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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 관한 이성적 이론을 향하여
이 강연의 제목에서 ‘향하여(towards)’라는 단어가 강조되어야 한다: 나에게는 완전한 이론 같은 것을 제시할 의도는 없다. 나는 전통에 관한 이론이 답변해야 할 종류의 문제를 여러분들에게 설명하여 예시하고 싶고, 그 이론을 구축하는 데에 유용할 몇 가지 아이디어를 개요로 내놓고 싶다. 서문을 통하여 내가 어떻게 그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 주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말하려는 의도가 나에게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주제를 향하여 가능한 몇 가지 견해를 언급하려는 의도가 또한 있다.
나는 일종의 이성주의자(理性主義者: rationalist)이다. 나는 나의 이성주의(理性主義: rationalism)가 여러분에게 수용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를 완전히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밝혀질 것이다. 나는 과학적 방법에 매우 관심이 많다. 얼마 동안 자연 과학의 방법을 연구한 다음에, 나는 사회 과학의 방법을 또한 연구하는 것이 아마도 흥미로울 것이라고 느꼈다. 내가 처음으로 전통에 관한 문제와 마주친 것은 그 때였다. 정치학, 사회적 이론, 기타 등등의 분야에서 반(反)이성주의자들은 이 문제가 어떤 종류의 이성적 이론에 의해서도 다루어질 수 없다고 보통 제안한다. 그들의 자세는 전통을 주어진 것으로만 수용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전통을 수용해야 한다; 여러분은 전통을 이성화(理性化: rationalize)할 수 없다; 전통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여러분은 전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전통을 수용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 반(反)이성주의적 견해와 연관된 가장 중요한 이름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라는 이름이다. 그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프랑스 혁명의 이념에 대항하여 싸웠고, 그가 지닌 가장 효율적인 무기는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비이성적인 힘의 중요성을 그가 분석한 것이었다. 그가 이성주의자들에 의하여 올바르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내가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버크(Burke)를 언급한다. 대신에 이성주의자에게는 그의 비판을 무시하고,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견해에서 인내하는 경향이 있었다. 의심할 바 없이 이성주의와 전통주의(傳統主義: traditionalism) 사이에는 전통적인 적대감이 있다. 이성주의자들에게는 다음 견해를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전통에 관심이 없다. 나는 모든 것을 자체의 장점으로 판단하고 싶다; 나는 모든 것의 장점과 단점을 찾아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옥스퍼드의 막달렌(Magdalen) 대학에서 1948년 7월 26일에 열린 이성주의 출판 협회의 3차 연례 회의에서 한 강연의 원고 (의장은 A. E. 히스[Heath] 교수); 이성주의 연감에 1949년 최초로 발간됨.
이것을 어떤 전통과도 완전히 독립적으로 하고 싶다. 나는 그것을 옛날에 살았던 다른 사람들의 두뇌로써가 아니라 내 자신의 두뇌로써 판단하고 싶다.’
이 견해가 가정하는 것처럼 문제가 그렇게 완전히 간단하지 않다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이성주의자 자신이 전통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이성주의적 전통에 의하여 매우 속박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나타난다. 이것은 전통 문제를 향한 특정한 전통적인 견해의 약점을 드러낸다.
우리의 의장은 우리는 반(反)이성주의적 반동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오늘 우리에게 말했다; 그 반동은 무시될 만하지는 않아도 매우 미약하다고. 그러나 나는 심각한 종류의 반(反)이성주의적 반동이 진실로 존재하며 그것도 매우 영리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고, 그리고 그 반동은 이 특정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상당한 숫자의 뛰어난 사상가들이 전통의 문제를 이성주의를 때리는 큰 몽둥이로 발전시켰다. 나는 정말로 독창적인 사상가이자 캠브리쥐 대학의 역사학자인 마이클 오우크쇼트(Michael Oakeshott)를 보기를 들겠는데, 그는 최근 캠브리쥐 저널에서 이성주의를 공격했다.? 나는 그의 혹평과 주로 의견을 달리한다; 그러나 나는 그 공격이 강력한 공격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가 공격을 했을 때 그의 논증에 합당한 답변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이성주의적 논문은 많지 않았다. 어떤 답변들이 존재할 것이지만, 나는 그 답변의 합당성을 매우 많이 의심한다. 이것이 이 주제가 중요하다고 내가 느끼는 이유 중 한 가지 이유이다.
나로 하여금 이 문제를 들고 나오도록 만들었던 또 다른 것은 내 자신의 경험뿐이었다 - 내 자신의 사회적 환경의 변화. 나는 비엔나에서 영국으로 와서, 여기 영국의 분위기가 내가 자란 분위기와 매우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오늘 아침 J. A. C. 브라운(Brown) 박사로부터 그가 공장의 ‘분위기’라고 부르는 것의 커다란 중요성에 관한 몇 가지 흥미로운 말을 들었다.? 그가 이 분위기는 전통과 관련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는 유럽대륙의 전통, 즉 유럽대륙의 분위기에서 영국의 분위기로 옮겨와서, 나중에 잠시 동안 뉴질런드의 분위기로 옮겨갔다. 이 환경 변화들로 인하여 나는 의심할 바 없이 이 문제들에 대하여 생각하고 그 문제들을 한층 더 연구하도록 자극을 받았다.
커다란 중요성을 지닌 특정 형태의 전통은 지역적이어서 쉽게 이식될 수 없다. 이 전통들은 귀중한 것들이고, 그 전통들이 사라진 다음에 복원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나는 과학적 전통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그 전통에 나는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다. 나는 과학적 전통이 실제로 뿌리를 내린 극소수의 장소로부터 그 전통을 이식한다는 것이 지난함을 보았다. 2000년 전 이 전통은 그리스에서 파괴되었고, 그 전통은 오랫동안 다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유사하게, 그 전통을 영국으로부터 해외로 이식하려는 최근의 시도는 너무나 성공적이 못했다. 해외의 몇몇 국가에서 연구전통의 결핍보다 더 두드러진 것은 없다. 그 전통이 없는 곳에서 그 전통이 뿌리내리기를 사람들이 원한다면, 사람들은 정말로 투쟁을 한다. 내가 뉴질런드를 떠날 때 그 대학의 총장이 연구 문제를 완전히 조사하는 일을 맡았음을 나는 아마도 언급할 것이다. 그 연구의 결과로 그는 그 대학의 연구 등한시 때문에 대학을
? M. 오우크쇼트(Oakeshott)의 정치학에서의 이성주의와 다른 논문들(Rationalism in Politics and other Essays), 1962, 1-36쪽에 재발간됨.
? 문학 안내(The Literary Guide) 1948년 10월에 요약된 강연 ‘산업 집단 속의 이성적 및 비이성적 행태(Rational and Irrational Behaviour in Industrial Groups)’에 대한 언급.
비난해서 탁월한 비판적인 말을 했다. 그러나 이 말이 과학적 연구 전통이 이제 세워질 것임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그 까닭은 과학적 연구 전통은 조성하기가 지난한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사람들에게 그런 전통의 필요성을 확신시킬 수 있지만, 그것이 그 전통이 뿌리내려 번창할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나는 과학을 제외한 분야들로부터 보기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이 중요한 것은 과학적 분야만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기 위하여 - 비록 그 분야가 내가 주로 이야기할 분야라 할지라도 - 나에게는 음악을 언급할 필요만 있다. 내가 뉴질런드에 있을 때 나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미국제 레코드로 한 세트 구했다. 내가 이 레코드를 틀었을 때 나는 음악적 전통의 결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그 레코드들은 모차르트로부터 유래한 전통에 의하여 분명히 감흥을 받지 않은 음악가의 지휘 하에 만들어졌다.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나는 이 문제를 상술하지 않겠다; 나는 단지 나의 주요 예시로서 과학적 즉, 이성적 전통의 문제를 선택할 때, 그 문제가 가장 중요하거나 유일한 문제 둘 중 하나라는 인상을 전달할 의도가 나에게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그 문제를 언급한다.
전통을 향해서는 오직 두 가지 가능한 주요 견해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는, 흔히 전통을 심지어 인식하지도 않고,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이것을 피할 수 없다; 그 까닭은 우리는 흔히 우리가 전통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내가 시계를 왼쪽 손목에 찬다면, 나에게는 내가 전통을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매일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전통들의 영향 아래서 수백 가지 일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전통의 영향 아래서 행동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다른 가능성은 비판적 자세로, 수용이나 거부, 혹은 아마도 타협을 초래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기 전에 전통에 관하여 알고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이 전통을 이성적 근거로써 배격한다.’ 이제 우리는 전통의 구속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완전히 해방시킬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위 해방이라는 것은 실제로 한 전통에서 다른 전통으로의 이전일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의 금기들(taboos)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전통을 거부함으로써 뿐만 아니라 전통을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그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금기에 대하여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금기를 수용해야 하는지 혹은 배척해야 하는지를 자문한다면, 우리 자신을 금기로부터 해방시킨다. 그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전통을 우리 앞에 분명하게 세워놓아야 하며, 우리는 무엇이 전통의 기능과 중요성인지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이성주의자들이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의 이유인데, 이성주의자들은, 내가 희망하는 바, 그들 자신의 전통을 포함하여 모든 것에 도전하고 모든 것을 비판할 준비가 되어있는 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어도 그들 염두에서 모든 것에게 의문부호를 붙일 준비가 되어있다. 그들은 어떤 전통에도 맹목적으로 굴복하지 않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우리들이 지닌 무한한 가치를 지닌 이성주의적 전통 속에는 (그 전통을 이성주의자들은 너무 무비판적으로 그렇게 자주 수용한다) 우리가 도전해야 하는 많은 요점들이 있다고 나는 말을 해야겠다. 이성주의적 전통의 일부는, 예를 들어, 결정론에 관한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결정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보통, 우리가 비결정론을 수용한다면 우리가 자유 의지(Free Will)의 교설을 수용하게 되어, 그리하여 영혼과 은총에 관한 신학적 논쟁에 휘말리게 될 것임을 두려워하는 이성주의자들에게 의심스럽게 보인다. 나는 자유 의지에 관한 이야기를 보통 피하는데, 그 까닭은 그것이 의미하는 것에 관하여 나는 충분히 혼란을 느끼기 때문이고, 나는 심지어 자유 의지에 대한 우리의 직감이 우리를 오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나는 결정론은 많은 근거로써 옹호될 수 없는 이론이라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결정론을 수용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나는 우리가 이성주의적 전통 속에서 결정론적 요소를 제거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정론적 요소는 옹호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끝이 없는 문제를 만들어낸다. 이런 이유 때문에, 비결정론은 - 다시 말해서, 결정론의 부인 - 반드시 우리를 우리의 ‘의지’에 관한 혹은 ‘책임’에 관한 어떤 교설에도 우리를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이성주의적 전통 속의 또 다른 요소는 관찰주의라는 개념이다 - 우리가 여기저기를 보고,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서, 우리가 보고 듣고, 기타 등등 하는 것을 적어놓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안다는 개념;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지닌 지식의 재료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개념. 이것은 매우 뿌리 깊은 편견이어서, 내가 생각하기에, 과학적 방법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개념이다. 나는 나중에 이 요점으로 돌아오겠다. 서문으로서는 이 만큼만 하자.
이제 나는 전통에 관한 이론이 지닌 과제를 간단하게 개괄하겠다. 전통에 관한 이론은, 전통이 명백하게 사회학적 현상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사회학적 이론이다. 나는 여러분과 이론적 사회 과학의 과제를 간단하게 토론하고 싶기 때문에 이것을 언급한다. 이것은 흔히 오해되어 왔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회 과학의 핵심적 과제인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나는 매우 많은 이성주의자들에 의하여 간직되는 이론을 - 내가 생각하기에 사회 과학의 진정한 목표를 정확하게 반대로 의미하는 이론 - 묘사함으로써 시작하고 싶다. 나는 이 이론을 ‘사회의 음모설’로 지칭하겠다. 이 이론은, 유신론(theism: 有神論)의 대부분의 형태보다 더 원시적인데, 호머(Homer)의 사회 이론과 닮았다. 호머(Homer)는 트로이 앞의 평원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은 올림푸스 산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음모의 반영일 따름인 그런 방식으로 제신(諸神)의 힘을 상상하였다. 사회의 음모론은 이 유신론의, 그 변덕과 의지가 모든 것을 다스리는 제신(諸神)에 대한 믿음의 번역본일 따름이다. 그 이론은 하느님을 버리고 그 다음에 이렇게 질문하는 데서 나온다: ‘누가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느님의 자리는 그래서 다양한 권력자들과 권력 단체들에 의하여 채워진다 - 흉악한 압력 단체들로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경기 침체와 모든 악행을 계획한 것에 대하여 비난을 받아야 한다.
사회의 음모론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그 안에는 진실이 거의 없다. 음모론자들이 권력을 차지할 때만 그 이론은 실제로 발생하는 것들을 (내가 ‘오디푸스 효과’라고 지칭한 것의 경우) 설명하는 이론과 같은 것이 된다. 예를 들어, 히틀러가 권좌를 차지했을 때, 시온 지도 장로(Learned Elders of Zion)의 음모 신화를 믿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역모(逆謀)로써 유태인들의 음모를 능가하려고 했다 (시온 지도 장로는 시온 의정서와 연관되어 유태인들이 세계 정복을 꾀한다는 음모설로 나타난다. - 역자 주). 그러나 흥미로운 일은 그런 음모가 의도한 방식대로 드러나는 적이 없거나 -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회 이론의 진정한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실마리로서 수용될 수 있다. 히틀러는 실패한 음모를 꾸몄다고 나는 말했다. 왜 그 음모가 실패했을까? 다른 사람들이 히틀러에 대항하여 음모를 꾸몄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음모는, 간단히, 어떤 것도 정확하게 의도된대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생활에 관하여 두드러진 일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태는 항상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는 사회생활에서 우리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효과를 정확하게 만들어 내는 적이 거의 없어서, 우리는 부수적으로 원하지 않는 사태에 보통 직면한다. 물론, 우리는 특정 목표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성취할 혹은 아닐) 이 목표들과 별도로 항상 우리 행동과 관련된 어떤 원치 않는 결과들이 있다; 그리고 보통 이 원치 않는 결과들은 제거될 수 없다. 그 결과들이 왜 제거될 수 없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사회 이론의 주요 과제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매우 간단한 사례를 들겠다. 작은 마을에 있는 사람이 집을 팔아야 한다고 말하자. 얼마 전에 자신이 집 한 채가 급히 필요했기 때문에 그 마을에서 집을 산 사람이 있었다. 집을 팔려는 사람은, 평범한 상황 하에서, 구매자가 유사한 집을 구매하기를 원했을 때 지불한 금액과 비슷하게 자신의 집에 대하여 값을 받지 못할 것임을 발견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집을 팔고자 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 시장가격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적으로 그러하다. 무엇인가를 팔고자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팔고자 원하는 것의 시장 가격을 항상 싸게 만든다; 어떤 것을 구매하고자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구매하고자 원한 것의 시장 가격을 비싸게 만든다. 이것은, 물론, 작은 자유 시장에서만 사실이다. 나는 자유 시장들의 경제 체제가 또 다른 경제 체제에 의하여 갈음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장 경제에서 이것은 발생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팔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보통 시장 가격을 낮추려는 의도가 없고, 무엇인가를 구매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시장 가격을 올리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여러분은 나와 의견을 같이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원치 않는 결과들에 대한 전형적인 사례를 경험한다.
기술(記述)된 상황은 모든 상황을 예시한다. 모든 사회적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는 개인들을 만난다; 어떤 것들을 원하는; 어떤 목표를 지닌. 그들이 행동하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여, 자신들이 실현하고자 의도하는 목표들을 실현하는 한, 사회 과학들에게는 문제가 생겨나지 않는다 (그들의 소망들과 목적들이 아마도 사회적으로, 예를 들어, 어떤 전통들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는지의 문제를 제외하고). 사회 과학의 특징적인 문제들은, 의도되지 않은 결과들을, 더욱 특히 우리가 어떤 일들을 한다면 발생할 원하지 않는 결과들을 알려는 우리의 소망으로부터만 출현한다. 우리는 직접적인 결과들뿐만 아니라 이 원치 않는 간접적 결과들 또한 예견하기를 바란다. 왜 우리는 그것들 예견하고 싶어 해야 할까? 우리가 지닌 과학적 호기심 때문이거나, 우리가 그것들에 대비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능하면, 그것들을 대면하여, 그것들이 너무 위중하게 되는 것을 막고 싶어 할 것이다. (이것은, 다시, 행동을 의미하고, 그 행동과 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간 원치 않는 결과들의 출현을 의미한다.)
나는 사회 과학을 미리 준비된 음모론으로써 접근하는 사람들은 그리하여 자신들에게 사회 과학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가능성을 거부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까닭은 사회 과학의 실제적 과제?가 아무도 원치 않는 저 것들을 - 예를 들어, 전쟁이나 경기침체와 같은 것들 - 설명하는 것인 반면, 누가 그것을 원했는가를 우리가 질문함으로써 사회 안에서 실질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그들이 가정하기 때문이다. (레닌의 혁명, 특히 히틀러의 혁명과 히틀러의 전쟁은, 내가 생각하기에, 예외이다. 이것은 정말로 음모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음모론자들이 - 매우 의미심장하게, 자신들의 음모를 완성하는 데에 실패했던 - 권력을 쥐었다는 사실의 결과들이다.
우리의 의도와 행동에서 의도하지 않는 결과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이런저런 일을 특정 사회적 상황에서 한다면 어떤 종류의 결과들이 발생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사회 이론의 과제이다. 그리고 특히 이런 방식으로 제도들의 (경찰이나 보험회사나 학교나 정부와 같은 것들), 그리고 사회적 집단들의 (국가나 민족이나 계급이나 다른 사회적 단체들과 같은 것들) 존재와 기능을 분석하는 것이 사회 과학의 과제이다. 음모 이론가에게는 제도란 완전히 의식적인 고안의 결과로서 이해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집단들에 대해서, 음모 이론가는, 정확하게 집단들이 개인들인 것처럼 음모를 꾸미는 행위자들로 취급하면서, 일종의 집단-개성이 집단들에게 속해 있다고 보통 간주한다. 이 견해와 반대로, 제도들과 집단들의 존속이, 개인들에 의하여 의도된 사회적 결과들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회적 행동들과 그 행동들에 의하여 의도되지 않는 (그리고 흔히 윈치 않는) 사회적 결과들을 또한 분석함을 통하여 해결될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사회 이론가는 인정해야 한다. 전통에 관한 이론의 과제도 유사한 관점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전통 만들기를 의식적으로 원하는 것은 매우 드물 따름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 경우에도 사람들은 성공할 것 같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 전통 만들기를 꿈꾸지 않는 사람들은, 전통을 만들 의도도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전통에 관한 이론의 문제들 중 한 문제에 도달한다: 어떻게 전통들이 사람들의 행동의 (아마도 의도되지 않은) 결과로서 발생하는가? -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 어떻게 전통들은 지속되는가?
두 번째이자 더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다: 사회생활에서 전통의 기능은 무엇인가? 전통은, 학교나 경찰이나 식료품 가게나 주식거래나 다른 그런 사회 제도들의 기능을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성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기능을 지니고 있는가? 우리는 전통들이 지닌 기능을 분석할 수 있는가? 그것이 아마도 전통에 관한 이론이 지닌 주요 과제이다. 이 과제에 접근하는 나의 방식은 특정 전통을 - 이성적 즉, 과학적 전통 - 보기로서 분석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나에게는 나중에 다양한 목적을 위하여 이 분석을
? 강연 후의 토론회에서, 나는 음모론을 배격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을 받았고, 칼 마르크스가 사회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자본주의적 음모가 지닌 엄청난 중요성을 폭로했다고 주장되었다. 나는 답변으로 내가 마르크스에게 진 빚을 언급했어야 했는데, 마르크스는 음모론을 비판한 최초의 사람 중 한 명이었고, 특정 사회적 환경에서 행동하는 사람들의 자발적 행동들이 초래하는 의도되지 않는 결과들을 분석한 최초의 사람 중 한명이었다고 나는 말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노동자만큼 사회적 상황이라는 (혹은 ‘사회적 체제’) 그물망에 걸려있다고 철저히 분명하고 명백하게 말했다; 자본가는 자기가 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자본가는 노동자만큼 부자유스럽고, 그의 행동이 낳는 결과들은 대부분 의도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지녔던 진정으로 과학적인 (나의 견해로는 너무 결정론적인) 접근방식은 자신의 훗날 추종자들이던 통속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하여 망각되었는데, 그들은 괴벨스(Goebbels)가 주장한 시온 지도 장로에 대한 신화보다 조금도 우수하지 않는 대중적인 사회의 음모론을 제시했다 (괴벨스는 히틀러의 선전상이었다 - 역자 주).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다.
나의 주요 목표는, 한 편으로, 과학적 시험에 부쳐진 후에 이성적 즉, 과학적 견해의 결과로서 주로, 다시 말해서, 과학적 가설들로 여겨지는 이론들 과 그 이론들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방향을 잡는 데에 우리는 돕는 방식을 비교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 믿음, 견해, 그리고 일반적인 전통들과 그것들이, 특히 이 사회적 세상에서, 우리의 방향을 잡아주는 데에 도움을 줄 방식을 비교하는 것.
우리가 과학적 전통이라고 지칭하는 특이한 일은 자주 토론되었다. 기원전 6세기와 5세기에 그리스의 어느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발생했던 특이한 일에 관하여 사람들은 자주 의아해 했다 - 이성적인 철학의 창안.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왜 그 일이 일어났으며, 어떻게 일어났을까? 몇몇 현대 사상가들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자연에서 발생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최초의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한다. 나는 왜 이것이 만족스럽지 못한 설명인지를 여러분에게 밝힐 것이다.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은 자연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를 이해하려고 정말로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에 앞선 더 원시적인 신화(神話)-제조가들 또 그러했다.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이 - 우리들이 가진 과학적 전통을 창시한 사람들 - 지녔던 표준에 의하여 갈음된 그 원시적 형태의 신화(神話)를 우리는 어떻게 특징지을 수 있을까? 그 원시적 형태의 신화(神話)를 개략적으로 설명해서, 과학이전의 신화(神話)-제조자들은, 폭풍우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 이렇게 말했다: ‘아 그래, 제우스 신(神)이 화가 났어.’ 그리고 그들이 바다가 거칠어진 것을 보면, 이렇게 말했다: ‘해신(海神) 포세이돈이 화났어.’ 그것이 이성주의적 전통이 새로운 기준의 설명을 도입하기 전에 만족스럽게 알려졌던 형태의 설명이었다. 무엇이 실제로 결정적인 차이점이었을까? 우리는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하여 도입된 새로운 이론들이 낡은 이론들보다 더 쉽게 이해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폭풍우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이해하는 것보다 제우스 신(神)이 화가 났다는 서술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 그리고 공기와 물표면 사이의 마찰로써 하는 서술보다, 해신(海神) 포세이돈이 화가 났다는 서술이 나에게는 바다의 높은 파도에 대하여 훨씬 더 간단하고 훨씬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설명이다.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이 도입한 혁신은 개략적으로 이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철학자들은 문제들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종교적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그리고 변경될 수 없는 것으로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의 단어 하나를 고모가 바꾸면 항의하는 아이들처럼) 수용하는 대신에, 전통을 단순히 물려주는 대신에, 그 철학자들은 그 전통에 도전했고, 때때로 심지어 낡은 신화(神話) 대신에 새로운 신화(神話)를 만들어냈다. 옛 이야기의 자리에 그 철학자들이 놓은 이야기들은, 근본적으로, 신화(神話)들이었음을 - 옛이야기들이 신화(神話)들이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 새로운 이야기들에 관해서 주목될 두 가지 것이 있다.
먼저, 새로운 이야기들은 옛 이야기들의 단순한 반복이거나 재배열이 아니라 새로운 요소를 담고 있었다. 이것 자체가 매우 큰 장점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러나 두 번째이자 주요한 것은 이것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새로운 전통을 - 신화(神話)들에 대하여 비판적 자세를 채택하는 전통, 신화(神話)들을 토론하는 전통 - 창안했다; 신화(神話)를 말하는 것만에 대한 전통이 아니라 신화(神話)를 듣는 사람에게서 도전을 받는 전통 또한. 자신들이 만든 신화(神話)들을 말하면서 그리스 철학자들은 청취자들이 그 신화(神話)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을 순서에 따라서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그리하여 청취자가 아마도 자신들보다 더 나은 설명을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이것이 전에는 발생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질문을 하는 새로운 방식이 출현했다. 설명과 - 신화(神話) - 함께 이런 질문이 출현했으리라: ‘당신은 더 나은 설명을 나에게 내놓을 수 있는가?’; 그러면 또 다른 철학자가 아마도 대답했으리라: ‘예, 내놓을 수 있지요.’ 혹은 그는 아마도 이렇게 대답했으리라: ‘더 나은 설명을 당신에게 내놓을 수 있을지를 나는 모르지만, 그만큼 설명할 수 있는 매우 다른 설명을 나는 당신에게 내놓을 수 있소. 이 두 가지 설명 모두가 사실일 리는 없어서, 여기서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이 있소. 우리는 이 두 가지 설명을 수용할 수 없을 따름이오. 또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설명 중 하나만을 수용할 이유도 없소. 우리는 정말로 그 문제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소. 우리는 그 문제를 심층적으로 토론해야 하오. 우리는 우리의 설명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그리고 혹시 심지어 우리가 지금까지 간과했던 것들을, 실제로 정말로 설명하는지를 알아야 하오.’
나의 주장은 소위 ‘과학’은, 신화(神話)와 구별되는 것이 됨으로써가 아니라 두 번째-단계 전통에 - 신화(神話)를 비판적으로 토론하는 전통 - 의하여 동반됨으로써 차별화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첫 번째-단계 전통만 있었다. 확정된 이야기가 전해졌다. 나중에는 물론 여전히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이야기와 함께 두 번째-단계의 특징을 지닌 말없는 동반 교재 같은 것이 전해졌다: ‘나는 그 이야기를 당신에게 전한다. 그러나 당신이 그 이야기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말해 달라. 그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하라. 혹시 당신은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 두 번째-단계 전통은 비판적 즉, 논증적 자세였다. 내가 믿기에 그 전통은 새로운 것이었고, 아직도 과학적 전통에 관하여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그 점을 이해한다면, 과학적 방법에 관한 상당히 많은 문제들을 향하여 우리는 완전히 다른 자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종교가 그러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과학도 신화(神話)-만들기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신화(神話)는 종교적 신화(神話)와 매우 다르다.’ 틀림없이 과학적 신화(神話)는 다르다. 그러나 과학적 신화(神話)는 왜 다른가? 그 이유는 사람들이 이 비판적 자세를 취하면 사람들의 신화(神話)들이 정말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신화(神話)는 변한다; 그 신화(神話)들은 세상에 대하여 -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에 대하여 - 점점 더 나은 설명을 내놓는 방향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신화(神話)들은 이 이론들이나 신화(神話)들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관찰하지 못했을 것들을 관찰하라고 우리에게 도전하기도 한다.
그 때 출현한 비판적 토론에는, 처음으로, 체계적인 관찰 같은 것이 출현했다. 암묵적이지만 전통적인 요구인 ‘그 신화(神話)에 대하여 당신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당신은 그 신화(神話)를 비판할 수 있는가?와 함께, 신화(神話)가 전해진 사람, 이 사람은 신화(神話)를 받아서, 혹성의 움직임과 같이, 그 신화(神話)가 설명하기로 된 다양한 것들에게 적용할 것이다. 그 다음에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이 신화(神話)가, 실제로 관찰될 수 있는 혹성들의 움직임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는 다른 어떤 것. 그리하여 우리들의 체계적인 관찰들을 낳고, 그 관찰들을 안내하는 것은 신화(神話)이거나 이론이다 - 이론이나 신화(神話)가 지닌 진실성을 조사하는 목적으로 수행되는 관찰. 이 관점에 비추어 과학 이론의 성장은, 관찰한 것을 수집하거나 축적한 결과로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관찰들이나 관찰한 것들의 축적은 과학 이론들이 성장한 결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과학의 탐조등 이론(searchlight theory of science)’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 과학 자체가 사물을 새로 조명한다는 견해: 과학은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면서, 훨씬 더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낸다는 견해; 그리고 과학은 관찰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찰들을 낳는다는 견해.) 이런 방식으로 우리들이 만들어낸 신화(神話)들을 지닌 진실을 우리가 조사할 의도로 새로 관찰한 것들을 찾으려고 지켜본다면, 이렇게 개략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진 신화(神話)들이 특징을 바꾸어 나중에 사람들이 아마도 더 실재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되거나, 관찰될 수 있는 사실들과 더 일치함을 우리가 발견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놀랄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서, 비판이라는 압력을 받아서 신화(神話)들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하여 적당하고 더 상세한 그림을 우리에게 주는 과제에 적응하게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왜 과학적 신화(神話)들이, 비판이라는 압력을 받아서, 종교적 신화(神話)들과 그렇게 달라지는 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과학적 신화(神話)들도, 다른 신화(神話)들과 꼭 마찬가지로, 시초에는 신화(神話)들이나 허구였다는 데에 우리는 전혀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학적 신화(神話)들은 몇몇 이성주의자들이 - 감각-관찰 이론의 추종자들 - 믿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 신화(神話)들은 관찰한 것을 요약한 것들이 아니다. 나는 이 요점을 반복하고 싶다. 과학적 이론들은 단순히 관찰의 결과들이 아니다. 과학적 이론들은, 주로, 신화(神話)-만들기의, 그리고 시험의 산물이다. 시험은 부분적으로 관찰을 통하여 진행되고, 그러므로 관찰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관찰의 기능은 이론들을 만들어내는 기능이 아니다. 관찰은 이론을, 거부하고, 배척하고, 비판하는 데에 그 역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관찰은 이 관찰로 수행되는 시험들을 견디어낼 새로운 신화(神話)들을, 새로운 이론들을 만들어내라고 우리에게 요구한다. 우리가 이점을 이해한다는 조건에서만 과학에 관한 전통의 중요성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반대 견해를 지니고 있어서 과학적 이론들이란 관찰의 결과라고 믿는 여러분들 중의 사람들에게, 나는 여기서 지금 여러분이 관찰을 시작하여 관찰한 것의 결과를 나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여러분은 이것이 불공평하다고, 그리고 여기에는 지금 관찰할 매우 두드러진 것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분이, 손에 공책을 들고, 여러분이 관찰하는 모든 것을 기록하기를 일생동안 한다면, 그래서 여러분이 이 중요한 공책을 영국학사원에 마지막으로 물려주어서 그 공책으로부터 과학을 만들라고 요구한다면, 영국학사원은 아마도 그 공책을 신기한 물건으로서 보존하지만 결정적으로 지식의 근원으로서는 아니다.? 그 공책은 아마도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박물관이 지니고 있는 보물 대부분을 목록화할 여유가 없는) 대영 박물관의 어떤 지하실에서 실종될 것이지만 쓰레기더미에서 끝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나 여러분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과학적 흥미를 지닌 중요한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여기 몇몇 과학자들이 오늘날 지니고 있는 이론들이 있다. 이 이론들은 이런저런 사건들이 이런저런 상황 하에서 관찰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사건들이 관찰 가능한지 어디 보자.’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당시 출현하는 바와 같은 과학적 문제와 과학의 일반적 상황에 눈을 두고 관찰을 선택한다면, 여러분은 과학에 공헌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독단적이 되어서, 소위 우연한 발견들과 같은, 예외들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이 우연한 발견들도 매우 흔히 이론의 영향을 받아서 밝혀지는 것으로 판명될지라도.) 관찰들이, 이론들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면, 항상 무의미하다고 나는 말하지 않지만, 나는 과학의 발전에서 무엇이 주요 과정인지를 지적하고 싶다.
4 1장의 4부 참조.
이 모든 것은 발견을 하고자 원하는 젊은 과학자가 스승에 의하여, ‘여기저기 다니면서 관찰하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는 나쁜 충고를 받는 것이고,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면 충고를 잘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과학에서 사람들이 토론하고 있는 것을 배우려고 노력해라. 난제가 어디에 놓여있는지를 알아내서 의견불일치에 관심을 가져라. 이것들은 여러분이 배워야 할 문제들이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당시의 문제 상황을 연구해야 한다. 이것은, 자체의 배후에 있는 과학의 이전 전개상황에 관한 전체 배경을 지니고 있는 일련의 연구를 모아서 계속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은 과학의 전통과 뒤섞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매우 간단하고 결정적인 요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이성주의자들에 의하여 충분하게 이해되지 못하는 요점이다 - 우리는 새롭게 시작할 수 없다는 것; 우리는 이전 사람들이 과학에서 한 것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 우리가 새롭게 시작한다면, 우리가 죽을 때, 우리는 대략 아담과 이브가 죽을 때 있었던 곳까지 (혹은, 여러분이 선호한다면, 네안데르탈인들이 있던 곳까지) 가 있을 것이다. 과학에서 우리는 진보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우리 선배들의 어깨 위에 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특정 전통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과학자로서 원하는 것의 - 이해, 예측, 분석, 기타 등등 -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매우 복잡하다. 나는, 이 표현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 세상이 무한히 복잡하다고 말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이 세상에 대한 분석을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에게 말해주는 지혜도 없다. 심지어 과학적 전통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과학적 전통은 단지 어디에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시작해서 어디에 그들이 도달했는지를 말해준다. 과학적 전통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일종의 이론적 틀을 - 아마도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다소 작동할 틀 - 이미 구축했음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 틀은 우리에게 일종의 그물로서, 우리가 이 세상의 다양한 복잡성을 참고할 수 있는 좌표 체계로서, 우리에게 봉사한다. 우리는 그 틀을 검토함으로써, 그리고 비판함으로써 이용한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진보를 이룩한다.
과학의 성장을 설명할 두 가지 주요한 방식 중에서 하나는 다소 사소하고 다른 하나는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들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 첫 번째 방식은 지식의 축적으로써 과학을 설명한다: 과학은 커지는 도서관 (혹은 박물관)과 같다. 점점 더 많은 책들이 축적될수록, 점점 더 많은 지식이 축적된다. 다른 한 방식은 과학을 비판으로써 설명한다: 과학은 축적보다 더 혁명적인 방법으로 성장한다 - 과학이 지닌 가장 중요한 도구인, 우리의 신화(神話)들과 이론들이 형성되는 언어를 포함하여, 전부를 파괴하고, 변화시키고, 변경시키는 방법으로써.
첫 번째 방식인 축적 방식이 사람들이 믿는 것보다 훨씬 덜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흥미롭다. 과학에는 과학적 이론들이 혁명적으로 변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지식의 축적이 일어난다. 그것은 이상한 점이고, 매우 흥미로운 점인데, 그 까닭은 사람들이 아마도 첫눈에 지식의 축적적인 성장을 위하여 전통이 매우 중요하리라고, 그리고 혁명적인 종류의 발전을 위하여 전통은 덜 중요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발생한다. 과학이 단순히 축적에 의해서 성장할 수 있다면, 어느 때고 여러분은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적 전통이 사라진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어떤 것이 없어질 것이지만 그 실종은 심각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과학이 과학의 전통적 신화(神話)들을 바꿈으로써 발전한다면, 여러분에게는 이용하여 시작할 어떤 것이 필요하다. 여러분에게 변경하여 바꿀 것이 없다면, 여러분에게는 어떤 소득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는 과학을 위하여 두 가지 시작이 필요하다; 새로운 신화(神話)들과, 그 신화(神話)들을 비판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전통.?a 그러나 그런 시작들도 별로 실행되지 않는다. 기술적(記述的) 언어의 발명으로부터 - 사람이 사람으로 된 순간이라고 우리가 말할 것 - 과학의 시작까지 몇 년이나 걸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 시간을 통하여, 과학의 미래 도구인 언어는 성장하고 있었다. 언어는 신화(神話)의 성장과 함께, 그리고 사실들을 기술(記述)하는 목적으로 하고, 사실들을 설명하고 사실들에 관하여 논증하기 위한 언어를 사용하는 전통의 성장과 함께, 성장했다 - 모든 언어는 심지어 그 문법적 구조 속에 무수한 신화(神話)들과 이론들을 집어넣어 보존한다. (이것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많이) 이 전통들이 파괴된다면 여러분은 심지어 축적을 시작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축적을 위한 도구는 실종되리라.
한 가지 특정 분야에서 - 과학의 분야 - 전통이 하는 역할에 관한 보기를 내놓고 나는 이제, 다소 늦게, 전통에 관한 사회학적 이론의 문제로 나아가겠다. 나는 오늘 나의 선배인 J. A. C. 브라운(Brown) 박사에 대하여 다시 말하는데, 그는 나의 주제와, 특히 내가 기록을 했던 한 가지 일과 매우 관련이 깊은 많은 것을 말했다. 공장에 기강이 없다면 ‘노동자들은 걱정하며 두려워한다’고 그는 말했다. 지금 나는 기강을 여기서 토론하고 싶지 않다; 기강은 나의 요점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요점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의지하여 행동할 것이 없으며, 노동자들은 걱정을 하게 되고 두려워한다. 혹은 나의 요점을 다르고 더 일반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여: 우리가 알 수 없어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를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자연적 환경이나 사회적 환경에 의하여 우리가 우연히 둘러싸인 곳 어디서든지, 우리는 걱정을 하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환경 속에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를 - 예를 들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 우리가 예측할 가능성이 없다면, 이성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환경이 자연적인지 혹은 사회적인지는 다소 무관하다.
(브라운[Brown] 박사에 의하여 언급된) 기강은 특정 사회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찾는 데에 도움을 줄 것들 중의 하나일 것이지만, 브라운(Brown) 박사는 기강이 그것들 중 하나라는 것과, 무엇을 기대하고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하여 분명한 아이디어를 사람들에게 줄 다른 것들, 특히 제도들과 전통들이 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라고 나는 철저히 확신한다. 이것은 중요하다. 소위 사회생활은, 틀림없이 그렇고 다른 것이 될 수 없는 사물들과 사건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그것을 신뢰한다는 조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전통이 우리 삶에서 하는 역할이 이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여기다. 사회적 세상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맞추어 조정할 수 있는 상당한 양의 질서, 많은 규칙성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좌절하여, 우리는 이 사회적 세상에 살 수가 없을 터이다. 이 규칙성의 존재만도 아마도 그 규칙성들이 지닌 고유한 장점들과 단점들보다 더 중요하다. 그 장점들과 단점들은 규칙성들로서, 다른 면에서 이성적이거나 필수적이거나
?a 변화는, 혁명적일지라도, 성공을 보전하여 앞선 이론의 실패를 설명하여야 할 것이다; 나의 저서 과학적 발견의 논리(L. Sc. D.) 253쪽과 276쪽 이하를 참조.
훌륭하거나 아름답거나 기타 등등이든 아니든, 필요하며 그리하여 전통으로서 계승된다. 사회생활에는 전통에 관한 필요성이 있다.
그리하여 전통 창조는 이론 창조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우리의 과학적 이론들이란 우리가 혼란 속에서 살고 있는 그 혼란을 이성적으로 예측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그 혼란 속으로 얼마간의 질서를 넣으려고 우리가 노력하는 도구들이다. 나는 여러분이 이것을 심오한 철학적 선언으로서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그것은 우리의 이론들이 지닌 실용적인 기능 하나에 대한 서술일 따름이다. 유사하게, 전통 창조는, 우리의 많은 입법행위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세상에 얼마간의 질서와 이성적인 예측 가능성을 넣으려는 동일한 기능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세상이 여러분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하여 여러분이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모든 이성적 행동은 예측 가능하거나 부분적으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특정한 참고 체계(system of reference)를 지닌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신화(神話)들이나 이론들의 창조에 기능이 - 자연의 사건들에 질서를 가져오는 데에 우리를 돕는 기능 -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사회의 분야에서 전통의 창조에도 기능이 있다.
과학에서의 신화(神話)들 및 이론들의 역할과 사회에서의 전통의 역할 사이의 유추(類推)는 한층 더 나아간다. 과학적 방법에서 신화(神話)들이 지니는 커다란 중요성은 그 신화(神話)들이 비판의 목표가 될 수 있어서, 그 신화(神話)들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유사하게, 전통들에도 특정 질서나 사회적 구조와 같은 것을 창조뿐만 아니라 우리가 작동시킬 어떤 것을 우리에게 또한 주는 중요한 이중의 기능이 있다; 우리가 비판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 어떤 것. 이 요점은, 이성주의자로서 그리고 사회 개혁가로서, 우리들에게 결정적이다. 우리는 항상 더 나은 사회적 세상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을 가진다, 그리고 이 새로운 생각들에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회 개혁가들이 사회적 세상에 대한, 플라톤이 지칭한 바와 같이, 화포(畵布: canvas)를 청소하고 싶어 하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이 생각은 무의미하고 실현이 불가능하다. 여러분이 새롭게 사회적 세상을 건설한다면 그 새로운 세상이 행복한 세상일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없다. 청사진으로 된 세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을 것이라고 믿을 이유는 없다. 청사진으로 된 세상이 왜 조금이라도 더 나아야 하는가? 기술자는 청사진으로부터만 자동차 엔진을 만들지 않는다. 기술자는 자동차 엔진을 이전 모형으로부터 개발한다; 기술자는 이전 모형을 바꾼다; 기술자는 이전 모형을 반복해서 개조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세상을 우리가 완전히 청소하여, 그 세상에 있는 전통들을 완전히 청소해버리고 청사진에 기초하여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면, 곧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작은 조정을 하면서 우리는 그 새로운 세상을 개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작은 조정을 한다면, 그 작은 변화와 작은 조정은 어떤 경우에도 필요한데, 우리의 사회적 세상에서 당장 그 변화와 조정을 시작해서는 왜 안 되는가? 여러분이 무엇을 가지고 있고 어디에서 여러분이 시작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러분은 항상 작은 조정을 해야 한다. 여러분이 항상 작은 조정을 해야 할 것임을 고려하여, 당장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타당한데, 그 이유는 현재하는 것들 중에서 우리는 적어도 어디에 문제가 놓여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적어도 어떤 것들에 대하여 그것들이 나빠서 바뀌기를 우리가 원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훌륭한 신세계(wonderful brave new world)를 만든다면 우리가 그 신세계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아내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게다가 (잘못된 이성주의적 전통의 일부인) 화포-청소(畵布: canvas-淸掃)라는 생각은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이성주의가가 사회적 화포(畵布: canvas)를 청소하여 전통을 완전히 쓸어버리면, 그는 반드시 전통과 함께 자신과 자신의 모든 생각과 미래에 대한 자신의 모든 청사진을 쓸어버리게 된다. 텅 빈 사회적 세상에서는, 사회적 진공 상태에서는, 청사진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 청사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세상으로부터 모두 출현하는 전통들과 제도들의 - 신화(神話)들과 시(詩)와 가치들과 같은 것들 - 환경 속에서를 제외하고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 환경 밖에서는 청사진이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려는 바로 그 대안과 바로 그 열망은, 우리가 옛 세상의 전통들을 파괴하자마자, 틀림없이 사라진다. 과학에서 우리가 이렇게 말한다면 엄청난 손실이리라: ‘우리는 그다지 많은 진보를 이룩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과학을 휩쓸어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자.’ 이성주의적 과정은 모든 과학을 수정하여 혁명화 하자는 것이지 휩쓸어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낼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이론은 옛 이론이 해결하지 못한 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만들어진다. (위 주석 ?a 참조.)
우리는 사회생활에서 전통이 지닌 기능을 간단하게 조사하였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어떻게 전통이 출현하는지, 어떻게 전통들이 계승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전통들이 정형화될 것인지에 - 이 모든 것이 행동이 낳는 의도되지 않은 결과들이기 때문에 - 관한 문제에 우리가 답변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왜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연환경에 관한 법칙들을 배우려고 (그리고 그 법칙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흔히 신화[神話]의 형태로, 가르치려고) 노력하는지 뿐만 아니라, 왜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환경에 관한 전통들을 배우려고 노력도 하는지를 이제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왜 사람들에게 (특히 원시 민족들과 아이들) 신화(神話)들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는지를 우리는 이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행동에서 일률성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는데, 첫째로 그 이유는 사람들이 불규칙성과 변화를 두려워하여 불규칙성과 변화를 만들어내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람들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을 유사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만들려는 희망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지닌 합리성이나 예측 가능성을 확신시키기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는, 신중하게 전통들에 순응함으로써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전통들에 또한 순응하라고 걱정스레 주장을 함으로써, 전통을 창조하고 또 자신들이 발견하는 전통을 재확인하는 경향 양쪽 모두가 있다. 이것이 전통적 금기들(禁忌: taboos)이 출현하는 방식이며 그 금기들이 계승되는 방식이다.
이것이 모든 전통주의에 특징적인 강력하게 감정적인 불용(不容: intolerance)을, 이성주의자들이 항상 그리고 올바르게 지속적으로 저항했던 불용을 부분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경향 때문에 그런 상태로서의 전통들을 공격하도록 설득 당했던 저 이성주의자들이 틀렸었음을 우리는 이제 분명하게 안다. 그 이성주의자들이 실제로 원했던 것은 전통주의자들이 지닌 불용을 새로운 전통으로써 - 관용의 전통 - 갈음하는 것이었다고, 아마도, 우리는 이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금기주의(禁忌主義: tabooism) 자세를, 현존하는 전통들이 지닌 장점들을 단점들에 비교하여 평가하면서, 그리고 현존하는 전통들이 확립된 전통들이라는 사실에 놓여있는 장점을 잊지 않으면서, 현존하는 전통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자세로 갈음하는 것. 그 까닭은 우리가, 현존하는 전통들을 더 나은 전통들로써 (혹은 우리가 더 나은 전통들이라고 믿는 것으로써) 갈음하기 위하여, 궁극적으로 현존하는 전통들을 배척한다 할지라도, 과학에서의 모든 진보가 틀림없이 과학적 이론들의 틀 안에서 진행되고 그 이론들 중 몇 가지는 다른 이론들에 비추어 비판을 받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모든 사회적 비판과 모든 사회적 향상은 틀림없이 사회적 전통들의 틀을 참고하고 그 전통들 중 몇 가지는 다른 전통들의 도움을 받아서 비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인식해야 한다.
여기서 전통들에 관하여 언급된 것 중 많은 것은 제도들에 관해서도 언급될 수 있는데, 그 까닭은 전통과 제도가 대부분의 면에서 두드러지게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단어의 평범한 용례에서 발견될 수 있는 차이점을 보존하는 것이 (혹시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을지라도) 바람직하게 보여서, 나는 이 두 종류의 사회적 존재 사이의 유사점들과 차이점들을 꺼내려고 노력함으로써 나의 말을 끝내겠다. ‘전통’과 ‘제도’라는 술어들을 공식적 정의(定義)로써 구분하는 일이 훌륭한 관행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술어들의 사용은 보기들의 도움을 받아서 설명될 것이다. 학교, 경찰, 식료품 가게, 그리고 주식거래를 사회제도의 보기들로서, 그리고 다른 곳에서 과학적 연구나 과학자들이 지닌 비판적 자세나 관용의 자세나 전통주의자들이 지닌 불용(不容: intolerance)에 - 혹은 그 문제에 대하여, 이성주의자들이 지닌 불용(不容: intolerance) ) - 대한 열렬한 관심과 같은 것들을 전통들에 관한 보기들로서 내가 언급했기 때문에, 사실상 나는 이미 전통과 제도를 보기를 들어 설명했다. 제도와 전통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다른 것들 중에서 전통들과 제도들은 개별적인 인간들, 그 인간들의 행동과 자세와 믿음과 기대와의 상호관계를 통하여 사회과학에 의하여 분석되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주로 우리가 사람들의 자세나 사람들의 행동양식들이나, 목표 혹은 가치나, 취향들이 지닌 일률성을 기술(記述)하고 싶은 때 우리가 전통에 대하여 말하는 반면, (변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특정한 규범 한 벌을 준수하거나, 첫눈에 사회적 목적인 것들에 (지식의 전파, 혹은 폭력이나 굶주림으로부터의 보호와 같은 것들) 부합하는 특정한 첫눈에 사회적인 기능들을 (교육이나 경찰역할이나 식료품 판매와 같은 것들) 성취하는 곳마다 우리에게는 제도에 대하여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우리는 아마도 말할 것이다. 그리하여 전통은 아마도 제도들보다 사람들과 사람들이 지닌 호오(好惡), 사람들이 지닌 희망과 두려움에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전통은, 말하자면, 사람들과 제도들 사이에서 사회이론 속의 중간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제도’에 대해서보다는 ‘살아있는 전통’에 대하여 더 자연스럽게 말한다.)
문제의 차이점은 내가 때때로 ‘사회제도들의 양면 가치(ambivalence of social institutions)’라고 지칭했던 것 즉, 사회제도는, 특정 상황에서, 그 제도의 첫눈에 보이는 혹은 ‘고유한’ 기능과 뚜렷이 대조를 이루는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사실을 참고하여 더 분명해질 것이다. 기숙학교가 그 학교가 지닌 ‘고유한’ 기능으로부터 악용되는 것에 대하여 디킨즈(Dickens: 영국 작가 찰스 디킨즈 - 역자 주)는 말할 것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경찰이, 폭력과 협박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대신에, 사람들을 협박하기 위하여 폭력이나 투옥으로 위협하는 일이 발생했다. 유사하게 의회의 야당이라는 제도는, 자체가 지닌 첫눈에 보이는 기능들 중 하나가 정부가 납세자들의 돈을 횡령하는 것을 막는 것인데, 특정 국가들에서 다른 방식으로 - 횡령한 돈을 비례제로 나누어 먹는 데에 대한 도구가 됨으로써 - 작동했다. 사회제도들의 양면 가치는 사회제도들의 특징과 연결되어 있다 - 사회제도들이 특정한 첫눈에 보이는 기능들을 수행한다는 사실과, 그리고 제도들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서만 혹은 (그러므로 역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다른 제도들에 의하여 통제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양면 가치는 신중하게 구축된 제도적 견제에 의하여 분명히 많이 감소될 수 있지만,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도의 기능은, 요새의 기능처럼, 그 제도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달려있다; 그래서 제도적 견제에 의하여
? 이 관행에 대한 비판에 관하여, 나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11장 참조.
수행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 제도들이 지닌 ‘고유한’ 사회적 목적을 위하여 제도를 사용할 의도를 지닌 저 사람들에게 (만약 있다면) 더 우세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전통이 인간과 제도 사이에서 중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여기이다. 전통들은, 틀림없이, 또한 악용될 것이다; 여기에서 기술(記述)된 양면 가치에 상응하는 어떤 것이 역시 전통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전통이 지닌 특징은 제도가 지닌 특징보다 덜 도구적이기 때문에 이 양면 가치에 의하여 영향을 적게 받는다. 제도는 또한 전통보다 덜 인격적인데, 전통은 반대로 제도를 담당하는 개별 인간들보다 덜 인격적이면서 더 예측 가능하다. 아마도 제도의 장기적인 ‘고유한’ 기능은 주로 그런 전통들에 의존한다고 언급될 것이다. (왔다가 가는) 사람들에게 부패에 저항하는 목적의 저 배경과 확실성을 주는 것은 전통이다. 전통은, 말하자면, 전통을 세운 사람의 개인적 자세 같은 것을 그의 개인적 생애를 넘어 멀리 확대시킬 수 있다.
두 가지 술어의 가장 전형적인 용례들에 관한 관점으로 고찰하여, ‘전통’이라는 술어가 지니는 함축된 의미 하나는, 문제의 전통에 관한 근원으로서나 혹은 그 전통이 계승되는 방식으로서, 모방에 대한 언급이다. 이 함축된 의미는, 내가 생각하기에, ‘제도’라는 술어에는 없다: 제도는 그 근원을 모방에서 가질지 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제도는 모방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계속할지 계속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 몇 가지는 제도로서 - 특히 전통이 일반적으로 지켜지는 저 (하위) 사회의 제도들로서 - 또한 기술(記述)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성주의적 전통 즉, 비판적 자세의 채택은 과학 연구자들의 (하위) 사회 안에서는 제도적이라고 (사람이 쓰러졌을 때는 발로 차는 것이 아닌 전통은 - 거의 - 영국식 제도라고) 아마도 우리는 말할 것이다. 유사하게 가령 분리부정사를 피하는 관행이 전통인 (그것이 특정 무리 안에서는 제도적이라 할지라도) 반면, 우리는 영어가, 전통에 의하여 계승된다 할지라도, 제도라고 말할 것이다 (분리부정사는 to부정사의 어순에 부사를 집어넣은 것이다. - 역자 주).
이 요점 몇 가지는 언어에 관하여 사회적 제도가 지닌 특정 모습을 고찰함으로써 한층 더 예시될 것이다. 언어의 기능인 의사소통은 K. 뷜러(Bühler)에 의하여 세 가지 기능으로 분석되었다: (1) 표현적 기능 - 다시 말해서 의사소통은 화자(話者)의 감정이나 사고(思考)를 표현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2) 신호적 혹은 자극적 혹은 표출적 기능 - 다시 말해서 청취자 안에서 특정 반응들을 자극하거나 표출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언어적 반응); 그리고 (3) 기술적(記述的) 기능 - 다시 말해서 의사소통은 사건들의 특정 상태를 기술(記述)한다. 이 세 가지 기능은 각 기능이 대체로 앞의 기능에 의하여 동반되지만 뒤의 기능에 의해서 동반될 필요가 없는 한 분리될 수 있다. (3)의 기능이 특징적으로 인간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반면, (1)과 (2) 기능은 동물 언어에도 또한 적용된다. 뷜러(Bühler)가 주장하는 이 세 가지 기능에 네 번째 기능을 덧붙이는 일이 가능하며 (그리고 나는 필요하다고 믿는다), 우리의 관점에 비추어 특히 중요한 기능으로, 즉 (4) 논증적 즉, 설명적 기능으로 - 다시 말해서 어떤 분명한 문제들과 연계한 논증이나 설명의 제시 및 비교이다.? 특정 언어에는 네 번째 기능 없이 처음 세 가지 기능만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는 단계에 놓인 아이의 언어). 이제, 제도의 특징으로 특별하게 생각될 때 언어가 세 가지 기능을 가지는 한, 그 언어는 양면 가치를 지닐 것이다. 예를 들어 그 언어는 화자(話者)에 의하여 자신의 감정이나 사고(思考)를 표현하는 것만큼 감추는 데에, 혹은 논증을 자극하기 보다는 억누르는 데에 사용될 것이다. 그리고 이 기능들 각각에 연결된 다른 전통들이 있다. 예를 들어, 각 언어의 표현적 기능과 관련한 이탈리아와 (사람들이 삼가서 말하는 전통을 지닌) 영국의 다른 전통들은 매우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언어가 지닌 두 가지 특징적으로 인간적인 기능들과 - 기술적(記述的) 기능과 논증적 기능 - 관련하여 실제로 중요해진다. 언어의 기술적(記述的) 기능에서, 우리는 언어를 진실의 도구로서 말할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기술적(記述的) 기능은 물론 또한 거짓의 도구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양면 가치에 저항하고 올바른 기술(記述)을 목적으로 하는 언어 사용에 (적어도 거짓말에 대한 강력한 유혹이 없는 모든 경우에) 찬성하여 작동하는 전통이 없다면, 언어의 기술적(記述的) 기능은 몰락하리라; 그 까닭은 아이들이 그 경우에 언어의 기술적(記述的) 쓰임을 배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언어의 논증적 기능과 관련된 양면 가치에 저항하여 작동하는 전통으로, 사이비-논증과 정치 선전을 근간으로 하는 언어의 오용(誤用)에 저항하는 전통이다. 이것은 분명히 말하고 분명히 생각하는 전통이자 기강이다; 그것은 비판적 전통 - 이성(理性)의 전통 - 이다.
이성에 대한 현대의 적(敵)들은 이 전통을 파괴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인간 언어의 논증적 기능과 아마도 심지어 기술적(記述的)기능을 파괴하고 악용함으로써 이 전통을 파괴하고 싶어 한다; 언어가 지닌 감정적 기능들로 - 표현적 기능과 (‘자기-표현[self-expression]’에 관해서는 너무나 많은 말이 있다) 아마도, 신호적이거나 자극적 기능 - 낭만적으로 회귀함으로써 (저자는 자기-표현 즉, self-expression에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 혼자 떠드는 말로서 비이성적인 횡설수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 역자 주). 우리는 이러한 경향이 현대적 운문, 산문, 그리고 철학의 - 논증될 수 있는 문제들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논증을 하지 않는 철학 속에서 - 특정 형태 속에서 작동 중임을 매우 분명하게 본다. 이성에 대한 새로운 적(敵)들은 때때로 자기표현이나 ‘의사소통’에 관한 새롭고 인상적인 수단을 구하는 반(反)전통주의자들이며, 때때로 언어적 전통의 지혜를 칭송하는 전통주의자들이다. 이런 반(反)전통주의자들과 이런 전통주의자들 모두, 실제로는 그들이 이성(理性)으로부터 그리고 지성(知性)의 책임이라는 위대한 전통으로부터 도피를 지지하는 반면, 첫 번째 또는 아마도 두 번째 언어의 기능만을 보는 언어 이론을 묵시적으로 지지한다.
? 아래 12장 또한 참조 (12장은 아직 번역되지 않음. - 역자 주). 내가 논증적 기능과 설명적 기능을 동일한 것으로서 간주하는 이유는 여기서 논의될 수 없다; 그 기능들은 설명과, 연역에 대한 설명의 관계 (혹은 논증)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데서 나온다,
? 평범한 지도(地圖)는 논증적이지 않은 기술(記述)의 보기이기도 하다; 그 지도가 물론 논증적 언어의 내부에서 논증을 지지하는 데에 사용될지라도.
- “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 칼 R. 포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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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WARDS A RATIONAL THEORY OF TRADITION
IN THE title of this talk the emphasis should be put on the word 'towards': I do not intend to put forward anything like a full theory. I want to explain to you and to illustrate the kind of question which a theory of tradition would have to answer, and to give in outline some ideas which may be useful for constructing it. By way of introduction I intend to say how I came to be interested in the subject, and why I think it is important; and I also intend to refer to some possible attitudes towards it.
I am a rationalist of sorts. I am not quite certain whether or not my rationalism will be acceptable to you, but that will be seen later. I am very interested in scientific method. Having studied for some time the methods of the natural sciences, I felt that it might be interesting to study also methods of the social sciences. It was then that I first met with the problem of tradition. The anti-rationalists in the field of politics, social theory, and so on, usually suggest that this problem cannot be tackled by any kind of rational theory. Their attitude is to accept tradition as something just given. You have to take it; you cannot rationalize it; it plays an important role in society, and you can only understand its significance and accept it. The most important name associated with this anti-rationalist view is that of Edmund Burke. He fought, as you know, against the ideas of the French Revolution, and his most effective weapon was his analysis of the importance of that irrational power which we call 'tradition'. I mention Burke because I think he has never been properly answered by rationalists. Instead rationalists tended to ignore his criticism and to persevere in their attitude without taking up the challenge. Undoubtedly there is a traditional hostility between rationalism and traditionalism. Rationalists are inclined to adopt the attitude: 'I am not interested in tradition. I want to judge everything on its own merits; I want to find out its merits and demerits, and I want to do this quite
Transcript of a lecture given at the Third Annual Conference of the Rationalist Press Association on 26th July 1948 at Magdalen College, Oxford (the Chairman was Professor A. E. Heath); first published in The Rationalist Annual, 1949.
independently of any tradition. I want to judge it with my own brain, and not with the brains of other people who lived long ago.'
That the matter is not quite so simple as this attitude assumes emerges from the fact that the rationalist who says such things is himself very much bound by a rationalist tradition which traditionally says them. This shows the weakness of certain traditional attitudes towards the problem of tradition.
Our Chairman has told us today that we need not bother about the anti-rationalist reaction; that it is very weak, if not negligible. But I feel that there does exist an anti-rationalist reaction of a serious kind and among very clever men, and that it is connected with this particular problem. Quite a number of outstanding thinkers have developed the problem of tradition into a big stick with which to beat rationalism. I may instance Michael Oakeshott, a Cambridge historian, a really original thinker, who recently in the Cambridge Journal launched an attack on rationalism.? I largely disagree with his strictures; but I have to admit that the attack is a powerful one. When he launched it there was not much in the rationalist literature which could be considered an adequate answer to his arguments. Some answers may exist, but I very much doubt their adequacy. This is one of the reasons why I feel that this subject is important.
Another thing which induced me to take up this question was simply my own experience - my own change of social environment. I came to England from Vienna, and I found that the atmosphere here in England was very different from that in which I had been brought up. We heard this morning from Dr J. A. C. Brown? some interesting remarks about the great importance of what he calls 'the atmosphere' of a factory. I am sure that he would agree that this atmosphere has something to do with tradition. I moved from a Continental tradition or atmosphere to an English one, and later for a time to that of New Zealand. These changes have, no doubt, stimulated me to think about these matters and to try to look further into them.
Certain types of tradition of great importance are local, and cannot easily be transplanted. These traditions are precious things, and it is very difficult to restore them once they are lost. I have in mind the scientific tradition, in which I am particularly interested. I have seen that it is very difficult to transplant it from the few places where it has really taken root. Two thousand years ago this tradition was destroyed in Greece, and it did not take root again for a very long time. Similarly, recent attempts to transplant it from England overseas have not been too successful. Nothing is more striking than the lack of a research tradition in some of the countries overseas. one has a real struggle if one wants it to take root where it is missing. I may perhaps mention that at the time when I left New Zealand the Chancellor of the University undertook a thorough inquiry into the question of research. As a result of it he made an excellent critical
? Republished in M. Oakeshott, Rationalism in Politics and other Essays, 1962, pp. 1-36.
? The allusion is to the lecture 'Rational and Irrational Behaviour in Industrial Groups', summarized in The Literary Guide, October 1948
speech in which he denounced the University for its neglect of research. But few will think that this speech means that a scientific research tradition will now be established, for this is a very hard thing to bring about. one can convince people of the need for such a tradition, but that does not mean that the tradition will take root and flourish.
I could, of course, take examples from the fields other than science. To remind you that it is not only the scientific field in which tradition is important - although it is the field about which I shall mainly speak - I need only mention music. When I was in New Zealand I got hold of a set of American records of Mozart's 'Requiem'. When I had played these records I knew what the lack of musical tradition meant. They had been made under the directorship of a musician who was obviously untouched by the tradition which has come from Mozart. The result was devastating. I shall not dwell on this matter; I mention it only to make it clear that when I select for my main illustration the question of the scientific or rational tradition I do not mean to convey the impression that it is either the most important or the only one.
It should be clearly understood that there are only two main attitudes possible towards tradition. one is to accept a tradition uncritically, often without even being aware of it. In many cases we cannot escape this; for we often just do not realize that we are faced with a tradition. If I wear a watch on my left wrist, I need not be conscious that I am accepting a tradition. Every day we do hundreds of things under the influence of traditions of which we are unaware. But if we do not know that we are acting under the influence of a tradition, then we cannot help accepting the tradition uncritically.
The other possibility is a critical attitude, which may result either in acceptance or in rejection, or perhaps in a compromise. Yet we have to know of and to understand a tradition before we can criticize it, before we can say: 'We reject this tradition on rational grounds.' Now I do not think that we could ever free ourselves entirely from the bonds of tradition. The so-called freeing is really only a change from one tradition to another. But we can free ourselves from the taboos of a tradition; and we can do that not only by rejecting it, but also by critically accepting it. We free ourselves from the taboo if we think about it, and if we ask ourselves whether we should accept it or reject it. In order to do that we have first to have the tradition clearly before us, and we have to understand in a general way what may be the function and significance of a tradition. That is why it is so important for rationalists to deal with this problem, for rationalists are those people who are ready to challenge and to criticize everything, including, I hope, their own tradition. They are ready to put question-marks to anything, at least in their minds. They will not submit blindly to any tradition.
I should say that in our invaluable rationalist tradition (which rationalists so often accept too uncritically) there are quite a few points which we ought to challenge. A part of the rationalist tradition is, for example, the metaphysical idea of determinism. People who do not agree with determinism are usually viewed with suspicion by rationalists who are afraid that if we accept indeterminism, we may be committed to accepting the doctrine of Free Will, and may thus become involved in theological arguments about the Soul and Divine Grace. I usually avoid talking about free will, because I am not clear enough about what it means, and I even suspect that our intuition of a free will may mislead us. Nevertheless, I think that determinism is a theory which is untenable on many grounds, and that we have no reason whatever to accept it. Indeed, I think that it is important for us to get rid of the determinist element in the rationalist tradition. It is not only untenable, but it creates endless trouble for us. It is, for this reason, important to realize that indeterminism - that is, the denial of determinism - does not necessarily involve us in any doctrine about our 'will' or about 'responsibility'.
Another element in the rationalist tradition which we should question is the idea of observationalism - the idea that we know about the world because we look around, open our eyes and ears, and take down what we see, hear, and so on; and that this is what constitutes the material of our knowledge. This is an extremely deep-rooted prejudice and is, I think, an idea which impedes the understanding of scientific method. I shall return to this point later. So much by way of introduction.
Now I come to a brief outline of the task of a theory of tradition. A theory of tradition must be a sociological theory, because tradition is obviously a social phenomenon. I mention this because I wish briefly to discuss with you the task of the theoretical social sciences. This has often been misunderstood. In order to explain what is, I think, the central task of social science, I should like to begin by describing a theory which is held by very many rationalists - a theory which I think implies exactly the opposite of the true aim of the social sciences. I shall call this theory the 'conspiracy theory of society'. This theory, which is more primitive than most forms of theism, is akin to Homer's theory of society. Homer conceived the power of gods in such a way that whatever happened on the plain before Troy was only a reflection of the various conspiracies on Olympus. The conspiracy theory of society is just a version of this theism, of a belief in gods whose whims and wills rule everything. It comes from abandoning God and then asking: 'Who is in his place?' His place is then filled by various powerful men and groups - sinister pressure groups, who are to be blamed for having planned the great depression and all the evils from which we suffer.
The conspiracy theory of society is very widespread, and has very little truth in it. only when conspiracy theoreticians come into power does it become something like a theory which accounts for things which actually happen (a case of what I have called the 'Oedipus Effect'). For example, when Hitler came into power, believing in the conspiracy myth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 he tried to outdo their conspiracy with his own counter-conspiracy. But the interesting thing is that such a conspiracy never - or 'hardly ever' - turns out in the way that is intended.
This remark can be taken as a clue to what is the true task of a social theory. Hitler, I said, made a conspiracy that failed. Why did it fail? Not just because other people conspired against Hitler. It failed, simply, because it is one of the striking things about social life that nothing ever comes off exactly as intended. Things always turn out a little bit differently. We hardly ever produce in social life precisely the effect that we wish to produce, and we usually get things that we do not want into the bargain. Of course, we act with certain aims in mind, but apart from these aims (which we may or may not really achieve) there are always certain unwanted consequences of our actions; and usually these unwanted consequences cannot be eliminated. To explain why they cannot be eliminated is the major task of social theory.
I will give you a very simple example. Let us say that a man in a small village must sell a house. Not long before there was a man who bought a house in that village because he needed one urgently. Now there is a seller. He will find that, under normal conditions, he will not get nearly as much for his house as the buyer had to pay when he wanted to buy a similar one. That is to say, the very fact that somebody wants to sell his house lowers the market price. And this is generally so. Whoever wants to sell something always depresses the market value of what he wants to sell; whoever wants to buy something raises the market value of what he wants to buy. This is true, of course, only for small free markets. I do not say that the economic system of free markets cannot be replaced by another one. But in a market economy this is what happens. You will agree with me that there is no need to prove that the man who wants to sell something has usually no intention of lowering the market price, and that the man who wants to buy something has no intention of raising it. We have here a typical instance of unwanted consequences.
The situation described is typical of all situations. In all social situations we have individuals who do things; who want things; who have certain aims. In so far as they act in the way in which they want to act, and realize the aims which they intend to realize, no problem arises for the social sciences (except the problem whether their wants and aims can perhaps be socially explained, for example by certain traditions). The characteristic problems of the social sciences arise only out of our wish to know the unintended consequences, and more especially the unwanted consequences which may arise if we do certain things. We wish to foresee not only the direct consequences but also these unwanted indirect consequences. Why should we wish to foresee them? Either because of our scientific curiosity, or because we want to be prepared for them; we may wish, if possible, to meet them and prevent them from becoming too important. (This means, again, action, and with it the creation of further unwanted consequences.)
I think that the people who approach the social sciences with a ready-made conspiracy theory thereby deny themselves the possibility of ever understanding what the task of the social sciences is, for they assume that we can explain practically everything in society by asking who wanted it, whereas the real task of the social sciences? is to explain those things which nobody wants - such as, for example, a war, or a depression. (Lenin's revolution, and especially Hitler's revolution and Hitler's war are, I think, exceptions. These were indeed conspiracies. But they were consequences of the fact that conspiracy theoreticians came into power - who, most significantly, failed to consummate their conspiracies.)
It is the task of social theory to explain how the unintended consequences of our intentions and actions arise, and what kind of consequences arise if people do this that or the other in a certain social situation. And it is, especially, the task of the social sciences to analyse in this way the existence and the functioning of institutions (such as police forces or insurance companies or schools or governments) and of social collectives (such as states or nations or classes or other social groups). The conspiracy theorist will believe that institutions can be understood completely as the result of conscious design; and as to collectives, he usually ascribes to them a kind of group-personality, treating them as conspiring agents, just as if they were individual men. As opposed to this view, the social theorist should recognize that the persistence of institutions and collectives creates a problem to be solved in terms of an analysis of individual social actions and their unintended (and often unwanted) social consequences, as well as their intended ones. The task of a theory of tradition must be viewed in a similar light. It is only very rarely that people consciously wish to create a tradition; and even in these cases they are not likely to succeed. on the other hand, people who never dreamt of creating a tradition may nevertheless do so, without having any such intention. Thus we arrive at one of the problems of the theory of tradition: how do traditions arise - and, more important, how do they persist - as the (possibly unintended) consequences of people's actions?
A second and more important problem is this: what is the function of tradition in social life? Has it any function which is rationally understandable, in the way in which we can give an account of the function of schools, or of the police force, or of a grocer's shop, the Stock Exchange, or other such social institutions? Can we analyse the functions of traditions? That is perhaps the main task of a theory of tradition. My way of approaching this task will be to analyse a particular tradition - the rational or scientific tradition - as an example, and I intend later to make use of this analysis for various
? In the discussion which followed the lecture, I was criticized for rejecting the conspiracy theory, and it was asserted that Karl Marx had revealed the tremendous importance of the capitalist conspiracy for the understanding of society. In my reply I said that I should have mentioned my indebtedness to Marx, who was one of the first critics of the conspiracy theory, and one of the first to analyse the unintended consequences of the voluntary actions of people acting in certain social situations. Marx said quite definitely and clearly that the capitalist is as much caught in the network of the social situation (or the 'social system') as is the worker; that the capitalist cannot help acting in the way he does: he is as unfree as the worker, and the results of his actions are largely unintended. But the truly scientific (though in my opinion too deterministic) approach of Marx has been forgotten by his latter-day followers, the Vulgar Marxists, who have put forward a popular conspiracy theory of society which is no better than Goebbels' myth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
purposes.
My main purpose will be to draw a parallel between, on the one side, the theories which, after being submitted to scientific tests, are held as a result of the rational or critical attitude - in the main, that is, scientific hypotheses - and the way they help us to orientate ourselves in this world; and, on the other side, beliefs, attitudes, and traditions in general, and the way they may help us to orientate ourselves, especially in the social world.
The peculiar thing which we call scientific tradition has often been discussed. People have often wondered about this queer thing that happened somehow somewhere in Greece in the sixth and fifth centuries before Christ - the invention of a rational philosophy. What did actually happen, why did it happen, and how? Some modern thinkers assert that the Greek philosophers were the first to try to understand what happens in the nature. I shall show you why this is an unsatisfactory account.
The early Greek Philosophers did indeed try to understand what happened in nature. But so did the more primitive myth-makers before them. How can we characterize that primitive type of explanation which was superseded by the standards of the early Greek philosophers - the founders of our scientific tradition? To put it crudely, the pre-scientific myth-makers said, when they saw a thunderstorm approaching: 'Oh yes, Zeus is angry.' And when they saw that the sea was rough, they said: 'Poseidon is angry.' That was the type of explanation which was found satisfactory before the rationalist tradition introduced new standards of explanation. What was really the decisive difference? one can hardly say that the new theories introduced by the Greek philosophers were more easily understood than the old ones. It is, I think, much easier to understand the statement that Zeus is angry than to understand a scientific account of a thunderstorm. And the statement that Poseidon is angry is for me a much simpler and more easily understandable explanation of the high waves of the sea than one in terms of friction between the air and the surface of the water.
I think that the innovation which the early Greek philosophers introduced was this: they began to discuss the matters. Instead of accepting the religious tradition uncritically, and as unalterable (like children who protest if aunty alters one word of their favourite fairy-tale), instead of merely handing on a tradition, they challenged it, and sometimes even invented a new myth in place of the old one. We have, I think, to admit that the new stories which they put in the place of the old were, fundamentally, myths - just as the old stories were; but there are two things about them to be noticed.
First, they were not just repetitions or re-arrangements of the old stories, but contained new elements. Not that this in itself is a very great virtue. But the second and main thing is this: the Greek philosophers invented a new tradition - the tradition of adopting a critical attitude towards the myths, the tradition of discussing them; the tradition of not only telling a myth, but also of being challenged by the man to whom it is told. Telling their myth they were ready in their turn to listen to what their listener thought about it - admitting thereby the possibility that he might perhaps have a better explanation than they. This was a thing that had not happened before. A new way of asking questions arose. Together with the explanation - the myth - the question would arise: 'Can you give me a better account?'; and another philosopher might answer: 'Yes, I can.' Or he might say: 'I do not know whether I can give you a better, but I can give you a very different account which does just as well. These two accounts cannot both be true, so there must be something wrong here. We cannot simply accept these two accounts. Nor have we any reason to accept just one of them. We really want to know more about the matter. We have to discuss it further. We have to see whether our explanation really do account for the things about which we already know, and perhaps even for something we have so far overlooked.'
My thesis is that what we call 'science' is differentiated from the older myths not by being something distinct from a myth, but by being accompanied by a second-order tradition - that of critically discussing the myth. Before, there was only the first-order tradition. A definite story was handed on. Later there was still, of course, a story to be handed on, but with it went something like a silent accompanying text of a second-order character: 'I hand it on to you, but tell me what you think of it. Think it over. Perhaps you can give us a different story.' This second-order tradition was the critical or argumentative attitude. It was, I believe, a new thing, and it is still the fundamentally important thing about scientific tradition. If we understand that, then we shall have an altogether different attitude towards quite a number of problems of scientific method. We shall understand that, in a certain sense, science is myth-making just as religion is. You will say: 'But the scientific myths are so different from the religious myths.' Certainly they are different. But why are they different? Because if one adopts this critical attitude then one's myths do become different. They change; and they change in the direction of giving a better and better account of the world - of the various things which we can observe. And they also challenge us to observe things which we would never have observed without these theories or myths.
In the critical discussions which now arose there also arose, for the first time, something like systematic observation. The man to whom a myth was handed on, together with the silent but traditional request, 'What have you to say about it? Can you criticize it?' - this man would take the myth and would apply it to the various things which it was supposed to explain, such as the movement of the planets. Then he would say: 'I do not think that this myth is very good, because it does not explain the actual observable movement of the planets,' or whatever it might be. Thus it is the myth or the theory which leads to, and guides, our systematic observations - observations undertaken with the intention of probing into the truth of the theory or the myth. From this point of view the growth of the theories of science should not be considered as the result of the collection, or accumulation, of observations; on the contrary, the observations and their accumulation should be considered as the result of the growth of the scientific theories. (This is what I have called the 'searchlight theory of science' - the view that science itself throws new light on things; that it not only solves problems, but that, in doing so, it creates many more; and that it not only profits from observations, but leads to new ones.) If in this way we look out for new observations with the intention of probing into the truth of our myths, we need not be astonished if we find that myths handled in this rough manner change their character, and that in time they become what one might call more realistic or that they agree better with observable facts. In other words, under the pressure of criticism the myths are forced to adapt themselves to the task of giving us an adequate and a more detailed picture of the world in which we live. This explains why scientific myths, under the pressure of criticism, become so different from religious myths. I think, however, we should be quite clear that in their origin they remain myths or inventions, just like the others. They are not what some rationalists - the adherents of the sense-observation theory - believe: they are not digests of observation. Let me repeat this important point. Scientific theories are not just the results of observation. They are, in the main, the products of myth-making and of tests. Tests proceeds partly by way of observation, and observation is thus very important; but its function is not that of producing theories. It plays its role in rejecting, eliminating, and criticizing theories; and it challenges us to produce new myths, new theories which may stand up to these observational tests. only if we understand this can we understand the importance of tradition for science.
Those among you who hold the opposite view and who believe that scientific theories are the result of observation, I challenge to start observing here and now and to give me the scientific results of your observation. You may say that this is unfair, and that there is nothing very remarkable to observe here and now. But even if you go on to the end of your lives, notebook hand, writing down everything you observe, and if you finally bequeath this important notebook to the Royal Society, asking them to make science out of it, then the Royal Society might preserve it as a curiosity, but decidedly not as a source of knowledge.? It might be lost perhaps in some cellar of the British Museum (which as you may know cannot afford to catalogue most of its treasures) but more likely it will end up on a rubbish heap.
But you may get something of scientific interest if you say: 'Here are the theories which some scientists hold today. These theories demand that such and such things should be observable under such and such conditions. Let us see whether they are observable.' In other words, if you select your observations with an eye on scientific problems and the general situation of science as it appears at the moment, then you may well be able to make a contribution to science. I do not want to be dogmatic and to deny that there are exceptions, such as the so-called chance discoveries. (Though even these very often turn out to be made under the influence of theories.) I do not say that observations are always insignificant unless they are related to theories, but I want to point out what is the main procedure in the development of science.
? See ch. 1, section IV.
All this means that a young scientist who hopes to make discoveries is badly advised if his teacher tells him, 'Go round and observe', and that he is well advised if his teacher tells him: 'Try to learn what people are discussing nowadays in science. Find out where difficulties arise, and take an interest in disagreement. These are the questions which you should take up.' In other words, you should study the problem situation of the day. This means that you pick up, and try to continue, a line of inquiry which has the whole background of the earlier development of science behind it; you fall in with the tradition of science. It is very simple and a decisive point, but nevertheless one that is often not sufficiently realized by rationalists - that we cannot start afresh; that we must make use of what people before us have done in science. If we start afresh, then, when we die, we shall be about as far as Adam and Eve were when they died (or, if you prefer, as far as Neanderthal man). In science we want to make progress, and this means that we must stand on the shoulders of our predecessors. We must carry on a certain tradition. From the point of view of what we want as scientists - understanding, prediction, analysis, and so on - the world in which we live is extremely complex. I should be tempted to say that it is infinitely complex, if the phrase had any meaning. We do not know where or how to start our analysis of this world. There is no wisdom to tell us. Even the scientific tradition does not tell us. It only tells us where and how other people started and where they got to. It tells us that people have already constructed in this world a kind of theoretical framework - not perhaps a very good one, but one which works more or less; it serves us as a kind of network, as a system of co-ordinates to which we can refer the various complexities of this world. We use it by checking it over, and by criticizing it. In this way we make progress.
It is necessary for us to see that of the two main ways in which we may explain the growth of science, one is rather unimportant and the other is important. The first explains science by the accumulation of knowledge: it is like a growing library (or a museum). As more and more books accumulate, so more and more knowledge accumulates. The other explains it by criticism: it grows by a method more revolutionary than accumulation - by a method which destroys, changes, and alters, the whole thing, including its most important instrument, the language in which our myths and theories are formulated.
It is interesting to see that the first method, the accumulation method, is much less important than people believe. There is much less accumulation of knowledge in science than there is revolutionary changing of scientific theories. It is a strange point, and a very interesting point, because one might at first sight believe that for the accumulative growth of knowledge tradition would be very important, and that for the revolutionary kind of development tradition would be less important. But it is exactly the other way around. If science could grow by mere accumulation, it would not matter so much if the scientific tradition were lost, because any day you could starting accumulating afresh. Something would be lost, but the loss would not be serious. If, however, science advances by the tradition of changing its traditional myths, then you need something with which to start. If you have nothing to alter and to change, you can never get anywhere. Thus you need two beginnings for science: new myths, and a new tradition of changing them critically.?a But such beginnings are very rarely made. It took I do not know how many years from the invention of a descriptive language - which, we may say, was the moment when man became man - to the beginnings of science. Throughout this time language, the future instrument of science, was growing. It grew together with the growth of myth - every language incorporates and preserves countless myths and theories, even in its grammatical structure - and with the growth of the tradition which uses language for the purpose of describing facts, and for explaining and arguing about facts. (About this more later.) If these traditions were destroyed you could not even start accumulating; the instrument for it would be missing.
Having given this example of the role played by tradition in one particular field - that of science - I shall now, somewhat belatedly, proceed to the problem of a sociological theory of tradition. I again refer to Dr J. A. C. Brown, my predecessor today, who said many things which are very relevant to my topic, and especially one thing of which I have made a note. He said that if there is no discipline in a factory, then 'the workers become anxious and terrified'. Now I do not want to discuss discipline here; that is not my point. But I can put my point in this way: if they have nothing to go by, the workers become anxious and terrified. Or to put it in another and more general way: wherever we happen to be surrounded by either a natural environment or a social environment of which we know so little that we cannot predict what will happen, then we will become anxious and terrified. This is because if there is no possibility of our predicting what will happen in our environment - for example, how people will behave - then there is no possibility of reacting rationally. Whether the environment in question is a natural or a social one is more or less irrelevant.
Discipline (which was mentioned by Dr Brown) may be one of the things which help people to find their way in a certain society, but I am quite sure that Dr Brown will agree that it is only one of those things, and that there are other things, especially institutions and traditions, which may give people a clear idea of what to expect and how to proceed. This is important. What we call social life can exist only if we can know, and can have confidence, that there are things and events which must be so and cannot be otherwise.
It is here that the part played by tradition in our lives becomes understandable. We should be anxious, terrified, and frustrated, and we could not live in the social world, did it not contain a considerable amount of order, a great number of regularities to which we can adjust ourselves. The mere existence of these regularities is perhaps more important than their peculiar merits and demerits. They are needed as regularities and therefore handed on as traditions,
?a The change, though revolutionary, will have to preserve the successes and explain the failures of the preceding theory; see my L. Sc. D., pp. 253 and 276 f.
whether or not they are in other respects rational or necessary or good or beautiful or what you will. There is a need for tradition in social life.
Thus the creation of traditions plays a role similar to that of theories. Our scientific theories are instruments by which we try to bring some order into the chaos in which we live so as to make it rationally predictable. I do not want you to take this as a deep philosophical pronouncement. It is just a statement of one of the practical functions of our theories. Similarly, the creation of traditions, like so much of our legislation, has just the same function of bringing some order and rational predictability into the social world in which we live. It is not possible for you to act rationally in the world if you have no idea how it will respond to your actions. Every rational action assumes a certain system of reference which responds in a predictable or partly predictable way. Just as the invention of the myths or theories in the field of natural science has a function - that of helping us to bring order into the events of nature - so has the creation of traditions in the field of society.
The analogy between the role of myths or theories in science and the role of traditions in society goes further. We must remember that the great significance of myths in scientific method was that they could become the objects of criticism, and that they could be changed. Similarly traditions have the important double function of not only creating a certain order or something like a social structure, but also giving us something upon which we can operate; something that we can criticize and change. This point is decisive for us, as rationalists and as social reformers. We always have new ideas for a better social world, and these new ideas have a significant function. But too many social reformers have an idea that they would like to clean the canvas, as Plato called it, of the social world. This idea is nonsense and impossible to realize. If you construct a rational world afresh there is no reason to believe that it will be a happy world. There is no reason to believe that the blue-printed world will be any better than the world in which we live. Why should it be any better? An engineer does not create a motor-engine just from the blue-prints. He develops it from earlier models; he changes it; he alters it over and over again. If we wipe out the social world in which we live, wipe out its traditions and create a new world on the basis of blue-prints, then we shall very soon have to alter the new world, making little changes and adjustments. But if we are to make these little changes and adjustments, which will be needed in any case, why not start them here and now in the social world we have? It does not matter what you have and where you start. You must always make little adjustments. Since you will always have to make them, it is very much more sensible and reasonable to start with what happens to exist at the moment, because of these things which exist we at least know where the shoe pinches. We at least know of certain things that they are bad and that we want them changed. If we make our wonderful brave new world it will be quite a time before we find out what is wrong with it. Moreover the idea of canvas-cleaning (which is part of the wrong rationalist tradition) is impossible, because if the rationalist cleans the social canvas and wipe out the tradition he necessarily sweeps away with it himself and all his ideas and all his blue-prints of the future. The blue-prints have no meaning in an empty social world, in a social vacuum. They have no meaning except in a setting of traditions and institutions - such as myths, poetry, and values - which all emerge from the social world in which we live. Outside it they have no meaning at all. Therefore the very incentive and the very desire to build a new world must disappear once we have destroyed the traditions of the old world. In science it would be a tremendous loss if we were to say: 'We are not making very much progress. Let us sweep away all science and start afresh.' The rationalist procedure is to correct it and to revolutionize it, but not to sweep it away. You may create a new theory, but the new theory is created in order to solve those problems which the old theory did not solve. (See note ?a above.)
We have briefly examined the function of tradition in social life. What we found may now help us to answer the question how tradition arise, how they are handed on, and how they may become stereotyped - all these being unintended consequences of actions. We can now understand why people not only try to learn the laws of their natural environment (and to teach them to others, often in the form of myth), but why they also try to learn the traditions of their social environment. We can now understand why people (especially primitive peoples and children) are inclined to cling to myths; and they tend to cling to uniformities in their own behaviour, first, because they are afraid of irregularity and change and therefore afraid to originate irregularity and change; and secondly, because they wish to reassure others of their rationality or predictability, perhaps in the hope of making them act in a similar way. Thus they tend both to create traditions and to reaffirm those they find, by carefully conforming to them and by anxiously insisting that others conform to them also. This is how traditional taboos arise and how they are handed on.
This partially explains the strongly emotional intolerance which is characteristic of all traditionalism, an intolerance against which rationalists have always and rightly stood out. But we now see clearly that those rationalists who, because of this tendency, were led on to attack traditions as such, were mistaken. We can now say, perhaps, that what they really wanted was to replace the intolerance of traditionalists by a new tradition - the tradition of tolerance; and more generally, to replace the attitude of tabooism by one that considers existing traditions critically, weighing their merits against their demerits, and never forgetting the merit which lies in the fact that they are established traditions. For even if we ultimately reject them, in order to replace them by better ones (or by what we believe to be better ones), we should always remain conscious of the fact that all social criticism, and all social betterment, must refer to a framework of social traditions, of which some are criticized with the help of others, just as all progress in science must proceed within a framework of scientific theories, some of which are criticized in the light of others.
Much of what has been said here of traditions can also be said of institutions, for traditions and institutions are in most respects strikingly similar. Nevertheless, it seems desirable (although perhaps not very important) to preserve the difference which can be found in the ordinary usage of these two words, and I shall end my talk by trying to bring out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se two kinds of social entity. I do not think it is a good practice to distinguish the terms 'tradition' and 'institution' by formal definitions,? but their use may be explained with the help of examples. In fact I have done this already, since I have mentioned schools, a police force, a grocer's shop, and the Stock Exchange as examples of social institutions, and elsewhere such things as the burning interest in scientific research, or the scientist's critical attitude, or the attitude of tolerance, or the intolerance of the traditionalists - or for that matter, of the rationalists - as examples of traditions. Institutions and traditions have much in common; among other things that they must be analyzed by the social sciences in terms of individual persons, their actions, attitudes, beliefs, expectations, and interrelations. But we may say, perhaps, that we are inclined to speak of institutions wherever a (changing) body of people observe a certain set of norms or fulfil certain prima facie social functions (such as teaching, policing, or selling groceries) which serve prima facie social purposes (such as the propagation of knowledge, or protection from violence or starvation), while we speak of traditions mainly when we wish to describe a uniformity of people's attitudes, or ways of behaviour, or aims or values, or tastes. Thus traditions are perhaps more closely bound up with persons and their likes and dislikes, their hopes and fears, than are institutions. They take, as it were, an intermediate place, in social theory, between persons and institutions. (We speak more naturally of a 'living tradition' than of a 'living institution'.)
The difference in question may be made clearer by reference to what I have sometimes called the 'ambivalence of social institutions', or the fact that a social institution may, in certain circumstances, function in a way which strikingly contrasts with its prima facie or 'proper' function. Of the perversion of boarding-schools from their 'proper' function Dickens had much to say; and it has happened that a police force, instead of protecting people from violence and blackmail, has used threats of violence or of imprisonment in order to black mail them. Similarly the institution of a parliamentary Opposition, one of whose prima facie functions is to prevent the government from stealing the taxpayer's money, has worked in certain countries in a different way - by becoming an instrument for the proportional division of the spoils. The ambivalence of social institutions is connected with their character - with the fact that they perform certain prima facie functions and with the fact that institutions can be controlled only by persons (who are fallible) or by other institutions (which are therefore fallible also). The ambivalence can undoubtedly be much reduced by carefully constructed institutional checks, but it is impossible to eliminate it completely. The working of institutions,
? For a criticism of this practice, cf. ch. 11 of my book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as of fortresses, depends ultimately upon the persons who man them; and the best that can be done by way of institutional control is to give a superior chance to those persons (if there are any) who intend to use the institutions for their 'proper' social purpose.
It is here that traditions may play an important role as intermediaries between persons and institutions. Traditions, to be sure, may also be perverted; something corresponding to the ambivalence here described affects them too. But since their character is somewhat less instrumental than that of institutions they are less affected by this ambivalence. Institutions may also less personal than traditions, which, in turn, are less personal and more predictable than the individuals who man the institutions. It may be said, perhaps, that the long-term 'proper' functioning of institutions depends mainly upon such traditions. It is tradition which gives the persons (who come and go) that background and that certainty of purpose which resist corruption. A tradition is, as it were, capable of extending something of the personal attitude of its founder far beyond his personal life.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most typical usages of the two terms, it may be said that one of the connotations of the term 'tradition' is an allusion to imitation, as being either the origin of the tradition in question, or the way it is handed on. This connotation is, I think, absent from the term 'institution': an institution may or may not have its origin in imitation, and it may, or may not, continue its existence through imitation. Moreover, some of the things we call traditions may also be described as institutions - especially as institutions of that (sub-) society in which the tradition is generally followed. Thus we might say that the rationalist tradition, or the adoption of a critical attitude, is institutional within the (sub-) society of scientific workers (or that the tradition of not kicking a man when he is down is - almost - a British institution). Similarly we may say that the English language, though handed down by tradition, is an institution, while the practice of, say, avoiding split infinitives is a tradition (though it may be institutional within a certain group).
Some of these points may be further exemplified by considering certain aspects of the social institution of language. The main function of a language, communication, has been analysed by K. Bühler into three functions: (1) the expressive function - i. e. the communication serves to express the emotion or thoughts of the speaker; (2) the signalling or stimulative or release function - i. e. the communication serve to stimulate or to release certain reactions in the hearer (for example, linguistic responses); and (3) the descriptive function - i. e. the communication describes a certain state of affairs. These three functions are separable in so far as each is accompanied as a rule by its preceding one but need not be accompanied by its succeeding one. The first two apply also to animal languages, while the third appears to be characteristically human. It is possible (and I believe necessary) to add a fourth to these three functions of Büler's, and one which is particularly important from our point of view, viz. (4) the argumentative or explanatory function - i. e. the presentation and comparison of arguments or explanations in connection with certain definite questions or problems.? A certain language may possess the first three functions without the fourth (for example? that of a child at the stage when it just 'names' things). Now, in so far as language qua institution has these functions, it may be ambivalent. For example, it may be used by speaker to hide his emotions or thoughts as much as to express them, or to repress rather than to stimulate argument. And there are different traditions connected with each one of these functions. For example, the different traditions of Italy and of England (where we have the tradition of under-statement) in connection with the expressive function of the respective languages are very striking. But all this becomes really important in connection with the two characteristically human functions of language - the descriptive and argumentative functions. In its descriptive function, we may speak about language as a vehicle of truth; but it may of course also become a vehicle of falsity. Without a tradition which works against this ambivalence and in favour of the use of language for the purpose of correct description (at least in all cases where there is no strong inducement to lie), the descriptive function of language would perish; for children would then never learn its descriptive use. Even more precious perhaps is the tradition that works against the ambivalence connected with the argumentative function of language, the tradition that works against that misuse of language which consists in pseudo-arguments and propaganda. This is the tradition and discipline of clear speaking and clear thinking; it is the critical tradition - the tradition of reason.
The modern enemies of reason want to destroy this tradition. They want to do this by destroying and perverting the argumentative and perhaps even the descriptive functions of the human language; by a romantic reversion to its emotive functions - the expressive (there is too much talk about 'self-expression') and, perhaps, the signalling or stimulative function. We see this tendency very clearly at work in certain types of modern poetry, prose, and philosophy - in a philosophy which does not argue because it has no arguable problems. The new enemies of reason are sometimes anti-traditionalists who seek new and impressive means of self-expression or of 'communication', and sometimes traditionalists who extol the wisdom of the linguistic tradition. Both uphold implicitly a theory of language that sees no more than the first or perhaps the second of its functions, while in their practice they support the flight from reason and from the great tradition of intellectual responsibility.
? Compare also ch. 12, below. The reason why I consider the argumentative and the explanatory functions as identical cannot be discussed here; they are derived from a logical analysis of explanation and its relation to deduction (or argument).
? An ordinary map is also an example of a description which is not argumentative; although it may of course be used to support an argument within an argumentative language.
- "Conjectures and Refutations, The Growth of Scientific Knowledge", Karl. R. Popp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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