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일시한 것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그러한 진술과 무수히 많은 비슷한 진술들은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이유인즉 이 모든 플라톤주의자들은 반(反)-개인주의가 이타심과 같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동일시로 인하여 반(反)-인도주의적 정치선전의 성공적인 효과가 발생했고, 우리 시대까지 윤리 문제에 관한 사고가 혼란되었다는 나의 주장이 이런 이유로 예시된다. 그러나 이 동일시와 허장성세에 속아서 플라톤의 명성을 도덕에 대한 스승으로 추앙하고 플라톤의 윤리학이 그리스도 이전의 기독교 신앙에 가장 근접한다고 세상에 선언한 사람들이 전체주의를 향한, 그리고 특히 기독교 신앙에 대한 전체주의적이고 반(反)-기독교적 해석을 향한 길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위험한 일인데 이유인즉 기독교가 전체주의적 이념의 지배를 받았던 시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재판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형태로, 종교재판은 다시 올는지도 모른다.
ㅡ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971년, 104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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