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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달라졌나요?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3. 18. 22:34

사설.칼럼사설

[아침 햇발] “뭐라도 달라졌나요?” / 여현호

등록 :2016-03-17 18:14수정 :2016-03-17 18:40

 

매일매일의 뉴스가 드라마틱한 반전과 충격인 한국에서 뉴스를 뚫고 화제가 됐다면 경쟁력 있는 드라마라고 봐야 한다. 그런 드라마 <시그널>을 여러 차례 몰아보기로 다 봤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장면이 여럿이다. 과거의 형사 이재한이 현재의 수사관 박해영에게 시간을 잇는 무전기를 통해 토해내는 분노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거기도 그럽니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슨 개망나니짓을 해도 잘 먹고 잘살아요?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그죠?” 박해영은 “예, 달라요… 그때하고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만들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망설이게 된다. 과연 옛날보다 나아졌을까? 지켜야 할 것은 지켰을까?

지금 압도적인 화제는 새누리당 공천이다. 유승민 의원의 공천이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승패만큼이나 관심의 대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눈 밖에 난 ‘비박’ 인사들의 대거 공천 탈락에는 ‘공천 학살’이란 비난이 거세다.

공천 잡음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08년 18대 총선 공천에선 친이명박계가 친박계 의원들을 배제한 ‘친박 학살’이 있었고, 2012년 19대에선 거꾸로 친박계가 칼자루를 쥐고 서울지역 친이계의 4분의 3을 탈락시키는 대규모 보복공천을 벌였다. 시간이 지나도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속사정은 더 고약해졌다. 공천이 학살과 보복의 역사라지만 그래도 정당 민주화 차원에선 작으나마 진전이 있었다. 야당도 그랬지만 여당도 지난 4년 내내 더하고 빼가며 공천룰을 가다듬었다. 세밀하게 만들어진 공천 절차와 심사기준은 당헌당규에 반영됐다. 상향식 공천도 도입됐다. 그 의의를 평가하자면, 소수의 전횡 대신 당원과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고 절차에 따르자는 것이겠다.

그런 취지는 이번에 여지없이 무시됐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그동안 공천 부적격자 등 심사기준을 공개한 바 없다. 정체성 따위 명분도 모호하거니와 정량적 기준이라도 있는지 의문이다. 당규는 “후보자 1인의 경쟁력이 월등한 경우”를 단수 추천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여론조사 1등 대신 그보다 훨씬 떨어지는 후보가 단수 추천된 게 여럿이다. 선두 후보가 경선에 끼지 못하기도 했다. 당헌당규에서 사라졌던 ‘전략공천’은 단수 추천제나 여성·장애인 추천제의 외피를 쓰고 부활했다. 그렇게 쫓겨난 이들은 대부분 박근혜 대통령의 뜻을 거스른 사람들이고, 대신 들어온 이들은 ‘진짜 친박’이다. 누가 이렇게 거칠게 칼을 휘둘렀는지는 이로써 분명해진다.

여현호 논설위원
여현호 논설위원
공천은 그저 공천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천 학살과 친박계 배치는 대구·경북과 경남 등 ‘텃밭’에 집중됐다. 모두 공천이 당선으로 이어진다는 곳이다. 이런 지역에서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는 절차도 없이 대통령의 뜻에만 맞춘 공천을 한다면, 국민의 대표 선출권은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그 결과는 유신시대 유정회 의원 임명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렇잖아도 지금의 무리수는 대통령 퇴임 이후 지역을 기반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터다.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계파 보스로 남으려 그런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여당 지지자의 절반 이상이 이번 공천에 만족한다고 한다. 대단한 배경이다. 뭐라도 달라지기는커녕 30, 40년 전 후진 독재국가의 악몽으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장은 투표가 뭔가를 바꿀 수단이다. 국민의 선택권을 돌려주는 결단도 있어야 한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