experience that they can improve their lot by gradual reform, should not prefer to stick to this method, even if it does not yield 'complete victory', i. e. the submission of the ruling class ; why they should not compromise with the bourgeoisie and leave it in possession of the means of production rather than risk all their gains by making demands liable to lead to violent clashes. only if we assume that 'the proletarians have nothing to lose but their fetters', only if we assume that the law of increasing misery is valid, or that it at least makes improvements impossible, only then can we prophesy that the workers will be forced to make an attempt to overthrow the whole system. An evolutionary interpretation of the 'social revolution' thus destroys the whole Marxist argument, from the first step to the last ; all that is left of Marxism would be the historicist approach. If an historical prophecy is still attempted, then it must be based upon an entirely new argument.
If we try to construct such a modified argument in accordance with Marx's later views and with those of the moderate wing, preserving as much of the original theory as possible, then we arrive at an argument based entirely upon the claim that the working class represents now, or will one day represent, the majority of the people. The argument would run like this. Capitalism will be transformed by a 'social revolution', by which we now mean nothing but the advance of the class struggle between capitalists and workers. This revolution may either proceed by gradual and democratic methods, or it may be violent, or it may be gradual and violent in alternate stages. All this will depend upon the resistance of the bourgeoisie. But in any case, and particularly if the development is a peaceful one, it must end with the workers assuming 'the position of the ruling class', as the Manifesto says ; they must 'win the battle of democracy' ; for 'the proletarian movement is the self-conscious independent movement of the immense majority in the interest of the immense majority'.
It is important to realize that even in this moderate and modified form, the prediction is untenable. The reason is this. The theory of increasing misery must be given up if the possibility of gradual reform is admitted ; but with it, even the semblance of a justification for the assertion that the industrial workers must one day form the 'immense majority' disappears. I do not wish to imply that this assertion would really follow from the Marxist theory of increasing misery, since this theory has never taken sufficient heed of the farmers and peasants. But if the law of increasing misery, supposed to reduce the middle class to the level of the proletariat, is invalid, then we must be prepared to find that a very considerable middle class continues to exist (or that a new middle class has arisen) and that it may co-operate with the other non-proletarian classes against a bid for power by the workers ; and nobody can say for certain what the outcome of such a contest would be. Indeed, statistics no longer show any tendency for the number of industrial workers to increase in relation to the other classes of the population. There is, rather, the opposite tendency, in spite of the fact that the accumulation of instruments of production continues. This fact alone refutes the validity of the modified prophetic argument. All that remains of it is the important observation (which is, however, not up to the pretentious standards of a historicist prophecy) that social reforms are carried out largely under the pressure of the oppressed ; or (if this term is preferred) under the pressure of class struggle ; that is to say, that the emancipation of the oppressed will be largely the achievement of the oppressed themselves.
IV
The prophetic argument is untenable, and irreparable, in all its interpretations, whether radical or moderate. But for a full understanding of this situation, it is not enough to refute the modified prophecy ; it is also necessary to examine the ambiguous attitude towards the problem of violence which we can observe in both the radical and the moderate Marxist parties. This attitude has, I assert, a considerable influence upon the question whether or not the 'battle of democracy' will be won ; for wherever the moderate Marxist wing has won a general election, or come close to it, one of the reasons seems to have been that they attracted large sections of the middle class. This was due to their humanitarianism, to their stand for freedom and against oppression. But the systematic ambiguity of their attitude towards violence not only tends to neutralize this attraction, but it also directly furthers the interest of the anti-democrats, the anti-humanitarians, the fascist.
There are two closely connected ambiguities in the Marxist doctrine, and both are important from this point of view. The one is an ambiguous attitude towards violence, founded upon the historicist approach. The other is the ambiguous way in which Marxists speak about 'the conquest of political power by the proletariat', as the Manifesto puts it. What does this mean ? It may mean, and it is sometimes so interpreted, that the workers' party has the harmless and obvious aim of every democratic party, that of obtaining a majority, and of forming a government. But it may mean, and it is often hinted by Marxists that it does mean, that the party, once in power, intends to entrench itself in this position ; that is to say, that it will use its majority vote in such a way as to make it very difficult for others ever to regain power by ordinary democratic means. The difference between these two interpretations is most important. If a party which is at a certain time in the minority plans to suppress the other party, whether by violence or by means of a majority vote, then it recognizes by implication the right of the present majority party to do the same. It loses any moral right to complain about oppression ; and, indeed, it plays into the hands of those groups within the present ruling party who wish to suppress the opposition by force.
I may call these two ambiguities briefly the ambiguity of violence and the ambiguity of power-conquest. Both are rooted not only in the vagueness of the historicist approach, but also in the Marxist theory of the state. If the state is, essentially, a class tyranny, then, on the one hand, violence is permissible, and on the other, all that can be done is to replace the dictatorship of the bourgeoisie by that of the proletariat. To worry much about formal democracy merely shows lack of historical sense ; after all 'democracy is.. only one of the stages in the course of the historical development', as Lenin says.
The two ambiguities play their role in the tactical doctrines of both the radical and the moderate wings. This is understandable, since the systematic use of the ambiguity enables them to extend the realm from which prospective followers may be recruited. This is a tactical advantage which may, however, easily lead to a disadvantage at the most critical moment ; it may lead to a split whenever the most radical members think that the hour has struck for taking violent action. The way in which the radical wing may make a systematic use of the ambiguity of violence may be illustrated by the following extracts taken from Parkes' recent critical dissection of Marxism. 'Since the Communist Party of the United States now declares not only that it does not now advocate revolution, but also that it never did advocate revolution, it may be advisable to quote a few sentences from the program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drafted in 1928).' Parkes then quotes among others the following passages from this programme : 'The Conquest of power by the proletariat does not mean peacefully "capturing" the ready-made bourgeois state by means of parliamentary majority... The conquest of power.. is the violent overthrow of bourgeois power, the destruction of the capitalist state apparatus... The Party.. is confronted with the task of leading the masses to a direct attack upon the bourgeois state. This is done by.. propaganda.. and.. mass action... This mass action includes.. finally, the general strike conjointly with armed insurrection... The latter form.. which is the supreme form, must be conducted according to the rules of war..' one sees, from these quotations, that this part of the programme is quite unambiguous ; but this does not prevent the party from making a systematic use of the ambiguity of violence, withdrawing, if the tactical situation demands it, towards a non-violent interpretation of the term 'social revolution' ; and this in spite of the concluding paragraph of the Manifesto (which is retained by the programme of 1928) : 'The Communists disdain to conceal their views and aims. They openly declare that their aims can be attained only by the forcible overthrow of all the existing social conditions...'
But the way in which the moderate wing has systematically used the ambiguity of violence as well as that of power-conquest is even more important. It has been developed especially by Engels, on the basis of Marx's more moderate views quoted above, and it has become a tactical doctrine which has greatly influenced later developments. The doctrine I have in mind might be presented as follows : We Marxists much prefer a peaceful and democratic development towards socialism, if we can have it. But as political realists we foresee the probability that the bourgeoisie will not quietly stand by when we are within reach of attaining the majority. They will rather attempt to destroy democracy. In this case, we must not flinch, but fight back, and conquer political power. And since this development is a probable one, we must prepare the workers for it ; otherwise we should betray our cause. Here is one of Engels' passages on the matter : 'For the moment.. legality.. is working so well in our favour that we should be mad to abandon it as long as it lasts. It remains to be seen whether it will not be the bourgeoisie.. which will abandon it first in order to crush us with violence. Take the first shot, gentlemen of the bourgeoisie ! Never doubt it, they will be the first to fire. one fine day the.. bourgeoisie will grow tired of.. watching the rapidly increasing strength of socialism, and will have recourse to illegality and violence.' What will happen then is left systematically ambiguous. And this ambiguity is used as a threat ; for in later passages, Engels addresses the 'gentlemen of the bourgeoisie' in the following way : 'If.. you break the constitution.. then the Social Democratic Party is free to act, or to refrain from acting, against you - whatever it likes best. What it is going to do, however, it will hardly give away to you to-day !'
It is interesting to see how widely this doctrine differs from the original conception of Marxism which predicted that the revolution would come as the result of the increasing pressure of capitalism upon the workers, and not as the result of the increasing pressure of a successful working-class movement upon capitalists. This most remarkable change of front shows the influence of the actual social development which turned out to be one of decreasing misery. But Engels' new doctrine, which leaves the revolutionary, or more precisely, the counter-revolutionary, initiative to the ruling class, is tactically absurd, and doomed to failure. The original Marxist theory taught that the workers' revolution will break out at the depth of a depression, i.e. at a moment when the political system is weakened by the breakdown of the economic system, a situation which would contribute greatly to the victory of the workers. But if the 'gentlemen of the bourgeoisie' are invited to take the first shot, is it conceivable that they will be stupid enough not to choose their moment wisely ? Will they not make proper preparations for the war they are going to wage ? And since, according to the theory, they hold the power, will such a preparation not mean the mobilization of forces against which the workers can have no slightest chance of victory ? Such criticism cannot be met by amending the theory so that the workers should not wait until the other side strikes but try to anticipate them, since, on its own assumption, it must always be easy for those in power to be ahead in their preparations - to prepare rifles, if the workers prepare sticks, guns if they prepare rifles, dive bombers if they prepare guns, etc.
V
But this criticism, practical as it is, and corroborated by experience, is only superficial. The main defects of the doctrine lie deeper. The criticism I now wish to offer attempts to show that both the presupposition of the doctrine and its tactical consequences are such that they are likely to produce exactly that anti-democratic reaction of the bourgeoisie which the theory predicts, yet claims (with ambiguity) to abhor : the strengthening of the anti-democratic element in the bourgeoisie, and, in consequence, civil war. And we know that this may lead to defeat, and to fascism.
The criticism I have in mind is, briefly, that Engels' tactical doctrine, and, more generally, the ambiguities of violence and of power-conquest, make the working of democracy impossible, once they are adopted by an important political party. I base this criticism on the contention that democracy can work only if the main parties adhere to a view of its functions which may be summarized in some rules such as these (cp. also section II of chapter 7) :
(1) Democracy cannot be fully characterized as the rule of the majority, although the institution of general elections is most important. For a majority might rule in a tyrannical way. (The majority of those who are less than 6 ft. high may decide that the minority of those over 6 ft. shall pay all taxes.) In a democracy, the powers of the rulers must be limited ; and the criterion of a democracy is this : In a democracy, the rulers - that is to say, the government - can be dismissed by the ruled without bloodshed. Thus if the men in power do not safeguard those institutions which secure to the minority the possibility of working for a peaceful change, then their rule is a tyranny.
(2) We need only distinguish between two forms of government, viz. such as possess institutions of this kind, and all others ; i.e. democracies and tyrannies.
(3) A consistent democratic constitution should exclude only one type of change in the legal system, namely a change which would endanger its democratic character.
(4) In a democracy, the full protection of minorities should not extend to those who violate the law, and especially not to those who incite others to the violent overthrow of the democracy.
(5) A policy of framing institutions to safeguard democracy must always proceed on the assumption that there may be anti-democratic tendencies latent among the ruled as well as among the rulers.
(6) If democracy is destroyed, all rights are destroyed. Even if certain economic advantages enjoyed by the ruled should persist, they would persist only on the sufferance.
(7) Democracy provides an invaluable battle-ground for any reasonable reform, since it permits reform without violence. But if the preservation of democracy is not made the first consideration in any particular battle fought out on this battle-ground, then the latent anti-democratic tendencies which are always present (and which appeal to those who suffer under the strain of civilization, as we called it in chapter 10) may bring about a breakdown of democracy. If an understanding of these principles is not yet developed, its development must be fought for. The opposite policy may prove fatal; it may bring about the loss of the most important battle, the battle for democracy itself.
As opposed to such a policy, that of Marxist parties can be characterized as one of making the workers suspicious of democracy. 'In reality the state is nothing more', says Engels, 'than a machine for the oppression of one class by another, and this holds for a democratic republic no less than for a monarchy.' But such views must produce :
(a) A policy of blaming democracy for all the evils which it does not prevent, instead of recognizing that the democrats are to be blamed, and the opposition usually no less than the majority. (Every opposition has the majority it deserves.)
(b) A policy of educating the ruled to consider the state not as theirs, but as belonging to the rulers.
(c) A policy of telling them that there is only one way to improve things, that of the complete conquest of power. But this neglects the one really important thing about democracy, that it checks and balances power.
Such a policy amounts to doing the work of the enemies of the open society ; it provides them with an unwitting fifth column. And against the Manifesto which says ambiguously : 'The first step in the revolution of the working class is to raise the proletariat to the position of the ruling class - to win the battle of democracy', I assert that if this is accepted as the first step, then the battle of democracy will be lost.
There are the general consequences of Engels' tactical doctrines, and of the ambiguities grounded in the theory of the social revolution. Ultimately, they are merely the last consequences of Plato's way of posing the problem of politics by asking 'who should rule the state ?' (cp. chapter 7). It is high time for us to learn that the question 'who is to wield the power in the state ?' matters only little as compared with the question 'how is the power wielded ?' and 'how much power is wielded ?' We must learn that in the long run, all political problems are institutional problems, problems of the legal framework rather than of persons, and that progress towards more equality can be safeguarded only by the institutional control of power.
VI
As in the previous chapter, I shall now illustrate the second step by showing something of the way in which the prophecy has influenced recent historical developments. All political parties have some sort of 'vested interest' in their opponent's unpopular moves. They live by them and are therefore liable to dwell upon, to emphasize, and even to look forward to them. They may even encourage the political mistakes of their opponents as long as they can do so without becoming involved in the responsibility for them. This, together with Engels' theory, has led some Marxist parties to look forward to the political moves made by their opponents against democracy. Instead of fighting such moves tooth and nail, they were pleased to tell their followers : 'See what these people do. That is what they call democracy. That is what they call freedom and equality ! Remember it when the day of reckoning comes.' (An ambiguous phrase which may refer to election day or to the day of revolution.) This policy of letting one's opponents expose themselves must, if extended to moves against democracy, lead to disaster. It is a policy of talking big and doing nothing in the face of real and increasing danger to democratic institutions. It is a policy of talking war and acting peace ; and it taught the fascists the invaluable method of talking peace and acting war.
There is no doubt about the way in which the ambiguity just mentioned played into the hands of those fascist groups who wanted to destroy democracy. For we must reckon with the possibility that there will be such groups, and that their influence within the so-called bourgeoisie will depend largely on the policy adopted by the workers' parties.
For instance, let us consider more closely the use made in the political struggle of the threat of revolution or even of political strikes (as opposed to wage disputes, etc.). As explained above, the decisive question here would be whether such means are used as offensive weapons or solely for the defence of democracy. Within a democracy, they would be justified as a purely defensive weapon, and when resolutely applied in connection with a defensive and unambiguous demand they have been successfully used in this way. (Remember the quick breakdown of Kapp's putsch.) But if used as an offensive weapon they must lead to a strengthening of the anti-democratic tendencies in the opponent's camp, since they clearly make democracy unworkable. Furthermore, such use must make the weapon ineffective for defence. If you use the whip even when the dog is good, then it won't work if you need it to deter him from being bad. The defence of democracy must consist in making anti-democratic experiments too costly for those who try them ; much more costly than a democratic compromise... The use by the workers of any kind of non-democratic pressure is likely to lead to a similar, or even to an anti-democratic, counter-pressure - to provoke a move against democracy. Such an anti-democratic move on the part of the rulers is, of course, a much more serious and dangerous thing than a similar move on the part of the ruled. It would be the task of the workers to fight this dangerous move resolutely, to stop it in its inconspicuous beginnings. But how can they now fight in the name of democracy ? Their own anti-democratic action must provide their enemies, and those of democracy, with an opportunity.
The facts of the development described can, if one wishes, be interpreted differently ; they may lead to the conclusion that democracy is 'no good'. This is indeed a conclusion which many Marxists have drawn. After having been defeated in what they believed to be the democratic struggle (which they had lost in the moment they formulated their tactical doctrine), they said : 'We have been too lenient, too humane - next time we will make a really bloody revolution !' It is as if a man who loses a boxing match should conclude : boxing is no good - I should have used a club... The fact is that the Marxists taught the theory of class war to the workers, but the practice of it to the reactionary diehards of the bourgeoisie. Marx talked war. His opponents listened attentively ; then they began to talk peace and accuse the workers of belligerency; this charge the Marxists could not deny, since class war was their slogan. And the fascists acted.
So far, the analysis mainly covers certain more 'radical' Social Democratic parties who based their policy entirely upon Engels' ambiguous tactical doctrine. The disastrous effects of Engels' tactics were increased in their case by the lack of a practical programme discussed in the last chapter. But the Communists too adopted the tactics here criticized in certain countries and at certain periods, especially where the other workers' parties, for instance the Social Democrats or the Labour Party, observed the democratic rules.
But the position was different with the Communists in so far as they had a programme. It was : 'Copy Russia !' This made them more definite in their revolutionary doctrines as well as in their assertion that democracy merely means the dictatorship of the bourgeoisie. According to this assertion, not much could be lost and something would be gained if that hidden dictatorship became an open one, apparent to all ; for this could only bring the revolution nearer. They even hoped that a totalitarian dictatorship in Central Europe would speed up matters. After all, since the revolution was bound to come, fascism could only be one of the means of bringing it about ; and this was more particularly so since the revolution was clearly long overdue. Russia had already had it in spite of its backward economic conditions. only the vain hopes created by democracy were holding it back in the more advanced countries. Thus the destruction of democracy through the fascists could only promote the revolution by achieving the ultimate disillusionment of the workers in regard to democratic methods. With this, the radical wing of Marxism felt that it had discovered the 'essence' and the 'true historical role' of fascism. Fascism was, essentially, the last stand of the bourgeoisie. Accordingly, the Communists did not fight when the fascists seized power. (Nobody expected the Social Democrats to fight.) For the Communists were sure that the proletarian revolution was overdue and that the fascist interlude, necessary for its speeding up, could not last longer than a few months. Thus no action was required from the Communists. They were harmless. There was never a 'communist danger' to the fascist conquest of power. As Einstein once emphasized, of all organized groups of the community, it was only the Church, or rather a section of the Church, which seriously offered resistance.
CHAPTER 20 : CAPITALISM AND ITS FATE
According to Marxist doctrine, capitalism is labouring under inner contradictions that threaten to bring about its downfall. A minute analysis of these contradictions and of the historical movement which they force upon society constitutes the first step of Marx's prophetic argument. This step is not only the most important of his whole theory, it is also the one on which he spent most of his labour, since practically the whole of the three volumes of Capital (over 2,200 pages in the original edition) is devoted to its elaboration. It is also the least abstract step of the argument since it is based upon a descriptive analysis, supported by statistics, of the economic system of his time - that of unrestrained capitalism. As Lenin puts it : 'Marx deduces the inevitability of the transformation of capitalist society into socialism wholly and exclusively from the economic law of the movement of contemporary society.'
Before proceeding to explain in some detail the first step of Marx's prophetic argument, I shall try to describe its main ideas in the form of a very brief outline.
Marx believes that capitalist competition forces the capitalist's hand. It forces the capitalist to accumulate capital. By doing so, he works against his own long-term economic interests (since the accumulation of capital is liable to bring about a fall of his profits). But although working against his own personal interest, he works in the interest of the historical development ; he works, unwittingly, for economic progress, and for socialism. This is due to the fact that accumulation of capital means (a) increased productivity ; increase of wealth ; and concentration of wealth in a few hands ; (b) increase of pauperism and misery ; the workers are kept on subsistence or starvation wages, mainly by the fact that the surplus of workers, called the 'industrial reserve army', keeps the wages on the lowest possible level. The trade cycle prevents, for any length of time, the absorption of the surplus of workers by the growing industry. This cannot be altered by the capitalists, even if they wish to do so ; for the falling rate of their profits makes their own economic position much too precarious for any effective action. In this way, capitalist accumulation turns out to be a suicidal and self-contradictory process, even though it fosters the technical, economic, and historical progress towards socialism.
I
The premises of the first step are the laws of capitalist competition, and of the accumulation of the means of production. The conclusion is the law of increasing wealth and misery. I begin my discussion with an explanation of these premises and conclusions.
Under capitalism, competition between the capitalists plays an important role. 'The battle of competition', as analysed by Marx in Capital, is carried out by selling the commodities produced, if possible at a lower price than the competitor could afford to accept. 'But the cheapness of a commodity', Marx explains, 'depends in its turn, other things being equal, upon the productivity of labour ; and this, again, depends on the scale of production.' For production on a very large scale is in general capable of employing more specialized machinery, and a greater quantity of it ; this increases the productivity of the workers, and permits the capitalist to produce, and to sell, at a lower price. 'Large capitalists, therefore, get the better of small ones... Competition always ends with the downfall of many lesser capitalists and with the transition of their capital into the hands of the conqueror.' (This movement is, as Marx points out, much accelerated by the credit system.)
According to Marx's analysis, the process described, accumulation due to competition, has two different aspects. one of them is that the capitalist is forced to accumulate or concentrate more and more capital, in order to survive ; this means in practice investing more and more capital in more and more as well as newer and newer machinery, thus continually increasing the productivity of his workers. The other aspect of the accumulation of capital is the concentration of more and more wealth in the hands of the various capitalists, and of the capitalist class ; and along with it goes the reduction in the number of capitalists, a movement called by Marx the centralization of capital (in contradistinction to mere accumulation or concentration).
Now three of these terms, competition, accumulation, and increasing productivity, indicate the fundamental tendencies of all capitalist production, according to Marx ; they are the tendencies to which I alluded when I described the premise of the first step as 'the laws of capitalist competition and of accumulation'. The fourth and the fifth terms, however, concentration and centralization, indicate a tendency which forms one part of the conclusion of the first step ; for they describe a tendency towards a continuous increase of wealth, and its centralization in fewer and fewer hands. The other part of the conclusion, however, the law of increasing misery, is only reached by a much more complicated argument. But before beginning an explanation of this argument, I must first explain this second conclusion itself.
The term 'increasing misery' may mean, as used by Marx, two different things. It may be used in order to describe the extent of misery, indicating that it is spread over an increasing number of people ; or it may be used in order to indicate an increase in the intensity of the suffering of the people. Marx undoubtedly believed that misery was growing both in extent and in intensity. This, however, is more than he needed in order to carry his point. For the purpose of the prophetic argument, a wider interpretation of the term 'increasing misery' would do just as well (if not better) ; an interpretation, namely, according to which the extent of misery increases, while its intensity may or may not increase, but at any rate does not show any marked decrease.
But there is a further and much more important comment to be made. Increasing misery, to Marx, involves fundamentally an increasing exploitation of the employed workers ; not only in numbers but also in intensity. It must be admitted that in addition it involves an increase in the suffering as well as in the numbers of the unemployed, called by Marx the (relative) 'surplus population' or the 'industrial reserve army'. But the function of the unemployed, in this process, is to exert pressure upon the employed workers, thus assisting the capitalists in their efforts to make profit out of the employed workers, to exploit them. 'The industrial reserve army', Marx writes, 'belongs to capitalism just as if its members had been reared by the capitalists at their own cost. For its own varying needs, capital creates an ever-ready supply of exploitable human material... During periods of depression and of semi-prosperity, the industrial reserve army keeps up its pressure upon the ranks of the employed workers ; and during periods of excessive production and boom, it serves to bridle their aspirations.' Increasing misery, according to Marx, is essentially the increasing exploitation of labour power ; and since labour power of the unemployed is not exploited, they can serve in this process only as unpaid assistants of the capitalists in the exploitation of the employed workers. The point is important since later Marxists have often referred to unemployment as one of the empirical facts that verify the prophecy that misery tends to increase ; but unemployment can be claimed to corroborate Marx's theory only if it occurs together with increased exploitation of the employed workers, i.e. with long hours of work and with low real wages.
This may suffice to explain the term 'increasing misery'. But it is still necessary to explain the law of increasing misery which Marx claimed to have discovered. By this I mean the doctrine of Marx on which the whole prophetic argument hinges ; namely, the doctrine that capitalism cannot possibly afford to decrease the misery of the workers, since the mechanism of capitalist accumulation keeps the capitalist under a strong economic pressure which he is forced to pass on to the workers if he is not to succumb. This is why the capitalists cannot compromise, why they cannot meet any important demand of the workers, even if they wished to do so ; this is why 'capitalism cannot be reformed but can only be destroyed'. It is clear that this law is the decisive conclusion of the first step. The other conclusion, the law of increasing wealth, would be a harmless matter, if only it were possible for the increase of wealth to be shared by the workers. Marx's contention that this is impossible will therefore be the main subject of our critical analysis. But before proceeding to a presentation and criticism of Marx's arguments in favour of this contention, I may briefly comment on the first part of the conclusion, the theory of increasing wealth.
The tendency towards the accumulation and concentration of wealth, which Marx observed, can hardly be questioned. His theory of increasing productivity is also, in the main, unexceptionable. Although there may be limits to the beneficial effects exerted by the growth of an enterprise upon its productivity, there are hardly any limits to the beneficial effects of the improvement and accumulation of machinery. But in regard to the tendency towards the centralization of capital in fewer and fewer hands, matters are not quite so simple. Undoubtedly, there is a tendency in that direction, and we may grant that under an unrestrained capitalist system there are few counteracting forces. Not much can be said against this part of Marx's analysis as a description of an unrestrained capitalism. But considered as a prophecy, it is less tenable. For we know that now there are many means by which legislation can intervene. Taxation and death duties can be used most effectively to counteract centralization, and they have been so used. And anti-trust legislation can also be used, although perhaps with less effect. To evaluate the force of Marx's prophetic argument we must consider the possibility of great movements in this direction ; and as in previous chapters, I must declare that the argument on which Marx bases this prophecy of centralization or of a decrease in the number of capitalists is inconclusive.
Having explained the main premises and conclusions of the first step, and having disposed of the first conclusion, we can now concentrate our attention entirely upon Marx's derivation of the other conclusion, the prophetic law of increasing misery. Three different trends of thought may be distinguished in his attempts to establish this prophecy. They will be dealt with in the next four sections of this chapter under the headings : II : the theory of value; III : the effect of the surplus population upon wages ; IV : the trade cycle ; V : the effects of the falling rate of profit.
II
Marx's theory of value, usually considered by Marxists as well as by anti-Marxists as a corner-stone of the Marxist creed, is in my opinion one of its rather unimportant parts ; indeed, the sole reason why I am going to treat of it, instead of proceeding at once to the next section, is that it is generally held to be important, and that I cannot defend my reasons for differing from this opinion without discussing the theory. But I wish to make it clear at once that in holding that the theory of value is a redundant part of Marxism, I am defending Marx rather than attacking him. For there is little doubt that the many critics who have shown that the theory of value is very weak in itself are in the main perfectly right. But even if they were wrong, it would only strengthen the position of Marxism if it could be established that its decisive historico-political doctrines can be developed entirely independently of such a controversial theory.
The idea of the so-called labour theory of value, adapted by Marx for this purposes from suggestions he found in his predecessors (he refers especially to Adam Smith and David Ricardo), is simple enough. If you need a carpenter, you must pay him by the hour. If you ask him why a certain job is more expensive than another one, he will point out that there is more work in it. In addition to the labour, you must pay of course for the timber. But if you go into this a little more closely, then you find that you are, indirectly, paying for the labour involved in foresting, felling, transporting, sawing, etc. This consideration suggests the general theory that you have to pay for the job, or for any commodity you may buy, roughly in proportion to the amount of work in it, i.e. to the number of labour hours necessary for its production.
I say 'roughly' because the actual prices fluctuate. But there is, or so at least it appears, always something more stable behind these prices, a kind of average price about which the actual price oscillate, christened the 'exchange-value' or, briefly, the 'value' of the thing. Using this general idea, Marx defined the value of a commodity as the average number of labour hours necessary for its production (or for its reproduction).
The next idea, that of the theory of surplus value, is nearly as simple. It too was adapted by Marx from his predecessors. (Engels asserts - perhaps mistakenly, but I shall follow his presentation of the matter - that Marx's main source was Ricardo.) The theory of surplus value is an attempt, within the limits of the labour theory of value, to answer the question : 'How does the capitalist make his profit ?' If we assume that the commodities produced in his factory are sold on the market at their true value, i.e. according to the number of labour hours necessary for their production, then the only way in which the capitalist can make a profit is by paying his workers less than the full value of their product. Thus the wages received by the worker represent a value which is not equal to the number of hours he has worked. And we can accordingly divide his working day into two parts, the hours he has spent in producing value equivalent to his wages and the hours he has spent in producing value for the capitalist. And correspondingly, we can divide the whole value produced by the worker into two parts, the value equal to his wages, and the rest, which is called surplus value. This surplus value is appropriated by the capitalist and is the sole basis for his profit.
So far, the story is simple enough. But now there arises a theoretical difficulty. The whole value theory has been introduced in order to explain the actual prices at which all commodities are exchanged ; and it is still assumed that the capitalist is able to obtain on the market the full value of his product, i.e. a price that corresponds to the total number of hours spent on it. But it looks as if the worker does not get the full price of the commodity which he sells to the capitalist on the labour market. It looks as if he is cheated, or robbed ; at any rate, as if he is not paid according to the general law assumed by the value theory, namely, that all actual prices paid are, at least in a first approximation, determined by the value of the commodity. (Engels says that the problem was realized by the economists who belonged to what Marx called 'the school of Ricardo' ; and he asserts that their inability to solve it led to the breakdown of this school.) There appeared what seemed a rather obvious solution of the difficulty. The capitalist possesses a monopoly of the means of production, and this superior economic power can be used for bullying the worker into an agreement which violates the law of value. But this solution (which I consider quite a plausible description of the situation) utterly destroys the labour theory of value. For it now turns out that certain prices, namely, wages, do not correspond to their values, not even in a first approximation. And this opens up the possibility that this may be true of other prices for similar reasons.
Such was the situation when Marx entered the scene in order to save the labour theory of value from destruction. With the help of another simple but brilliant idea he succeeded in showing that the theory of surplus value was not only compatible with the labour theory of value but that it could also be rigidly deduced from the latter. In order to achieve this deduction, we have only to ask ourselves : what is, precisely, the commodity which the worker sells to the capitalist ? Marx's reply is : not his labour hours, but his whole labour power. What the capitalist buys or hires on the labour market is the labour power of the worker. Let us assume, tentatively, that this commodity is sold at its true value. What is its value ? According to the definition of value, the value of labour power is the average number of labour hours necessary for its production or reproduction. But this is, clearly, nothing but the number of hours necessary for producing the worker's (and his family's) means of subsistence.
Marx thus arrived at the following result. The true value of the worker's whole labour power is equal to the labour hours needed for producing the means of his subsistence. Labour power is sold for this price to the capitalist. If the worker is able to work longer than that, then his surplus labour belongs to the buyer or hirer of his power. The greater the productivity of labour, that is to say, the more a worker can produce per hour, the fewer hours will be needed for the production of his subsistence, and the more hours remain for his exploitation. This shows that the basis of capitalist exploitation is a high productivity of labour. If the worker could produce in a day no more than his own daily needs, then exploitation would be impossible without violating the law of value ; it would be possible only by means of cheating, robbery, or murder. But once the productivity of labour has, by the introduction of machinery, risen so high that one man can produce much more than he needs, capitalist exploitation becomes possible. It is possible even in a capitalist society which is 'ideal' in the sense that every commodity, including labour power, is bought and sold at its true value. In such a society, the injustice of exploitation does not lie in the fact that the worker is not paid a 'just price' for his labour power, but rather in the fact that he is so poor that he is forced to sell his labour power, while the capitalist is rich enough to buy labour power in great quantities, and to make profit out of it.
But this derivation of the theory of surplus value, Marx saved the labour theory of value from destruction for the time being ; and in spite of the fact that I regard the whole 'value problem' (in the sense of an 'object' true value round which the prices oscillate) as irrelevant, I am very ready to admit that this was a theoretical success of the first order. But Marx had done more than save a theory originally advanced by 'bourgeois economists'. With one stroke, he gave a theory of exploitation and a theory explaining why the workers' wages tend to oscillate about the subsistence (or starvation) level. But the greatest success was that he could now give an explanation, one in keeping with his economic theory of the legal system, of the fact that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tended to adopt the legal cloak of liberalism. For the new theory led him to the conclusion that once the introduction of new machinery had multiplied the productivity of labour, there arose the possibility of a new form of exploitation which used a free market instead of brutal force, and which was based on the 'formal' observance of justice, equality before the law, and freedom. The capitalist system, he asserted, was not only a system of 'free competition', but it was also 'maintained by the exploitation of the labour of others, but of labour which, in a formal sense, is free'.
It is impossible for me to enter here into a detailed account of the really astonishing number of further applications made by Marx of his value theory. But it is also unnecessary, since my criticism of the theory will show the way in which the value theory can be eliminated from all these investigations. I am now going to develop this criticism; its three main points are (a) that Marx's value theory does not suffice to explain exploitation, (b) that the additional assumptions which are necessary for such an explanation turn out to be sufficient, so that the theory of value turns out to be redundant, (c) that Marx's theory of value is an essentialist or metaphysical one.
(a) The fundamental law of the theory of value is the law that the prices of practically all commodities, including wages, are determined by their values, or more precisely, that they are at least in a first approximation proportional to the labour hours necessary for their production. Now this 'law of value', as I may call it, at once raises a problem. Why does it hold ? Obviously, neither the buyer nor the seller of the commodity can see, at a glance, how many hours are necessary for its production ; and even if they could, it would not explain the law of value. For it is clear that the buyer simply buys as cheaply as he can, and that the seller charges as much as he can get. This, it appears, must be one of the fundamental assumptions of any theory of market prices. In order to explain the law of value, it would be our task to show why the buyer is unlikely to succeed in buying below, and the seller in selling above, the 'value' of a commodity. This problem was seen more or less clearly by those who believed in the labour theory of value, and their reply was this. For the purpose of simplification, and in order to obtain a first approximation, let us assume perfectly free competition, and for the same reason let us consider only such commodities as can be manufactured in practically unlimited quantities (if only the labour were available). Now let us assume that the price of such a commodity is above its value ; this would mean that excessive profits can be made in this particular branch of production. It would encourage various manufacturers to produce this commodity, and competition would lower the price. The opposite process would lead to an increase in the price of a commodity which is sold below its value. Thus there will be oscillations of price, and these will tend to centre about the values of commodities. In other words, it is a mechanism of supply and demand which, under free competition, tends to give force to the law of value.
Such considerations as these can be found frequently in Marx, for instance, in the third volume of Capital, where he tries to explain why there is a tendency for all profits in the various branches of manufacture to approximate, and adjust themselves, to a certain average profit. And they are also used in the first volume, especially in order to show why wages are kept low, near subsistence level, or, what amounts to the same, just above starvation level. It is clear that with wages below this level, the workers would actually starve, and the supply of labour power on the labour market would disappear. But as long as men live, they will reproduce ; and Marx attempts to show in detail (as we shall see in section IV), why the mechanism of capitalist accumulation must create a surplus population, an industrial reserve army. Thus as long as wages are just above starvation level there will always be not only a sufficient but even an excessive supply of labour power on the labour market ; and it is this excessive supply which, according to Marx, prevents the rise of wages : 'The industrial reserve army keeps up its pressure upon the ranks of the employed workers ; .. thus surplus population is the background in front of which there operates the law of supply and demand of labour. Surplus population restricts the range within which this law is permitted to operate to such limits as best suit the capitalist greed for exploitation and domination.'
(b) Now this passage shows that Marx himself realized the necessity of backing up the law of value by a more concrete theory ; a theory which shows, in any particular case, how the laws of supply and demand bring about the effect which has to be explained ; for instance, starvation wages. But if these laws are sufficient to explain these effects, then we do not need the labour theory of value at all, whether or not it may be tenable as a first approximation (which I do not think it is). Furthermore, as Marx realized, the laws of supply and demand are necessary for explaining all those cases in which there is no free competition, and in which his law of value is therefore clearly out of operation ; for instance, where a monopoly can be used to keep prices constantly above their 'values'. Marx considered such cases as exceptions, which is hardly the right view ; but however this may be, the case of monopolies shows not only that the laws of supply and demand are necessary to supplement his law of value, but also that they are more generally applicable.
On the other hand, it is clear that the laws of supply and demand are not only necessary but also sufficient to explain all the phenomena of 'exploitation' which Marx observed - the phenomena, more precisely, of the misery of the workers side by side with the wealth of the entrepreneurs - if we assume, as Marx did, a free labour market as well as a chronically excessive supply of labour. (Marx's theory of this excessive supply will be discussed more fully in section IV below.) As Marx shows, it is clear enough that the workers will be forced, under such circumstances, to work long hours at low wages, in other words, to permit the capitalist to 'appropriate the best part of the fruits of their labour'. And in this trivial argument, which is part of Marx's own, there is no need even to mention 'value'.
Thus the value theory turns out to be a completely redundant part of Marx's theory of exploitation ; and this holds independently of the question whether or not the value theory is true. But the part of Marx's theory of exploitation which remains after the value theory is eliminated is undoubtedly correct, provided we accept the doctrine of surplus population. It is unquestionably true that (in the absence of a redistribution of wealth through the state) the existence of a surplus population must lead to starvation wages, and to provocative differences in the standard of living.
(What is not so clear, and not explained by Marx either, is why the supply of labour should continue to exceed the demand. For if it is so profitable to 'exploit' labour, how is it, then, that the capitalists are not forced, by competition, to try to raise their profits by employing more labour ? In other words, why do they not compete against each other on the labour market, thereby raising the wages to the point where they begin to become no longer sufficiently profitable, so that it is no longer possible to speak of exploitation ? Marx would have answered - see section V, below - 'Because competition forces them to invest more and more capital in machinery, so that they cannot increase that part of their capital which they use for wages'. But this answer is unsatisfactory since even if they spend their capital on machinery, they can do so only by buying labour to build machinery, or by causing others to buy such labour, thus increasing the demand for labour. It appears, for such reasons, that the phenomena of 'exploitation' which Marx observed were due, not, as he believed, to the mechanism of a perfectly competitive market, but to other factors - especially to a mixture of low productivity and imperfectly competitive markets. But a detailed and satisfactory explanation of the phenomena appears still to be missing.)
(c) Before leaving this discussion of the value theory and the part played by it in Marx's analysis, I wish to comment briefly upon another of its aspects. The whole idea - which was not Marx's invention - that there is something behind the prices, an objective or real or true value of which prices are only a 'form of appearance', shows clearly enough the influence of Platonic Idealism with its distinction between a hidden essential or true reality, and an accidental or delusive appearance. Marx, it must be said, made a great effort to destroy this mystical character of objective 'value', but he did not succeed. He tried to be realistic, to accept only something observable and important - labour hours - as the reality which appears in the form of price ; and it cannot be questioned that the number of labour hours necessary for producing a commodity, i.e. its Marxian 'value', is an important thing. And in a way, it surely is a purely verbal problem whether or not we should call these labour hours the 'value' of the commodity. But such a terminology may become most misleading and strangely unrealistic, especially if we assume with Marx that the productivity of labour increases. For it has been pointed out by Marx himself that, with increasing productivity, the value of all commodities decreases, and that an increase is therefore possible in real wages as well as real profits, i.e. in the commodities consumed by workers and by capitalists respectively, together with a decrease in the 'value' of wages and of profits, i.e. in the hours spent on them. Thus wherever we find real progress, such as shorter working hours and a greatly improved standard of living of the workers (quite apart from a higher income in money, even if calculated in gold), then the workers could at the same time bitterly complain that the Marxian 'value', the real essence or substance of their income, is dwindling away, since the labour hours necessary for its production have been reduced. (An analogous complaint might be made by the capitalists.) All this is admitted by Marx himself ; and it shows how misleading the value terminology must be, and how little it represents the real social experience of the workers. In the labour theory of value, the Platonic 'essence' has become entirely divorced from experience...
III
After eliminating Marx's labour theory of value and his theory of surplus value, we can, of course, still retain his analysis (see the end of (a) in section II) of the pressure exerted by the surplus population upon the wages of the employed workers. It can not be denied that, if there is a free labour market and a surplus population, i.e. widespread and chronic unemployment (and there can be no doubt that unemployment played its role in Marx's time and ever since), then wages cannot rise above starvation wages ; and under the same assumption, together with the doctrine of accumulation developed above, Marx, although not justified in proclaiming a law of increasing misery, was right in asserting that, in a world of high profits and increasing wealth, starvation wages and a life of misery might be the permanent lot of the workers.
I think that, even if Marx's analysis was defective, his effort to explain the phenomenon of 'exploitation' deserves the greatest respect. (As mentioned at the end of (b) in the foregoing section, no really satisfactory theory seems to exist even now.) It must be said, of course, that Marx was wrong when he prophesied that the conditions which he observed were to be permanent if not changed by a revolution, and even more when he prophesied that they would get worse. The facts have refuted these prophecies. Moreover, even if we could admit the validity of his analysis for an unrestrained, a non-interventionist system, even then would his prophetic argument be inconclusive. For the tendency towards increasing misery operates, according to Marx's own analysis, only under a system in which the labour market is free - in a perfectly unrestrained capitalism. But once we admit the possibility of trade unions, of collective bargaining, of strikes, then the assumptions of the analysis are no longer applicable, and the whole prophetic argument breaks down. According to Marx's own analysis, we should have to expect that such a development would either be suppressed, or that it would be equivalent to a social revolution. For collective bargaining can oppose capital by establishing a kind of monopoly of labour ; it can prevent the capitalist from using the industrial reserve army for the purpose of keeping wages down ; and in this way it can force the capitalists to content themselves with lower profits. We see here why the cry 'Workers, unite !' was, from a Marxian point of view, indeed the only possible reply to an unrestrained capitalism.
But we see, too, why this cry must open up the whole problem of state interference, and why it is likely to lead to the end of the unrestrained system, and to a new system, interventionism, which may develop in very different directions. For it is almost inevitable that the capitalists will contest the workers' right to unite, maintaining that unions must endanger the freedom of competition on the labour market. Non-interventionism thus faces the problem (it is part of the paradox of freedom) : Which freedom should the state protect ? The freedom of the labour market, or the freedom of the poor to unite ? Whichever decision is taken, it leads to state intervention, to the use of organized political power of the state as well as of unions, in the field of economic conditions. It leads, under all circumstances, to an extension of the economic responsibility of the state, whether or not this responsibility is consciously accepted. And this means that the assumptions on which Marx's analysis is based must disappear.
The derivation of the historical law of increasing misery is thus invalid. All that remains is a moving description of the misery of the workers which prevailed a hundred years ago, and a valiant attempt to explain it with the help of what we may call, with Lenin, Marx's 'economic law of the movement of contemporary society' (that is, of the unrestrained capitalism of a hundred years ago). But in so far as it is meant as an historical prophecy, and in so far as it is used to deduce the 'inevitability' of certain historical developments, the derivation is invalid.
IV
The significance of Marx's analysis rests very largely upon the fact that a surplus population actually existed at his time, and down to our own day (a fact which has hardly received a really satisfactory explanation yet, as I said before). So far, however, we have not yet discussed Marx's argument in support of his contention that it is the mechanism of capitalist production itself that always produces the surplus population which it needs for keeping down the wages of the employed workers. But this theory is not only ingenious and interesting in itself ; it contains at the same time Marx's theory of the trade cycle and of general depression, a theory which clearly bears upon the prophecy of the crash of the capitalist system because of the intolerable misery which it must produce. In order to make as strong a case for Marx's theory as I can, I have altered it slightly (namely, by introducing a distinction between two kinds of machinery, the one for the mere extension, and the other for the intensification, of production). But this alteration need not arouse the suspicion of Marxist readers ; for I am not going to criticize the theory at all.
The amended theory of surplus population and of the trade cycle may be outlined as follows. The accumulation of capital means that the capitalist spends part of his profits on new machinery ; this may also be expressed by saying that only a part of his real profits consists in goods for consumption, while part of it consists in machines. These machines, in turn, may be intended either for the expansion of industry, for new factories, etc., or they may be intended for intensifying production by increasing the productivity of labour in the existing industries. The former kind of machinery makes possible an increase of employment, the latter kind has the effect of making workers superfluous, of 'setting the workers at liberty' as this process was called in Marx's day. (Nowadays it is sometimes called 'technological unemployment'.) Now the mechanism of capitalist production, as envisaged by the amended Marxist theory of the trade cycle, works roughly like this. If we assume, to start with, that for some reason or other there is a general expansion of industry, then a part of the industrial reserve army will be absorbed, the pressure upon the labour market will be relieved, and wages will show a tendency to rise. A period of prosperity begins. But the moment wages rise, certain mechanical improvements which intensify production and which were previously unprofitable because of the low wages may become profitable (even though the cost of such machinery will begin to rise). Thus more machinery will be produced of the kind that 'sets the workers at liberty'. As long as these machines are only in the process of being produced, prosperity continues, or increases. But once the new machines are themselves beginning to produce, the picture changes. (This change is, according to Marx, accentuated by a fall in the rate of profit, to be discussed under (v), below.) Workers will be 'set at liberty', i.e. condemned to starvation. But the disappearance of many consumers must lead to a collapse of the home market. In consequence, great numbers of machines in the expanded factories become idle (the less efficient machinery first), and this leads to a further increase of unemployment and a further collapse of the market. The fact that much machinery now lies idle means that much capital has become worthless, that many capitalists cannot fulfil their obligations ; thus a financial crisis develops, leading to complete stagnation in the production of capital goods, etc. But while the depression (or, as Marx calls it, the 'crisis') takes its course, the conditions are ripening for a recovery. These conditions mainly consist in the growth of the industrial reserve army and the consequent readiness of the workers to accept starvation wages. At very low wages, production becomes profitable even at the low prices of a depressed market ; and once production starts, the capitalist begins again to accumulate, to buy machinery. Since wages are very low, he will find that it is not yet profitable to use new machinery (perhaps invented in the meanwhile) of the type which sets the workers at liberty. At first he will rather buy machinery with the plan of extending production. This leads slowly to an extension of employment and to a recovery of the home market. Prosperity is coming once again. Thus we are back at our starting point. The cycle is closed, and the process can start once more.
This is the amended Marxist theory of unemployment and of the trade cycle. As I have promised, I am not going to criticize it. The theory of trade cycles is a very difficult affair, and we certainly do not yet know enough about it (at least I don't). It is very likely that the theory outlined is incomplete, and, especially, that such aspects as the existence of a monetary system based partly upon credit creation, and the effects of hoarding, are not sufficiently taken into account. But however this may be, the trade cycle is a fact which cannot easily be argued away, and it is one of the greatest of Marx's merits to have emphasized its significance as a social problem. But although all this must be admitted, we may criticize the prophecy which Marx attempts to base upon his theory of the trade cycle. First of all, he asserts that depressions will become increasingly worse, not only in their scope but also in the intensity of the workers' suffering. But he gives no argument to support this (apart, perhaps, from the theory of the fall in the rate of profit, which will be discussed presently). And if we look at actual developments, then we must say that terrible as are the effects and especially the psychological effects of unemployment even in those countries where the workers are now insured against it, there is no doubt that the workers' sufferings were incomparably worse in Marx's day. But this is not my main point.
In Marx's day, nobody ever thought of that technique of state intervention which is now called 'counter cycle policy' ; and, indeed, such a thought must be utterly foreign to an unrestrained capitalist system. (But even before Marx's time, we find the beginning of doubts about, and even of investigation into, the wisdom of the credit policy of the Bank of England during a depression.) Unemployment insurance, however, means intervention, and therefore an increase in the responsibility of the state, and it is likely to lead to experiments in counter cycle policy. I do not maintain that these experiments must necessarily be successful (although I do not believe that the problem may in the end prove not so very difficult, and that Sweden????, in particular, has already shown what can be done in this field [괄호 속의 이 종속절은 I do not believe 때문에 and를 or로 바꾸어야 한다. - 역자 주]). But I wish to assert most emphatically that the belief that it is impossible to abolish unemployment by piecemeal measures is on the same plane of dogmatism as the numerous physical proofs (proffered by men who lived even later than Marx) that the problems of aviation would always remain insoluble. When the Marxists say, as they sometimes do, that Marx has proved the uselessness of a counter cycle policy and of similar piecemeal measures, then they simply do not speak the truth (이 문장에서 truth는 동사 tell과 함께 쓰기 때문에 speak는 tell로 바꾸어 써야 한다. - 역자 주) ; Marx investigated an unrestrained capitalism, and he never dreamt of interventionism. He therefore never investigated the possibility of a systematic interference with the trade cycle, much less did he offer a proof of its impossibility. It is strange to find that the same people who complain of the irresponsibility of the capitalists in the face of human suffering are irresponsible enough to oppose, with dogmatic assertions of this kind, experiments from which we may learn how to relieve human suffering (how to become masters of our social environment, as Marx would have said), and how to control some of the unwanted social repercussions of our actions. But the apologists of Marxism are quite unaware of the fact that in the name of their own vested interests they are fighting against progress ; they do not see that it is the danger of any movement like Marxism that it soon comes to represent all kinds of vested interests, and that there are intellectual investments, as well as material ones.
Another point must be stated here. Marx, as we have seen, believed that unemployment was fundamentally a gadget of the capitalist mechanism with the function of keeping wages low, and of making the exploitation of the employed workers easier ; increasing misery always involved for him increasing misery of the employed workers too ; and this is just the whole point of the plot. But even if we assume that this view was justified in his day, as a prophecy it has been definitely refuted by later experience. The standard of living of employed workers has risen everywhere since Marx's day ; and (as Parkes has emphasized in his criticism of Marx) the real wages of employed workers tend even to increase during a depression (they did so, for example, during the last great depression), owing to a more rapid fall in prices than in wages. This is a glaring refutation of Marx, especially since it proves that the main burden of unemployment insurance was borne not by the workers, but by the entrepreneurs, who therefore lost directly through unemployment, instead of profiting indirectly, as in Marx's scheme.
V
None of the Marxist theories so far discussed do even seriously attempt to prove the point which is the most decisive one within the first step ; namely, that accumulation keeps the capitalist under a strong economic pressure which he is forced, on pain of his own destruction, to pass on to the workers ; so that capitalism can only be destroyed, but not reformed. An attempt to prove this point is contained in that theory of Marx's which aims at establishing the law that the rate of profit tends to fall.
What Marx calls the rate of profit corresponds to the rate of interest ; it is the percentage of the yearly average of capitalist profit over the whole invested capital. This rate, Marx says, tends to fall owing to the rapid growth of capital investments ; for these must accumulate more quickly than profits can rise.
The argument by which Marx attempts to prove this is again rather ingenious. Capitalist competition, as we have seen, forces the capitalists to make investments that increase the productivity of labour. Marx even admitted that by this increase in productivity they render a great service to mankind : 'It is one of the civilizing aspects of capitalism that it exacts surplus value in a manner and under circumstances which are more favourable than previous forms (such as slavery, serfdom, etc.) to the development of the productivity powers, as well as to the social conditions for a reconstruction of society on a higher plane. For this, it even creates the elements ; .. for the quantity of useful commodities produced in any given span of time depends upon the productivity of labour.' But this service to mankind is not only rendered without any intention by the capitalists ; the action to which they are forced by competition also runs counter to their own interests, for the following reason.
The capital of any industrialist can be divided into two parts. one is invested in land, machinery, raw materials, etc. The other is used for wages. Marx calls the first part 'constant capital' and the second 'variable capital' ; but since I consider this terminology rather misleading, I shall call the two parts 'immobilized capital' and 'wage capital'. The capitalist, according to Marx, can profit only by exploiting the workers ; in other words, by using his wage capital. Immobilized capital is a kind of dead weight which he is forced by competition to carry on with, and even to increase continually. This increase is not, however, accompanied by a corresponding increase in his profits ; only an extension of the wage capital could have this wholesome effect. But the general tendency towards an increase in productivity means that the material part of capital increases relatively to its wage part. Therefore, the total capital increases also, and without a compensating increase in profits ; that is to say, the rate of profit must fall.
Now this argument has been often questioned ; indeed, it was attacked, by implication, long before Marx. In spite of these attacks, I believe that there may be something in Marx's argument ; especially if we take it together with his theory of the trade cycle. (I shall return to this point briefly in the next chapter.) But what I wish to question here is the bearing of this argument upon the theory of increasing misery.
Marx sees this connection as follows. If the rate of profit tends to fall, then the capitalist is faced with destruction. All he can do is to attempt to 'take it out of the workers', i.e. to increase exploitation. This he can do by extending working hours ; speeding up work ' lowering wages ; raising the workers' cost of living (inflation) ; exploiting more women and children. The inner contradictions of capitalism, based on the fact that competition and profit-making are in conflict, develop here into a climax. First, they force the capitalist to accumulate and to increase productivity, and so reduce the rate of profit. Next, they force him to increase exploitation to an intolerable degree, and with it the tension between the classes. Thus compromise is impossible. The contradictions cannot be removed. They must finally seal the fate of capitalism.
This is the main argument. But can it be conclusive ? We must remember that increased productivity is the very basis of capitalist exploitation ; only if the worker can produce much more than he needs for himself and his family can the capitalist appropriate surplus labour. Increased productivity, in Marx's terminology, means increased surplus labour ; it means both an increased number of hours available to the capitalist, and on top of this, an increased number of commodities produced per hour. It remains, in other words, a greatly increased profit. This is admitted by Marx. He does not hold that profits are dwindling ; he only holds that the total capital increases much more quickly than the profits, so that the rate of profit falls.
But if this is so, there is no reason why the capitalist should labour under an economic pressure which he is forced to pass on to the workers, whether he likes it or not. It is true, probably, that he does not like to see a fall in his rate of profit. But as long as his income does not fall, but, on the contrary, rises, there is no real danger. The situation for a successful average capitalist will be this : he sees his income rise quickly, and his capital still more quickly ; that is to say, his savings rise more quickly than the part of his income which he consumes. I do not think that this is a situation which must force him to desperate measures, or which makes a compromise with the workers impossible. on the contrary, it seems to me quite intolerable.
It is true, of course, that the situation contains an element of danger. Those capitalists who speculate on the assumption of a constant or of a rising rate of profit may get into trouble ; and things such as these may indeed contribute to the trade cycle, accentuating the depression. But this has little to do with the sweeping consequences which Marx prophesied.
This concludes my analysis of the third and last argument, propounded by Marx in order to prove the law of increasing misery.
VI
In order to show how completely wrong Marx was in his prophecies, and at the same time how justified he was in his glowing protest against the hell of an unrestrained capitalism as well as in his demand, 'Workers, unite !', I shall quote a few passages from the chapter of Capital in which he discusses the 'General Law of Capitalist Accumulation'. 'In factories.. young male workers are used up in masses before they reach the age of manhood ; after that, only a very small proportion remains useful for industry, so that they are constantly dismissed in large numbers. They then form part of the floating surplus population which grows with the growth of industry.. Labour power is so quickly used up by capital that the middle-aged worker is usually a worn-out man.. Dr. Lee, medical office of health, declared not long ago "that the average age at death of the Manchester upper middle class was 38, while the average age at death of the labouring class was 17 ; while at Liverpool those figures were represented as 35 against 15.." .. The exploitation of working-class children puts a premium upon their production.. The higher the productivity of labour.. the more precarious become the worker's conditions of existence... Within the capitalist system, all the methods for raising the social productivity of labour.. are transformed into means of domination and of exploitation ; they mutilate the worker into a fragment of a human being, they degrade him to a mere cog in the machine, they make work a torture,.. and drag his wife and children beneath the wheels of the capitalist Juggernaut.. It follows that to the degree in which capital accumulates the worker's condition must deteriorate, whatever his payment may be .. the greater the social wealth, the amount of capital at work, the extent and energy of its growth,.. the larger is the surplus population... The size of the industrial reserve army grows as the power of wealth grows. But.. the larger the industrial reserve army, the larger are the masses of the workers whose misery is relieved only by an increase in the agony of toil ; and .. the larger is the number of those who are officially recognized as paupers. This is the absolute and general law of capitalist accumulation... The accumulation of wealth at the one pole of society involves at the same time an accumulation of misery, of the agony of toil, of slavery, ignorance, brutalization, and of moral degradation, at the opposite pole ..'
Marx's terrible picture of the economy of his time is only too true. But his law that misery must increase together with accumulation does not hold. Means of production have accumulated and the productivity of labour has increased since his day to an extent which even he would hardly have thought possible. But child labour, working hours, the agony of toil, and the precariousness of the worker's existence, have not increased ; they have declined. I do not say that this process must continue. There is no law of progress, and everything will depend on ourselves. But the actual situation is briefly and fairly summed up by Parkes in one sentence : 'Low wages, long hours, and child labour have been characteristic of capitalism not, as Marx predicted, in its old age, but in its infancy.'
Unrestrained capitalism is gone. Since the day of Marx, democratic interventionism has made immense advances, and the improved productivity of labour - a consequence of the accumulation of capital - has made it possible virtually to stamp out misery. This shows that much has been achieved, in spite of undoubtedly grave mistakes, and it should encourage us to believe that more can be done. For much remains to be done and to be undone. Democratic interventionism can only make it possible. It rests with us to do it.
I have no illusions concerning the force of my arguments. Experience shows that Marx's prophecies were false. But experience can always be explained away. And, indeed, Marx himself, and Engels, began with the elaboration of an auxiliary hypothesis designed to explain why the law of increasing misery does not work as they expected it to do. According to this hypothesis, the tendency towards a falling rate of profit, and with it, increasing misery, is counteracted by the effects of colonial exploitation, or, as it is usually called, by 'modern imperialism'. Colonial exploitation, according to this theory, is a method of passing on economic pressure to the colonial proletariat, a group which, economically as well as politically, is weaker still than the industrial proletariat at home. 'Capital invested in colonies', Marx writes, 'may yield a higher rate of profit for the simple reason that the rate of profit is higher there where capitalist development is still in a backward stage, and for the added reason that slaves, coolies, etc., permit a better exploitation of labour. I can see no reason why these higher rates of profit.., when sent home, should not enter there as elements into the average rate of profit, and, in proportion, contribute to keeping it up.' (It is worth mentioning that the main idea behind this theory of 'modern' imperialism can be traced back for more than 160 years, to Adam Smith, who said of colonial trade that it 'has necessarily contributed to keep up the rate of profit'.) Engels went one step further than Marx in his development of the theory. Forced to admit that in Britain the prevailing tendency was not towards an increase in misery but rather towards a considerable improvement, he hints that this may be due to the fact that Britain 'is exploiting the whole world' ; and he scornfully assails 'the British working class' which, instead of suffering as he expected them to do, 'is actually becoming more and more bourgeois'. And he continues : 'It seems that this most bourgeois of all nations wants to bring matters to such a pass as to have a bourgeois aristocracy and a bourgeois proletariat side by side with the bourgeoisie.' Now this change of front on Engels' part is at least as remarkable as that other one of his which I mentioned in the last chapter ; and like that, it was made under the influence of a social development which turned out to be one of decreasing misery. Marx blamed capitalism for 'proletarianizing the middle class and the lower bourgeoisie', and for reducing the workers to pauperism. Engels now blames the system - it is still blamed - for making bourgeois out of workers. But the nicest touch in Engels' complaint is the indignation that makes him call the British who behave so inconsiderately as to falsify Marxist prophecies 'this most bourgeois of all nations'. According to Marxist doctrine, we should expect from the 'most bourgeois of all nations' a development of misery and class tension to an intolerable degree ; instead, we hear that the opposite takes place. But the good Marxist's hair rises when he hears of the incredible wickedness of a capitalist system that transforms good proletarians into bad bourgeois; quite forgetting that Marx showed that the wickedness of the system consisted solely in the fact that it was working the other way round. Thus we read in Lenin's analysis of the evil causes and dreadful effects of modern British imperialism : 'Causes : (1) exploitation of the whole world by this country ; (2) its monopolistic position in the world market ; (3) its colonial monopoly. Effects : (1) bourgeoisification of a part of the British proletariat ; (2) a part of the proletariat permits itself to be led by people who are bought by the bourgeoisie, or who are at least paid by it.' Having given such a pretty Marxist name, 'the bourgeoisification of the proletariat', to a hateful tendency - hateful mainly because it did not fit in with the way the world should go according to Marx - Lenin apparently believes that it has become a Marxist tendency. Marx himself held that the more quickly the whole world could go through the necessary historical period of capitalist industrialization, the better, and he was therefore inclined to support imperialist developments. But Lenin came to a very different conclusion. Since Britain's possession of colonies was the reason why the workers at home followed 'leaders bought by the bourgeoisie' instead of the Communists, he saw in the colonial empire a potential trigger or fuse. A revolution there would make the law of increasing misery operative at home, and a revolution at home would follow. Thus the colonies were the place from which the fire would spread...
I do not believe that the auxiliary hypothesis whose history I have sketched can save the law of increasing misery ; for this hypothesis is itself refuted by experience. There are countries, for instance the Scandinavian democracies, Czechoslovakia, Canada, Australia, New Zealand, to say nothing of the United States, in which a democratic interventionism secured to the workers a high standard of living, in spite of the fact that colonial exploitation had no influence there, or was at any rate far too unimportant to support the hypothesis. Furthermore, if we compare certain countries that 'exploit' colonies, like Holland and Belgium, with Denmark, Sweden, Norway, and Czechoslovakia which do not 'exploit' colonies, we do not find that the industrial workers profited from the possession of colonies, for the situation of the working classes in all those countries was strikingly similar. Furthermore, although the misery imposed upon the natives through colonization is one of the darkest chapters in the history of civilization, it cannot be asserted that their misery has tended to increase since the days of Marx. The exact opposite is the case ; things have greatly improved. And yet, increasing misery would have to be very noticeable there if the auxiliary hypothesis and the original theory were both correct.
VII
As I did with the second and third steps in the previous chapters, I shall now illustrate the first step of Marx's prophetic argument by showing something of its practical influence upon the tactics of Marxist parties.
The Social Democrats, under the pressure of obvious facts, tacitly dropped the theory that the intensity of misery increases ; but their whole tactics remained based upon the assumption that the law of the increasing extent of misery was valid, that is to say, that the numerical strength of the industrial proletariat must continue to increase. This is why they based their policy exclusively upon representing the interests of the industrial workers, at the same time firmly believing that they were representing, or would very soon represent, 'the great majority of the population'. They never doubted the assertion of the Manifesto that 'All previous historical movements were movements of minorities... The proletarian movement is the self-conscious, independent movement of the immense majority, in the interest of the immense majority.' They waited confidently, therefore, for the day when the class consciousness and class assuredness of the industrial workers would win them the majority in the elections. 'There can be no doubt as to who will be victorious in the end - the few exploiters, or the immense majority, the workers.' They did not see that the industrial workers nowhere formed a majority, much less an 'immense majority', and that statistics no longer showed any tendency towards an increase in their numbers (이 문장에서 접속사 and는 or로 바꾸어 양자부정을 만들어야 한다. 원문의 오류로 생각된다. - 역자 주). They did not understand that the existence of a democratic workers' party was fully justified only as long as such a party was prepared to compromise or even to co-operate with other parties, for instance with some party representing the peasants, or the middle classes. And they did not see that, if they wanted to rule the state solely as the representatives of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they would have to change their whole policy and cease to represent mainly or exclusively the industrial workers. Of course, it is no substitute for this change of policy to assert naively that the proletarian policy as such may simply bring (as Marx said) 'the rural producers under the intellectual leadership of the central towns of their districts, there securing to them, in the industrial worker, the natural trustee of their interests...'
The position of the Communist parties was different. They strictly adhered to the theory of increasing misery, believing in an increase not only of its extent but also of its intensity, once the causes of the temporary bourgeoisification of the workers were removed. This belief contributed considerably to what Marx would have called 'the inner contradictions' of their policy.
The tactical situation seems simple enough. Thanks to Marx's prophecy, the Communists knew for certain that misery must soon increase. They also knew that the party could not win the confidence of the workers without fighting for them, and with them, for an improvement of their lot. These two fundamental assumptions clearly determined the principles of their general tactics. Make the workers demand their share, back them up in every particular episode in their unceasing fight for bread and shelter. Fight with them tenaciously for the fulfilment of their practical demands, whether economic or political. Thus you will win their confidence. At the same time, the workers will learn that it is impossible for them to better their lot by these petty fights, and that nothing short of a wholesale revolution can bring about an improvement. For all these petty fights are bound to be unsuccessful ; we know from Marx that the capitalists simply cannot continue to compromise and that, ultimately, misery must increase. Accordingly, the only result - but a valuable one - of the workers' daily fight against their oppressors is an increase in their class consciousness ; it is that feeling of unity which can be won only in battle, together with a desperate knowledge that only revolution can help them in their misery. When this stage is reached, then the hour has struck for the final show-down.
This is the theory and the Communists acted accordingly. At first they support the workers in their fight to improve their lot. But, contrary to all expectations and prophecies, the fight is successful. The demands are granted. Obviously, the reason is that they had been too modest. Therefore one must demand more. But the demands are granted again. And as misery decreases, the workers become less embittered, more ready to bargain for wages than to plot for revolution.
Now the Communists find that their policy must be reversed. Something must be done to bring the law of increasing misery into operation. For instance, colonial unrest must be stirred up (even where there is no chance of a successful revolution), and with the general purpose of counteracting the bourgeoisification of the workers, a policy fomenting catastrophes of all sorts must be adopted. But this new policy destroys the confidence of workers. The Communists lose their members, with the exception of those who are inexperienced in real political fights. They lose exactly those whom they describe as the 'vanguard of the working class' ; their tacitly implied principle : 'The worse things are, the better they are, since misery must precipitate revolution', makes the workers suspicious - the better the application of this principle, the worse are the suspicions entertained by the workers. For they are realists ; to obtain their confidence, one must work to improve their lot.
Thus the policy must be reversed again ; one is forced to fight for the immediate betterment of the workers' lot and to hope at the same time for the opposite.
With this, the 'inner contradictions' of the theory produce the last stage of confusion. It is the stage when it is hard to know who is the traitor, since treachery may be faithfulness and faithfulness treachery. It is the stage when those who followed the party not simply because it appeared to them (rightly, I am afraid) as the only vigorous movement with humanitarian ends, but especially because it was a movement based on a scientific theory, must either leave it, or sacrifice their intellectual integrity ; for they must now learn to believe blindly in some authority. Unfortunately, they must become mystics - hostile to reasonable argument.
It seems that it is not only capitalism which is labouring under inner contradictions that threaten to bring about its downfall...
CHAPTER 21 : AN EVALUATION OF THE
PROPHECY
The argument underlying Marx's historical prophecy are invalid. His ingenious attempt to draw prophetic conclusions from observations of contemporary economic tendencies failed. The reason for this failure does not lie in any insufficiency of the empirical basis of the argument. Marx's sociological and economic analyses of contemporary society may have been somewhat one-sided, but in spite of their bias, they were excellent in so far as they were descriptive. The reason for his failure as a prophet lies entirely in the poverty of historicism as such, in the simple fact that even if we observe to-day what appears to be a historical tendency or trend, we cannot know whether it will have the same appearance to-morrow.
We must admit that Marx saw many things in the right light. If we consider only his prophecy that the system of unrestrained capitalism, as he knew it, was not going to last much longer, and that its apologists who thought it would last forever were wrong, then we must say that he was right. He was right, too, in holding that it was largely the 'class struggle', i.e. the association of the workers, that was going to bring about its transformation into a new economic system. But we must not go so far as to say that Marx predicted that new system, interventionism, under another name, socialism. The truth is that he had no inkling of what was lying ahead. What he called 'socialism' was very dissimilar from any form of interventionism, even from the Russian form ; for he strongly believed that the impending development would diminish the influence, political as well as economic, of the state, while interventionism has increased it everywhere.
Since I am criticizing Marx and, to some extent, praising democratic piecemeal interventionism (especially of the institutional kind explained in section VII to chapter 17), I wish to make it clear that I feel much sympathy with Marx's hope for a decrease in state influence. It is undoubtedly the greatest danger of interventionism - especially of any direct interventionism - that it leads to an increase in state power and in bureaucracy. Most interventionists do not mind this, or they close their eyes to it, which increases the danger. But I believe that once the danger is faced squarely, it should be possible to master it. For this is again merely problem of social technology and of social piecemeal engineering. But it is important to tackle it early, for it constitutes a danger to democracy. We must plan for freedom, and not only for security, if for no other reason than that only freedom can make security secure.
But let us return to Marx's prophecy. one of the historical tendencies which he claimed to have discovered seems to be of a more persistent character than the others ; I mean the tendency towards the accumulation of the means of production, and especially towards increasing the productivity of labour. It seems indeed that this tendency will continue for some time, provided, of course, that we continue to keep civilization going. But Marx did not merely recognize this tendency and its 'civilizing aspects', he also saw its inherent dangers. More especially, he was one of the first (although he had some predecessors, for instance, Fourier) to emphasize the connection between 'the development of the productive forces' in which he saw 'the historical mission and justification of capital', and that most destructive phenomenon of the credit system - a system which seems to have encouraged the rapid rise of industrialization - the trade cycle.
Marx's own theory of the trade cycle (discussed in section IV of the last chapter) may perhaps be paraphrased as follows : even if it is true that the inherent laws of the free market produce a tendency towards full employment, it is also true that every single approach towards full employment, i.e. towards a shortage of labour, stimulates inventors and investors to create and to introduce new labour-saving machinery, thereby giving rise (first to short boom and then) to a new wave of unemployment and depression. Whether there is any truth in this theory, and how much, I do not know. As I said in the last chapter, the theory of the trade cycle is a rather difficult subject, and one upon which I do not intend to embark. But since Marx's contention that the increase of productivity is one of the factors contributing to the trade cycle seems to me important, I may be permitted to develop some rather obvious considerations in its support.
The following list of possible developments is, of course, quite incomplete ; but it is constructed in such a way that whenever the productivity of labour increases, then at least one of the following developments, and possibly many at a time, must commence and must proceed in a degree sufficient to balance the increase in productivity.
(A) Investments increase, that is to say, such capital goods are produced as strengthen the power for producing other goods. (Since this leads to a further increase of productivity, it cannot alone balance its effects for any length of time.)
(B) Consumption increases - the standard of living rises :
(a) that of the whole population ;
(b) that of certain parts of it (for instance, of a certain
class).
(C) Labour time decreases.
(a) the daily labour hours are reduced ;
(b) the number of people who are not industrial workers
increases, and especially
(b1) the number of scientists, physicians, artists,
business men, etc., increases.
........................................................................................................
(b2) the number of unemployed workers increases.
(D) The quantity of goods produced but not consumed increases.
(a) consumption goods are destroyed ;
(b) capital goods are not used (factories are idle) ;
(c) goods, other than consumption goods and goods of
the type (A), are produced, for instance, arms ;
(d) labour is used to destroy capital goods (and thereby
to reduce productivity).
I have listed these developments - the list could, of course, be elaborated - in such a way that down to the dotted line, i.e. down to (C, b1), the developments as such are generally recognized as desirable, whilst from (C, b2) onward come those which are generally taken to be undesirable ; they indicate depression, the manufacture of armaments, and war.
Now it is clear that since (A) alone cannot restore the balance for good, although it may be a very important factor, one or several of the other developments must set in. It seems, further, reasonable to assume that if no institutions exist which guarantee that the desirable developments proceed in a degree sufficient to balance the increased productivity, some of the undesirable developments will begin. But all of these, with the possible exception of armament production, are of such a character that they are likely to lead to a sharp reduction of (A), which must severely aggravate the situation.
I do not think that such considerations as the above are able to 'explain' armament or war in any sense of the word, although they may explain the success of totalitarian states in fighting unemployment. Nor do I think that they are able to 'explain' the trade cycle, although they may perhaps contribute something to such an explanation, in which problems of credit and money are likely to play a very important part ; for the reduction of (A), for instance, may be equivalent to the hoarding of such savings as would otherwise probably be invested - a much-discussed and important factor. And it is not quite impossible that the Marxist law of the falling rate of profit (if this law is at all tenable) may also give a hint for the explanation of hoarding ; for assuming that a period of quick accumulation may lead to such a fall, this might discourage investments and encourage hoarding, and reduce (A).
But all this would not be a theory of the trade cycle. Such a theory would have a different task. Its main task would be to explain why the institution of the free market, as such a very efficient instrument for equalizing supply and demand, does not suffice to prevent depression, i.e. overproduction or under-consumption. In other words, we should have to show that the buying and selling on the market produces, as one of the unwanted social repercussion of our actions, the trade cycle. The Marxist theory of the trade cycle has precisely this aim in view ; and the considerations sketched here regarding the effects of a general tendency towards increasing productivity can at the best only supplement this theory.
I am not going to pronounce judgement on the merits of all these speculations upon the trade cycle. But it seems to me quite clear that they are most valuable even if in the light of modern theories they should by now be entirely superseded. The mere fact that Marx treated this problem extensively is greatly to his credit. This much at least of his prophecy has come true, for the time being : the tendency towards an increase of productivity continues : the trade cycle also continues, and its continuation is likely to lead to interventionist counter-measures and therefore to a further restriction of the free market system ; a development which conforms to Marx's prophecy that the trade cycle would be one of the factors that must bring about the downfall of the unrestrained system of capitalism. And to this, we must add that other piece of successful prophecy, namely, that the association of the workers would be another important factor in this process.
In view of this list of important and largely successful prophecies, is it justifiable to speak of the poverty of historicism ? If Marx's historical prophecies have been even partially successful, then we should certainly not dismiss his method lightly. But a closer view of Marx's successes shows that it was nowhere his historicist method which led him to success, but always the methods of institutional analysis. Thus it is not an historicist but a typical institutional analysis which leads to the conclusion that the capitalist is forced by competition to increase productivity. It is an institutional analysis on which Marx bases his theory of the trade cycle and of surplus population. And even the theory of class struggle is institutional ; it is part of the mechanism by which the distribution of wealth as well as of power is controlled, a mechanism which makes possible collective bargaining in the widest sense. Nowhere in these analyses do the typical historicist 'laws of historical development', or stages, or periods, or tendencies, play any part whatever. on the other hand, none of Marx's more ambitious historicist conclusions, none of his 'inexorable laws of development' and his 'stages of history which cannot be leaped over', has ever turned out to be a successful prediction. Marx was successful only in so far as he was analysing institutions and their functions. And the opposite is true also : none of his more ambitious and sweeping historical prophecies falls within the scope of institutional analysis. Wherever the attempt is made to back them up by such an analysis, the derivation is invalid. Indeed, compared with Marx's own high standards, the more sweeping prophecies are on a rather low intellectual level. They contain not only a lot of wishful thinking, they are also lacking in political imagination. Roughly speaking, Marx shared the belief of the progressive industrialist, of the 'bourgeois' of his time : the belief in a law of progress. But this naive historicist optimism, of Hegel and Comte, of Marx and Mill, is no less superstitious than a pessimistic historicism like that of Plato and Spengler. And it is a very bad outfit for a prophet, since it must bridle historical imagination. Indeed, it is necessary to recognize as one of the principles of any unprejudiced view of politics that everything is possible in human affairs ; and more particularly that no conceivable development can be excluded on the grounds that it may violate the so-called tendency of human progress, or any other of the alleged laws of 'human nature'. 'The fact of progress', writes H. A. L. Fisher. 'is written plain and large on the page of history ; but progress is not a law of nature. The ground gained by one generation may be lost by the next.'
In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 that everything is possible it may be worth while to point out that Marx's prophecies might well have come true. A faith like the progressivist optimism of the nineteenth century can be a powerful political force ; it can help to bring about what it has predicted. Thus even a correct prediction must not be accepted too readily as a corroboration of a theory, and of its scientific character. It may rather be a consequence of its religious character and a proof of the force of the religious faith which it has been able to inspire in men. And in Marxism more particularly the religious element is unmistakable. In the hour of their deepest misery and degradation, Marx's prophecy gave the workers an inspiring belief in their mission, and in the great future which their movement was to prepare for the whole mankind. Looking back at the course of events from 1864 to 1930, I think that but for the somewhat accidental fact that Marx discouraged research in social technology, European affairs might possibly have developed, under the influence of this prophetic religion, towards a socialism of a non-collective type. A thorough preparation for social engineering, for planning for freedom, on the part of the Russian Marxists as well as those in Central Europe, might possibly have led to an unmistakable success, convincing to all friends of the open society. But this would not have been a corroboration of a scientific prophecy. It would have been the result of a religious movement - the result of the faith in humanitarianism, combined with a critical use of our reason for the purpose of changing the world.
But things developed differently. The prophetic element in Marx's creed was dominant in the minds of his followers. It swept everything else aside, banishing the power of cool and critical judgement and destroying the belief that by the use of reason we may change the world. All that remained of Marx's teaching was the oracular philosophy of Hegel, which in its Marxist trappings threatens to paralyse the struggle for the open society.
-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Vol. 2 Hegel and Marx", Karl R. Popp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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