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와 저성장은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골칫거리다. 각 당의 경제 관련 총선 공약들도 이들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당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양적완화를 대표 공약으로 내놓았다. 야당들은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경제민주화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저성장 문제는 해외에서도 주요 현안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선 해외의 논의부터 살펴보자.선진국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공적자금의 투입과 양적완화 등으로 파국을 막고 경기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이윤도 꾸준히 늘어났다. 그러나 이윤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경기 회복이 본격화되지 못한 가운데 성장의 둔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왜 그런 결과가 일어났는지, 그 해법은 무엇인지 등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주장은 클린턴과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스승이었던 로런스 서머스로부터 제기되었다. 그는 선진국 경제가 추세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높은 저축성향과 낮은 투자의향이 공존하는 방향으로 경제의 구조가 변했고, 총수요가 만성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장기침체가 일상화되었다는 것이다.최근에는 영국의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가 이윤의 확대와 성장 부진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한 바 있다. 이들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막대한 이윤은 높은 생산성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인위적인 진입장벽이나 불공정한 규칙으로 인한 초과소득, 곧 지대(rent)의 성격이 강하다. 서머스는 이 기사를 높게 평가하며, 독과점이 투자 부진 및 소비 부족의 핵심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대기업들이 더 높은 수익을 거두기 위해 산출량을 제한하고 더 높은 가격을 부과함으로써 저투자와 저소비를 일상화한다는 것이다.이러한 분석이 옳다면, 우리의 경우에도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나 규칙이 저성장의 주요한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들이 높은 초과이윤을 계속해서 누리는 것은 그들이 국민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소비자나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부당하게 빼앗아가고 있다는 징표이다. 따라서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가계의 발언권을 높이고, 대기업에 맞설 수 있는 중소기업의 힘을 키우려는 다양한 노력들, 곧 경제민주화의 시도들은 가계의 소비여력을 늘려주고 투자와 혁신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양극화 해소는 물론 경기회복과 경제성장에도 크게 기여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때 내부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는 최대한 풀되, 노동·환경 등 사회적 규범 관련 규제는 강화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여당에서 들고나온 양적완화도 저성장의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현재 장기침체 문제의 특징은 실물투자의 기대수익률이 대단히 낮아서 금리를 아주 낮게 떨어뜨리더라도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기 어렵다는 데 있다. 따라서 저성장 문제는 실물투자의 기대수익률을 높일 수 있을 때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돈을 푸는 통화정책은 차입과 위험감수 행위를 유도해 경기를 부양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실물투자의 기대수익률을 더 낮출 가능성이 높다. 서머스 교수에 의하면, 실물투자의 기대수익률을 높임으로써 장기침체를 해결할 확실한 해법은 공공투자에 초점을 맞춘 재정정책이다. 주택·의료·보육 등을 향한 공공투자는 부족한 수요를 늘리는 수단임과 동시에 중산층과 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의 성격도 갖는다.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