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 속에서 살면서
나에게도 낮과 밤이 있어
밝지도 않고 어둠지도 않고
밝음이 있으면 어둠도 있지.
빛만 늘 존재한다면,
천지에 어둠뿐이라면
그 사이에 태어난 생명은 없어서
시간도 없고 공간도 무의미했겠지.
뱀처럼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미완성의 세상에서, 불안한 공간에서
오직 살아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지.
패배자는 망각되고
승리자만 기록될 뿐이라고 탄식한다면
생존보다 귀중한 것을 찾아야 하는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무엇이...
후기:
‘저는 천지天地를 대하기가 부끄럽습니다. 천지는 일찍이 수많은 성현聖賢들을 살게 해 주었는데, 지금은 저를 살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해와 달을 보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해와 달은 일찍이 수많은 성현들을 비추었는데 지금 저를 비추어 주기 때문입니다. 또 저는 음식과 거처를 옛사람과 같이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잡고 발로 가는 것을 옛사람과 같이합니다. 그런데 그중에 같지 않은 것이 있으니 재주와 재능에 있어서는 고인은 물론이고 지금 사람만도 못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 혜환 이용휴 산문선, 박동욱과 송혁기 옮기고 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