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선거 결과는 김무성 당대표가 호언한 180석은 고사하고 16년 만의 여소야대였다. 집권 여당이 제2당으로 밀려난 참패였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보수 신문들까지 총선이 박 대통령의 무능과 오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박근혜 정권 출범 후 한국 언론이 정국 평가에 진보·보수의 벽을 넘어 같은 목소리를 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새누리당은 총선 패배의 책임이 여당 쪽에 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달랐다. 총선 닷새가 지나서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을 뿐 선거 참패와 자신은 아무 관계가 없는 듯한 반응이었다.
미디어 전문지 <미디어오늘>은 “청와대를 계속 감싸온 보수 신문들이 총선 결과에 대한 박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데 있어서 한술 더 뜨는 비판을 가했다”며 ‘조선·중앙·동아·문화일보가 ‘야당지’로 돌변하다’는 제목으로 조중동의 박근혜 책임론에 관한 글들을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선거 다음날인 14일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의 오만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총선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있음을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 이기는 권력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고 경고했고, <동아일보>는 ‘성난 민심 ‘선거의 여왕’을 심판했다’는 1면 머리기사로 박 대통령의 책임을 명백히 했다고 소개했다.
미디어오늘은 “가장 섬뜩한 것은 조·중·동과 같은 분류에 속하는 <문화일보>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할 5명의 새누리당 인사들을 지적한 14일자 기사 제목을 ‘박근혜 이한구 김무성 최경환 윤상현, 새누리 참패 5적’이라고 뽑아 선거 참패의 책임을 져야 할 오적의 맨 머리에 박 대통령의 이름을 적어 놓은 것”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오적’은 1970년대 유신시대에 김지하 시인이 박정희 정권을 부패시킨 정치인, 군인들을 빗대 비판한 역사적인 풍자시인데 박근혜 정권 오적의 맨 위에 박근혜의 이름을 올려 놓았으니 주의를 끌고 남을 일이었다.
그동안 박근혜 정권의 호위무사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보수 언론이 모처럼 민주언론과 한목소리를 낸 것은 한국 언론을 위해서도 환영할 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건전한 비판정신을 서로 교환하며 진보-보수 언론이 토론을 통해 공감대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유익한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선거 직전까지도 보수 유권자층의 표심을 노린 정권의 북풍몰이를 적극 지원하는 편파보도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언론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언론을 제어할 수 있는 건 현명한 독자뿐이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