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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들에게 ‘4·3’은 죽음 앞에서 살려는 의지였다”/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4. 4. 21:39

문화

“제주 사람들에게 ‘4·3’은 죽음 앞에서 살려는 의지였다”

등록 :2016-04-03 18:54

 

 왼쪽부터 작가 권윤덕, 시인 강중훈.
왼쪽부터 작가 권윤덕, 시인 강중훈.
[짬] ‘제주 4·3 그림책’ 북 콘서트
권윤덕 작가 강중훈 이사
제주4·3항쟁 68돌을 하루 앞둔 2일, 남한 최북단 임진강 지류에 자리잡은 작은 집에서 아릿한 대금 소리가 울려 퍼졌다. 4·3을 품은 그림책 <나무도장>의 작가 권윤덕(56)씨와 4·3 유족이기도 한 시인 강중훈(75) 제주4·3평화재단 이사가 경기 파주시 두포리에 둥지를 튼 평화를품은집(평품집) 소극장을 빼곡히 메운 관객 40~50명 앞에 앉았다. ‘나무도장’ 출간 북콘서트를 겸한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소년소녀의 눈으로 4·3을 만나다’ 주제로 4·3 추모 대담을 나눴다.

7개월 아기 죽인 ‘빌레못학살’ 모티브
그림책 ‘나무도장’ 출간한 권씨
“참혹한 이야기지만 아이들도 알아야”

가족 12명 희생 현장서 살아남은 강씨
장례식때 떡 자랑하며 놀던 7살 소년
“슬프다 눈물흘릴 겨를 없이 그저 살아”

권 작가는 참혹한 민간인 학살 얘기를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으로 빚은 까닭에 대해 “4·3은 어른들에게도 고통스럽고 덮어두고 싶은 이야기이지만,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분노나 증오를 넘어선 이야기를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함께 보는 그림책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 시인은 1948년 제주 오조리 성산일출봉 앞 ‘앞바르터진목 학살’에서 살아남은 얘기를 들려줬다. 400여명이 죽은 그 현장에서 그의 아버지와 할머니·할아버지, 아버지의 형제자매·사촌형제까지 모두 12명도 희생됐다. 고작 초등 1학년 7살이던 그는 그 광경을 지켜봤다. “어떤 느낌이었겠습니까. 아무 느낌도 없어요. 죽음은 그토록 가벼운 거예요. 그냥 폭 쓰러지면 끝. 저는 ‘어, 죽었나. 저렇게 쓰러지는 건가 보다’, 어린아이니까 그냥 집으로 돌아왔어요. 제가 충격을 받았을까요? 아니에요. 그냥, (아버지가) 죽었어요. 초상을 치르는데 어머니가 울라고 하면 막 울고, 어머니가 놀라고 하면 마당 가서 ‘우리 집 떡 했다’ 친구들에게 말하며 놀았어요. 떡이 귀할 때니까 자랑하면서요. 슬픔이란 걸 몰랐어요. …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어린아이가 받은 (엄청난) 충격이에요. … 트라우마였지요.”

‘나무도장’은 13살 여자아이 ‘시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4·3으로부터 10여년 뒤, 어머니가 시리에게 고백을 하는 얘기다. 48년, 어느 동굴 학살 때 경찰이던 어머니의 남동생, 곧 시리의 외삼촌이 가담을 했고, 어느 아주머니 품에 안겨 있던 3살배기 아기(시리)를 어머니와 외삼촌이 살려내 지금까지 키워왔다는 고백이었다. 생명을 살린 얘기는 역설적으로, 4·3 빌레못학살을 모티프 삼았다. “빌레못학살 직전에 동굴에서 생후 일곱달 아기를 어떤 아주머니가 끌어안고 나오는데, 입구가 좁아 굴을 잘 빠져나오지 못하니까 진압 경찰이 아기를 바위에 내리쳐 죽였다고 해요. 가해자와 피해자를 넘어서, 일곱달 된 아기를 죽일 수 있을까? 저는 인간의 선함과 희망을 말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학살 와중에 일부러 총을 비켜 쏜 경찰분도 많았고 확인사살을 하지 않은 분도 많았다고 해요.”(권윤덕)

시리의 외삼촌은 부모를 잃은 피해자이면서 학살에 참여한 가해자다. 강 시인은 그런 일이 아주 많았다고 말했다. “제 아버지가 죽은 앞바르터진목에서 제 고모부도 죽었어요. 총 쏘는 사람이 비켜 쏘았는지 모르겠는데 고모부가 맞아 쓰러지며 그 어머니를 덮쳤어요. 그래서 아마 더 쏘지 않았는지, 그 어머니는 기절했다 깨어나 살아 나왔어요. 어느 어머니는 아기를 업고 총에 맞았는데 아기가 살았어요. 어느 분이 데려가 키웠죠. 섭지코지마을에 지금도 살고 계세요. 일종의 착한 나쁜 사람, 나쁜 착한 사람들이 그 아기를, 제 고모부의 어머니를 살린 거예요.”(강중훈)

강 시인은 “4·3은 제주 사람들에게 ‘죽음 앞에서 살려고 하는 의지’였다”고 말했다. “제가 죽음 앞에 있었잖아요. 재산 하나 없이 목숨만 남아서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요? 슬프다, 괴롭다 눈물 흘릴 시간이 없어요. 살아야겠단 의지는 악인가요, 선인가요? 순수 자체입니다. 첫닭이 울면 어머니가 일하러 가면서 밥해서 밭으로 나오너라 하죠. 그러면 밥 가지고 가는 거예요. 밭에서 엄마랑 누나랑 밥 먹고 학교 가요. 그렇게 살았어요. 그것이 삶의 본질이고 4·3의 의미입니다.”

그의 가족이 학살당한 배경에는 군인이었다가 소대장 인솔 아래 탈영하여 ‘산사람’(인민유격대)이 된 작은아버지의 선택이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빨갱이 가족이 되었다”고도 했다. 21살에 결혼한 작은아버지의 아내, 곧 작은어머니는 남편을 살리고자 ‘산사람’ 진압에 앞장선 서북청년단원의 아내가 되었다. “50년 뒤에 어떤 여성이 저를 찾아왔어요. 작은어머니의 딸인데 재혼한 서북청년단원의 딸이지요. 작은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을 남겼다고 해요. ‘너도 여인이니 내 맘을 알 거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네 아버지가 아니고 산으로 간 그 사람이다. 내가 죽걸랑 그 동네 가서 강중훈을 찾아라’고 했다는 겁니다. 사랑은 그런 거예요. 저는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슬픔을 모르고 살았는데, 울었어요. (작은어머니에게서) 정말 슬픔과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어요. 그 딸과 저는 그날 (사촌) 오누이가 되었죠. 제삿날 작은어머니도 같이 모십니다. 이 시점에서 누구를 미워합니까. 제주 4·3은 사랑입니다. 4·3은 우리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사랑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나무도장’의 주인공 시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외삼촌이 실은 친엄마가 죽는 데 가담한 가해자임을 알게 됐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답은 독자 몫으로 남겨뒀어요. 저는 질문만 던지고 답은 독자가 찾도록 했지요.”(권윤덕)

이날 행사 첫머리의 양지석씨 대금 연주와 함께, 12살 최하연양의 ‘시리에게 들려주는 노래’ 아코디언 연주, 극단 올리브와찐콩의 <나무도장> 연극도 펼쳐졌다.

파주/글·사진 허미경 선임기자 carm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