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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그 적들 제 22장 역사주의의 도덕론

이윤진이카루스 2010. 7. 31. 19:01

마르크스의 윤리

 

 

 

 

22장 : 역사주의의 도덕론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스스로 세웠던 임무는 사회 발전에 관한 철칙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회 기술자에게 유용할 경제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공정한 가격, 부(富)의 균등분배, 안전, 생산의 합리적인 기획,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유와 같은 그런 사회적 목적 실현을 허용할 경제적 상황을 분석하는 것도 아니요, 이 목적을 분석하고 명시하려는 시도도 아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사회주의적 목적을 도덕적으로 합리화하려는 시도뿐만 아니라 유토피아적 기술(技術: technology [유토피아적 기술이란 유토피아를 만들려는 사회학적 기술을 의미한다. - 역자 주])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할지라도, 그의 글에는, 암시적으로, 윤리적 이론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을 그는 주로 사회제도에 대한 도덕적 평가로써 표현했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은 도덕적 비판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완전한 ‘형식적’ 정의(正義)와 고결함과 결합된 그 체제 속에 내재한 잔인한 불의(不義) 때문에 그 체제는 비난을 받는다. 그 체제는, 착취자로 하여금 피착취자들을 노예화하도록 강요함으로써 그들의 양쪽 자유 모두를 빼앗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 마르크스는 부(富)와 싸우지 않았고, 가난을 찬양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를 증오했는데, 자본주의가 부(富)를 축적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소수 독점적 특성 때문이었다 ; 이 체제 속에서 부(富)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권력이라는 의미에서 정치권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는 자본주의를 증오했다. 노동력은 상품이 되어버린다 ; 그것은 사람이 시장에서 자신을 팔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그 체제가 노예제도를 닮았기 때문에 그 체제를 증오했다.

사회제도의 도덕적인 면을 그렇게 강조함으로써 마르크스는 우리의 행동이 낳는 더 먼 사회적 파장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강조했다 ;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부당한 제도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도움을 줄 그런 행동이 낳는.

그러나 자본론이, 실제로, 주로 사회적 윤리에 관한 논문이라 할지라도, 이 윤리적 개념들은 그렇게 제시된 적이 없다. 암시가 매우 명징하기 때문에 그 윤리적 개념들은 함축적으로만 표현되고, 그 이유로 해서 유효성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내가 믿는 바, 마르크스는 설교하는 것을 혐오했기 때문에 명시적인 도덕론을 피했다. 보통 물을 가르치고 술을 마시는 도덕주의자들을 깊이 불신하여, 마르크스는 자신의 윤리적 확신을 명시적으로 공식화하기를 주저했다. 박애(humanity)와 품위(decency)는 그에게 토론이 필요 없는 문제, 당연한 문제였다. (이 분야에서도 그는 낙천주의자였다.) 그는 도덕주의자들을 자신이 비도덕적이라고 느꼈던 사회질서에 대한 아첨꾼으로 보았기 때문에 공격했다 ; 그들이 지닌 자기만족 때문에, 자유를 파괴했던 사회체제 내부에 당시 존재하던 형식적 자유와 자유를 동일시했기 때문에 그는 자유주의 칭송자들을 공격했다. 그리하여, 함축적으로, 그는 자유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인정했다 ; 그리고 철학자로서 전체주의를 향한 자신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그는 틀림없이 집단주의자가 아니었는데 그 까닭은 국가가 ‘소멸할 것’이라고 희망했기 때문이다. 내가 믿기에, 마르크스의 신념은 근본적으로 열린사회에 대한 신념이었다.

기독교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는 이 신념과, 그리고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한 위선적 옹호는 그의 시대에는 공식적 기독교의 특징이었다는 사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의 견해는 기독교 윤리의 위대한 개혁가로 자신의 시대의 공식적 기독교 도덕을 반[反]기독교적이고 반[反]인륜적인 위선으로 폭로했던 동시대인인 키에르케고르의 견해와 다르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기독교를 전형적으로 대표했던 사람은 인류의 복지를 원하는 사람에 의한 빈민법에 대한 논고의 저자인 고(高)교회파 신부인 J. 타운센드(Townsend)로 마르크스가 폭로했던 착취를 매우 조잡스럽게 옹호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찬사에서 타운센드는 이렇게 시작한다, ‘굶주림은 평온하고 조용하며, 용서받지 못한 압력일 뿐만 아니라, 근면과 노동의 가장 자연스러운 동기로서, 굶주림은 가장 강력한 노력을 불러일으킨다.’ 타운센드의 ‘기독교적’ 세계 질서 속에서는, 모든 것이 (마르크스가 관찰하는 바와 같이) 굶주림을 노동계급 가운데서 영구적으로 만드는 것에 달려있다 ; 그래서 타운센드는 이것이 진정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원리의 신성한 목적이라고 믿는다 ; 그 까닭은 그가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 ‘가난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여 공동체 안에서 가장 노예적이고 가장 더럽고 가장 비천한 직을 채울 어떤 사람들이 항상 있을 것은 자연법칙으로 보인다. 인간 행복의 재고(在庫)는, 보다 연약한 사람들이 자신의 기질에 알맞은 직업을 방해 받지 않고 추구하는 자유에 남겨진 반면, 그리하여 많이 증가한다.’ 마르크스가 이 말 때문에 그를 지칭하는 바와 같이, 그 ‘연약한 사제(司祭) 아첨꾼’은 빈민법이 굶주린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하느님과 자연이 세상에 설립한 체제의 조화와 미(美), 그리고 균형과 질서를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고 부연한다.

이런 종류의 ‘기독교’가 오늘날 지구 대부분의 표면으로부터 사라졌다면, 그것은 마르크스가 낳은 도덕적 개혁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다. 나는 영국에서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향하여 지녔던 태도에 대한 개혁이 마르크스가 영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오래 전에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그러나 마르크스는 특히 유럽대륙에서 이 상황전개에 영향을 미쳤고, 사회주의의 발흥이 영국에서 또한 그 상황전개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기독교에 대한 마르크스의 영향력은 아마도 루터가 로마 교회에 끼친 영향력과 비교될 것이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도전이었으며, 두 사람의 영향력은 그들의 적의 진영에서 반(反)개혁을, 그들의 적들이 지녔던 윤리적 기준에 대한 수정과 재평가를, 초래했다. 기독교는, 겨우 30년 전에 추구하던 길과 다른 길로 오늘날 들어섰다면, 마르크스의 영향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자신의 저서 심판의 책(Book of the Judge)에서 자신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던 키에르케고르의 목소리에 교회가 귀를 기울인 것은 심지어 부분적으로 마르크스의 영향력 때문이다 : ‘자신의 임무가 교정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것인 사람은, 정확하고 깊이, 현존하는 질서의 부패한 부분을 연구하여 - 그 다음에, 가능한 한 가장 편파적인 방법으로, 그 질서의 정반대를 강조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하기 때문에 명백하게 영리한 사람은 교정적 아이디어에 반대하여 쉽게 편파성에 반대하는 문제를 제기할 것이고 - 그는 일반인들로 하여금 이것이 전체 진실이었다고 믿도록 만들 것이다’라고 부연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초기 마르크스주의가, 윤리적 엄격함 및 말만 하는 대신에 행동을 강조함과 함께, 아마도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교정적인 아이디어였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가 지닌 엄청난 도덕적 영향력을 설명한다.

사람은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요구는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 몇 편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 견해는, 그의 행동주의로서 묘사될지도 모르는데, 그의 저서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논문(Theses on Feuerbach) 마지막에서 매우 분명하게 공식화된다 : ‘철학자들은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왔을 따름이다 ; 그러나 요점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행동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많은 다른 구절들이 있다 ; 특히 마르크스가 사회주의를, 그 속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의 사회적 환경의 주인’이 될 왕국인 ‘자유의 왕국’으로, 언급하는 많은 다른 구절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그 속에서 현재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비이성적인 힘으로부터 우리가 대체로 자유로운,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의 이성이 능동적으로 인간사를 통제할 수 있는, 기간으로 상상했다. 이 모든 것으로써, 그리고 마르크스의 일반적인 도덕적 및 정서적 견해로 판단하여, ‘우리가 우리 운명의 창조자가 될 것인가, 혹은 그 운명의 예언자가 되는 데 우리가 만족할 것인가 ?’라는 선택에 직면하면 그는 단지 예언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기를 결심했었으리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마르크스의 이 강력한 ‘행동주의적’ 경향은 그의 역사주의에 의하여 무력화된다. 역사주의 영향 하에서, 그는 주로 예언자가 되었다. 그는, 적어도 자본주의 하에서, 우리가 ‘냉엄한 법칙’에 복종해야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 혁명의 자연적인 단계들’의 ‘산고(産苦)를 줄이거나 경감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에 복종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마르크스의 행동주의와 그의 역사주의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있으며, 우리는 역사가 지니는 순전히 비이성적인 힘에 복종해야 한다는 그의 교설에 의하여 그 격차는 한층 더 커진다. 그 까닭은 그가 미래에 대비하여 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우리의 이성을 이용하려는 어떤 시도도 유토피아적이라고 비난해서 보다 이성적인 세상을 구현하는데 이성이 어떤 역할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관점은 옹호될 수 없고, 틀림없이 신비주의를 초래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내가 교량이 온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라도, 이 격차에 교량을 놓는 이론적 가능성이 있는 듯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교량을, 그 교량에 관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글에서 발견될 겨우 개략적 계획만 있는데, 나는 그들의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윤리적 개념이 어떤 의미에서도 궁극적이고 스스로 정당하다고 인정하기를 꺼리며,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인도주의적 목적을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나 반영으로서 설명하는 이론에 비추어 고려하기를 선호했다. 그들의 이론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사회개혁가나, 혁명가가 자신이 ‘불의(不義)’에 대한 증오로써, ‘정의(正義)’에 대한 사랑으로써, 고무된다고 믿는다면, 그는 대체로 환상의 희생자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예를 들어 구질서 옹호자들처럼). 그렇지 않으면, 더 정확하게 표현하여, ‘정의’와 ‘불의’에 대한 그의 도덕적 개념은 사회적 및 역사적 발전의 부산물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 원리에 의하여 발전이 스스로를 추진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중요한 종류의 부산물이다. 이 요점을 예시하기 위하여, 적어도 ‘정의’에 대한 두 가지 개념이 (즉 ‘자유’와 ‘평등’에 대한) 항상 존재하며, 이 두 가지 개념은 진정으로 매우 크게 다르다. 하나는 지배계급이 이해하는 바와 같은 ‘정의’에 대한 개념이며, 다른 하나는 피지배 계급이 이해하는 바와 같은 동일한 개념이다. 이 개념들은, 물론, 계급 상황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그 개념들이 계급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그 개념들은 자신들의 투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신들에게 필요한 저 양심을 양편에 제공해야 한다.

도덕성에 관한 이 이론은, 모든 도덕적 범주는 역사적 상황에 의지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역사주의적으로 특징지어질는지도 모른다 ; 그 이론은 윤리 분야에서 역사적 상대주의로서 대개 묘사된다. 이 관점에서 판단하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불완전한 물음이다 :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정당합니까? 완벽한 질문은 이렇게 진행될 것이다 : 15세기 봉건적 도덕성이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정당합니까? 혹은 아마도 : 19세기 프롤레타리아 도덕성이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정당합니까? 역사적 상대주의는 엥겔스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공식화 되었다 : ‘어떤 도덕성이 오늘날 우리에게 설교되는가? 첫째로 과거 수세기로부터 전승된, 기독교-봉건적 도덕성이 있다 ; 그리고 이것은 다시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도덕성 두 가지로 주로 분기하는데, 제수이트-가톨릭과 정통-프로테스탄트에서 덜 엄격한 ‘진보된’ 도덕성에 이르기까지, 부족함 없이 분기한다. 이것들과 나란히, 우리는 현대 부르주아 도덕성을 발견하며, 그 도덕성과 함께, 미래의 프롤레타리아 도덕성을 발견한다..’

그러나 소위 이 ‘역사적 상대주의’는 도덕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역사주의적 특징을 망라하지 않는다. 그런 이론을 지닌 사람들, 예를 들어 마르크스 자신에게 우리는 이렇게 질문한다고 상상하자 : 왜 당신은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는가? 왜 당신은, 예를 들어, 당신의 혁명적 활동을 중단한 것에 대하여 부르주아 계급으로부터 뇌물을 받는 것이 더럽고 구역질나는 일이라고 생각할까 ? 나는 마르크스가 그런 질문에 답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그는,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행동했다거나 혹은 어쩔 수 없는 느낌으로 행동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아마도 그 질문을 회피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지닌 문제와 관련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의 실제적 결정에서 마르크스가 매우 엄격한 도덕률을 따랐다는 것은 분명하다 ; 그가 자신의 협력자로부터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것들에 적용된 용어가 무엇이든, 우리를 마주하고 있는 문제는 그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아마도 대답했을 답변을 어떻게 찾는가이다 : 왜 당신은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는가? 왜 당신은, 예를 들어, 압박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가? (마르크스 자신은, 태생적으로나 양육에 의하여 또는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도, 이 계급에 속하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재촉을 받았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마르크스는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다음 용어로 공식화했을 텐데, 그 신념은 내가 그의 역사적 도덕이론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을 형성한다. 사회 과학도로서 (그는 아마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지닌 도덕적 개념들이 계급투쟁에서 무기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학자로서, 나는 그 개념들을 채택하지 않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자로서 나는 또한 이 투쟁에서 어쩔 수 없이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또한 안다 ; 심지어 냉담함과 같은 어떤 자세도 어느 정도 편을 드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그러므로 나의 문제는 이런 형태를 띤다 : 내가 어느 편을 들까 ? 내가 특정 편을 선택할 때, 물론 나는 내가 지닌 도덕성을 또한 결정했다. 나는 내가 지지하기로 결정한 계급의 이익과 반드시 연계된 도덕적 체계를 채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근본적인 결정을 하기 전에, 내가 나의 계급의 도덕적 전통으로부터 내 자신을 풀어놓을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도덕적 체계도 채택하지 않았다 ; 그러나, 이것은 물론 상충하는 도덕적 체계에 관하여 의식적이고도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이제 결정은 이전에 채택된 도덕규범에 관련해서만 ‘도덕적’이기 때문에, 내가 내린 근본적 결정은 전혀 ‘도덕적’일 수가 없다. 그러나 그 결정은 과학적 결정이 될 수 있다. 그 까닭은 사회과학도로서, 나는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부르주아 계급이 그 도덕적 체계와 함께 사라질 운명임을, 그리고 프롤레타리아는 새로운 도덕적 체계와 함께 승리할 운명임을,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상황전개가 피할 수 없음을 본다. 중력의 법칙에 저항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미친 짓임과 꼭 같이, 그 상황전개에 저항하는 수고는 미친 짓일 것이다. 이것이 나의 근본적인 결정이 프롤레타리아와 그 도덕성을 지지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 결정은 과학적 선견지명에만, 과학적인 역사적 예언에, 기초한다. 어떤 도덕적 체계에도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가 도덕적 결정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은 특정 도덕적 체계의 채택을 초래한다. 요컨대, 나의 근본적인 결정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피압박자들을 도우려는 감상적인 결정이 아니라, 사회에 관한 발전법칙에 헛되게 저항하지 않으려는 과학적이고도 이성적인 결정이다. 내가 이 결정을 내린 후에만, 어쨌든 도래하기로 되어있는 것을 위한 투쟁에서 필요한 무기를 나는 수용하여 철저하게 이용할 준비를 갖춘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다가오는 시대에 관한 사실들을 내가 지닌 도덕의 기준으로 채택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이성에 의하여 계획되지 않고도 보다 이성적인 세상이 올 것이라는 명백한 모순을 나는 해결한다 ; 그 까닭은 이제 채택된 나의 도덕적 기준에 따라서, 미래 세상은 분명히 더 좋을 것이고 그리하여 더 합리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행동주의와 나의 역사주의 사이의 격차에 다리를 또한 놓는다. 그 까닭은 내가 사회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자연법칙을 발견했다 할지라도, 나는 펜을 움직여 세상으로부터 사회진화의 자연적인 단계를 섞어놓을 수 없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만큼을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진화의 산고(産苦)를 줄이고 경감시키는 데 능동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기에, 마르크스의 답변이었을 것이고, 내가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이라고 지칭했던 것의 가장 중요한 형태를 나에게 제시하는 것은 이 답변이다. 엥겔스가 다음과 같이 쓸 때 인용한 것은 이 이론이다 : ‘틀림없이, 지속될 예정인 최다수의 요소를 포함하는 저 도덕성은, 현재 시간 안에서, 현재 시간의 전복을 대표하는 도덕성이다 ; 그것은 미래를 대표하는 도덕성이다 ;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도덕성이다... 이 개념이 따라서, 모든 사회적 변화와 정치적 혁명의 궁극적 요인들이 정의(正義)를 점점 더 통찰하는 것이 아니다 ; 그 궁극적 요인들은 철학에서 추구될 수 없고 관련된 시대의 경제에서 추구될 수 있다. 현존하는 사회제도가 비이성적이고 불의하다는 확대되는 깨달음은 증상일 뿐이다..’ 그것은 현대 마르크스주의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론이다 : ‘사회주의적 열망을, 도덕적 토대 위에서 정당화 시키는 대신에, 사회발전에 관한 이성적인 경제법칙에 세우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가 역사적 필연이라고 선언했다. 그것은 매우 넓게 주장되는 이론이다 ; 그러나 그 이론은 분명하고 명시적으로 공식화된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 이론을 비판하는 것은 아마도 처음 보기에 깨달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우선, 그 이론이 주로 올바른 역사적 예언의 가능성에 기초한다는 것은 충분히 명백하다. 이것이 의문시 된다면 - 그리고 그것은 틀림없이 의문시 되어야 한다 - 그 이론은 자신의 힘 대부분을 잃는다. 그러나 그 이론을 분석할 목적으로, 나는 처음에 역사적 예지(叡智)는 기정사실이라고 상정(想定)하겠다 ; 그리고 나는 이 역사적 예지는 제한된다고 규정만 할 것이다 ; 나는 우리가, 가령, 향후 500년에 관한 예지를 가진다고 규정할 것인데,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적 역사주의의 가장 대담한 주장도 분명히 제한하지 않는 규정이다.

이제 먼저 문제시되는 도덕적 체계의 하나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근본적인 결정이 그 자체로 도덕적 결정이 아니라는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을 검토하자 ; 그 근본적 결정이 도덕적 사고나 감정에 기초하지 않고, 과학적인 역사적 예언에 기초한다는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의 주장. 이 주장은, 내가 생각하기에, 지지받을 수 없다. 이것을 완전히 명백하게 하기 위하여, 이 근본적 결정에 함축된 행동지침이나 행동원리를 명시적으로 만들면 충분할 것이다. 그것은 다음 원리이다 : 미래의 도덕체계를 채택하라 ! 아니면 : 그들의 행동이 미래를 낳는 데 매우 유용한 사람들이 지닌 도덕체계를 채택하라 ! 이제 향후 500년이 어떨지 우리가 정확히 안다는 상정(想定)에 심지어 기초를 두고, 우리가 그런 원리를 채택한다는 것이 조금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나에게 명백해 보인다. 예를 들어, 1764년에 프랑스의 상황전개를, 가령, 1864년까지 예견했던 볼테르(Voltaire)의 인도주의적인 제자는 전망을 아마도 혐오했었을 것임은 적어도 상상될 수 있다 ; 그는 이 상황전개가 다소 불쾌하여 나폴레옹 3세의 도덕기준을 자신의 도덕기준으로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했을 것임은 적어도 상상될 수 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인도주의적 기준에 충실할 것이고 그 기준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칠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 아마도 그 기준들은 이 기간에서 살아남아 아마도 언젠가 승리할 것이다. 우리가 노예제도의 시대를 향하여 가고 있다, 우리가 중단된 사회의 새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혹은 심지어 우리는 동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고 확신적으로 오늘날 예견하는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임박한 기간의 도덕적 기준을 채택하지 않기로 결정하지만, 아마도 희미한 미래에 자신의 도덕성이 부활할 것을 희망하면서, 자신이 지닌 인도주의적 이상(理想)의 생존에 최선을 다해 기여하겠다고 결정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최소한 상상가능하다. 그것은 아마도 ‘가장 현명한’ 결정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정이 예지(叡智)에 의해서나 여하한 사회학적 혹은 심리학적 법칙에 의하여도 배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주의적 도덕론의 첫 번째 주장이 옹호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미래의 도덕성이 단지 미래의 도덕성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미래의 도덕성을 수용해야 하는지, 이것은 본질적으로 도덕적 문제일 따름이다. 근본적인 결정은 미래에 대한 어떤 지식에서도 도출될 수 없다.

앞의 여러 장에서 나는 (특히 헤겔의) 도덕적 실증주의인 존재하는 도덕기준을 제외하고는 도덕적 기준이 없다는 이론을 언급했다 ; 존재하는 것은 합리적이며 선하다는 것 ; 그리하여 힘은 정의라는 것. 이 이론의 실제적 모습은 이것이다. 사건의 현존하는 상태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이 상태 자체가 사물의 도덕적 기준을 결정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가 고찰하고 있는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은 도덕적 실증주의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그 까닭은 그 도덕이론이 다가오는 힘이 정의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미래는 여기서 현재로 대체된다.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그 이론의 실제적 모습은 이것이다. 사건의 다가오는 상태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이 상태가 사물의 도덕적 기준을 결정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현재’와 ‘미래’ 사이의 차이점은 여기서, 물론, 단지 정도의 문제이다. 우리는 미래가 내일, 혹은 500년 후에, 혹은 100년 후에,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들의 이론적 구조 속에는 도덕적 보수주의, 도덕적 현대주의와 도덕적 미래주의 사이의 차이점은 없다. 또한 도덕적 감정에 관하여 그들 사이에는 선택할 것이 많지 않다. 도덕적 미래주의자가 존재하는 힘의 편을 드는 도덕적 보수주의의 비겁을 비판한다면, 도덕적 보수주의자는 그 비판을 되받아칠 수 있다 ; 도덕적 미래주의자는 존재할 힘의 편을, 내일의 통치자들의 편을, 들기 때문에 비겁자라고 그는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이런 함의(含意)를 고려했었더라면, 마르크스는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을 거부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마르크스를 사회주의로 이끌었던 것은 과학적 판단이 아니라 도덕적 충동, 피압박자를 도우려는 희망, 파렴치하게 착취당하여 비참한 노동자들을 해방시키려는 희망이었음을 수많은 말과 수많은 행동들이 증명한다. 그의 가르침의 영향력이 지닌 비결은 이 도덕적 매력임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매력의 힘은 그가 도덕성을 추상적으로 설교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하여 엄청나게 강화되었다. 그는 그렇게 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체 하지 않았다. 누가 자기 자신의 기준에 따라서, 그 기준이 그다지 낮은 것이 아니라면, 사는가 ?라고 그는 자문했던 듯싶다. 윤리적 문제에서 그가 절제된 표현에 의지하도록 영향을 미치고, 예언적 사회과학에서 그가 자신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도덕적 문제의 권위를 발견하도록 영향을 미친 것은 이 느낌이었다.

틀림없이, 마르크스의 실천윤리학에서 자유와 평등 같은 그런 범주가 주요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에게 언급된 것에도 불구하고, 1789년의 이상을 진지하게 수용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1789년의 이상은 프랑스혁명의 이상을 의미한다. - 역자 주). 그래서 그는 ‘자유’ 같은 개념이 얼마나 파렴치하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이것이 그가 자유를 말로 설교하지 않은 이유이다 - 그가 자유를 행동으로 설교했는지. 그는 사회를 개선하고자 원했고 그 개선은 그에게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평등, 더 많은 정의(正義), 더 많은 안전, 더 높은 생활수준, 그리고 특히 즉각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얼마간의 자유를 주는 노동일 단축을 의미했다. 그로 하여금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역사주의적 공식 뒤에 숨기도록 영향을 미쳤던 것은, 그의 놀라운 낙천주의와 이 모든 것이 가까운 장래에 성취되리라는 그의 믿음과 함께, 그가 지녔던 위선에 대한 증오와 이 ‘높은 이상들’에 관하여 말하기를 주저함이었다.

마르크스는, 도덕적 미래주의의 형태로 된 도덕적 실증주의가 미래의 권력을 정의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알았더라면, 그 도덕적 실증주의를 진지하게 옹호하지 않았으리라고 나는 확언한다. 그러나 인류에 대하여 그가 지녔던 열정적인 사랑을 소유하지 않은, 이 함의(含意) 때문에만 도덕적 미래주의자들인 다시 말해서 승자 편에 서고자 하는 기회주의자들이 있다. 도덕적 미래주의는 오늘날 널리 퍼져있다. 도덕적 미래주의의 더 깊은, 비(非)기회주의적 토대는 아마도 선량함이 틀림없이 ‘궁극적으로’ 사악함을 이긴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도덕적 미래주의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현재 사건의 ‘궁극적’ 결과를 목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잊는다. ‘역사가 우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 성공이 재판하리라는 것. 성공과 미래의 힘을 숭배하는 것은 현재의 힘이 정의(正義)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지닌 최고의 기준이다. (그들은 현재가 과거의 미래라는 것을 완전히 망각한다.) 이 모든 것의 토대는 도덕적 낙천주의와 도덕적 회의주의 사이의 내키지 않는 타협이다. 사람의 양심을 믿는 것은 어려운 듯싶다. 그리고 승자의 편에 서려는 충동에 저항하는 것은 어려운 듯싶다.

이 모든 비판은 우리가 향후 미래를, 가령 향후 500년 동안의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는 상정(想定)과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히 허구적인 이 상정(想定)을 포기한다면,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은 그 이론이 지닌 모든 타당성을 잃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상정을 포기해야 한다. 그 까닭은 도덕체계를 선택하는 데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예언적 사회학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선택에 관한 우리의 책임을 다른 어떤 사람에게, 심지어 ‘미래’에도 돌릴 수 없다.

마르크스의 역사주의적 도덕론은, 물론, 사회과학의 방법에 관한 그의 관점의, 우리 시대에 다소 유행하게 된 그의 사회학적 결정론의, 결과이다. 우리의 도덕적 기준을 포함하여 우리가 지닌 모든 견해는 사회와 사회의 역사적 상태에 달려있다고 언급된다. 그것들은 사회의 혹은 특정 계급상황의 산물이다. 교육은 그 과정에 의하여 공동체가 자신의 구성원들에게 ‘그 기준에 따라서 구성원들이 살아가게 할 기준을 포함하여 자신이 지닌 문화’를 ‘전승하려는’ 시도의 특별한 과정으로 정의(定義)되어, ‘현존 질서에 대한 교육이론 및 관행의 상대성’이 강조된다. 과학 또한 과학 연구자, 기타 등등의 사회적 계층에 달려있다고 언급된다.

우리가 지닌 견해의 사회학적 의존을 강조하는 이런 종류의 이론은 때때로 사회학주의(sociologism)라고 불린다 ; 역사적 의존이 강조된다면, 그것은 전통적 역사주의(historism)라고 불린다. (전통적 역사주의[historism]는, 물론, 역사결정론적 역사주의[historicism]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이 글에서 역사주의로 표기된 것은 특별히 전통적 역사주의로 표기되지 않은 한 역사결정론적 역사주의를 의미한다. - 역자 주]) 사회학주의와 전통적 역사주의(historism) 모두는, 그것들이 사회나 역사로써 과학적 지식의 결정을 유지하는 한, 다음 두 장에서 논의될 것이다. 사회학주의가 도덕이론에 관련되는 한, 몇 마디 말이 여기에 첨부될 것이다. 그러나 세부사항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이 헤겔화하는 이론들에 관한 나의 견해를 분명히 하고 싶다. 나는 그 이론들이 권위적 철학의 은어(隱語)로 옷을 차려입고 시시한 소리를 지껄인다고 믿는다.

이 도덕적 ‘사회학주의’를 조사해보자. 사람과, 그의 목표는 어떤 의미에서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은 매우 사실적이다. 그러나 사회가 사람과 사람이 지닌 목표의 산물이라는 것과 사회가 점점 더 그렇게 되리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주요 문제는 : 인간과 사회 사이의 관계의 이 두 가지 면 중 어느 면이 더 중요한가? 어느 면이 강조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지닌 목표가 전통 및 환경의 산물이라는 유사한 ‘자연주의적’ 관점과 그것을 비교한다면 더 잘 사회학주의를 이해할 것이다. 다시 우리는 이것이 충분히 사실적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환경이 점점 더 큰 범위로 사람과 사람이 지닌 목표의 산물이라는 것은 (제한적으로, 인간의 전통에 관해서도 동일한 언급이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완전히 확실하다. 다시 우리는 묻는다 : 두 국면 중에서 어느 국면이 더 중요한가, 더 비옥한가? 우리가 그 질문에 다음과 같은 더 실용적인 형태를 부여한다면 답변은 더 용이할 것이다.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세대인 우리는 주로 우리 부모의, 우리 부모들이 우리를 양육한 방식의, 산물이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비슷한 정도로, 우리 자신의, 우리 행동의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양육하는 방식의, 산물일 것이다. 두 국면 중에서 어느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더 중요한 국면인가 ?

우리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찰하면, 결정적인 요점이 우리가 지닌 생각, 우리가 지닌 견해가 주로 우리가 받은 양육에 의존한다 할지라도 절대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는다는 것임을 우리는 발견한다. 우리가 우리의 양육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우리가 자기비판을 할 수 없고 사물을 보는 우리의 방식으로부터,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없다면, 두말할 것 없이 우리가 바로 앞 세대에 의하여 양육된 방식은 우리가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방식을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완벽하게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비판적 능력을 우리 자신이 양육된 방식보다 더 낫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어려운 문제에 모을 수 있다.

사회학주의에 의하여 그렇게 많이 강조된 상황은 정확하게 유사한 방식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견해가 어느 정도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은 하찮게 사실이라는 것. 우리 환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 환경의 사회적 부분이다 ; 사고(思考)는, 특히, 사교적 교류에 매우 크게 의존한다 ; 사고(思考)의 매개체인 언어는 사회적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고(思考)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사고(思考)를 비판하여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우리의 변화되고 향상된 사고(思考)에 따라서 우리의 물리적 환경을 변화시키고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은 부인될 수 없을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회적 환경에 관해서도 똑같이 그렇다.

이 모든 고찰은 형이상학적인 ‘자유의지의 문제’와는 완전히 별개이다. 심지어 비(非)결정론자도 전통에 대한 의존성과 환경적, 특히 사회적 영향에 대한 일정량의 의존성을 인정한다. 다른 한편으로, 결정론자는 우리의 견해와 행동이 전통과 교육, 그리고 사회적 영향에 의하여 완전히 전적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고 틀림없이 동의한다. 그는 다른 요인들, 예를 들어, 사람의 일생동안에 축적된 ‘우연한’ 경험들이 있다는 것과, 이것들 또한 자체의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결정론이나 비결정론은, 그것들이 자체의 형이상학적 한계 내부에 남아있다면, 우리가 지닌 문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요점은 그것들이 이 한계를 침범할 것이라는 점이다 ; 형이상학적 결정론은, 예를 들어, 사회학적 결정론 즉, ‘사회학주의’를 고취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형태로, 그 이론은 경험과 대면할 수 있다. 그리고 경험은 그 이론이 틀림없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베토벤은, 윤리학 분야와 일정한 유사점을 지닌 미학(美學) 분야에서 예를 들면, 틀림없이 어느 정도는 음악교육과 전통의 산물이어서, 그에게 흥미를 갖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의 이 면(面)에 감명을 받을 것이다. 더 중요한 면은, 그러나, 그 또한 음악을 생산하는 사람이었고, 그리하여 음악적 전통과 음악교육의 생산자였다는 것이다. 나는 베토벤이 쓴 모든 소절이 전통과 환경적 영향의 어떤 결합으로 결정되었다고 주장할 형이상학적 결정론자와 논쟁하고 싶지 않다. 그런 주장은, 아무도 그가 쓴 단 하나의 소절을 이런 방식으로 실제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완전히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쓴 것은 그의 선배의 음악작품에 의해서도, 그가 살았던 사회적 환경에 의해서도, 그의 귀먹음에 의해서도, 그의 가정부가 그를 위하여 요리한 음식에 의해서도,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인정한다는 것이다 ; 다시 말해서, 경험적 조사에 노출된 명백한 환경적 영향이나 상황에 의해서도, 혹은 우리가 그의 전통에 관하여 아마도 알 수 있을 어떤 것에 의해서 설명될 수 없다.

나는 베토벤의 작품에 관하여 특정한 흥미로운 사회학적 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작은 교향곡 오케스트라에서 큰 교향곡 오케스트라로 이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사회정치적 상황전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오케스트라는 왕자들의 개인적 취미가 더 이상 아니고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들이 지닌 음악에 대한 흥미가 크게 증가하는 중간계급에 의하여 지지를 받는다. 나는 이런 종류의 여하한 사회학적 ‘설명’도 기꺼이 높이 평가할 것이고 그러한 면(面)들은 과학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다. (내 자신이 이 책에서, 예를 들어, 내가 플라톤을 다루면서, 유사한 시도를 했다는 것이 기억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더 정확하게, 나의 공격 목표는 무엇인가 ? 그것은 이런 종류의 면(面)이 지니는 과장과 일반화이다. 우리가 위에 암시된 방식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오케스트라를 ‘설명한다’면, 거의 설명한 것이 없다. 자체를 해방시키는 과정 속에 있는 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하는 것으로 우리가 베토벤을 묘사한다면,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말하는 것은 없다. 그런 기능은 확실히 나쁜 음악 생산과 연결될 수 있다 (우리가 바그너[Wagner]로부터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이런 식으로 베토벤의 천재성을 설명하려고 시도할 수 없고, 어떤 방식으로도 전혀 할 수 없다.

나는 마르크스 자신의 견해가 사회학적 결정론을 경험적으로 반박하기 위하여 동일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까닭은 우리가 두 가지 이론인 행동주의와 역사결정론적 역사주의 그리고 그 이론들이 마르크스의 체계에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투쟁을 이 교설에 비추어 고찰하면, 우리는 역사결정론적 역사주의가 혁명가나 심지어 개혁가를 위해서보다 보수주의자에 더 알맞은 관점일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역사결정론적 역사주의는 헤겔에 의하여 그 경향으로 사용되었다. 마르크스가 헤겔로부터 역사결정론적 역사주의를 떠맡았을 뿐만 아니라, 결국 그것이 자신의 행동주의를 추방하도록 허용했다는 사실은, 그리하여 사회적 투쟁에서 사람이 선택하는 편은 항상 그 사람의 지적(知的) 판단을 결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이 판단들은, 마르크스의 경우에서처럼, 그가 지지하는 계급의 진정한 이익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선배의 영향과 같은 우연한 요인들에 의해서나, 아마도 단견(短見)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경우에, 사회학주의는 헤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촉진할 것이지만, 마르크스 자신의 사례는 사회학주의를 정당화되지 않은 일반화로서 폭로한다. 유사한 경우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도덕적 개념을 평가 절하한 것이다 ; 그 까닭은 그가 지녔던 종교적 영향력에 관한 비결은 그 도덕적 매력 안에 있다는 것,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주로 도덕적 비판으로서 유효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체제가 그런 상태로서 불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체제가 나쁘면, 그 체제로부터 이익을 보는 개인의 모든 정의로움은 가짜 정의로움일 뿐이며, 위선일 뿐이다. 그 까닭은 우리의 책임은 체제에까지, 우리가 지속되도록 허용하는 제도까지 확대되기 때문이다.

그의 영향력을 설명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이 도덕적 급진주의이다 ; 그것은 본질적으로 희망적이다. 이 도덕적 급진주의는 아직도 살아있다. 그 급진주의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 마르크스의 정치적 급진주의가 가야할 방향으로 그 급진주의가 가는 것을 막은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과학적’ 마르크스주의는 죽었다. 마르크주의의 사회적 책임감과 자유에 대한 사랑은 살아남아야 한다.

- “열린사회와 그 적들”, 2권 헤겔과 마르크스, 칼 포퍼 -

MARX'S ETHICS

CHAPTER 22 : THE MORAL THEORY OF

HISTORICISM

The task which Marx set himself in Capital was to discover inexorable laws of social development. It was not the discovery of economic laws which would be useful to the social technologist. It was neither the analysis of the economic conditions which would permit the realization of such socialist aims as just prices, equal distribution of wealth, security, reasonable planning of production and, above all, freedom, nor was it an attempt to analyse and to clarify these aims.

But although Marx was strongly opposed to Utopian technology as well as to any attempt at a moral justification of socialist aims, his writings contained, by implication, an ethical theory. This he expressed mainly by moral evaluations of social institutions. After all, Marx's condemnation of capitalism is fundamentally a moral condemnation. The system is condemned, for the cruel injustice inherent in it which is combined with full 'formal' justice and righteousness. The system is condemned, because by forcing the exploiter to enslave the exploited it robs both of their freedom. Marx did not combat wealth, nor did he praise poverty. He hated capitalism, not for its accumulation of wealth, but for its oligarchical character ; he hated it because in this system wealth means political power in the sense of power over other men. Labour power is made a commodity ; that means that men must sell themselves on the market. Marx hated the system because it resembled slavery.

By laying such stress on the moral aspect of social institutions, Marx emphasized our responsibility for the more remote social repercussions of our actions ; for instance, of such actions as may help to prolong the life of socially unjust institutions.

But although Capital is, in fact, largely a treatise on social ethics, these ethical ideas are never represented as such. They are expressed only by implication, but not the less forcibly on that account, since the implications are very obvious. Marx, I believe, avoided an explicit moral theory, because he hated preaching. Deeply distrustful of the moralist, who usually preaches water and drinks wine, Marx was reluctant to formulate his ethical convictions explicitly. The principles of humanity and decency were for him matters that needed no discussion, matters to be taken for granted. (In this field, too, he was an optimist.) He attacked the moralists because he saw them as the sycophantic apologists of a social order which he felt to be immoral ; he attacked the eulogists of liberalism because of their self-satisfaction, because of their identification of freedom with the formal liberty then existing within a social system which destroyed freedom. Thus, by implication, he admitted his love for freedom ; and in spite of his bias, as a philosopher, for holism, he was certainly not a collectivist, for he hoped that the state would 'wither away'. Marx's faith, I believe, was fundamentally a faith in the open society.

Marx's attitude towards Christianity is closely connected with these convictions, and with the fact that a hypocritical defence of capitalist exploitation was in his day characteristic of official Christianity. (His attitude was not unlike that of his contemporary Kierkegaard, the great reformer of Christian ethics, who exposed the official Christian morality of his day as anti-Christian and anti-humanitarian hypocrisy.) A typical representative of this kind of Christianity was the High Church priest J. Townsend, author of A Dissertation on the Poor Laws, by a Wellwisher of Mankind, an extremely crude apologist for exploitation whom Marx exposed. 'Hunger', Townsend begins his eulogy, 'is not only a peaceable, silent, unremitted pressure but, as the most natural motive of industry and labour, it calls forth the most powerful exertions.' In Townsend's 'Christian' world order, everything depends (as Marx observes) upon making hunger permanent among the working class ; and Townsend believes that this is indeed the divine purpose of the principle of the growth of population ; for he goes on : 'It seems to be a law of nature that the poor should be to a certain degree improvident, so that there may always be some to fulfil the most servile, the most sordid, the most ignoble offices in the community. The stock of human happiness is thereby much increased, whilst the more delicate.. are left at liberty without interruption to pursue those callings which are suited to their various dispositions.' And the 'delicate priestly sycophant', as Marx called him for this remark, adds that the Poor Law, by helping the hungry, 'tends to destroy the harmony and beauty, the symmetry and order, of that system which God and nature have established in the world.'

If this kind of 'Christianity' has disappeared to-day from the face of the better part of our globe, it is in no small degree due to the moral reformation brought about by Marx. I do not suggest that the reform of the Church's attitude towards the poor in England did not commence long before Marx had any influence in England ; but he influenced this development especially on the Continent, and the rise of socialism had the effect of strengthening it in England also. His influence on Christianity may be perhaps compared with Luther's influence on the Roman Church. Both were a challenge, both led to a counter-reformation in the camps of their enemies, to a revision and re-valuation of their ethical standards. Christianity owes not a little to Marx's influence if it is to-day on a different path from the one it was pursuing only thirty years ago. It is even partly due to Marx's influence that the Church has listened to the voice of Kierkegaard, who, in his Book of the Judge, described his own activity as follows : 'He whose task it is to produce a corrective idea, has only to study, precisely and deeply, the rotten parts of the existing order - and then, in the most partial way possible, to stress the opposite of it (이 문장에서 whose task it is의 it은 불필요하다. 문법적 오류로 보인다. - 역자 주).' ('Since that is so', he adds, 'an apparently clever man will easily raise the objection of partiality against the corrective idea - and he will make the public believe that this was the whole truth about it.') In this sense one might say that the early Marxism, with its ethical rigour, its emphasis on deeds instead of mere words, was perhaps the most important corrective idea of our time. This explains its tremendous moral influence.

The demand that men should prove themselves in deeds is especially marked in some of Marx's earlier writings. This attitude, which might be described as his activism, is most clearly formulated in the last of his Theses on Feuerbach : 'The philosophers have only interpreted the world in various ways ; the point however is to change it.' But there are many other passages which show the same 'activist' tendency ; especially those in which Marx speaks of socialism as the 'kingdom of freedom', a kingdom in which man would become the 'master of his own social environment'. Marx conceived of socialism as a period in which we are largely free from the irrational forces that now determine our life, and in which human reason can actively control human affairs. Judging by all this, and by Marx's general moral and emotional attitude, I cannot doubt that, if faced with the alternative 'are we to be the makers of our fate, or shall we be content to be its prophets ? ' he would have decided to be a maker and not merely a prophet.

But as we already know, these strong 'activist' tendencies of Marx's are counteracted by his historicism. Under its influence, he became mainly a prophet. He decided that, at least under capitalism, we must submit to 'inexorable laws' and to the fact that all we can do is 'to shorten and lessen the birth-pangs' of the 'natural phases of its evolution'. There is a wide gulf between Marx's activism and his historicism, and this gulf is further widened by his doctrine that we must submit to the purely irrational forces of history. For since he denounced as Utopian any attempt to make use of our reason in order to plan for the future, reason can have no part in bringing about a more reasonable world. I believe that such a view cannot be defended, and must lead to mysticism. But I must admit that there seems to be a theoretical possibility of bridging this gulf, although I do not consider the bridge to be sound. This bridge, of which there are only rough plans to be found in the writings of Marx and Engels, I call their historicist moral theory.

Unwilling to admit that their own ethical ideas were in any sense ultimate and self-justifying, Marx and Engels preferred to look upon their humanitarian aims in the light of a theory which explains them as the product, or the reflection, of social circumstances. Their theory can be described as follows. If a social reformer, or a revolutionary, believes that he is inspired by a hatred of 'injustice', and by a love for 'justice', then he is largely a victim of illusion (like anybody else, for instance the apologists of the old order). Or, to put it more precisely, his moral ideas of 'justice' and 'injustice' are by-products of the social and historical development. But they are by-products of an important kind, since they are part of the mechanism by which the development propels itself. To illustrate this point, there are always at least two ideas of 'justice' (or of 'freedom' or of 'equality'), and these two ideas differ very widely indeed. The one is the idea of 'justice' as the ruling class understands it, the other, the same idea as the oppressed class understands it. These ideas are, of course, products of the class situation, but at the same time they play an important part in the class struggle - they have to provide both sides with that good conscience which they need in order to carry on their fight.

This theory of morality may be characterized as historicist because it holds that all moral categories are dependent on the historical situation ; it is usually described as historical relativism in the field of ethics. From this point of view, it is an incomplete question to ask : Is it right to act in this way ? The complete question would run like this : Is it right, in the sense of fifteenth-century feudal morality, to act in this way ? Or perhaps : Is is right in the sense of nineteenth-century proletarian morality, to act in this way ? (이 문장에서 is는 it의 오기이다. 원문의 오류이다. - 역자 주) This historical relativism was formulated by Engels as follows: 'What morality is preached to us to-day ? There is first Christian-feudal morality, inherited from past centuries ; and this again has two main subdivisions, Roman Catholic and Protestant moralities, each of which in turn has no lack of further subdivisions, from the Jesuit-Catholic and Orthodox-Protestant to loose "advanced" moralities. Alongside of these, we find the modern bourgeois morality, and with it, too, the proletarian morality of the future..'

But this so-called 'historical relativism' by no means exhausts the historicist character of the Marxist theory of morals. Let us imagine we could ask those who hold such a theory, for instance Marx himself : Why do you act in the way you do ? Why would you consider it distasteful and repulsive, for instance, to accept a bribe from the bourgeoisie for stopping your revolutionary activities ? I do not think that Marx would have liked to answer such a question ; he would probably have tried to evade it, asserting perhaps that he just acted as he pleased, or as he felt compelled to. But all this does not touch our problem. It is certain that in the practical decisions of his life Marx followed a very rigorous moral code ; it is also certain that he demanded from his collaborators a high moral standard. Whatever the terminology applied to these things may be, the problem which faces us is how to find a reply which he might have possibly made to the question : Why do you act in such a way ? Why do you try, for instance, to help the oppressed ? (Marx did not himself belong to this class, either by birth or by upbringing or by his way of living.)

If pressed in this way, Marx would, I think, have formulated his moral belief in the following terms, which form the core of what I call his historicist moral theory. As a social scientist (he might have said) I know that our moral ideas are weapons in the class struggle. As a scientist, I can consider them without adopting them. But as a scientist I find also that I cannot avoid taking sides in this struggle ; that any attitude, even aloofness, means taking sides in some way or other. My problem thus assumes the form : Which side shall I take ? When I have chosen a certain side, then I have, of course, also decided upon my morality. I shall have to adopt the moral system necessarily bound up with the interests of the class which I have decided to support. But before making this fundamental decision, I have not adopted any moral system at all, provided I can free myself from the moral tradition of my class ; but this, of course, is a necessary prerequisite for making any conscious and rational decision regarding the competing moral systems. Now since a decision is 'moral' only in relation to some previously accepted moral code, my fundamental decision can be no 'moral' decision at all. But it can be a scientific decision. For as a social scientist, I am able to see what is going to happen. I am able to see that the bourgeoisie, and with it its system of morals, is bound to disappear, and that the proletariat, and with it a new system of morals, is bound to win. I see that this development is inevitable. It would be madness to attempt to resist it, just as it would be madness to attempt to resist the law of gravity. This is why my fundamental decision is in favour of the proletariat and of its morality. And this decision is based only on scientific foresight, on scientific historical prophecy. Although itself not a moral decision, since it is not based on any system of morality, it leads to the adoption of a certain system of morality. To sum up, my fundamental decision is not (as you suspected) the sentimental decision to help the oppressed, but the scientific and rational decision not to offer vain resistance to the developmental laws of society. only after I have made this decision am I prepared to accept, and to make full use of, those moral sentiments which are necessary weapons in the fight for what is bound to come in any case. In this way, I adopt the facts of the coming period as the standards of my morality. And in this way, I solve the apparent paradox that a more reasonable world will come without being planned by reason ; for according to my moral standards now adopted, the future world must be better, and therefore more reasonable. And I also bridge the gap between my activism and my historicism. For it is clear that even though I have discovered the natural law that determines the movement of society, I cannot shuffle the natural phases of its evolution out of the world by a stroke of the pen. But this much I can do. I can actively assist in shortening and lessening its birth-pangs.

This, I think, would have been Marx's reply, and it is this reply which to me represents the most important form of what I have called 'historicist moral theory'. It is this theory to which Engels alludes when he writes: 'Certainly, that morality which contains the greatest number of elements that are going to last is the one which, within the present time, represents the overthrow of the present time ; it is the one which represents the future ; it is the proletarian morality... According to this conception, the ultimate causes of all social changes and political revolutions are not increasing insight into justice ; they are to be sought not in the philosophy but in the economics of the epoch concerned. The growing realization that existing social institutions are irrational and unjust is only a symptom..' It is the theory of which a modern Marxist says : 'In founding socialist aspirations on a rational economic law of social development, instead of justifying them on moral grounds, Marx and Engels proclaimed socialism a historical necessity.' It is a theory which is very widely held ; but it has rarely been formulated clearly and explicitly. Its criticism is therefore more important than might be realized at first sight.

First, it is clear enough that the theory depends largely on the possibility of correct historical prophecy. If this is questioned - and it certainly must be questioned - then the theory loses most of its force. But for the purpose of analysing it, I shall assume at first that historical foreknowledge is an established fact ; and I shall merely stipulate that this historical foreknowledge is limited ; I shall postulate that we have foreknowledge for, say, the next 500 years, a stipulation which should not restrict even the boldest claims of Marxist historicism.

Now let us first examine the claim of historicist moral theory that the fundamental decision in favour of, or against, one of the moral systems in question is itself not a moral decision ; that it is not based on any moral consideration or sentiment, but on a scientific historical prediction. This claim is, I think, untenable. In order to make this quite clear, it will suffice to make explicit the imperative, or principle of conduct, implied in this fundamental decision. It is the following principle : Adopt the moral system of the future ! or : Adopt the moral system held by those whose actions are most useful for bringing about the future ! Now it seems clear to me that even on the assumption that we know exactly what the next 500 years will be like, it is not at all necessary for us to adopt such a principle. It is, to give an example, at least conceivable that some humanitarian pupil of Voltaire who foresaw in 1764 the development of France down to, say, 1864 might have disliked the prospect ; it is at least conceivable that he would have decided that this development was rather distasteful and that he was not going to adopt the moral standards of Napoleon III as his own. I shall be faithful to my humanitarian standards, he might have said, I shall teach them to my pupils ; perhaps they will survive this period, perhaps some day they will be victorious. It is likewise at least conceivable (I do not assert more, at present) that a man who to-day foresees with certainty that we are heading for a period of slavery, that we are going to return to the cage of the arrested society, or even that we are about to return to the beasts, may nevertheless decide not to adopt the moral standards of this impending period but to contribute as well as he can to the survival of his humanitarian ideals, hoping perhaps for a resurrection of his morality in some dim future.

All that is, at least, conceivable. It may perhaps not be the 'wisest' decision to make. But the fact that such a decision is excluded neither by foreknowledge nor by any sociological or psychological law shows that the first claim of historicist moral theory is untenable. Whether we should accept the morality of the future just because it is the morality of the future, this in itself is just a moral problem. The fundamental decision cannot be derived from any knowledge of the future.

In previous chapters I have mentioned moral positivism (especially that of Hegel), the theory that there is no moral standard but the one which exists ; that what is, is reasonable and good ; and therefore, that might is right. The practical aspect of this theory is this. A moral criticism of the existing state of affairs is impossible, since this state itself determines the moral standard of things. Now the historicist moral theory we are considering is nothing but another form of moral positivism. For it holds that coming might is right. The future is here substituted for the present - that is all. And the practical aspect of the theory is this. A moral criticism of the coming state of affairs is impossible, since this state determines the moral standard of things. The differenc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future' is here, of course, only a matter of degree. one can say that the future starts to-morrow, or in 500 years, or in 100. In their theoretical structure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moral conservatism, moral modernism, and moral futurism. Nor is there much to choose between them in regard to moral sentiment. If the moral futurist criticizes the cowardice of the moral conservative who takes sides with the powers that be, then the moral conservative can return the charge ; he can say that the moral futurist is a coward since he takes sides with the powers that will be, with the rulers of to-morrow.

I feel sure that, had he considered these implications, Marx would have repudiated historicist moral theory. Numerous remarks and numerous actions prove that it was not a scientific judgement but a moral impulse, the wish to help the oppressed, the wish to free the shamelessly exploited and miserable workers, which led him to socialism. I do not doubt that it is this moral appeal that is the secret of the influence of his teaching. And the force of this appeal was tremendously strengthened by the fact that he did not preach morality in the abstract. He did not pretend to have any right to do so. Who, he seems to have asked himself, lives up to his own standard, provided it is not a very low one ? It was this feeling which led him to rely, in ethical matters, on under-statements, and which led him to the attempt to find in prophetic social science an authority in matters of morals more reliable than he felt himself to be.

Surely, in Marx's practical ethics such categories as freedom and equality played the major role. He was, after all, one of those who took the ideals of 1789 seriously. And he had seen how shamelessly a concept like 'freedom' could be twisted. This is why he did not preach freedom in words - why he preached it in action. He wanted to improve society and improvement meant to him more freedom, more equality, more justice, more security, higher standards of living, and especially that shortening of the working day which at once gives the workers some freedom. It was his hatred of hypocrisy, his reluctance to speak about these 'high ideals', together with his amazing optimism, his trust that all this would be realized in the near future, which led him to veil his moral beliefs behind historicist formulations.

Marx, I assert, would not seriously have defended moral positivism in the form of moral futurism if he had seen that it implies the recognition of future might as right. But there are others who do not possess his passionate love of humanity, who are moral futurists just because of these implications, i.e. opportunists wishing to be on the winning side. Moral futurism is widespread to-day. Its deeper, non-opportunist basis is probably the belief that goodness must 'ultimately' triumph over wickedness. But moral futurists forget that we are not going to live to witness the 'ultimate' outcome of present events. 'History will be our judge !' What does this mean ? That success will judge. The worship of success and of future might is the highest standard of many who would never admit that present might is right. (They quite forget that the present is the future of the past.) The basis of all this is a half-hearted compromise between a moral optimism and a moral scepticism. It seems to be hard to believe in one's conscience. And it seems to be hard to resist the impulse to be on the winning side.

All these critical remarks are consistent with the assumption that we can predict the future for the next, say 500 years. But if we drop this entirely fictitious assumption, then historicist moral theory loses all its plausibility. And we must drop it. For there is no prophetic sociology to help us in selecting a moral system. We cannot shift our responsibility for such a selection on to anybody, not even on to 'the future'.

Marx's historicist moral theory is, of course, only the result of his view concerning the method of social science, of his sociological determinism, a view which has become rather fashionable in our day. All our opinions, it is said, including our moral standards, depend upon society and its historical state. They are the products of society or of a certain class situation. Education is defined as a special process by which the community attempts to 'pass on' to its members 'its culture including the standards by which it would have them to live', and the 'relativity of educational theory and practice to a prevailing order' is emphasized. Science, too, is said to depend on the social stratum of the scientific workers, etc.

A theory of this kind which emphasizes the sociological dependence of our opinions is sometimes called sociologism ; if the historical dependence is emphasized, it is called historism. (Historism must not, of course, be mixed up with historicism.) Both sociologism and historism, in so far as they maintain the determination of scientific knowledge by society or history, will be discussed in the next two chapters. In so far as sociologism bears upon moral theory, a few remarks may be added here. But before going into any detail, I wish to make quite clear my opinion concerning these Hegelianizing theories. I believe that they chatter trivialities clad in the jargon of oracular philosophy.

Let us examine this moral 'sociologism'. That man, and his aims, are in a certain sense a product of society is true enough. But it is also true that society is a product of man and of his aims and that it may become increasingly so. The main question is : Which of these two aspects of the relations between men and society is more important ? Which is to be stressed ?

We shall understand sociologism better if we compare it with the analogous 'naturalistic' view that man and his aims are a product of heredity and environment. Again we must admit that this is true enough. But it is also quite certain that man's environment is to an increasing extent a product of him and his aims (to a limited extent, the same might be said even of his heredity). Again we must ask : which of the two aspects is more important, more fertile ? The answer may be easier if we give the question the following more practical form. We, the generation now living, and our minds, our opinions, are largely the product of our parents, and of the way they have brought us up. But the next generation will be, to a similar extent, a product of ourselves, of our actions and of the way in which we bring them up. Which of the two aspects is the more important one for us to-day ?

If we consider this question seriously, then we find that the decisive point is that our minds, our opinions, though largely dependent on our upbringing are not totally so. If we are totally dependent on our upbringing, if we were incapable of self-criticism, of learning from our own way of seeing things, from our experience, then, of course, the way we have been brought up by the last generation would determine the way in which we bring up the next. But it is quite certain that this is not so. Accordingly, we can concentrate our critical faculties on the difficult problem of bringing up the next generation in a way which we consider better than the way in which we have been brought up ourselves.

The situation stressed so much by sociologism can be dealt with in an exactly analogous way. That our minds, our views, are in a way a product of 'society' is trivially true. The most important part of our environment is its social part ; thought, in particular, is very largely dependent on social intercourse ; language, the medium of thought, is a social phenomenon. But it simply cannot be denied that we can examine thoughts, that we can criticize them, improve them, and further that we can change and improve our physical environment according to our changed, improved thoughts. And the same is true of our social environment.

All these considerations are entirely independent of the metaphysical 'problem of free will'. Even the indeterminist admits a certain amount of dependence on heredity and on environmental, especially social, influence. on the other hand, the determinist must agree that our views and actions are not fully and solely determined by heredity, education, and social influences. He has to admit that there are other factors, for instance, the more 'accidental' experiences accumulated during one's life, and that these also exert their influence. Determinism or indeterminism, as long as they remain within their metaphysical boundaries, do not affect our problem. But the point is that they may trespass beyond these boundaries ; that metaphysical determinism, for instance, may encourage sociological determinism or 'sociologism'. But in this form, the theory can be confronted with experience. And experience shows that it is certainly false.

Beethoven, to take an instance from the field of aesthetics, which has a certain similarity to that of ethics, is surely to some extent a product of musical education and tradition, and many who take an interest in him will be impressed by this aspect of his work. The more important aspect, however, is that he is also a producer of music, and thereby of musical tradition and education. I do not wish to quarrel with the metaphysical determinist who would insist that every bar Beethoven wrote was determined by some combination of heredity and environmental influences. Such an assertion is empirically entirely insignificant, since no one could actually 'explain' a single bar of his writing in this way. The important thing is that everyone admits that what he wrote can be explained neither by the musical works of his predecessors, nor by the social environment in which he lived, nor by his deafness, nor by the food which his housekeeper cooked for him ; not, in other words, by any definite set of environmental influences or circumstances open to empirical investigation, or by anything we could possibly know of his heredity.

I do not deny that there are certain interesting sociological aspects of Beethoven's work. It is well known, for instance, that the transition from a small to a large symphony orchestra is connected, in some way, with a socio-political development. Orchestras cease to be the private hobbies of princes, and are at least partly supported by a middle class whose interest in music greatly increases. I am willing to appreciate any sociological 'explanation' of this sort, and I admit that such aspects may be worthy of scientific study. (After all, I myself have attempted similar things in this book, for instance, in my treatment of Plato.)

What then, more precisely, is the object of my attack ? It is the exaggeration and generalization of any aspect of this kind. If we 'explain' Beethoven's symphony orchestra in the way hinted above, we have explained very little. If we describe Beethoven as representing the bourgeoisie in the process of emancipating itself, we say very little, even if it is true. Such a function could most certainly be combined with the production of bad music (as we see from Wagner). We cannot attempt to explain Beethoven's genius in this way, or in any way at all.

I think that Marx's own views could likewise be used for an empirical refutation of sociological determinism. For if we consider in the light of this doctrine the two theories, activism and historicism, and their struggle for supremacy in Marx's system, then we will have to say that historicism would be a view more fitting for a conservative apologist than for a revolutionary or even a reformer. And, indeed, historicism was used by Hegel with that tendency. The fact that Marx not only took it over from Hegel, but in the end permitted it to oust his own activism, may thus show that the side a man takes in the social struggle need not always determine his intellectual decisions. These may be determined, as in Marx's case, not so much by the true interest of the class he supported as by accidental factors, such as the influence of a predecessor, or perhaps by shortsightedness. Thus in this case, sociologism may further our understanding of Hegel, but the example of Marx himself exposes it as an unjustified generalization. A similar case is Marx's underrating of the significance of his own moral ideas ; for it cannot be doubted that the secret of his religious influence was in its moral appeal, that his criticism of capitalism was effective mainly as a moral criticism. Marx showed that a social system can as such be unjust ; that if the system is bad, then all the righteousness of the individuals who profit from it is a mere sham righteousness, is mere hypocrisy. For our responsibility extends to the system, to the institutions which we allow to persist.

It is this moral radicalism of Marx which explains his influence ; and that is a hopeful fact in itself. This moral radicalism is still alive. It is our task to keep it alive, to prevent it from going the way which his political radicalism will have to go. 'Scientific' Marxism is dead. Its feeling of social responsibility and its love for freedom must survive.

-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Vol II Hegel and Marx, Karl R. Popp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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