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에게서 선험적 지식은, 감각-관찰 이전에 우리가 지닌 지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경험적 지식은, 감각-관찰 이후 즉, 관찰 이후에 우리가 지니는 지식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선험적(a priori) 및 경험적(a posteriori)이라는 용어들을 이 시간적이거나 역사적인 의미에서만 사용하겠다. (칸트 자신은 그의 용어 선험적[a priori]을 추가적으로 관찰에 앞설 뿐만 아니라 ‘선험적으로 타당한[a priori valid]’ 지식을 의미하도록 사용한다; 그것에 의하여 그는 반드시 혹은 틀림없이 참임을 의미한다. 물론 나는 이것에서 그를 따르지 않는데 왜냐하면 우리의 지식에 있는 불확실하고 추정적 특성을 내가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선험적’이라는 용어를, 생명체가 감각 경험 이전에 지니는 저런 종류의 지식을 ㅡ 오류를 저지를 수 있고 추정적인 지식 ㅡ 규정하기 위하여 사용하겠다; 개략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타고난 지식이다. 그리고 나는 ‘경험적’이라는 용어를, 생명체가 놓인 환경 상태에서의 순간적인 변화들에 대하여 생명체가 지닌 감응성의 도움을 받아서 습득되는 지식에 대하여 사용하겠다.
이 칸트의 용어사용법을 내가 방금 지적한대로 수정하여 사용하면서, 칸트 자신의 입장은 ㅡ 당시 매우 획기적인 ㅡ 이와 같다고 우리는 이제 말할 수 있다.
(A) 우리 환경의 상세하고 순간적인 상태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은 경험적이다.
(B) 그러나 우리가 관찰적이거나 경험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기 이전에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틀림없이 지니는 선험적 지식이 없다면, 그런 경험적 지식은 불가능하다: 선험적 지식이 없다면, 우리의 감각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이해될 수 없다. 우리는 먼저 전체적인 참고의 체계를 확립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느낌들을 이해하는 데 이용될 맥락이 없을 것이다.
(C) 이 선험적 지식은, 특히, 시공간의 구조에 대한 (시공간 관계들에 대한) 그리고 인과성에 대한 (인과적 관계들에 대한) 지식을 포함한다.a
이 모든 요점들에서 칸트가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부언하여, 이것에서 아마도 쇼펜하우어를 제외하고 칸트에게는 실제적인 후계자가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견해로, 칸트는 획기적인 지식론의 가장 중요한 결과들에 대하여 선두주자였다.
그러나 나는 칸트보다 훨씬 더 멀리 가고 있다. 모든 생명체들이 지닌 지식의 가령 99 퍼센트가 타고난 것이어서 우리의 생화학적 구조에 포함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칸트에 의하여 경험적으로 생각되어 우리의 감각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자료들’로 생각된 지식의 99 퍼센트는 사실상 경험적이 아니라 선험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유인즉 우리의 감각들은, 우리의 질문들에 대하여 ‘예-그리고-아니요’로만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칸트 자신이 안 바와 같이) 때문이다; 우리가 선험적으로 생각하여 물어보는 질문들; 그리고 때때로 매우 정교한 질문들. 게다가 심지어 감각들의 예-그리고-아니요 답변들도 우리에 의하여 해석되어야 ㅡ 우리가 선험적으로 미리 생각한 개념들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ㅡ 한다. 그리고 물론 그 개념들은 흔히 곡해된다.b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지식은 가설적이다. 그 지식은 부분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환경에 대한 적응이다. 그 지식은 흔히 성공하고 흔히 성공하지 못하며, 추정적인 시행들의 결과이고 불가피한 오류들의 결과인 동시에 오류 제거의 결과이다. 생명체가 지닌 계승될 수 있는 구조에 들어온 오류들 중 몇몇 오류들은, 그 오류들을 지닌 생명체들을 제거함에 의하여 제거된다; 다시 말해서, 생명체 개체가 제거된다. 그러나 어떤 오류들은 빠져나가는데, 이것이 우리 모두가 오류를 저지를 수 있는 한 가지 이유이다: 환경에 대한 우리의 적응은 최적인 때가 없어서 그 적응이 항상 불완전하다. 개구리는 선험적으로 구조를 갖추어, 파리가 움직일 때만 먹이를 ㅡ 파리 ㅡ 볼 수 있다. 파리가 조용히 앉아있으면, 파리가 가까이 있어도 개구리는 파리를 보지 못한다: 개구리의 적응은
불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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