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gency of change was Japan. So it is appropriate to begin there. Japan in the mid-nineteenth century resembled Korea in its isolation from the Eurocentric world system, its sense of closeness to Chinese civilization, and its concern for land and its products. It was also similar in that the vast change it was about to experience was to be set off by external forces - that is, contact with the West. The difference was that Japan had a feudal structure - in a strict sense, the only pure and indigenous feudalism outside the European (or Carolingian) heartland. Although lively debate continues regarding feudalism's contribution to subsequent Japanese development, there seems little doubt that the feudal mode bequeathed Japan a productive agricultural system, extensive commercialization, a useful martial spirit, and a literate, educated population, before it was swept away in the wake of Meiji Restoration.
In chronological time Japan's evolution may have been quick, but in world time it was late. Japan developed, in both a real and a symbolic sense, within one of the few remaining interstices of the nineteenth-century world system, with newly risen industrial powers knocking at its door. For a time these powers cast long glances at Japan but rested their eyes mostly on China - thereby providing a "breathing space" within which Japan could mobilize its resources. Imperialist inattention provided both the opportunity and the rationale for quickened Japanese development. To compete, Japan husbanded and nurtured its resources at home and began to search for a hinterland, a periphery, a region with raw materials and labor such as those the industrial powers possessed. Thus competition with the West dictated immediate restructuring at home and suggested eventual restructuring abroad.
one result of this restructuring was the creation of a strong state as the essential ally of industrialization. Although there is currently some debate on the role of the Meiji state, it seems irrefutable that Japan provided a classic example of Alexander Gerschenkron's argument regarding the advantages of "backwardness" in countries undergoing "defensive" modernization. The persistence of feudalism into the nineteenth century, he argues, prevented these countries from industrializing on the English pattern, a slow process that was accompanied by liberal political correlates such as the extension of the franchise and the rise of parliamentarianism. Other countries, which began industrialization later, had scarce and diffuse private capital, a lack of entrepreneurial elements, distrust of commercial or industrial activities, and the threat implied by the existence of earlier industrializers. But feudal disabilities become advantages when a country begins to develop industries such as iron, steel, and railways, with greatly enhanced capital and organizational requirements. In this phase, power is cast upward; in countries like Germany and Japan, a strong state emerges as the great ally, stimulator, and organizer of industrialization. The state, in other words, substituted itself in the "classic," entrepreneurial role ordinarily assumed by a rising bourgeoisie; but the substitution was not without costs. David Landes writes of Japan:
It was the State that conceived modernization as a goal and industrialization as a means, that gave birth to the new economy in haste and pushed it unrelentingly as an ambitious mother her child prodigy. And though the child grew and developed its own resources, it never overcame the deformity imposed by this forced nurture.
최초의 변화 대행국가는 일본이었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합당하다. 19세기 중반의 일본은 유럽중심의 세계 체제에서의 그 일본의 소외에서 중국문명에 대한 일본의 근접성에서, 그리고 땅과 땅의 소출에 대한 일본의 관심에서 한국과 닮았었다. 일본은 일본이 막 경험하려는 거대한 변화가 외부의 힘에 의하여 - 다시 말해서, 서구와의 접촉 - 시작될 운명이었기 때문에 또한 유사했다. 차이점은 일본에는 - 정확한 의미에서, 유럽 (또는 카롤링 왕조의) 핵심부 밖의 유일한 순수하고 태생적인 봉건제도 - 봉건구조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 일본의 발전에 대한 봉건제도의 공헌에 관하여 활발한 논쟁이 계속된다할지라, 봉건제도가 메이지 유신이후 휩쓸려가지 전에 일본에게 생산적인 농업체제, 폭넓은 상업화, 유용한 무사정신, 그리고 글을 아는 교육받은 인구를 물려주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연대기적 시간으로는 일본의 발전이 빨랐는지는 모르지만 세계 시간으로는 늦었다. 일본은 실제적 의미와 상징적 의미 모두에서, 19세기 세계 체제의 희소한 남은 공간의 하나 안에서, 새로 부흥한 산업 강국들이 일본의 문을 두드리면서, 발전했다. 당분간 이 강국들은 일본을 길게 바라보았지만 자신들의 눈을 주로 중국으로 돌렸다 - 그리하여 일본이 그 안에서 자신의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던 “호흡 공간”을 제공하면서. 제국주의적 무관심은 더 빨라진 일본의 발전에 대하여 기회와 이유를 제공했다. 경쟁하기 위하여 일본은 자신의 자원을 국내에서 아껴 쓰고 길렀으며 내륙과 변경과, 산업 강국들이 소유했던 것들과 같은 원료나 노동력을 지닌 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서구와의 경쟁은 국내에서 즉각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해외에서는 궁극적 구조조정을 제시했다.
이 구조조정의 한 가지 결과는 산업에 대한 필수적 동맹국으로서의 강력한 국가를 창설하는 것이었다. 현재 메이지 일본의 역할에 관한 논의가 있지만, 일본은 “방어적” 현대화를 경험하고 있는 나라들에서의 “후진성”이 지닌 이점에 관한 알렉산더 거쉔크론 (Alexander Gerschenkron)의 논증의 고전적 본보기를 제공했다. 그가 주장하는 바, 봉건제도가 19세기까지 지속되어서 이 나라들은, 참정권의 확대와 의회주의의 발흥과 같은 자유주의적 정치적 상관관계에 의하여 수반되는 점진적 과정인 영국식 모형에 기초한 산업화를 금지 당했다. 다른 나라들은, 나중에 산업화를 시작했는데, 적고 확산된 개인 자본, 기업가적 요소의 부족, 상업적이거나 산업적 활동에 대한 불신과 이전 산업가들의 존재로 인한 위협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봉건적 무능은 한 나라가 철, 강철과 철로와 같은 산업들은 크게 확대된 자본과 조직적 요건을 지니고 개발하기 시작할 때 이점이 된다. 이 단계에서 권력은 위쪽으로 던져진다; 독일과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는 강력한 국가가 산업화의 훌륭한 동맹자로서, 자극자로서, 그리고 조직자로서 출현한다. 국가는, 다시 말해서, 떠오르는 자본가들이 통상적으로 쥐던 “고전적” 사업가적 역할에서 자신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 대신함이 비용이 없지는 않았다. 데이비드 랜디즈 (David Landes)는 일본에 대하여 글을 쓴다:
그것은 현대화를 목적으로서 산업화를 수단으로서 상상했고, 새로운 경제를 서둘러 탄생시켜서 야망에 찬 어머니가 천재인 아이에게 그러한 것처럼 그 새로운 경제를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던 국가였다. 그래서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의 자원을 개발했다할지라도 이 강요된 양육에 의하여 부과된 기형을 극복하지 못했다.
- Bruce Cumings,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
첨부된 한글파일을 참조하실 것.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Chapter 1.hwp
'영문독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Roads to Freedom, Introduction - Bertrand Russell - (0) | 2010.08.11 |
---|---|
The Western Civilization - Samuel Huntington- (0) | 2010.08.09 |
M. Scott Peck, Discipline, "The Road Less Traveled" (0) | 2010.08.05 |
The Third Wave- Introduction - Alvin Toffler (0) | 2010.08.03 |
The Age of Fishes - H. G. Wells, "A Short History of the World" - (0) | 2010.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