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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으로 영화찍기

이윤진이카루스 2010. 12. 2. 20:41

만원으로 찍는다고?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독립영화 감독들이 공개한 5대 제작비 절감 비법
한겨레 김미영 기자 메일보내기
» 아이폰4로 제작된 <블루진>(홍경표 연출) 촬영 장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영화감독이다. 스마트폰으로 찍고 편집하고 영화제 출품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끝인가. 영화는 돈과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그래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그 길 위에서 독립영화 감독들이 분투하고 있다.

밥값 아끼느라 끼니때 건너 만나고, 조명 없어 가로등 밑에 들어가 찍고, 감독 혼자 1인 다역 하기는 기본이다. ‘달리 트랙’(이동 촬영을 위해 설치하는 레일)이 없으면 수레나 차로 움직이며 찍는다. 와이어 대신 높이 뛸 수 있는 ‘트램펄린’이 그 몫을 대신한다. 역동감 있는 화면이 매력인 ‘스테디캠’이 없으면 일반 카메라를 흔들며 찍으면 된다. ‘더미’(촬영용 시체 모형) 대신 마네킹을, 마네킹도 없으면 분장한 사람을 ‘있어 보이게’ 찍는다. 이 없다고 잇몸으로 못 씹겠는가.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돈은 ‘피’, 사람은 ‘살’이다. 영화 만들 때마다 피와 살이 떨린다는 독립영화 감독들은 저마다 제작비 절감 노하우로 무장하고 있다. 누구나 손쉽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 독립영화 감독들의 비법을 잘 활용하면, 이제 당신도 진짜 영화감독이다.

 

1. 시나리오를 잘 써라

뛰어난 블록버스터 시나리오도 돈 없으면 무용지물. 적절한 계획이 가장 기본인 까닭이다. 시간과 사람 모두 돈이니, 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영화감독 지망생 엄마와 뮤지션 지망생 아들의 이야기인 <레인보우>를 만든 신수원 감독은 “회차와 테이크를 줄여 촬영기간을 짧게 잡아야 제작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시나리오를 ‘효율적으로’ 잘 써야 한단다. 등장인물, 소품 등을 최소화하는 절약형 시나리오가 살길이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떠난 우유부단 소심남의 이야기를 다룬 <낮술>. 영화를 만든 노영석 감독은 제작비를 아낄 겸 영화의 8할을 낮과 야외 장면으로 채웠다. 비싼 조명기기 피하고 장소 섭외비도 아껴야 해서다. 어쩌다 등장하는 밤 장면은 캠핑용 플래시 2개를 이용해 찍었다.

» 직접 만든 블루스크린으로 촬영한 <불청객>(이응일 연출).

 





2. 감독 1인 시스템을 구축하라

돈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 한다. 그러니 감독의 ‘1인 다역’은 기본.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과 <이웃집 좀비>의 홍영근 감독은 1인3역(각본·연출·연기)을, <불청객>의 이응일 감독은 1인5역(각본·연출·촬영·편집·컴퓨터그래픽)을 했다.

1인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는 건 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나 휴대전화 등 간편해진 동영상 장비 덕분이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12월9~17일) 단편 부문에 초청된 이지상 감독도 1인 시스템의 효율을 자랑한다. <한 여인>은 미국에서 디에스엘아르 카메라로 혼자 다니며 찍었다. 제작비라곤 길에서 섭외한 배우에게 준 20달러뿐이었다. 군대에서 들은 괴담을 ‘디카’로 사흘간 찍어 만든 <시크릿 가든>의 제작비도 5만원에 불과하다. 이 영화의 임철민 감독은 “내가 연기할 때 카메라를 들어준 친구와 먹은 밥값이 제작비의 전부”라고 말했다.

생활에서 건진 영화라면 ‘무전제작’도 된다. 미디액트와 함께 2년간 용산 철거민들의 구술사를 정리해온 늘샘 감독은 휴대전화와 캠코더로 찍은 영상을 편집해 14분짜리 <눈이 오르고 밥이 익는다>를 만들어, 독립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 올랐다. 그는 “화질은 다소 떨어지지만 휴대폰은 1인 영화제작 시스템에 가까운 도구”라고 설명했다.

3. 장비 비용을 아껴라

<똥파리>는 파나소닉 HVS200 카메라로 촬영했다. 하루 대여비는 4만원. 저사양 고화질 카메라 중 저렴했다. “영화 전공자들은 학교에서 기자재를 싸게 빌릴 수 있지만 저처럼 비전공자들은 사설 업체에서 대여를 해야 하죠.”(양익준 감독)

이응일 감독의 <불청객>은 강풍기 대여비 10만원을 아끼려고 노래방 앞 바람인형의 송풍기를 하루 5000원에 빌렸다. 카메라는 브이제이(VJ)들이 주로 쓰는 PD170 기종을 썼다. 사설 업체 대여비는 하루 2만~3만원. 영화 전공하는 후배의 학생증을 빌려 학교에서 하루 7000원에 빌려 썼다.

장비를 최소화할 때 희생되는 게 음향을 따는 ‘붐대’다. 동시녹음에 사용하는 붐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마이크를 청테이프로 각목에 묶어 사용하거나(<똥파리>), 삼각대에 올려놓고 찍기도 했다.(<불청객>)

» 돈 아끼느라 낮과 야외 장면으로 채운 <낮술>(노영석 연출).

4. 인맥을 총동원하라

독립영화판에선 집이 세트고, 아는 사람이 출연배우와 스태프다. <불청객>의 배우는 감독이 사는 서울 신림동 고시생들이었다. <이웃집 좀비>는 오영두·장윤정 감독의 옥탑방에서 촬영했다. “평소 인맥이 영화 촬영 때 도움이 된다”는 <이웃집 좀비>의 홍영근 감독은 “독립영화는 배우 출연료나 스태프 일당이 적거나 없기 때문에 먹는 것만큼은 잘 챙겨 먹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웃집 좀비>는 제작비 2000만원 중 절반이 식비로 들었다. 인맥을 동원하되 촬영 현장의 스태프는 10명을 넘지 않는 게 좋다. 머릿수에 따라 밥값, 교통비가 늘어나서다. <낮술>의 노영석 감독은 “스태프를 배우로 기용하고, 필요 없는 인원이 현장에 머무르지 않게 안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5. 소품으로 CG를 대체하라

재현하기 어려운 영화 속 장면에서 사용되는 게 컴퓨터그래픽(CG)이다. 그러나 푼돈으로 시지를 입히는 건 불가능하다. 영화 속 환상 장면에서 개미를 사용한 <레인보우>의 스태프들은 시지 대신 직접 개미를 잡아 사용했다. “개미를 하도 많이 잡다 보니 악몽을 꾸는 스태프도 있었다”고 신수원 감독은 말했다. 운 좋으면 하늘도 돕는다. “무지개 장면을 만들려고 프리즘을 이용하기도 하고 유리판에 그려 써보기도 했어요. 이런 노력 덕분인지 마지막 장면은 진짜 무지개가 하늘에 떠 촬영할 수 있었죠.”

공상과학(SF) 장르인 <불청객>의 제작기는 한편의 블랙코미디다. 총제작비 2000만원으로 5년간 만든 이 영화는 실제작비가 500만원밖에 안 들었다. 나머지 1500만원은 영화제 출품을 위한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촬영 시 특수효과는 저예산 소품으로 해결했다. 액션 장면에 사용하는 ‘슈거 글래스’(특수제작 유리)는 공예용 설탕을 구해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만들었다. 등장인물 ‘포인트맨’의 의상은 내복을 파랗게 염색해 크로마키 효과를 줬다. 대여비가 150만~300만원 드는 블루스크린은 남대문시장에서 20만원 주고 사온 파란색과 녹색 천으로 대신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