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법정에서 쌍방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어느 쪽이 정당한지 가늠하기 어려울 경우, 법정은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이 사안은 두 사람이 백년 뒤에 다시 만나 판결을 내리기로 한다.” 이는 오늘날 사법제도에도 남아 있는 ‘선고유예’의 가장 오래된 기록일 것이다.
다툼을 해결해야 할 법정이 판단을 유예하는 건 직무유기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진실과 깃털의 경중을 가려내는 오시리스 법정의 신묘함을 흉내도 못 낸다. 인간의 법정에선 때로 판단의 유예가 되레 정의에 부합할 때가 있다. 세상 모든 사법부의 경구인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자유의 이익으로”라는 말이 일깨우는 경고는, 아흔아홉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이를 만들지 않도록 충분히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법정은 한순간 폭정의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당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던 조 교육감은 항소심에서 일부 무죄, 일부 유죄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아 교육감 직을 유지하게 됐다. 검찰은 사형 등 심각한 양형이 아니라면 상고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마저 무시한 채, 선고유예가 부당하다며 상고했다. 반면 검찰은 동일한 재판부에서 선고유예를 받은 문용린 전 교육감에 대해서는 상고하지 않았다. 조 교육감에 대해서만 차별적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2심 판결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한 법리는 주목할 만하다. 판결문은 “고승덕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였다”는 발언과 “고 후보가 미 영주권을 보유하였다는 의혹이 있다”는 발언은 다르다며, 후자가 전자를 ‘암시’한다고 본 1심 판결문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피고인이 사용한 표현과 다른 내용을 ‘암시하였다’고 인정한다면, 경우에 따라 피고인이 하지 않은 표현에 대하여 형사 책임을 물을 기초가 제공”되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표현이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는 기본권 주체는 규제받을 것을 우려해 표현행위를 스스로 억제할 가능성이 높고, 그로 인해 (…) 표현의 자유의 본래 기능은 상실된다”는 것이다.
이 법리의 전거로 인용한 대법원 판례는 “축재했다”는 발언과 “축재 의혹이 있다”는 발언을 같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영주권 보유”와 “영주권 보유 의혹”은 다른 표현이라고 판단한 항소심 판결문이 이 판례와 어긋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건 형법 문제가 아니라 문법 문제다. 이런 국어 문제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지 말라는 게 항소심 판결문의 가장 중요한 취지임을 검찰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신이 아닌 인간의 법정은 행위의 악의성 검증과 신중한 판단이 생명이다. ‘암시’를 판단하는 건 인간 법정의 영역이 아니며, ‘암시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건 인간의 오만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회복한 상식의 영역이 상고심에서 확인되길 간절히 기대한다.
임재홍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
임재홍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