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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그 적들, II권, 1971년, 25장 역사에 의미가 있는가? (번역 수정본)

이윤진이카루스 2022. 12. 10. 18:25

열린사회와 그 적들, 2권 25 장 (번역 수정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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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25: 역사에 의미가 있는가?

 

I

이 저서의 종점에 다가가면서, 이 여러 장에서는 역사주의에 대한 전체 내력과 같은 것으로 의도된 것이 없음을 나는 다시 독자에게 상기시키고 싶다; 그 여러 장은 그런 내력에 대하여 산재한 극소수의 기록일 뿐이며 게다가 다소 개인적인 기록이다. 게다가 그 여러 장이 사회철학과 정치철학에 대하여 일종의 비판적인 소개를 형성한다는 것은, 그 장들의 이 특징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이유인즉 역사주의가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도덕적인 (혹은, 내가 말할 것과 같이, 비도덕적인) 철학이고, 우리 문명이 시작된 이래 그와 같은 것이 아주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 정치 그리고 도덕의 근본적인 문제를 토론하지 않고 역사주의의 편력에 관하여 비평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그런 토론에는, 역사주의가 토론을 인정하든지 아니든, 틀림없이 항상 강력한 개인적인 요소가 포함된다. 이것은, 이 저서에 있는 많은 것이 순전히 견해의 문제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서 나의 개인적인 제안이나 결정을 내가 설명하는 소수의 경우에, 나는 항상 그 제안이나 결정이 지니는 개인적인 특성을 분명히 했다. 그것은 오히려, 다루어지는 주제를 선정하는 일이 가령, 과학적 논문에서보다 훨씬 더 큰 정도로 개인적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이 차이점은 정도의 문제이다. 심지어 과학도 단순히 사실의 집합체가 아니다. 과학은 최소한도 수집물이며 과학과 같은 것은 수집자의 관심에, 관점에 의존한다. 과학에서, 이 관점은 보통 과학적 이론에 의하여 결정된다; 다시 말해서 무한히 다양한 사실들로부터, 그리고 무한히 다양한 사실들의 양상들로부터, 다소 미리 상정(想定)된 어떤 과학적 이론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저 사실들과 저 양상들을 우리가 선택한다. 과학적 방법에 관한 특정 철학자들의 학파는 이런 고찰들로부터 과학은 항상 순환으로 논증한다고, 그래서 에딩튼(Eddington)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우리 자신의 꼬리를 좇고 있는 우리 모습을 우리가 발견한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사실적 경험 속에 넣은 것을 우리가 그 경험으로부터 이론들의 형태로 꺼낼 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옹호될 수 있는 주장이 아니다. 미리 상정(想定)된 어떤 이론과 관계가 있는 사실만을 우리가 선택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완전히 참일지라도, 우리가 이론을 확증하는 사실만을 선택해서, 말하자면, 그 이론을 반복한다는 것은 참이 아니다; 과학의 방법은 오히려 이론을 반증할 사실을 주시하여 찾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이론 시험이다 ㅡ 그 이론의 오류를 발견할 수 없는지를 아는 것. 그러나 사실들이란 이론을 목적으로 수집되며, 그 이론이 이 시험들을 통과한다면 사실들에 의하여 그 이론이 확증될지라도, 사실들이란 일종의 미리 상정(想定)된 이론의 공허한 반복 이상이다. 이론이 수행하는 예언을 뒤집으려는 시도들이 실패하고 결과로 남은 것이 사실들이며 그리하여 사실들이 이론이 선호되는 효과적인 증거라는 조건에서만, 사실들에 의하여 이론이 확증된다. 그래서 이론을 시험하는 가능성을 그리하여 이론의 과학적 특징을, 구성하는 것은 그 이론을 뒤집는 가능성, 즉 이론의 오류판정 가능성(falsifiability)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그래서 이론에 대한 모든 시험은 그 이론의 도움을 받아서 도출된 예언에 시도되는 오류판정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과학적 방법의 단서가 제공된다. 과학적 방법에 대한 이 견해는 과학사에 의하여 입증되는데, 그 역사로 인하여 과학이론은 흔히 실험에 의하여 전복된다는 것과 이론이 전복되는 것은 진정으로 과학적 진보의 수단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과학이 순환적이라는 주장은 지지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주장의 한 가지 요소는 참이다; , 사실에 대한 모든 과학적 서술이 고도로 선택적이라는 것, 그 서술이 항상 이론에 의존한다는 것은 참이다. 그 상황은 탐조등과 (‘정신의 양동이 이론과 구별하여 내가 보통 부르는 바와 같이, ‘탐조등 과학이론) 비교하여 가장 잘 기술될 수 있다. 탐조등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것은 탐조등의 위치에, 탐조등을 비추는 우리의 방식에, 탐조등의 강도(强度), 색깔, 기타 등등에 의존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탐조등에 의하여 조명되는 것들에 매우 크게 의존할지라도. 유사하게 과학적 서술은 주로 우리의 관점에, 우리의 이해관계들에 의존할 것인데, 과학적 서술이 서술되는 사실에 또한 의존할지라도 그 관점과 이해관계들은 보통 우리가 시험하기를 원하는 이론이나 가설(假說)과 연결되어 있다. 정말로, 이론이나 가설(假說)은 관점의 결정화(結晶化)로서 기술될 수 있을 터이다. 이유인즉 우리가 우리의 관점을 언명하려고 시도한다면, 이 언명은 보통, 사람들이 작업가설(working hypothesis)이라고 간혹 부르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사실을 선택하고 조직하는 데 그 기능이 도움을 주는 잠정적 가정(假定). 그러나 이런 의미에서 작업가설이 아닌 그리고 작업가설로 남아있지 않는 이론이나 가설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한다. 이유인즉 어떤 이론도 최종적이지 않고, 모든 이론은 우리가 사실을 선택하고 조직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모든 기술의 이 선택적 특징으로 인하여 어떤 의미에서 이론은 상대적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이 다양하다면, 우리가 이 서술이 아니라 또 다른 서술을 제공할 터라는 의미에서만 상대적이 된다. 이 선택적 특징으로 인하여 또한 서술의 진실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적 특징으로 인하여 서술의 진위(眞僞) 문제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진실은 이런 의미에서 상대적이지 않다.

모든 서술이 선택적인 이유는, 개괄적으로 말해서, 우리 세상의 사실들에 대하여 가능한 양상들이 지니는 무한한 풍요로움과 다양함 때문이다. 이 무한한 풍요로움을 기술하기 위하여, 단어들의 유한한 수열의 유한한 숫자만을 우리는 사용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원하는 만큼 길게 기술할 것이다: 우리의 서술은 서술에 제시되는 사실들에 대하여 항상 불완전하고, 단지 선택이며 게다가 작은 선택일 것이다. 이로 인하여 선택적 관점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렇게 시도하는 것이 전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또한 밝혀진다; 이유인즉 우리가 선택적 관점을 피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객관적인서술을 얻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무관한 서술들의 무더기만을 얻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관점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관점을 피하려는 순진한 시도로 인하여 자기-기만(自己-欺瞞), 무의식적 관점의 무비판적 적용만 발생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 모든 것은 쇼펜하우어가 지칭하는 바와 같이 자체의 무한한 주제와 함께, 역사관련 서술의 경우에 가장 단호히 참이다. 그리하여 과학에서 못지않게 역사에서, 우리는 관점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관점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인하여 틀림없이 자기-기만(自己-欺瞞)에 빠지고 비판적 주시가 결여된다. 물론 이것은, 무엇이든지 오류로 판정하는 일이나 진리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는 일이 우리에게 허용됨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실에 대한 특정 역사관련 서술은, 그 서술의 진실성이나 허위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단지 참이거나 허위일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의 입지는 자연과학의 입지, 예를 들어 물리학의 입지와 비슷하다. 그러나 역사에서 관점이 수행하는 역할을 물리학에서 관점이 수행하는 역할과 우리가 비교한다면, 우리는 커다란 차이점을 발견한다. 우리가 안 바와 같이, 물리학에서 관점은 보통 새로운 사실들을 탐색함에 의하여 시험될 수 있는 물리이론에 의하여 제시된다. 역사에서, 문제가 완전히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II

먼저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에서 이론이 수행하는 역할을 다소 더 세밀하게 고찰하자. 여기에서, 이론들에게 몇 가지 연결된 과제들이 있다. 이론들은 과학을 통합하는 데 도움을 주며, 그래서 이론들은 사건들을 예언할 뿐 아니라 설명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설명과 예언에 관하여, 나는 아마도 나 자신의 저술 한 권으로부터 인용할 것이다: ‘특정 사건의 인과적 설명을 내놓는다는 것은, 우리가 초기조건(initial conditions)이라고 지칭할 특정 단칭 혹은 구체적 문장과 함께 몇 가지 보편법칙들(universal laws)을 전제들로서 사용하여, 저 사건을 기술하는 서술을 (그것은 예측[prognosis]으로 지칭될 것이다) 연역적으로 도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 실에 1파운드만을 매달 수 있었는데 2파운드의 무게가 그 실에 매달렸음을 안다면, 우리는 특정 실이 끊어지는 것에 대한 인과적 설명을 내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인과적 설명을 분석한다면, 우리는 그 속에 두 가지 다른 구성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1) 우리는 자연에 대한 보편법칙의 특징을 지닌 몇 가지 가설(假說)을 상정(想定)한다; 이 경우에는, 아마도: “특정 실은 자체에게 특징적인 특정 최대치의 장력을 초과하는 장력을 받을 때마다, 끊어질 것이다.” (2) 우리는 문제의 사건과 관련된 몇 가지 구체적 서술들을 (초기조건들) 상정(想定)한다; 이 경우에,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서술을 지닐 것이다: “이 실에 대하여, 실이 끊어지기 마련인 특징적인 최대치의 장력은 1파운드의 무게와 동일하다이 실에 매달렸던 무게는 2파운드의 무게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합쳐서 완벽한 인과적 설명을 낳은 두 가지 다른 서술을 지닌다, 다시 말해서: (1) 자연법칙의 특징을 지닌 전칭명제들(universal statements), (2) 문제의 특별한 경우와 연관되는 특칭명제들(specific statements)인 초기조건들. 이제 보편법칙 (1)로부터, 우리는 초기조건들 (2)의 도움을 받아 다음 특칭명제(specific statement) (3)을 연역할 수 있다.: “이 실은 끊어질 것이다.” 이 결론 (3)을 우리는 또한 단칭예측(specific prognosis)이라고 부를 것이다.ㅡ초기조건들은 (혹은 더 정확하게, 그 조건들에 의하여 기술되는 상황) 보통 문제 사건의 원인으로서 일컬어지며, 예측은 (혹은 더 정확하게, 예측에 의하여 기술되는 사건) 결과라고 일컬어진다: 예를 들어, 1 파운드만을 매달 수 있는 실에 2 파운드의 무게를 매단 것이 실이 끊어진 원인이었다고 우리는 말한다.’

인과적 설명에 관한 이 분석으로부터, 우리는 몇 가지 것을 알 수 있다. 한 가지는 우리가 원인과 결과를 절대적인 방식으로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사건이 또 다른 사건의 원인인데 또 다른 사건은, 어떤 보편법칙과 관련해서 한 가지 사건의 결과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편법칙들은 매우 흔히 아주 하찮아서 (위 보기에서처럼) 일반적으로 그 보편법칙들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대신, 우리는 그 법칙들을 당연하게 여긴다. 두 번째 요점은 어떤 구체적 사건을 예언하는 목적으로 이론을 사용하는 것은 그런 사건을 설명하는 목적으로 그 이론을 사용하는 또 다른 면()이다. 그래서 예언된 사건들을 실제로 관찰되는 사건들과 비교함 때문에 우리가 이론을 시험하기 때문에, 우리의 분석으로 인하여 어떻게 이론들이 시험될 수 있는지가 또한 밝혀진다. 우리가 이론을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혹은 예언하려는 목적으로 또는 시험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하는지는 우리의 관심에 달려있고, 어떤 명제를 주어진 것으로서 혹은 상정(想定)된 것으로서 우리가 수용하느냐에 달려있다.

따라서 소위 이론적이거나 일반화하는 과학들에서 (물리학, 생물학, 사회학, 기타 등등과 같은) 우리는 보편법칙들이나 보편가설들에 특별히 관심을 둔다. 우리는 그 법칙이나 가설들이 참인지를 알고 싶고, 우리가 그 법칙이나 가설들의 진실성을 직접적으로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허위 법칙들이나 허위 가설들을 제거하는 방법을 채택한다. 구체적 사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예를 들어 초기조건들과 예측들에 의하여 기술되는 실험들에 대한 관심은 다소 제한적이다; 주로 특정 목표에 대한 수단으로서 우리가 초기조건들과 예측들에 관심을 가지며 그 수단에 의하여 우리가 보편법칙들을 시험할 수 있는데, 보편법칙들은 본질적으로 관심거리로서 그리고 우리의 지식을 통합하는 것으로서 간주된다.

응용과학에서, 우리의 관심은 다르다. 교량을 건설하기 위하여 물리학을 이용하는 기술자는 예측에 크게 관심을 둔다: 기술된 (초기조건들에 의하여) 특정 종류의 교량이 특정 하중을 견딜 것인지 아닌지에 크게 관심을 둔다. 그에게, 보편법칙들은 목표에 대한 수단이어서 당연하게 여겨진다.

따라서 일반화하는 순수과학과 일반화하는 응용과학은 각각 보편가설들을 시험하는 데에, 그래서 단칭사건들을 예언하는 데 관심을 둔다. 그러나 추가적인 관심이 있는데 단칭사건 즉, 특정 사건을 설명하는 데 대한 관심이다. 우리가 그런 사건, 예를 들어 특정 교통사고를 설명하고 싶으면, 우리는 보통 많은 다소 사소한 보편법칙들을 (뼈는 특정 충격을 받으면 부러진다, 혹은 특정 방향으로 인간의 몸과 충돌하는 자동차는 뼈를 부러뜨리기에 충분한 충격을 가할 것이다. 기타 등등과 같은) 암묵적으로 상정하여, 이 사소한 보편법칙들과 함께, 문제의 사건을 설명할 초기조건들인 원인에 크게 관심을 둔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특정 초기조건들을 가설적(假說的)으로 상정(想定)하여, 이 가설적으로 상정된 초기조건들이 참인지 아닌지를 알아내기 위하여 몇 가지 추가 증거를 발견하려고 시도한다; 다시 말해서 이 단칭 가설들로부터, 관찰될 수 있는 사실과 대조될 수 있는 새로운 예언을 도출함에 의하여 (몇 가지 다르고 보통 동일하게 사소한 보편법칙들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는 이 단칭가설들을 시험한다.

매우 드물게 우리는 그런 설명에 관련된 보편법칙들을 우려해야 하는 입지에 놓인다. 우리가 예기치 않은 화학반응과 같은 새롭고 기이한 종류의 사건을 관찰할 때만 그런 입지가 발생한다. 그런 사건으로 인하여 새로운 가설들의 구조를 만들어 시험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주로 어떤 일반화하는 과학의 관점에서 그것은 관심거리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우리가 단칭사건들과 그 사건들에 대한 설명에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보편법칙들 모두를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제 단칭사건들과 그 사건들에 대한 설명에 이 관심을 지닌 과학들은, 일반화하는 과학들과 대조적으로, 역사과학들(historical sciences)로 지칭될 것이다.

역사에 관한 이 견해로 인하여 왜 그렇게 많은 역사학도들과 역사 방법 학도들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일으키는 것은 소위 보편적 역사 법칙들이 아니라 특정 사건임을 주장하는지가 분명해진다. 이유인즉 우리의 관점으로부터 역사 법칙들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화는 관심의 다른 노선에만 속하여, 역사에 관한 일인 단칭사건들 및 그 사건들에 대한 인과적 설명에 대한 저 관심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법칙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일반화하는 과학들에서 (예를 들어, 사회학에서) 도움을 구해야 한다. 우리의 견해로 인하여 왜 역사가 그렇게 자주 실제로 발생했던 것과 같은 과거의 사건들로서 기술되는지가 또한 분명해진다. 우리가 그 역사학도의 단칭 관심에 반대하는 어떤 반론을 제기해야 할지라도, 이 기술로 인하여 일반화하는 과학의 연구자와 반대로 역사학도의 단칭 관심이 아주 충분히 명백해진다. 그래서 우리의 견해로 인하여 일반화하는 과학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왜 역사에서 역사의 무한한 주제라는 문제와 우리가 직면하는지가 설명된다. 이유인즉 일반화하는 과학의 이론들이나 보편법칙들은 관점뿐 아니라 통합 또한 도입하기 때문이다; 모든 일반화하는 과학에 대하여, 그 이론들이나 보편법칙들로 인하여 그 과학의 연구 중심점들과 논리적 구성의 중심점들 그리고 제시의 중심점들뿐 아니라 그 과학의 문제들 및 관심의 중심점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역사에서 그런 통합하는 이론들이 우리에게 없다; 혹은 더 정확하게, 우리가 이용하는 많은 사소한 보편법칙들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 법칙들에는 실제로 관심거리가 없으며, 그 법칙들로 인하여 주제에 질서가 잡히는 일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폴란드가 러시아와 프러시아 및 오스트리아의 연합세력에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는 것을 지적함에 의하여 1772년의 폴란드의 첫 번째 분할을 우리가 설명한다면, 우리는 함축적으로 다음과 같은 어떤 사소한 보편법칙을 사용하고 있다: ‘거의 똑같이 잘 무장되고 지휘를 받는 두 무리의 군대 중에서 한 무리의 군대가 병력 수에서 엄청난 우위를 지니고 있다면, 다른 편은 결코 이기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가 결코 못한다[never]’ 아니면 거의 못한다[hardly ever]’라고 말하든, 우리의 목적에 대하여, 군함 피나포어[H.M.S. Pinafore]의 함장에 대하여 중요한 것과 비교하여 그렇게 많이 중요하지 않다.) 그런 법칙은 군사력에 관한 사회학의 법칙으로서 아마도 기술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법칙은 사회학도에게 너무 하찮아서 그렇게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사회학도의 주의를 일으키지 못한다. 혹은 가령, 시저 자신의 야망과 에너지에 의하여 루비콘강을 건너려는 시저의 결심을 우리가 설명한다면, 심리학자의 주목을 일깨우지 않을 몇 가지 매우 하찮은 심리학적 일반화를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역사관련 설명은, 하찮은 사회학적이고 심리학적인 법칙을 이용하기보다는 내가 14장에서 상황논리[logic of situation]로 불렀던 것을, 함축적으로 이용한다; 다시 말해서, 관련된 사람이 이용 가능한 정보와 같은 개인적 이해관계 및 목적과 다른 상황적 요인들을 기술하는 초기조건들에 덧붙여,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일반적으로 다소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하찮은 일반적인 법칙을 일종의 최초 근사치로서, 대부분의 역사관련 설명은 함축적으로 상정[想定]한다.)

 

III

그러므로 역사관련 설명이 이용하는 저 보편법칙들로 인하여 역사에 대한 선택적이고 통합하는 원리들인 관점, 제공되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매우 제한된 의미에서 그런 관점은, 역사를 어떤 것에 대한 역사로서 국한함에 의하여 제공될 것이다; 사례들은 권력정치의 역사나 경제 관계의 역사 혹은 기술(technology)의 역사 또는 수학의 역사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심층적인 선택적 원칙들이자 동시에 관심의 중심점들인 관점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것들 몇 가지는 어느 정도 보편법칙들을 닮은 선입견들에 의하여 제공되는데, 역사에 중요한 것은 위대한 사람들의 인격이나 민족적 특성이나 도덕적 관념들 혹은 경제적 조건, 기타 등등이라는 관념과 같은 선입견들이다. 이제 많은 역사이론들(이 이론들은 유사-이론들로서 아마도 더 잘 기술될 것이다) 그 이론들의 특징에서 과학이론들과 크게 다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유인즉 역사에서 (역사지질학과 같은 역사관련 자연과학을 포함하여)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사실들이 흔히 심하게 제한되어 있어서 우리 의지대로 반복되거나 실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들은 선입견에 따라서 수집되었다; 소위 역사의 출처들인 사료(史料)는 기록하기에 아주 흥미롭게 보였던 사실들만을 기록하여, 그 출처들은 흔히 선입견 이론에 들어맞는 그런 사실만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추가 사실이 없으면, 이 이론이나 다른 후속 이론을 시험하는 일이 흔히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시험 불가능한 역사이론은 그리하여, 그 비난이 과학이론에 대하여 올바르지 않게 적용되었다는 의미에서, 순환적이라고 마땅하게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과학이론과 대조적으로 나는 그런 역사이론들을, ‘일반해석들(general interpretations)로 지칭할 것이다.

해석들은 관점을 대표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관점이 항상 불가피하다는 것과, 시험될 수 있어서 과학적 특성을 지닌 이론은 역사에서 드물게 획득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일반해석이 심지어 우리가 지닌 모든 기록과 일치함에 의하여 확인될 수 있다고 우리가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유인즉 동일한 기록과 일치하는 몇 가지 다른 (그리고 아마도 양립될 수 없는) 해석들이 항상 있다는, 그리고 물리학에서 결정적인 실험들이 그러한 것처럼 작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자료를 우리가 얻을 수 없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일반이론의 순환성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자주 자신들의 해석만큼 사실들에 들어맞는 다른 해석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심지어 물리학의 분야에서도 그 분야의 더 크고 더 신뢰할만한 사실의 축적량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결정적인 실험들이 거듭 필요하다면 우리는 확정적인 역사관련 기록의 집합이 한 가지 방식으로만 해석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을 포기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실행된 실험들이 두 가지 모두 상충되어 양립될 수 없는 이론들과 일치하여 새로운 결정적인 실험들이 거듭 필요하기 (중력에 관한 뉴튼과 아인슈타인의 이론 사이에서 결정하는 데 필요한 일월식[日月蝕]-실험을 고려하라)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모든 해석이 동등한 장점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첫째, 수용된 사료(史料)와 실제로 일치하지 않는 해석들이 항상 있다; 둘째, 그 해석들이 사료(史料)에 의하여 오류로 판정되는 것을 피하려면 몇 가지 다소 합당한 보조가설들이 필요한 해석들이 있다; 다음으로, 몇 가지 사실들을 연결할 수 없는 몇 가지 해석들이 있는데 그 사실들을 또 다른 해석이 연결할 수 있고 연결할 수 있는 정도까지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심지어 역사관련 해석의 분야에서도 상당한 진보가 있을 것이다. 나아가, 다소 보편적 관점들과 위에 언급된 저 구체적이거나 단칭 역사관련 가설들 사이에는 모든 종류의 중간단계들이 있을 것이며, 그 구체적이거나 단칭 가설들은 역사적 사건들을 설명하는 데서 보편법칙들의 역할보다는 가설적 초기조건들의 역할을 수행한다. 아주 흔히, 그 중간단계들은 상당히 잘 시험될 수 있고 그리하여 과학이론과 비견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칭 가설들 중 몇 가지는 내가 해석이라고 불렀던 저 보편적 유사-이론들과 밀접하게 닮아서, 따라서 단칭 해석들로서 이것들과 함께 분류될 것이다. 이유인즉 그런 단칭 해석을 선호하는 증거가 매우 흔히 어떤 보편적 관점을 선호하는 증거만큼 특징에서 꼭 순환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일한 권위자는 자신의 단칭 해석에 들어맞는 어떤 사건들에 관한 바로 저 정보를 우리에 제공할 것이다. 우리가 시도할 이 사실들에 대한 대부분의 단칭 해석들은, 사실들의 원래 선택에서 사용되었던 저 해석과 틀림없이 들어맞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면 순환적일 것이다. 그러나 권위자에 의하여 채택된 해석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해석을 우리가 그런 자료에 부여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이것은, 예를 들어 플라톤의 작품을 우리가 해석함에서 틀림없이 그러하다), 우리의 해석이 지니는 특징은 과학적 가설(假說)의 특징과 어떤 유사점을 아마도 띨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의 해석이 지니는 특징이 쉽게 적용될 수 있으며, 그 특징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것도 특정 해석을 선호하는 매우 의심스러운 주장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유인즉 우리가 반대사례를 찾을 때만 이론을 시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요점은 다양한 폭로성[unveiling] 철학들을 찬양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특히 정신분석가, 사회분석가, 그리고 역사분석가들에 의하여 거의 항상 간과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들이 도처에서 적용될 수 있는 용이함에 의하여 흔히 유혹에 넘어간다.)

나는 이전에 해석들이 양립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석들을 관점의 결정화(結晶化)로서만 우리가 간주한다면, 해석들은 양립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꾸준히 진보한다는 (열린사회를 향하여 혹은 어떤 다른 목적을 향하여) 해석은 사람은 꾸준히 뒤로 미끄러진다는 즉, 퇴보한다는 해석과 양립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진보의 역사로서 간주하는 사람의 관점은 인간의 역사를 퇴보의 역사로서 간주하는 사람의 관점과 반드시 양립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자유를 향한 인간 진보의 역사를 (예를 들어 노예제도에 대항하는 싸움에 관한 이야기를 포함하는) 쓸 수 있으며 인간의 퇴보와 압제에 관한 또 다른 역사를 (아마도 백인종이 유색인종에게 미친 충격과 같은 그런 일들을 포함하는) 쓸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역사는 상충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두 가지 역사는, 다른 지점에서 관찰된 동일한 풍경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그럴 것처럼, 서로 상보적일 것이다. 이 고찰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유인즉 각 세대가 자체의 고통과 문제를 겪기 때문에, 그리하여 자체의 이해관계와 자체의 관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역사를 자체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할 권리가 각 세대에게 있다고 귀결되는데, 그 방식이 앞 세대의 방식과 상보적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마도 우리의 문제들에 대하여 중요한 것을 배우고 싶기 때문에, 역사를 배운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객관성이라는 적용 불가능한 관념의 영향을 받아서 우리의 관점으로부터 역사관련 문제제기를 주저한다면, 역사는 이 두 가지 목적 어느 것에도 부합할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은 해석을 하지 않으면서 과거의 사건들이 실제로 발생한 것처럼 그 사건들을제시하도록 자신에게 허용하는 객관성의 수준에 자기가 도달했다고 순진하게 믿는 저술가의 관점이 있는데 우리의 관점이, 의식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문제에 적용된다면, 그 저술가의 관점보다 열등할 것이라고 우리가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심지어 이 저서에서 발견될 수 있는 개인적이라고 인정되는 언급들이, 그 언급들이 역사적 방법과 일치하기 때문에, 정당화된다고 내가 믿는 이유이다.) 요점은 자신의 관점을 의식해서 비판적이 되는 것인데, 다시 말해서 이것이 가능한 한, 사실 제시에서 무의식적이어서 무비판적인 편견을 피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면에서, 해석은 스스로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해석의 장점들은 주제와 관련된 그 해석의 관심인 당시의 문제를 설명하는 해석의 능력뿐 아니라, 해석이 지닌 풍요로움인 역사의 사실들을 설명하는 능력이다.

요컨대, ‘실제로 발생했던 것과 같은 과거의 역사는 있을 수 없다; 역사관련 해석들만 있을 수 있으며, 그 해석들 중 어느 것도 최종적이 아니다; 그래서 모든 세대에게 자체의 해석을 구성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모든 세대에게 자체의 해석을 구성할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할 일종의 의무가 또한 있다; 이유인즉 답변되어야 할 화급한 필요성이 정말로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가 어떻게 과거와 연관되어 있는지 우리는 알고 싶고, 우리의 주요 과제들이라고 느끼고 선택하는 것에 대한 해결책을 향하여 우리가 나아갈 노선을 우리는 알고 싶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수단에 의해서 답변되지 않는다면, 역사주의적 해석을 초래하는 것은 이 요건이다. 그 요건의 압력을 받아서, 역사주의자는 우리의 가장 시급한 문제들로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 문제들은 어떻게 대두했으며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길을 따라서 우리는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합리적 문제를 어느 길로 우리가 가고 있는가? 본질적으로 역사가 우리에게 운명지어준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비합리적이고 겉보기에 사실적인 질문으로 바꾼다.

그러나 역사주의자에게 그 자신의 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할 권리를 거부함에서 나는 정당화될까? 누구에게나 그런 권리가 있다고 나는 조금 전에 공언하지 않았던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역사주의적 해석은 특유한 종류라는 것이다. 필요하고 정당화되고, 어느 것 하나를 우리가 채택해야 하는, 저 해석들은 탐조등에 비교될 수 있다고 나는 말했다. 우리는 탐조등이 우리의 과거를 비추도록 하고, 우리는 그 탐조등의 반사 때문에 현재를 조명하기를 희망한다. 이것과 반대로, 역사주의적 해석은 우리 자신을 우리가 비추는 탐조등에 비교될 것이다. 그 해석으로 인하여 우리의 환경의 어떤 것을 보는 일이 불가능이 아니라도 어렵게 되어, 우리의 행동이 마비된다. 이 은유를 번역하면, 역사의 사실들을 선택하고 조직하는 것은 우리라는 것을 역사주의자는 인정하지 않고, ‘역사 자체인류의 역사가 그 내재적 법칙들에 의하여 우리 자신과 우리의 문제들 및 우리의 미래 그리고 심지어 우리의 관점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우리 앞에 있는 실제적 문제들 및 판단들로부터 출현하는 요건에 역사관련 해석이 답변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역사관련 해석을 우리가 갈망함에서, 역사를 관조하면 인간 운명의 비결인 인간 운명의 본질을 우리가 발견할 것이라는 심오한 직관이 드러난다고 역사주의자는 믿는다. 역사주의는 인류가 운명적으로 걸을 길을 발견하려고 노력 중이다; 역사주의는 역사의 단서를 (J. 맥머레이[Macmurray]가 지칭하는 바와 같이) , 역사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 중이다.

 

IV

그러나 그런 단서가 있는가? 역사에 의미가 있는가?

나는 여기서 의미의 뜻에 관한 문제를 시작하고 싶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사의 의미에 대하여 혹은 삶의 의미나 목적에 대하여 말할 때 자신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명백하게 알고 있음을 나는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역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던져지는 의미인 이런 의미에서, 나는 답변한다: 역사에 의미가 없다.

이 견해에 이유를 대기 위하여, 먼저 사람들이 역사에 의미가 있는지를 물을 때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저 역사에 관한 것을 나는 말해야 한다. 지금까지 마치 역사에 설명이 필요 없는 양 역사에 관하여 나 자신이 말했다. 저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이유인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사에 대하여 말하는 의미로서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을 따름임을 내가 분명히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적어도 역사에 의미가 없다고 내가 말하는 한 가지 이유이다.

어떻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될까? (우리가 어떤 저서에 대하여 그 저서가 유럽의 역사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 의미에서의 역사를 나는 의미한다 ㅡ 그 저서가 유럽의 역사이다라고 우리가 말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역사에 관하여 학교와 대학에서 배운다. 그들은 그 역사에 관한 책들을 읽는다. 그들은 세계역사인류역사라는 명칭의 책들 속에서 취급된 것을 보며, 그것을 사실들에 관한 다소 확정적인 연속물로서 간주하는 데 익숙해진다. 그리고 이 사실들이 인류의 역사라고 그들은 믿는다.

그러나 사실들의 영역은 무한히 풍요롭다는 것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았다. 우리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우리는 예를 들어 예술의 역사에 관하여 글을 쓸 수 있을 터이다; 혹은 언어의 역사에 관하여; 혹은 식생활 습관의 역사에 관하여; 혹은 발진티푸스에 관하여 (진서[Zinsser], , 그리고 역사[Rats, Lice, and History] 참조). 틀림없이 이것들 어느 것도 인류의 역사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를 함께 생각해도 인류의 역사는 아니다).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에 관하여 말할 때 염두에 두는 것은, 더 정확하게,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그리고 마케도니아와 로마 제국 등등 우리 시대까지의 역사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인류 역사에 관하여 말하지만, 그들이 의미하는 것과 그들이 학교에서 안 것은 정치권력의 역사이다.

인류역사란 없다, 인간 삶의 모든 종류의 국면들에 관한 무한한 숫자의 역사들이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 역사들 중의 하나가 정치권력의 역사다. 이것이 세계역사로 승격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에 대한 모든 온당한 개념에 반하는 범죄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횡령이나 강도질 혹은 독살(毒殺)의 역사를 인류 역사로서 취급하는 것보다 나을 게 없다. 이유인즉 정치권력의 역사는 국제범죄와 집단학살의 역사에 (사실상 그 범죄들을 억제하려는 노력 몇 가지를 포함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역사가 학교에서 교육되고, 가장 흉악한 범죄자 몇 명은 그 역사의 영웅으로서 칭송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인류 역사라는 의미에서의 보편적 역사와 같은 것이 실제로 없을까? 하나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모든 인도주의자의 답변과 특히 모든 기독교도의 답변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구체적인 인류 역사는, 있다면, 모든 사람에 대한 역사여야 할 터이다. 그 역사는 모든 인간의 희망과 투쟁과 고통의 역사이어야 할 터이다. 이유인즉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 구체적인 역사는 기술(記述)될 수 없다. 우리는 추상을 실행해야 하고, 우리는 무시를 해야 하고,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우리는 많은 역사들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역사들 가운데, 인류역사로서 선전된 국제범죄와 집단학살의 역사에 우리는 도달한다.

그러나 왜 권력의 역사만 선택되었고, 예를 들어 종교나 시()의 역사는 아닐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한 가지 이유는 권력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시()는 극소수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람에게 권력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숭배는 인간의 우상 숭배 중 최악의 종류 하나로 감옥인 인간 노예 시대의 유물이다. 권력숭배는 두려움에서 태어나는, 당연히 경멸 되어야 하는 감정이다. 권력정치가 역사의 핵심이 된 세 번째 이유는 권력을 쥔 사람들이 숭배받기를 원해서 자기들의 바람을 강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많은 역사가들은 황제들과 장군(將軍), 그리고 독재자들의 감독을 받으며 역사를 썼다.

이 견해들이, 몇몇 기독교 옹호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방면들로부터 가장 강력한 반론을 받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이유인즉 신약성경에 이 교설을 뒷받침하는 것이 없을지라도, 하느님이 역사 속에서 자신을 현시한다는 것은 기독교 독단의 일부로 흔히 간주되기 때문이다; 역사에 의미가 있다는 것; 그리고 역사의 의미는 하느님의 목적이라는 것. 그리하여 역사주의는 종교의 필수적 요소라고 믿어진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수용하지 않는다. 합리주의적이거나 인본주의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기독교적 관점 자체로부터도 또한, 이 견해가 순전히 우상 숭배며 미신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이 유신론적 역사주의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가? 헤겔과 함께, 그 역사주의는 역사를 ㅡ 정치역사 ㅡ 무대로서, 혹은 더 정확하게 일종의 긴 셰익스피어의 연극으로서 간주한다; 그리고 관중은 위대한 역사적 인물들이나 추상적인 인류를 그 연극의 영웅으로서 상상한다. 그다음에 관중은, ‘누가 이 연극을 썼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들이 하느님이라고 대답할 때 성스러운 답변을 내놓는다고 관중은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그들의 답변은 순전히 신성모독인데, 이유인즉 그 연극이 하느님에 의하여 쓰인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장군(將軍)들과 독재자들의 감독을 받으며, 역사 교수들에 의하여 기술(記述)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처럼 역사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음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를 들어 우리 서구적 목표들인 인도주의, 자유, 평등이 기독교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는 틀림없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심지어 자유의 역사를 향하여 유일하게 기독교적일 뿐 아니라 유일하게 합리적인 태도는, 우리의 삶으로부터 만들어내는 것에 우리가 책임을 진다는 동일한 의미에서 우리 자신이 그 역사에 책임을 진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세속적 성공이 아니라 우리의 양심만이 우리를 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하느님이 스스로 현시하여 자신의 판결을 드러낸다는 이론은 세속적 성공이 최종심의 판사이며 우리 행동의 정당화라는 이론과 구별될 수 없다; 그 이론은 역사가 판결할 것이라는, 다시 말해서, 미래의 힘이 정의일 것이라는 교설과 동일하다; 그 이론은 내가 도덕미래주의라고 지칭한 것과 동일하다. 하느님이 보통 역사로 지칭되는 것에서, 국제범죄와 집단학살의 역사에서, 스스로 현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진정으로 신성모독이다; 이유인즉 인간 삶의 영역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것은 이 잔인하고 동시에 유치한 사건에 의하여 간단하게 취급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망각된 개별 인간의 삶, 알려지지 않은 개별 인간의 삶의 영역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것, 그 인간의 슬픔과 그 인간의 기쁨, 그 인간의 고통과 죽음, 이것이 여러 세기를 내려오는 인간 경험의 실제 내용이다. 저것이 역사에 의하여 언급될 수 있다면, 하느님의 손가락을 그 역사에서 보는 것이 신성모독이라고 내가 말해서는 틀림없이 안 된다. 그러나 그런 역사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역사인 위대한 자들과 강력한 자들에 대한 우리의 역사는 기껏해야 천박한 희극이다; 그 역사는 현실 배후에 있는 권력들에 의하여 연출되는 소극(笑劇)오페라이다 (인간의 투쟁 장면 배후에 있는 올림포스 신들에 관한 호메로스의 소극[笑劇]오페라에 비견될 수 있는). 그 역사로 인하여, 우리들이 지닌 최악의 본능 중 하나인 권력에 대한, 성공에 대한 우상적 숭배가 실재적이라고 우리가 믿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인간이 만든 것도 아니고 인간이 날조한 역사에서, 몇몇 기독교도들은 하느님의 손을 감히 본다니! 그 기독교도들은 자신들의 하찮은 역사해석이 하느님에게서 나온다고 할 때 하느님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자신들이 감히 이해하고 안다니! ‘반대로,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 도달하지도 않고 하느님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며.., 그것이 정신이든 자연이든 운명이든 이데아이든.. 항상 스스로-구상되고 스스로-제작된 우리 자신이 지닌 우상들 중 하나임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라고 신학자인 K. 바르트(Barth)는 자신의 저서 사도신경(Credo)에서 말한다. (바르트[Barth]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현시[顯示]에 관한 신[]-프로테스탄트적 교리인정될 수 없는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왕좌에 대한 침범으로서 특징짓는 것은 이 태도와 일치한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그런 시도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은 오만뿐이 아니다; 그것은, 더 구체적으로, ()-기독교적 태도이다. 이유인즉 기독교가 세속적 성공은 결정적이 아니라고 가르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본디오 빌라도 밑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나는 다시 바르트(Barth)의 말을 인용한다: ‘어떻게 본디오 빌라도는 사도신경에 들어가는가? 간단한 답변이 즉각 주어질 수 있다: 그것은 날짜 문제이다’. 그리하여 출세했던, 당시의 역사적 권력을 대표하는, 사람은 언제 이 사건들이 발생했는지를 가리키는 순전히 기술적(技術的: technical) 역할을 여기서 수행한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무엇이었던가? 그 사건들은 권력-정치적 성공인 역사와 관련이 없었다. 그 사건들은 로마 정복자들에 대항하는 유대민족의 실패한 비폭력적 민족주의의 혁명에 (간디풍의) 관한 이야기조차 아니었다. 그 사건들은 한 인간의 수난에 지나지 않았다. 바르트(Barth)수난을 당하다(suffers)’라는 단어가 그리스도의 죽음만을 언급하지 않으며 그리스도 삶 전체를 언급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는 수난을 당한다. 그러므로 그는 정복하지 않는다. 그는 승리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성공이 없다.. 그는 자신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것을.. 제외하고 아무 것도 이룩하지 않았다. 그의 민족에 대한 그리고 그의 사도에 대한 그의 관계에도 똑같은 것이 언급될 수 있으리라.’ 바르트(Barth)의 말을 인용하는 나의 의도는, 역사적 성공에 대한 숭배가 기독교 정신과 양립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나의 합리주의적혹은 인본주의적관점이 유일하지 않다는 것을 밝히려는 것이다. 기독교에 중요한 것은 강력한 로마 정복자들의 역사적 행위가 아니라 몇 명의 어부가 세상에 준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표현을 사용해서). 그러나 역사에 대한 모든 유일신적 해석은 기록된 바로서의 역사 속에서, 다시 말해서 권력의 역사에서 그리고 역사적 성공에서, 하느님 의지의 현시(顯示)를 보려고 시도한다.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현시(顯示)라는 교설에 대한 이 공격에, 지상에서의 성공하지 못한 그리스도의 삶이 마침내 가장 위대한 정신적 승리로서 인류에게 계시된 것은 성공으로 그의 죽음 후의 그의 성공이다라고 아마도 답변될 것이다;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현시(顯示)를 증명하고 그 현시(顯示)를 정당화했으며 따라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라는 예언이 검증된 것은 성공인 예수 가르침의 열매였다고 아마도 답변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의지가 드러난 것은 기독교 교회의 역사적 성공을 통해서이었다는 것.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방어 노선이다. 교회의 세속적 성공이 기독교를 선호하는 주장이라는 암시로 인하여 신앙 결핍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초기 기독교도에게는 이런 종류의 세속적 격려가 없었다. (그들은 양심이 권력을 판결해야지, 그 반대는 아니라고 믿었다.) 기독교적 가르침의 성공 역사가 하느님의 의지를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성공이 실제로 기독교 정신의 성공인지를 자문해야 한다; 그리고 이 정신이 교회가 승리했을 때보다는 교회가 박해를 받았을 때 승리하지 않았던지 자문해야 한다. 어느 교회가 이 정신을 더 순수하게 구현했는가, 순교자의 교회였던가 아니면 종교재판을 실행하는 승승장구하던 교회인가?

기독교의 전도가 온유한 사람들에게 관련된다고 주장할지라도, 이것을 많이 인정할 터이지만 여전히 이 전도가 역사주의의 하나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이 견해의 두드러진 대표자는 J. 맥머레이(Macmurray)인데, 그는 역사의 단서(The Clue to History)에서 역사관련 예언에서 기독교 가르침의 본질을 발견하며, ‘인간본성에 관한 변증법적 법칙의 발견자는 그 예언의 창립자라고 본다. 맥머레이는, 이 법칙에 따라서, 정치역사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세계의 사회주의적 연방(commonwealth)’이 틀림없이 출현한다고 믿는다. ‘인간본성에 관한 근본적 법칙은 무너질 수 없다.. 세상을 물려받을 사람은 온유한 자들이다.’ 그러나 이 역사주의는, 희망을 확신으로 대체함으로써, 틀림없이 도덕미래주의를 초래한다. ‘법칙은 무너질 수 없다.’ 그래서 심리학적 근거를 토대로, 우리가 실행하는 모든 것은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우리가 확신할 수 있다; 심지어 파시즘도 결국 저 연방(commonwealth)을 틀림없이 초래할 것임을 우리가 확신할 수 있다; 그리하여 최종 결과는 우리의 도덕적 결심에 달려있지 않아서, 우리의 책임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확신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우리가 들으면, 이것은 양심을 역사적 예언으로 대체하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인가? 이 이론은 다음 훈계에 위험스럽게 가까이 (틀림없이 그 주장자의 의도에 반하여) 다가가지 않는가: ‘현명하게 처신하여 기독교의 창시자가 당신에게 말하는 것을 명심하라, 이유인즉 그가 인간 본성에 관한 위대한 심리학자였고 역사에 관한 위대한 예언가였기 때문이다. 때에 맞추어 온유한 자들이 타고 가는 마차에 동승하라; 그 까닭은 인간 본성에 관한 냉엄한 과학적 법칙에 따라서, 이것이 정상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 역사에 대한 단서는 성공숭배를 암시한다; 그 단서는 온유한 자들이 승자의 편에 있기 때문에 온유한 자들이 정당화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 단서는 마르크스주의를, 그리고 특히 내가 마르크스의 역사주의적 도덕론으로 기술한 것을 인간 본성에 관한 심리학의 언어로 그리고 종교적 예언에 관한 언어로 변환한다. 그것은 암시에 의해서 기독교의 창립자가 헤겔의 선두주자였다는 ㅡ 더 우월한 선두주자로 인정되는 바와 같이 ㅡ 사실에서 기독교의 가장 큰 업적을 보는 해석이다.

성공이 숭배되어서는 안 된다는, 성공이 우리의 심판관이 될 수 없다는 그리고 우리는 성공에 의하여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나의 주장과, 특히 이 태도에서 내가 기독교의 진정한 가르침이라고 믿는 것에 내가 동의한다는 것을 밝히려는 나의 노력이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나의 주장과 나의 노력에는 내가 앞 장에서 비판한 내세적(來世的)태도를 지지하려는 의도가 없다. 기독교가 내세적(來世的)인지 나는 모르지만,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그리고 세속적인) 도움을 제공함에 의해서라고 기독교는 확실하게 가르친다. 그리고 부귀영화의 의미에서 세속적 성공을 향한 최고의 유보적 태도와 심지어 경멸의 태도를 지니고,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 및 그 목적들이 성취되도록 만들려는 분명한 목표와 함께 자신이 채택하기로 결정한 그 목적들을 추진하는 노력하는 것은, 틀림없이 가능하다; 성공의 정당화나 역사에 의한 자신의 정당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목적들을 위하여.

이 견해들 몇 가지에 대한 그리고 특히 역사주의와 기독교의 양립불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뒷받침이 헤겔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비판에서 발견될 수 있다. 키르케고르는 자신이 교육받은 헤겔적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을지라도, 헤겔적 역사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보다 더 명백하게 인식했던 사람은 없었다. ‘헤겔 이전에 역사를.. 설명하려고 시도했던 철학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신()은 이 시도들을 보았을 때 미소만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신()은 노골적으로 웃지는 않았는데, 이유인즉 그 시도들에는 인도적이고 정직한 성실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헤겔을 제외하고 ㅡ ! 여기서 나에게 호메로스(Homer)의 언어가 필요하다. ()들은 어떻게 폭소를 터트렸던가! 존재하는 어떤 것의 그리고 모든 것의 필요성을 통찰하기만 한, 그리고 이제 자신의 손풍금으로 만사를 주물럭거리는, 그렇게 지겨운 작은 교수: 올림포스의 신()들이여, 들으시라!’고 키르케고르는 서술했다. 그리고 기독교의 옹호자 헤겔에 대한 무신론적 쇼펜하우어의 공격을 언급하면서, 키르케고르는 계속한다: ‘쇼펜하우어를 읽고 나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기쁨을 받았다. 그가 말하는 것은 완벽하게 옳다; 그래서 ㅡ 독일인들에게 딱 어울린다 ㅡ 그는 오직 독일인만 무례할 수 있는 만큼 무례하다.’ 그러나 키르케고르 자신의 표현은 거의 쇼펜하우어의 표현만큼 직설적이다; 이유인즉 키르케고르가 계속해서 말하기를 자신이 이 찬란한 부패 정신이라고 부르는 헤겔 철학은 태만의 모든 형태 중에서 가장 역겨운 형태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헤겔 철학이 지닌 허장성세의 곰팡이’, 그 철학의 지적(知的) 방탕’, 그리고 타락의 사악한 광채에 관하여 말한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의 윤리 교육뿐 아니라 지식 교육도 부패했다. 그 교육은 광휘인 사물들이 언급되는 방식에 대한 찬사에 의하여 왜곡되는데 그 찬사는 언급되는 것들에 (그리고 실행되는 것들) 대한 비판적 평가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 교육은 우리가 배우인 역사의 무대가 지닌 광휘라는 낭만적 관념에 의하여 왜곡된다. 우리는 그 무대의 관람석에 목적을 두고 행동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다른 개인들의 중요성과 연계하여 자신의 중요성을 온전하게 평가하도록 사람을 교육하는 문제가 고스란히, 명성과 운명에 관한 이 윤리에 의하여 철저히 뒤죽박죽되었다. 그리고 권력의 역사에 대한 이 윤리의 낭만적 견해를 지닌 그리고 이 윤리의 낭만적인 종족적 도덕성을 지닌 고전문학에 아직도 근거한 교육체계를 ㅡ 궁극적 토대가 권력숭배인 교육체계 ㅡ 영속화하는 도덕성에 의하여 완전히 뒤죽박죽되었는데 그 낭만적인 종족적 도덕성은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인주의와 이타주의(利他主義)(이 표찰을 다시 사용하여) 냉정하게 결합하는 대신 ㅡ 다시 말해서, ‘실제로 중요한 것은 인간 개인들이지만, 매우 많이 중요한 것은 나다를 이것이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와 같은 입장 대신 ㅡ 이기주의와 집단주의의 낭만적인 결합이 당연시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중요성, 자신이 지닌 감정적 삶과 자신이 내놓는 자기표현에 대한 중요성이 낭만적으로 과장된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개성과 무리인 집단 사이의 긴장이 과장된다. 집단이 다른 개인인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합당한 개인 관계를 허용하지 않는다. ‘지배하라, 아니면 복종하라가 암시에 의하여, 이 태도의 계략이다; 위대한 사람, 운명과 씨름하여 명성을 얻는 영웅이 되든지 (‘크게 쓰러질수록 명성도 크다라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한다), 아니면 대중에게 속하여 당신 자신을 지도력에 복속시키어 당신이 속한 집단의 더 높은 대의명분에 맞추어 당신 자신을 희생하든지. 자신과 집단 사이의 긴장 중요성에 대한 이 과장된 강조에는 신경증적인, 발작증세적인 요소가 있어서, 문명의 압박감에 대한 이 반응인 이 발작증세가 영웅-숭배 윤리인 지배와 복종 윤리가 지니는 강력한 감정적 마력의 비결임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이 모든 것의 근저에 실재적인 난관이 놓여있다. 행복, 기타 등등과 같은 긍정적이거나 더 높은가치를 위하여 정치가가 싸우는 대신, 사악한 일에 대항하여 싸우는 데 자신을 제한해야 함이 분명한 (우리가 9장과 24장에서 안 바와 같이) 반면, 교사(敎師)는 원칙적으로 다른 입장에 놓여있다. 교사가 자신의 더 높은가치 기준을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할지라도, 그는 이 가치들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하려고 틀림없이 노력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의 영혼을 돌보아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자신들의 영혼을 돌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친구들의 영혼을 걱정했다.) 그리하여 정치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낭만적이거나 심미적(審美的) 요소 같은 것이 교육에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원칙적으로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우리의 교육체계에 적용이 불가능하다. 이유인즉 그 요소가 교사와 학생 사이의 우정관계를 상정(想定)하는데 24장에서 강조된 바와 같이 어느 상대방이 자유롭게 끝낼 수 있어야 하는 관계를 상정(想定)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동료들을 선택했고, 그 동료들은 소크라테스를 선택했다.) 바로 학생들의 숫자로 인하여 우리 학교에서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더 높은 가치를 부과하려는 노력이 성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시도들이 ()를 ㅡ 목표로 정한 이상(理想)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공적(公的)인 해() ㅡ 끼친다고 주장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이 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의술에서와 마찬가지고 교육에 대해서도 바로 근본적인 것으로 우선 인정되어야 한다. ‘해치지 말라(그리하여 우리들로부터 독립하기 위하여, 그리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기 위하여,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을 주어라’) 우리 교육체제에 관한 매우 가치 있는 목표일 터이며, 그 목표가 소박하게 들릴지라도 그 실현은 다소 요원하다. 대신, ‘더 높은목표는 개성의 완전 계발과 같은 전형적으로 낭만적이고 정말로 터무니없는 목표인데 유행이 되었다.

플라톤에 의하여 그랬던 것처럼 개인주의가 아직도 이기주의와 동일시되고, 이타주의는 집단주의와 (다시 말해서 개인주의적 이기주의를 집단 이기주의로 대체함과) 동일시되는 것은 그런 낭만적 관념들의 영향을 받아서이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주요 문제인 다른 개인과 관련하여 자기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온전한 평가를 어떻게 얻어내는지의 문제를 심지어 분명하게 언명하는 길이 차단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초월하는 중요한 것이고 우리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위해 희생할 중요한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고 느껴지고 그것이 옳기 때문에, 이것은 자체의 역사적 사명과 함께 집단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희생하라는 말을 들으며, 동시에, 그렇게 함에 의하여 우리는 탁월한 흥정을 실행할 것이라는 확신을 받는다. 우리는 희생을 치를 것이지만 우리는 그리하여 영예와 명성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역사의 무대에서 주역 배우들인 영웅들이 될 것이다; 작은 위험을 감수하고 우리는 큰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겨우 작은 소수가 중요했던, 그리고 아무도 백성을 돌보지 않았던, 시기의 의심스러운 도덕성이다. 그것은, 정치적이거나 지적(知的) 귀족으로, 역사 교과서에 실리는 기회를 가진 사람들의 도덕성이다. 그것은 정의(正義)와 평등주의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도덕성이 도저히 될 수 없다; 이유인즉 역사적 명성이란 정의로울 리가 없고 겨우 극소수에 의해서만 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꼭 동일하게 가치가 있거나 더 가치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사람들은 항상 망각될 것이다.

더 높은 보상은 오직 자손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교설인 헤라클레이토스의 윤리는, 지금 보상을 찾아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는 윤리 교설보다 어떤 면에서 아마도 다소 우월하다고 아마도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성공과 보상을 거부하는 윤리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윤리는 창안될 필요가 없다. 그런 윤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 윤리는 기독교에 의하여, 적어도 기독교 초기에 설교되었다. 그 윤리는 다시, 우리 시대의 과학적 협력뿐 아니라 산업적 협력에 의해서 교육된다. 명성에 관한 낭만적인 역사주의적 도덕성은 다행히도 쇠퇴하고 있는 듯하다. 무명용사(無名勇士)로 인하여 그것이 밝혀진다. 희생이 익명으로 이루어질 때, 바로 그만큼 혹은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할 것임을 우리가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의 윤리교육도 그것을 뒤좇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칭찬을 받기 위해서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업무를 위하여 우리가 희생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어떤 격려, 희망, 칭찬, 그리고 심지어 비난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허구적인 역사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업무인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것에서 정당성을 우리가 발견해야 한다.

역사에 의미가 없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정치권력의 역사에 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그 역사를 충격 속에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지도, 우리가 그 역사를 잔인한 농담으로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이유인즉 우리 시대에 우리가 그 해결을 시도하려고 결심하는 권력정치의 저 문제들에 눈을 두고, 우리가 그 역사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린사회를 위한, 이성의 지배를 위한, 정의(正義)와 자유 및 평등을 위한, 그리고 국제범죄를 억제하기 위한 투쟁의 관점으로부터 우리는 권력정치의 역사를 해석할 수 있다. 비록 역사에는 목적이 없을지라도, 우리의 이 목적을 우리가 역사에 부과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에 의미가 없을지라도, 우리가 역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마주치는 것은 자연과 규약의 문제이다. 자연도 역사도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할 수 없다. 사실들은, 자연의 사실이든지 역사의 사실이든지, 우리를 대신해서 결정할 수 없다, 사실들은 우리가 선택할 예정인 목표를 결정할 수 없다. 자연에 그리고 역사에 목적과 의미를 도입하는 것은 우리다. 사람은 평등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평등한 권리를 위하여 싸우기로 결심할 수 있다. 국가와 같은 인간의 제도는 합리적이지 않지만, 우리는 그 제도를 더 합리적으로 만들기 위하여 싸우기로 결심할 수 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평범한 언어는, 대체로, 합리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합리적이 되려고 노력할 수 있고, 우리는 우리의 언어를 자기표현의 도구가 (우리들의 낭만적 교육자들이 말할 터와 마찬가지로) 아니라 합리적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사용하도록 우리 자신을 훈련시킬 수 있다. 역사 자체에는 ㅡ 나는 물론 존재하지 않는 인류의 발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권력정치의 역사를 의미한다 ㅡ 목적도 의미도 없지만, 우리는 그 역사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를 열린사회를 위한 투쟁 그리고 그 사회의 적들에게 (그 적들은 궁지에 몰린 때, 항상 파레토[Pareto]의 충고에 따라서 자신들의 인도주의적인 감정을 불평하면서 공언한다) 대항하는 투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그에 따라서 해석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삶의 의미에 관해서도 똑같이 말할 것이다. 삶에서 무엇이 우리의 목적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인 우리의 목표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사실과 결정이라는 이 이원론은, 근본적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실들과 같은 것들에는 의미가 없다; 그런 사실들은 우리의 결정을 통해서만 의미를 띨 수 있다. 역사주의는 이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많은 시도의 하나일 따름이다; 역사주의는 두려움으로부터 탄생하는데, 이유인즉 심지어 우리가 선택하는 표준들에 대한 궁극적 책임을 우리가 진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역사주의가 뒷걸음질 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런 행동은 보통 미신으로 기술되는 것을 정확하게 대표한다. 왜냐하면 역사주의는 우리가 씨를 뿌리지 않은 곳에서 우리가 수확할 수 있다고 상정(想定)하기 때문이다; 역사주의는 우리가 오직 역사와 보조를 맞추면 만사가 제대로 될 것이고 분명히 제대로 된다고, 그래서 우리 편에서 어떤 근본적인 결심도 요구되지 않는다고 우리를 설득하려고 시도한다; 역사주의는 우리의 책임을 역사에게, 그리하여 우리 자신의 뒤에 있는 악마적 힘의 역할에 전가하려고 시도한다; 역사주의는 우리의 행동을 이 악마적 힘의 숨은 의도에 근거하려고 시도하는데, 그 의도는 오직 신비적인 영감과 직관에서만 우리에게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역사주의로 인하여, 점괘와 꿈에 의하여 영감을 받아 복권에서 자신의 행운의 숫자를 고르는 사람의 도덕적 수준에 우리의 행동과 우리 자신이 올려진다. 도박처럼, 역사주의는 우리 행동의 합리성과 책임에 우리가 절망하여 탄생한다. 역사주의는 타락한 희망이며 타락한 신념으로, 우리의 도덕적 열정에서 나오고 성공에 대한 경멸로부터 나오는 희망과 신념을 사이비-과학에서 유래하는 확신으로 바꾸려는 시도이다; 별들(stars)이나 인간 본성이나 역사적 운명이라는 사이비-과학으로부터 유래하는 확신으로 바꾸려는 시도.

역사주의는 합리적으로 옹호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양심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어떤 종교와도 상충된다고 나는 주장한다. 이유인즉 우리의 행동에 대하여, 그리고 그 행동이 역사 과정에 미치는 반향에 대하여 우리가 지닌 최고의 책임을 강조하는 데에서 그런 종교가 역사를 향한 합리주의적 태도와 틀림없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희망 없이 행동하는 것, 사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 벗어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고,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이 주어져서도 안 된다. 우리에게 확실성이 필요하지 않다. 종교는 특히, 꿈과 소원성취의 대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종교는 복권을 쥐고 있거나 보험회사의 약관을 쥐고 있는 것을 닮아서는 안 된다. 종교에서 역사주의적 요소는 우상의, 미신의 요소이다.

사실과 결정이라는 이원론에 대한 이 강조로 인하여 또한 진보와 같은 그런 관념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결정된다. 역사가 진보한다고 혹은 우리는 진보하기 마련이라고 우리가 생각한다면, 역사에서 발견될 수 있어서 역사에 부여될 필요가 없는 의미가 역사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같은 실수를 우리는 저지른다. 이유인즉 진보한다는 것은 어떤 종류의 목적을 향하여, 인간으로서의 우리를 위하여 존재하는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저것을 할 수 없다; 개별 인간들인 우리들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자유와 그리고 그 자유와 함께 진보가 달린 저 민주주의적 제도들을 방어하고 강화함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진보가 우리에게, 우리의 경계심에, 우리의 노력에, 우리의 목적들에 대한 구상의 명료성에 그리고 그것들을 선택하는 실재론에 달렸다는 사실을 우리가 더 완벽하게 인식함에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훨씬 더 잘 할 것이다.

예언자의 자세를 취하는 대신 우리는 우리 운명의 창조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능한 한 사물을 잘 처리하는 것과 우리의 실수를 경계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권력의 역사가 우리의 심판관이 될 것이라는 관념을 우리가 버릴 때, 역사가 우리를 정당화할 것인지 아닌지를 걱정하는 일을 포기할 때, 어느 날 아마도 우리는 권력을 통제하는 데 성공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서 역사를 심지어 정당화할 것이다. 역사에는 정당화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2권 헤겔과 마르크스”, 칼 포퍼 ㅡ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