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시

2015년 봄 서울, 교토와 이스탄불에서

이윤진이카루스 2015. 4. 22. 23:54

 

2015년 봄 서울, 교토와 이스탄불에서

 

앙카라에는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이 있고

터키인 할아버지 한 분이 수 천 명의

터키군 전상자를 기념하는 공원을 지킨다.

 

수도에서 석회암 지대 카파도키아로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거의 5시간 동안

산이 보이지 않는 평야를 달렸다.

비옥한 땅은 남쪽으로 지중해 연안을 따라 시리아와

요르단 이라크와 국경을 이루며 초승달지대가 생겼는데

지중해성 기후가 3000미터 이상의 높은 산악지대와

짝을 이루어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가는 지역이 되어 인류 최초로 농경이 시작되었지만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유럽으로 문명의 축이 넘어갔다고

UCLA 교수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설명했지.

 

언어가 다른 7개국과 국경을 접한 나라의 외교사적 충격이

어떠한지 중국과 러시아하고만 국경을 맞댄 한국 사람인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 가미가제를 통하여 몽고를 피하고

미국인 페리가 도착하기까지 섬에서 살았던 일본인은

어떻게 세상을 보았을까?

 

지중해 연안에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아테네의 민주주의라는 기적은 설명할 수 없다면서도

널리 여행하며 사실을 추적했던 헤로도토스의 발자취를 들어

문명의 충돌을 그 기적의 원인으로 포퍼 경은 설명해

아테네는 근동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말았다?

 

안탈랴에서 이블리 탑 아래로 내려와

지중해를 항해하는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를 반환점으로

돌아오는 길에 터키인 선장은

한국의 뽕짝을 틀어놓고

우리 일행밖에 없는 작은 선실에서

한국인들인 아줌마들 일부가 춤을 추는데

선장은 느긋이 이리저리 돌아보며

일상이라는 듯 슬며시 미소를 머금는다.

 

세계에서 가장 유태보존적(幼態保存的: neotenic)이라는

동아시아에서 최고는 한국인, 그 다음은 중국인과 몽고인인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한류가 그 증거라는 주장이

칭찬보다는 조롱에 가까운 까닭은 포퍼 경의 언명처럼

알렉산더 이래 세계역사는 제국주의의 역사이기 때문이라네.

 

무슬림의 박해를 피해 카파도키아 동굴에 숨어서

예배를 보던 기독교도의 동굴 성당 위를

열기구를 타고 나르던 날 열기구 조종사는

~한민국! 소리치며 산소를 넣어 푸프프 푸프,

일상이라는 듯 얼굴에 홍조를 띠었지.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카파도키아에서

지하 도시를 건설하고 양떼를 길렀는데

기독교도들은 눈이 퇴화되도록 살았다지.

 

에베소의 그리스인 헤라클리투스는

만물은 무상하다고 외친 철학자였고

에게 해를 건너 영국에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도덕도 변할 수 있다는

무신론자 칼 포퍼가 살았고

칸트는 200여 년 전에 모든 것이 비판에

종속된다고 기독교 땅에서 책을 썼으며

프랑스인 앙리 푸앵카레는

어떤 사람이 내일 발견할 것을 내가 알았다면,

나는 우선권을 확보하려고 오래전에 그것을

공표했을 것이라며 자기로부터 어떤 예언도

기대하지 말라고 했지.

 

예수를 보지 못했던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려 거쳐 갔다는

에베소의 원형극장에서 한국 아줌마 한분이 일출봉에를

불렀는데 청아한 목소리가 대리석 계단에서

메아리치는 듯이 울렸는데 대리석이라는 게

울림이 큰 돌덩어리가 아니겠는가?

 

에베소를 떠나 이즈미르로 떠나던 날

도시의 흔적만 남아있다는 콜로폰을 지났을 터인데

크세노파네스가 살다가 메데인의 침공으로 이탈리아의

엘레아로 망명해 90이 넘도록 장수했지.

사람이 우연히 완벽한 진리를 말했다고 해도

진리를 알 수가 없을 것인 까닭은

모든 것은 짜인 추측의 그물이기 때문이라던

크세노파네스는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연구를 통하여

인간은 진리에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플라톤의 동굴이야기와 달리 낙관론을 냈지.

 

나에게 최종적인 것은 운명이라는 예언자의 땅 아라비아에서

수 십 년 전 메카 순례를 끝내고 귀국하던 무슬림의 눈동자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름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빛이 나왔고

종교란 때로는 죽임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느꼈고.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에는

거대한 구리 문에 십자가가 양각되어 있는데

지우려했던 무슬림의 흔적이 역력하고

동서양의 이념과 신앙이 충돌하는 땅에서는

하느님은 살인하지 말라고 먼저 명령했대도

지우고 지워지지 않으려는 종교가 싸우고 죽이지.

 

고집불통이고 살인자인 인간처럼 하느님에게 입이 있다고?

먹고 배설하며 온갖 망상 속에 사는 사람처럼 말을 한다고?

 

오스만 터키의 황제들이 살았던 톱카프 궁전에는

하렘이 있는데 100명 아기가 같은 날에 태어났다는

내재적 거짓말에 술탄 술레이만은 세상 떠날 때

자신의 빈손을 후세에 보여주라고 유언했다는데

역시 인간은 교훈을 남겨 영원히 기억되고 있었다.

 

 후기: 쿠란 수라 [22:48] 과거의 많은 공동체가 악행을 저질렀고 나는 그들을 당분간 이끌다가 처벌했다. 나에게 궁극적인 것은 운명이다.

[22:48] Many a community in the past committed evil, and I led them on for awhile, then I punished them. To Me is the ultimate destiny.

 

 

2015년_봄_서울,_교토와_이스탄불에서.hwp

2015년_봄_서울,_교토와_이스탄불에서.hwp
0.02MB

'습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년 6월 스페인에서  (0) 2015.06.22
고전과 인간  (0) 2015.04.26
세상살이  (0) 2015.03.20
기억  (0) 2015.03.07
은밀한 대화  (0) 2015.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