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부
과학의 논리에 대한 서론
1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개관
과학자는, 이론가이든 실험가이든, 서술들이나 서술들의 체계들을 제시하여 단계적으로 시험한다. 경험과학들의 분야에서 더욱 특히, 과학자는 가설들이나 이론들의 체계들을 구축하여 그것들을 관찰과 실험에 의한 경험에 대비하여
시험한다.
나는 이 절차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제공하는 것이 과학적 발견의 논리의, 즉 지식과 관련한 논리의 임무라고 제안한다; 다시 말해서, 경험과학들의 방법을 분석하는 것.
그러나 이 ‘경험과학들의 방법들’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경험과학’이라고 부르는가?
1 귀납의 문제
널리 수용되는 견해에 – 이 책에서는 반대할 – 따르면 경험과학들은 그 과학들이 지칭되는 바와 같이 ‘귀납적 방법들’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의하여 규정될 수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과학적 발견의 논리는 귀납적 논리와, 다시 말해서, 이 귀납적 방법들에 대한 논리적 분석과 동일할 터이다.
추론이, 관찰사항들이나 실험사항들의 결과들에 대한 설명들과 같은 단칭명제들로부터 (때때로 ‘특칭’명제로도 지칭된다) 가설들이나 이론들과 같은 전칭명제들로 이동한다면 추론을 ‘귀납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아무리 많다할지라도, 이제 우리가 단칭명제들로부터 전칭명제들을 추론하는 데 우리가 정당화되는 것은 논리적 관점에서 결코 분명하지 않다; 이유인즉 이런 방식으로 도출된 결론은 항상 거짓으로 판명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흰 백조들에 관하여 아무리 많은 사례들을 우리가 관찰했을지라도, 이것은 모든 백조는 희다는 결론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귀납적 추론들이 정당화되는지 혹은 어떤 조건들 하에서 정당화되는지의 문제는 귀납의 문제로서 알려진다.
귀납의 문제는, 가설들이나 경험과학들의 이론적 체계들처럼 경험에 근거한 전칭명제들의 유효성이나 진실성에 관한 문제로서 또한 상세히 표현될 것이다. 이유인즉 많은 사람들이 이 전칭명제들이 지닌 진실성이 ‘경험에 의하여 알려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에 대한 – 관찰에 대한 혹은 경험의 결과에 대한 – 설명은 우선 단지 단칭명제일 수 있어서 전칭명제일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전칭명제에 대하여 우리는 그 전칭명제의 진실성을 경험으로부터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이 전칭명제의 진실성이 단칭명제들의 진실성으로 어떤 정도로든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단칭명제들은 경험에 의하여 참으로 알려진다는 것을 의도한다; 이것은, 전칭명제가 귀납적 추론의 근거한다고 말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참으로 알려지는 자연법칙들이 있는지를 묻는 것은, 귀납적 추론들이 논리적으로 정당화되는지를 묻는 또 다른 방식일 따름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귀납적 추론들을 정당화하는 방식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면, 우리는 먼저 귀납의 원리를 확립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귀납의 원리는 그 명제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가 귀납적 추론들을 논리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형태에 집어넣을 수 있을 명제일 터이다. 귀납적 논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귀납의 원리가 과학적 방법과 관련하여 최고로 중요하다: ‘... 이 원리는 과학적 이론들이 지닌 진실성의 결정한다. 이 원리가 없다면, 분명히 과학은 자체의 이론들을 시인들의 정신이 낳는 몽상적이고 자의적인 창작물로부터 구분하는 권리를 더 이상 지니지 않을 터이다.’라고 라이헨바흐(Reichenbach)는 말한다.
이제 이 귀납의 원리는 항진명제(恒眞命題: tautology)나 분석명제처럼 순전히 논리적인 진리일리가 없다. 정말로, 순전히 논리적인 귀납의 원리와 같은 것이 있다면, 귀납의 문제는 없을 터이다; 이유인즉 이 경우에, 모든 귀납적 추론들은, 연역적 논리로 된 추론들과 꼭 마찬가지로, 순전히 논리적이거나 항진명제적(恒眞命題的: tautological) 변형들로서 틀림없이 간주될 터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귀납의 원리는 틀림없이 종합명제이다; 다시 말해서, 그 명제에 대한 부정(否定)이 자기-모순적은 아니고 논리적으로 가능한 명제. 그러므로 그런 원리가 왜 조금이라도 수용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 원리의 수용을 이성적 토대들을 근거로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나타난다.
귀납적 논리를 신뢰하는 몇몇 사람들은, 라이헨바흐(Reichenbach)와 함께, ‘귀납의 원리는 과학 전체에 의하여 명백하게 수용되며 아무도 일상생활에서 또한 이 원리를 진지하게 의심할리가 없다’고 애써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이것이 사실이라면 – 왜냐하면 결국, ‘과학 전체’가 아마도 오류를 저지를 터이기 때문에 – 귀납의 원리는 불필요하다고 그리고 귀납의 원리는 틀림없이 논리적 모순들을 야기한다고 나는 여전히 주장할 터이다.
모순들이 귀납의 원리와 관련하여 쉽게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흄(Hume)의 저술로부터 틀림없이 분명했다 (이 문장의 원문은 That inconsistencies may easily arise in connection with the principle of induction should have been clear from the work of Hume인데 should have +과거분사는 과거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쓰는 표현이므로 이 문장의 의미로 보아 ‘틀림없이 분명했다’라는 과거의 강력한 추측을 의미하므로 should have been clear를 must have been clear로 써야할 것이다. 원문의 오류로 보인다: 역자);*1 또한 그 모순들은 어렵게만 조금이라도 회피될 수 있다는 점. 왜냐하면 귀납의 원리는 반대로 틀림없이 전칭명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귀납의 원리가 지닌 진실성을 경험으로부터 알려지는 것으로서 간주하려고 한다면, 귀납의 원리가 도입했던 바로 그 동일한 문제들이 다시 한 번 나타날 것이다. 귀납의 원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우리는 귀납적 추론들을 사용해야 할 터이다; 그리고 귀납적 추론들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우리는 상위 단계의 귀납적 원리를 추정해야 할 터이고; 그리고 그렇게 계속된다. 그리하여 귀납의 원리를 경험에 근거시키려는 시도는 붕괴하는데 왜냐하면 그 시도가 틀림없이 무한회귀(無限回歸: infinite regress)를 낳기 때문이다.
칸트는 귀납의 원리를 (그가 ‘보편적 인과의 원리’로서 상세히 표현했던) ‘선험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수용함에 의하여 이 난제로부터 뚫고나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종합 명제들에 대하여 선험적 정당화를 제공하려는 그의 기발한 시도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자신의 견해는, 여기서 개괄된 귀납적 논리와 관련된 다양한 난제들이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귀납적 추론은 ‘엄격하게 유효하지는’ 않을지라도, 어느 정도의 ‘신뢰성’이나 ‘확률’에 다다를 수 있다는 오늘날 널리 통용되는 교설 안에서 내재한 난제들 또한 그렇다고 나는 우려한다. 이 교설에 따르면, 귀납적 추론들은 ‘확률적 추론들’이다. ‘우리는 귀납의 원리를 과학이 진리를 결정하는 수단으로서 기술했다. 더 정확하게는, 귀납의 원리가 확률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우리는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에 도달하는 일은 과학에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 서술들은, 확률의 지속적인 정도(程度: degrees)들에 도달할 수 있을 따름인데 그 정도들의 상위 및 하위 한계들이 진실성과 허위성이다’라고 라이헨바흐(Reichenbach)는 말한다.
이 단계에서 귀납적 논리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내가 나중에 그 사람들 자신의 목표들에 관해서도 매우 부적합한 것으로서 배척할 확률이라는 개념을 수용한다는 사실을 나는 무시할 수 있다 (아래, 80절 참조). 언급된 난제들은 확률의 도움을 받아서도 심지어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특정 정도의 확률이 귀납적 추론에 근거한 서술들에게 할당될 수 있다면 이것은 합당하게 수정된 새로운 귀납의 원리의 도움을 요청하여 정당화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원리는 반대로 정당화되어야 할 것이고 그렇게 계속된다. 귀납의 원리가 반대로 ‘참’으로서가 아니라 ‘확률적’으로서만 수용된다면, 게다가 획득되는 것은 없다. 요컨대 모든 다른 형태의 귀납적 논리와 같이, 확률적 추론의 논리 즉, ‘확률 논리’는 무한회귀(無限回歸: infinite regress)나 선험론이라는 교설을 야기한다.*2
다음 쪽들에서 전개될 이론은 귀납적 논리와 관련된 개념들로써 작동하려는 모든 시도들과 직접적으로 대립한다. 그 이론은 시험하기의 연역적 방법론으로서, 혹은 가설은 경험적으로 – 그리고 가설이 제출된 이후에만 - 시험될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견해로서 아마도 기술될 것이다.
내가 이 견해를 (‘귀납주의’와 대조적으로 ‘연역주의’로 아마도 지칭될) 상세히 설명할 수 있기 전에 나는 먼저, 경험적 사실들을 다루는 지식의 심리학과 논리적 관계들에만 관심을 갖는 지식의 논리의 구분을 분명히 해야겠다. 왜냐하면 귀납적 논리에 대한 신뢰는 심리학적 문제들을 인식론적 문제들과 혼동하는 데서 주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혼동이 지식의 논리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지식의 논리와 관련된 심리학에 대해서도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2 심리학주의의 배제
나는 위에서, 과학자의 업무는 이론들을 제시해서 시험하는 데 놓여있다고 말했다.
이론을 구상하고 창안하는 행위인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보기에 논리적 분석을 요구하거나 그 분석에 쉽게 영향을 받을 것을 요구하는 것 같지 않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 그 아이디어가 음악적 주제이건, 드라마의 갈등이건, 과학적 이론이건 – 사람에게 떠오르는 일이 어떻게 발생하는가의 문제는 경험적 심리학에는 크게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적 지식에 대한 논리적 분석과는 관계가 없다. 과학적 지식에 대한 논리적 분석은 사실의 문제들과 (칸트의 사실의 문제[quid facti?]) 관련되지 않고 다만 정당성이나 유효성의 문제들과 (칸트의 정당성의 문제[quid juris?]) 관련된다. 과학적 지식에 대한 논리적 분석의 문제들은 다음 종류이다. 어떤 서술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렇다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서술은 시험될 수 있는가? 그 서술은 특정 다른 서술들에 논리적으로 의존하는가? 혹은 그 서술은 혹시 다른 서술들을 부정하는가? 어떤 서술이 이런 방식으로 논리적으로 검토되기 위하여, 그 서술은 틀림없이 이미 우리에게 제출되었다. 누군가가 분명히 그 서술을 창출하여 그 서술을 논리적 검토를 위하여 제출하였다.
따라서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과정과, 그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검토하는 방법들 및 검토한 결과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것이다. 지식에 관한 논리가 – 지식의 심리학과 대조적으로 - 지닌 임무에 관하여, 모든 새로운 아이디어가 진지하게 고려되려면 그 새로운 아이디어는 치러야 하는 저 체계적인 시험들에서 사용된 방법들을 조사하는 데만 그 임무가 놓여있다는 전제를 근거로 나는 진행하겠다.
과학자로 하여금 발견에 - 어떤 새로운 진리의 발견에 - 이르게 한 단계들의 ‘이성적 재구축’이라고 지칭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인식론의 할일로서 간주하는 것이 목적에 더 부합할 터이라고 몇몇 사람들은 아마도 반대의견을 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확하게 우리는 무엇을 재구축하고 싶어 하는가? 재구축되어야 하는 것이 영감을 자극해서 방출하는 데 포함된 과정들이라면, 나는 재구축되어야 하는 것을 지식의 논리와 관련된 임무로서 수용하기를 거절하겠다. 그런 과정들은 경험적 심리학의 관심사이지 논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 시험들에 의하여 영감이 발견사항으로 밝혀질지 아니면 지식으로 알려지게 될 것인지와 관련된 후속적 시험들을 이성적으로 우리가 재구축하기를 우리가 원할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과학자가 자신이 받은 영감을 비판적으로 판단하거나, 변경하거나, 혹은 배척하는 한, 우리는 원한다면 여기서 수행되는 방법론적 분석을 일종의 상응하는 사고-과정들의 ‘이성적인 재구축’으로서 간주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재구축은 이 과정들을 그 과정들이 실제로 발생하는 바와 같이 기술하지는 못할 터이다: 그 재구축은 시험하기의 절차에 대한 논리적 뼈대만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지식을 획득하는 방식들의 ‘이성적 재구축’을 말하는 사람들이 의미하는 유일한 것이다.
이 저서에서의 나의 논증들은 이 문제와 전적으로 독립적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문제에 관한 나의 견해는, 그 문제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관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갖은 것에 관한 논리적 방법이나 이 과정의 논리적 재구축과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나의 견해는, 모든 발견사항에는 베르그송(Bergson)이 의미하는 바의 ‘비이성적 요소’나 ‘창조적 직관’이 포함된다고 말함에 의하여 표현될 것이다. 유사한 방식으로 아인슈타인은 ‘저 고도로 보편적인 법칙들에 대한 탐색... 그 법칙들로부터 세상에 대한 그림이 순수한 연역에 의하여 획득될 수 있다. 이 법칙들을 야기하는 논리적 통로는 없다. 이 법칙들은 경험의 대상들에 대한 지성적 사랑(‘Einfühlung: 감정이입’)과 같은 것에 근거한 직관에 의해서 도달될 수 있을 따름이다‘라고 그 고도로 보편적인 법칙들에 관하여 말한다 (이 두 가지 문장의 원문은 In a similar way Einstein speaks of the ‘search for those highly universal laws . . . from which a picture of the world can be obtained by pure deduction. There is no logical path’, he says, ‘leading to these . . . laws. They can only be reached by intuition, based upon something like an intellectual love ('Einfühlung') of the objects of experience.'인데 중간에 삽입된 he say가 오류로 삽입된 것 같고 따라서 이 두 가지 문장은 원래 한 가지 문장으로 보아야 옳을 터이다: 역자).
3 이론들을 연역적으로 시험하기
여기서 제시될 견해에 따르면,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시험하는 방법과 그 이론들을 시험들의 결과들에 따라서 선택하기는 항상 다음 접근방식들로 진행한다. 잠정적으로 제시됨과 동시에 아직 여하한 정도로도 정당화되지 않은 새로운 아이디어로부터 - 예상, 가설, 이론체계 아니면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 결론들이 논리적 연역을 통하여 도출된다. 이 결론들은 그 다음에 서로 그리고 다른 관련된 서술들과 비교되는데 그것들 사이에서 어떤 논리적 관계들이 (대등, 도출가능성, 양립가능성, 혹은 양립불가능성과 같은) 존재하는지를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원한다면, 이론을 시험하기가 수행될 수 있을 터인 네 가지 다양한 접근방식들을 우리는 구분할 것이다. 먼저 결론들 가운데서 그 결론들을 논리적으로 비교하는 접근방식이 있는데, 그 접근방식에 의하여 이론체계의 내부적 일관성이 시험된다. 두 번째로, 이론의 논리적 형태에 경험적이거나 과학적 이론의 특징이 있는지 혹은 그 형태가 예를 들어 항진명제적(恒眞命題的: tautological)인지를 결정하는 목적으로 이론의 논리적 형태를 조사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다른 이론들의 비교가 있는데 주로 이론이 우리의 다양한 시험들을 통과한다면 이론이 과학적 발전이 될 터인지를 결정하는 목표를 지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론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결론들을 경험적으로 적용함을 통하여 이론 시험하기가 있다.
이 마지막 종류의 시험의 목표는 이론의 새로운 결론들이 – 이론이 주장하는 것에서 새로울 모든 것 – 순전히 과학적 실험들에 의하여 아니면 실질적인 기술적 적용사항들에 의하여 제기되건 관계없이, 실질적인 요건들을 어느 정도까지 감당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여기서도 시험하기의 절차는 연역적인 것으로 판명된다. 이전에 수용된 다른 서술들의 도움을 받아서, 특정 단칭명제들은 – 우리가 ‘예측들’로 지칭할 – 이론으로부터 연역된다; 특히 쉽게 시험될 수 있거나 적용될 수 있는 예측들. 이 서술들 가운데서, 현재의 이론으로부터 도출될 수 없는 저 예측들이 선택되는데, 더욱 특히 현재의 이론이 부정하는 저 예측들이 선택된다. 그 다음에 우리는 이 (그리고 다른) 도출된 서술들에 관하여 그 서술들을 실질적 적용사례들과 실험들의 결과들과 비교함에 의하여
결정을 모색한다. 이 결정이 긍정적이면, 다시 말해서, 단칭 결론들이 수용될 수 있거나 검증된 것으로 판명되면, 이론은 당분간 자체에 대한 시험을 통과했다: 우리는 그 이론을 버릴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결정이 부정적이면, 다시 말해서, 결론들이 오류로 판정되었다면, 그 결론들에 대한 오류판정으로 인하여 그 결론들이 논리적으로 연역되었던 이론도 또한 오류로 판정된다.
긍정적인 결정은 이론을 단지 잠정적으로만 뒷받침한다는 것이 주목되어야 하는데, 이유인즉 뒤이은 부정적인 결정들이 항상 그 이론을 뒤엎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론이 세밀하고도 엄격한 시험들을 견디어내고 과학적 진보의 과정에서 또 다른 이론에 의하여 대체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이론이 지난 경험에 의하여 ‘자체의 능력을 증명하였다’나 그 이론은 ‘입증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귀납적 논리를 닮은 것은 여기서 개관된 절차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단칭명제의 진실성으로부터 이론들의 진실성으로 우리가 논증할 수 있다고 나는 결코 가정하지 않는다. ‘검증된’ 결론들의 힘에 의하여 이론들이 ‘참’으로서나 심지어 단지 ‘확률적’으로서도 확립될 수 있다고 나는 결코 가정하지 않는다.
이 저서에서 나는 연역적 시험하기의 방법들에 대하여 보다 상세한 분석을 제시할 의도를 지녔다. 그래서 나는, 이 분석의 틀 안에서, 통상적으로 ‘인식론적’으로 지칭되는 모든 문제들이 다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밝히려고 노력하겠다. 저 문제들은, 더욱 특히, 귀납적 논리에 의하여 발생하는데, 그 문제들을 대신해서 새로운 문제들이 만들어지지 않고도 제거될 수 있다.
4 구획설정의 문제
여기서 개진된 견해에 반대하여 제기될 것 같은 많은 반대의견들 가운데서, 가장 진지한 반대의견은 아마도 다음 것이다. 귀납의 방법을 배척하면서, 내가 경험과학으로부터 그 과학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보이는 것을 박탈한다고 언급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형이상학적 사변으로부터 과학을 분리하는 장벽들을 내가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반대의견에 대한 나의 답변은, 귀납적 논리를 거부하는 데 대한 나의 주요 이유는 바로 귀납적 논리가 이론체계의 경험적이고 비-형이상학적 특징에 대하여 합당하게 구별하는 표식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는 달리 표현하여, 귀납적 논리가 합당한 ‘구획설정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로 하여금 한편으로는 경험과학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형이상학적’ 이론체계들 뿐만 아니라 수학 및 논리학을 구분할 수 있게 할 터인 기준을 발견하는 문제를, 나는 구획설정의 문제라고 부른다.1
이 문제는 흄(Hume)에게 알려졌고, 그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이 문장의 원문은 This problem was known to Hume who attempted to solve it인데 고유명사가 선행사인 경우 관계대명사는 계속적 용법으로 사용되어 관계대명사 앞에 쉼표가 붙어야 한다. 문법적 오류인 문장이다: 역자). 칸트와 동시에 그 문제는 지식론의 핵심적인 문제가 되었다. 칸트를 좇아서 우리가 귀납의 문제를 ‘흄(Hume)의 문제’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아마도 구획설정의 문제를 ‘칸트의 문제’라고 부를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들 – 지식론에 관한 거의 모든 다른 문제의 근원 – 중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구획설정의 문제는 더 근본적이다. 정말로, 경험론적 성향들을 지닌 인식론자들이 자신들의 신뢰를 ‘귀납의 방법’에 두는 경향을 보이는 주요 이유는 이 방법만이 합당한 구획설정의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믿음 때문으로 보인다. 이것은 특히 ‘실증주의’의 깃발을 추종하는 저 경험주의자들에게 적용된다.
더 오래된 실증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경험으로부터 도출된’ 저 개념들만을 (혹은 관념들이나 아이디어들) 과학적이거나 합당한 것으로서 수용하고 싶어 했다; 다시 말해서, 감각들 (감각-자료들), 인상들(impressions), 지각들(perceptions), 시각적이거나 청각적 기억들, 기타 등등과 같이 감각-경험의 요소들로 논리적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그들이 믿었던 저 개념들. 현대 실증주의자들은, 과학이란 개념들의 체계가 아니라 오히려 서술들의 체계라는 것을 보다 분명히 알 것 같다.*1 따라서, 그들은 경험의 기초 (혹은 ‘원자’) 서술들로 - ‘지각의 판단들’이나 ‘원자명제들’이나 ‘프로토콜 명제들’이나 기타 등등으로 – 환원될 수 있는 저 서술들만을 과학적이거나 합당한 것으로서 수용하고 싶어 한다.*2 함축된 구획설정의 기준은 귀납적 논리에 대한 요구와 동일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귀납적 논리를 배척하기 때문에 나는 구획설정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든 이 시도들을 또한 배척해야겠다. 이 배척과 동시에, 구획설정이라는 문제는 현재의 탐구에 대하여 중요성이 증가한다. 수용될 수 있는 구획설정의 기준을 발견하기는 틀림없이 귀납적 논리를 수용하지 않는 여하한 인식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임무이다.
실증주의자들은 통상적으로 구획설정의 문제를 자연주의적인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그 문제를 마치 그 문제가 자연과학의 문제인양 해석한다. 그 문제를 합당한 규약을 제의하는 임무로서 수용하는 대신에, 실증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사물들의 본성 안에 존재하는, 말하자면, 한편으로는 경험과학과 다른 한편으로는 형이상학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발견해야 한다고 믿는다. 실증주의자들은, 형이상학이 자체의 바로 그 본성에 의하여 터무니없는 헛소리에 – 흄(Hume)이 말하는 바와 같이 ‘궤변과 망상’인데 우리는 그것을 ‘불태워버려야’ 한다 – 불과함을 증명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이나 ‘무의미한’이라는 단어들에 의하여 우리가, 정의(定義)에 의하여, ‘경험과학에 속하지 않는’만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면, 형이상학을 의미 없는 헛소리로 규정함은 사소할 터이다; 이유인즉 형이상학은 통상적으로 비-경험적으로서 정의(定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실증주의자들은 형이상학의 서술들 중 몇 가지 서술들이 비-경험적이라는 것보다 형이상학에 관하여 훨씬 더 많이 말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의미한’이나 ‘터무니없는’이라는 단어들은 폄훼하는 평가를 전달하거나 전달하려는 의도를 지닌다; 그리하여 실증주의자들이 실제로 이룩하고 싶어 하는 것은 성공적인 구획설정이라기보다는 형이상학의 근절과 전복3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무리 이렇다할지라도, 실증주의자들이 ‘유의미한’이 의미하는 바를 보다 분명하게 말하려고 애를 썼을 때마다 그 시도는 동일한 결과를 – 그들이 주장하는 귀납적 논리에 대한 구획설정의 기준을 되풀이했을 따름인 ‘유의미한 문장’이라는 (‘무의미한 사이비-문장’과 대조적으로) 정의(定義)를 – 낳았음을 우리는 발견한다.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의 경우에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그에 따르면 모든 유의미한 명제는 기초(혹은 원자)명제들로 틀림없이 논리적으로 환원될 수 있는데 이것을 그는 기술들(descriptions)이나 ‘실제에 대한 그림들’로서 규정한다 (덧붙여, 모든 유의미한 명제들을 포함하려는 규정). 이것으로부터, 우리가 귀납주의자들의 말들인 ‘과학적’이나 ‘합당한’을 ‘유의미한’으로 대체한다면 비트겐슈타인의 유의미함에 대한 기준이 귀납주의자들의 구획설정 기준과 일치함을 우리는 알 것이다. 그리고 구획설정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 시도가 갑자기 실패하는 것은 바로 귀납의 문제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실증주의자들은 형이상학을 말살시키려고 고민하면서 형이상학과 함께 자연과학을 말살시킨다. 이유인즉 과학적 법칙들도 또한 경험에 관한 기초명제들로 논리적으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관적으로 적용된다면,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유의미함에 대한 기준은,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 자연법칙들에 대한 탐구가 ‘물리학자의 최고 과제’인 저 자연법칙들을 무의미한 것으로서 배척한다: 자연법칙들은 진정한 서술들이나 합당한 서술들로서 결코 수용될 수 없다. 귀납의 문제를 공허한 사이비-문제로서 밝히려는 비트겐슈타인의 시도는 슐릭(Schlick)에 의하여*4 다음 단어들로 진술된다: ‘귀납의 문제는 실제에 관한 전칭명제들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을 요구하는 데 놓여있다... 우리는 흄(Hume)과 함께 그런 논리적 정당화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전칭명제들이 진정한 명제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논리적 정당화는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은, 귀납주의적 구획설정의 기준이 과학적 이론체계와 형이상학적 이론체계 사이에서 어떻게 구분선을 긋지 못하는지와 왜 그 구획설정의 기준이 그 이론체계들에게 동등한 위상을 부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의미에 관한 실증주의적 독단은 두 가지 이론체계들 모두가 무의미한 사이비-명제들의 체계들이라고 판결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경험과학들로부터 형이상학을 제거하는 대신에, 실증주의는 형이상학이 과학적 영역에 침입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반(反)-형이상학적 술책들과 – 다시 말해서 의도적으로 반(反)-형이상학적인 – 대조적으로 내가 알고 하는 일은 형이상학을 타도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히려 경험과학들에 대하여 합당한 규정을 표출하는 것 즉, 우리가 주어진 서술들의 체계에 대하여 그 체계에 관한 더 세밀한 연구가 경험과학의 관심사가 되는지 되지 않는지를 우리가 말할 수 있을 방식으로 ‘경험과학’과 ‘형이상학’이라는 개념들을 정의(定義)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주장하는 구획설정의 기준은 합의나 규약에 관한 제안으로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규약의 적합성에 관하여 의견들이 다를 것이다; 그리하여 이 문제들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이, 어떤 목표를 공동적으로 지닌 당사자들 사이에 가능할 따름이다. 저 목표의 선택은 물론 틀림없이 궁극적으로 합리적 논증을 넘어서는 결정의 문제이다.*5
그리하여 절대적으로 확실한, 돌이킬 수 없이 참인 서술들을 과학의 종말이자 목표로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확실히 내가 여기서 내놓는 제안들을 거부할 것이다. 그리고 ‘과학의 본질을... 과학의 존엄성에서’ 보는 사람들도 그러할 것인데 그들은 과학의 본질이 과학의 ‘온전함’과 과학이 지닌 ‘실제적인 진리와 본질성’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 존엄성을, 그 현대 이론물리학 안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이 지금까지 내가 ‘경험과학’이라고 지칭하는 것의 가장 완벽한 실현을 보는 현대 이론물리학에게 기꺼이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과학의 목표들은 다르다. 그러나 나는 그 목표들을 과학의 참된 혹은 본질적인 목표들로서 재현함에 의하여 그 목표들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쟁점을 왜곡할 따름일 터이고, 그것은 실증주의적 독단론에 다시 빠지는 것일 터이다. 내가 알 수 있는 한, 나의 제안들을 뒷받침하여 이성적으로 논증하는 한 가지 방법만 있다. 이것은 나의 제안들이 야기하는 논리적 결론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그 결론들의 풍요성을 – 그 결론들이 지닌 지식론의 문제들을 설명하는 힘 – 지적하는 것.
그리하여 나는, 나의 제안들에 도달하면서 나는 요컨대 가치 판단들 및 편애(偏愛)들에 의하여 이끌렸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제안들이 논리적 엄격성뿐만 아니라 독단론의 배제를 또한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수용될 수 있을 것을 희망한다; 실제적인 적용가능성을 추구하지만 과학적 모험에 의하여 그리고 우리가 새롭고 지금까지 꿈도 꾸지 못한 답변들을 시험해보라고 우리에게 도전하며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새롭고 예기치 않은 질문들을 제시하는 발견사항들에 의하여 훨씬 더 매혹당하는 사람들.
가치 판단들이 나의 제안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내가 그 실책에 대하여 실증주의자들을 비난했던 실책을 – 형이상학을 폄훼함에 의하여 형이상학을 죽이려고 시도하는 실책 – 내가 저지르고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심지어, 형이상학에는 경험과학에 대한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가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과학의 진보를 막은 형이상학적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그 진보에 도움을 준 다른 것들이 – 사변적 원자론과 같은 – 있었다는 것은 부인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를 심리학적 각도에서 보면, 과학적 발견은 순전히 사변적 종류이고 때때로 완전히 모호한 아이디어들에 대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나에게 있다; 과학의 관점에서는 전혀 보증되지 않아서 그 정도까지 ‘형이상적인’ 신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경고사항들을 공식적으로 제시하고, 지금은 다소 불확실한 언어적 용법을 가능한 한 확실하게 만들기 위하여 그리고 과학과 형이상학적 개념들 – 이 개념들이 과학의 역사를 통하여 과학의 진보를 발전시켰을 것이라고 할지라도 -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기 위하여 경험과학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 지식에 관한 논리의 첫 번째 임무라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5 방법으로서의 경험
‘경험과학’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수용될 수 있는 정의(定義)를 표출하는 과제는 그 자체의 난제들이 없지 않다. 이 난제들 중 몇 가지는, 특정 시점에서 수용된 경험과학의 체계가 되는 논리적 구조와 매우 비슷한 논리적 구조를 지닌 이론체계들이 틀림없이 많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나타난다. 이 상황은, 매우 많은 – 아마도 무한한 숫자의 - ‘논리적으로 가능한 세상들’이 있다고 말을 함에 의하여 때때로 기술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과학’으로 지칭되는 이론체계에는 단 하나의 세상을 표상하려는 의도가 있다: ‘실제적 세상’이나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
이 개념을 다소 더 정확하게하기 위하여, 우리가 만드는 경험적 이론체계가 충족시켜야 하는 세 가지 요건들을 우리는 구별할 것이다. 먼저, 그 이론체계는 종합적이어야 해서 모순적이지 않고 가능한 세상을 표상할 것이다. 두 번째, 그 이론체계는 구획설정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6 및 21절 참조) 다시 말해서, 그 이론체계는 형이상학적이어서는 안 되고 가능한 경험의 세상을 표상해야 한다. 세 번째, 그 이론체계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을 표상한다고 일컬어지는 이론체계와 같은 다른 이론체계들로부터 어느 정도 구별된 이론체계여야 한다 (이 문장의 원문은 Thirdly, it must be a system distinguished in some way from other such systems as the one which represents our world of experience인데 의미상으로 그리고 뒤 문장과의 문맥으로 보아 Thirdly, it must be a system distinguished in some way from other such systems as the one which is said to represent our world of experience와 유사한 의미로 표현되어야 할 듯하다. 번역은 원문에 따르지 않고 의미상으로 하였다: 역자).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을 표상하는 이론체계는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가? 답변은 다음과 같다: 그 이론체계가 시험들에 회부되어 그 시험들을 통과한 사실에 의하여. 이것은, 나의 목표가 분석하고 기술하는 것인 저 연역적 방법을 그 이론체계에 적용함에 의하여 그 이론체계가 구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경험은 이 관점에 근거하여, 그 방법에 의하여 한 가지 이론체계가 다른 이론체계들로부터 구별될 독특한 방법으로서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경험과학은, 자체의 논리적 형태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덧붙여 자체의 독특한 방법에
의하여 규정되는 듯이 보인다. (이것은, 물론, 또한 귀납주의자들의 견해이기도 한데 그들은 경험과학에 귀납적 방법을 사용함에 의하여 경험과학을 규정하려고 노력한다.)
지식론은 그 과제가 경험과학에 고유한 방법이나 절차를 분석하는 것인데 그리하여 경험적 방법론으로서 – 통상적으로 ‘경험’으로 지칭되는 것에 관한 이론 – 기술될 것이다.
6 구획설정 기준으로서의 오류판정 가능성
귀납적 논리에 내재하는 구획설정의 기준은 – 다시 말해서, 의미에 관한 긍정적 독단 – 경험과학의 모든 서술들은 (또는 모든 ‘유의미한’ 서술들) 그 서술들이 지닌 진리와 동시에 허위성과 관련하여 최종적으로 결정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건과 대등하다; 우리는, 그 서술들이 ‘최종적으로 결정 가능해야’ 한다고 말하겠다. 이것은, 그 서술들의 형태가 그 서술들을 검증하고 오류로 판정하는 것 모두가 논리적으로 가능해야 한다는 그런 것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슐릭(Schlick)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진정한 서술은 최종적 검증이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바이즈만(Weismann)은 훨씬 더 분명하게 말한다: ‘서술이 참인지를 결정할 가능한 방법이 없다면 저 서술에는 여하한 의미도 없다. 이유인즉 서술의 의미는 그 서술을 검증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견해로는 귀납과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1 그리하여 ‘경험에 의하여 검증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단칭명제들로부터 이론들로의 추론은 논리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 그리하여 이론들은 결코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없다. 우리의 구획설정 기준에 의하여 자연과학의 이론체계들을 제거하는 실증주의자의 오류를 우리가 피하고 싶어 한다면,*2 우리가 경험과학의 영역으로 심지어 검증될 수 없는 서술들을 수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기준을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이론체계가 경험에 의하여 시험될 수 있다는 조건으로만 그 이론체계를 경험적인 것이나 과학적인 것으로서 나는 틀림없이 수용하겠다. 이 고찰들은, 이론체계의 검증가능성이 아니라 오류판정 가능성이 구획설정의 기준으로서 수용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서: 나는 과학적 체계에 대하여 그 과학적 체계가 긍정적인 의미에서, 최종적으로, 선택될 수 있을 것을 요구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 과학적 체계의 형태가, 부정적 의미로 경험적 시험들로써 선택될 수 있을 그런 것이 될 것임을 나는 요구한다: 경험적인 과학적 체계가 경험에 의하여 반증된다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3
(그리하여 ‘여기서 내일 비가 오거나 오지 않을 것이다’라는 서술은, 그 서술이 반증될 수 없다는 이유로만 경험적인 것으로서 간주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여기서 내일 비가 올 것이다’라는 서술은 경험적인 것으로서 간주될 것이다.)
여기서 제시된 구획설정의 기준에 대하여 다양한 반대의견들이 아마도 제기될 것이다. 먼저, 우리에게 긍정적인 정보를 제공하기로 예상되는 과학이 반증가능성과 같은 부정적인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서 규정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은 다소 잘못된 판단으로서 보일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나는 31절에서 46절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서술에 의하여 전달되는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의 수량이 클수록 자체의 논리적 특성 때문에 그 정보의 수량이 가능한 단칭명제들과 더 많이 충돌할 것 같기 때문에 이 반대의견에는 무게가 없다는
것을 밝히겠다. (매우 충분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자연법칙들을 ‘법칙들’로 부른다: 자연법칙들은 금지할수록 자연법칙들은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다시, 귀납주의적 구획설정의 기준에 대한 내 자신의 비판을 나에게로 돌리려는 시도가 아마도 실행될 것이다; 이유인즉 내 자신이 검증가능성에 반대하여 제기한 구획설정의 기준들과 유사한 구획설정의 기준으로서의 오류판정 가능성에 대하여 반대의견들이 제기될 수 있는 것으로 아마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공격은 아마도 나를 당황시키지 않을 터이다. 나의 제안은, 검증가능성과 오류판정 가능성 사이의 비대칭에 근거한다; 전칭명제들의 논리적 형태로부터 귀결되는 비대칭.* 이유인즉 전칭명제들은 결코 단칭명제들로부터 도출될 수 없지만 단칭명제들의 의하여 부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단칭명제들이 지닌 진실성으로부터 전칭명제들이 지닌 허위성을 논증하는 것이 순전히 연역적 추론들에 의하여 (고전적 논리학의 후건부정식[modus tollens]의 도움을 받아서) 가능하다. 전칭명제들이 지닌 허위성에 대한 논증은, 말하자면 ‘귀납적 방향’으로 진행하는 엄격하게 연역적인 종류의 추론일 따름이다; 다시 말해서 단칭명제들로부터 전칭명제들로 나아가는.
세 번째 반대의견은 보다 진지한 듯이 보일 것이다. 그 반대의견은, 비대칭이 인정된다할지라도 다양한 이유들 때문에 여하한 이론 체계도 최종적으로 언젠가 틀림없이 오류로 판정된다는 것이 여전히 불가능하다고 아마도 언급될 것이다. 이유인즉 오류판정을 회피하는 어떤 방법이, 예를 들어 보조적 가설을 임시방편적으로 도입함에 의하여 혹은 정의(定義)를 임시방편적으로 변화시킴에 의하여, 항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오류로 판정하는 여하한 경험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입장을 채택하는 것도 논리적인 비일관성 없이도 심지어 가능하다. 인정되는 바와 같이, 과학자들은 통상적으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지만 논리적으로 그런 절차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최소한으로 말해도 내가 제안하는 구획설정의 논리적 가치를 의심스럽게 만든다고 아마도 주장될 것이다.
나는 이 비판의 정당성을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러므로 오류판정 가능성을 구획설정의 기준으로서 채택하려는 나의 제안을 철회할 필요가 나에게는 없다. 왜냐하면 경험적 방법이, 내가 상상하는 나의 비판자가 올바르게 주장하는 바와 같이, 논리적으로 가능한 오류판정을 회피하는 정확하게 저 방법들을 제외하는 방법으로서 규정될 것이라고 나는 제안할 (20절 이하에서) 예정이기 때문이다. 나의 제안에 따르면, 경험적 방법을 규정하는 것은 상상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시험되는 이론 체계를 오류판정에 노출시키는 경험적 방법의 방식이다. 그 방식은 옹호될 수 없는 이론체계들의 생명을 구조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론체계들을 모두를 가장 혹독한 생존투쟁에 노출시킴에 의하여 비교에 의하여 가장 적당한 이론체계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제안된 구획설정의 기준에 의하여 우리는 또한 흄(Hume)이 지녔던 귀납의 문제에 – 자연법칙들에 관한 유효성이라는 문제 - 대한 해결책에 다다른다. 이 문제의 뿌리는, ‘경험주의의 근본적인 주장’이라고 지칭될 것과 – 경험만이 과학적 서술들의 진위를 결정할 수 있다는 주장 – 귀납적 서술들의 수용불가능성에 대한 흄(Hume)의 깨달음 사이의 표면적인 모순이다. 이 모순은, 모든 경험적 과학서술들은 틀림없이 ‘최종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고, 다시 말해서 경험적 과학서술들에 대한 검증이나 오류판정 모두가 틀림없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다고 전제된다는 조건으로만 출현한다. 우리가 이 요건을 포기하고, 한 가지 의미에서만 결정될 수 있는 – 일방적으로 결정될 수 있으며, 더욱 특히, 오류로 판정될 수 있는 – 서술들이자 그 서술들을 오류로 판정하려는 체계적인 시도들에 의하여 시험될 서술들을 경험적인 것으로서 또한 수용한다면, 모순은 사라진다: 오류판정의 방법은 귀납적 추론을 전제하지 않고 다만 그 유효성이 논란거리가 아닌 연역적 논리의 항진명제적(恒眞命題的: tautological) 변형들을 전제한다.
7 ‘경험적 근거’라는 문제
오류판정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구획설정의 기준으로 적용될 수 있다면, 추론들을 오류로 판정하는 데 전제들로서 작동할 수 있는 단칭명제들이 틀림없이 이용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기준은 문제를 변경하는 것으로만 – 이론들이 지닌 경험적 특징에 대한 의문에서 단칭명제들이 지닌 경험적 특징에 대한 의문으로 우리를 뒤로 이끌어가는 것 –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할지라도 중요한 것이 습득되었다. 왜냐하면 과학적 연구를 실행함에서, 단칭명제들과 관련해서는 그 명제들이 지닌 경험적 특징에 관한 의심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반면 구획설정은 때때로 이론체계들과 관련하여 즉각적인 긴급성을 띠기 때문이다. 관찰과 관련된 오류들이 발생한다는 것과 그 오류들이 거짓 단칭명제들을 낳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자들에게는 단칭명제를 비-경험적 것이나 형이상학적인 것으로서 기술할 경우가 항상 드물다.
경험적 근거와 관련된 문제들은 – 다시 말해서, 단칭명제들이 지닌 경험적 특징에 관한 그리고 그 명제들이 시험되는 방법에 관한 문제들 – 그리하여 우리에게 관련된 다른 문제들 대부분이 수행하는 역할과 다소 다른 역할을 과학의 논리 안에서 수행한다. 이유인즉 경험적 근거라는 문제는 거의 전적으로 지식론에 속하는 반면 다른 문제들 대부분은 연구의 실천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문제들이 많은 모호성을 야기했기 때문에 나는 그 다른 문제들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각적 경험들과 기초서술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특히 참이다. (내가 ‘기초서술’, 즉 ‘기초명제’로 지칭하는 것은 경험적 오류판정에서 전제로 작동할 수 있는 서술이다; 요컨대, 단칭 사실에 대한 서술.)
지각적 경험들은 기초명제들에 대하여 일종의 정당화를 제공하는 것으로 흔히 간주되었다. 이 서술들은 이 경험들에 ‘근거한다’고 믿어졌다; 그 서술들이 지닌 진실성은 이 경험들을 통하여 ‘검사에 의하여 명백해’진다고; 혹은 그 진실성은 이 경험들에 의하여 ‘분명해’진다고, 기타 등등. 이 표현들 모두는, 기초서술들과 우리의 지각적 경험들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는 완벽하게 훌륭한 경향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술들은 서술들에 의해서만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또한 올바르게 느껴졌다. 그러므로 지각사항들과 서술들 사이의 관계는 모호한 상태로 남았고,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난제들을 대충 넘어가거나 기껏해야 은유들을 통하여 그 난제들을 개괄만 했던 동등하게 모호한 표현들에 의하여 기술되었다.
문제의 논리적이고 방법론적인 면들로부터 심리학적인 면들을 분명하게 우리가 분리한다면 여기에서도 해결책이 발견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여하한 서술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확신과 관련된 우리의 주관적 경험들이나 우리의 느낌들 (비록 그 경험들이나 느낌들이 심리학적 연구의 주제가 될 수 있을지라도) 및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적 서술들의 다양한 체계들 가운데 그리고 그 체계들 각각의 내부에 존속하는 객관적인 논리적 관계들을 구분해야 한다.
경험적 근거와 관련된 문제들은 25절에서 30절까지에서 다소 상세하게 토론될 것이다. 내가 방금 사용한 ‘객관적인’ 및 ‘주관적인’이라는 용어들은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로서 나는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문제로 선회는 게 낫겠다.
8 과학적 객관성과 주관적 확신
‘객관적’ 및 ‘주관적’이라는 단어들은 모순적인 용법들과 결론이 나지 않고 지루하게 계속되는 토론들이라는 유산으로 무거운 부담을 진 철학적 용어들이다.
‘객관적’ 및 ‘주관적’이라는 용어들을 내가 사용하는 방식은 칸트가 사용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칸트는, 과학적 지식이 여하한 사람의 변덕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기 위하여 ‘객관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원칙적으로 정당화가 누구에 의해서도 시험되어 이해될 수 있다면 정당화는 ‘객관적’이다. ‘자신의 이성을 소유하고 있는 여하한 사람에게도 어떤 것이 유효하다면 그것의 근거들은 객관적이고 합목적적이다’라고 그는 서술한다.
이제 나는, 과학이론들은 결코 완벽하게 정당화될 수 있다거나 검증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들은 시험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나는, 과학적 서술들이 객관성은 그 서술들이 상호-주관적으로 시험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놓여있다고 말하겠다.*1
‘주관적’이라는 단어는 칸트에 의하여 확신과 관련된 우리의 느낌들에 (다양한 정도들의) 적용된다.2 그 느낌들이 발생하는 방식을 조사하는 것이 심리학의 과제이다. 그 느낌들은 예를 들어 ‘연상의 법칙들에 따라서’ 떠오를 것이다.3 우리가 객관적인 이유들을 숙고하여 그 이유들의 타당성을 확신하게 되는 한, 객관적인 이유들 또한 ‘판단하기에 대한 주관적인 원인들’로서 작동할
것이다.
칸트는 아마도, 과학적 서술들의 객관성이 이론의 구축과 – 가설들과 전칭명제들의 사용과 –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깨달은 최초의 인물이었다. 반복 가능한 실험들에 관한 경우가 그러한 바와 같이, 특정 사건들이 규칙들이나 규칙성들에 따라서 다시 발생할 때만 우리가 관찰한 사항들은 여하한 사람에 의해서 – 원칙적으로 – 시험될 수 있다. 우리가 관찰한 사항들을 우리가 되풀이해서 시험했을 때까지 우리는 심지어 우리가 관찰한 사항들을 전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 관찰한 사항들을 과학적인 관찰사항들로서 수용하지도 않는다. 그런 반복행위들에 의해서만 우리는 우리가 단 한번뿐인 ‘우연’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들의 규칙성과 재생가능성 때문에 원칙적으로 상호-주관적으로 시험될 수 있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실험 물리학자는 누구나, 자신의 실험실에서 아마도 심지어 얼마동안 재생될 수 있지만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저 놀랍고도 설명될 수 없는 표면적인 ‘효과들’을 알고 있다. 물론 그런 경우에 어떤 물리학자도, 자신이 과학적 발견을 이룩했다고 말하지 않을 터이다 (비록 그가 효과를 재생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하여 자신의 실험들을 재배열하려고 혹시 노력할지라도). 정말로 과학적으로 중요한 물리학적 효과는, 규정된 방식으로 합당한 실험을 수행하는 여하한 사람에 의하여 규칙적으로 재생될 수 있는 것으로서 정의(定義)될 것이다. 진지한 물리학자라면 누구나, 내가 그렇게 지칭하자고 제안하는 바와 같은 그런 ‘주술적인 효과’를 – 그 물리학자가 그 효과의 재생에 대하여 지시들을 내릴 수 없을 터인 효과 – 과학적 발견으로서 출판하겠다고 제시하지 않을 터이다. 그 ‘발견’은, 그 발견을 시험하려는 시도들이 부정적인 결과들을 낳을 터이라는 이유로만, 망상으로서 매우 빨리 거부될 터이다. (원칙적으로 반복될 수 없어서 독특한 사건들이 어느 때고 정말로 발생하는지의 문제에 관한 여하한 논란도 과학에 의하여 결정될 수 없다는 것이 귀결된다: 그것은 형이상학적 논란일 터이다.)
우리는 이제 앞의 절에서 주장된 요점으로 회귀할 것이다: 주관적인 경험이나 확신에 대한 느낌은 결코 과학적 서술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그리고 과학 내부에서 그런 경험이나 느낌은 경험적 (심리학적) 탐구의 대상의 역할을 제외하고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확신의 느낌이 아무리 강력할지라도, 그 느낌은 결코 서술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서술이 지닌 진실성을 완벽하게 확신할지도 모른다; 나의 지각행위들에 의한 증거를 확신할지도 모른다; 나의 경험이 주는 강렬함에 의하여 압도될지도 모른다: 모든 의심은 내가 보기에 터무니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이 나의 서술을 수용하는 데 최소한의 이유를 제시하는가? 여하한 서술도, 칼 R. 포퍼가 그 서술이 지닌 진실성을 완벽하게 확신한다는 사실에 의하여 정당화될 수 있는가? 답변은 ‘아니다’이다; 그리고 여하한 다른 답변도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개념과 양립할 수 없을 터이다. 나에게 그렇게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서 내가 이 확신의 느낌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도, 물론 상호-주관적인 시험하기가 필요한 심리학적 가설의 형태로 외에는 객관적인 과학의 분야에서 나타날 수 없다: 내가 이 확신의 느낌을 경험하고 있다는 추측으로부터, 심리학자는 심리학적 및 다른 이론들의 도움을 받아서 나의 행태에 관한 특정 예측들을 연역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실험적 시험들 과정에서 확인되거나 반증될 것이다. 그러나 인식론적 관점에서, 나의 확신에 관한 느낌이 강했던지 아니면 약했던지는 전적으로 무관하다; 그 느낌이 강력하거나 심지어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함에 (혹은 ‘자명함’에) 대한 저항이 불가능한 인상으로부터, 혹은 단지 의심스러운 추측으로부터 유래했는지는 무관하다. 이것은 어떻게 과학적 서술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의 문제와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
이것들과 같은 고찰들은 물론 경험적 근거에 관한 문제에 답변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들은 우리가 그 문제의 주요 난제를 보는 데 도움을 준다. 다른 과학적 서술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기초서술들에 대하여도 객관성을 요구하면서, 과학적 서술들이 지닌 진실성을 우리의 경험들로 환원하기를 아마도 우리가 희망했을 여하한 논리적 수단들을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박탈한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우리의 지각행위들을 기술하는 (그리고 때때로 ‘프로토콜 명제들’로 지칭되는) 저 서술들과 같은 경험들을 기술하는 서술들에게 호의적인 위상을 부여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런 서술들은 과학에서 단지 심리학적 서술들로서만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상호-주관적인 시험하기의 기준들이 (심리학의 현재 상태를 고려하여) 분명히 그다지 높지 않은 일종의 가설로서, 의미를 지닌다 (이 문장의 원문은 and this means, as hypotheses of a kind whose standards of inter-subjective testing (considering the present state of psychology) are certainly not very high인데 동사 means의 목적어가 빠져서 완전한 문장이 아니다: 역자).
경험적 근거에 관한 질문에 대한 우리의 최후 답변이 무엇이든, 한 가지는 틀림없이 분명하다: 우리가, 과학적 서술들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우리의 요구를 고수한다면, 과학의 경험적 근거에 속하는 저 서술들은 또한 객관적이어야, 다시 말해서 상호-주관적으로 시험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주관적인 시험가능성은 항상, 시험될 수 있는 서술들로부터 다른 시험될 수 있는 서술들이 연역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하여 기초서술들이 반대로 상호-주관적으로 시험될 수 있다면, 과학에는 궁극적인 서술들이 있을 리가 없다: 과학에는 시험될 수 없는 서술들이 있을 리가 없고 그리하여, 그 서술들로부터 연역될 수 있는 결론들 중 몇 가지 결론을 오류로 판정함에 의하여 원칙적으로 반증될 수 없는 서술은 하나도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음 견해에 도달한다. 이론들의 체계들은, 그 체계들로부터 더 하위 수준의 보편성을 지닌 서술들을 연역함에 의하여 시험된다. 이 서술들은 반대로, 상호-주관적으로 시험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틀림없이 시험될 수 있다 – 그래서 무한히 시험이 가능하다.
이 견해가 무한소급(無限遡及: infinite regress)을 야기한다고 그리고, 그리하여 그 견해는 옹호될 수 없는 것이라고 아마도 생각될 것이다. 1절에서, 귀납을 비판하면서 나는 귀납이 무한소급(無限遡及: infinite regress)을 야기할 것이라고 반대론을 제기했다; 그리하여 이제, 바로 그 동일한 반대론은 내 자신이 옹호하는 귀납적으로 시험하기의 절차에 대해서 촉구될 수 있다고 혹시 독자들에게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지 않다. 시험하기에 관한 연역적 방법은, 시험되고 있는 중인 서술들을 확립할 수도 없고 정당화할 수도 없다. 또 그 방법에는 그럴 의도도 없다. 그리하여 무한소급(無限遡及: infinite regress)이라는 위험이 없다. 그러나 내가 주지시킨 상황이 – 무한한 시험가능성과 시험들이 필요 없는 궁극적 서술들이 없다는 것 – 정말로 한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유인즉, 분명히, 시험은 사실상 무한히 실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조만간 우리는 중단해야 한다. 이 문제를 여기서 상세히 토론하지 않고, 시험들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은 모든 과학적 서술은 시험될 수 있어야 한다는 나의 요구와 상충하지 않음을 나는 지적하고 싶을 따름이다. 이유인즉 모든 서술은 그 서술이 수용되기 전에 틀림없이 사실상 시험되었기를 나는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모든 그런 서술이 시험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할 따름이다; 혹은 달리 표현하여, 그 서술들을 시험한다는 것이 논리적 이유들 때문에 가능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만 우리가 체념적으로 참으로서 수용해야 하는 서술들이 과학 안에 있다는 견해를 나는 수용 거부한다.
2
과학적 방법론의 문제에 관하여
위에 제시된 나의 제안에 따라서, 인식론 또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는 과학적 방법론과 동일시되어야 한다. 그 방법론은, 과학적 서술들 사이의 관계들에 대한 순전히 논리적인 분석을 넘어서는 한, 방법들에 대한 선택에 – 과학적 서술들이 다루어져야 하는 방식에 관한 결정들에 – 관심을 갖는다. 이 결정들은 물론, 반대로 우리가 몇 가지 가능한 목표들 가운데서 선택하는 목표에 의존할 것이다. 내가 ‘경험적 방법’이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하여 합당한 규칙들을 정하는 것에 관하여 여기에서 제시된 결정은, 나의 구획설정 기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는, 과학적 서술들의 시험가능성을 보장할 것과 같은 그런 규칙들을 채택하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그 서술들의 오류판정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9 방법론적 결정들이 필수불가결한 이유
과학적 방법에 관한 규칙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우리에게는 그 규칙들이 필요한가? 그런 규칙들에 관한 이론인, 방법론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가 이 질문들에 답변하는 방식은 과학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주로 달려있을 것이다. 실증주의자들처럼, 경험과학을 유의미성이나 검증가능성과 같이 특정 논리적 기준들을 충족시키는 서술들의 체계로서 보는 사람들은 한 가지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매우 다른 답변 한 가지는, 경험적 서술들의 유별난 특징을 그 서술들이 지닌 오류정정에 대한 민감성에서 – 그 서술들이 비판을 받아서 더 나은 서술들에 의하여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 보는 경향을 지닌 (내가 그러한 바와 같이) 사람들에 의하여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진보하는 과학의 특징적인 능력을 분석하고, 선택이 상충되는 이론들의 체계들 사이에서 결정적인 경우들에서 이행되는 특징적인 방식을 분석하는 것을 자신들의 과제로서 간주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론들이 변하여 발전하는 방식을 고려하지 않는 분석에 관하여, 이론들에 대하여 순전히 논리적인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나는 전적으로 기꺼이
인정하겠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분석은, 내가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경험과학들의 저 모습들을 설명하지 않는다. 고전적 역학과 같은 이론체계는 여하한 정도까지도 ‘과학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론체계를 독단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은 – 아마도 그런 성공적인 이론체계가 결정적으로 반증되지 않는다면 그런 성공적인 이론체계를 비판에 반대하여 옹호하는 것이 자기들의 과업이라고 믿기 때문에 – 내가 보기에 과학자에게는 합당한 태도인 저 비판적 태도의 바로 반대가 되는 태도를 채택하고 있다. 사실상, 어떤 이론에 대한 결정적인 반증은 결코 생성될 수 없다; 왜냐하면, 실험의 결과들이 신뢰될 수 없다고, 혹은 실험적 결과들과 이론 사이에 존재한다고 주장되는 격차들은 표면적일 따름이어서 우리의 이해가 진전함에 따라서 사라질 것이라고 항상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에게 대항하는 싸움에서, 이 두 가지 논증들 모두는 흔히 뉴튼 역학을 지지하는 데 이용되었고, 유사한 논증들이 사회과학들의 문야에서 넘쳐난다.) 여러분이 경험과학들에서 엄격한 증거를 (또는 엄격한 반증을*) 고집한다면, 여러분은 경험으로부터 혜택을 결코 받지 못할 것이고 어떻게 당신이 틀렸는지를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경험 과학적 서술들의 형식적 혹은 논리적 구조에 의해서만 경험과학을 규정한다면, 우리는 낡은 과학적 이론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실로 고양시킴으로부터 야기되는 저 만연하는 형이상학의 형태를 경험과학으로부터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경험과학이 자체의 방법들에 의하여 규정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나의 이유들은 그런 것들이다: 과학적 이론체계들을 다루는 우리의 방식에 의하여: 우리가 과학적 이론체계들을 사용하여 하는 것과 우리가 과학적 이론체계들에게 하는 것에 의하여. 그리하여 나는 규칙들을 확립하려고 노력할 것인데, 그 규칙들은 말하자면 준거들에 될 것이고, 그 준거들에 의하여 과학자는 자신이 연구나 발견에 몰두할 때 여기서 이해되는 의미로 지침을 받는다.
10. 방법론에 대한 자연주의적 접근
내가 앞 절에서, 나의 입장과 실증주의자들의 입장 사이의 뿌리 깊은 차이점에
관하여, 제시한 암시에는 부연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실증주의자는, ‘실증적인’ 경험과학들의 분야 밖에 유의미한 문제들이 – 진정한 철학적 이론에 의하여 다루어질 수 있는 문제들 - 틀림없이 있다는 개념을 싫어한다. 실증주의자는, 진정한 지식론이나, 인식론이나 방법론이 틀림없이 있다는 개념을 싫어한다.* 그는 철학적 문제들이라고 주장되는 것들에서 단지 ‘사이비-문제들’이나 ‘수수께끼들’을 보고 싶어 한다. 이제 실증주의자가 지닌 이 소망은 – 덧붙여 실증주의자는 소망이나 제안으로서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서술로서 표현하는*2 – 항상 충족될 수 있다. 이유인즉 문제를 ‘무의미하’거나 ‘사이비’로서 폭로하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의미’에 관하여 편리하게 좁은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여러분은 여하한 불편한 질문에 대하여 그 질문 안에서 여하한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고 확실히 곧 말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여러분이 자연과학에서 문제들을 제외하고 아무 것도 유의미한 것으로서 수용하지 않는다면,1 ‘의미’의 개념에 관한 여하한 논쟁도 또한 무의미한 것으로서 곧 판명될 것이다.2 의미라는 독단은, 권좌에 오르자마자, 영원히 전투를 치를 여지도 없이 승격된다. 그 독단은 ‘공격을 받을 수 없고 확정적’이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표현으로) 된다.3
철학이 존재하는지 혹은 철학에는 존재할 권한이 있는지의 논란을 일으키는 문제는, 거의 철학 자체만큼 오래되었다. 흔히 오래된 철학적 문제들을 사이비-문제들로서 최종적으로 폭로하는, 그리고 철학이라는 사악한 헛소리를 유의미하고 긍정적이고 경험적인 과학이라는 훌륭한 의미와 대결시키는 완벽하게 새로운 철학적 운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흔히 ‘전통적 철학’을 옹호하여 경멸을 받는 사람들이 최근의 실증주의적 공격의 선봉자들에게, 철학의 주요
문제는 ‘경험’이라는 – 실증주의를 최근에 발견한 모든 사람이, 여전히, 순진하게 당연시하고 있는 바로 저 ‘경험’ - 권위에 대한 매력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라고 정말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런 반대론들에 대하여 실증주의자는 무시하면서 답변할 따름이다: 그런 반대론들은 실증주의자에게 어떤 의미도 없는데 왜냐하면 그 반대론들은 경험과학에 속하지 않고 경험과학만이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원문은 And time and again do the despised defenders of ‘traditional philosophy’ try to explain to the leaders of the latest positivistic assault that the main problem of philosophy is the critical analysis of the appeal to the authority of ‘experience’4 — precisely that ‘experience’ which every latest discoverer of positivism is, as ever, artlessly taking for granted인데 And time and again do에서 do가 강조용법으로 쓰였지만 문두에 나올 필요가 없이 도치되었다. 문법에 맞는 표현이 아니다: 역자). 실증주의자에게 ‘경험’은 문제가 아니라 (경험적 심리학에 의하여 연구되지 않는다면) 프로그램이다.
실증주의자들이, 내가 경험과학의 방법으로서 해석하는 ‘경험’을 분석하는 내 자신의 시도들에게 조금이라도 다르게 반응할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문장의 원문은 I do not think positivists are likely to respond any differently to my own attempts to analyse 'experience' which I interpret as the method of empirical science인데 any는 at all이나 in any way로 표현되는 것이 통상적이기 때문에 올바른 영어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역자).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단지 두 가지 종류의 서술들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논리적 항진명제(恒眞命題: tautologies)들과 경험서술들. 그들이 결론을 내릴 것인 바, 방법론이 논리학이 아니라면 방법론은 틀림없이 어떤 경험과학의 - 가령 연구 중인 과학자들의 행태에 관한 과학 – 한 분야이다.
이 견해는, 그 견해에 따라서 방법론은 반대로 경험과학이 되는데 – 과학자들의 실제 행태에 대한, 혹은 ‘과학’의 실제 절차에 대한 연구 - ‘자연주의적’으로서 기술될 것이다. 자연주의적 방법론에는 (때때로 ‘귀납적 과학론’으로 지칭되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자체의 가치가 있다. 과학의 논리를 연구하는 사람은 그 방법론에 흥미를 갖고 그 방법론으로부터 배우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내가 ‘방법론’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경험과학으로서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 경험과학의 방법들을 사용함에 의하여 과학이 실제로 귀납의 원리를 사용하는지 혹은 아닌지와 같은 그런 논란성 문제들을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그리고 ‘과학’으로 지칭될 수 있는 것과 누가 ‘과학자’로 지칭될 수 있는지는 틀림없이 항상 규약이나 결정의 문제로서 남는다는 것을 내가 기억할 때 나의 의심은 증가한다.
이런 종류의 질문들은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방법론적 규칙들에 관하여 두 가지 다른 체계들을 고려하여 비교할 것이다; 한 가지 체계는 귀납의 원리가 있고 다른 하나는 귀납의 원리가 없다. 그리고 그 다음에 우리는, 그런 원칙이 도입되자마자 모순들을 야기하지 않고 적용될 수 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그런 원리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실제로 우리에게 그런 원리가 필요한지. 우리에게 귀납의 원리를 없애도록 하는 것은 이런 유형의 연구이다: 그런 원리가 과학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사실의 문제로서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원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원리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원리는 심지어 모순들을 야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자연주의적 견해를 배척한다. 자연주의적 견해는 비판을 하지 않는다. 자연주의적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사실을 발견했다고 믿을 때마다 자신들이 규약을 제안했을 따름임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 규약은 독단으로 변하기 쉽다. 자연주의적 견해에 대한 이 비판은 그 견해가 지닌 의미의 기준에 뿐만 아니라 그 견해가 지닌 과학의 개념에도 적용되어 결과적으로 그 견해가 지닌 경험적 방법에 관한 개념에도 적용된다.
11 규약들로서의 방법론적 규칙들
방법론적 규칙들은 여기서 규약들로서 간주된다. 그 규칙들은 아마도 경험과학의 게임 규칙들로서 기술될 것이다. 그 규칙들은 체스의 규칙들이 그러한
것처럼 순수 논리학과 다소 다른데, 체스의 규칙들을 순수 논리학의 한 부분으로서 간주할 사람은 없을 터이다: 순수 논리학의 규칙들이 언어적 공식들의 변형들을 통제하는 것을 보면, 체스 규칙들에 대한 탐구 결과가 아마도 ‘체스의 논리학’으로 지칭될 수 있을 테지만 본질적으로 ‘논리학’으로 지칭될 수는 없을 터이다. (유사하게, 과학 게임의 – 다시 말해서, 과학적 발견의 - 규칙들에 대한 탐구 결과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라고 제목을 붙을 것이다.)
방법론적 규칙들에 대하여 두 가지 간단한 보기들의 주어질 것이다. 그 보기들은, 방법에 관한 탐구를 순전히 논리적인 탐구와 동일한 수준에 놓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 터임을 밝히기에 충분할 것이다.
(1) 과학의 게임은, 원칙적으로, 끝이 없다. 어느 날 과학적 서술들에게 더 이상의 시험이 필요하지 않아서 그 서술들이 최종적으로 검증된 것으로서 간주될 수 있다고 결정하는 사람은 게임에서 은퇴한다.
(2) 가설이 제시되고 시험되어 자체의 능력을 증명하자마자,* 그 가설에게는 ‘충분한 이유’없이 중도하차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충분한 이유’는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더 낫게 시험될 수 있는 또 다른 가설에 의한 그 가설의 대체; 혹은 그 가설의 결론들 중 한 가지 결론에 대한 오류판정. (‘더 낫게 시험될 수 있는’이라는 개념은 나중에 더 완벽하게 분석될 것이다.)
이 두 가지 보기들은 방법론적 규칙들이 무엇과 같게 보이는지를 밝힌다. 분명히 방법론적 규칙들은 통상적으로 ‘논리적’이라고 지칭된 규칙들과 매우 다르다. 논리가 혹시 서술이 시험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 대한 기준들을 세울지라도, 논리는 틀림없이 어떤 사람이 그 서술을 시험하는 데 노력하는지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
6절에서 나는 오류판정 가능성에 관한 기준의 도움을 받아서 경험과학을 정의(定義)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특정 반대론의 올바름을 내가 인정했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나의 정의(定義)에 대하여 방법론적 보충을 약속했다. 체스가 아마도 자체에 고유한 규칙들에 의하여 정의(定義)될 것과 꼭 마찬가지로, 경험과학 또한 자체의 방법론적 규칙들로써 정의(定義)될 것이다. 이 규칙들을 확립함에서 우리는 체계적으로 나아갈 것이다. 먼저 나머지 규칙들을 결정하는 데 대한 일종의 규준으로서 작동할 그리고 그리하여 상위 유형의 규칙인 최고 규칙이 설정된다. 그 규칙은, 과학적 절차에 관한 다른 규칙들이 오류판정에 대항하여 과학에서 여하한 서술도 보호하지 않는 그런 방식으로 고안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규칙이다.
그리하여 방법론적 규칙들은 다른 방법론적 규칙들과 그리고 구획설정에 대한 우리의 기준 모두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러나 그 관련성은 엄격하게 연적이거나 논리적인 관련성이 아니다. 그 관련성은 오히려, 규칙들이란 구획설정에 관한 우리의 기준이 지닌 적용가능성을 보장하는 목적을 지니고 구축된다는 사실로부터 귀결된다; 그리하여 그 규칙들의 창출과 수용은 상위 유형의 실제적 규칙에 따라서 진행된다. 이것에 관한 한 가지 보기가 위에 (규칙 1 참조) 제시되었다: 우리가 더 이상 시험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이론들은 더 이상 오류로 판정될 수 없을 터이다. 방법론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합당하게 만드는 것은 규칙들 사이의 이 체계적인 관련성이다. 인정되는 바와 같이 이 이론에 관한 선언들은, 우리가 든 보기들이 밝히는 바와 같이, 대부분 상당히 분명한 종류의 규약들이다. 심오한 진리들은 방법론과 관련하여 기대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그리고 심지어 지금까지 해결되기가 매우 어렵다고 증명된 몇 가지 중대한 영향을 미칠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많은 경우들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이것들 중 한 가지는, 예를 들어, 확률서술이 수용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배척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문제이다. (68절 참조.)
지식론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이 서로 체계적으로 관련되는지와 또한 그 문제들이 체계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지는 흔히 의심스러웠다. 나는 이 저서에서 이 의심들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기를 소망한다. 그 요점은 다소 중요하다. 내가 나의 구획설정 기준을 제시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 기준이 유익하다는 것이다: 매우 많은 요점들이 그 기준의 도움을 받아서 명료해지고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定義: definitions)들은 독단들이다; 그 정의(定義: definitions)들로부터 도출된 결론들만이 우리에게 여하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고 멩거(Menger)는 말한다.2 이것은 ‘과학’이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定義: definition)에 관하여 틀림없이 사실이다. 과학자가 얼마만큼 그 정의(定義: definition)가 자신이 노력하는 바의 목표에 대하여 자신이 지닌 직관적 개념과 일치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임은, 경험과학에 대한 나의 정의(定義: definition)의 결과들로부터, 그리고 이 정의(定義: definition)에 의존하는 방법론적 결정들로부터 유래할 따름이다.*
철학자 또한, 자신이 나의 정의(定義: definition)가 낳는 결과들을 수용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만, 나의 정의(定義: definition)를 수용할 것이다. 우리는 철학자에게, 이 결과들로 인하여 우리가 지식에 관한 옛 이론들에서 모순들과 불합리성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그리고 이것들이 유래하는 근본적인 추정들과 규약들로 이것들을 추적해 올라갈 수 있다고 확신시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철학자에게, 우리 자신이 내놓는 제안들은 동일한 종류의 난제들에 의하여 위협을 받지 않는다고 확신시켜야 한다. 모순들을 발견하여 해결하는 이 방법은 과학 자체의 내부에서도 또한 적용이 되지만, 지식론에서 특별히 중요성을 띤다. 방법론적 규약들이 아마도 정당화되고 아마도 자체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어떤 방법에 의해서라면, 이 방법에 의해서이다.3
내가 우려하는바, 철학자들이 이 방법론적 연구들을 철학에 속하는 것으로서 간주할지는 매우 의심스럽지만 이것은 실제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하여 형이상학적이어서 틀림없이 철학적인 많은 교설들이 방법론적 규칙들의 전형적인 실체화들로서 해석될 수 있을 터임이 언급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의 보기가, 소위 ‘인과성의 원리’의 형태로 다음 절에서 토론될 것이다. 우리가 이미 조우한 또 다른 보기는 객관성이라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과학적 개관성에 대한 요건은 또한 방법론적 규칙으로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호-주관적으로 시험될 수 있는 그런 서술들만이 과학에 도입될 것이라는 규칙 (8, 20, 29절 및 다른 곳을 참조). 이론철학과 관련된 문제들의 대부분과 가장 흥미로운 문제들이 방법에 관한 문제들로서 이런 방식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고 아마도 정말로 언급될 것이다.
Part I
Introduction to the
Logic of Science
1
A SURVEY OF SOME
FUNDAMENTAL PROBLEMS
A scientist, whether theorist or experimenter, puts forward statements, or systems of statements, and tests them step by step. In the field of the empirical sciences, more particularly, he constructs hypotheses, or systems of theories, and tests them against experience by observation and experiment.
I suggest that it is the task of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or the logic of knowledge, to give a logical analysis of this procedure; that is, to analyse the method of the empirical sciences.
But what are these 'methods of the empirical sciences'? And what do we call 'empirical science'?
1 THE PROBLEM OF INDUCTION
According to a widely accepted view — to be opposed in this book —
the empirical sciences can be characterized by the fact that they use
'inductive methods', as they are called. According to this view,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would be identical with inductive logic, i.e. with the logical analysis of these inductive methods.
It is usual to call an inference 'inductive' if it passes from singular statements (sometimes also called 'particular' statements), such as accounts of the results of observations or experiments, to universal statements, such as hypotheses or theories.
Now it is far from obvious, from a logical point of view, that we are justified in inferring universal statements from singular ones, no matter how numerous; for any conclusion drawn in this way may always turn out to be false: no matter how many instances of white swans we may have observed, this does not justify the conclusion that all swans are white.
The question whether inductive inferences are justified, or under
what conditions, is known as the problem of induction.
The problem of induction may also be formulated as the
question of the validity or the truth of universal statements which
are based on experience, such as the hypotheses and theoretical
systems of the empirical sciences. For many people believe that the
truth of these universal statements is 'known by experience'; yet it is
clear that an account of an experience — of an observation or the
result of an experiment — can in the first place be only a singular
statement and not a universal one. Accordingly, people who say of a
universal statement that we know its truth from experience usually
mean that the truth of this universal statement can somehow be
reduced to the truth of singular ones, and that these singular ones are known by experience to be true; which amounts to saying that the universal statement is based on inductive inference. Thus to ask
whether there are natural laws known to be true appears to be only
another way of asking whether inductive inferences are logically
justified.
Yet if we want to find a way of justifying inductive inferences, we
must first of all try to establish a principle of induction. A principle of induction would be a statement with the help of which we could put inductive inferences into a logically acceptable form. In the eyes of the upholders of inductive logic, a principle of induction is of
supreme importance for scientific method: '. . . this principle', says
Reichenbach, 'determines the truth of scientific theories. To eliminate
it from science would mean nothing less than to deprive science of
the power to decide the truth or falsity of its theories. Without it,
clearly, science would no longer have the right to distinguish its
theories from the fanciful and arbitrary creations of the poet's
mind."1
Now this principle of induction cannot be a purely logical truth like a tautology or an analytic statement. Indeed, if there were such a thing as a purely logical principle of induction, there would be no problem of induction; for in this case, all inductive inferences would have to be regarded as purely logical or tautological transformations, just like inferences in deductive logic. Thus the principle of induction must be a synthetic statement; that is, a statement whose negation is not self-contradictory but logically possible. So the question arises why such a principle should be accepted at all, and how we can justify its acceptance on rational grounds.
Some who believe in inductive logic are anxious to point out, with
Reichenbach, that 'the principle of induction is unreservedly accepted by the whole of science and that no man can seriously doubt this principle in everyday life either'.2 Yet even supposing this were the case — for after all, 'the whole of science' might err — I should still contend that a principle of induction is superfluous, and that it must lead to logical inconsistencies.
That inconsistencies may easily arise in connection with the prin-
ciple of induction should have been clear from the work of Hume;*1
also, that they can be avoided, if at all, only with difficulty. For the
principle of induction must be a universal statement in its turn. Thus if we try to regard its truth as known from experience, then the very same problems which occasioned its introduction will arise all over again. To justify it, we should have to employ inductive inferences; and to justify these we should have to assume an inductive principle of a higher order; and so on. Thus the attempt to base the principle of induction on experience breaks down, since it must lead to an infinite regress.
Kant tried to force his way out of this difficulty by taking the
1 H. Reichenbach, Erkenntnis 1, 1930, p. 186 (cf. also pp. 64 f.). Cf. the penultimate paragraph of Russell's chapter xii, on Hume, in his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1946, p. 699.
2 Reichenbach ibid., p. 67.
*1 The decisive passages from Hume are quoted in appendix *vii, text to footnotes 4, 5, and 6; see also note 2 to section 8 1 , below.
principle of induction (which he formulated as the 'principle of universal causation') to be 'a priori valid'. But I do not think that his ingenious attempt to provide an a priori justification for synthetic statements was successful.
My own view is that the various difficulties of inductive logic here sketched are insurmountable. So also, I fear, are those inherent in the doctrine, so widely current today, that inductive inference, although not 'strictly valid', can attain some degree of 'reliability' or of 'probability'. According to this doctrine, inductive inferences are 'probable inferences'. 3 'We have described', says Reichenbach, 'the principle of induction as the means whereby science decides upon truth. To be more exact, we should say that it serves to decide upon probability. For it is not given to science to reach either truth or falsity . . . but scientific statements can only attain continuous degrees of probability whose unattainable upper and lower limits are truth and falsity'. 4
At this stage I can disregard the fact that the believers in inductive logic entertain an idea of probability that I shall later reject as highly unsuitable for their own purposes (see section 80, below). I can do so because the difficulties mentioned are not even touched by an appeal to probability. For if a certain degree of probability is to be assigned to statements based on inductive inference, then this will have to be justified by invoking a new principle of induction, appropriately modified. And this new principle in its turn will have to be justified, and so on. Nothing is gained, moreover, if the principle of induction, in its turn, is taken not as 'true' but only as 'probable'. In short, like every other form of inductive logic, the logic of probable inference, or 'probability logic', leads either to an infinite regress, or to the doctrine of apriorism.*2
The theory to be developed in the following pages stands directly
opposed to all attempts to operate with the ideas of inductive logic. It
3 Cf. J. M. Keynes, A Treatise on Probability, 1921; O. Kiilpe, Vbrlesungen iiber Logic (ed. by Selz, 1923); Reichenbach (who uses the term 'probability implications'), Axiomatik der Wahrscheinlichkeitsrechnung, Mathem. Zeitschr. 34, 1932; and elsewhere.
4 Reichenbach, Erkenntnis 1, 1930, p. 186.
* 2 See also chapter 10, below, especially note 2 to section 81, and chapter *ii of the Postscript for a fuller statement of this criticism.
might be described as the theory of the deductive method of testing, or as the
view that a hypothesis can only be empirically tested — and only after it
has been advanced.
Before I can elaborate this view (which might be called 'deductiv-
ism', in contrast to 'inductivism' 5 ) I must first make clear the distinc-
tion between the psychology of knowledge which deals with empirical facts,
and the logic of knowledge which is concerned only with logical relations.
For the belief in inductive logic is largely due to a confusion of psycho-
logical problems with epistemological ones. It may be worth noticing,
by the way, that this confusion spells trouble not only for the logic of
knowledge but for its psychology as well.
2 ELIMINATION OF PSYCHOLOGISM
I said above that the work of the scientist consists in putting forward
and testing theories.
The initial stage, the act of conceiving or inventing a theory, seems
to me neither to call for logical analysis nor to be susceptible of it.
The question how it happens that a new idea occurs to a man —
whether it is a musical theme, a dramatic conflict, or a scientific
theory — may be of great interest to empirical psychology; but it is
irrelevant to the logical analysis of scientific knowledge. This latter is
concerned not with questions of fact (Kant's quid facti?), but only with
questions of justification or validity (Kant's quid juris?). Its questions are of
the following kind. Can a statement be justified? And if so, how? Is it
testable? Is it logically dependent on certain other statements? Or
does it perhaps contradict them? In order that a statement may be
logically examined in this way, it must already have been presented to
5 Liebig (in Induktion untl Deduktion, 1865) was probably the first to reject the inductive method from the standpoint of natural science; his attack is directed against Bacon. Duhem (in La theorie physique, son objet et sa structure, 1906; English translation by P P Wiener: The Aim and Structure of Physical Theory, Princeton, 1954) holds pronounced deductivist views. (*But there are also inductivist views to be found in Duhem's book, for example in the third chapter, Part one, where we are told that only experiment, induction, and generalization have produced Descartes's law of refraction; cf. the English translation, p. 34.) So does V Kraft, Die Grundformen der Wissenschaftlichen Methoden, 1925; see also Carnap, Erkermtnis 2, 1932, p. 440.
us. Someone must have formulated it, and submitted it to logical
examination.
Accordingly I shall distinguish sharply between the process of con-
ceiving a new idea, and the methods and results of examining it logic-
ally. As to the task of the logic of knowledge — in contradistinction to
the psychology of knowledge — I shall proceed on the assumption that
it consists solely in investigating the methods employed in those sys-
tematic tests to which every new idea must be subjected if it is to be
seriously entertained.
Some might object that it would be more to the purpose to regard it
as the business of epistemology to produce what has been called a
'rational reconstruction' of the steps that have led the scientist to a
discovery — to the finding of some new truth. But the question is: what,
precisely, do we want to reconstruct? If it is the processes involved in
the stimulation and release of an inspiration which are to be
reconstructed, then I should refuse to take it as the task of the logic of
knowledge. Such processes are the concern of empirical psychology
but hardly of logic. It is another matter if we want to reconstruct
rationally the subsequent tests whereby the inspiration may be discovered
to be a discovery, or become known to be knowledge. In so far as the
scientist critically judges, alters, or rejects his own inspiration we may,
if we like, regard the methodological analysis undertaken here as a
kind of 'rational reconstruction' of the corresponding thought-
processes. But this reconstruction would not describe these processes
as they actually happen: it can give only a logical skeleton of the
procedure of testing. Still, this is perhaps all that is meant by those who
speak of a 'rational reconstruction' of the ways in which we gain
knowledge.
It so happens that my arguments in this book are quite independent
of this problem. However, my view of the matter, for what it is worth, is
that there is no such thing as a logical method of having new ideas, or a
logical reconstruction of this process. My view may be expressed by
saying that every discovery contains 'an irrational element', or 'a cre-
ative intuition', in Bergson's sense. In a similar way Einstein speaks of
the 'search for those highly universal laws . . . from which a picture of
the world can be obtained by pure deduction. There is no logical
path', he says, 'leading to these . . . laws. They can only be reached by
intuition, based upon something like an intellectual love ('Einfühlung')
of the objects of experience.' 6
3 DEDUCTIVE TESTING OF THEORIES
According to the view that will be put forward here, the method of
critically testing theories, and selecting them according to the results of
tests, always proceeds on the following lines. From a new idea, put up
tentatively, and not yet justified in any way — an anticipation, a hypoth-
esis, a theoretical system, or what you will — conclusions are drawn by
means of logical deduction. These conclusions are then compared with
one another and with other relevant statements, so as to find what
logical relations (such as equivalence, derivability, compatiblity, or
incompatibility) exist between them.
We may if we like distinguish four different lines along which the
testing of a theory could be carried out. First there is the logical com-
parison of the conclusions among themselves, by which the internal
consistency of the system is tested. Secondly, there is the investigation
of the logical form of the theory, with the object of determining
whether it has the character of an empirical or scientific theory, or
whether it is, for example, tautological. Thirdly, there is the com-
parison with other theories, chiefly with the aim of determining
whether the theory would constitute a scientific advance should it
survive our various tests. And finally, there is the testing of the theory
by way of empirical applications of the conclusions which can be
derived from it.
The purpose of this last kind of test is to find out how far the new
consequences of the theory — whatever may be new in what it asserts
— stand up to the demands of practice, whether raised by purely scien-
tific experiments, or by practical technological applications. Here too
the procedure of testing turns out to be deductive. With the help of
6 Address on Max Planck's 60th birthday (1918). The passage quoted begins with the words, 'The supreme task of the physicist is to search for those highly universal laws . . .,' etc. (quoted from A. Einstein, Mem Weltbild, 1934, p. 168; English translation by A. Harris: The World as I see It, 1935, p. 125). Similar ideas are found earlier in Liebig, op. cit.; cf. also Mach, Principien der Warmelehre, 1 896, pp. 443 ff. *The German word 'Einfiihlung' is difficult to translate. Harris translates: 'sympathetic understanding of experience'.
other statements, previously accepted, certain singular statements —
which we may call 'predictions' — are deduced from the theory; espe-
cially predictions that are easily testable or applicable. From among these statements, those are selected which are not derivable from the current theory, and more especially those which the current theory contradicts. Next we seek a decision as regards these (and other) derived statements by comparing them with the results of practical applications and experiments. If this decision is positive, that is, if the singular conclusions turn out to be acceptable, or verified, then the theory has, for the time being, passed its test: we have found no reason to discard it. But if the decision is negative, or in other words, if the conclusions have been falsified, then their falsification also falsifies the theory from which they were logically deduced.
It should be noticed that a positive decision can only temporarily sup-
port the theory, for subsequent negative decisions may always overthrow
it. So long as theory withstands detailed and severe tests and is not super-
seded by another theory in the course of scientific progress, we may say
that it has 'proved its mettle' or that it is 'corroborated'*1 by past experience.
Nothing resembling inductive logic appears in the procedure here
outlined. I never assume that we can argue from the truth of singular
statements to the truth of theories. I never assume that by force of
'verified' conclusions, theories can be established as 'true', or even as
merely 'probable'.
In this book I intend to give a more detailed analysis of the methods
of deductive testing. And I shall attempt to show that, within the
framework of this analysis, all the problems can be dealt with that are
usually called 'epistemological'. Those problems, more especially, to
which inductive logic gives rise, can be eliminated without creating
new ones in their place.
4 THE PROBLEM OF DEMARCATION
Of the many objections which are likely to be raised against the view
here advanced, the most serious is perhaps the following. In rejecting
*1 For this term, see note *1 before section 79, and section *29 of my Postscript.
the method of induction, it may be said, I deprive empirical science of
what appears to be its most important characteristic; and this means
that I remove the barriers which separate science from metaphysical
speculation. My reply to this objection is that my main reason for
rejecting inductive logic is precisely that it does not provide a suitable dis-
tinguishing mark of the empirical, non-metaphysical, character of a theor-
etical system; or in other words, that it does not provide a suitable 'criterion of
demarcation'.
The problem of finding a criterion which would enable us to dis-
tinguish between the empirical sciences on the one hand, and math-
ematics and logic as well as 'metaphysical' systems on the other, I call
the problem of demarcation.1
This problem was known to Hume who attempted to solve it. 2
With Kant it became the central problem of the theory of know-
ledge. If, following Kant, we call the problem of induction 'Hume's
problem', we might call the problem of demarcation 'Kant's
problem'.
Of these two problems — the source of nearly all the other problems
of the theory of knowledge — the problem of demarcation is, I think,
the more fundamental. Indeed, the main reason why epistemologists
with empiricist leanings tend to pin their faith to the 'method of
induction' seems to be their belief that this method alone can provide a
suitable criterion of demarcation. This applies especially to those
empiricists who follow the flag of 'positivism'.
The older positivists wished to admit, as scientific or legitimate,
only those concepts (or notions or ideas) which were, as they put it,
'derived from experience'; those concepts, that is, which they
believed to be logically reducible to elements of sense-experience,
such as sensations (or sense-data), impressions, perceptions, visual
or auditory memories, and so forth. Modern positivists are apt to see
more clearly that science is not a system of concepts but rather a
1 With this (and also with sections 1 to 6 and 1 3 to 24) compare my note in Erkenntnis 3, 1933, p. 426; *It is now here reprinted, in translation, in appendix *i.
2 Cf. the last sentence of his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With the next paragraph (and my allusion to epistemologists) compare for example the quotation from Reichenbach in the text to note 1 , section 1 .
TH E LOG IC OF SCIENCE
system of statements.* 1 Accordingly, they wish to admit, as scientific
or legitimate, only those statements which are reducible to ele-
mentary (or 'atomic') statements of experience — to 'judgments of
perception' or 'atomic propositions' or 'protocol-sentences' or
what not.* 2 It is clear that the implied criterion of demarcation is
identical with the demand for an inductive logic.
Since I reject inductive logic I must also reject all these attempts to
solve the problem of demarcation. With this rejection, the problem of
demarcation gains in importance for the present inquiry. Finding an
acceptable criterion of demarcation must be a crucial task for any
epistemology which does not accept inductive logic.
Positivists usually interpret the problem of demarcation in a natural-
istic way; they interpret it as if it were a problem of natural science.
Instead of taking it as their task to propose a suitable convention, they
believe they have to discover a difference, existing in the nature of
things, as it were, between empirical science on the one hand and
metaphysics on the other. They are constantly trying to prove that
metaphysics by its very nature is nothing but nonsensical twaddle —
'sophistry and illusion', as Hume says, which we should 'commit to
the flames'.* 3
If by the words 'nonsensical' or 'meaningless' we wish to express no
more, by definition, than 'not belonging to empirical science', then the
characterization of metaphysics as meaningless nonsense would be
*' When I wrote this paragraph I overrated the 'modern positivists', as I now see. I
should have remembered that in this respect the promising beginning of Wittgenstein's
Tractatus — 'The world is the totality of facts, not of things' — was cancelled by its end
which denounced the man who 'had given no meaning to certain signs in his
propositions'. See also my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chapter 11, section ii, and chapter
*i of my Postscript, especially sections *ii (note 5), *24 (the last five paragraphs),
and*25.
* 2 Nothing depends on names, of course. When I invented the new name 'basic state-
ment' (or 'basic proposition'; see below, sections 7 and 28) I did so only because I
needed a term not burdened with the connotation of a perception statement. But
unfortunately it was soon adopted by others, and used to convey precisely the kind of
meaning which I wished to avoid. Cf. also my Postscript, *29.
* 3 Thus Hume, like Sextus, condemned his own Enquiry on its last page; just as later
Wittgenstein condemned his own Tractatus on its last page. (See note 2 to section 1 0.)
A SURVEY OF SOME FUNDAMENTAL PROBLEMS
trivial; for metaphysics has usually been defined as non-empirical. But
of course, the positivists believe they can say much more about meta-
physics than that some of its statements are non-empirical. The words
'meaningless' or 'nonsensical' convey, and are meant to convey, a
derogatory evaluation; and there is no doubt that what the positivists
really want to achieve is not so much a successful demarcation as the
final overthrow 3 and the annihilation of metaphysics. However this
may be, we find that each time the positivists tried to say more clearly
what 'meaningful' meant, the attempt led to the same result — to
a definition of 'meaningful sentence' (in contradistinction to 'mean-
ingless pseudo-sentence') which simply reiterated the criterion of
demarcation of their inductive logic.
This 'shows itself very clearly in the case of Wittgenstein, according
to whom every meaningful proposition must be logically reducible 4 to
elementary (or atomic) propositions, which he characterizes as
descriptions or 'pictures of reality' 5 (a characterization, by the way,
which is to cover all meaningful propositions) . We may see from this
that Wittgenstein's criterion of meaningfulness coincides with the
inductivists' criterion of demarcation, provided we replace their words
'scientific' or 'legitimate' by 'meaningful'. And it is precisely over the
problem of induction that this attempt to solve the problem of demar-
cation comes to grief: positivists, in their anxiety to annihilate meta-
physics, annihilate natural science along with it. For scientific laws, too,
cannot be logically reduced to elementary statements of experience. If
consistently applied, Wittgenstein's criterion of meaningfulness rejects
as meaningless those natural laws the search for which, as Einstein
says, 6 is 'the supreme task of the physicist': they can never be accepted
as genuine or legitimate statements. Wittgenstein's attempt to unmask
the problem of induction as an empty pseudo-problem was formulated
3 Carnap, Erkenntnis 2, 1932, pp. 219 ff. Earlier Mill had used the word 'meaningless' in a
similar way, *no doubt under the influence of Comte; cf. Comte's Early Essays on Social
Philosophy, ed. by H. D. Hutton, 191 1, p. 223. See also my Open Society, note 51 to chapter
11.
4 Wittgenstein,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18 and 1922), Proposition 5. *As this was
written in 1934, 1 am dealing here of course only with the Tractatus.
5 Wittgenstein, op.cit., Propositions 4.01; 4.03; 2.221.
6 Cf. note 1 to section 2 .
THE LOGIC OF SCIENCE
by Schlick* 4 in the following words: 'The problem of induction consists
in asking for a logical justification of universal statements about reality . . .
We recognize, with Hume, that there is no such logical justification:
there can be none, simply because they are not genuine statements.' 7
This shows how the inductivist criterion of demarcation fails to
draw a dividing line between scientific and metaphysical systems, and
why it must accord them equal status; for the verdict of the positivist
dogma of meaning is that both are systems of meaningless pseudo-
statements. Thus instead of eradicating metaphysics from the empirical
sciences, positivism leads to the invasion of metaphysics into the
scientific realm. 8
In contrast to these anti-metaphysical stratagems — anti-metaphysical
in intention, that is — my business, as I see it, is not to bring about the
overthrow of metaphysics. It is, rather, to formulate a suitable charac-
terization of empirical science, or to define the concepts 'empirical
science' and 'metaphysics' in such a way that we shall be able to say of a
* 4 The idea of treating scientific laws as pseudo-propositions — thus solving the problem
of induction — was attributed by Schlick to Wittgenstein. (Cf. my Open Society, notes 46
and 51 f. to chapter 1 1 .) But it is really much older. It is part of the instrumentalist
tradition which can be traced back to Berkeley, and further. (See for example my paper
'Three Views Concerning Human Knowledge', in Contemporary British Philosophy, 1956; and
'A Note on Berkeley as a Precursor of Mach' , in The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4,
1953, pp. 26 If., now in my Conjectures and Refutations, 1959. Further references in note *1
before section 1 2 (p. 3 7) . The problem is also treated in my Postscript, sections * 1 1 to * 1 4,
and*19to *26.)
7 Schlick, Naturwissenschaften 19, 1931, p. 156. (The italics are mine). Regarding natural
laws Schlick writes (p. 151), 'It has often been remarked that, strictly, we can never speak
of an absolute verification of a law, since we always, so to speak, tacitly make the reserva-
tion that it may be modified in the light of further experience. If I may add, by way of
parenthesis', Schlick continues, 'a few words on the logical situation, the above-
mentioned fact means that a natural law, in principle, does not have the logical character
of a statement, but is, rather, a prescription for the formation of statements.' *('Forma-
tion' no doubt was meant to include transformation or derivation.) Schlick attributed
this theory to a personal communication of Wittgenstein's. See also section *12 of my
Postscript.
8 Cf. Section 78 (for example note 1). *See also my Open Society, notes 46, 51, and 52 to
chapter 1 1 , and my paper. 'The Demarcation between Science and Metaphysics', contrib-
uted in January 1955 to the Carnap volume of the Library of Living Philosophers, edited by
P. A. Schilpp and now in my Conjectures and Refutations, 1963 and 1965.
A SURVEY OF SOME FUNDAMENTAL PROBLEMS
given system of statements whether or not its closer study is the
concern of empirical science.
My criterion of demarcation will accordingly have to be regarded as
a proposal for an agreement or convention. As to the suitability of any such
convention opinions may differ; and a reasonable discussion of these
questions is only possible between parties having some purpose in
common. The choice of that purpose must, of course, be ultimately a
matter of decision, going beyond rational argument.* 5
Thus anyone who envisages a system of absolutely certain, irrevoc-
ably true statements 9 as the end and purpose of science will certainly
reject the proposals I shall make here. And so will those who see 'the
essence of science ... in its dignity', which they think resides in its
'wholeness' and its 'real truth and essentiality'. 10 They will hardly be
ready to grant this dignity to modern theoretical physics in which I
and others see the most complete realization to date of what I call
'empirical science'.
The aims of science which I have in mind are different. I do not try
to justify them, however, by representing them as the true or the essen-
tial aims of science. This would only distort the issue, and it would
mean a relapse into positivist dogmatism. There is only one way, as far
as I can see, of arguing rationally in support of my proposals. This is to
analyse their logical consequences: to point out their fertility — their
power to elucidate the problems of the theory of knowledge.
Thus I freely admit that in arriving at my proposals I have been
guided, in the last analysis, by value judgments and predilections. But I
hope that my proposals may be acceptable to those who value not only
logical rigour but also freedom from dogmatism; who seek practical
applicability, but are even more attracted by the adventure of science,
and by discoveries which again and again confront us with new and
unexpected questions, challenging us to try out new and hitherto
undreamed-of answers.
The fact that value judgments influence my proposals does not mean
* s I believe that a reasonable discussion is always possible between parties interested in
truth, and ready to pay attention to each other. (Cf. my Open Society, chapter 24.)
9 This is Dingler's view; cf. note 1 to section 19.
10 This is the view of O. Spann (Kotegorienlehre, 1924).
TH E LOG IC OF SCIENCE
that I am making the mistake of which I have accused the positivists —
that of trying to kill metaphysics by calling it names. I do not even go
so far as to assert that metaphysics has no value for empirical science.
For it cannot be denied that along with metaphysical ideas which have
obstructed the advance of science there have been others — such as
speculative atomism — which have aided it. And looking at the matter
from the psychological angle, I am inclined to think that scientific
discovery is impossible without faith in ideas which are of a purely
speculative kind, and sometimes even quite hazy; a faith which is com-
pletely unwarranted from the point of view of science, and which, to
that extent, is 'metaphysical'. 11
Yet having issued all these warnings, I still take it to be the first task
of the logic of knowledge to put forward a concept of empirical science, in
order to make linguistic usage, now somewhat uncertain, as definite as
possible, and in order to draw a clear line of demarcation between
science and metaphysical ideas — even though these ideas may have
furthered the advance of science throughout its history.
5 EXPERIENCE AS A METHOD
The task of formulating an acceptable definition of the idea of an
'empirical science' is not without its difficulties. Some of these arise
from the fact that there must be many theoretical systems with a logical structure
very similar to the one which at any particular time is the accepted
system of empirical science. This situation is sometimes described by
saying that there is a great number — presumably an infinite number —
of 'logically possible worlds'. Yet the system called 'empirical science'
is intended to represent only one world: the 'real world' or the 'world of
our experience'.* 1
In order to make this idea a little more precise, we may distinguish
three requirements which our empirical theoretical system will
have to satisfy. First, it must be synthetic, so that it may represent a
11 Cf. also: Planck. Positivismus und reale Aussenwelt (1931) and Einstein, Die Religiositdt der
Forschung, in Mem Weltbild, 1 934, p. 43; English translation by A. Harris: The World as I See It,
1935, pp. 23 ff. *See also section 85, and my Postscript.
*' Cf. appendix *x.
A SURVEY OF SOME FUNDAMENTAL PROBLEMS
non-contradictory, a possible world. Secondly, it must satisfy the cri-
terion of demarcation (cf. sections 6 and 21), i.e. it must not be meta-
physical, but must represent a world of possible experience. Thirdly, it
must be a system distinguished in some way from other such systems
as the one which represents our world of experience.
But how is the system that represents our world of experience to be
distinguished? The answer is: by the fact that it has been submitted to
tests, and has stood up to tests. This means that it is to be distinguished
by applying to it that deductive method which it is my aim to analyse,
and to describe.
'Experience', on this view, appears as a distinctive method whereby
one theoretical system may be distinguished from others; so that
empirical science seems to be characterized not only by its logical form
but, in addition, by its distinctive method. (This, of course, is also the
view of the inductivists, who try to characterize empirical science by
its use of the inductive method.)
The theory of knowledge, whose task is the analysis of the method
or procedure peculiar to empirical science, may accordingly be
described as a theory of the empirical method — a theory of what is usually
called 'experience'.
6 FALSI FIABILITY AS A CRITERION OF DEMARCATION
The criterion of demarcation inherent in inductive logic — that is, the
positivistic dogma of meaning — is equivalent to the requirement that
all the statements of empirical science (or all 'meaningful' statements)
must be capable of being finally decided, with respect to their truth and
falsity; we shall say that they must be 'conclusively decidable'. This means
that their form must be such that to verify them and to falsify them must both
be logically possible. Thus Schlick says: '. . . a genuine statement must
be capable of conclusive verification'; 1 and Waismann says still more clearly:
'If there is no possible way to determine whether a statement is true then that
statement has no meaning whatsoever. For the meaning of a statement
is the method of its verification.' 2
1 Schlick, Naturwissenschaften 19, 1931, p. 150.
2 Waismann, Erkenntnis 1, 1903, p. 229.
TH E LOG IC OF SCIENCE
Now in my view there is no such thing as induction.* 1 Thus
inference to theories, from singular statements which are 'verified
by experience' (whatever that may mean), is logically inadmissible.
Theories are, therefore, never empirically verifiable. If we wish to
avoid the positivist's mistake of eliminating, by our criterion of demar-
cation, the theoretical systems of natural science,* 2 then we must
choose a criterion which allows us to admit to the domain of
empirical science even statements which cannot be verified.
But I shall certainly admit a system as empirical or scientific only if it
is capable of being tested by experience. These considerations suggest
that not the verifiability but the falsifiability of a system is to be taken as a
criterion of demarcation.* 3 In other words: I shall not require of a
scientific system that it shall be capable of being singled out, once and
for all, in a positive sense; but I shall require that its logical form shall
be such that it can be singled out, by means of empirical tests, in a
negative sense: it must be possible for an empirical scientific system to be refuted by
experience. 3
* ] I am not, of course, here considering so-called 'mathematical induction'. What I am
denying is that there is such a thing as induction in the so-called 'inductive sciences': that
there are either 'inductive procedures' or 'inductive inferences'.
* 2 In his Logical Syntax (1937, pp. 321 f.) Carnap admitted that this was a mistake (with a
reference to my criticism); and he did so even more fully in 'Testability and Meaning',
recognizing the fact that universal laws are not only 'convenient' for science but even
'essential' (Philosophy of Science 4, 1937, p. 27). But in his inductivist logical Foundations of
Probability (1950), he returns to a position very like the one here criticized: finding that
universal laws have zero probability (p. 5 1 1), he is compelled to say (p. 575) that though
they need not be expelled from science, science can very well do without them.
* 3 Note that I suggest falsifiability as a criterion of demarcation, but not of meaning. Note,
moreover, that I have already (section 4) sharply criticized the use of the idea of meaning
as a criterion of demarcation, and that I attack the dogma of meaning again, even more
sharply, in section 9. It is therefore a sheer myth (though any number of refutations of
my theory have been based upon this myth) that I ever proposed falsifiability as a
criterion of meaning. Falsifiability separates two kinds of perfectly meaningful state-
ments: the falsifiable and the non-falsifiable. It draws a line inside meaningful language,
not around it. See also appendix *i, and chapter *i of my Postscript, especially sections *1 7
and *19, and my Conjectures and Refutations, chs. 1 and 11.
3 Related ideas are to be found, for example, in Frank, Die Kausalitdt und ihre Grenzen, 1931,
ch. I, §10 (pp. 15f.); Dubislav, Die Definition (3rd edition 1931), pp. 100 f. (Cf. also note 1
to section 4, above.)
A SURVEY OF SOME FUNDAMENTAL PROBLEMS
(Thus the statement, 'It will rain or not rain here tomorrow' will not
be regarded as empirical, simply because it cannot be refuted; whereas
the statement, 'It will rain here tomorrow' will be regarded as
empirical.)
Various objections might be raised against the criterion of demarca-
tion here proposed. In the first place, it may well seem somewhat
wrong-headed to suggest that science, which is supposed to give us
positive information, should be characterized as satisfying a negative
requirement such as refutability. However, I shall show, in sections 3 1
to 46, that this objection has little weight, since the amount of positive
information about the world which is conveyed by a scientific state-
ment is the greater the more likely it is to clash, because of its logical
character, with possible singular statements. (Not for nothing do
we call the laws of nature 'laws': the more they prohibit the more
they say.)
Again, the attempt might be made to turn against me my own
criticism of the inductivist criterion of demarcation; for it might seem
that objections can be raised against falsifiability as a criterion of
demarcation similar to those which I myself raised against
verifiability.
This attack would not disturb me. My proposal is based upon an
asymmetry between verifiability and falsifiability; an asymmetry which
results from the logical form of universal statements.* 4 For these are
never derivable from singular statements, but can be contradicted by
singular statements. Consequently it is possible by means of purely
deductive inferences (with the help of the modus tollens of classical
logic) to argue from the truth of singular statements to the falsity of
universal statements. Such an argument to the falsity of universal
statements is the only strictly deductive kind of inference that proceeds,
as it were, in the 'inductive direction'; that is, from singular to
universal statements.
A third objection may seem more serious. It might be said that even
if the asymmetry is admitted, it is still impossible, for various reasons,
that any theoretical system should ever be conclusively falsified. For it is
always possible to find some way of evading falsification, for example
This asymmetry is now more fully discussed in section *22 of my Postscript.
THE LOGIC OF SCIENCE
by introducing ad hoc an auxiliary hypothesis, or by changing ad hoc a
definition. It is even possible without logical inconsistency to adopt the
position of simply refusing to acknowledge any falsifying experience
whatsoever. Admittedly, scientists do not usually proceed in this
way, but logically such procedure is possible; and this fact, it might
be claimed, makes the logical value of my proposed criterion of
demarcation dubious, to say the least.
I must admit the justice of this criticism; but I need not therefore
withdraw my proposal to adopt falsifiability as a criterion of demarca-
tion. For I am going to propose (in sections 20 f.) that the empirical
method shall be characterized as a method that excludes precisely those
ways of evading falsification which, as my imaginary critic rightly
insists, are logically possible. According to my proposal, what charac-
terizes the empirical method is its manner of exposing to falsification,
in every conceivable way, the system to be tested. Its aim is not to save
the lives of untenable systems but, on the contrary, to select the one
which is by comparison the fittest, by exposing them all to the fiercest
struggle for survival.
The proposed criterion of demarcation also leads us to a solution of
Hume's problem of induction — of the problem of the validity of nat-
ural laws. The root of this problem is the apparent contradiction
between what may be called 'the fundamental thesis of empiricism' —
the thesis that experience alone can decide upon the truth or falsity of
scientific statements — and Hume's realization of the inadmissibility of
inductive arguments. This contradiction arises only if it is assumed that
all empirical scientific statements must be 'conclusively decidable', i.e.
that their verification and their falsification must both in principle be
possible. If we renounce this requirement and admit as empirical also
statements which are decidable in one sense only — unilaterally decid-
able and, more especially, falsifiable — and which may be tested by
systematic attempts to falsify them, the contradiction disappears: the
method of falsification presupposes no inductive inference, but only
the tautological transformations of deductive logic whose validity is
not in dispute. 4
4 For this see also my paper mentioned in note 1 to section 4, *now here reprinted in
appendix *i; and my Postscript, esp. section *2.
A SURVEY OF SOME FUNDAMENTAL PROBLEMS
7 THE PROBLEM OFTHE 'EMPIRICAL BASIS'
If falsifiability is to be at all applicable as a criterion of demarcation,
then singular statements must be available which can serve as premisses
in falsifying inferences. Our criterion therefore appears only to shift the
problem — to lead us back from the question of the empirical character
of theories to the question of the empirical character of singular
statements.
Yet even so, something has been gained. For in the practice of scien-
tific research, demarcation is sometimes of immediate urgency in con-
nection with theoretical systems, whereas in connection with singular
statements, doubt as to their empirical character rarely arises. It is true
that errors of observation occur and that they give rise to false singular
statements, but the scientist scarcely ever has occasion to describe a
singular statement as non-empirical or metaphysical.
Problems of the empirical basis — that is, problems concerning the empir-
ical character of singular statements, and how they are tested — thus
play a part within the logic of science that differs somewhat from that
played by most of the other problems which will concern us. For most
of these stand in close relation to the practice of research, whilst the
problem of the empirical basis belongs almost exclusively to the theory
of knowledge. I shall have to deal with them, however, since they have
given rise to many obscurities. This is especially true of the relation
between perceptual experiences and basic statements. (What I call a 'basic state-
ment' or a 'basic proposition' is a statement which can serve as a prem-
ise in an empirical falsification; in brief, a statement of a singular fact.)
Perceptual experiences have often been regarded as providing a kind of
justification for basic statements. It was held that these statements are
'based upon' these experiences; that their truth becomes 'manifest by
inspection' through these experiences; or that it is made 'evident' by
these experiences, etc. All these expressions exhibit the perfectly sound
tendency to emphasize the close connection between basic statements
and our perceptual experiences. Yet it was also rightly felt that statements can
be logically justified only by statements. Thus the connection between the percep-
tions and the statements remained obscure, and was described by cor-
respondingly obscure expressions which elucidated nothing, but slurred
over the difficulties or, at best, adumbrated them through metaphors.
THE LOGIC OF SCIENCE
Here too a solution can be found, I believe, if we clearly separate the
psychological from the logical and methodological aspects of the prob-
lem. We must distinguish between, on the one hand, our subjective experi-
ences or our feelings of conviction, which can never justify any statement
(though they can be made the subject of psychological investigation)
and, on the other hand, the objective logical relations subsisting among the
various systems of scientific statements, and within each of them.
The problems of the empirical basis will be discussed in some detail
in sections 25 to 30. For the present I had better turn to the problem of
scientific objectivity, since the terms 'objective' and 'subjective' which
I have just used are in need of elucidation.
8 SCI ENTI FIC OBJ ECTI VITY AN D
SUBJECTIVE CONVICTION
The words 'objective' and 'subjective' are philosophical terms heavily
burdened with a heritage of contradictory usages and of inconclusive
and interminable discussions.
My use of the terms 'objective' and 'subjective' is not unlike Kant's.
He uses the word 'objective' to indicate that scientific knowledge
should be justifiable, independently of anybody's whim: a justification is
'objective' if in principle it can be tested and understood by anybody.
'If something is valid', he writes, 'for anybody in possession of his
reason, then its grounds are objective and sufficient."
Now I hold that scientific theories are never fully justifiable or verifi-
able, but that they are nevertheless testable. I shall therefore say that
the objectivity of scientific statements lies in the fact that they can be
inter-subjectively tested.* 1
1 Kritik der reinen Vernunft, Methodenlehre, 2. Haupstiick, 3. Abschnitt (2nd edition, p. 848;
English translation by N. Kemp Smith, 1933: Critique of Pure Reason, The Transcendental
Doctrine of Method, chapter ii, section 3, p. 645).
* ] I have since generalized this formulation; for inter-subjective testing is merely a very
important aspect of the more general idea of inter-subjective criticism, or in other words,
of the idea of mutual rational control by critical discussion. This more general idea,
discussed at some length in my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chapters 23 and 24, and in my
Poverty of Historicism, section 32, is also discussed in my Postscript, especially in chapters *i,
*ii, and *vi.
A SURVEY OF SOME FUNDAMENTAL PROBLEMS
The word 'subjective' is applied by Kant to our feelings of conviction
(of varying degrees). 2 To examine how these come about is the busi-
ness of psychology. They may arise, for example, 'in accordance with
the laws of association'. 3 Objective reasons too may serve as 'subject-
ive causes of judging', 4 in so far as we may reflect upon these reasons,
and become convinced of their cogency.
Kant was perhaps the first to realize that the objectivity of scientific
statements is closely connected with the construction of theories —
with the use of hypotheses and universal statements. only when certain
events recur in accordance with rules or regularities, as is the case with
repeatable experiments, can our observations be tested — in
principle — by anyone. We do not take even our own observations quite
seriously, or accept them as scientific observations, until we have
repeated and tested them. only by such repetitions can we convince
ourselves that we are not dealing with a mere isolated 'coincidence',
but with events which, on account of their regularity and
reproducibility, are in principle inter-subjectively testable. 5
Every experimental physicist knows those surprising and inexplic-
able apparent 'effects' which in his laboratory can perhaps even be
reproduced for some time, but which finally disappear without trace.
Of course, no physicist would say in such a case that he had made a
scientific discovery (though he might try to rearrange his experiments
so as to make the effect reproducible) . Indeed the scientifically signifi-
cant physical effect may be defined as that which can be regularly
2 Ibid.
3 Cf. Kritik der reinen Vernunft, Transcendentale Elementarlehre §19 (2nd edition, p. 142;
English translation by N. Kemp Smith, 1933: Critique of Pure Reason, Transcendental
Doctrine of Elements, §19, p. 159).
4 Cf. Kritik der reinen Vernuft, Methodenlehre, 2. Haupsmck, 3. Abschnitt (2nd edition,
p. 849; English translation, chapter ii, section 3, p. 646).
5 Kant realized that from the required objectivity of scientific statements it follows that
they must be at any time inter-subjectively testable, and that they must therefore have the
form of universal laws or theories. He formulated this discovery somewhat obscurely by
his 'principle of temporal succession according to the law of causality' (which principle
he believed that he could prove a priori by employing the reasoning here indicated) . I do
not postulate any such principle (cf. section 12); but I agree that scientific statements,
since they must be inter-subjectively testable, must always have the character of universal
hypotheses. *See also note *1 to section 22.
THE LOGIC OF SCIENCE
reproduced by anyone who carries out the appropriate experiment in
the way prescribed. No serious physicist would offer for publication, as
a scientific discovery, any such 'occult effect', as I propose to call it —
one for whose reproduction he could give no instructions. The 'dis-
covery' would be only too soon rejected as chimerical, simply because
attempts to test it would lead to negative results. 6 (It follows that any
controversy over the question whether events which are in principle
unrepeatable and unique ever do occur cannot be decided by science: it
would be a metaphysical controversy.)
We may now return to a point made in the previous section: to my
thesis that a subjective experience, or a feeling of conviction, can never
justify a scientific statement, and that within science it can play no part
except that of an object of an empirical (a psychological) inquiry. No
matter how intense a feeling of conviction it may be, it can never justify
a statement. Thus I may be utterly convinced of the truth of a state-
ment; certain of the evidence of my perceptions; overwhelmed by the
intensity of my experience: every doubt may seem to me absurd. But
does this afford the slightest reason for science to accept my statement?
Can any statement be justified by the fact that K. R. P. is utterly con-
vinced of its truth? The answer is, 'No'; and any other answer would be
incompatible with the idea of scientific objectivity. Even the fact, for
me to so firmly established, that I am experiencing this feeling of
conviction, cannot appear within the field of objective science except
in the form of a psychological hypothesis which, of course, calls for inter-
subjective testing: from the conjecture that I have this feeling of convic-
tion the psychologist may deduce, with the help of psychological and
other theories, certain predictions about my behaviour; and these may
be confirmed or refuted in the course of experimental tests. But from
the epistemological point of view, it is quite irrelevant whether my
6 In the literature of physics there are to be found some instances of reports, by serious
investigators, of the occurrence of effects which could not be reproduced, since further
tests led to negative results. A well-known example from recent times is the unexplained
positive result of Michelson's experiment observed by Miller (1921—1926) at Mount
Wilson, after he himself (as well as Morley) had previously reproduced Michelson's
negative result. But since later tests again gave negative results it is now customary to
regard these latter as decisive, and to explain Miller's divergent result as 'due to unknown
sources of error'. *See also section 22, especially footnote *1.
A SURVEY OF SOME FUNDAMENTAL PROBLEMS
feeling of conviction was strong or weak; whether it came from a
strong or even irresistible impression of indubitable certainty (or 'self-
evidence'), or merely from a doubtful surmise. None of this has any
bearing on the question of how scientific statements can be justified.
Considerations like these do not of course provide an answer to the
problem of the empirical basis. But at least they help us to see its main
difficulty. In demanding objectivity for basic statements as well as for
other scientific statements, we deprive ourselves of any logical means
by which we might have hoped to reduce the truth of scientific state-
ments to our experiences. Moreover we debar ourselves from granting
any favoured status to statements which describe experiences, such as
those statements which describe our perceptions (and which are some-
times called 'protocol sentences'). They can occur in science only as
psychological statements; and this means, as hypotheses of a kind
whose standards of inter-subjective testing (considering the present
state of psychology) are certainly not very high.
Whatever may be our eventual answer to the question of the empir-
ical basis, one thing must be clear: if we adhere to our demand that
scientific statements must be objective, then those statements which
belong to the empirical basis of science must also be objective, i.e.
inter-subjectively testable. Yet inter-subjective testability always implies
that, from the statements which are to be tested, other testable state-
ments can be deduced. Thus if the basic statements in their turn are to
be inter-subjectively testable, there can be no ultimate statements in science:
there can be no statements in science which cannot be tested, and
therefore none which cannot in principle be refuted, by falsifying
some of the conclusions which can be deduced from them.
We thus arrive at the following view. Systems of theories are tested
by deducing from them statements of a lesser level of universality.
These statements in their turn, since they are to be inter- subjectively
testable, must be testable in like manner — and so ad infinitum.
It might be thought that this view leads to an infinite regress, and
that it is therefore untenable. In section 1 , when criticizing induction, I
raised the objection that it may lead to an infinite regress; and it might
well appear to the reader now that the very same objection can be
urged against that procedure of deductive testing which I myself advo-
cate. However, this is not so. The deductive method of testing cannot
TH E LOG IC OF SCIENCE
establish or justify the statements which are being tested; nor is it
intended to do so. Thus there is no danger of an infinite regress. But it
must be admitted that the situation to which I have drawn attention —
testability ad infinitum and the absence of ultimate statements which are
not in need of tests — does create a problem. For, clearly, tests cannot in
fact be carried on ad infinitum: sooner or later we have to stop. Without
discussing this problem here in detail, I only wish to point out that the
fact that the tests cannot go on for ever does not clash with my demand
that every scientific statement must be testable. For I do not demand
that every scientific statement must have in fact been tested before it is
accepted. I only demand that every such statement must be capable of
being tested; or in other words, I refuse to accept the view that there
are statements in science which we have, resignedly, to accept as true
merely because it does not seem possible, for logical reasons, to test
them.
2
ON THE PROBLEM OF A
THEORY OF SCIENTIFIC
METHOD
In accordance with my proposal made above, epistemology, or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should be identified with the theory of
scientific method. The theory of method, in so far as it goes beyond the
purely logical analysis of the relations between scientific statements, is
concerned with the choice of methods — with decisions about the way in
which scientific statements are to be dealt with. These decisions will of
course depend in their turn upon the aim which we choose from
among a number of possible aims. The decision here proposed for
laying down suitable rules for what I call the 'empirical method' is
closely connected with my criterion of demarcation: I propose to adopt
such rules as will ensure the testability of scientific statements; which is
to say, their falsifiability.
9 WHY METHODOLOGICAL DECISIONS
ARE INDISPENSABLE
What are rules of scientific method, and why do we need them? Can
there be a theory of such rules, a methodology?
THE LOGIC OF SCIENCE
The way in which one answers these questions will largely depend
upon one's attitude to science. Those who, like the positivists, see
empirical science as a system of statements which satisfy certain logical
criteria, such as meaningfulness or verifiability, will give one answer. A
very different answer will be given by those who tend to see (as I do)
the distinguishing characteristic of empirical statements in their sus-
ceptibility to revision — in the fact that they can be criticized, and
superseded by better ones; and who regard it as their task to analyse the
characteristic ability of science to advance, and the characteristic man-
ner in which a choice is made, in crucial cases, between conflicting
systems of theories.
I am quite ready to admit that there is a need for a purely logical
analysis of theories, for an analysis which takes no account of how they
change and develop. But this kind of analysis does not elucidate those
aspects of the empirical sciences which I, for one, so highly prize. A
system such as classical mechanics may be 'scientific' to any degree you
like; but those who uphold it dogmatically — believing, perhaps, that it
is their business to defend such a successful system against criticism as
long as it is not conclusively disproved — are adopting the very reverse of that
critical attitude which in my view is the proper one for the scientist. In
point of fact, no conclusive disproof of a theory can ever be produced;
for it is always possible to say that the experimental results are not
reliable, or that the discrepancies which are asserted to exist between
the experimental results and the theory are only apparent and that they
will disappear with the advance of our understanding. (In the struggle
against Einstein, both these arguments were often used in support of
Newtonian mechanics, and similar arguments abound in the field of
the social sciences.) If you insist on strict proof (or strict disproof* 1 ) in
the empirical sciences, you will never benefit from experience, and
never learn from it how wrong you are.
If therefore we characterize empirical science merely by the formal
* l I have now here added in brackets the words 'or strict disproof to the text (a) because
they are clearly implied by what is said immediately before ('no conclusive disproof of a
theory can ever be produced'), and (b) because I have been constantly misinterpreted as
upholding a criterion (and moreover one of meaning rather than of demarcation) based upon
a doctrine of 'complete' or 'conclusive' falsifiability.
ON THE PROBLEM OF ATHEORY OF SCIENTIFIC METHOD
or logical structure of its statements, we shall not be able to exclude
from it that prevalent form of metaphysics which results from elevating
an obsolete scientific theory into an incontrovertible truth.
Such are my reasons for proposing that empirical science should be
characterized by its methods: by our manner of dealing with scientific
systems: by what we do with them and what we do to them. Thus I
shall try to establish the rules, or if you will the norms, by which the
scientist is guided when he is engaged in research or in discovery, in
the sense here understood.
10 THE NATURALISTIC APPROACH TO THE
THEORY OF METHOD
The hint I gave in the previous section as to the deep-seated difference
between my position and that of the positivists is in need of some
amplification.
The positivist dislikes the idea that there should be meaningful prob-
lems outside the field of 'positive' empirical science — problems to be
dealt with by a genuine philosophical theory. He dislikes the idea that
there should be a genuine theory of knowledge, an epistemology or a
methodology.* 1 He wishes to see in the alleged philosophical prob-
lems mere 'pseudo-problems' or 'puzzles'. Now this wish of his —
which, by the way, he does not express as a wish or a proposal but
rather as a statement of fact* 2 — can always be gratified. For nothing is
easier than to unmask a problem as 'meaningless' or 'pseudo'. All you
have to do is to fix upon a conveniently narrow meaning for 'meaning',
and you will soon be bound to say of any inconvenient question that
you are unable to detect any meaning in it. Moreover, if you admit as
*' In the two years before the first publication of this book, it was the standing criticism
raised by members of the Vienna Circle against my ideas that a theory of method which
was neither an empirical science nor pure logic was impossible: what was outside these
two fields was sheer nonsense. (The same view was still maintained by Wittgenstein in
1948; cf. my paper 'The Nature of Philosophical Problems', The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
sophy of Science 3, 1952, note on p. 128.) Later, the standing criticism became anchored in
the legend that I had proposed to replace the verifiability criterion by a falsifiability
criterion of meaning. See my Postscript, especially sections *19 to *22.
* 2 Some positivists have since changed this attitude; see note 6, below.
THE LOGIC OF SCIENCE
meaningful none except problems in natural science, 1 any debate about
the concept of 'meaning' will also turn out to be meaningless. 2 The
dogma of meaning, once enthroned, is elevated forever above the bat-
de. It can no longer be attacked. It has become (in Wittgenstein's own
words) 'unassailable and definitive'. 3
The controversial question whether philosophy exists, or has any
right to exist, is almost as old as philosophy itself. Time and again an
entirely new philosophical movement arises which finally unmasks the
old philosophical problems as pseudo-problems, and which confronts
the wicked nonsense of philosophy with the good sense of meaning-
ful, positive, empirical, science. And time and again do the despised
defenders of 'traditional philosophy' try to explain to the leaders of the
latest positivistic assault that the main problem of philosophy is the
critical analysis of the appeal to the authority of 'experience' 4 —
precisely that 'experience' which every latest discoverer of positivism
is, as ever, artlessly taking for granted. To such objections, however, the
positivist only replies with a shrug: they mean nothing to him, since
they do not belong to empirical science, which alone is meaningful.
'Experience' for him is a programme, not a problem (unless it is
studied by empirical psychology) .
I do not think positivists are likely to respond any differently to my
own attempts to analyse 'experience' which I interpret as the method
of empirical science. For only two kinds of statement exist for them:
logical tautologies and empirical statements. If methodology is not
logic, then, they will conclude, it must be a branch of some empirical
science — the science, say, of the behaviour of scientists at work.
This view, according to which methodology is an empirical science
in its turn — a study of the actual behaviour of scientists, or of the actual
1 Wittgenstein, Tractatus Logko-Philosopliicus, Proposition 6.53.
2 Wittgenstein at the end of the Tractatus (in which he explains the concept of meaning)
writes, 'My propositions are elucidatory in this way: he who understands me finally
recognizes them as senseless. . . .' Cp. Sextus Adv. Log. ii, 481; Loeb edn.ii, 488.)
3 Wittgenstein, op. cit. , at the end of his Preface.
4 H. Gomperz (Weltarischauungslefire I, 1905, p. 35) writes: 'If we consider how infinitely
problematic the concept of experience is . . . we may well be forced to believe that . . .
enthusiastic affirmation is far less appropriate in regard to it . . . than the most careful and
guarded criticism . . . . '
ON THE PROBLEM OF ATHEORY OF SCIENTIFIC METHOD
procedure of 'science' — may be described as 'naturalistic'. A naturalistic
methodology (sometimes called an 'inductive theory of science' 5 ) has
its value, no doubt. A student of the logic of science may well take an
interest in it, and learn from it. But what I call 'methodology' should
not be taken for an empirical science. I do not believe that it is possible
to decide, by using the methods of an empirical science, such contro-
versial questions as whether science actually uses a principle of induc-
tion or not. And my doubts increase when I remember that what is to
be called a 'science' and who is to be called a 'scientist' must always
remain a matter of convention or decision.
I believe that questions of this kind should be treated in a different
way. For example, we may consider and compare two different systems
of methodological rules; one with, and one without, a principle of
induction. And we may then examine whether such a principle, once
introduced, can be applied without giving rise to inconsistencies;
whether it helps us; and whether we really need it. It is this type of
inquiry which leads me to dispense with the principle of induction:
not because such a principle is as a matter of fact never used in science,
but because I think that it is not needed; that it does not help us; and
that it even gives rise to inconsistencies.
Thus I reject the naturalistic view. It is uncritical. Its upholders fail to
notice that whenever they believe themselves to have discovered a fact,
they have only proposed a convention. 6 Hence the convention is liable
to turn into a dogma. This criticism of the naturalistic view applies not
only to its criterion of meaning, but also to its idea of science, and
consequently to its idea of empirical method.
5 Dingier, Physik und Hypothesis, Versuch einer induktiven Wissenschaftslehre, 1921;
similarly V. Kraft, Die Grundformen der wissenschaftlichen Methoden, 1925.
h (Addition made in 1934 while this book was in proof.) The view, only briefly set forth
here, that it is a matter for decision what is to be called 'a genuine statement' and what 'a
meaningless pseudo-statement' is one that I have held for years. (Also the view that the
exclusion of metaphysics is likewise a matter for decision.) However, my present criti-
cism of positivism (and of the naturalistic view) no longer applies, as far as I can see, to
Carnap's Logische Syntax der Spraclie, 1934, in which he too adopts the standpoint that all
such questions rest upon decisions (the 'principle of tolerance'). According to Carnap's
preface, Wittgenstein has for years propounded a similar view in unpublished works.
(*See however note *1 above.) Carnap's Logische Syntax was published while the present
book was in proof I regret that I was unable to discuss it in my text.
THE LOGIC OF SCIENCE
11 METHODOLOGICAL RULES AS CONVENTIONS
Methodological rules are here regarded as conventions. They might be
described as the rules of the game of empirical science. They differ
from the rules of pure logic rather as do the rules of chess, which few
would regard as part of pure logic: seeing that the rules of pure logic
govern transformations of linguistic formulae, the result of an inquiry
into the rules of chess could perhaps be entitled 'The Logic of Chess',
but hardly 'Logic' pure and simple. (Similarly, the result of an inquiry
into the rules of the game of science — that is, of scientific discovery —
may be entitled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Two simple examples of methodological rules may be given. They
will suffice to show that it would be hardly suitable to place an inquiry
into method on the same level as a purely logical inquiry.
(1) The game of science is, in principle, without end. He who
decides one day that scientific statements do not call for any further
test, and that they can be regarded as finally verified, retires from the
game.
(2) once a hypothesis has been proposed and tested, and has
proved its mettle,* 1 it may not be allowed to drop out without 'good
reason'. A 'good reason' may be, for instance: replacement of the
hypothesis by another which is better testable; or the falsification
of one of the consequences of the hypothesis. (The concept 'better
testable' will later be analysed more fully.)
These two examples show what methodological rules look like.
Clearly they are very different from the rules usually called 'logical'.
Although logic may perhaps set up criteria for deciding whether a
statement is testable, it certainly is not concerned with the question
whether anyone exerts himself to test it.
In section 6 I tried to define empirical science with the help of the
criterion of falsifiability; but as I was obliged to admit the justice of
certain objections, I promised a methodological supplement to my
definition. Just as chess might be defined by the rules proper to it, so
empirical science may be defined by means of its methodological rules.
*' Regarding the translation 'to prove one's mettle' for 'sich bewaliren', see the first
footnote to chapter 1 (Corroboration) , below.
ON THE PROBLEM OF ATHEORY OF SCIENTIFIC METHOD
In establishing these rules we may proceed systematically. First a
supreme rule is laid down which serves as a kind of norm for deciding
upon the remaining rules, and which is thus a rule of a higher type. It
is the rule which says that the other rules of scientific procedure must
be designed in such a way that they do not protect any statement in
science against falsification.
Methodological rules are thus closely connected both with other
methodological rules and with our criterion of demarcation. But the
connection is not a strictly deductive or logical one. 1 It results, rather,
from the fact that the rules are constructed with the aim of ensuring
the applicability of our criterion of demarcation; thus their formula-
tion and acceptance proceeds according to a practical rule of a higher
type. An example of this has been given above (cf. rule 1): theories
which we decide not to submit to any further test would no longer be
falsifiable. It is this systematic connection between the rules which
makes it appropriate to speak of a theory of method. Admittedly the
pronouncements of this theory are, as our examples show, for the most
part conventions of a fairly obvious kind. Profound truths are not to be
expected of methodology.* 2 Nevertheless it may help us in many cases
to clarify the logical situation, and even to solve some far-reaching
problems which have hitherto proved intractable. one of these, for
example, is the problem of deciding whether a probability statement
should be accepted or rejected. (Cf. section 68.)
It has often been doubted whether the various problems of the
theory of knowledge stand in any systematic relation to one another,
and also whether they can be treated systematically. I hope to show in
this book that these doubts are unjustified. The point is of some
importance. My only reason for proposing my criterion of demarcation
is that it is fruitful: that a great many points can be clarified and
explained with its help. 'Definitions are dogmas; only the conclusions
drawn from them can afford us any new insight', says Menger. 2 This is
1 Cf. K. Menger. Moral, WMe und WeltgestcJtung, 1934, pp. 58 ff.
* 2 1 am still inclined to uphold something like this, even though such theorems as 'degree
of corroboration ^ probability', or my 'theorem on truth-content' (see the Feigl Festschrift: Mind,
Matter, and Method, edited by P. K. Feyerabend and G. Maxwell, 1966, pp. 343—353) are
perhaps unexpected and not quite on the surface.
2 K. Menger, Dimensionstheorie, 1928, p. 76.
TH E LOG IC OF SCIENCE
certainly true of the definition of the concept 'science'. It is only from
the consequences of my definition of empirical science, and from the
methodological decisions which depend upon this definition, that the
scientist will be able to see how far it conforms to his intuitive idea of
the goal of his endeavours.* 3
The philosopher too will accept my definition as useful only if he can
accept its consequences. We must satisfy him that these consequences
enable us to detect inconsistencies and inadequacies in older theories of
knowledge, and to trace these back to the fundamental assumptions and
conventions from which they spring. But we must also satisfy him that
our own proposals are not threatened by the same kind of difficulties.
This method of detecting and resolving contradictions is applied
also within science itself, but it is of particular importance in the theory
of knowledge. It is by this method, if by any, that methodological
conventions might be justified, and might prove their value. 3
Whether philosophers will regard these methodological investiga-
tions as belonging to philosophy is, I fear, very doubtful, but this does
not really matter much. Yet it may be worth mentioning in this connec-
tion that not a few doctrines which are metaphysical, and thus certainly
philosophical, could be interpreted as typical hypostatizations of
methodological rules. An example of this, in the shape of what is called
'the principle of causality' , will be discussed in the next section. Another
example which we have already encountered is the problem of object-
ivity. For the requirement of scientific objectivity can also be inter-
preted as a methodological rule: the rule that only such statements may
be introduced in science as are inter- subjectively testable (see sections
8, 20, 27, and elsewhere). It might indeed be said that the majority of
the problems of theoretical philosophy, and the most interesting ones,
can be re-interpreted in this way as problems of method.
* 3 See also section *15, 'The Aim of Science', of my Postscript.
3 In the present work I have relegated the critical — or, if you will, the 'dialectical' —
method of resolving contradictions to second place, since I have been concerned with the
attempt to develop the practical methodological aspects of my views. In an as yet
unpublished work I have tried to take the critical path; and I have tried to show that the
problems of both the classical and the modern theory of knowledge (from Hume via
Kant to Russell and Whitehead) can be traced back to the problem of demarcation, that
is, to the problem of finding the criterion of the empirical character of science.
과학적 발견의 논리, 1부 과학의 논리에 대한 서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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