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시

2015년 6월 스페인에서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22. 22:02

20156월 스페인에서

 

서너 시간을 버스를 타고 발렌시아로 달려도

끝없는 오렌지 밭이더라.

또 그렇게 달려도

온 세상 사람들을 먹이고도 남을 듯

한없는 올리브 밭이고 밀밭이더라.

 

태고에 바다에서 융기한 땅은

오랜 세월 속에 비에 젖어

염분은 빠지고 비옥한 땅이 되었으니

먹고 마시고 굶주림이 없었겠지.

 

신대륙에 몰려가서

총 한번 쏘면 토인이 쓰러져

석기시대에 살던 토인들은

천둥소리에 사람이 죽으니

하느님이 나타났다고 복종했겠지.

그게 conquistadores의 역사의 시작일 텐데

가는 곳마다 어마어마한 가톨릭 성당들이라니.

 

콜럼버스를 모신 세비야 대성당에는

왕들이 시신을 든 청동상이 있는데

귀족들의 모함에 진력이 나 스페인에

묻히기를 거부했다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에는

술탄이 100명의 첩을 두고 술래잡기를 했다는

꽃과 분수의 궁전이 있는데

멀리 시에라네바다의 만년설이 보였고

집무실에 장식된 수많은 쿠란 어구의 핵심은

알라 외에 신은 없다라는데

자기 딸을 범할까봐 따로 주거지를 만들어 살게 했다니

아내 한 명과 살아야 하는 기독교도에게 항복했을 테지.

 

석유의 저주라는 말은

산유국 사람들의 안이한 생활을 지적하는데

스페인 어느 도시의 가게에서 본 구절은

스페인의 철인 3종 경기는

먹기, 마시기와 fucking이다.”

 

저녁마다 거리 식당 앞에 늘어선 테이블에

그들이 모여들어 먹고 마시고 떠들었는데

그들의 머리 위로 돈키호테와 산초판자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고

미국의 무디스 따위의 국가신용등급 평가가

무의미한 땅인 듯했다.

 

 

  2015년 6월 스페인에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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