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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예술 창작은 인간의 영역”/ 원광연 카이스트 교수/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11. 23. 21:50

문화문화일반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예술 창작은 인간의 영역”

등록 :2015-11-22 20:52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원광연 교수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원광연 교수
[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원광연 교수
‘화가 빈센트 반고흐는 프랑스 화학자인 미셸 슈브뢸이 쓴 <색채의 하모니와 대치>란 책을 늘 휴대했다. 슈브뢸은 양탄자의 변색 방지법을 찾는 과정에서 인접한 색들이 서로의 색채감에 어떤 영향(보색 효과)을 끼치는지 밝혀냈다. 같은 붉은색이라도 주변 색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앤디 워홀의 ‘공중부양’ 작품은 애초 이론적으로 불가능했던 화가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과학자 클뤼버의 도움이 큰 구실을 했다.’ 원광연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가 최근 펴낸 <그림이 있는 인문학>(알에이치코리아)은 이처럼 이질적인 영역으로 간주되곤 하는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흥미롭게 풀어낸 것이다. 그는 이번 학기 프랑스 국립예술·산업대학(CNAM) 초빙교수로 파리에 머물고 있다. 지난 16일 전자우편을 통한 인터뷰에서 원 교수는 최악의 테러가 일어난 지난 13일 오후(현지시각)에도 파리 국립과학관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있었다고 했다.

원 교수는 특히 ‘문화기술’(CT·시티)이란 개념을 창안했다. 워낙 그의 전공은 인공지능, 가상현실이다. 서울대 응용물리학과를 나온 뒤 미국 메릴랜드대학에서 전산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로 일하다 91년 카이스트 교수로 귀국했다. 그 무렵 교류하던 영화인들이 영상 작품을 소프트웨어로 표현하는 게 흥미로웠다. 이때부터 기술과 문화의 공통점을 찾기 시작했고 서로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시티의 출발점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1년 시티는 국가의 6대 전략기술로 선정됐다. 그는 시티를 대학에 접합했다. 동료 교수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2002년 카이스트에 문화기술학제 전공을 만들었고 3년 뒤엔 문화기술대학원을 설립해 초대 원장을 맡았다. 10년 동안 석사 300명, 박사 50명을 배출했다.

‘인공지능·가상현실’ 전공 전산학 박사
“영화를 소프트웨어라고 표현해 흥미”
90년대초 과학+예술 ‘문화기술’ 창안

2013년 카이스트·서울대 동시 강의로
파리 머물며 ‘그림이 있는 인문학’ 출간
“고교부터 과학도에 인문학 가르쳐야”

그는 2013년부터 2년 동안 카이스트와 서울대 학생을 대상으로 ‘과학과 예술의 상호작용’ ‘미디어아트 공학’을 동시 강의했다. 카이스트생은 강의실에서, 서울대생은 대형 비디오 화면으로 영상수업을 했다. 이 원격강의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이번 책이다.

원 교수는 시티의 중심에 ‘인간의 창의성과 예술 및 문화 활동의 메커니즘 규명’이란 과제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경계영역 탐험이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왜일까. “창의성을 키운다는 것은 이미 사람들 마음속에 내재된 창의성을 마음 바깥으로 끌어내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자극이 필요합니다. 자극은 가장 이질적인 것에 노출됨으로써 효과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지요. 과학 시각에서 보면 그 자극은 예술이고, 예술에서는 과학이 됩니다.”

그는 고교와 대학에서 과학도들에게도 인문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과학은 속성상 좁고 깊게 들어가야 합니다. 과학의 핵심은 얼마나 가정을 잘 세워서 문제를 단순화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도의 뒷받침 없이는 과학도들이 인문학에 다가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이 과학도들을 인문학으로 안내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딱딱한 ‘철학 입문서’를 읽는 것보다는 동서양의 명화를 감상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요.”

예술 창작 과정에서 과학의 영토가 넓어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는 제자들의 활약상을 들려주었다. “대학원 제자인 김용훈·신승백 박사는 팀으로 작업합니다. 각각 예술가와 공학자로 시작했지만 함께 기획하고 제작해요.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소식 없는 제자들이 더 생각난다고 했다. “명문대 교수나 벤처를 세워 대박 난 졸업생들도 있지요. 하지만 성공한 뒤 찾아오기보다는 어려울 때 와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텐데….”

그는 지난 30년 동안 100여개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컴퓨터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를 이론적으로 규명하는 연구’가 가장 기억난다고 했다. ‘컴퓨터와 같은 기계가 스스로 창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그의 연구활동의 주요 화두다. “예술행위는 대단히 섬세하고 복잡하며, 정신과 육체 활동이 뒤얽혀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의 일부가 컴퓨터나 기계로 대치되고 있고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예술은 인간을 필요로 할 겁니다. 단 1퍼센트일지언정 말입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해 기계가 인간과 구별 못 할 정도로 예술활동을 한다면 예술의 정의를 바꿔야겠지요.”

책엔 세계 주요 도시의 미술·과학관에 대한 생생한 품평이 넘친다. “(선진국의) 과학관은 일반인들이 주고객이죠. 전시 수준도 일반인 눈높이에 맞추고 전시장도 세련되게 디자인합니다. ‘오늘 미술관에 갈까 과학관으로 갈까’ 고민할 정도로 과학이 대중 곁에 접근합니다. 우리 국립과학관은 무료이지만, 관람하고 나서 본전도 못 찾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요. 문제는 과학관장 대부분이 박물관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 교수는 정부의 문화기술 정책을 두고 “국가 차원이 아니라 정부나 정권 차원의 단기 정책이 주를 이룬다”며 “정부는 대학과 기업이 기술 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에 그쳤으면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기술 개발 방향과 사업을 구체화할수록 연구 성과는 나오지 않고 예산만 낭비되지요.” 그는 자신의 연구 종착지 역시 예술이라고 했다. 그래서 “연구 결과의 상용화엔 별 관심이 없다.” 대신 희망은 “연구 결과가 미술관이나 과학관에 전시될 만큼 완성도가 확보되는 것”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