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ant

철학 텍스트들의 내용 분석에 의거한 디지털 지식자원 구축을 위한 기초적 연구- 칸트『순수이성비판』

이윤진이카루스 2012. 4. 25. 16:05

『철학사상』별책 제3권 제16호
철학 텍스트들의 내용 분석에 의거한
디지털 지식자원 구축을 위한 기초적 연구
칸트『순수이성비판』
김 재 호
서 울 대 학 교 철 학 사 상 연 구 소
2004
발 간 사
편집위원 : 백종현(위원장)
이태수
심재룡
김남두
김영정
허남진
윤선구(주간)
발 간 사
2002년 8월부터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육성지원 아래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철학문헌정보센터 전임연구팀이 수
행하고 있는 <철학 텍스트들의 내용 분석에 의거한 디지털 지식
자원 구축을 위한 기초적 연구>의 1차 년도 연구 결실을 지난해
에 『철학사상』별책 제2권 전14호로 묶어낸 데 이어, 이제 제2
차 년도 연구결과 총서를 별책 제3권으로 엮어 내며, 아울러 제2
권 몇몇 호의 보정판을 함께 펴낸다.
박사 전임연구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서울대학교 철학사상
연구소 철학문헌정보센터의 연구팀은 우리 사회 문화 형성에 크
게 영향을 미친 동서양 주요 철학 문헌들의 내용을, 근간 개념들
과 그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살펴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해설해
나가는 한편, 철학 지식 지도를 작성하고 있다. 우리 연구팀은 이
작업의 일차적 성과물로서 이 연구 총서를 펴냄과 아울러, 이것
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는 여러 서양어 또는 한문으로 쓰여진 철
학 고전의 텍스트들을 한국어 표준 판본이 확보되는 대로 이를
디지털화하여 상식인에서부터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각자
의 수준과 필요에 따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연구 작업은 오늘날의 지식 정보 사회에 있어 철학이 지식
산업과 지식 경제의 토대가 되는 디지털 지식 자원을 생산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초 연구라 할
것이다.
우리 연구팀은 장시간의 논의 과정을 거쳐 중요한 동서양의 철
학 고전들을 선정하고 이를 전문 연구가가 나누어 맡아, 우선 각
자가 분담한 저작의 개요를 작성하고 이어서 저작의 골격을 이루
는 중심 개념들과 연관 개념들의 관계를 밝혀 개념위계도를 만든
후, 그 틀에 맞춰 주요 개념들의 의미를 상술했다. 이 같은 문헌
분석 작업만으로써도 대표적인 철학 저술의 독해 작업은 완료되
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기획 사업은 이에서 더 나아가 이
작업의 성과물을 디지털화된 철학 텍스트들에 접목시켜 누구나
각자의 수준에서 철학 고전의 텍스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대표적인 것으로 꼽는 철학 고전들은 모두 외국어나 한
문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이를 지식 자원으로서 누구나 활용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디지털화에 앞서 현대 한국어로의
번역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나 적절한 한국어 번역이 아직 없
는 경우에도 원전의 사상을 이루는 개념 체계를 소상히 안다면
원전에 대한 접근과 이용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우리 연구 작
업의 성과는 우선은 이를 위해 활용될 수 있을 것이고, 더욱이는
장차 한국어 철학 텍스트들이 확보되면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
기 위한 기초가 될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 공동 연구 사업의 성과물이 인류 사회 문화의
교류를 증진시켜 사람들 사이의 이해를 높이고, 한국 사회 철학
문화 향상에도 이바지하는 바 있기를 바란다.
2004년 5월 25일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철학문헌정보센터 센터장 ․「철학 텍스트들의
내용 분석에 의거한 디지털 지식 자원 구축을 위한 기초적 연구」 연구책임자
백 종 현
『철학사상』별책 제3권 제16호
칸트『순수이성비판』
김 재 호
서 울 대 학 교 철 학 사 상 연 구 소
2004
i
머 리 말
칸트가 서양 철학사에 미친 영향력과 그의 주저『순수이성비
판』이 갖는 중요성에 관해서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 저서의 내용과 거기에 담긴 저자의 사상을 가장 잘 이
해하는 방법은 그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라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순수이성비판』의 직접적인 독해를 시도
해 본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 이해가 결코 쉽지 않음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이해의 어려움은 일차적으로『순수이성비판』
이라는 책 자체에 그 원인이 있다. 그 내용의 난해함은 둘째로 치
더라도 우선 원전이 독일어로 쓰여져 있고 그간 좋은 우리말 번
역서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 역시 우리말 번역상 어쩔 수 없는
낯선 용어와 번역 투의 문장을 포함하고 있기에 텍스트를 통한
『순수이성비판』의 직접적인 이해는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 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육성지원 아래 수
행되는 <철학 텍스트들의 내용 분석에 의거한 디지털 지식 자원
구축을 위한 기초적 연구>는 철학적 고전의 디지털 정보화라는
그 원래의 목적에서 뿐 아니라 철학의 고전들을 직접 텍스트를
통해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이 연구의 본래의 목적은『순수이성비판』 이해에 핵심적인 중
요 개념들을 찾아내고, 그 근간 개념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텍
스트의 내용들을 논리적인 연관 하에서 분석하여 체계적인 개념
도를 만들고, 이에 대해 충실한 해설을 덧붙이는 데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계획했던 일부 핵심적인 주제어가 이번 연구에서 다
다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연구의 특성상 웹
ii
상에서 새로운 연구 성과가 언제든지 업그레이드될 수 있기에 기
회가 주어지는 대로 이에 대해서는 충실히 보충해 갈 계획이다.
이 연구서가『순수이성비판』을 이해하려는 독자에게 아무쪼록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길 바랄 뿐이다.
짧지 않았던 독일 유학길에서 막 돌아와 여러 가지로 서투른
필자에게 이 큰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필자의 은사
이시자 본 연구 책임자이신 백종현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십 수년 전 교수님과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그간에 보여
주신 관심과 격려가 없었다면 오늘 이 연구의 결과는 결코 완성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함께 연구에 참여하며 여러 가지로 힘과
의지가 되었던 동료 연구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04년 5월 31일
마북리에서 김 재 호
iii
목 차
제1부『순수이성비판』의 저자 및 작품 해제 ······················· 1
Ⅰ. 칸트의 생애와 작품 ····································································· 1
Ⅱ.『순수이성비판』의 개관 ····························································· 10
Ⅲ. 원전의 목차 ················································································· 29
제2부 지식 지도 ··············································································· 35
Ⅰ. 철학 문헌․철학자․철학 용어․지식 지도 ···································· 35
○ 철학 문헌 :『순수이성비판』······················································ 35
○ 철학자 : 칸트 ············································································· 37
Ⅱ.『순수이성비판』의 지식 지도 ··················································· 39
1 논리학(Logik) ·············································································· 39
2. 초월적 감성학(Transzendentale Ästhetik) ( /2.1~2.3) ······· 41
3. 범주(Kategorie) ········································································· 43
제 3 부『순수이성비판』의 주요 주제어 분석 ····················· 45
1. 초월 논리학(Transzendentale Logik) ···································· 45
1.1. ‘논리학’의 일반적 특성 ··························································· 47
1.1.1.『순수이성비판』의 체계와 ‘초월 논리학’ ························· 47
iv
1.1.2. 인간 인식 능력의 두 원천과 ‘논리학’의 성격 ·················· 48
1.1.3. 논리학 일반의 분류 ··························································· 52
1.2. 초월 논리학(transzendentale Logik)의 이념 ······················· 58
1.2.1. ‘일반 논리학’과 ‘초월 논리학’의 비교 ······························ 58
1.2.2. ‘초월적’(transzendental)이라는 말의 의미 ······················ 60
1.2.3. ‘초월 논리학’의 정의(定義) ················································ 65
1.2.3.1. ‘순수 지성 개념들의 체계’로서의 ‘초월 논리학’ ········· 65
1.2.3.2. ‘이념’(Idee)으로서의 ‘초월 논리학’ ····························· 67
1.3. ‘초월 논리학’의 분류 : ‘초월적 분석론’과 ‘초월적 변증론’ ·· 69
1.3.1. 보편적 진리의 기준(das allgemeine Kriterium der Wahrheit)
69
1.3.2. ‘논리학’의 분류 : ‘분석론’(Analytik)과 ‘변증론’(Dialektik)
74
1.3.3. ‘진리의 논리학’(Logik der Wahrheit) ····························· 78
1.3.4. ‘가상의 논리학’(Logik des Scheins) ······························· 83
1.4. ‘초월 논리학’과 ‘존재론’(Ontologie) ···································· 85
2. 초월적 감성학(Transzendentale Ästhetik) ························· 88
2.1. ‘초월적 감성학’의 성격 ··························································· 90
2.1.1.『순수이성비판』의 체계와 ‘초월적 감성학’ ······················· 90
2.1.2 수용하는 인식 능력으로서의 ‘감성’(Sinnlichkeit) ············ 91
2.1.3. 감성의 순수형식(die reine Form der Sinnlichkeit) ······ 92
2.1.4. ‘초월적 감성학’의 정의(定義) ············································ 95
v
2.2 ‘공간’(Raum) ············································································· 97
2.2.1. 공간개념에 관한 형이상학적 구명(究明) ·························· 98
2.2.1.1. 공간 표상의 첫 번째 논증 ············································ 99
2.2.1.2. 공간 표상의 두 번째 논증 ·········································· 100
2.2.1.3. 공간 표상의 세 번째 논증 ·········································· 101
2.2.1.4. 공간 표상의 네 번째 논증 ·········································· 102
2.2.2. 공간 개념에 관한 초월적 구명(究明) ····························· 102
2.2.3. 공간 개념에 관한 논의의 결과 ······································· 104
2.3. ‘시간’(Zeit) ············································································ 106
2.3.1. 시간 개념에 관한 형이상학적 구명(究明) ······················ 107
2.3.1.1. 시간 표상의 첫 번째 논증 ·········································· 107
2.3.1.2 시간 표상의 두 번째 논증 ··········································· 108
2.3.1.3 시간 표상의 세 번째 논증 ··········································· 108
2.3.1.4. 시간 표상의 네 번째 논증 ·········································· 109
2.3.2. 시간 개념에 관한 초월적 구명(究明) ····························· 110
2.3.3. 시간 개념에 관한 논의의 결과 ······································· 111
2.4. 초월적 감성학의 일반적 주석들 ·········································· 114
3. 범주(Kategorie) ········································································· 116
3.1.『순수이성비판』의 체계와 ‘범주’ ·········································· 116
3.2.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 ······················································· 119
3.2.1. ‘범주’의 ‘기원’(Ursprung) ··············································· 119
3.2.2.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의 기준들 ·································· 121
vi
3.2.3.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의 원칙 ······································ 125
3.2.4.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의 ‘실마리’(Leitfaden) ············· 127
3.2.4.1. 개념을 통한 인식 능력으로서의 ‘지성’ ····················· 127
3.2.4.2. ‘판단’(Urteile)에서 성립하는 개념의 사용 ················ 128
3.2.4.3. ‘판단에서의 통일의 기능’ (Funktionen der Einheit in
den Urteilen) ······························································· 129
3.2.5. ‘판단표’(Urteilstafel) ······················································· 130
3.2.6 ‘범주표’(Tafel der Kategorien) ······································ 131
3.2.6.1 범주표 도출의 근거 ····················································· 131
3.2.6.2 ‘종합하는 근원적 순수 개념의 표’ ······························ 133
연구문헌 ···························································································· 135
참고문헌 ···························································································· 135
vii
일․러․두․기
1. 이 책의 연구 대상서인『순수이성비판』의 독일어 판본과 한
국어 표준어 판본은 다음과 같다.
독일어 판본:
Immanuel 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 hrsg. von
Raymund Schmidt, Hamburg, 1971(1930).
한국어 표준어 판본:
『순수이성비판』, 최재희 역, 박영사, 1977(1972).
2.『순수이성비판』의 인용은 일반적인 관례대로 Raymund
Schmidt판에 따라 초판(1781년)과 재판의 쪽수를 A와 B
뒤에 숫자로 표시하고 그 뒤에 한글 표준판의 쪽수를 적었
다. 예) (A27/B35, 한글판 26)
『순수이성비판』이외의 칸트 저작은 베를린 학술판에 따라
그 권수와 쪽수를 각각 베를린 학술원판의 약어 AA 뒤에
권 수를 로마 수자로 쪽수를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했다.
예) (AA X 130)
3. 해설서 본문에서는 기존의 번역어 중에서 ‘오성’(Verstand)
은 ‘지성’으로 ‘선천적’(a priori)은 ‘선험적’으로 ‘선험
적’(tran- szendental)은 ‘초월적’으로 각각 바꾸어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다만 표준 한글판의 인용문의 원문 인용에서는
표준 번역본의 용어를 쓰고 그 뒤 [ ]안에 필자가 임의로
바꾼 번역어를 삽입하여 구별하였다.
칸트『순수이성비판』1
제1부『순수이성비판』의 저자 및 작품 해제
Ⅰ. 칸트의 생애와 작품
위대한 철학자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
까? 그의 생애가 오늘 우리에게 삶의 교훈과 길잡이를 제공해 주
는 성자(聖者)의 일생이 아니라면, 혹은 역사의 풍운 가운데 겪은
드라마틱한 운명으로 인해 흥분과 진한 감동을 주는 인간적 삶이
아니라면 우리는 굳이 왜 한 사상가의 삶에 주목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의 사상이 진공 가운데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상가의 삶의 경험들
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이런 점에서 그의 사상을 보다 잘 이해하
려는 노력과 맞닿아 있다.
서양 고대, 중세의 세계관이 몰락한 이후 새롭게 모색된 근대
적 세계관은 칸트에게서 마침내 꽃을 피우게 된다. 그의 철학 사
상이 서양 사상사에 미친 영향력과 중요성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사상의 큰 무게에 비해 그의 삶은 일견
초라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그의 전기(傳記)에서 우리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큼직한 사건이나 인생의 모험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다.(참조 : Höffe, 1988, S. 19) 그는 명성이나 권
력을 구하지도 않았고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적도 없었으며 결혼
을 한 적도 없었다. 그의 삶은 단조로웠다. 거의 평생을 자신이
태어난 도시인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에서 지냈고 심지어
쾨니히스베르크가 위치한 동(東) 프로이센(Ostpreußen) 지방을
한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삶과는 달리 그의 학문에 대한 내적 열
2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정과 사상의 여정을 서술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그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으며 동시에 진지한 사색가였다. 이전
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거부하는 새로운 사유의 전환을 시도하
였고 그것을 확고히 하려 애썼으며 또 다른 사상가들과의 끊임없
는 논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수정․발전시키기도 했
다.(참조 : Gulyga, 1985, S. 7) 그의 철학은 인간 영혼의 깊은 문
제에서부터 인간을 둘러싼 우주의 모든 문제에 대한 고민과 답을
담고 있다. 이러한 그의 광범위한 관심은 다양한 이성의 학문들
을 정초하려는 시도로 나타나게 된다. 즉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
식의 가능성과 한계에 관해서 뿐 아니라 인간의 도덕, 법, 종교,
역사와 예술 등을 선험적인 원칙에 근거해서 규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칸트의 생애를 살펴본다는 것의 참된 의
미는 바로 칸트의 이러한 다양한 정신적인 삶의 전기를 주목하는
데에 있다.(참조 : Gulyga, 1985, S. 9)
1724년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의 한 가난한 수공업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1804년 세상을 떠난 철학자 임마누엘 칸
트(Immanuel Kant)의 80년간의 생애를 그 자신의 진술에만 근
거해서 재구성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칸트의 삶과
철학적 사상의 발전 과정에 대해 우리에게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
를 주는 것은 역시 칸트가 자신의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書信)
들이다. 그러나 그의 서신들 대부분이 그의 나이 이미 46세가 된
1770년대 이후의 것이기 때문에(참조 : Höffe, 1988, S. 20) 그
이전의 칸트의 삶에 관해서는 그의 동료들의 기억과 진술, 그리
고 이에 근거해서 기록된 칸트에 관한 전기(傳記)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칸트에 관한 몇몇 전기들은 우
리의 위대한 철학자의 사상이 발전하기까지 이런저런 모양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던 그의 어린 시절의 삶과 환경, 학창 시절의 학
2
칸트『순수이성비판』3
문적인 고민들, 또한 그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이들과의
관계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다.
칸트의 생애를 비교적 자세히 다루고 있는 중요한 전기들은 공
통적으로 칸트의 출생지인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에 대한
설명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칸트가 태어나서 평생을 살았던 쾨
니히스베르크가 그의 철학 사상의 형성과 관계하여 우리의 관심
을 끄는 것은 대략 다음의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는 쾨니히
스베르크가 칸트의 사상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경건주의
(Pietismus)와 관계가 깊은 도시라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과 세
계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획득하기에 용이했던 쾨니히스베르크의
자유 분방한 분위기이다. 쾨니히스베르크의 역사는 13세기로 거
슬러 올라간다. 1255년 프레겔(Pregel)의 하구에 보헤미안의 왕
이었던 ‘오토카르(Ottokar)’의 승전을 기념하여 세워진 한 성(城)
이 쾨니히스베르크라는 도시의 시작이다. 이 성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알트슈타트’(Altstadt), ‘뢰베니히트’(Löbenicht), ‘크
나이프호프’(Kneiphof)라는 세 개의 도시들이 생겨나고 이들 도
시는 칸트가 태어나는 해인 1724년 ‘쾨니히스베르크’라는 하나의
도시로 통합되게 된다.
당시 ‘할레’(Halle)와 함께 대표적인 경건주의의 도시였던 ‘쾨
니히스베르크’에서 칸트는 철저히 경건주의적인 교육을 받게 된
다. 칸트가 스스로 회고하고 있듯이 그의 어머니 ‘안나’(Anna
Regina, geb. Reuter)의 정직하고 경건한 삶의 모범과 평범한 마
구장인(Riemermeister)이었던 그의 아버지 ‘요한 게오르그 칸
트’(Johann Georg Kant)의 부지런함과 덕망 있는 인품이 보여주
는 경건주의적 삶의 태도는 어린 칸트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무엇보다도 당시 ‘경건주의자들의 합숙
소’(Pietisten-Herberge)라고까지 불렸던 ‘프리데리치아
4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눔’(Collegium Fridericianum)에서의 교육은 칸트가 경건주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된다. 칸트의 가족을 개인적
으로 돕기도 했고 당시 유명한 신학자이자 교육행정가로 ‘프리데
리치아눔’의 교장을 맡고 있던 ‘슐츠’(Franz Albert Schultz)의
권유로 칸트는 김나지움에 해당하는 이곳에서 교육을 받게 되는
데 특히 이곳에서 그는 고전어에 대한 튼튼한 기초를 닦게 된다.
칸트에게 지대한 정신적인 영향을 미쳤던 그의 어머니 ‘안나’는
칸트가 13세가 되던 해인 1737년에 세상을 떠나게 되고 1740년
가을 ‘프리데리치아눔’에서의 교육을 마친 칸트는 ‘쾨니히스베르
크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1740년부터 1746년까지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6년간의 칸
트의 생활은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적다. 그가 어떤 학부에 입학
하여 무엇을 주로 공부하였고 무엇에 관심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가 이곳에서
자신의 철학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한 스승을 만나게 된 점
은 분명하다. 같은 고향 출신으로 칸트보다 10살 위였던 ‘마틴 크
누첸’(Martin Knutzen)은 당시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논리학’
과 ‘수학’을 담당하고 있었고 칸트는 크누첸으로부터 ‘라이프니츠
(Leibniz)-볼프(Wolff)철학’에서 ‘바움가르텐’(Baumgarten)으로
이어지는 소위 ‘강단 형이상학’(Schulmetaphysik)에 관해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 칸트가 크누첸에서 받은 결정적인 영향은 그로부
터 칸트가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수학과 자연과학에 관해 배우
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크누첸을 통해 칸트는 ‘뉴우턴’(Isaac
Nowton)의 저작들을 직접 접하게 되고 이의 영향으로 그는 후에
자신의 ‘초월 철학’(transzendentale Philosophie)의 체계를 통해
라이프니츠 철학의 형이상학적 체계와 뉴우턴 물리학의 결합을
시도하게 된다. 칸트는 학생으로서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의
4
칸트『순수이성비판』5
마지막 해로 알려진 1746년 그의 처녀작인『활력의 참된 측정술
에 관한 사상』(Gedanken von der wahren Schätzung der
lebendigen Kräft)을 저술하고 대학을 졸업하게 되고 이미 아버지
마저 세상을 떠나 혼자 남게 된 그는 생계를 위해 당시 일반적인
학자들의 경우처럼 ‘가정교사’(Hofmeister)로서의 생활을 시작하
게 된다.
1747년부터 1754년까지 약 7년 동안 가정교사 생활을 한 칸트
는 1755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으로 다시 돌아온다. 자신의 처녀
작으로 인해 이미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칸트는 이때부터 본
격적인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자연적인 근거들에 의존해서 태양
계와 우주의 생성에 관해 서술한『보편적인 자연사와 천체 이론』
(Allgemeine Naturgeschichte und Theorie des Himmels), 지금
의 박사 학위 논문에 해당하는 그의 ‘석사 논문’「불에 대한 몇몇
고찰에 관한 간략한 서술」(Meditationum quarundam de igne
succi- ncta delineatio), 그리고 그 속에 이미 라이프니츠-볼프 강
단 철학에 대한 비판이 등장하고 있는 오늘날의 교수 자격 논문에
해당하는「형이상학적 인식의 제1원리에 관한 새로운 해명」
(Princi- piorum primorum cognitionis metaphysicae nova
dilucitatio), 이 모두가 1755년에 쓰여진 글들이다. 칸트는 이때부
터 1796년까지 약 40년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는데 1770년까지의 처음 15년간은 사(私)강사로 그리고 1770년
부터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정식 교수로서 강의를 하게 된다.
1756년 크누첸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원외
교수(außerordent- licher Professor)직에 응시하기 위해 칸트는
『물리적 단자론』 (Me- taphysicae cum geometria iunctae usus
in philosophia naturali, cuius specimen I. continet maonadologiam
physicam)이라고 불리는 라틴어 저술을 탈고하기도 하였지만 칸트
6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의 초빙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고 1758년에 다시 한번 시도한 응
시에서도 칸트는 실패하게 된다. 전적으로 수강료에만 생계를 의존
하던 사(私)강사 칸트는 다행히 1766년에는 왕립 궁정 도서관의 부
사서로 얼마의 보수를 받게 되고 1770년 그의 나이 46세에 비로소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담당하는 정교수로
초빙되게 된다. 칸트는 논리학과 형이상학뿐 아니라 수학적 물리
학, 인간학, 교육학, 자연 신학, 도덕, 자연법 등에 관해 강의하였고
자신의 고향 지방을 한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그
의 지리학 강의는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그의 성실한 강
의는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강의에 참석했던 이들은 그의
강의가 늘 생동감이 넘치고 진지한 사고가 토론되는 장(場)이었다
고 기억한다.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정교수로 초빙된 칸트는 관례에 따라 자
신이 쓴 라틴어 논문에 대한 공개 변론을 해야 했고 1770년 8월21
일 행해진 공개변론에서 칸트는「감성세계와 지성세계의 형식과 그
원리들에 관하여」(De mundi sensibilis atque intelligibilis forma
et principii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교수취임논문에
해당하는 이 라틴어 논문은 그의 비판기의 사상, 특히『순수이성비
판』의 핵심사상의 일부를 이미 포함하고 있는 중요한 저작이다. 사
실 칸트의 주저(主著)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의 핵심사상들의 씨앗은 이미 1760년대에서부터 발견된
다. ‘흄’(David Hume)과 ‘루소’(Jean Jacques Rousseau) 철학의
영향으로 인해 ‘예비적 학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칸트는 1762년
「신 존재 증명을 위하여 유일하게 가능한 증명 근거」(Der einzig
mögliche Beweis- grund zu einer Demonstration des
Daseins Gottes)에서 이미 훗날『순수이성비판』에서의 논증을 가
지고 전통적인 신 존재 증명 방식을 비판하고 있으며 1766년의『형
6
칸트『순수이성비판』7
이상학의 꿈을 통해 해명된 어느 시령자의 꿈』(Träume eines
Geistersehers, erläutert durch Träume der Metaphysik)에서는
라이프니츠-볼프 학파의 소위 강단 형이상학과 완전히 결별하게 된
다. 그러나 이 교수 취임 논문에서 비로소 칸트는 본격적으로『순수
이성비판』에서의 시간, 공간 이론뿐 아니라 더 나아가 ‘초월적 관념
론’(der transzendentale Idealis- mus)이라 불리는 자신의 철학적
체계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칸트는 비록 이성과 지
성을 통한 비감성적 세계에 대한 인식의 가능성을 여전히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공간과 시간’은 ‘사물에 관한 우리 직관의 형식’이지
‘사물 자체의 형식’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공간 시간의 주관성’에
관한『순수이성비판』의 핵심 사상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교수 취임 논문의 내용을 조금 수정하여 보충하려던 칸
트는 이 논문의 중요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고 새로운 반성을
시작하게 된다. 1772년 2월 21일 칸트는 교수 취임 논문 공개
발표 때 자신을 변론하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했었던 제자 ‘헤르
츠’(Marcus Herz)에게 편지를 보내 그간의 생각의 변화와 앞으
로의 계획에 관해 알리게 된다. 이 편지에서 칸트는 ‘우리의 표상
이 대상과 관계 맺는 것은 무엇에 근거하는가?’라는, 이전의 형이
상학적 연구들이 소홀히 했던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이 문제
에 답하는 것이 바로 형이상학의 전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AA X 129 이하 참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칸트는 ‘감성과 이성의 한계’(Die Grenzen der
Sinn- lichkeit und der Vernunft)라는 제목으로 종전의 생각을
확대하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새로 ‘순수 이성의 비판’(Die
Critick der reinen Vernunft)이라는 제목의 출판을 계획하고 있
음을 예고한다. 약 3개월 후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순수
이성의 비판’이라는 책의 출판 계획은 그로부터 약 10년간의 침
8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묵을 거쳐 이루어지게 된다. 1781년 칸트는 나이 57세에 드디어
자신의 주저(主著)『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을 세상에 내어놓게 된다.
그러나 칸트의 이러한 오랜 철학적 숙고의 산물인『순수이성비
판』에 대한 독자들의 처음 반응은 대체로 냉정했다. 심지어 당시
유력한 학술지였던 ‘괴팅겐 비평지’(Göttingischen Anzeigen von
Gelehrten Sachen)에는 익명의 독자(Christian Garve인 것으로
알려져 있음)가 쓴 신랄한 혹평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칸트는 이
러한 많은 비판이 대부분『순수이성비판』의 내용에 대한 오해에
서 비롯한다고 생각하여 1783년에『순수이성비판』의 이해를 위
한 입문서에 해당하는『형이상학서설』(Prolegomena zu einer
jeden künftigen Metaphysik, die als Wissenschaft wird
auftreten kön- nen)을 출판하게 된다. 많은 오해에도 불구하고
칸트의 저술은 점점 유명해져 많은 추종자들이 생기게 되고 칸트
는 이때부터 자신의 ‘비판 철학’을 완성하는 주요 저술들을 본격적
으로 출판하게 된다. 1784년에는 그의 역사 철학이 잘 나타나 있
는 저술『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Idee zur
allgemeinen Ge- schichte in weltbürgerlicher Absicht)과『계
몽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Beantwortung der
Frage : Was ist Auf- klärung?)이라는 논문이 쓰여지고 1785년
에는 도덕철학에 관한 칸트의 첫 번째 주요 저술인『도덕형이상
학 원론』(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이 출판되어진
다. 1786년에는『순수이성비판』에서 이미 증명된 자연과학의 보
편적 원리들의 전제 하에서 어떻게 물리학의 대상에 대한 선험적
인식이 이루어지는지를 밝히고 있는『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
초』(Metaphysische Anfangs- gründe der Naturwissenschaft)을
출판하게 된다. 1787년에는 상당한 수정을 한『순수이성비판』의
8
칸트『순수이성비판』9
재판(再版)이 출판되게 되고 1788년에 칸트는 두 번째 비판서로
불리는『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을,
1790년에는 그의 세 번째 비판서에 해당하는『판단력비판』
(Kritik der Urteilskraft)을 출간하게 된다.
왕성한 저작과 학문 활동으로 유럽 내에 이미 유명해져 있던
칸트는 1793년『순수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의 출판을 계
기로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계몽된 법치주의를 지향하던 프리드
리히 2세와는 달리 그의 후계자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1788년의 ‘종교 칙령’(Religionsedikt)을 통해 관용적이던 프로이
센의 종교 정책을 마감하게 된다. 1792년 베를린의 검열 당국은
칸트의 종교 철학적 논문의 출판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칸트는 이
것을 다른 논문들과 합쳐 1793년에『순수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
의 종교』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을 하였던 것이다. 1794년에
칸트가 또 다시 종교 철학적인 논문인「만물의 종말」(Das Ende
aller Dinge)을 출판하자 결국 협박을 담은 왕의 칙령이 칸트에
게 내려지게 되고 칸트는 왕이 살아 있는 한 더 이상 종교 철학
적 저술은 발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이미 노년이 된
칸트는 건강상의 이유로 점점 강의를 줄여가고 있었고 1796년
여름 학기를 마지막으로 대학에서의 그의 강의는 끝이 나게 되지
만 그의 철학적 저술은 여전히 계속된다. 1795년에는『영구평화
론』(Zum ewigen Frieden)을, 1797년에는『도덕형이상학』
(Metaphysik der Sitten)을 그리고 1798년에는 프리드리 빌헤름
2세가 사망하자 그때까지 침묵의 약속을 지켰던 칸트는『학부간
의 논쟁』(Streit der Fakultäten)에서 다시 그의 종교 철학적 입
장을 밝히게 된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건강 관리와 규칙
10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적인 생활로 훌륭한 강의와 엄청난 저술을 감당했던 칸트는 1799
년부터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눈에 띄게 쇠약하게 되었고 한때
칸트의 수강생이었다가 노년의 칸트의 생활을 돌보아 주었던 바지
안스키(Andreas Chirstoph Wasianski)의 도움으로 말년을 지내게
된다. 그러나 칸트는 이미 쇠잔한 이 노년기에도 자신의 철학적 체
계의 문제점을 놓고 끊임없이 고민하였다. 1790년대 초반에 기획
한 것으로 보여지는 ‘자연학의 형이상학적 기초에서 물리학으로 넘
어감’(Übergang von den metaphysischen Anfangsgründen der
Na- turwissenschaft zur Physik)이라는 저술을 위해 자신의 쇠
잔한 정신과 육체의 마지막 힘을 다하게 되지만 결국 이 작품은 완
성을 보지 못하였고 미완성의 원고는『유고』(Opus postumum)라
는 제목으로 그의 사후에 출판되게 된다. 1804년 2월 12일 오전
11시 숨을 거둔 칸트는 16일 지난 후 2월 28일 그가 태어났고 평
생 그곳에서 생활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였던 쾨니히스베
르크의 대학 묘지에 묻혀 영원히 잠들게 된다.
Ⅱ.『순수이성비판』의 개관
1781년 출판된 칸트의 주저(主著) 『순수이성비판』(재판 1787
년)을 하나의 일관된 의도 속에 쓰여진 체계적 작품이라고 본다면
그것의 중심 주제는 과연 무엇일까?『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의 관
심은 한 마디로 말해 ‘형이상학’(Metaphysik)’이다. 칸트가 1772년
2월 그의 제자 헤르츠(M. Herz)에게 보낸 편지에서『순수이성비
판』의 출판을 예고하면서 여기에서 자신의 작업이 “이제껏 숨겨져
왔던 형이상학의 전(全)비밀을 드러내줄 열쇠”(헤르츠에게 보낸 편
지; AA X 130) 이길 기대했던 것도, 또한 『순수이성비판』으로 대
표되는 자신의 ‘초월 철학’을 칸트 스스로 ‘형이상학에 관한 형이상
10
칸트『순수이성비판』11
학’(Metaphysik von der Metaphysik)이라고 불렀던 것도 바로 이
러한 이유 때문이다. 한때 ‘만학의 여왕’(Königin aller
Wissenscha- ften)’이라고 까지 불렸던 ‘형이상학’은 칸트의 판단
에 따르면 이제 ‘끝없는 논쟁의 싸움터’(der Kampfplatz dieser
endlosen Streitig- keiten)’로 전락해버렸다.(A VIII, 한글판 19 이
하 참조) 이는 ‘독단론자들’(Dogmatiker)의 ‘전제적인’(despotisch)
인 주장과 ‘회의론자들’(Skeptiker)의 ‘극단적인 무관심주
의’(gänzlicher Idifferentismus)가 낳은 결과이다.(A IX, 한글판 20
참조) 이제 ‘형이상학’의 잃어버린 이전의 위엄을 되찾고 ‘학’으로서
의 가능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성 능력’(Vernunftvermögen)
자체의 비판이 요구되어진다. 이성 능력의 비판이란 칸트에 따르면
정당한 요구를 하는 이성은 보호해 주지만 모든 근거 없는 이성의
월권에 대해서는 거절할 수 있는 ‘법정’(Gerichtshof)에 이성 자신
을 세우는 일이다. 이러한 이성에 대한 비판, 즉 ‘순수이성비
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을 통해 형이상학의 가능성은 탐구
될 수 있다. 요컨대 이성의 능력을 비판하는 일은 칸트에게서는 바
로 “형이상학 일반의 가능 여부에 대한 결정․가능할 수 있는 형이상
학의 원천․범위․한계 등의 규정을 의미한다.”(A XII, 한글판 21)
『순수이성비판』의 이해를 위해 쓰여진 입문서『형이상학서설』
(Prolegomena, 1783년)에서 칸트는『순수이성비판』의 이러한 과
제를 ‘수학’과 ‘자연학’, 그리고 ‘형이상학’에서의 선험적인 인식의
가능성을 밝히는 일로 요약한다. 이상의 학문들의 내용은, 다시 말
해 이 학문 영역에서의 대상에 관한 인식은 우리가 ‘선험적 종합 판
단’(synthetische Urteile a priori)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그 내
용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험적 종합판단’은 무엇인가? ‘선
험적 종합 판단’(synthetische Urteile a priori)’이란 칸트에 따르면
자신의 술어가 모순율에 따라 그 판단의 주어와 결합되어 있을 뿐
12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아니라 주어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술어 개념의 첨가를 통해 대상에
관한 지식이 늘어나게 하는 판단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을 통
해서가 아니라 선험적으로(a priori) 근거 지워질 수 있는 판단을 말
한다.(A6ff./B14ff., 한글판 49이하/60이하 참조) 칸트는 이러한 ‘선
험적 종합 판단’의 예를 ‘순수 수학’(reine Mathematik)과 ‘순수 자
연학’(reine Naturwissenschaft)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
수학이나 자연학은 자신들의 ‘학’(學)’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서나
자신들이 인식의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는 ‘선험적 종합 판단’에 관
해 더 이상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 학문은 자
신들이 소유한 선험적 종합 판단의 참됨을 자신들의 학문의 성격상
이미 ‘구성’(Konstruktion)이나 ‘관찰’ 혹은 ‘실험’을 통해 명백히 밝
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가『순수이성비판』에서 ‘어떻게 선험적
종합 판단은 가능한가?’(Wie sind synthetische Urteile a priori
möglich?)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그의 관심이 ‘학’(學)’으로서의
형이상학의 가능성에 있기 때문이다. 즉 형이상학에서의 선험적 종
합 판단의 가능성을 탐구함으로써 증명된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형이상학이 존재한다면 그 인식의 타당
성은 어디까지 미치는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순수이
성비판』의 중심 과제이고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칸트는 수학과 자연
학의 방법을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자연에서의 모든 사건
들은 하나의 원인을 가지고 있다’라는 ‘인과율의 원리’(Prinzip der
Kausalität)와 ‘사물의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실체는 변하지 않고
남아있다’는 ‘실체 고정성의 원칙’(Prinzip der Beharrlichkeit der
Substanz)은 모두 형이상학의 인식의 대상이다. 그리고 칸트에 따르
면 이러한 인식은 결코 ‘독단적으로’(dogmatisch)나 단지 ‘개념에서
부터’(aus Begriffen) 증명될 수 도 없고 그렇다고 경험적 지식에 의
12
칸트『순수이성비판』13
해, 즉 ‘습관’에 근거한 ‘연상 법칙’에 의해서도 결코 그 선험적 타당
성이 알려질 수 없는 ‘선험적 종합 판단’이다.(A184f./B227f., 한글
판 194 참조) 이러한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검사하는 것은, 즉 이
러한 인식의 범위와 한계를 조사하는 것은 결국 선험적 인식이 가능
하기 위한 조건들, 즉 인간의 인식 능력 속에서 근거 지워지는 조건
들을 조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순수이성비판』은 우리 인식
능력들에 관한 연구이기도 하다.
『순수이성비판』의 과제가 우리 인식 능력들에 관한 연구이어
야 함은 칸트가 자신의 새로운 철학적 태도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에 비유한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칸트는 ‘형이상학’이 ‘헤메
임’(Herumtappen)의 단계를 벗어나서 ‘학의 안전한 길’(sicherer
Gang einer Wissenschaft)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이미 이러한 단
계에 이른 ‘수학’과 ‘물리학’의 성공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형이상학이 이들 학문에서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학문적
방법론이 아니라 이들이 학의 안전한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
던 ‘사유 방식의 혁명’(Revolution der Denkart)이다. 즉 ‘인간의
이성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만을 선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라는 깨달음이다. 다시 말해 수학에서 개념에 따라 선험
적으로 그에 해당하는 직관을 산출하는 ‘구성’(Konstruktion)의
행위나 물리학이 미리 계획된 고안에 따라서 관찰과 실험을 하는
것은 모두 “이성이 자신의 계획에 따라서 산출한 것만을 이성은
통찰한다는 것”과 “항구적 법칙에 따라 판단하는 원리들을 먼저
가지고써 이성 자신의 물음에 자연이 대답하도록 하고, 마치 걸
음을 처음 배울 적의 아기가 줄에 끌려 걷듯이 이성은 자연의 인
도만을 받지 않는다”(B XIII, 한글판 30)고 하는 깨달음의 결과이
다.
칸트가 이제 ‘모방’(nachahmen)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유
14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방식의 전환의 본질’(das wesentliche Stück der Umänderung
der Denkart)이다. 그것은 바로 인식 주체의 자발적인 행위에로
의 전환을 의미한다. 때문에 칸트는 이러한 사유의 전환을 코페
르니쿠스가 자신에 의해 관찰되어지는 천체의 원인을 관찰자 자
신에서 찾으려고 한 시도에 비유하고 있다. 철학에서의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적인 시도는 인식이 지금까지와 같이 대상에 의존해
서 대상들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들
이 우리 인식과 인식 능력들에 준거해야 한다고 가정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정’(假定)이 “형이상학의 과제들”(die Aufgaben
der Metaphysik, B XVI, 한글판 32)을 해결하는 데 더
효용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에 칸트는 이제『순수이성비판』에서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조건들을, 그리고 그 대상을 산출해
내는 인식 능력들을 검토하게 된다.
대상들에 관한 선험적인 인식이 가능하기 위한 인간 인식 능력
의 조건들을 검사하는 작업으로서의『순수이성비판』은 따라서
대상을 인식하는 우리 인식 능력들에 대한 연구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우선 칸트는 ‘초월적 감성학’(Transzendentale Ästhetik)에
서 우리의 수용적인 인식 능력, 즉 대상들에 대한 직접적인 표상
인 ‘직관’(Anschauung)이 주어지는 ‘감성’(Sinnlichkeit)과 그 두
형식인 시간과 공간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칸트가 해명하려
는 과제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현상’(Erscheinung)이라고 불리
는 ‘감관의 대상에 관한 우리의 선험적 인식’이 어떻게 ‘우리 감
성의 형식들’에 의해, 다시 말하자면 ‘우리 감관의 형식적인 소질
들’에 근거해서 가능한가를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초월적 감성
학’은 우리 감성의 선험적 형식들인 ‘시간’과 ‘공간’이 ‘직관의 주
관적 형식’이라는 점을, 그리고 이 주관적 형식이 모든 감관의 대
상에 관해 ‘객관적 타당성’을 갖는다는 것을, 따라서 모든 감관의
14
칸트『순수이성비판』15
대상들은 바로 이 주관의 형식을 통해서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대
상으로 규정되는 것을 증명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한 ‘공간과 시
간에 관한 논증들’을 통해 얻게 되는 ‘초월적 감성학’의 결론들은
이제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transzendentaler Idealismus)의 핵
심적인 생각을 이루게 된다. 즉, 우리 감관의 모든 대상들은, 그
들이 선험적으로(a priori) 공간과 시간에 의해 규정되는 한, 그것
은 한갓 ‘현상’(Erscheinung)일 뿐이지 우리와 상관없이 그 자체
로 존재하는 사물은 아니다. ‘공간’과 ‘시간’이 더 이상 그 자체로
존재하거나 혹은 우리 밖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속성이 아니라 대
상을 인식하는 우리 인식 능력의 형식인 ‘주관적인 조
건’(subjektive Be- dingungen)에 해당한다면, ‘공간’과 ‘시간’
중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는 유일한 대상으로서의 ‘현상’은
바로 이러한 우리 인식 주관의 조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은 이제 데카르트가 찾아낸 인
식 주체(cogito)의 능력만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던 ‘우리 밖의
존재’에 대한 인식의 가능성을 찾게 된다. 즉, 칸트에게서는 단지
사물의 ‘제2성질’(secondary qualities)이라고 불리는 색과 맛과
같은 성질만이 우리 감관에 의존적인 현상이 아니다. 흔히 사물의
‘제1성질’(primary qualities)이라고 불리는 ‘연장’(延長)과 ‘형태’
마저도 그것이 공간과 시간 속에서 규정되는 한 우리 감관의 주관
적 형식에 의해 조건 지워진 ‘현상’인 것이다. 이로써 1772년 헤
르쯔(M. Herz)에게 보낸 편지에서 칸트 스스로 제기했던 ‘초월적
관념론’의 근본 물음, 즉 ‘어떻게 우리의 표상이 대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가’에 대한 첫 번째 해답을 얻게 된다.(헤르츠에게 보낸 편
지; AA X 130 참조) 대상을 선험적으로 직관하는 것에 관한 이론
인 ‘초월적 감성학’은 어떻게 우리의 표상이 선험적으로 ‘직관의
대상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16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초월적 감성학’에서 다루어진 우리의 인식 능력이 ‘감성’(Sinnlichkeit)
이었다면 칸트는 이제 ‘초월 논리학’(transzendentale
Logik )에서 우리의 또 다른 인식 능력인 ‘지성’(Verstand)에 관해
탐구한다. 칸트가『순수이성비판』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초월적 원
리론’(transzendentale Elementarlehre)을 이처럼 ‘초월적 감성학’
과 ‘초월논리학’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인식이 서로 다
른 두 가지 인식의 원천에서부터 생겨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의 심성을 대상이 어떤 식으로든 촉발하는 한에서 표상을 받아들
이는 능력이 ‘감성’(Sinnlichkeit)이라면 ‘지성’(Verstand)은 표상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발적인 능력이다. 이 두 인식의 원천은 칸트
에 따르면 그 기능이 고유하기에 엄격히 구별되어야 할 서로 다른
인식 능력이다. 따라서 ‘감성’과 관련된 학문인 ‘감성학’(Ästhetik)
이 지성의 규칙들 일반을 다루는 학문인 ‘논리학’(Logik)과 구별되
듯이 ‘초월 논리학’은 ‘초월적 감성학’과 구별되어진다.
전통적으로 논리학이 넓은 의미에서의 ‘지성’(Verstand)으로 대
표되는 ‘사유 능력’을 탐구한다고 할 때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과 같은 세 가지 사유 능력을 의미한다. 즉, ‘개념의 능력으로서의
지성’(Verstand als Vermögen der Begriffe), ‘판단’(Urteile)에
관계하는 ‘판단력’(Urteilskraft), 그리고 ‘추론의 능력으로서의 이
성’(Ver- nunft als Vermögen der Schlüsse)이 그것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초월 논리학’을 이러한 사유 능력에 상응해서
‘초월적 분석론’(transzendentale Analytik)과 ‘초월적 변증
론’(transzendentale Dialektik)으로 나눈다.
‘초월 논리학’의 첫 번째 부문에 해당하는 ‘초월적 분석론’은
‘순수 개념’(reine Begriffe)의 원천으로서의 ‘지성 능력’을 탐구
하는 ‘개념의 분석론’(Analytik der Begriffe)과 ‘규칙 아래에 포
섭하는 능력’인 ‘판단력’(Urteilskraft)의 ‘이론’(Doktrin)에 해당
16
칸트『순수이성비판』17
하는 ‘원칙의 분석론’(Analytik der Grundsätze)으로 구성되어
있다. 칸트는 이러한 ‘지성의 순수한 인식 요소들’과 ‘그로 이루어
진 원칙들’을 다루는 ‘초월적 분석론’을 ‘진리의 논리학’(Logik
der Wahrheit)이라 부른다. ‘초월적 분석론’이 칸트에게서 ‘진리
의 논리학’인 이유는 어떻게 개개의 인식이 대상과 일치할 수 있
는지를 알게 해주는 ‘진리의 명목적인 설명’(die
Namenerklärung der Wahrheit)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의 표상들이 그 대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가르
쳐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월적 분석론’은 무엇이 우리 인식의
대상인지를, 이러한 대상일반에 관해 사유하는 우리 인식 능력의
형식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대
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해명해 준다. 이것이 칸트가 ‘초월적
분석론’을 전통적인 ‘존재론의 오만한 이름’(der stolze Name
einer ontologie)을 대신할 대안으로 제시한 소이(所以)이기도
하다.(A247/B303, 한글판 235 참조)
반면에 ‘초월 논리학’의 두 번째 부문은 우리 이성의 ‘잘못된
추론’에 관해 다룬다. 만약에 순수 이성이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
서 ‘형이상학적 심리학’의 인식 대상, 혹은 ‘우주론’과 ‘신학’의 인
식대상인 ‘무규정자’(Unbedingte)에 이르려고 할 때 순수 이성은
잘못된 추론에 빠지게 된다. 칸트는 이러한 초월 논리학의 부문
을 ‘초월적 변증론’(transzendentale Dialektik)이라고 부르고 있
는데 이것이 고대에 ‘변증론’(Dialektik)이 의미했던 ‘가
상’(Schein)을 만들어내는 ‘기술’(Kunst)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초월적 변증론’은 순수 이성의 잘못된 추론으로부터 생겨나는
‘형이상학적 가상’들을 폭로하고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
에서 ‘초월적 변증론’은 칸트에게서 ‘가상의 논리학’(Logik des
Scheins)을 의미한다.
18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인간의 사유 일반을 연구하는 학문, 구체적으로 말해 ‘개념’
(Begriffe)과 ‘판단’(Urteile) 그리고 ‘추론’(Schlüsse)에 관해 다루
는 학문이 ‘논리학’(Logik)이라는 점에서 칸트는 ‘초월적 분석론’
과 ‘초월적 변증론’으로 이루어진 넓은 의미의 사유 능력으로서의
‘지성’(Verstand)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초월 논리
학’(transzenden- tale Logik)이라고 부른다. ‘개념’을 통해 무엇
이 파악되든지, 혹은 ‘판단’과 ‘추론’을 통해 무엇이 인식되든지 그
내용은 전혀 도외시하는 ‘일반 논리학’(allgemeinen Logik)과는
달리 ‘초월 논리학’은 우리의 사유 형식이 그 대상과 맺는 관계에
관한 이론인 ‘초월적 인식’(transzendentale Erkenntnis)에 관한
것이다. 칸트에게서 ‘초월적 인식’이라는 말은 선험적인 ‘기
원’(Ursprung)을 갖는 표상이 어떻게 성립하며, 이 선험적으로 성
립된 표상이 경험에서 생겨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경
험적 대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가를 인식하는 일이다.(A56/B80,
한글판 99 이하 참조) 따라서 ‘초월 논리학’은 결국 그 자신 선험
적인 기원을 가지면서도 경험의 대상과 선험적으로 관계 맺는 ‘순
수 지성 개념들’에 관한 체계적 이론이다. 그리고 ‘지
성’(Verstand)을 통한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초월 논
리학’의 이러한 ‘학의 이념’은 결국 대상과 선험적으로(a priori)
관계 맺는 ‘순수 지성 개념’이 실재로 존재함에 의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 따라서 ‘초월 논리학’은 ‘순수 지성 개념들’(reine
Verstandesbegriffe), 즉 ‘범주’(Kategorie)를 찾아내어 그 ‘기
원’(Ursprung)과 ‘범위’(Umfang)를 밝히고 또한 찾아낸 범주들의
‘객관적 타당성’(objektive Gültigkeit)을 보여주는 ‘순수 지성 개
념들의 체계’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칸트는 ‘초월 논리학’
을 ‘순수 지성 인식’(reine Verstandeserkenntnis)’의 ‘기원’과 ‘범
위’, 그 ‘객관적 타당성’을 규정하는 학문이라고 정의(定義)하고 있
18
칸트『순수이성비판』19
다.(A57/B81, 한글판 100 참조)
따라서 ‘초월 논리학’의 첫 번째 부문인 ‘초월적 분석론’(transzendentale
Analytik)은 먼저 ‘순수 지성 개념들’, 즉 ‘범주’의 ‘기원’
과 ‘범위’에 관해 탐구한다.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적인 ‘판
단표’(Urteilstafel)에 근거해서 흔히 ‘범주표’(Tafel der
Kategorien)라고 불리는 “종합하는 모든 근원적인 개념들의
표”(die Verzeichnung aller ursprünglich Begriffe der Synthesis,
A80 / B106)를 제시한다. 그러나 칸트가 여기서 찾아낸 ‘순수 지성
개념들’은 ‘단지 시험적으로 모아본 개념들을 어림잡아
봄’(A64/B89)에 의해서 생겨나는 비체계적인 지성 개념 탐구의 결
과가 아니다. 이와 같이 귀납적인 추리에 의한 우연적인 발견에 의
존하는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지성 개념의 탐구는 ‘순수 지성 개념’을
찾아내는 ‘원칙’(Prinzip)이 결여되어 있기에 결코 하나의 완전한 체
계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
칸트는 순수 지성 개념들의 완전한 체계를 위해 ‘하나의 원칙에 따
라’(nach einem Prinzip) 범주들을 찾아낸다. 그 ‘원칙’은 칸트에 의
하면 ‘판단에서의 지성의 활동’, 다시 말하자면 ‘판단하는 능력으로서
의 지성 자체’(Verstand selbst als Vermögen zu urteilen)이
다.(A80f./ B106f., 한글판 114 참조; A67/B92, 한글판 105 참조)
즉 “판단들에 있어서의 통일의 기능을 우리가 완전히 표시할 수 있
다면, 오성[지성]의 기능들은 전부 알려질 수 있다”(A69/B94, 한글
판 107), 라는 생각에 근거해서 칸트는 먼저 완성된 체계로서의 ‘판
단표’를 제시한다. 그리고 모든 판단들은 이러한 판단 형식에 따라
생겨나고, 우리 지성의 기능들에서 유래하는 개념들도 내용상 이러
한 판단의 기능에 일치해야 하기에 칸트는 ‘판단의 양’(Quantität der
Urteile), ‘판단의 질’(Qualität der Urteile), ‘판단의 관계’(Relation
der Urteile), ‘판단의 양상’(Modalität der Urteile)이라는 ‘판단
20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표’(Urteilstafel)로부터 ‘양의 범주’(Kategorien der Quantität), ‘질
의 범주’(Kategorien der Qua- lität), ‘관계의 범주’(Kategorien der
Relation), ‘양태의 범주’(Katego- rien der Modalität)로 이루어진
‘범주표’(Tafel der Kategorien)를 이끌어 낸다.(A70/B85, 한글판
107; A80/B106, 한글판 113 참조)
이와 같이 ‘순수 지성 개념’의 ‘기원’과 ‘범위’를 밝힌 칸트는 이
제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objektive Gültigkeit)을 문제 삼는다.
‘초월 논리학’의 과제였던 ‘순수 지성 개념’을 통한 대상에 대한 선
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즉 이 ‘범주’가 대상과
선험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 순수 지성
개념인 ‘범주’들이 우리 직관의 대상들 즉 ‘현상’(Erscheinung)에
관한 참된 술어로써 타당함이 먼저 밝혀져야 한다. 그런데 ‘범주’
가 이처럼 ‘현상’들에 대해 ‘객관적인 타당성’(objektive
Gültigkeit)을 갖는다는 것을, 더 나아가 ‘순수 지성의 원칙들’(die
Grundsätze des reinen Verstandes)과 같은 현상에 관한 보편적
이고 필연적인 진술인 ‘선험적 종합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
하는 일은 ‘현상’과 ‘범주’의 동일성을 설명해야 한다는 문제에 부
딪치게 된다. “즉, 어떻게 사고의 주관적 조건이 객관적인 타당성
을 갖느냐, 다시 말하면 대상의 모든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을 주느냐 하는 곤란이다”(A89f./B122, 한글판 121). 이러한 문
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순수 지성 개념의 연역’(Deduktion der
reinen Verstandes- begriffe)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행해진 칸트
의 작업이다. 즉 ‘범주’가 어떻게 우리 직관의 대상들에 대해 ‘객관
적 타당성’을 갖는지, 또한 우리에게 단지 ‘지각’(Wahrnehmung)
을 통해서만 알려지고, 따라서 ‘지성’(Verstand)과는 무관하게 우
리에게 주어지는 공간․시간 중의 ‘현상’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
떻게 오직 ‘지성’에만 기원을 둔 ‘범주’ 아래에 포섭될 수 있는지를
20
칸트『순수이성비판』21
증명하는 것이 ‘범주의 초월적 연역’에서의 칸트의 과제인 것이다.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은 결국 ‘이 범주를 통해서만 경험일반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분명해진다.(A92f./B124f., 한글판
123 이하 참조) 그리고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에 관해 칸트는 다
음과 같이 설명한다.(B129ff., 한글판 143 이하 참조) 우리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감관’(Sinne)을 통해서는 결코 주어질 수 없는
‘하나의 다양들의 결합’(eine Verbindung von Mannigfaltigem)을
우리는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 그런데 ‘감성’(Sinnlichkeit)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표상능력의 자발성의 행위’(ein Aktus der
Spontanei- tät der Vorstellungskraft)에 속하기에 ‘지성 작
용’(Verstandes- handlung)이라 불리는 이 ‘결합의 개념’(der
Begriff der Verbin- dung)은 이 개념을 가능하게 하는 두 계기,
즉 결합되어 지는 것으로서의 ‘다양’(das Mannigfaltige)이라는 개
념과 이 다양을 결합하는 작용으로서의 ‘다양의 종합’(Synthesis
des Mannigfaltigen)이라는 개념 이외에 더 근본적인 개념을 필요
로 한다. 그것은 바로 이 ‘다양’과 ‘종합’의 근저에 놓여 있는 ‘통
일’(Einheit)이라는 개념이다. 그러나 ‘다양의 종합적 통일의 표
상’(Vorstellung der synthetischen Einheit des Mannigfaltigen,
B130f., 한글판 144)으로서의 ‘결합’ (Verbindung)이라는 개념은
다양하게 주어진 잡다함을 종합함으로서 생겨나게 되는 통일의 표
상, 즉 결합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결합의 개념에 선험적으
로 선행해야 하는 ‘결합의 가능성의 조건’이다. 그리고 이러한 ‘종합
적 통일’의 최상의 근거는 ‘자기의식의 통일’(Einheit des
Selbstbewußtseins), 즉 ‘통각의 종합적 통일’(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이다. ‘나는 생각한다’ (ich denke)라는
명제로 표현되는 ‘자기 스스로를 의식함’(Bewußt- sein meiner
selbst), 즉 ‘자기 의식’(Selbstbewußtsein)은 모든 표상에 반드시
22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수반되어져야 하고 ‘나의 표상’(meine Vorstell- ung)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즉 직관 중에 주어진 모든 표상들이 내 속에서 만나져서
‘나의 표상’으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모든 표상은 반드시 ‘사유하는
나’(ich denke)와 필연적으로 관계 맺음을 통해 이 ‘통각의 통일’에
속해져야만 한다. 이러한 ‘통각의 종합적 통일’은 칸트에 의하면 지
성의 논리적 사용에서 판단(Urteile)중에 성립하는 통일, 즉 판단
형식들의 근거일 뿐 아니라 직관 중에 주어진 다양의 통일을 완성
하는 근거이다. 즉 ‘통각의 종합적 통일’은 지성의 논리적 사용의
최상의 근거까지 포함하는 모든 지성 사용의 최상의 원칙인 것이
다.(B134n., 한글판 146참조)
나아가 칸트는 ‘범주의 초월적 연역’의 두 번째 부문과 ‘순수 지
성 개념의 도식론’에서 어떻게 대상에 관한 직관인 ‘현상’이 순수
지성에 기원을 둔 ‘판단 형식들’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 가능한지를
다룬다. 그 가능성은, 공간․시간 중에서 주어지는 대상인 현상들이
‘사유의 종합적인 통일’의 기능과 일치해야 함을 보여줌으로써 성
립한다. 즉 ‘형식적 직관’으로서의 공간과 시간 자체가 이미 ‘사유
의 종합적인 통일’을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달리 말해 우리 지성이
자신의 동일성을 의식할 수 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우리 직관의
종합적 통일이 바로 이 ‘사유의 종합적 통일’이 없이는 결코 가능
하지 않기에 단지 ‘범주에서 생각되어지는 직관 일반의 다양의 종
합’(die in der Kategorie gedachte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einer Anschauung überhaupt), 즉 ‘지성적 종합’(synthesis
intellectualis)이외에 ‘감각적인 직관의 다양을 종합하는
것’(Synthesis des Mannigfaltigen der sinnlichen Anschauung)
인 ‘형상적 종합’(synthesis speciosa)’이 요구된다.(B150f., 한글
판 154 이하 참조) 결국 범주가 단지 사유의 형식임을 넘어서서
객관적 실재성을 갖기 위해서는 ‘내감을 규정하는 것’(die
22
칸트『순수이성비판』23
Bestimmung des inneren Sinnes), 즉 ‘감각적인 직관의 다양을
종합하는 통각의 통일’(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des Mannig- faltigen der sinnlichen Anschauung, B150, 한글
판 154)이 필요하다. 결국 칸트는 ‘범주의 초월적 연역’을 통해
‘근원적인 통각의 종합적 통일’(die ursprünglich 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 tion)을 ‘사유’와 ‘존재’의 최상의 원칙으
로 제시한다. 즉 이 통각의 종합적 통일이 지성의 논리적 사용을
포함하는 모든 지성사용의 근거이자 동시에 현상으로서만 우리에
게 나타나는 모든 존재의 ‘대상성’(Objektivität)의 근거인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의 체계를 우리의 인식 능력들에 관한 이론들의
구성으로 파악해 볼 때, 지금까지 살펴본 ‘초월적 분석론’(transzendentale
Analytik)의 첫 번째 부분인 ‘개념의 분석론’(Analytik
der Begriffe)은 우리 인식 능력으로서의 좁은 의미의 ‘지성’(Verstand)
에 관한 연구이었다. 이제 ‘초월적 분석론’의 두 번째 부분인
‘원칙의 분석론’(Analytik der Grundsätze, A130ff./B169ff., 한글
판 164 이하)에서 칸트는 ‘규칙 아래에 포섭하는 능력’으로서의
‘판단력’(Urteilskraft)에 관해 다룬다. 칸트는 이제 우리 경험 인식
의 근저에 놓여있는 선험적 종합 판단을 찾아내어 정식화시키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우선 이러한 선험적 종합 판단이 생겨날 수
있는 조건, 즉 순수 지성 개념들이 감성에 적용될 수 있는 조건들
을 탐구한다. 그리고 ‘판단력’은 순수 규칙의 조건들을 포함하고 있
는 ‘지성의 개념’을 ‘현상’에 적용시키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이 ‘원칙의 분석론’은 “판단력에 대한 규준”(ein Kanon für die
Urteils- kraft, A132/B171, 한글판 164)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판단력의 초월적 이설’(die transzendentale Donktrin
der Urteilskraft)로서의 ‘원칙의 분석론’은 순수 지성 개념이 사
용될 수 있는 감성적 조건을 다루는 ‘순수 지성의 도식
24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론’(Schema- tismus des reinen Verstandes)과 이런 조건에 의
해 선험적으로 생겨나는 선험적 종합 판단들에 관해 다루는 ‘순수
지성의 원칙론’(Grundsätze des reinen Verstandes)으로 이루어
진다.(A136/B1 75, 한글판 167) ‘순수 지성의 도식론’에서의 핵
심 문제는 어떻게 서로 다른 기원을 갖고 있는, 따라서 “전적으로
이종적인”(ganz ungleichartig, A137/B176)인 것으로 여겨지는,
‘현상’과 ‘범주’가 서로 일치할 수 있느냐이다. 즉 칸트의 의문은
“어떻게 오성[지성]의 순수한 개념 속에 경험적 직관이 포섭될 수
있는가? 따라서 현상에다 범주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
가?”(A137/B176, 한글판 167)이다. 칸트가 발견한 이 문제의 해
결책은 바로 이질적인 양자를 ‘매개하는 표상’(die vermittelnde
Vorstellung)을 발견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감성적’(sinnlich)이
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성적’(intellecktuell)인 ‘제삼자’(ein
Drittes)의 매개를 통해 ‘범주’가 감성화 된다면 감성적인 현상들
이 범주 아래에 포섭되어 지는 것, 달리 말해 범주를 현상에 적용
하는 것은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매개하는 표상’이 칸트에 따르
면 바로 ‘초월적 도식’(das trans- zendentale Schema)이다. ‘시
간’(Zeit)만이 우리 감성의 형식이면서 동시에 모든 표상들의 결합
의 조건이기에 ‘초월적 도식’은 다름 아닌 ‘초월적 시간 규
정’(transzendental Zeitbestimmung)이다.(A138 f./B177f., 한글
판 168 참조) 이러한 초월적 시간 규정으로서의 ‘도식’들은 서로
다른 인식 능력인 ‘감성’과 ‘지성’을 매개할 수 있는 ‘구상
력’(Einbildungskraft)의 산물이다. 즉 그 자신 ‘종합하는 능력’이
라는 점에서 ‘지성’에 속하는 ‘구상력’은 ‘범주’에 상응해서 ‘감각
적 직관의 다양’(das Mannigfaltigen der sinnlichen Anschauung)
을 결합함으로써 ‘순수 개념의 도식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처럼 ‘매개하는 표상’으로서의 ‘순수 지성 개념들의 도식’을
24
칸트『순수이성비판』25
통해서 이제 범주를 현상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면, 이
러한 범주를 현상에 적용함에 의해 생겨나게 되는 ‘선험적 종합
판단들’(synthetische Urteile a priori)이 바로 ‘원칙의 분석
론’(Ana- lytik der Grundsätze)의 두 번째 장(場)에서 다루어지
고 있는 ‘순수 지성의 원칙들’(die Grundsätze des reinen
Verstandes)이다. 칸트는 ‘선험적 종합 판단’으로 이루어진 ‘순수
지성의 원칙들’의 참됨을 증명하기 위해 먼저 모든 ‘종합 판단
들’(synthetische Urteile)의 진리의 기준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최상의 원칙’(das oberste Prinzip)에 관해 묻는다. 모든 ‘분석적
판단’(analytische Urteile)은 ‘모순율’(der Satz des
Widerspruchs)에 의해 그 명제의 참과 거짓을 결정할 수 있다.
‘모순율’은 모든 분석 판단의 참됨을 결정하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모든 분석 판단의 “보편적이고 완전히 충분
한 원리”(das allgemeine und völlig hinreich- ende Prinzipium,
A151/B191, 한글판 174)에 해당한다.
그러나 ‘종합 판단들’은 ‘모순율’을 통해서는 그 참과 거짓을 결
정할 수 없다. “경험이 가능하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선천
적[선험적] 인식에다 객관적 실재성”(A156/B195, 한글판 177)을
주기에 ‘종합 판단들’의 진위를 결정하는 최상의 원리는 ‘경험의
가능성’(die Möglichkeit der Erfahrung)과 관계가 있다. 따라서
‘모든 종합 판단의 최상의 원리’(das oberste Principium aller
syn- thetischen Urteile)는 칸트에 따르면 “모든 대상은 가능한
경험에 있어서 직관의 다양을 종합적으로 통일할 무렵의 필연적
조건에 종속한다”(A158/B197, 한글판 178)는 것이다. 즉, ‘선험
적 종합 판단’이 참된 인식으로서 ‘객관적 타당성’(objeitive
Gültigkeit)을 갖게 되는 것은 인식의 구성요소들인 ‘선험적 직관
의 형식적 조건들’(die formalen Bedingungen der Anschauung
26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a priori)과 ‘구상력의 종합’(die Synthesis der
Einbildungskraft), 그리고 ‘초월적 통각의 필연적인 통일’(die
notwendige Einheit der transzenden- talen Apperzeption)이
‘가능한 경험’과 관계 맺는 것, 말하자면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
건들의 충족을 통해서이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경험 일반의 가
능 조건이 동시에 경험의 대상 가능의 조건이다”(die
Bedingungen der Möglichkeit der Erfahrung überhaupt sind
zugleich Bedingungen der Möglichkeit der Gegenstände der
Erfahrung, A158/B197, 한글판 178)라고 말하고 있다.
칸트는 이제 모든 경험의 근저에 놓여 있는 경험의 가능성의 조
건으로서의 이러한 ‘순수 지성의 원칙들’을 ‘범주표’의 ‘안내’(Anweisung)
에 따라서 제시한다.(A161/B200, 한글판 179 참조) ‘모
든 현상들은 그것이 직관이라는 점에서 외연양(extensive Größe)
을 갖는다’고 하는 ‘직관의 공리’(Axiome der Anschauung)의 원
칙, ‘모든 현상 중에서 실재적인 것(das Reale)은 내포량(intenive
Größe)을 갖는다’는 ‘지각의 선취’(Antizipationen der
Wahrnehmung)의 원칙, 그리고 ‘경험의 유추들’(Analogien der
Erfahrung)이라는 이름의 원칙들인 ‘실체 고정성의 원
칙’(Grundsatz der Beharrlichkeit der Substanz), ‘인과율의 법칙
에 따른 시간 후속의 원칙’(Grundsatz der Zeitfolge nach dem
Gesetze der Kausalität), ‘상호 작용 혹은 상호성의 법칙에 따른
동시 존재의 원칙’(Grundsatz des Zugleichseins nach dem
Gesetz der Wechselwirkung oder Gemeinschaft), 그리고 마지막
으로 양태(Modalität)의 범주를 통해 생겨나는 원칙인 ‘경험적 사고
일반의 요청’(Postulate des empirischen Denkens über- haupt)
이 그것들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원칙의 분석론’(Analytik der Grundsätze), 즉
26
칸트『순수이성비판』27
‘판단력의 초월적 이설’(die transzendentale Doktrin der
Urteils- kraft)의 마지막 장에서 칸트는 “모든 대상 일반을 현상
체와 가상체로 구별하는 근거에 관하여”(A235/B294, 한글판 229)
라는 제목 아래에서 ‘초월 논리학’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초월적 분
석론’ (transzendentale Analytik) 전체의 결론을 정리하고 있다.
즉 ‘지성’ (Verstand)은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질 수 있는 ‘감
성’(Sinnlichkeit)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밝
혀진 ‘지성의 원칙들’은 단지 ‘현상을 해명하는 원리들’(Prinzipien
der Exposition der Erscheinungen)일 뿐이라는 것이
다.(A246f./B303, 한글판 235 참조) 따라서 이론적 인식으로서의
형이상학에서는 ‘가능한 경험의 대상들’[현상들]이 아닌 것들에 관
한 인식은 불가능하기에 ‘감각적 대상’(sinnliche Gegenstände)이
아닌 ‘사물 자체’(Dinge an sich)’나 혹은 경험 대상의 속성이 아닌
‘의지의 자유’와 같은 것은 적어도 경험을 통해서 인식될 수 있는
영역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때문에 칸트는 이제 ‘초월 논리학’의 후
반부, 즉 ‘가상의 논리학’(Logik des Scheins)이라 부른 ‘초월적 변
증론’(transzendentale Dialektik)에서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는
결코 인식할 수 없는 대상들에 대한 ‘이성’(Vernunft)을 통한 잘못
된 인식들을 폭로하고 그러한 인식의 시도는 결국 ‘가상’(Schein)
에 빠질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지금까지의 ‘초월적 분석론’의 결과, 즉 가능한 경험의 대
상들의 조건과 그 총체로 구성되는 자연에 대한 칸트의 이론은
전통적 형이상학의 분류에 의하면 ‘일반 형이상학’(metaphysica
generalis)에 해당하는 ‘존재론’(Ontologie)의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하게 된다.(A247/B303, 한글판 235 참조) 반면에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형이상학, 즉 ‘특수 형이상학’(metaphysica
specialis)은 ‘초월적 분석론’의 결과에 근거해서 비판을 받게 된
28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다. ‘순수 이성의 오류 추리’,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 ‘순수 이성
의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는 ‘초월적 변증론’은 바로 이 ‘특수 형
이상학’의 전통적인 탐구 대상이었던 ‘영혼’(Seele), ‘세계’(Welt),
‘신’(Gott)에 관한 전통적인 이론들 각각에 대한 칸트의 비판을
담고 있다.
‘순수 이성의 오류 추리’(Paralogismus der reinen Vernunft)
장(場)에서 칸트는 영혼의 실체성(Substantialität), 즉 영혼의 ‘단
순성’(Einfachheit), ‘인격성’(Personalität), ‘불멸
성’(Immortalität) 등을 증명하려는 ‘이성적 심리학’(rationale
Psychologie)의 시도가 ‘잘못된 추론들’(Paralogismen)에 이르게
됨을 보여 준다.(A341ff./ B399ff., 한글판 289 이하 참조).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Antino- mie der reinen Vernunft)장(章)은 전
통적인 ‘이성론적 우주론’ (rationale Kosmologie)에 관한 비판
이다.(A405ff./B432ff., 한글판 338 이하 참조) 칸트는 여기서
‘무제약적인 전체로서의 세계’에 관한 이념을 만들어 내는 이성은
자기 자신과 모순에 빠진다는 것을 제시한다. 즉, 공간․시간 상에
서의 세계의 분량을, 현상에서 주어진 전체의 요소들의 성질을,
현상 일반의 전체의 인과율에 따른 결합들의 관계를, 그리고 자
연에서의 모든 사물과 사건들의 신 혹은 물질과 같은 궁극적인
존재에 대한 의존성을 이성을 통해 인식하려고 하는 모든 시도에
서부터 각각 ‘정립’(These)과 ‘반정립’(Antithese)이라는 ‘순수 이
성의 이율배반’은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율배반’은 칸
트에 의하면 ‘현상’(Erschein- ung)’과 ‘사물 자체’(Dinge an
sich)를 분명하게 구별하여 주는 ‘초월적 관념론’(der
transzendentale Idealismus)의 가르침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
‘초월적 변증론’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장(章)인 ‘순수 이성
의 이상’(das Ideal der reinen Vernunft)은 ‘존재론적인 신 존재
28
칸트『순수이성비판』29
증명’, ‘우주론적인 신 존재 증명’ 그리고 ‘자연 신학적인 신 존재
증명’을 시도하는 ‘이성적 신학’(rationale Theologie)에 대한 칸
트의 비판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A567ff./B595ff., 한글판
426 이하 참조) 이러한 형이상학적 사유에 대한 칸트의 비판의 핵
심은 어떤 사물의 ‘현존’(Existenz)이란 결코 ‘개념’(Begriff)으로
부터 도출될 수 없는 ‘종합적 인식’(synthetische Erkenntnis)이
라는 것이다. 따라서 가능한 경험의 대상에만 타당한 ‘실재
함’(Wirklichkeit)의 범주를 어떠한 경험적 직관 중에도 주어질 수
없는 신에게 적용시키고 이에 근거해서 존재함을 증명하려는 것
은 불가능한 일이다.
‘초월적 감성학’과 ‘초월 논리학’으로 이루어진 ‘초월적 원리론’
(transzendentale Elementarlehre)이 순수 이성에서부터 생겨나
는 철학적 이론이라는 ‘하나의 건축물’(ein Gebäude)의 재료와 요
소들을 제공해 주고 그로 인해 이론적 이성 사용의 경계를 한정
지을 수 있었다면 이제 ‘초월적 방법론’(transzendentale
Methoden- lehre)에서 칸트는 마지막으로 그러한 순수 이성의
이론적 건축물을 건축하기 위한 설계도를 그리려고 한
다.(A707ff./B735ff., 한글판 503 이하 참조) 즉 칸트가 ‘초월적
방법론’에서 원하는 바는 한마디로 ‘순수 이성의 완전한 체계를 위
한 형식적인 조건들을 규정’(A707f./B735f., 한글판 503)하는 것
이다. 이런 의도에서 ‘순수이성의 훈련’(Disziplin der reinen
Vernunft)에서는 철학과 수학의 방법을 비교하는 것이, ‘순수 이
성의 규준’(Kanon der reinen Vernunft)에서는 이성의 순수 사용
의 궁극적인 목적을 규정하는 것이, ‘순수 이성의 건축
술’(Architektonik der reinen Vernunft)에서는 순수 이성 인식의
체계를 해명하는 것이, 그리고 ‘순수 이성의 역사’(Geschichte
der reinen Vernunft)에서는 철학의 역사에 등장한 철학적 체계
30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와 입장들을 유형적으로 나누어 체계화시키는 것이 다루어지게
된다.
Ⅲ. 원전의 목차
드리는 말
〔초판의〕머리말
〔재판의〕머리말
초판의 들어가는 말
1. 초월 철학의 이념 (구상)
분석적 판단과 종합적 판단의 구별
2. 초월 철학의 구분
재판의 들어가는 말
1. 순수 인식과 경험적 인식의 구별
2. 우리는 어떤 종류의 선험적 인식 ‘방식’을 소유하고, 상식이라
도 이런 인식을 결(缺)해 있지 않다
3. 철학은 모든 선험적 인식의 가능, 원리, 범위 등을 규정하는
학문을 필요로 한다
4. 분석적 판단과 종합적 판단의 구별
5. 이성에 기본한 전(全) 이론 과학 중에는 선험적 종합 판단이
원리로서 포함되어 있다
6. 순수 이성의 일반적 과제
7. 순수 이성 비판이라는 이름을 갖는 특수한 학문의 이념과 구

1. 초월적 원리론
30
칸트『순수이성비판』31
제1부 초월적 감성론
§1. 들어가는 말
제1절 공간론 (§2~3)
제2절 시간론 (§4~7)
§8. 초월적 감성론의 일반적 주석
제2부 초월 논리학
들어가는 말 : 초월 논리학의 이념
1. 논리학 일반
2. 초월 논리학
3. ‘일반’ 논리학의 구분 : 분석론과 변증론
4. ‘초월적’ 논리학의 구분 : 초월적 분석론과 초월적 변증론
제1문(門) 초월적 분석론
제1편 개념의 분석론
제1장 ‘지성의 모든 순수한 개념’을 발견하는 실마리
제1절 ‘지성’의 논리적 사용 일반
제2절 §9. 판단에서의 지성의 논리적 기능
제3절 §10. ‘지성의 순수한 개념’ 즉 범주 (§10~12)
제2장 지성의 순수한 개념의 연역
제1절 §13. 초월적 연역 일반의 원리
§14. 범주가 초월적 연역으로 건너감
제2절 지성의 순수한 개념의 초월적 연역 (§15~27)
제2편 원칙의 분석론 (판단력의 초월적 이설)
들어가는 말 : 초월적 판단력 일반
제1장 지성의 순수 개념의 도식성(圖式性)
32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제2장 순수 지성의 원칙의 체계
제1절 모든 분석적 판단의 최상 원칙
제2절 모든 종합적 판다의 최상 원칙
제3절 순수 지성의 종합적 원칙 전체의 체계적인 표시
1. 직관의 공리(公理)
2. 지각의 예료(豫e)
3. 경험의 유추
첫째 유추. 실체 지속의 원칙
둘째 유추. 인과 법칙에 따른 시간 후속(後續)의 법칙
셋째 유추. ‘상호 작용 혹은 상호성의 법칙’에 따른 동시
존재의 원칙
4. 경험적 사고 일반의 요청
관념론 반박
원칙들의 체계에 대한 일반적 주석
제3장 모든 대상 일반을 현상체(現像體)와 가상체(可想體)로 구
별하는 근거
부록 : 반성 개념의 모호성
반성 개념의 모호성에 대한 주석
제2문(門) 초월적 변증론
들어가는 말
1. 초월적 가상(假象)
2. 초월적 가상의 자리(座)로서의 순수 이성
A. 이성 일반
B. 이성의 논리적 사용
C. 이성의 순수 사용
제1편 순수이성의 개념들
제1절 이념 일반
32
칸트『순수이성비판』33
제2절 초월적 이념들
제3절 초월적 이념들의 체계
제2편 순수 이성의 변증적 추리
제1장 순수 이성의 오류 추리
(1) 마음(영혼)의 존손성에 대한 멘델스존의 증명을 반박
(2) 이성적 심리학에서 우주론에로 넘어감에 대한 일반적 주석
제2장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
제1절 우주론적 이념들의 체계
제2절 순수 이성의 배반론(背反Q)
첫째 이율배반
둘째 이율배반
셋째 이율배반
넷째 이율배반
제3절 ‘이율배반의 항쟁에 있어서’의 이성의 관심
제4절 단적으로 해결될 수 있어야 하는 한(限)의 순수 이성의
초월적인 과제들
제5절 네 개의 초월적 이념 전부를 통해 본 우주론적 문제의
회의적인 표시
제6절 우주론적 변증론을 해결하는 열쇠로서의 선험적 관념론
제7절 이성의 우주론적 자기모순의 비판적 해결
제8절 우주론적 이념에 관한 순수이성의 통제적 원리
제9절 모든 우주론적 이념에 관하여 이성의 통제적 원리를 경
험적으로 사용하는 일
I. 현상들을 합성케 하여 세계전체라고 할적에 합성의 전
체성에 관한 우주론적 이념의 해결
II. 직관에 주어진 전체를 분할할 적에 분할의 전체성에 관
한 우주론적 이념의 해결
맺는 말[과 예비의 말]
III. 세계의 사건들을 그것의 원인에서 도출할 적에 이런 도
34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출의 전체성에 관한 우주적 이념의 해결
(a)자유에 의한 원인성[인과성]이 가능함
(b)자유라는 우주론적 이념의 해명
IV. 현상의 실재 일반에서 보아진 ‘현상 의존의 전체성’에
관한 우주론적 이념의 해결
순수 이성의 전(全) 이율배반을 끝맺는 말
제3장 순수 이성의 이상(理想)
제1절 이상(理想)일반
제2절 초월적 이상(초월적 원형)
제3절 사변 이성이 최고 존재의 실재를 추리하는 논거
제4절 하나님 실재의 존재론적 증명의 불가능성
제5절 하나님 실재의 우주론적 증명의 불가능성
필연 존재의 현존에 관한 모든 초월적 증명에 있어서
의 변증적 가상의 발견과 설명
제6절 자연 신학적 증명의 불가능성
제7절 이성의 사변적 원리에 기본한 모든 신학의 비평
선험적 변증론의 부록
(A) ‘순수 이성의 이념들’의 통제적 사용
(B) 인간 이성의 자연스러운 변증성(辨證性)의 궁극 의도
칸트『순수이성비판』35
2. 초월적 방법론
들어가는 말
제1장 순수이성의 훈련
제1절 독단적 사용을 할 무렵의 순수 이성의 훈련
제2절 논쟁적 사용에 관한 순수 이성의 훈련
모순에 빠진 순수 이성을 회의론에 의해서 만족시킬 수
없음
제3절 가설(假說)에 관한 순수이성의 훈련
제4절 증명에 관한 순수이성의 훈련
제2장 순수 이성의 규준
제1절 우리 이성의 순수한 사용의 최후 목적
제2절 순수 이성의 최후 목적의 규정 근거인 최고선(最高善)의
이상
제3절 억견(臆見)․앎․신앙
제3장 순수 이성의 건축술
제4장 순수 이성의 역사
35
36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제2부 지식 지도
Ⅰ. 철학 문헌․철학자․철학 용어․지식 지도
○ 철학 문헌 :『순수이성비판』
원전의 전체내용 요약 :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은 ‘이성’(Vernunft)
에 의한 ‘이성’ 자신의 비판을 의미한다. 정당한 요구는 보호해 주지
만 그렇지 못한 경우, 즉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월권에 대해서는
그 요구를 거절하는 ‘법정’(Gerichtshof)에서 ‘이성’은 자신의 권한
과 한계에 관해 스스로 묻는다. 이러한 ‘이성 능력’ 자체에 대한 비
판은 잃어버린 형이상학의 위엄을 되찾고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일이다. 우리 인식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서
대상인식을 시도한 모든 이전의 이성의 월권에서 벗어나서 학으로
서의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밝히는 일은 이제 ‘선험적 종합 판단’으
로 이루어진 형이상학적 진술의 가능성을 탐구하여 선험적 인식의
원천과 범위, 그리고 그 한계를 규정하는 일로 요약된다. 우리에게
가능한 경험의 대상은 시간․공간 중에 주어지는 ‘현상’이지 결코 인
식 주관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사물 자체’일 수 없다는『순수이성
비판』의 핵심 생각을 통해 칸트는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다. (상세한 내용 요약은 해설서 1부의 ‘『순
수이성비판』의 개관’ 참조)
원전의 세부내용 목차 :
(해설서 1부의 ‘원전의 목차’ 참조)
칸트『순수이성비판』37
원전의 중요성 해설 :
서양의 근대 철학이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
기 시작하였다면 이러한 근대 철학의 문제 의식은 칸트에게서 본
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사유의 전
환, 즉 대상에 대한 관심에서 그 대상을 구성하는 ‘주체의 자발적
인 행위’에 대한 관심으로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형이상학의 가
능성을 탐구한 칸트의 저작『순수이성비판』은 이런 점에서 서양
근대 철학의 발생과 발전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또한 『순수이
성비판』에서의 칸트의 철학적 문제 의식에 대한 바른 이해는 왜
그의 초월적 관념론이 이후 피히테, 셀링,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으로 발전해 갔는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토대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의 주저『순수이성비판』에서의 칸트의 철학
적 문제에 대한 철저한 연구는 서양 근대 철학의 이해에 필수적
이라 하겠다.
원전의 중요한 철학 용어 : 이성, 지성, 감성, 시간, 공간, 범주,
형이상학
한국어 표준 번역본 제목 :『순수이성비판』
한국어 표준 번역본 번역자 : 최재희
한국어 표준 번역본 출판 도시 : 서울
한국어 표준 번역본 출판사 : 박영사
한국어 표준 번역본 출판 연도 : 1990년(초판 1972년)
한국어 디지털 텍스트 :
영어 표준 번역본 제목 :
영어 표준 번역본 번역자 :
37
38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영어 표준 번역본 출판도시 :
영어 표준 번역본 출판사 :
영어 표준 번역본 출판 연도 :
영어 디지털 텍스트 :
원어 표준 판본 제목 : Kritik der reinen Vernunft
원어 표준 판본 편집자 : Raymund Schmidt
원어 표준 판본 출판 도시 : Hamburg
원어 표준 판본 출판사 : Felix Meiner
원어 표준 판본 출판 연도 : 1956년
원어 표준 판본 초판 출판 연도 : 1926
원어 디지털 텍스트
○ 철학자 : 칸트
생애 해설 :
임마누엘 칸트는 1724년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
어남. 경건한 신앙인이었던 어머니와 고향의 학교 교육을 통해
경건주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남. 174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입학, 철학, 수학, 자연과학 등을 공부함. 1770년부터 쾨니히스베
르크 대학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정교수에 취임. 1781년 그의
주저『순수이성비판』을, 1788년에는『실천이성비판』을, 1790년
에는『판단력비판』 등의 많은 저술을 남김. 1804년 사망해서 자
신의 고향인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묘지에 묻힘. (상세 생애에 대
해서는 해설서 1 부 ‘칸트의 생애와 작품’ 참조)
한국어 이름 : 임마누엘 칸트
칸트『순수이성비판』39
영어 이름 : Immanuel Kant
원어 이름 : Immanuel Kant
인물 사진 :
출생 국가 : 프로이센(Preußen)
출생 도시 :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출생 연도 : 1724년
사망 연도 : 1804년
한국어 웹사이트 :
영어 웹사이트 :
원어 웹사이트 :
주요 저작1 한국어 제목 :『순수이성비판』
주요 저작2 한국어 제목 :『실천이성비판』
주요 저작3 한국어 제목 :『판단력비판』
활동 시기 : 서양 근대 철학
활동 분야 : 형이상학, 인식론
대표 사상 : 비판 철학
대표 이론 : 관념론
스승 : 마틴 크누첸(Martin Knutzen)
제자 : 마르쿠스 헤르쯔(Markus Herz)
지지자 : 슐츠(Joh. Schultz), 라인홀드(Karl Leonhard
Reinhold)
반대자 : 가르베(Chr. Garve), 멘델스존(M. Mendelssohn), 야코비
39
40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Friedrich Heinrich Jacobi)
영향을 준 철학자 : 라인홀드(Karl Leonhard Reinhold), 피히테
(Johann Gottlieb Fichte), 셸링(Friedrich
Wil- helm Joseph Schelling),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영향을 받은 철학자 : 로크(John Locke), 흄(David Hume), 볼
프(Chr- istian Wolff), 라이프니츠
(Gottfried Wilhelm Leibniz)
Ⅱ.『순수이성비판』의 지식 지도
1 논리학(Logik)
1.1. 일반 논리학
1.1.1. ‘논리학’의 일반적 특성
1.1.1.1.『순수이성비판』의 체계와 ‘초월 논리학’( /1.1.1.1,
1.1.1.2)
1.1.1.2. 인간 인식 능력의 두 원천과 ‘논리학’의 성격
1.1.1.2.1. 두 가지 종류의 인식(1.1.2.1, 1.1.2.2 /1.1.2.2,
1.1.2.3)
1.1.1.2.2. 참된 인식의 의미(1.1.2.3, 1.1.2.4 /1.1.2.4, 1.1.2.5)
1.1.1.2.3. 논리학의 성격(1.1.2.5 /1.1.2.6)
1.1.1.3. 논리학 일반의 분류
1.1.1.3.1. 논리학 일반의 분류 목적( /1.1.3.1)
1.1.1.3.2. 기본 논리학(Elementarlogik)(1.1.3.1 /1.1.3.2)
1.1.1.3.3. 특수한 지성 사용의 논리학(1.1.3.1 /1.1.3.3)
1.1.1.3.4. 순수 논리학과 응용 논리학(1.1.3.2, 1.1.3.3 /1.1.3.5,
1.1.3.6)
칸트『순수이성비판』41
1.1.1.3.5. 순수 논리학의 본질(1.1.3.4 /1.1.3.8)
1.2. 초월 논리학(transzendentale Logik)( /1.1-1.4)
1.2.1. 초월 논리학의 이념
1.2.1.1. ‘일반 논리학’과 ‘초월 논리학’의 비교
1.2.1.1.1. 일반 논리학의 한계(1.2.1.1 /1.2.1.1, 1.2.1.5)
1.2.1.1.2. 초월 논리학의 필요성(1.2.1.1, 1.2.1.2
/1.2.1.2-1.2.1.5)
1.2.1.2. ‘초월적’(transzendental)의 뜻
1.2.1.2.1. 초월적이라는 용어의 오해(1.2.2.1 /1.2.2.2)
1.2.1.2.2. 초월적 인식의 뜻(1.2.2.1~1.2.2.4 /1.2.2.3-1.2.2.9)
1.2.1.3. ‘초월 논리학’의 정의(定義)
1.2.1.3.1. ‘순수 지성 개념들의 체계’로서의 ‘초월 논리학’
(1.2.3.1.1, 1.2.3.1.2 /1.2.3.1.2, 1.2.3.1.3)
1.2.1.3.2. ‘이념’(Idee)으로서의 ‘초월 논리학’( /1.2.3.2.1,
1.2.3.2.2)
1.2.2. ‘초월 논리학’의 분류 : ‘초월적 분석론’과 ‘초월적 변증론’
( /1.3.1.1)
1.2.2.1. 보편적 진리의 기준(das allgemeine Kriterium der
Wahrheit)
( /1.3.1.6)
1.2.2.1.1. 진리에 관한 명목상의 설명(1.3.1.1 /1.3.1.2)
1.2.2.1.2. 진리에 관한 보편적 기준의 어려움(1.3.1.2 /1.3.1.3)
1.2.2.1.3. 진리의 소극적 조건(1.3.1.3, 1.3.1.4 /1.3.1.4, 1.3.1.5)
1.2.2.2. ‘논리학’의 분류 : ‘분석론’(Analytik)과 ‘변증
론’(Dialektik)
(/1.3.2.1)
1.2.2.2.1. 분석론의 정의(1.3.2.1 /1.3.2.2)
41
42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1.2.2.2.2. 변증론의 정의(1.3.2.2 /1.3.2.3)
1.2.2.2.3. ‘규준’(Kanon)과 ‘기관’(Organon)
(1.3.2.3~1.3.2.5/1.3.2.3, 1.3.2.4)
1.2.2.3. ‘진리의 논리학’(Logik der Wahrheit)( /1.3.3.1)
1.2.2.3.1. 초월적 분석론의 고유성(1.3.3.1 /1.3.3.2)
1.2.2.3.2. 진리의 기준에 관한 초월적 분석론의 딜레마
(1.3.3.1 /1.3.3.3, 13.3.4)
1.2.2.3.3. 진리의 논리학으로서의 초월적 분석론
(1.3.3.1, 1.3.3.2 /1.3.3.5, 1.3.3.6)
1.2.2.4. ‘가상의 논리학’(Logik des Scheins)
1.2.2.4.1. 초월적 변증론의 발생(1.3.4.1 /1.3.4.1., 1.3.4.2)
1.2.2.4.2. 가상의 논리학으로서의 초월적 변증론
(1.3.4.2, 1.3.4.2 /1.3.4.3, 1.3.4.4)
1.2.3. ‘초월 논리학’과 ‘존재론’(Ontologie)( /1.4.1)
1.2.3.1. 초월적 분석론의 결과(1.4.1 /1.4.2)
1.2.3.2. 존재론으로서의 초월적 분석론(1.4.1 /1.4.3, 1.4.4)
2. 초월적 감성학(Transzendentale Ästhetik)( /2.1~2.3)
2.1. 초월적 감성학의 성격( /2.1.1)
2.1.1.『순수이성비판』의 체계와 ‘초월적 감성학’( /2.1.1.1)
2.1.2. 수용하는 인식 능력으로서의 ‘감성(Sinnlichkeit)’
(2.1.2.1, 2.1.2.2 /2.1.2.1, 2.1.2.2)
2.1.3. 감성의 순수 형식(die reine Form der Sinnlichkeit)
2.1.3.1. 현상의 질료와 형식(2.1.3.1 /2.1.3.1)
2.1.3.2. 순수 직관으로서의 감성의 순수 형식
(2.1.3.2, 2.1.3.3/2.1.3.2-2.1.3.4)
2.1.4. ‘초월적 감성학’의 정의(定義)
칸트『순수이성비판』43
2.1.4.1. 선험적인 감성의 원리에 관한 학문(2.1.4.1 /2.1.4.1)
2.1.4.2. 감성학의 뜻(2.1.4.2 /2.1.4.2)
2.2. ‘공간’(Raum)( /2.2.1)
2.2.1. 공간 개념에 관한 형이상학적 구명(究明)
(2.2.1.1 /2.2.1.1, 2.2.1.2)
2.2.1.1. 공간 표상의 첫 번째 논증(2.2.1.1.1 /2.2.1.1.1)
2.2.1.2. 공간 표상의 두 번째 논증(2.2.1.2.1 /2.2.1.2.1)
2.2.1.3. 공간 표상의 세 번째 논증(2.2.1.3.1 /2.2.1.3.1)
2.2.1.4. 공간 표상의 네 번째 논증(2.2.1.4.1 /2.2.1.4.2)
2.2.2. 공간 개념의 초월적 구명(究明)
2.2.2.1. 공간 개념을 초월적으로 구명함(2.2.2.1 /2.2.2.1)
2.2.2.2. 기하학의 예(2.2.2.2, 2.2.2.3 /2.2.2.2, 2.2.2.3)
2.2.3. 공간 개념에 관한 논의의 결과
2.2.3.1. 감성의 주관적 조건으로서의 공간( /2.2.3.1-2.2.3.3)
2.2.3.2. 공간의 경험적 실재성(2.2.3.1 /2.2.3.4, 2.2.3.5)
2.3. ‘시간’(Zeit)( /2.3.1)
2.3.1. 시간 개념에 관한 형이상학적 구명(究明)
2.3.1.1. 시간 표상의 첫 번째 논증(2.3.1.1.1 /2.3.1.1.1)
2.3.1.2. 시간 표상의 두 번째 논증(2.3.1.2.1 /2.3.1.2.1)
2.3.1.3. 시간 표상의 세 번째 논증(2.3.1.3.1 /2.3.1.3.1,
2.3.1.3.2)
2.3.1.4. 시간 표상의 네 번째 논증(2.3.1.4.1 /2.3.1.4.1)
2.3.2. 시간 개념의 초월적 구명(究明)(2.3.2.1, 2.3.2.2 /2.3.2.1,
2.3.2.2)
2.3.3. 시간 개념에 관한 논의의 결과
2.3.3.1. 주관의 조건으로서의 시간(2.3.3.1 /2.3.3.1, 2.3.3.2)
43
44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2.3.3.2. 시간 표상의 이중적 특성(2.3.3.2 /2.3.3.3, 2.3.3.4)
2.4. ‘초월적 감성학’에 관한 일반적 주석
2.4.1. 초판의 주석(2.4.1 /2.4.1)
2.4.2. 재판의 주석(2.4.2 /2.4.1)
칸트『순수이성비판』45
3. 범주(Kategorie)
3.1.『순수이성비판』의 체계와 범주(3.1.1 /3.1.1-3.1.4)
3.2.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
3.2.1. ‘범주’의 ‘기원’(Ursprung)(3.2.1.1 /3.2.1.1-3.2.1.3)
3.2.2.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의 기준들
3.2.2.1. 개념의 분석론의 기준들(3.2.2.1 /3.2.2.1-3.2.2.3)
3.2.2.2. 체계의 필요성(3.2.2.2, 3.2.2.3 /3.2.2.4, 3.2.2.5)
3.2.2.3. 초월 철학의 의무(3.2.2.4 /3.2.2.6)
3.2.3.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의 원칙(3.2.3.1, 3.2.3.2 /3.2.3.1)
3.2.4.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의 ‘실마리’(Leitfaden)( /3.2.4.1)
3.2.4.1. 개념을 통한 인식 능력으로서의 ‘지성’(3.2.4.1.1 /3.2.4.1.1)
3.2.4.2. ‘판단’(Urteil)에서 성립하는 개념의 사용(3.2.4.2.1
/3.2.4.2.1)
3.2.4.3. ‘판단에서의 통일의 기능’(Funktionen der Einheit in
den Urteilen)(3.2.4.3.1 /3.2.4.3.1)
3.2.5. ‘판단표’(Urteilstafel)(3.2.5.1 /3.2.5.1)
3.2.6. ‘범주표’(Tafel der Kategorien)
3.2.6.1. 범주표 도출의 근거(3.2.6.1.1 /3.2.6.1.1)
3.2.6.2. ‘종합하는 근원적인 순수 개념의 표’(3.2.6.2.1
/3.2.6.2.1)
3.3. 범주의 초월적 연역
46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칸트『순수이성비판』47
제 3 부『순수이성비판』의 주요 주제어 분석
1. 초월 논리학(Transzendentale Logik)
서양 근대 철학의 보편적인 특징을 사유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
한 관심에서 찾는다면 이러한 근대 철학의 문제 의식은 칸트에게
서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칸트는 그의 저서『순
수이성비판』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사유의 전환을 통해, 즉 대상에
대한 관심에서 그 대상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의 자발적인 행위’
에 대한 관심으로의 전환을 통해, 대상 인식에 있어서 인간 인식
능력의 자발성이 갖는 의미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대상 인식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사유의 주체가 어떤 능동적인
행위를― 사유함이라는 의미에서의 행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줌
으로써 칸트는 근대 철학의 주된 관심이었던 사유 주체로서의 인
간 인식 능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의 문제 의식은 단순히 여기에
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궁극적 물음은 사실 철학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전통적 형이상학의 근본 문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전통
적 형이상학의 주제였던 ‘존재’와 ‘사유’의 관계에 대한 해명은 칸
트에게서 새로운 실마리를 찾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는『순
수이성비판』에서 자신의 작업이 “이제껏 숨겨져 왔던 형이상학의
전(全) 비밀을 드러나게 해줄 열쇠”(헤르츠에게 보낸 편지; AA X
130) 이길 기대했었던 것 같다. 이처럼 칸트가 전통적 형이상학의
물음을 자신의『순수이성비판』의 주된 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잘 보여 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일견 ‘형이상학’이라
는 학문과는 무관해 보이는 ‘초월 논리학’(transzendentale
Logik)’이라는 개념이다.
48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칸트는『순수이성비판』의 전체 체계를 전통적인 논리학의 연
구 대상이었던, ‘개념’(Begriffe), ‘판단’(Urteile), ‘추
리’(Schlüsse) 라는 요소에 맞추어 구성하면서『순수이성비판』의
주된 본문을 ‘초월 논리학’이라 이름 붙이고 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한마디로 말해 칸트의『순수이성비판』이 ‘논리학’과 도대
체 무슨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질문
을 해보자. 첫째,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철학의 한 분야로서의 ‘논
리학’이 학(學)의 안전한 길을 걸어온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칸
트가(BVIII 참조) 왜 굳이 또 다른 이름의 ‘논리학’에 대해 언급
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 새로운 이름의 논리학, 즉
1781년 칸트가『순수이성비판』의 초판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고
있는 ‘초월 논리학’이라는 용어가 이전의 ‘일반 논리
학’(allgemeine Logik)의 결점을 보안하는 대체물인지 혹은 이전
의 전통적인 ‘논리학’과는 다른 새로운 철학의 체계인지가 의문이
다. 둘째로, 만약 이 ‘초월 논리학’이 전통적인 ‘일반 논리학’과는
다른 철학적 체계라면, 좀더 정확히 말해서 ‘초월 논리학’이 단지
인간의 사유의 법칙만을 다루는 ‘일반 논리학’이 아니라 전통적
형이상학의 주제인 ‘존재’와 ‘사유’의 관계를 다루는 철학적 이론
의 체계라면, 왜 칸트는 여기에 굳이 ‘논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이
고 있는가?
첫 번째 질문에 답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일반 논리학’과 ‘초월
논리학’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두 번째 질문과
관련하여서는 무엇보다 ‘초월 논리학’의 근본 이념이 밝혀져야 한
다. 이를 통해 ‘초월 논리학’이『순수이성비판』의 주된 과제와 어
떤 관련이 있는지, 왜 칸트가 자신의 체계에 굳이 ‘논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지가 비로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초월 논리학’의 이념을 이해하려는 것은 칸트가『순수이성비
48
칸트『순수이성비판』49
판』에서 근본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과제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이
해하려는 한 시도가 될 것이고 이를 통해『순수이성비판』이 전통
적 형이상학의 오랜 질문들에 어떤 새로운 답을 시도하고 있는지
가 밝혀지게 될 것이다.
1.1. ‘논리학’의 일반적 특성
1.1.1.『순수이성비판』의 체계와 ‘초월 논리학’
앞서 언급했듯이『순수이성비판』은 전통적인 ‘논리학’의 체계에
근거해서 구성되어 있다. 그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순수이성비
판』의 본문은 크게 두 부분, 즉 “초월적 원리
론”(Transzendentale Elementarlehre)”과 “초월적 방법
론”(Transzendentale Methoden- lehre)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논리학’의 체계인 ‘원리론’(Elementarlehre)과 ‘방
법론’(Methodenlehre)의 구분에 따른 것이다. 또한 ‘초월적 원리
론’의 제2부를 “초월적 분석론”(Die transzendentale Analytik)과
“초월적 변증론”(Die transzendentale Dialektik)으로 나누고,
“초월적 분석론”을 또 다시 “개념의 분석론”(Die Analytik der
Begriffe)과 “원칙의 분석론”(Die Analytik der Grundsätze)으로
구분한 것은 ‘초월적 원리론’을 칸트가 ‘논리학’의 전통적인 주제
였던 ‘개념’(Begriffe), ‘판단’(Urteile), ‘추리’ (Schlüsse)라는 요
소들에 상응해서 서술하고 있음을 잘 보여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칸트는 내용상 ‘초월적 원리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2부를
“초월 논리학”(Die transzendentale Logik)”이라 이름 붙임으로
써 ‘논리학’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암시해 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순수이성비판』과 ‘논리학’과의 관계를, 그
리고 ‘초월 논리학’의 특성을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
50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다. 무엇보다 여기서 이해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서양 철학사에
서 ‘초월 논리학’이라는 용어가『순수이성비판』에 처음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초월 논리학’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칸트
자신의 설명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 칸트는 ‘초월 논리
학’ 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초월 논리학’이 이전의 ‘논
리학’과 어떤 차이를 갖는지, 그 근본 이념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
떤 체계로 구성되어 있는지 등에 관한 자신의 핵심적인 생각을 “초
월 논리학의 이념”(Idee einer transzendentalen Logik)이라는 제
목 하에 잘 설명해 주고 있다.(A50-64/B74-88, 한글판 96-103
참조) 이제 여기에 나타난 칸트의 설명에 주목하는 것은 ‘초월 논
리학’의 ‘들어가는 말’(Einleitung)로 쓰여진 이 짧은 텍스트가 ‘초
월 논리학의 이념’에 대한 충실한 이해와 더불어『순수이성비판』
의 전(全) 체계를 해석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
다.
1.1.2. 인간 인식 능력의 두 원천과 ‘논리학’의 성격
네 개의 작은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초월 논리학의 이념”의
첫 번째 장은 “I. 논리학 일반에 관하여”(I. Von der Logik
überhaupt, A50/B74)이다. 흥미로운 것은 칸트가 논리학 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인식’(Erkenntnis)의 두 가지 서로 다른 기원에 관
한 설명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흔히 ‘인식 능력
의 이분법’(Dichotomie des Erkenntnisvermögens)이라 불리는
칸트 특유의 이분법적 사고에 근거해서 ‘논리학’ 고유의 성격을 설
명하려는 그의 의도 때문이다.
우리의 인식은 심성의 두 기본 원천에서 발생한다. 하나의 원천은
표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인상의 수용성)이다. 또 하나의 원천은 이런
50
칸트『순수이성비판』51
표상을 통해서 대상을 인식하는 능력(개념의 자발성)이다. 전자에 의
해서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후자에 의해서 (심성의 규정으로서의)
대상의 표상에 관계해서 생각(思考)된다. 그러므로 직관과 개념은 우
리의 전(全) 인식의 지반이다.(A50/B74,한글판 96)
칸트에 따르면 우리의 ‘인식’(Erkenntnis)은 두 가지 종류로 구
분되어 진다. ‘직관’(Anschauung) 과 ‘개념’(Begriff)이 바로 그것
이다.(정확히 말해, ‘직관 중에 주어지는 인식’과 ‘개념을 통한 인
식’) ‘직관’이 개별적인 대상(Gegenstand)에 대한 ‘직접적인 표
상’ (unmittelbare Vorstellung)을 의미한다면 ‘개념’은 다수의
사물에 공통적인 특징을 매개로 해서 대상과 관계 맺는 ‘간접적
표상’ (mittelbare Vorstellung)이다. 단지 인식주관의 상태의 변
화를 의미하는 ‘감각’(Empfindung)과는 달리 직접적으로든 간접
적으로든 대상과 관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직관’과 ‘개념’은 둘
다 ‘객관적 지각’(objektive Perzeption)이라 불린다. 이와 같이
어떤 식으로든 대상과 관계 맺고 있는 표상들을 칸트는 통틀어
‘인식’(Erkenn- tnis)이라 부르고 있다.(A320/B376f., 한글판
277 참조)
그런데 이 인식의 두 가지 종류, ‘직관’과 ‘개념’은 서로 다른 원천
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직관’과 ‘개념’은 각각 우리 심성의 다른
곳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직관’이 ‘표상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능력’
에서부터 생겨난다면, ‘개념’은 ‘주어진 표상을 통해서 대상을 만들
어 내는 자발적인 능력’에서부터 생겨난다. 이런 점에서 전자는 ‘인
상의 수용성’(Rezeptivität der Eindrücke)을, 후자는 ‘개념의 자발
성’ (Spontaneität der Begriffe)을 의미한다. 요약하자면, ‘직관’이
생겨나는 인식의 원천, 즉 ‘표상을 받아들이는 인식 능력’을 ‘감성’
(Sinnlichkeit)이라 칭하고, ‘개념’을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원천, 즉
‘표상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자발적 능력’을 ‘지성’(Verstand)이라
52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불러 칸트는 인식의 이 서로 다른 두 능력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우리의 심성이 그 어떠한 방식에서 촉발되는 한에서 표상을 받아들
이는 심성의 수용성을 감성이라고 한다면, 이와 반대로 표상 자신을
산출하는 능력 즉 인식의 자발성이 오성[지성]이다. 직관이 감성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즉 우리가 대상에 의해서 촉발되는 방식만을 포함한
다는 것은 우리 본성의 필연적 결과이다. 이와 반대로 감성적 직관의
대상을 생각(思考)하는 능력이 오성[지성]이다.(A51/B75, 한글판 96;)
그런데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인식 능력의 성질 중에서, 즉 표
상을 받아들이는 성질과, 표상 자신을 만들어 내는 성질 중에서,
그 어느 것도 인식이라는 점에 있어서 다른 것 보다 더 본질적이
고,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진정한 의미에
서 인식은, 칸트에 따르면, ‘직관’과 ‘개념’이라는 두 요소가 합쳐
져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의 인식 능력만으로는 불완전한 인
식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감성’(Sinnlichkeit)의 역할이 없는 인
식은 ‘내용’(Inhalt)이 없는 공허한 사고에 불과하고 ‘지성’
(Verstand)의 기능 없이는 ‘맹목적’(blind)인 인식에 이르고 만다.
그러므로 직관과 개념은 우리의 전(全) 인식의 지반이다. 이에 어떤
방식에서건 대응하는 직관이 없는 개념은 인식이 될 수가 없고, 개념
이 없는 직관도 인식이 될 수가 없다.(A50/B74, 한글판 96)
이 두 가지 성질은 우열(優劣)이 없다. 감성이 없으면 대상은 주어
지지 않을 것이다. 오성[지성]이 없으면 대상은 도무지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오성이 없으면 대상은 도무지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내용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A51/B75, 한
글판 96이하, 글쓴이 강조)
또한 ‘감성’과 ‘지성’은 서로 그 기능이 고유하기에 ‘감성’이 ‘지
52
칸트『순수이성비판』53
성’의 기능을 대신할 수 없고 ‘지성’도 ‘감성’을 대신할 수 없다.
칸트는 이 인식의 서로 다른 두 능력, 즉 ‘감성’과 ‘지성’이 함께
기능할 때 비로소 인식이 생겨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
해 ‘감성’과 ‘지성’의 결합에서 인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통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개념’을 ‘감성화시키는 것’
이, 또한 반대로 ‘직관’을 ‘개념’아래 포섭시켜서 ‘지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칸트는 이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진 이종적(異種
的)인 표상의 통일의 문제, 즉 어떻게 직관을 개념에 포섭시키는
것이, 달리 말해 어떻게 범주(Kategorie)를 현상(Erscheinung)에
적용시키는 것이 가능한가의 문제를『순수이성비판』의 ‘순수 지
성 개념의 도식론’(Schematismus der reinen
Verstandesbegriffe)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A137-147/B176-187, 한글판 167-172 참조, 『순수이성비
판』의 재판[再版]에서는 동일한 문제가 ‘연역’[De- duktion]의
후반부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B144ff., 한글판 151이하 참조)
그러므로 개념을 감성화(感性化)하는 일 (개념의 대상을 직관 중에
서 부여하는 일)이 필연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직관을 오성화(悟性化)
하는 일 (직관을 개념 안에 포섭하는 일)도 필연적이다. 이 두 능력 혹
은 힘은 그 기능을 교환할 수 없다. 오성은 아무런 것도 직관할 수가
없고, 감관은 아무런 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오직 양자가 결합함으로
써만 인식이 생길 수 있다.(A51/B75f., 한글판 97)
칸트는 이제 이러한 서로 다른 인식의 기원, 즉 ‘감성’과 ‘지성’
의 근원적 차이에 근거해서 ‘논리학’이라는 학문의 근본적인 성격
을 규정하고 있다. 즉 ‘감성’과 ‘지성’은 서로 혼동해서는 안 될 서
로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기에 이 양자는 그 기능에 있어서 항상
주의 깊게 구별되어야 하고, 따라서 ‘감성’과 관련된 학문과 ‘지성’
54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과 관계된 학문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지성의 규
칙들 일반을 다루는 학문’(Wissenschaft der Verstandesregeln
über- haupt) 인 ‘논리학’(Logik)은 자신과는 상이한 인식 능력에
기원을 둔 ‘감성의 규칙들에 관한 학문’(Wissenschaft der
Regeln der Sinnlichkeit)인 ‘감성학’(Ästhetik)과 명백히 구별되
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하여 우리는 각자[감성과 지성]의 역할을 혼동해서는
안 되고, 양자를 조심성 있게 분리-구별해야 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감성일반의 규칙들에 관한 학문 즉 감성론과 오성
일반의 규칙들에 관한 학문 즉 논리학을 구별한다.(A51f./B76, 한글판
97, 글쓴이 강조)
1.1.3. 논리학 일반의 분류
‘감성’(Sinnlichkeit)과 ‘지성’(Verstand)이라는 두 인식 능력의
근원적 차이에 근거해서 ‘논리학’의 근본 성격을 ‘지성의 규칙들
에 관한 학(學)’으로 규정한 칸트는 이제 ‘논리학’ 일반의 구체적
분류를 시도한다. 이러한 ‘논리학’의 세밀한 구별지움의 작업을
통해 칸트가 노리는 바는 한마디로 ‘초월 논리학’의 뜻과 의미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다. 즉 논리학 일반의 분류를 통해 밝혀지
는 ‘일반 논리학’과 ‘초월 논리학’의 본질적인 특징들을 서로 비교
함으로써, 칸트는 ‘초월 논리학’의 의미를 해명하려 할 뿐 아니라
나아가 이 이론 체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선이해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런데 논리학은 또다시 두 가지 의도에서 착수될 수 있다. 즉 일반
적인 오성 사용[지성 사용]의 논리학과 특수한 오성 사용[지성 사용]
의 논리학이다. 전자는 사고의 절대 필연적인 규칙들을 내포하고 이런
54
칸트『순수이성비판』55
규칙들이 없으면 오성[지성]의 사용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자
는 오성[지성]의 사용이 어떠한 대상에 향하건 간에 대상들의 차이를
돌봄이 없이, 오성[지성]을 사용할 것을 노린다. 특수한 오성 사용[지
성 사용]의 논리학은 어떤 종류의 대상에 관해서 바르게 생각하는 규
칙들을 포함한다. 전자를 기본 논리학이라고 하고, 후자를 어느 학문이
건 그 학문에 대한 기관(機關)이라고 한다.(A52/B76, 한글판 97, 글쓴
이 강조)
칸트에 따르면 ‘논리학’은 우선 그것을 사용하는 두 가지 다른
‘의도’(Absicht)에 따라 구별된다. ‘논리학’이 ‘지성의 규칙들에 관
한 학’이라는 점을 기억할 때, 칸트가 여기서 말하는 ‘두 가지 의
도’는 결국 두 가지 서로 다른 ‘지성의 사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논리학’은 먼저 ‘일반적 지성 사용의 논리학’(Logik des allgemeinen
Verstandesgebrauchs)과 ‘특수한 지성 사용의 논리학’
(Logik des besonderen Verstandesgebrauchs)으로 구분된다.
전자(前者)는 그것이 ‘논리학’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사유의 규
칙’들을 다룬다. 그런데 이 ‘일반적 지성 사용의 논리학’이 다루고
있는 규칙들(Regeln)이 ‘사고의 절대 필연적 규칙’(die
schlechthin notwendigen Regeln des Denkens)이라 불리는 것
은 이 규칙이 없이는 어떠한 지성의 바른 사용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일반적 지성사용의 논리학’은 결국 ‘지성’ 그
자체의 사용에만 관심이 있다. 즉 ‘지성’이 어떤 대상을 다루는지
에 대해서는, 다시 말해 ‘대상들 간의 차이’(Verschiedenheit der
Gegenstände)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런 점에서 ‘일반적 지
성 사용의 논리학’을 칸트는 ‘기본 논리학’(Elementarlogik)이라
부르고 있다.
반면에 ‘특수한 지성 사용의 논리학’은 그것이 ‘논리학’인 한에
서 사유의 규칙들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규칙이 ‘어떤 특
56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정한 종류의 대상들에 대해서 올바르게 생각하는 규칙’(die Regeln,
über eine gewisse Art von Gegenständen richtig zu
den- ken)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일반적 지성 사용의 논리학’과
는 구별된다. 다시 말해 ‘필연적’(notwendig) 사유의 규칙을 다루
는 ‘일반적 지성 사용의 논리학’과는 달리 ‘특수한 지성 사용의
논리학’은 ‘수학’과 같은 특정 학문(Wissenschaft)에서의 구체적
인식의 대상에 관계된 규칙을 다룬다는 점에서 ‘우연적’(zufällig)
인 규칙에 관계한다. 따라서 ‘특수한 지성 사용의 논리학’은 특정
학문에서 구체적 인식이 어떻게 완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
침’(An- weisung)을 제공해 주는 ‘도구’(Werkzeug)의 역할을 한
다는 점에서 특정한 ‘학문의 기관’(Organon der
Wissenschaften)이라고 불린다.(Jäsche가 편집한『논리학』: AA
IX 11 참조)
‘논리학’ 일반을 지성의 ‘일반적 사용’과 ‘특수한 사용’에 따라
‘기본 논리학’(Elementarlogik)과 ‘학문의 기관’(Organon der
Wi- ssenschaft)으로 구분한 칸트는 ‘학문의 기관’으로서의 논리
학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순수한 사유
의 법칙을 다루는 ‘논리학’도 그것이 인식의 ‘확장’(Erweiterung)
을 추구하지 않고 단지 우리 인식의 ‘평가’(Beurteilung)와 ‘교
정’(Be- richtung)에 쓰이는 한에서는 ‘기관’(Organon)이라 불릴
수 있지만 지성의 특수한 사용에 해당하는 ‘기관’(Organon)으로
서의 논리학은 특정 학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즉 그 학문의 대
상과 기원에 대한 인식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논리
학이 아니기 때문이다.(Jäsche 가 편집한『논리학』: AA IX 11f.
참조) 칸트의 관심은 이제 진정한 의미의 논리학인 ‘기본논리학’,
즉 ‘일반 논리학’(allgemeine Logik)으로 옮겨 간다.
56
칸트『순수이성비판』57
일반 논리학은 순수 논리학이거나 응용 논리학이다. 전자에 있어서
는 우리의 오성[지성]이 적용되는 바 모든 경험적인 제약[조건들]을
우리는 무시한다. 가령 감관의 영향, 상상(想像)의 관여, 기억의 법칙,
습관의 힘, 애착 등등 또 선입견의 원천, 뿐더러 혹종(或種)의 인식을
낳게 하고 혹은 이런 인식을 잘못 우리의 인식 안에 밀어 넣는 모든
원인도 일반적으로 무시한다. 이런 제약들은 오성[지성] 적용의 어떤
사정 아래에서만 오성[지성]과 상관하고, 이런 사정을 알자면 경험이
요구되기에 말이다.[…] 다음에 일반 논리학이 주관적인 경험적 제약―
이것을 심리학이 가르쳐 주거니와― 아래서의 오성[지성] 사용의 규칙
들을 다룰 때에 그것을 응용논리학이라고 한다. 즉 응용 논리학은 대
상들을 구별함이 없이 오성[지성]의 사용을 노리는 한에서는 일반적이
지만 경험적인 원리[원칙]들을 갖는 것이다.(A52f./B77, 한글판 97이
하, 글쓴이 강조)
‘일반 논리학’은 다시 ‘순수 논리학’(reine Logik)과 ‘응용 논리
학’ (angewandte Logik)으로 나뉘어 진다. 이들은 대상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지성의 규칙만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공통
적으로 ‘일반 논리학’의 특징을 갖지만 이들을 서로 구별해 주는
것은 이들이 ‘지성’(Versand)에게 영향을 주는 ‘경험적인 조건
들’(em- pirische Bedingungen)을 도외시하느냐 혹은 그렇지 않
느냐는 점이다. 따라서 ‘응용 논리학’은, 더 정확히 말해 ‘일반적이
면서 응용된 논리학’은 ‘지성’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경험적인 조
건들, 즉 ‘감관의 영향’, ‘상상의 유희’(Spiel der Einbildung), ‘기
억의 법칙’, ‘습관의 힘’등과 같이 ‘선입관’(Vorurteile)을 만들어
내는 모든 것들을 결코 도외시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적 조
건들로 인해 모종의 인식이 생겨나거나 혹은 우리에게 그 인식이
전가되게(unter- geschoben werden) 된다. 이런 점에서 ‘응용
윤리학’은 ‘경험적 원칙들’(empirische Prinzipien)을 갖게 되는데
이 원칙들이 ‘경험적’인 까닭은 일반적으로 ‘심리학’이 가르쳐 주
58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는 이 ‘경험적 조건들’이 단지 ‘특정한 경우에’(unter gewissen
Umständen)만 ‘지성’과 관계가 있고, 이 ‘특정한 경우’를 바로 알
기 위해서는 ‘경험’(Er- fahrung)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반적이면서 동시에 순수한 논리학’, 즉 ‘순수 논리학’
은 모든 ‘경험적인 조건들’을 배제하는 한에서 순전히 ‘선험적인
원칙들’(apriorische Prinzipen)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순수
논리학’은 단지 사유의 형식적 규칙만을 다루기에 ‘지성’ 자체와
관계가 있고 이런 점에서 ‘지성 사용의 표준’으로, 즉 지성’과 ‘이
성’이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검사하는 ‘규준’(Kanon)으로
여겨진다. 이와는 달리 ‘응용 윤리학’은 대상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 논리학’의 특징을 갖기에 ‘특정한 학문의
기관’(ein Organon besonderer Wissenschaften)도 될 수 없고
또한 ‘순수 논리학’의 권리인 ‘지성 일반의 규준’(ein Kanon des
Ver- standes überhaupt)도 되지 못한다. 이런 ‘응용 논리학’의
운명을 칸트는 ‘상식의 정화(淨化)제’(ein Kathartikon des
gemeinen Ver- standes)라 부르고 있다.
즉 일반적이면서도 순수한 논리학은 선천적인 원리만을 다루고, 오
성[지성]과 이성(추리)의 규준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용은 어떻든 간
에 (경험적이건 선험적이건 간에) 오성[지성]과 이성을 사용하는 형식
에 관계해 있을 뿐이다. […] 즉 응용 논리학은 대상들을 구별함이 없
이 오성[지성]의 사용을 노리는 한에서는 일반적이지만 경험적인 원리
[원칙]들을 갖는 것이다. 이렇기에 그것은 오성[지성] 일반의 규준도
아니요, 특수 과학의 기관도 아니며, 오직 상식의 세척제(洗滌劑)이
다.(A53/B77f., 한글판 97이하, 글쓴이 강조)
이로써 칸트는 ‘논리학’ 일반의 분류를 통해 일차적으로 염두에
둔 목표에 도달하고 있다. 즉 무엇이 ‘일반 논리학’의 한 분과
58
칸트『순수이성비판』59
(Teil)인 ‘순수 논리학’을 다른 분과들과 구별시켜주는 본질적 특
징인지를 밝힘으로써 이제 ‘순수 논리학’의 정확한 규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일반 논리학에서 순수한 이성의 학(學)을 형성하는 부분과
응용 논리학(이것도 일반 논리학이기는 하다)을 형성하는 부문을 온전
히 구별해야 한다. 전자[순수 논리학]만이 진정으로는 학이다. 그것은
비록 간단하고 건조한 것이기는 하되, 오성[지성]의 원리론을 학술적
으로 전개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순수한 일반) 논리학에 있
어서 논리학자는 항상 두 가지 규칙을 명심해야 한다.
1. 일반 논리학으로서의 이 학문(學)은 오성적 인식[지성 인식]의
모든 내용과 그 대상의 차이와를 도외시하고 사고의 순 형식만
을 다루어야 한다.
2. 순수 논리학으로서의 이 학은 어떠한 경험적 원리[원칙]도 가지
지 않는다. 따라서 (왕왕 세간인이 믿었듯이) 심리학에서 아무것
도 빌려오지 않는다. 심리학은 오성[지성]의 규준에 대해서 아무
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이다. 순수 논리학은 논증된 정설(定
說)이요, 그 안의 모든 것은 선천적[선험적]으로 확실한 것이 아
닐 수 없다.(A53f./B78, 한글판 98)
‘일반 논리학’의 한 부분으로서 순수한 이성의 학(學), 즉 “순수
이성론”(reine Vernunftlehre)에 해당하는 ‘순수 논리학’을 본질
적으로 규정해주는 특징은 바로 ‘보편성’과 ‘순수성’이었다. ‘보편
성’(Allgemeinheit)은 ‘일반 논리학’을 다른 것과 구별시켜 주는
특징이었다. ‘일반 논리학’(allgemeine Logik)이 ‘보편
적’(allgemein)인 까닭은, ‘일정한 대상에 관해 올바르게 사유하는
규칙’을 가르치는 ‘특수한 지성 사용의 논리학’과는 달리, 그것이
없이는 어떠한 지성의 사용도 불가능한 ‘단적으로 필연적인 사유
의 규칙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즉 이 필연적 사유의 규칙들은 우
60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리 생각의 내용이 관계를 맺고 있는 사유의 대상에 전혀 의존적
이지 않기 때문에 특정한 대상의 내용적 차이와는 상관없이 모든
사유에 있어 타당한 보편적인 사유의 형식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보편적 사유 법칙으로서의 ‘일반 논리학’에서 ‘응용 논리학’을 분
리해 내는 기준은 바로 ‘순수성’(Reinheit)이다. 이 ‘순수성’은 사
유에 있어서 모든 경험적인 조건들로부터의 독립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지성을 사용하는 데 있어 영향을 미치는 모든
심리적인 조건들을 배제한 이 ‘일반적이면서 동시에 순수한 논리
학’은 지성 사용의 규준(Kanon)의 역할을 하는 ‘선험적 원칙들’을
다루게 되고, 이런 점에서 칸트는 ‘순수 논리학’만이 진정한 의미
에서의 ‘학’(Wissenschaft)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1.2. 초월 논리학(transzendentale Logik)의 이념
1.2.1. ‘일반 논리학’과 ‘초월 논리학’의 비교
이상의 논리학 일반의 분류를 통해 ‘일반 논리학’의 본질적 특징
을 서술한 칸트는 이제 이러한 ‘일반 논리학’의 특징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논리학의 이념을 요구한다. 또 다른 새로운 논리학의 필요
를 요청하기 위해 칸트가 여기서 그 특징을 요약하고 있는 ‘일반
논리학’은 물론 좁은 의미에서의 ‘일반 논리학’ 즉 ‘순수논리학’을
의미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반 논리학’이 ‘순수 논리학’
과 ‘응용 논리학’을 포함하는 ‘기본 논리학’(Elementar- logik)을
의미하여 넓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칸트가 흔히 여기에서
처럼 자신의 ‘초월 논리학’과 비교해서 ‘일반 논리학’ 혹은 ‘형식
논리학’(formale Logik)의 특징을 이야기 할 때는 좁은 의미에서
의 ‘일반 논리학’, 즉 ‘일반적이며 동시에 순수한 논리학’
(allgemeine und reine Logik)을 의미하고 있다.(A131/B170, 한
60
칸트『순수이성비판』61
글판 164 참조)
우리가 위에서 지적했듯이 일반 논리학은 인식의 모든 내용을 무시
한다. 즉 인식과 객체와의 모든 관계를 도외시한다. 그래서 한 인식이
딴 인식에 관계할 무렵의 논리적 형식만을 다룬다. 즉, 사고 일반의 형
식만을 다룬다. 그러나 (선험적 감성론이 증시했듯이) 순수 직관이 있
는 동시에 경험적 직관이 있기 때문에, 대상의 사고에도 순수한 사고
와 경험적인 사고가 구별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인식의 모든 내용을
무시하지 않는, [하나의 다른] 논리학이 존재하겠다. 왜냐하면 대상의
순수한 사고에 관한 규칙만을 포함하는 일반 논리학은, 경험적 내용을
소유하는 모든 인식을 배척하겠기에 말이다.(A55/B79f., 한글판 99,
글쓴이 강조)
칸트는 ‘일반 논리학’외에 ‘하나의 다른 논리학’(eine Logik)’이
필요한 근거를 논증하기 위해 ‘일반 논리학’이 가진 근본적인 특성
에서 출발한다. 즉 ‘일반 논리학’은 자신이 가진 결함을 본질상 스
스로 채울 수 없기에, 이제 이 부족함을 대신할 새로운 논리학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 나타난 칸트의 논거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일반 논리학’에서는 ‘대상을 경험적으로 사유하는
것’(das empirische Denken der Gegenstände)에 관해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반 논리학’은 단지 “인식들 서
로간에 생기는 관계 속에서의 논리적인 형식”(die logische Form
im Verhält- nisse der Erkenntnisse aufeinander), 즉 “사유 일
반의 형식”(die Form des Denkens überhaupt)만을 다루기 때
문이다. 따라서 ‘일반 논리학’은 “대상을 순수하게 사고하는 것에
관한 규칙”(die Regeln des reinen Denkens eines
Gegenstandes)들만을 포함하고 있기에 내용에 관한 인식, 무엇
보다 경험적 내용에 관한 인식을 다룰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인
식의 내용’(Inhalt der Erkennt- nis)을 다루는, 달리 말해 ‘인식
62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이 자신의 대상과 맺는 관계’(Be- ziehung der Erkenntnis auf
ihre Gegenstände)에 관심을 가지는 ‘또 하나의 논리학’(eine
Logik)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일반 논리학’은 그 자신이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가지
고 있다. 여기에 관해 칸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선험적 논리학[일반 논리학이 아닌 하나의 다른 논리학]은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바 기원을 다루기도 하겠으나, 이런 기원이 대상에
귀속될 수 없는 한에서 다루겠다. 이에 대해서 일반 논리학은 인식의
기원을 다루지 않고, 표상들이 애초에 선천적[선험적]으로 우리 자신
안에 주어져 있거나 경험적으로만 주어져 있거나 간에, 오성[지성]의
사고에 있어서 표상들을 서로 상관시키면서 사용할 때 준거하는 법칙
에 좇아서만 표상들을 고찰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 논리학은 표상의
기원이 어떠하건 간에 표상에 주어질 수 있는 오성[지성]의 형식만을
논한다.(A55f./B80, 한글판 99, 글쓴이 강조)
‘일반 논리학’은 대상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 어디에서 생기는지
에 대해서, 즉 ‘인식의 기원’(Ursprung der Erkenntnis)에 관해
서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다. 이는 ‘일반 논리학’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표상들을 단지 사유의 법칙에 따라서만 고찰하고, 그
표상이 어디에서 주어지든 간에 이 ‘표상들에게 제공될 수 있는
지성의 형식’(Verstandesform, die den Vorstellungen
verschaffen we- rden kann)만을 다루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식
의 내용을 도외시하지 않고 그 인식의 대상과 인식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논리학, 즉 ‘일반 논리학’과 구별되는 ‘하나의 다른 논리
학’은 ‘대상에 관한 우리 인식의 기원’(Ursprung unserer
Erkenntnisse von Ge- genständen)을 다루게 된다. 물론 이 논
리학은 ‘인식의 기원’을 대상에서부터 찾지 않기에, 여기서 ‘인식
의 기원’을 다룬다는 것은 결국 인식이 생겨나는 근원으로서의
62
칸트『순수이성비판』63
‘인식 능력’을 선험적으로(a priori) 고찰함을 의미한다.
1.2.2. ‘초월적’(transzendental)이라는 말의 의미
‘일반 논리학’과의 비교를 통해 요청된 이 ‘하나의 다른 논리학
(eine Logik)’을 ‘초월 논리학’(transzendentale Logik)이라 명명하
기 이전에 칸트는 우선 ‘초월적’(transzendental)이라는 말뜻의 바른
이해를 위해 하나의 중요한 ‘주해’(Anmerkung)를 덧붙이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이하의 모든 고찰에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독자가 십
분 명념하도록 주의(注意)를 한다. 즉 모든 선천적[선험적] 인식을 선
험적(transzendental)[초월적]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어떤 표상들
이(직관들이건 개념들이건 간에) 선천적[선험적]으로만 사용되고 혹은
선천적[선험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과 또 어떻게 그러하냐 하는 것을
우리가 인식하도록 하는 선천적[선험적] 인식만을 선험적[초월적]이
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험적[초월적]이라는 말은 인식의 선천
적[선험적] 가능성 혹은 인식에 관한 선천적[선험적] 사용을 의미한
다).(A56/B80, 한글판 99)
칸트는 먼저 ‘초월적’(transzendental)이라는 용어와 관련된 오
해를, 즉 ‘모든 선험적 인식’(jede Erkenntnis a priori)이 다 ‘초
월적’(transzendental)일 것이라는 생각을 바로잡는다. ‘하나의
인식’(eine Erkenntnis)이 ‘선험적’(a priori)이라는 것은 이 인식
이 경험에 앞서서 생겨나는 것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이 말이 반
드시 이것이 ‘초월적 인식’(eine transzendentale Erkenntnis)이
라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일반 논리학’에서,
즉 ‘일반적이면서 순수한 논리학’에서의 모든 대상은 그 안에서
완전히 선험적(a priori)이어야 하지만(“순수논리학은 논증된 정
설이요, 그 안의 모든 것은 전혀 선천적으로 확실한 것이 아닐 수
64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없다”; A54/B78, 한글판 98), 그렇다고 그것에 ‘초월적’이라는
술어를 붙여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인식을 칸트는
‘초월적 인식’이라 부르고 있는가?
앞의 인용문에 나타난 칸트의 논증이 비록 명확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초월적 인식’이라는 것은 그것을 통해 우
리가 무엇인가를 인식하게(erkennen) 되는 그 어떤 것이다.(“
[…], sondern nur die [Erkenntnis], dadurch wir erkennen,
daß und wie […], transzendental […] heißen müsse”,
A56/B80). 그렇다면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인식하게 될 때 이
인식을 ‘초월적 인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인용문에서 보
듯이, 여기에 관해 자세히 설명을 한 후 칸트는 그 내용을 말미에
다시 괄호 속에서 두 가지로 요약한다. 즉 ‘인식의 선험적 가능
성’(die Möglichkeit der Erkenntnis a priori)과 ‘인식에 관한 선
험적 사용’(der Ge- brauch der Erkenntnis a priori)이 그것이
다. 첫째, ‘인식의 선험적 사용’이라는 말로 요약되어 진 내용을
칸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표상
들, 즉 직관과 개념들이 단지 선험적으로(a priori)으로만 사용된
다.(혹은 적용된다, ange- wandt werden)는 사실과 또 어떻게
그렇게 사용될 수 있는 지를 인식할 수 있을 때, 그러한 인식은
‘초월적 인식’이다. 둘째로, ‘인식의 선험적 가능성’에 관한 칸트
의 설명 방식 역시 앞의 경우와 유사함을 볼 수 있다. ‘직
관’(Anschauung)과 ‘개념’(Begriff)이라는 우리의 ‘표상
들’(Vorstellungen)이 선험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과, 또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우리가 인식하는 한에서 그 인식
을 ‘초월적’이라 한다.
칸트는 계속해서 여기서 말하고 있는 ‘초월적 인식’의 두 가지
내용이 결국 다음과 같은 하나의 질문으로 환원될 수 있음을 보
64
칸트『순수이성비판』65
여준다. 즉 선험적으로(a priori) 성립되는 표상이 어떻게 경험에
서 생겨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적 대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가?
그러므로 공간도 공간의 어떠한 선천적[선험적] 기하학적 규정도
선험적[초월적] 표상이 아니다. 이런 표상들(공간의 표상과 기하학적
규정의 표상)의 기원이 경험이 아니라는 것과, 이럼에도 그러한 표상
들이 선천적[선험적]으로 경험의 대상과 상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선
험적[초월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A56/B80f., 한글판 99이하, 글쓴이
강조)
이제 어떠한 인식이 ‘초월적 인식’(transzendentale
Erkenntnis)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적어도 두 가지 점을 분명히
할 수 있다. 첫째, ‘초월적 인식’은 그 ‘기원’(Ursprung)이 경험적
이지 않은, 즉 선험적인 기원을 갖는 표상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다. 이런 점에서 ‘초월적 인식’은 우리의 표상인 ‘직관’과 ‘개념’이
어떻게 선험적으로 성립 가능한가에 관한 인식을 의미한다. 둘째
로, ‘초월적 인식’은 이 선험적으로 성립된 표상의 사용 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다시 말해, ‘초월적 인식’라는 것은, 그 기원
이 경험적인 것이 아닌 표상들이 어떻게 경험적인 대상에 사용되
어서, 경험적 대상과 관계 맺되, 그것도 선험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을 의미한다.
이상에 나타난 ‘초월적 인식’의 뜻을 바로 이해하는 것은『순
수이성비판』의 근본 과제를 가장 정확히 파악하는 길이며, 또한
이러한 ‘초월적 인식’의 체계(System)를 통해 구성되는 칸트의
‘초월 철학’의 의미를 올바르게 깨닫는 길이다. 때문에 칸트는 이
미『순수이성비판』의 ‘들어가는 말’(Einleitung)에서 다음과 같이
이 핵심개념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66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대상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 일반에 관한 우리의 선천적
[선험적]인 개념들을 다루는 모든 인식을 나는 선험적[초월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들의 체계가 선험적 철학[초월철학]이라고
불릴 것이다.(A11f., 한글판 52)
칸트가 ‘초월적 인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상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 일반에 관한 선험적 개념들’(Begriffe a priori
von Gegenständen überhaupt)을 다루는 모든 인식을 말한다. 그
렇다면 ‘대상들 일반에 관한 선험적 개념들’은 무엇이고, 초월적
인식이 대상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 개념들을 다룬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록 이 인용된 텍스트에서는 나
타나고 있지 않지만, 칸트는 이 ‘대상들 일반에 관한 선험적 개념
들’을 ‘순수 지성 개념들’(die reinen Verstandesbegriffe) 혹은
‘범주’ (Kategorie)라고 부른다.(A66ff./B91ff., 한글판 105이하
참조) ‘초월적 인식’이 다루는 것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대상들도
아니고 그 대상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매개로 한 경험적인 개념 또
한 아니다. 그것이 다루는 것은, 대상과 관계를 맺되 구체적 대상
이 아닌 대상 일반과 관계를 갖는 개념들, 즉 순수한 개념들이다.
이 순수 개념들은 자발적인 인식 능력으로서의 ‘지성’(Verstand)
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선험적 기원을 갖는 표상, ‘순수지성 개념’
인 것이다. 따라서 ‘초월적 인식’이 ‘대상 일반에 관한 선험적 개념
들’을 다루고, 그것도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개념들의 선험적
가능성, 즉 선험적 기원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초월 철학’은
인간의 선험적 인식 능력에 대한 연구와 무관하지 않다. 이점을
칸트는 재판(1787년)에서 좀더 명확히 보여 준다.
대상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 일반[대상들]을 우리가 인식
하는 방식을― 이것이 선천적으로[선험적으로] 가능한 한에서― 일반적
66
칸트『순수이성비판』67
으로 다루는 모든 인식을 나는 선험적[초월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러한 개념들의 체계가 선험 철학[초월 철학]이라고 불릴 것이다.(B25,
한글판 68, 글쓴이 강조)
앞의 인용문과 비교해 볼 때, ‘초월적 인식’이 대상들을 다루지
않고 ‘대상 일반에 관한 선험적 개념들’을 다룬다고 하는 말의 의
미는, 결국 ‘대상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방식’(unsere
Erkenntnis- art von Gegenständen)을 다루는 것이 바로 ‘초월
적 인식’임을 말한다. 어차피 ‘대상 일반에 대한 선험적 개념’으로
서의 ‘순수 지성 개념’이라는 것이 결국은 ‘선험적으로 가능한 한
에서의 대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 방식’에 속하는 것이기는 하지
만 굳이 칸트가 앞서 인용한 초판(1781년)과는 달리 이러한 표현
을 쓴 이유는 대상인식에 있어서 ‘인식 주체의 자발적 행위’에 대
한 재판(1787년)에서의 특별한 강조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재판
의 머리말 : BVIIff., 한글판 27이하 참조).
이제 ‘초월 철학이 이러한 개념들의 체계를 의미한다면’(Ein
System solcher Begriffe würde Transzendental-Philsophie
hei- ßen), 즉 초월 철학이란 우리의 선험적인 인식 능력 속에
그 기원을 갖는 선험적 표상들의 체계적 이론을 의미한다면, ‘초
월 논리학’의 의미는 결국 그 자신 선험적인 기원을 가지면서도
경험의 대상과 선험적으로 관계 맺는 ‘순수 지성 개념들’에 관한
체계적 이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
1.2.3. ‘초월 논리학’의 정의(定義)
1.2.3.1. ‘순수 지성 개념들의 체계’로서의 ‘초월 논리학’
‘초월적’이라는 말뜻이 가질 수 있는 오해를 피하고 그 바른 의
미를 해명한 칸트는 이제 이러한 배경 하에서 ‘초월 논리학’의 정
68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의(定義)를 시도한다.
이러한 인식들의 근원ㆍ범위ㆍ객관적 타당성을 정하는 학문을 선험
적 논리학[초월 논리학]이라고 불러야 하겠다. 왜냐하면 선험적 논리학
[초월 논리학]은 오성[지성]과 이성과의 법칙들만을 다루되, 이 법칙들
을 그것들이 오로지 선천적[선험적] 대상에 관계맺는 한에서만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험적 논리학[초월 논리학]은 일반 논리학처럼 이
성의 경험적인 인식에건 이성의 순수한 인식에건 무차별적으로 관계 맺
는 것이 아니다.(A57/B81f., 한글판 100, 글쓴이 강조)
앞서 해명한 ‘초월적’(transzendental)이라는 용어와의 관련 속에
서 칸트는 ‘순수 지성 개념들’(die reinen Verstandesbegriffe)의 체
계가 왜 ‘초월 논리학’이라 불려야 하는지를 분명히 한다. 즉 ‘순수
지성 개념들의 체계’로서의 ‘초월 논리학’은 그것이 ‘지성’
(Verstand)’과 ‘이성’(Vernunft)의 법칙, 즉 ‘사유의 법칙’을 다룬다
는 점에서 ‘논리학’(Logik)에 해당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유의 법
칙’들을 선험적으로(a priori) 대상과 관계 맺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
써 대상 일반에 대한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이
‘논리학’은 또한 ‘초월적’(transzendental), 즉 ‘초월 논리
학’(transzendentale Logik)이다. 이러한 연관성 속에서 ‘초월 논리
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칸트의 정의는 비로소 이해 가능하다. ‘초월
논리학’(transzendentale Logik)은 “이러한 인식들”의, 즉 어떤 인
식들의 ‘근원’(Ursprung)과, ‘범위’(Umfang) 그리고 그것의 ‘객관적
타당성’(objektive Gültigkeit)을 규정하는(bestimmen) 학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러한 인식들”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앞의
인용문에 앞서 나오는 다음의 구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하여 우리는 순수한 직관도 아니요 감성적 직관도 아닌, 순수한
68
칸트『순수이성비판』69
사고의 작용인 개념들이 있어서, 따라서 경험에서도 감성에서도 유래
하지 않은 개념들이 있어서, 선천적[선험적]으로 대상에 관계할 것을
기대한다. 이처럼 기대해서 순수한 오성[지성]의 인식과 순수한 이성
의 인식에― 이런 인식을 통해서 우리는 대상을 전혀 선천적[선험적]
으로 사고하거니와― 관한 학문의 이념을 우리는 미리 형성한다. 이러
한 인식들의 근원ㆍ범위ㆍ객관적 타당성을 정하는 학문을 선험적 논리
학[초월 논리학]이라고 불러야 하겠다.” (A57/B81, 한글판 100, 글쓴
이 강조)
결국 ‘초월 논리학’은 “이러한 인식들”의, 즉 ‘순수한 지성의 인
식’(die reine Verstandeserkenntnis)과 ‘순수한 이성의 인식’(die
reine Vernunfterkenntnis)의 ‘기원’(Ursprung)이 무엇인지, 그
인식의 ‘범위’(Umfang)는 어디까진지, 그리고 이러한 순수한 지성
을 통한 대상 인식이 어떻게 ‘객관적 타당성’(objektive
Gültigkeit)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규정하는 학문이다. 물론 여기
서는 ‘순수 지성의 인식’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칸트가
‘순수 이성의 인식’도 함께 언급하고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다
만 여기에 나와 있는 ‘이러한 인식들을 통해 우리가 대상을 완전
히 선험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 dadurch wir Gegenstände
völlig a priori den- ken)’라는 구절과 이 후에 나오는 다른 구절
들을 함께 고려해 볼 때, 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것이 바로 ‘초월
논리학’의 제1부, ‘초월적 분석론’(die transzendentale Analytik)
의 핵심 내용에 해당하는 ‘선험적 지성인식’(die
Verstandeserkenntnis a priori)에 관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A64f./B89, 한글판 104 참조) 따라서 ‘초월 논리학’은 ‘지
성’(Verstnad)을 통한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 즉 그러한 인식의
기원과 범위, 그 객관적 타당성을 탐구하는 학문인 것이다.
70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1.2.3.2. ‘이념’(Idee)으로서의 ‘초월 논리학’
앞의 인용문은 이미 정의한 ‘초월 논리학’이라는 학문의 특성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 준다. ‘초월 논리학’이
라는 것은 이미 완성된 학(學)으로 현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념’(Idee)으로서만 존재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처럼 기대해서 순수한 오성[지성]의 인식과 순수한 이성의 인식
에 […] 관한 학문의 이념을 우리는 미리 형성한다.”(A57/B81,
한글판 100, 글쓴이 강조)라는 앞의 인용문에서 칸트가 사용하고
있는 ‘이념’(Idee)이라는 말은 전문적인 의미의 철학적 용어가 아
니라 일상적인 용어이다. 즉 이 표현을 우리말에 가깝게, “이러한
기대(Erwartung)를 가지고 […] 우리는 순수 지성 인식 혹은 순
수 이성 인식의 학문에 관한 생각(Idee)을 미리 가져 볼 수 있겠
다.”(같은 곳)라고 풀어 번역해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초월 논리
학’이 ‘이념’(Idee)으로 존재한다는 말은, 그 어떤 기대에서 우리
가 ‘초월 논리학’이라는 학문의 ‘아이디어’(Idee)를 미리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고 이 학문에 관한 생각이 현실화되는 것은 그 기
대가 충족될 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Reich, 1948, 25쪽 이
하; Baum, 1991, 429쪽 참조)
그렇다면 어떤 기대(Erwartung)가 충족되어야 하는가? 다시 말
해 무엇이 이 ‘초월 논리학’이라는 학의 이념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가? 그 답은 이미 앞의 인용문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초월 논리학’
이라는 학의 이념의 현실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바로 “순수한 직관
도 아니요 감성적 직관도 아닌, 순수한 사고의 작용인 개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순수한 사고 작용(Handlungen des
reinen Denkens)으로서의 개념들(Begriffe)’은 그 자신 “경험에서
도 감성에서도 유래하지 않은 개념들” 이면서 동시에 “선천적[선
험적]으로 대상에 관계”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70
칸트『순수이성비판』71
‘초월 논리학’이 ‘순수 지성 인식’(die reine Verstandeserkenntnis)
의 ‘기원’과 ‘범위’ 그리고 ‘객관적 타당성’을 규정하는 학문이
라고 말할 때, 이 ‘초월 논리학’이라는 학문의 가능성은 바로 대상
과 선험적으로(a priori) 관계 맺는 ‘순수 지성 개념’의 현존에 의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순수 지성 개념들’을 매개로 해서만 바
로 이 ‘순수 지성 인식’이, 즉 ‘지성을 통한 순수한 대상 인식’이 가
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초월 논리학’은, 이제 ‘순수 지성
개념들’(die reinen Verstandesbegriffe) 즉 ‘범주’(Kategorie)를
찾아내어 그 ‘기원’(Ursprung)과 ‘범위’(Umfang)을 밝히고― ‘범주
의 형이상학적 연역’(metaphysische Deduktion der Kategorien)
에 해당― 그리고 찾아낸 범주들의 ‘객관적 타당성’(objektive
Gültig- keit)을 보여 주는― ‘범주의 초월적 연
역’(transzendentale Deduk- tion der Kategorien)에 해당― ‘순
수 지성 개념들의 체계’인 것이다.
1.3. ‘초월 논리학’의 분류
: ‘초월적 분석론’과 ‘초월적 변증론’
1.3.1. 보편적 진리의 기준
(das allgemeine Kriterium der Wahrheit)
“초월 논리학의 이념”(Idee einer transzendentalen Logik)이
라는 이름으로 쓰여진 ‘초월 논리학의 들어가는 말’은 네 개의 소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첫 번째 장
“논리학 일반에 관하여”(Von der Logik überhaupt)와 두 번째
장 “초월 논리학에 관하여”(Von der transzendentalen Logik)에
서 칸트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바는, ‘일반 논리학’(allgemeine
Logik)’ 과의 비교를 통해 ‘초월 논리학’의 근본 성격을 규명하는
72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논증 방식은 ‘들어가는 말’의 나머지 두
장, “일반 논리학의 구분 : 분석론과 변증론”(Von der Einteilung
der all- gemeinen Logik in Analytik und Dialektik)과 “초월
논리학의 구분: 초월적 분석론과 초월적 변증론”(Von der
Einteilung der transz. Logik in die transzendentale Analytik
und Dialektik)에도 해당된다. 즉 이 ‘들어가는 말’의 세 번째, 네
번째 장에서 칸트는, ‘일반 논리학’과 ‘초월 논리학’이 각각 ‘분석
론’(Analytik)과 ‘변증론’(Dialektik)으로 나뉘는 근거에 관한 설명
을 통해, ‘일반 논리학’과 구별되는 ‘초월 논리학’만의 본질적인
특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의도에서 칸트는, ‘논리학’을 ‘분
석론’과 ‘변증론’으로 구분하는 근거를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
서, 이와는 무관해 보이는 ‘진리의 기준’(Kriterium der
Wahrheit)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칸트『순수이성비판』73
고래(古來)의 유명한 문제는 진리란 무엇이냐?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로써 사람은 논리학자들을 궁지(窮地)에 몰아 넣는다고 추측하였
다. 이 문제로써 사람은 논리학자들이 반드시 가련한 궤변(詭辯)에 의
뢰하게 되거나 혹은 그들의 무지(無知)를, 따라서 그들의 전 기술의 공
허를, 고백해야 하는 지경에 빠지기를 도모하였다. 이 무렵에 <진리란
인식과 그 대상과의 일치다>는 진리의 명목상(名目上)의 정의(定義)는
주어진 당연한 것이 되어 있고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개개의 모든 인식의 진리에 관한 보편적이요 확실한 기준
(基準)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A57f./B82, 한글판 100)
고대로부터 논리학자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던 물음이 있는데
그것은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전통적으로 이 질문에
대하여, 진리란 ‘인식과 그 대상과의 일치’(die Übereinstimmung
der Erkenntnis mit ihrem Gegenstand)를 의미한다라는 답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당연시 주어진 것으로 전제되었던 답은
한갓 ‘진리에 대한 명목상의 정의’(die Namenerklärung der
Wahrheit)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진리란 무엇인
가?’, 라는 질문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요구한 것은 진리에 대한
이러한 ‘명목상의 설명’이 아니라 모든 인식에 타당한 ‘보편적이
고 확실한 진리의 기준’(das allgemeine und sichere Kriterium
der Wahrheit)이었다. 그러나 칸트는 이 ‘보편적이고 확실한 진
리의 기준’을 묻는 것이 잘못하면 “질문 자신이 불합리해서
(ungereimt) 불필요한 답(unnötige Antworten)을 요구”하는 일
이 되어, 결국 “한 사람이 숫염소(牡羊)의 젖을 짜면 다른 사람은
그 밑에다 체(篩)를 대는 식의 웃을 만한 광경”을 만들어 내는 격
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A58/B82f., 한글판 100이하)
진리가 인식과 그 대상과의 일치에 존립한다면, 이런 대상은 딴 전
(全) 대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인식이 그것이 상관하는 대상과 일치하
73
74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지 않는다면, 비록 인식이 딴 대상에는 타당할 수 있는 것을 포함하더
라도, 그런 인식은 거짓이기에 말이다. 그런데 진리의 일반적[보편적]
기준이란 인식의 대상들을 구별함이 없이 모든 인식의 경우에 타당하
는 것이겠다. 이러한 기준에 있어서는 인식의 모든 내용이 (인식의 객
관에 대한 관계가) 무시되지만, 진리는 바로 이러한 내용에 상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식 내용의 진위(眞僞)를 가름하는 표징(標徵)을 묻는
일은 불가능하고 또 불합리하며, 따라서 진리의 충분하고도 동시에 일
반적인 특징은 지적될 수가 없다는 것은 명백한 바다. 우리는 위에서
이미 인식의 내용을 인식의 질료라고 불렀으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하겠다. 즉 ‘질료상으로는 인식의 진리에 관한 아무런 보편적인
특징도 요구할 수 없다. 그런 요구는 자기모순이기 때문이다’ 라
고.(A58f./B83, 한글판 101, 글쓴이 강조)
우선 칸트는 ‘진리에 관한 보편적 기준’의 요구 자체가 ‘인식과
그 대상의 일치’라는 진리의 명목상의 정의에 모순됨을 분명히
한다 : ‘인식의 진리’, 즉 ‘한 인식이 참이라는 것’은, 인식과 그 인
식의 대상이 일치하는 데서 성립한다고 할 때, 이 인식의 진위(眞
僞)문제는 특정한 대상과의 관계 맺음을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진리에 관한 보편적 기준’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어떠한 대상
과의 관련성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상의 구별 없이,
즉 인식이 어떤 대상과 관계하느냐와 상관없이 모든 인식에 타당
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의 보편적 기준’이 문제
되는 곳에서 ‘인식의 내용’과 관련한 진리의 표징(Merkmal)을 구
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며 불합리한 일’(ganz unmöglich und
ungereimt)이다. 다시 말해 ‘진리에 대한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충분한 특징’(ein hinreichendes, und doch zugleich
allgemeines Kennzeichen der Wahrheit)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
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인식의 진리와 관련해서 ‘질료
상으로는’(der Materie nach) 아무런 ‘보편적 기준’도 요구할 수
칸트『순수이성비판』75
없다고 말한다.
물론 ‘진리에 대한 보편적 기준’이 제시되어 질 수 있고 또한
반드시 요구되어지는 영역이 있다. ‘인식의 내용’이 아니라 ‘인식
의 형식’(Form der Erkenntnis)이 문제가 되는 곳에서는 ‘진리의
보편적 기준’에 대한 요구가 더 이상 불합리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내용을 제외한) 순 형식상의 인식에 관해서 말한다면,
논리학이 오성[지성]의 보편적․필연적인 규칙을 진술하는 한에서 그것
이 이런 규칙에 있어서 진리의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은 역시 명백하
다. 규칙에 위반함은 잘못이다. 이 때에 오성[지성]은 사고의 일반규칙
에 어긋나기 때문이요, 따라서 오성[지성] 자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진리의 기준은 오직 진리의 형식에만 즉 ‘사고 일반’의 형식에만 관계
하고, 그런 한에서 전혀 정당하다.(A59/B83f., 한글판 101, 글쓴이 강
조)
‘일반 논리학’은 그것이 ‘지성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규칙
들’(die allgemeinen und notwendigen Regeln des Verstandes)
을 다룬다는 점에서 ‘인식’을 내용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순 형식상
으로’(der bloßen Form nach) 고찰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진리의
기준’이라는 것이 ‘인식과 그 대상과의 일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적이고 형식적인 사유 법칙과의 일치’에서 성립한다.
‘일반 논리학’에서의 이러한 ‘진리의 기준’을 칸트는 “진리의 순 논
리상의 기준”(das bloß logische Kriterium der Wahrheit)이라 부
른다. (A59/B84., 한글판 101) 그러나 이러한 ‘진리의 기준’은, 비
록 ‘지성’(Verstand)이 자신의 사유 법칙과의 모순을 피하기 위해
모든 사유에서 반드시 전제해야 하는 필연적 조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인식의 진리’와 관련하여 ‘충분 조건’(hinreichende
Bedingung)은 결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유의 논리적 형식에는
75
76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완전히 일치하지만 내용상으로는 거짓인, 즉 대상에 모순되는 그러
한 인식을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진리의 논리적 기준’이라는 것은 논리적 사유의 ‘필수 불가결의 조
건’(con- ditio sine qua non)이면서 동시에 ‘진리의 소극적 조
건’(die nega- tive Bedingung aller Wahrheit)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런 기준은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어떤 인식이 논리적 형식
에 완전히 적합하더라도 즉 자기모순이 없더라도, 그것이 그 대상과
모순될 수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의 순 논리상의 기준
즉 ‘오성[지성] 및 이성의 보편적․형식적 법칙과 인식과의 일치’는, 확
실히 불가결의 조건이요 따라서 진리의 소극적 조건이기는 하나, 그러
나 논리학[일반 논리학]은 그것 이상으로 진출할 수가 없다. 일반 논
리학은 형식에서가 아니라 내용에 관한 오류를 시금석에 의해서 발견
할 수가 없다.(A59f./B84, 한글판 101, 글쓴이 강조)
이상의 ‘진리의 기준’과 관계된 칸트의 논증은 ‘초월 논리학의
들어가는 말’ 전체의 일관된 논지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즉 ‘일
반 논리학’과의 비교를 통한 ‘초월 논리학’의 본질적 특징을 규명
하려는 칸트의 의도는 ‘진리의 기준’에 관한 질문에서도 잘 드러
나고 있다. ‘진리의 기준’에 관해 묻는 것은 결코 그 자체로 불합
리한 질문은 아니다. 다만 이 질문이 인식의 대상을 고려하지 않
고 사유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법칙만을 다루는 ‘일반 논리학’의
영역에서 주어질 때, 그것은 ‘불합리한 질문이 되어 불필요한
답’(A58/B82, 한글판 100)을 요구하게 된다. ‘진리의 기준’에 관
한 질문은 결국 ‘인식의 형식’이 아니라 ‘인식의 내용’이 문제가
되는 곳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칸트의 생각은 ‘논
리학’을 ‘분석론’과 ‘변증론’으로 구분하는 것에 관한 그의 설명에
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칸트『순수이성비판』77
1.3.2. ‘논리학’의 분류
: ‘분석론’(Analytik)과 ‘변증론’(Dialektik)
‘초월 논리학의 들어가는 말’중, 세 번째 장에 붙여진 “일반 논
리학을 분석론과 변증론으로 구분하는 것에 관하여”(Von der
Ein- teilung der allgemeinen Logik in Analytik und
Dialektik), 라는 제목은 ‘논리학’의 분류와 관련하여 약간의 오해
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제목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일반 논리학’이 서로 배타적인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
한 부분은 ‘분석론’이고 다른 한 부분이 ‘변증론’일 거라는 생각이
다. 그러나 여기에 관한 칸트의 설명은 이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칸트는 분명 ‘논리학’의 어떤 부분을 그가 ‘분석론(Analytik)’이라
부르는지를 설명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변증론’이 ‘논리학’ 중 이
‘분석론’ 이외의 부분에 해당한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칸트는, 어떤 이유에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경우에 ‘논리학’
이 ‘변증론’(Dialek- tik)으로, 즉 ‘가상의 논리학’(Logik des
Scheins)으로 전락하게 되는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먼저 ‘분석
론’에 관한 칸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그런데 일반 논리학은 오성[지성]과 이성과의 전 형식적 활동을 그
요소들로 분해(分解)하여, 이런 요소들을 인간 인식의 모든 논리적 판
정(判定)의 원리로서 제시한다. 논리학의 이런 부문은 따라서 분석론이
라고 할 수 있고, 바로 이 까닭에 적어도 진리의 소극적인 시금석이다.
왜냐하면, 인식이 대상에 관해서 적극적 진리를 포함하나 안하나를 결
정하기 위해서 사람이 인식 자신을 내용상으로 탐구하기 이전에, 먼저
모든 인식을 형식상으로 저 규칙에 의해서 음미하고 평가해야 하기 때
문이다.(A60/B84f., 한글판 101 이하, 글쓴이 강조)
첫째, ‘분석론’(Analytik)은 우리 인식의 모든 논리적 판단에 필
77
78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요한 원칙들을 제공해준다. 이러한 논리학의 부분이 특별히 ‘분석
론’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 원칙들을 찾아내는 방법이 ‘지성과 이
성의 활동을 그 요소들로 분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분
석론’은 ‘진리의 소극적 시금석’(ein negativer Probierstein der
Wahrheit)으로 기능 한다. 인식의 내용을 조사하는 것이, 하나의
인식이 대상과 관계해서 참인지를 묻는, 다시 말해 ‘적극적인 진
리(positive Wahrheit)’를 찾는 것이라면, ‘분석론’에서 찾아낸 원
칙들을 가지고 이 인식이 자신의 형식과 규칙에 맞는지를 먼저
조사하는 것은 ‘소극적인 의미’에서 진리를 구하는 것이다. 셋째
로, ‘분석론’으로서의 ‘일반 논리학’은 단지 ‘판단의 규준’(ein
Kanon zur Beurteilung)으로만 사용된다. ‘분석론’이 ‘인식의 진
리’(Wahrheit der Erkenntnis)와 관계 있다고 말 할 때, ‘인식의
진리’는 단지 ‘논리적 판단의 법칙과 인식의 형식과의 일치’에서
만 성립한다. 따라서 ‘일반 논리학’은 “아직 인식의 질료적(객관
적)인 진리를 확정하기에는 불충분하다.”(A60/B85, 한글판 102)
이제 이러한 ‘분석론’의 특성과 한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 사
용하게 될 때 ‘변증론’이 생겨나게 된다.
이에 누구라도 일반 논리학에 의해서만, 대상들을 판정하려 하고 또
무슨 주장을 하려 하는 모험을 할 수는 없다. 먼저 일반 논리학 바깥에
서 대상에 관한 확립된 조사(調査)를 얻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이런
조사를 일반 논리학의 법칙에 좇아서 단지 이용하려고 하고, 연락있는
전체 중에 조사된 것을 결합하려고 해야 한다. 아니 조사된 것을 오로
지 {일반}논리학의 법칙에 좇아서 음미해야 한다고 하는 말이 더 좋을
것이다. 허나 모든 우리의 인식에 오성[지성]의 형식을 주려고 하는―
이런 인식의 내용은 자못 공허하고 빈약하지마는― 그럴듯한 기술을 소
유하고 싶어하는 매혹(魅Ⅲ) 때문에, 인식을 판정하는 한갓 규준인 일
반 논리학이, 객관적 주장을 현실로 산출하기 위한, 적어도 마치 객관적
주장인 듯한 환영(幻影)을 위한, 기관인 것처럼 사용되어 왔고, 이런 사
칸트『순수이성비판』79
정으로 해서 사실로 오용(誤用)되어 왔다. 이처럼 잘못되게 ‘기관’이라
고 생각된 일반 논리학을 변증론이라고 한다.(A60f./B85, 한글판 102,
글쓴이 강조)
‘변증론’(Dialektik)은 한 마디로 ‘일반 논리학’의 잘못된 사용
에서 생겨난다. 즉, ‘변증론’은 논리적 판단을 위한 ‘규준’(Kanon)
으로만 사용되어야 할 ‘일반 논리학’이 ‘기관’(Organon)으로 잘못
사용된 경우이다. 그렇다면 ‘일반 논리학’을 ‘규준’으로 사용한다
는 것과 ‘기관’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칸트는 앞
서 ‘논리학 일반’(Logik überhaupt)을 그것을 사용하는 ‘목적
(Absicht)’에 따라, ‘일반적 지성 사용의 논리학’(Logik des
allge- meinen Verstandesgebrauchs)과 ‘특수한 지성 사용의
논리학’ (Logik des besonderen Verstandesgebrauchs)으로 크
게 나누고, 그 중 전자에서 ‘응용 논리학’(die angewandte
Logik)을 제외한 부분, 즉 ‘일반적이며 동시에 순수한 논리학’을
‘지성과 이성의 규준’(ein Kanon des Verstandes und der
Vernunft)이라, 후자를 ‘특정한 학문의 기관’(ein Organon
besonderer Wissenschaften)이라 칭하였다.(A52f./B76f., 한글
판 97 이하 참조) 여기서 ‘순수논리학’이 ‘규준’(Kanon)으로 여겨
지는 까닭은, 그것이 단지 사유의 형식적인 규칙만을 다룬 다는
점에서 ‘지성’과 ‘이성’이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검사하는
‘지성사용의 표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특수한 지성
사용의 논리학’을 ‘특정 학문의 기관’(Organon)이라 부르는 것은,
그것이 사유의 규칙들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대상에 관계없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규칙이 아닌, 대상들의 차이를 고려한, ‘어
떤 특정한 대상들에 대해서 올바르게 생각하는 규칙들’을 의미하
고, 또한 이를 특정한 학문이 성립한 후 그 대상을 다루는 사고의
79
80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시정(是正)과 완성을 위한 ‘지침’(Anweisung)으로, 즉 ‘도
구’(Werkzeug)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식의 내용에 대해
서 우리에게 아무런 가르침도 줄 수 없고 단지 지성과의 합치를
위한 형식적인 조건만을 제공해 주는 ‘일반 논리학’에게 ‘인식의
확장과 확대를 위한 부당한 요구’를 하게 될 때, 이 ‘일반 논리학’
은 더 이상 ‘규준’(Kanon) 이 아닌 ‘기관’(Organon)으로 잘못 사
용되어 진다. 이처럼 ‘기관’으로 잘못 사용된 ‘일반 논리학’을 칸
트는 ‘변증론’(Dialektik)이라 부른다.
규준이란 말에서 나는 혹종의 인식 능력 일반을 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선천적[선험적] 원칙들의 총괄을 의미한다. 가령 일반 논리학의
분석적 부문은 ‘오성[지성]과 이성 일반’에 대한 규준이기는 하되, 형
식상으로만 규준이다. 일반 논리학은 모든 내용을 무시하기 때문이
다.(A796/B824, 한글판 550)
무릇 일반 논리학은 인식의 내용에 관해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가르침
도 없고 오직 오성[지성]과 합치하는 형식적 조건 ‘사고의 규칙’, 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형식적 조건만을 가르쳐 주기 때문에, 일반 논리학을―
적어도 장담하듯이 지식을 확장․확대하기 위해서― 도구(기관)로 사용하
려는 모든 기도(企圖)는 공담(空談)외의 아무런 것에도 귀착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 이런 공담은 약간의 가식(假飾)을 붙여 주장을 내세우고 혹은
제멋대로 상대를 논박하는 것이다.(A61f./B86, 한글판 102)
여기서 칸트가 ‘기관으로 잘못 사용된 일반 논리학’을 ‘변증론’
(Dialektik)이라 칭한 것은, 고대 희랍인들이 이미 ‘변증론’(Dialektik)
이라는 이름 하에 주로 ‘궤변술’(ars sophistica) 즉 ‘가상
의 논리학’(Logik des Scheins)을 연구하고 가르쳤던 것에 기인
한다. 고대에 궤변론자들이 ‘변증론’(Dialektik)을 통해서, 즉 ‘논
리학’의 철저한 방법론을 이용하여 잘못된 원칙들을 ‘진리라는 외
칸트『순수이성비판』81
관’(Schein der Wahrheit)으로 속여 주장함으로써 ‘가상의 논리
학’을 만들어 냈듯이, 단지 논리적 형식을 다루는 ‘분석론’을 마치
대상과의 일치에서 비로소 성립되는 참된 인식의 특징인 양 잘못
사용하는데서 ‘변증론’은 생겨나는 것이다.(Jäsche의『논리학』
AA IX 13ff 참조)
고대인이 한 학문의 혹은 한 기술의 명칭 ‘변증론’을 사용한 의미는
가지각색이었으나, 그 명칭이 가상(假象)의 논리학(Logik des
Scheins)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은, 그 명칭의 실지 사용에서 확실한
추정을 내릴 수가 있다. 가상의 논리학이란, 논리학이 일반적으로 지시
하는 바 철저성(徹底性)의 방법을 모방함에 의해서 또 모든 공허한 가
장(假裝)을 변명하고자 논리적 장소론을 이용함에 의해서, 사람이 그
의 무지에 아니 그의 계획적인 사기에다 진리의 외관만을 주려고 하는
궤변술이었다. 이에 우리는 확실하고도 유용한 경고로서 다음과 같은
주의를 해둘 수 있다. 즉 ‘기관으로 보아진 일반 논리학은 항상 가상의
논리학이다. 즉 변증적이다’라고.(A61/B85f., 한글판 102)
1.3.3. ‘진리의 논리학’(Logik der Wahrheit)
칸트는 ‘초월 논리학의 들어가는 말’ 네 번째 장에서 “초월 논
리학을 초월적 분석론과 초월적 변증론으로 구별하는 것에 관
해”(Von der Einteilung der transz. Logik in die
transzendentale Analytik und Dialektik) 이야기하고 있
다.(A62-64/B87-88, 한글판 103) ‘일반 논리학’을 ‘분석론’과
‘변증론’으로 구분하는 근거는 이제 ‘초월 논리학’에도 그대로 적
용된다. 즉, ‘분석론’의 잘못된 사용이 ‘변증론’을 만들어 내는 것
은 ‘초월 논리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여기서 특별히 주
목해야 할 점은 칸트가 ‘초월적 분석론’을 ‘진리의 논리학’(Logik
der Wahrheit)이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81
82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선험적[초월적] 논리학에서 우리는 오성[지성]을 고립시키고 (상술
한 선험적[초월적] 감성론에서 감성을 고립시킨 것처럼), 우리의 ‘전’
인식 중에서 오로지 오성[지성]에 유래해 있는 사고의 부문만을 집어
낸다. 이 순수한 인식의 사용은 대상이 직관 중에서 우리에게 주어져
있고, 이러한 대상에 적용될 수 있는 조건에 의존한다. 무릇 직관이 없
으면 우리의 모든 인식은 객관을 결(缺)하고 있고, 따라서 전혀 공허하
다. 그러므로 선험적 논리학[초월 논리학]에서 오성[지성]의 순수한
인식의 요소들을 다루는 부문이, [또한] 대상을 언제나 사고할 수 있
도록 하는 원리들을 다루는 부문이 선험적[초월적] 분석론이요 동시에
‘진리의 논리학’(Logik der Wahrheit)이다.(A62/B87, 한글판 103, 글
쓴이 강조)
‘초월적 분석론’(transzendentale Analytik)은 우선 그것이 ‘분
석론’(Analytik)인 한에서 ‘일반 논리학’의 ‘분석론’과 동일한 특징
을 갖는다. 즉 양자는 ‘순수 지성 인식의 요소들’과 ‘그것으로부터
구성되어진 원칙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분석론’의 공통적 특징을
갖는다.(A60/B84, 한글판 101 참조) 그러나 ‘초월적 분석론’이
‘일반 논리학’의 ‘분석론’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 ‘초월적
분석론’은 ‘인식의 논리적 판단을 위한 원칙들’(die Prinzipien für
logische Beurteilung der Erkenntnis)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따라 대상이 비로소 사유될 수 있는 원칙들’(die
Prinzipien, nach denen ein Gegenstand erst gedacht werden
kann), 즉 ‘대상 인식의 원칙들’(die Prinzipien der
Gegenstandserkenntnis)을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초월적 분석
론’에서 ‘인식의 참됨’(die Wahrheit der Erkenntnis)의 기준은
‘일반 논리학’에서와는 사뭇 다르다. ‘일반 논리학’의 ‘분석론’이
‘순수 지성 인식의 요소들’과 ‘논리적 판단 법칙’의 일치를 문제 삼
는다면, 이제 ‘초월적 분석론’은 그 인식의 요소들이 ‘인식의 내용’
과 일치하는지를 묻게 된다. 이런 ‘대상 인식’과의 연관성 때문에
칸트『순수이성비판』83
칸트는 ‘진리의 논리학’으로서의 ‘초월적 분석론’을 설명하는 이
자리에서 ‘초월적 감성학’(transzendentale Ästhetik)의 내용을
새삼 상기시키고 있다. ‘지성’(Verstand)을 고립시켜 다루는 ‘초월
논리학’도 그것이 대상 인식과 관계 맺는 한에서, ‘우리에게 대상
이 직관 중에 주어져야 한다’(daß uns Ge- genstände in der
Anschauung gegeben seien)고 하는 ‘초월적 감성학’의 가르침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초월적 분석론’과 일반 논리학의 ‘분석론’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에 근거해서 칸트는 ‘지성의 순수한 인식 요소들’과 ‘그로 이루
어진 원칙들’을 다루는 ‘초월적 분석론’을 ‘진리의 논리학’(Logik
der Wahrheit)이라 부른다. 그런데 칸트가 초월적 논리학의 ‘들어
가는 말’을 시작하면서 다루었던 ‘진리의 보편적 기준’에 관한 문제
제기를 기억해 볼 때, 여기서 말하는 ‘진리의 논리학’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앞서 칸트는 ‘진리
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일반 논리학’의 영역에서는 ‘불합리한
질문’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진리가 인식과 그 대상과의 일치에
서 성립하는 한, ‘인식의 참됨’(die Wahrheit der Erkenntnis)은
특정한 대상과 관계 맺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논리
학’이 인식의 모든 내용을 도외시하여 단지 ‘지성과의 일치를 위한
한갓 형식적인 조건들’(bloß die formalen Bedingungen der
Übereinstim- mung mit dem Verstande)만을 우리에게 알려 준
다는 점에서, ‘일반 논리학’의 한 부문으로서의 ‘분석론’은 ‘인식의
질료적․객관적 진리’(eine materielle oder objektive Wahrheit
der Erkenntnis)를 다룰 수 없는 ‘진리의 소극적 조건’(eine
negative Bedingung der Wahhheit)일 뿐이다. 즉 ‘분석론’은 모든
사유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conditio sine qua non)’으로서 ‘인식
의 참됨의 보편적인 기준’은 될 수 있지만 결코 “진리의 충분하고
83
84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도 동시에 일반적인 특징(ein hinreichendes, und doch zugleich
allgemeines Kennzeichen der Wahrheit)”을 제공해 줄 수는 없
다.(A59/B83, 한글판 101)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충분하고도 보
편적인 진리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일반 논리학’에서 뿐 아니라
‘초월 논리학’에서도 불합리하고 그 자체로 모순되는 일이라는 점
이다.(Wagner, 1977, S. 74 참조) 왜냐하면, 대상들의 차이에 구
별 없이 모든 인식에 타당한 ‘진리의 보편적인 기준’을 ‘대상과의
관계맺음’을 다루는 ‘초월 논리학’에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리의 기준’과 관련한 ‘초월적 분석론’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
에서부터 생겨난다. ‘초월적 분석론’은 그것이 일반 논리학의 ‘분
석론’과는 달리 ‘진리의 논리학’으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진리의 논리적 기준’을 넘어서 ‘대상과 관계 맺는 인식을 위한
진리기준’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때에만 비로소 ‘인식의
형식적인 진리’가 아닌 ‘인식의 질료적, 객관적 진리’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초월적 분석론’의 바로 이
러한 특징으로 인해 ‘초월적 분석론’에게 대상과 관계 없이 모든
인식에 타당한 ‘보편적 인식의 기준’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초월적 분석론’을 칸트가 ‘진리의 논리학’(Logik
der Wahrheit)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진리’(Wahrheit)라는 개
념을 이 ‘진리의 논리학’이라는 틀 속에서 그가 새롭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릇, 인식이 동시에 그 모든 내용을 즉 어떤 객관과의 관계를, 따
라서 모든 진리성을 상실할 때에, 그런 인식은 진리의 논리학(선험적
분석론)에 모순되지 않을 수 없다.(A62f./B88, 한글판 103)
어떤 점에서 ‘초월적 분석론’이 ‘진리의 논리학’으로 여겨질 수
칸트『순수이성비판』85
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는 이 텍스트는 앞서 인용한 원문 바로
다음에 나오는 구절이다. 즉 ‘초월적 논리학’에서 ‘지성의 순수한
인식의 요소’와 ‘대상을 사고하는 원칙들’을 다루는 부문이 ‘초월
적 분석론’이고 그것이 바로 ‘진리의 논리학’이다라고 이야기 한
후에 칸트는 바로 이 구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 인용
문을 앞 문장과의 문맥을 고려하여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
“[…] 하는 원리들을 다루는 부문이 초월적 분석론이요 동시에 진
리의 논리학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인식도, 그 모든 내용을, 즉 어
떤 객관과 맺는 모든 관계를, 따라서 모든 진리를 잃어버리지 않
은 채, 진리의 논리학에 모순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A62f./B88) 여기서 우선 한가지가 분명해진다. 칸트는 앞서 살펴
본 ‘진리의 기준’과 관련된 두 가지 서로 모순되는 요구가 이 ‘진
리의 논리학’이라는 체계 속에서 만족될 수 있다고 믿는다. 즉 ‘진
리의 논리학’은 인식의 내용을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어
떠한 인식에도 모순되지 않는 ‘진리의 보편적 기준’을 제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칸트의 생각은 여기에 나타난 새로운
진리개념에 근거한다. ‘진리’는 ‘객관과의 관계 맺음’(Bezie- hung
auf Objekt), 즉 ‘인식이 그 대상과 갖는 관계 맺음’(die
Bezeihung der Erkenntnis auf ihre Gegenstände)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인식이 그 대상과 관계를 맺을 때 그 인식은
참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초월적 분석론’이 이제 ‘진리의 논리학’으로 간주되어지는 이
유는 그것이 ‘진리의 명목적인 설명’(die Namenerklärung der
Wahrheit)― 어떻게 개개의 인식이 그 대상과 일치할 수 있는지-
을 제공해 줄 수 있어서가 아니다. ‘초월적 분석론’이 ‘진리의 논
리학’인 이유는,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표상들이 그 대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그래서 어떻게 선험적인 대상 인식이 생겨날
85
86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즉, ‘초월적 분석론’은 무엇이
우리 인식의 대상일 수 있는지를, 또한 이러한 대상 일반에 관해
사유하는 우리 인식 능력의 ‘형식’(Form)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를 가지고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대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해명해 준다. 일반 논리학의 ‘분석론’이 ‘진리의 소극적인 조건’
(die negative Bedingung der Wahrheit)만을 제공했다면 이제
‘초월적 분석론’은 ‘진리의 적극적 조건’(die positive Bedingung
der Wahrheit)을 보여 준다. 즉 우리 인식이 대상과 관계 맺기
위한 선험적인 조건들을, 그로 인해 우리 인식이 ‘객관적인 참’으
로 간주될 수 있는 조건들을 탐구하는 이론 체계가 바로 ‘초월적
분석론’이요 ‘진리의 논리학’인 것이다.
1.3.4. ‘가상의 논리학’(Logik des Scheins)
일반 논리학의 잘못된 사용이 ‘변증론’을 만들어 내듯이 ‘초월
논리학’의 잘못된 사용 역시 ‘초월적 변증론’을 야기시킨다.
이 선험적[초월적] 분석론은 원래 오성[지성]의 경험적 사용을 비
판하는 데 대한 규준일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일반적․
무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기관으로 인정하고, 순수한 오성[지성]만을 통
해서 ‘대상들 일반’에 관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하려 하고 주장하려 하는
모험을 한다면, 선험적[초월적] 분석론은 오용(誤用)되는 것이
다.(A63/B88, 한글판 103, 글쓴이 강조)
‘일반 논리학’의 경우에서 밝혀졌듯이 ‘규준’(Kanon)으로 사용
해야 할 ‘분석론’이 ‘기관’(Organon)으로 오용될 때 ‘변증론’은 생
겨난다. ‘초월적 분석론’이 ‘규준’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지성의
경험적 사용’(der empirische Gebrauch des Verstandes)에 관
칸트『순수이성비판』87
한 지침을 제시 해준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지성’을 그 한계
를 넘어서 사용하여, 경험의 한계 밖에 있는 대상에게까지 적용
하려 할 때, 그것은 ‘순수 지성 개념을 초험적으로 사용’(der
transzenden- tale Gebrauch der reinen Verstandesbegriffe)
하게 되는 것이고 이로 인해 ‘초월적 변증론’이 생겨나게 된
다.(A139/178, 한글판 168; A238f./B297f., 한글판 231 참조)
그러나 인간의 ‘지성’은 그 한계를 넘어서 자신을 사용하게 하는
유혹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도 않은 대상에 관해 판단하
는 위험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오성[지성]의 순수한 인식과 원칙을 단독으로 또 경험의 한
계를 넘어서까지 사용하려는 것은, 우리를 자못 매혹― 경험만이 ‘오성
[지성]의 순수한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질료(객관)를 줄 수 있는 것
이건마는― 하기 때문에 오성[지성]은 공허한 궤변으로써 순수한 오성
[지성]의 순 형식적 원리를 질료적(質e的)으로 사용하려는 위험에 빠
지고,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도 않고 아마 주어질 수도 없는 대상이 무
차별적으로 있다고 판단하는 위험에 빠진다.(A63/B87f., 한글판 103;
[]안 글쓴이)
이러한 순수 지성의 잘못된 사용은 칸트에 의하면 ‘변증적’
(dialektisch)이다. 따라서 여기서부터 생겨나는 ‘가상’(假象,
Schein)을 다루는 ‘초월 논리학’의 부문을 칸트는 ‘초월적 변증
론’ (transzendentale Dialektik)이라 부른다. 물론 이것이 고대에
‘변증론’이 의미했던 ‘가상’을 만들어 내는 ‘기술’(Kunst)을 뜻하
는 것은 아니다. ‘초월적 변증론’은 오히려 ‘순수 이성 추
론’(Schlüsse der reinen Vernunft)으로부터 생겨나는 이러한
‘가상’들을 폭로하고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초월
적 분석론’은 또한 ‘가상의 논리학’(Logik des Scheins)이다.
87
88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따라서 선험적 논리학[초월 논리학]의 둘째 부문은 이런 변증적 가
상(假象)의 비판이 아닐 수 없고, 그것은 ‘선험적[초월적] 변증론’이라
고 칭한다. 선험적[초월적] 변증론은 저 가상을 독단적으로 환기하는
기술(여러 가지 형이상학적인 요술에서 오는, 유감스럽게도 자못 유행
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초자연적으로 쓰이는 ‘오성[지성]과 이
성’의 비판인 것이다. 이런 비판은 그것들의 근거 없는 자부(自負)의
잘못된 환상을 적발하려는 것이요, 근거 없는 자부가 선험적‘초험적’
원칙에 의해서만 달성하는 줄로 오상(誤想)하는 발명과 확장에 대한
요구를 각하(却下)해서, 궤변적인 환영(幻影)에 대해서 순수한 오성[지
성]을 비판하고 보호하려고만 하는 것이다.(A63f./B88, 한글판 103)
이렇게 해서 ‘초월 논리학’은 이제 두 개의 부문으로 이루어진
다. ‘개념’(Begriff)과 ‘판단’(Urteil)의 논리학인 ‘초월적 분석론’
은 선험적으로(a priori) 대상과 관계 맺는, 따라서 그런 한에서
‘참’ (wahr)인 ‘개념’과 ‘판단’을 다룬다는 점에서 ‘진리의 논리학’
이다. 반면에 ‘초월적 변증론’은 결코 선험적으로 대상과 관계 맺
을 수 없는 ‘순수 이성 추론’(die Schlüsse der reinen Vernunft)
의 논리학이다. 따라서 이는 우리에게 어떠한 객관적인 인식도
제공해 줄 수 없는 ‘가상의 논리학’(Logik des Scheins)인 것이
다.
1.4. ‘초월 논리학’과 ‘존재론’(Ontologie)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의 궁극적인 관심은 ‘학(學)으로서의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밝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순수이성비
판』에서 이러한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선험적 종합 판단의 가능성’을 ‘초월 논리학’(transzendentale
Logik)이라는 제목 아래에서 탐구한다. 이는 그가 생각하는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이라는 것이 ‘논리학’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칸트『순수이성비판』89
는 증거이다. 칸트는 ‘초월 논리학’의 전반부, 즉 ‘진리의 논리학’에
해당하는 ‘초월적 분석론’(transzendentale Analytik)을 끝마치면
서 ‘초월적 분석론’의 가르침의 결과를 “모든 대상 일반을 현상체
(現象體)와 가상체(可想體)로 구별하는 근거”(A235ff./B294ff., 한
글판 229 이하)라는 제목으로 정리하고 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다
음의 구절은 칸트가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체계를 자신의 초월 논
리학의 체계를 통해 어떻게 새롭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난
다.
따라서 선험적[초월적] 분석론에서 중요한 결과가 생긴다. 즉, 오성
[지성]이 선천적[선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가능한 경험 일반」의
형식을 예료(豫e)함에 그치고, 현상이 아닌 것은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오성[지성]은 감성의 한계를 감성내에서만 대상이 우리
에게 주어지는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오성[지성]의 원칙들
은 현상을 해명(解明)하는 원리일 뿐이다. 존재론(存在Q)은 사물 일반
의 선천적[선험적]인 종합 인식(가령 원인성의 원칙)을 체계적 이론으
로서 주는 것이라고 보통 참칭(僭稱)하지마는, 소위 존재론이라는 과
시적(誇示的) 명칭은 이제야「순수오성[지성]의 한갓 분석론」이라는
겸손한 이름으로 대신(代身)해야 하는 것이다.(A246f./B303, 한글판
235, 글쓴이 강조)
‘초월적 분석론’에서 밝혀진 가장 ‘중요한 결과’(das wichtige
Resultat)는 ‘지성’(Verstand)이 비록 경험 일반이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형식들에 대해서는 경험에 앞서서 선험적으로 그것을 ‘미
리 알아차리는 것’(antizipieren)을 할 수 있지만 ‘가능한 경험 일
반의 형식 외의 그 이상의 것’(mehr als die Form einer
möglich- en Erfahrung überhaupt)은 결코 선험적으로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지성’은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질 수 있
는 ‘감성’ (Sinnlichkeit)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89
90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에게 ‘감성’을 통해 주어지는 ‘현상’(Erscheinung)이 아닌 것은
우리 경험의 대상이 될 수가 없기에 ‘초월적 분석론’을 통해 밝혀
진 ‘지성의 원칙들’(Grundsätze des Verstandes)은 ‘단지 현상을
해명하는 원리’(bloß Prinzipien der Exposition der
Erscheinungen)에 해당할 뿐이다. 따라서 이론적 인식으로서의
형이상학에서는 ‘가능한 경험의 대상들’, 즉 ‘현상들’만을 다루어
야 하고 그것을 넘어서 있는 것, 즉 ‘감각적 대상’이 아닌 ‘사물
자체’(Dinge an sich)나 혹은 경험 대상의 속성이 아닌 ‘의지의
자유’와 같은 것은 경험을 통해서 인식되어 질 수 있는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이러한 ‘초월적 분석론’의 결과에 근거에서 전통적인 형이상학
의 체계는 ‘진리의 논리학’과 ‘가상의 논리학’으로 구성되어져 있
는 ‘초월적 논리학’의 체계를 통해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전통
적인 ‘존재론’은 자신이 마치 ‘인과율’(Grundsatz der Kausalität)
과 같은 ‘대상일반에 관한 선험적 종합 인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체계적 이론인양 자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에 부쳐졌던 ‘존
재론이라는 오만한 이름’(der stolze Name einer ontologie)은
이제 ‘순수지성의 분석론’(Analytik des reinen Verstandes)이라
는 ‘겸손한 이름’(der bescheidene Name)에게 그 자리를 양보해
야 한다. 가능한 경험의 대상들의 조건과 그 총체로 구성되는 자
연에 대한 이론인 ‘초월적 분석론’은 그 자체로 있는 ‘사물 자
체’(Dinge an sich)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것
을 인정하는, 그래서 우리는 단지 현상에 대해서만, 즉 ‘우리에게
대해서만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들’(alles, was Gegenstand für
uns ist)에 관해서 가르쳐주는 ‘겸허한 존재론’이다. 전통적 형이
상학의 체계 하에서 ‘일반 형이상학’(metaphysica generalis)에
해당하던 ‘존재론’(Ontologie)의 자리는 우리에게 존재에 관한 새
칸트『순수이성비판』91
로운 이해를 가르쳐 주는 바로 이 ‘초월적 분석론’에게 주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초월적 분석론’이 ‘진리의 논리학’인 까닭이기
도 하다.
반면에 ‘초월 논리학’의 후반부인 ‘초월적 변증론’(transzendentale
Dialektik)은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지는 ‘감성’(Sinnlichkeit)
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이성의 모든 잘못된 시도들을 폭로하고 이
러한 이성의 시도는 결국 ‘가상’(Schein)에 빠질 뿐임을 보여줌으
로써 ‘특수 형이상학’(metaphysica specialis)이라 불리던 전통적
형이상학의 영역들을 비판하게 된다. 다시 말해 항상 경험적으로만
사용해야 할 순수 지성 개념들을 초험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생겨나
게 되는 변증적인 모순들을 폭로시키는 ‘초월적 변증론’, 즉 ‘가상
의 논리학’(Logik des Scheins)은 ‘특수 형이상학’의 영역이던 ‘영
혼’ (Seele), ‘세계’(Welt), ‘신’(Gott)에 관한 전통적인 이론들이 더
이상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2. 초월적 감성학(Transzendentale Ästhetik)
칸트는 177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교수 취임을 위한 논문,
“감성 세계와 지성 세계의 형식과 그 원리들에 관하여”(De mundi
sensibilis atque intelligibilis forma et principiis, AA II 385~
419)에서 자신을 이전의 철학과 분명하게 구별 짓게 하는 새로운
공간과 시간 이론을 발표한다. 여기에서 칸트는 훗날『순수이성비
판』(초판 1781년, 재판 1787년)에서의 시간․공간 이론뿐 아니라
더 나아가 ‘초월적 관념론’(transzendentaler Idealismus)이라 불
리는 자신의 철학적 체계의 탄생을 이미 예고하고 있다. 즉 공간
과 시간은 칸트에 의하면 ‘사물에 관한 우리 직관의 형식’(For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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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serer Anschauung von Dingen)이지 ‘사물 그 자체의 형
식’(For- men der Dingen selbst)이 아니다. 따라서 시간․공간 중
에 주어지는 사물은, 즉 시간 공간에 따라 질서 지워지는 사물들
은 단지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상’(Erscheinung)일 뿐이지 우리와
상관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은 아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칸트는 전통적인 ‘실재론’(Realismus)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관념
론’(Idea- lismus)으로 가게 되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실재론’에 따르면 우리 인식의 대상은 우리 심성 속에 주어진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사물 그 자체로 ‘실재한다’(wirklich
existie- ren). 이러한 실재론의 입장은 ‘대상’(Gegenstand)이
‘우리 밖에 있는 공간’(Raum außer uns) 중에 독립적으로 존재
한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는 ‘감관’(Sinne)을
통해 우리 밖에 있는 존재의 본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에
대해 ‘회의적’(zweifelhaft)이었다. 우리 밖의 존재는 우리와는 상
관없이 우리 밖의 공간 중에 따로 존재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칸트가 ‘개연적(蓋然的) 관념론’(der problematische
Idealismus)이라 비판하고 있는 이런 입장의 근저에는, ‘공간’이
라는 것은 우리 밖에 그 자체로 있는 그 어떤 것이든지 혹은 우
리 밖의 사물들의 속성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공간’에 대한 이해
가 깔려 있다.(B274 ff., 한글판 219이하; A366ff., 한글판 303이
하 참조) 칸트는 이제 우리 밖에 있던 ‘공간’과 ‘시간’을 우리 속
으로 끌어들인다. ‘공간’과 ‘시간’은 더 이상 우리 밖의 사물들의
속성이 아니라 대상을 인식하는 우리 인식 능력의 ‘형식’(Form)
이다. 이로 인해 대상은 우리 밖에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
이 아니라 ‘공간’․‘시간’ 중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
상’(Erscheinung)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칸트의 이론을
‘관념론’(Idealismus)이라 부를 수 있는 소이(所以)이다.
칸트『순수이성비판』93
칸트는 교수 취임 논문에서 보여준 이러한 ‘공간’․‘시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순수이성비판』을 시작하는 첫 장인 ‘초월적 감성
학‘(transzendentale Ästhetik)’에서 다시 분명히 한다. 그러나
칸트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즉 1770년의 그의 논문이, ‘공
간’과 ‘시간’은 감성 세계와 그 감성 세계에 주어지는 대상들의
형식이지 그 자체로 있는 세계나 사물 자체의 형식이 아님을 분
명히 밝혔다면, 이제 칸트는 ‘초월적 감성학’에서 1772년 그가
새롭게 발견한 ‘초월철학‘(transzendentale Philosophie)’의 과제
와 씨름하게 된다. ‘우리 속에 있는 표상‘(Vorstellung)이 대상과
관계 맺는 것은 무엇에 근거하는가?’(헤르츠에게 보낸 편지; AA
X 130)라는 ‘초월 철학’의 근본 물음에서 출발한 칸트는 이제 ‘초
월적 감성학’에서 어떻게 공간․시간 표상이 선험적으로(a priori)
그 대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논증한다. 이로써 칸트는 ‘초월
적 관념론’이라는 자신의 체계의 중요한 첫 부분을 완성하게 된
다.
2.1. ‘초월적 감성학’의 성격
‘초월적 감성학’(transzendentale Ästhetik)은 “공간에 관하
여”(Von dem Raume), “시간에 관하여”(Von der Zeit)라는 두 개의
2개의 ‘절’(Abschnitt)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개의 ‘절’을 시작하기
에 앞서 칸트는 짧은 설명의 글을 덧붙인다. ‘초월적 감성학’의 ‘머리
말’ (Ein- leitung)에 해당하는 이 글에서 칸트는 ‘초월적 감성학’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학(學)’이며 왜 여기에 ‘감성학’(Ästhetik)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에 대해 설명한다.(A19~22/B33~36, 한글판 73~
75)
93
94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2.1.1.『순수이성비판』의 체계와 ‘초월적 감성학’
『순수이성비판』의 전체 체계를 쉽게 파악하기 위한 몇 가지
가능한 “접근 방식”(Zugangsweisen)중 하나는 ‘순수 이성’이라
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는 다양한 우리 인식 능력들의 유기적 관
계를 고찰하는 것이다.(Baumgartner, 1985, 52-57쪽 참조) 한
마디로 ‘감성’(Sinnlichkeit), ‘지성’(Verstand) 그리고 좁은 의미
에서의 ‘이성’(Vernunft)이라는 서로 다른 인식 능력들에 상응해
서『순수이성비판』의 주요 부문들의 유기적 구성을 파악하는 방
식을 의미한다. 즉 ‘초월적 감성학’(transzendentale Ästhetik)이
대상을 받아들이는 인식 능력으로서의 ‘감성’(Sinnlichkeit)의 능
력과 그 선험적 구조를 다루는 것이라면 ‘초월적 분석
론’(transzendentale Analytik)은 사유 능력으로서의 ‘지
성’(Verstand)’과 ‘순수 지성 개념’(reine Verstandesbegriffe)’,
즉 ‘범주’(Kategorie)’에 관해 다룬다. 이러한 ‘초월적 분석론’과
함께 ‘초월 논리학’의 또 다른 부문을 이루는 ‘초월적 변증
론’(transzendentale Analytik)’은 좁은 의미에서의 ‘이
성’(Vernunft)의 능력과 그 ‘이성추리’에서부터 생겨나는 ‘초월적
이념’(transzendentale Idee)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틀에서 볼
때 ‘초월적 감성학’은 한 마디로 ‘감성’(Sinnlichkeit)에 관한 학
(學)이다. ‘초월적 감성학’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학(學)인지를 설
명하기 위한 ‘초월적 감성학’의 첫머리를 이런 이유에서 칸트는
‘표상’을 받아들이는 인식 능력으로서의 ‘감성’에 관한 해명으로
시작하고 있다.
2.1.2 수용하는 인식 능력으로서의 ‘감성’(Sinnlichkeit)
우리의 인식이 대상과 ‘직접적으로’(unmittelbar)으로 관계 맺
칸트『순수이성비판』95
는 방법을 칸트는 ‘직관’(Anschauung)이라 부른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대상에 관한 ‘직관’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직관’은 반드시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짐으로써, 즉 대
상이 우리 ‘심성’(Gemüt)을 어떤 식으로든 촉발함으로써 생겨나
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직관’의 생겨남은 수동적이다.
인식이 대상에 관계하는 방식과 수단이 어떠하든 간에, 인식이 대상
에 직접 관계하고 또 모든 사고(思考)가 그 수단으로서 구하고 있는
것은 직관이다. 직관은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한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적어도 우리 인간에게는 대상이 어떤 방식에서 심성
을 촉발(觸發)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A19/B33, 한글판 73)
이처럼 대상의 촉발에 의해 표상이 생겨나 우리에게 주어 질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인식 능력을 칸트는 ‘감성’(Sinnlichkeit)
이라 부른다. 따라서 ‘감성’은 표상을 받아들이는, 즉 ‘수
용의 능력’(Rezeptivität)이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대상이 우리
에게 주어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이 ‘감성’을 통해서만 대
상에 관한 ‘직관’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이 ‘직관’을 가지고서 ‘지
성’(Verstand)은 비로소 대상에 관한 사유를 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대상에 대해 사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사유가 대
상이 주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감성’과 관계 맺어야만 한
다.
대상에 의해서 우리가 촉발되는 방식을 통해서 표상을 얻는 능력 즉
수용성(受容性)을 감성(感性)이라고 한다. 따라서 감성에 의해서 대상
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감성만이 직관을 우리에게 준다. 이에 반(反)해
서 오성[지성]을 통해서 직관들은 사고되고 오성[지성]에서 개념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모든 사고작용은 단적으로(직접적으로) 직관에 관계
하거나 어떤 표징(標徵)을 통해서 돌음길로(간접적으로) 결국은 직관에
95
96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관계한다. 따라서 모든 사고작용은 우리 {인간}에 있어서는 감성에 관
계하게 된다. 왜냐하면, 직관 이외의 다른 방식에서 대상이 우리에게 주
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A19/B33, 한글판 73)
2.1.3. 감성의 순수형식
(die reine Form der Sinnlichkeit)
이제 칸트는 ‘초월적 감성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자
신의 이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중요한 용어에 대한 설
명을 한다. 이를 통해 칸트가 노리는 바는, 대상과 직접 관계 맺는
방식으로서의 ‘직관’을 ‘경험적 직관’(emprische Anschauung)과
‘순수 직관’(reine Anschauung)으로 구분하고, 어떤 점에서 ‘감성
의 순수한 형식’(die reine Form der Sinnlichkeit)이 바로 이 ‘순
수 직관’에 해당하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칸트는 이를 위해 먼
저 ‘경험적 직관’을 정의한다. 대상이 우리를 촉발할 때, 우리 인식
능력에 미치게 되는 결과, 즉 대상의 촉발에 의해 생겨나는 우리
주관의 상태는 ‘감각(Empfindung)이다. 그리고 대상에 관한 직접
적인 인식 중에서도 바로 이러한 “감각을 통해서 대상에 관계하는
직관”(A19f./B34, 한글판 73)이 바로 ‘경험적 직관’(empirische
Anschauung)이다. 또한 이 ‘경험적 직관’의 ‘무규정적 대상’(der
unbestimmte Gegenstand), 즉 ‘지성’에 의해 아직 사고되지 않은
‘직관’의 무질서한 상태를 칸트는 ‘현상’(Erscheinung)이라 부른
다. 그런데 이 ‘경험적 직관’의 대상은 그것이 ‘현상’으로 드러나는
한, 사실은 ‘질료’(Materie)와 ‘형식’(Form)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상 중에서 감각에 대응하는 것을 나는 현상의 질료(質e)라고 하
고 현상의 다양이 일정한 관계에 의해서 정돈되도록 하는 것을 현상의
형식이라고 한다. 감각을 정리하고 감각을 어떤 형식 속에 넣을 수 있
칸트『순수이성비판』97
게 하는 것 자신이 감각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현상의 질료는
확실히 오직 후천적[후험적]으로 주어져 있으나, 그러나 현상들의 형
식은 모든 감각에 대해서 심성속에 선천적[선험적]으로 이미 있어야
하고, 따라서 모든 감각에서 분리되고 고찰될 수 있어야 한다.”
(A20/B34, 한글판 73이하, 글쓴이 강조)
여기서 칸트는 우리 인식이 생겨나는 과정의 아주 중요한 계기
를 설명한다. 즉 우리에게 ‘현상’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가
경험에 의해 주어져야 하고 또한 이 주어짐이 무질서하게 주어지
는 것이 아니라 현상이라는 틀을 이룰 수 있게 특정한 ‘형식’ 속에
정리된 채로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중 경험을 통해 주어지는
것, 즉 ‘감각’에 상응하는 것을 칸트는 ‘현상의 질료’(Materie der
Erscheinung)라 부른다. 이 ‘현상의 질료’는 경험에 의해 우리에
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정확히 말해 경험 후에 생겨난다는 점에서
‘후험적’(a posteriori)이다. 반면에 이 현상의 질료로 주어지는 것
들을 정돈하는 틀인 ‘현상의 형식’은 경험에 앞서서, 즉 ‘선험적으
로’(a priori) 주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감각’을 정리하고 질서를
주는 ‘형식’은 그 자신 ‘감각’일 수 없고 따라서 ‘감각’과 함께 경험
중에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험적인 직관에 질서를 부여하는 형식, 즉 ‘감성적 직
관 일반의 순수 형식’(die reine Form sinnlicher Anschauung)
은 경험이전에 이미 선험적으로 우리 ‘심성’(Gemüt) 속에서 발견
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 ‘현상의 형식’은 모든 ‘감각’에서 떼어
내어 고찰할 수 있고 그 자신 어떠한 ‘감각’도 포함하고 있지 않
다는 점에서 ‘순수한’(rein) 형식이고 이러한 ‘감성의 순수 형
식’(die reine Form der Sinnlichkeit)을 칸트는 ‘순수 직
관’(reine An- schauung)이라 부른다.
97
98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나는 감각에 귀속하는 것을 전혀 내포하지 않는 모든 표상들을 (선험
적[초월적] 의미에서) 순수하다고 한다. 따라서 감성적 직관들 일반의
순수한 형식은 심성 속에 선천적[선험적]으로 발견되겠고, 이런 형식에
있어서 현상들의 모든 다양은 일정한 관계 중에서 직관된다. 감성의 이
러한 순수형식은 그 자신 순수 직관이라고도 하겠다.(A20 / B34f., 한글
판 74, 글쓴이 강조)
결국 ‘감성의 순수 형식’으로서의 ‘순수 직관’(reine Anschauung)
이라는 것은, ‘감각’(Empfindung) 혹은 ‘실재 감관의 대
상’(ein wirklicher Gegenstand der Sinne) 없이도, 다시 말해 경
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선험적으로’(a priori), 우리 심성 속에서
발견되어 져야 한다. 따라서 ‘물체’라는 경험적 표상에서, ‘지
성’(Verstand)이 그것에 관해 사고하는 내용과 감각에 속하는 성
질들을 모두 제거해내고도 ‘연장’(延長, Ausdehnung)과 ‘형태’(形
態, Gestalt)라는 표상이 남게 된다면, 이런 경우 ‘연장’과 ‘형태’라
는 표상은 ‘순수 직관’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래서 한 물체의 표상으로부터, 오성[지성]이 그것에 관해서 사고
(思考)하는 것 즉 실체․힘․가분성(可分性) 등을 분리하고, 그와 동시에
감각에 귀속하는 것 즉 불가침입성․굳기(硬度)․색 등을 분리할 때에도,
이 경험적 직관 이외에 역시 무엇이 남는다. 즉, 연장(延長)과 형태(形
態)가 남는다. 이런 {공간적인} 것은 순수직관에 속하고, 순수직관은
감관의 대상이나 감각의 대상이 현실로 없더라도 감성의 한갓 형식으
로서 심성 속에 선천적[선험적]으로 존재한다.(A20f./B35, 한글판 74)
2.1.4. ‘초월적 감성학’의 정의(定義)
칸트는 이제 ‘초월적 감성학’이 무엇을 다루는 ‘학’(學)인지 정
의’(定義)하고 있다. ‘초월적 감성학’은 한마디로 우리 인식 능력
의 하나인 ‘감성’(Sinnlichkeit)에 관한 학문이다. ‘감성’은 대상에
칸트『순수이성비판』99
관한 ‘직접적인 표상’(unmittelbare Vorstellung), 즉 ‘직관’(Anschauung)
이 생겨나는 인식의 원천이다. 다시 말해 ‘감성’은 대상
의 촉발로 인해 우리에게 ‘표상’(Vorstellung)이 주어질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따라서 대상의 촉발로 인한 우리 심성의 주
관적 상태인 ‘감각’(Empfindung)을 통해 대상과 관계 맺는 ‘경험
적 직관’(empirische Anschauung)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도 바
로 이 ‘감성’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초월적 감성학’의 관심은 이러
한 ‘경험적 직관’에 있지 않다. 즉 ‘초월적 감성학’은 ‘현상의 질
료’(Materie der Erscheinung)인 ‘감각’을 문제 삼지 않는다. ‘초
월적 감성학’의 과제는 오히려 이 ‘감각’이 주어질 때 그것에 질서
를 부여하는 ‘현상의 형식’(Form der Erscheinung)에 있다. 그리
고 이 ‘형식’은 경험 중에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형식’은
그 자신 ‘감각’이 아니기에 우리 심성 중에 이미 경험에 앞서 주어
져 있어야 하는 ‘선험적 감성의 형식’이다. 이런 이유에서 칸트는
‘초월적 감성학’을 ‘선험적인 감성의 모든 원리에 관한 학문’(eine
Wi- ssenschaft von allen Prinzipien der Sinnlichkeit a priori)
이라 부른다. 이제 이러한 ‘감성의 학’은 또 다른 인식 능력으로서
의 ‘지성’과 그 원리를 다루는 ‘초월 논리학’과 함께 ‘초월적 원리
론’(trans- zendentale Elementarlehre)의 전체 체계를 이루게
된다.
선천적[선험적] 감성의 모든 원리에 관한 학문을 나는 선험적[초
월적] 감성론(Ästhetik)이라고 한다. 이래서 선험적[초월적] 원리론의
제 1 부가 되는 학문이 있어야 한다. 이 학문에서 구별되는 것이 사고
(思考)의 원리들을 포함하는 학문이요, 선험적[초월적] 논리학이라고
불러진다.(A21/B35f., 한글판 74, 글쓴이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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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끝으로 칸트는 ‘감성’(Sinnlichkeit)과 그 ‘원리들’(Prinzipien)에
관한 학문을 ‘감성학’(Ästhetik)이라 이름 붙인 이유에 관해 ‘주’
(註)를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말로 ‘감성학’이라 번역한
이 ‘에스테틱’(Ästhetik)이라는 독일 말은 사실 칸트 당시 다른
뜻으로 이해 될 오해의 가능성이 있었다. 즉 칸트 이전의 철학자
‘바움가르텐’(Baumgarten)’이 ‘취미의 비판’과 관련된 학문에 ‘에
스테티카’(Ästhetica)라는 이름을 사용한 이후 ‘에스테틱’이라는
단어는 독일인들에게 일반적으로 ‘미학’(美學) 혹은 ‘취미의 학’을
뜻했다. 그러나 칸트는 ‘에스테틱’이라는 단어를 그 희랍어 어원
에 근거해서, 즉 ‘감각’이라는 뜻의 ‘아이스테시스’(aisthesis)라는
단어와 연관해서 사용한다. 요컨대 칸트가 ‘감성’(Sinnlichkeit)에
관한 학문에 이와 같이 ‘에스테틱’(Ästhetik)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희랍인들이 인간의 앎을 ‘사유’(noesis)와 ‘감각’(aisthesis)
으로 구분하였던 전통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고대인
들이 인식을 ‘감각된 것’(aistheta)과 ‘사유되어 진 것’(noeta)으로
나누어 생각했듯이 칸트에게서는 이제 이러한 인식의 두 능력인
‘감성’과 ‘지성’을 다루는 ‘초월적 감성학’(transzendentale
Ästhe- tik)과 ‘초월 논리학’이 성립하게 된다.
독일인은 다른 국민이「취미 비판」이라고 하는 것을 표시하고자, 에
스테에틱(Ästhetik)이라는 말을 현재 사용하는 유일한 국민이다. 이 말
을 사용하게 된 근거는, 탁월한 분석학자 바움가르텐이 〔그의 저서
Ästhetica, 1750에서〕 지녔던 잘못된 희망에 있었다. 그는 미(美)의
비판적 평가를 이성적 원리중에 포함시키려 했고, […]. 그러므로 〔취
미 비판이라는 의미의〕 에스테에틱이란 명칭을 다시 사용하지 않고
그 말을 진정한 학(學)인〔감성〕론을 위해서 보류함이 좋다(보류함으
로써 고대 철인이 사용한 그 말과 그 말의 뜻에 접근하게 되겠다. 고
대인이 인식을 지각된 것 aistheta과 생각된 것 noeta으로 구분한 것
칸트『순수이성비판』101
은 유명하다).(A21/B35f., 한글판 74 이하)
2.2 ‘공간’(Raum)
‘선험적 감성의 원리’에 관한 학(學)으로서의 ‘초월적 감성학’은
두 가지 ‘직관의 순수 형식’(reine Formen der Anschauung), 즉
‘공간’(Raum)과 ‘시간’(Zeit)을 ‘감성의 선험적 인식원리’로 제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먼저 ‘공간’에 관한 원칙을 다루고 있는 ‘첫
번째 절’(Erster Abschnitt)에서 칸트는 다음과 같은 세 단계에
거쳐 ‘공간’개념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 1. ‘공간 개념에 관한 형
이상학적 구명’(A22-25/B37-40, 한글판 75-78) 2. ‘공간 개념
에 관한 초월적 구명’(B40-41, 한글판 78) 3. ‘이상의 논의된 공
간 개념에서부터 생기는 결론’(A26-30/B42-45, 한글판 78-81).
2.2.1. 공간개념에 관한 형이상학적 구명(究明)
칸트는 먼저 ‘공간’과 ‘시간’이 각각 서로 다른 종류의 ‘직관’과
관계 있음을 밝힌다. 우리는 ‘외감’(äußere Sinne)을 통해 대상을
우리 밖에 있는 것으로, 즉 ‘공간’(Raum)중에 있는 것으로 표상
한다. 또한 우리의 내적 상태를 직관하는 수단인 ‘내감’(innere
Sinne)은 우리의 내적 규정에 속하는 모든 것을 ‘시간’(Zeit)의 관
계 속에서만 표상하게 한다. 즉 ‘공간’이 ‘외적 직관의 형식’(Form
der äußeren Anschauung)이라면 ‘시간’은 ‘내적 직관의 형
식’(Form der inneren Anschauung)이다. 따라서 시간은 외적으
로 직관될 수가 없고 공간은 마찬가지로 내적인 어떤 것으로 직관
될 수 없다. 그러나 칸트의 관심은 ‘공간’과 ‘시간’의 이러한 차이
점에 있지 않다. 칸트는 여기서 더욱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
다. 즉, “그러면 공간과 시간은 무엇인가?”(A23/B37, 한글판 75)
101
102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칸트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은 우리 ‘감관’(Sinne)에 주어지는
대상을 공간적으로 혹은 시간적으로 규정하기 위해 필요한 우리
의 ‘주관적인 직관 형식’(subjektive Formen der Anschauung)이
다. 이점을 증명하기에 앞서 칸트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이 이전의
전통적인 공간․시간 이론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다음의 질문
을 통해 우회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그러면 공간과 시간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현실로 존재하는 것〔실
체, 實體〕인가? 그것들은 사물의 한갓 규정〔속성〕이거나 사물들의 관
계일 뿐이로되, 직관되지는 않는 물 자체에도 속하는 규정 혹은 관계
일 것인가? 그렇지 않고 공간과 시간은 오직 직관작용의 형식에만 속
하고, 따라서 인간 심성의 주관적 성질일 뿐이라서 이런 성질 없이는
〔어느〕공간이니〔어느〕시간이니 하는 객어(客語)가 사물에 도무지
부여(附與)될 수 없는 것인가?” (A23f./B37f., 한글판 75 이하, 글쓴이
강조)
칸트는 이제 전통적인 공간 이론, 즉 공간은 주관과 관계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현실적인 어떤 것’(wirkliche Wesen)이다,
라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다고 어떤 이들처럼 공간이
우리 밖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속성’(Bestimmung der Dinge)에
속하거나 혹은 ‘그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관계’(Verhältnis der
Dinge)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칸트가 여기서 해명하려는 것은,
공간이라는 것은 철저히 ‘우리 심성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인 성
질’(subjektive Beschaffenheit unseres Gemüts), 즉 ‘직관의 형
식’(Form der Anschauung)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이점을 칸트
는 4가지 논증을 통해 증명한다. 자신의 이러한 작업을 칸트는
‘공간개념의 형이상학적 구명’(metaphysische Erörterung des
Raums)이라고 부른다. 칸트는 특히『순수이성비판』의 재판(再
칸트『순수이성비판』103
版)에서 왜 자신이 이러한 논증의 작업을 ‘구명’(究明,
Erörterung)이라 부르고 또 그 작업이 ‘형이상학
적’(metaphysisch)인지에 관해 설명한다 : “나는 구명이라는 말
아래서 하나의 개념에 속하는 분명한 표상(비록 그것이 충분히
상세하지는 않더라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구명이 선험적으로
주어진 개념에 관해 서술하고 있는 바를 포함하고 있다면 그것은
형이상학적이다.”(B38)
2.2.1.1. 공간 표상의 첫 번째 논증
칸트는 먼저 ‘공간’이라는 것이 어떤 점에서 우리의 모든 감각
적인 지각의 근저에 놓여있는 ‘선험적 표상’(eine Vorstellung a
priori)인지를 설명한다. ‘공간’이라는 것은 칸트에 의하면 외적
경험에서부터 추상하여 만들어낸 ‘경험적 개념’(empirischer Begriff)
이 아니다. 감각들이 나와 구별되는 외적 대상과 관계 맺기
위하여 또 그 감각들을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것으로 표상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공간 표상은, 경험을 통해, 즉 외적 현상들
의 관계로부터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험이 이 공
간 표상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간은 외적 경험에서 추상(抽象)된 경험적〔후천적〕개념이 아니
다. 왜냐하면, 어떤 감각이 내 바깥에 있는 어떤 것(즉 내가 있는 장소
와는 다른 장소에 있는 어떤 것)에 관계하기 위해서, 즉 내가 감각들이
서로 분리해 있고 또 나란히 있는 것으로 표상하기 위해서, 따라서 감
각들이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다른 장소에 있는 것으로 내가 표상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근저에 공간의 표상이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이
다. 이렇기에 공간의 표상은 외적 현상들의 관계들로부터 경험적으로
얻어질 수 없고, 도리어 외적 경험 자신이 공간의 표상에 의해서 비로
소 가능한 것이다.(A23/B38, 한글판 76)
103
104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2.2.1.2. 공간 표상의 두 번째 논증
두 번째 논증에서 칸트는 공간이라는 것은 경험으로부터 얻어
지지 않은 ‘선험적 표상’이면서 또한 동시에 ‘필연적 표상’임을 밝
힌다. 즉 공간은 모든 외적 직관의 근저에 놓여 있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필연적 표상’(eine notweindige Vorstellung a priori)이
다. 왜냐하면 공간에서 모든 대상을 제거하여 그 속에 대상이 없
는 빈 공간을 우리가 상상할 수는 있지만 공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표상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간은 모든 외적 직관 작용의 근저에 있는 필연적인 선천적[선험
적] 표상이다. 공간 안에 대상이 없는 일은 넉넉히 생각될 수 있으나,
우리는 공간이 전혀 없다는 생각을 가질 수는 없다. 따라서 공간은 외
적 현상에 의존하는 규정으로 보아지지 않고, 외적 현상을 가능하게 하
는 조건으로 보아진다. 즉 그것은 외적 현상의 근저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선천적[선험적] 표상이다.(A24/B38f., 한글판 76, 글쓴이 강조)
2.2.1.3. 공간 표상의 세 번째 논증
칸트가 이제 세 번째 논증에서 해명하려는 것은, ‘공간’이라는
‘선험적이며 필연적인 표상’이 ‘개념’(Begriff)이 아니라 ‘순수 직
관’(reine Anschauung)이라는 점이다. 칸트는 이미 첫 번째 논증
에서 ‘공간 표상’이라는 것은 외적 대상의 특징들에서 추상하여
만들어 낸 ‘경험적 개념’(empirischer Begriff)이 아님을 보여 주
었다. 그러나 칸트가 여기서 분명히 하려는 것은 ‘공간 표상’이
이러한 ‘경험적 개념’이 아닐 뿐 아니라 ‘선험적 개
념’(apriorischer Begriff) 또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간 표상’은 본질적으로 ‘추론된 개념’(diskursiver Begriff)일
수가 없고 단지 ‘직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간’은 ‘개념’이
칸트『순수이성비판』105
갖는 특성을― 예컨대 서로 상이한 부분 공간들이 더 보편적인 상
위의 공간 개념아래에 종속되어 표상 되는 식― 가지는 것이 아니
라 오히려 ‘직관’의 특성을 지닌다. 즉 공간은 무한한 부분 공간
들을 자기 자신 속에 포함하는 하나의 ‘전체’(Ganze)로 표상 될
따름이다.
공간은 추리된 개념이 아니다. 혹은 흔히 말하듯이 물(物)일반의 관
계에 관한 일반 개념(一般槪念)이 아니다. 그것은 순수 직관이다. 왜냐
하면 첫째로 우리는 단지 하나의 공간만을 표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공간이라는 말은 하나의 동일한 공간의 부분들을 의미한다. 또 이
런 부분들은 유일의 포괄적(包括的)인 공간에 대해서 이를테면 그것의
조직 요소(組織要素)로서 (이런 요소들이 집합해서 포괄적인 공간의 성
립이 가능하지만) 선행할 수가 없고, 도리어 유일의 포괄적인 공간 안
에서만 생각될 수가 있다. 공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다. 공간에서의 다양
(多樣)한 것과 따라서 보통 공간들 일반이라는 일반 개념은 전혀 전체
적인 하나를 구획(區劃)지움에 기본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간에 관하여
(경험적이 아닌) 선천적[선험적]인 직관이 모든 공간의「관념」들의 근
저에 먼저 있다.(A24f./B39, 한글판 76이하, 글쓴이 강조)
2.2.1.4. 공간 표상의 네 번째 논증
마지막 네 번째 논증을 통해 칸트는 이미 논의된 공간의 특성
을 다시 한번 해명한다. 즉 ‘공간’은 ‘무한하게 주어진 양’(eine
unendliche gegebene Größe)으로 표상된다는 사실을 통해 공간
이 ‘개념’이 아니라 선험적이고 필연적인 순수 직관임이 분명해
진다. 왜냐하면 ‘개념’이라는 표상은 서로 다른 무한히 많은 표상
들을 ‘자기 자신 아래에’(unter sich) 포섭하여 그것들의 ‘공통적
인 표징’(gemeinschaftliches Merkmal)을 의미할 수는 있지만
결코 무한히 많은 표상들을 ‘자기 자신 속에’(in sich) 포함할 수
105
106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있는 그러한 표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간은 주어진 무한한 크기(大)라고 표상된다. 그런데 무릇 개념이
란 무한하게 다를 수 있는 표상 군(群) 안에(이런 여러 표상들 간의 공
통된 표징으로서) 포함되어 있는 표상이라고 생각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런 표상 군(群)들을 자기 아래에 포괄하는 표상이라고 생각되어야
한다. 허나 어떠한 개념도 그 자신 무한히 많은 표상군을 자기 속에
포괄하는 것처럼 생각될 수는 없다. 그러나 개념과는 달라 공간은 표
상의 군을〔무한하게〕자기 속에 포괄한다고 생각된다.(유일한 공간의
〔분할된〕모든 부분들은 동시에 무한이기에 말이다) 그러므로 공간이
라는 근원적 표상은 개념이 아니라 선천적[선험적]인 직관이다.(B
39f., 한글판 77)
2.2.2. 공간 개념에 관한 초월적 구명(究明)
지금까지의 공간 표상에 관한 ‘형이상학적 구명’(metaphysische
Erörterung)에서 ‘공간’이 ‘감성의 선험적 형식’(eine apriorische
Form der Sinnlichkeit)임이 드러났다면 칸트는 이제 이 ‘순수직
관’으로서의 ‘공간 표상’이 ‘선험적 종합 인식’(synthetische
Erkennt- nis a priori)을 가능하게 해주는 ‘우리 인식 능력의 원
리’(Prinzip)임을 증명하려고 한다.『순수이성비판』의 재판(再版)
에 추가된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칸트는 ‘공간 개념에 관한 초월적
구명’(Tra- nszendentale Erörterung des Begriffs vom Raum,
B40~41, 한글판 78)이라 부른다.
내가 선험적[초월적] 구명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개념{관념}을 그
것이 다른 선천적[선험적]인 종합인식의 가능성을 통찰할 수 있도록
하는 원리로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구명을 위해서 다음의
두 가지가 필요하다. {1} 주어진 개념〔공간 관념〕에서 선천적[선험적]
종합인식이 실지로 나온다는 것이다. {2} 선천적[선험적] 종합인식은
칸트『순수이성비판』107
이 개념을 내가 설명하는 방식을 전제하고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B
40, 한글판 78)
‘공간 표상’을 ‘초월적’(transzendental)으로 해설한다는 것은
칸트에 의하면 결국 두 가지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공간
표상’에서부터 ‘선험적이고 종합적인 인식들’(synthetische
Erkennt- nisse a priori)이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이다. 칸트는 이
를 ‘공간의 특성들’(die Eigenschaften des Raums)을 종합적이면
서도(syn- thetisch) 선험적으로(a priori) 규정하는 학문인 ‘기하
학’(Geome- trie)의 예를 통해 설명한다.
기하학은 공간의 성질들을 종합적이면서 선천적[선험적]으로 규정
하는 학문이다. 공간에 관해서 이런 인식〔선천적[선험적] 종합 인식〕
이 가능하고자 {공간}표상은 도대체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원래가 직
관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한갓 개념으로부터는 개념 바깥에 나가
는 종합 명제가 나오지 않지만, 기하학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기 때문
이다(들어가는 말 V 참조). 그러나 공간적 직관은 선천적[선험적]으
로, 즉 대상의 모든 지각(知覺)에 앞서서 우리 안에서 발견되어야 한
다. 따라서 순수직관이요, 경험적 직관이 아니다. 기하학의 명제들은
예외 없이 절대 필연적이기 때문이요, {공간은 삼차원만을 갖는다}는
명제처럼 필연성의 의식과 결합해 있기 때문이다. 기하학의 명제는 경
험적 판단 혹은〔경험 판단〕일 수 없고 이런 판단들에서 추리될 수도
없다.(들어가는 말 II 참조) (B40f., 한글판 78)
‘공간’은 ‘개념’이 아닌 ‘직관’이란 점에서 ‘공간 표상’으로부터
기하학의 경우처럼 종합명제가 생겨난다. 또한 ‘공간’이 ‘직관’이
기는 하나 ‘경험적 직관’이 아닌 ‘순수 직관’이기에 이로부터 생겨
나는 기하학의 명제는 필연성을 갖는다. 그러나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무엇이 ‘공간 표상’이라는 ‘외적 직관’이 경험으로부터 생
107
108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겨난 ‘경험적 직관’이 아니라 ‘순수 직관’이라는 것을 보증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이 칸트가 공간 표상의 초월적
해설을 통해 밝히려는 두 번째 내용이다. 즉 기하학에서와 같은
‘선험적이며 종합적인 인식’은 ‘공간 표상’에 관해 지금까지 주어
진 설명들, 즉 ‘공간’이 우리 감성의 순수 형식이라는 점을 전제
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객관 그것」에 선행하고 또 객관의 개념이 선천적으로 규정
될 수 있게 하는 외적 직관이 어떻게 심성에 존재할 수 있는가? 이것
에 대해서 외적 직관이 단지 주관에만 자리잡고 있는 때문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외적 직관은 객관에 촉발되어서 객관의 직
접적 표상, 즉 경험적 직관을 얻어 갖는「주관의 형식적 성질」이요, 따
라서 오로지 외감(外感) 일반의 형식이다. 이리하여 우리〔칸트〕의 설
명만이 선천적[선험적] 종합인식으로서의 기하학의 가능성을 이해하
도록 한다.(B41, 한글판 78)
2.2.3. 공간 개념에 관한 논의의 결과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밝혀진 공간개념으로부터 칸트는 이제 다
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낸다.
첫째, ‘공간’은 사물 자체가 갖고 있는 ‘성질’(Eigenschaft)이거
나 혹은 사물 자체를 ‘규정하는 것’(Bestimmung)일 수가 없다. 만
약에 ‘공간’이 사물의 규정에 해당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경험에 앞
서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 그 까닭은 칸트에
의하면 “사물의 규정은 그것의 절대적 규정이건 상대적인 규정이
건 간에 규정이 귀속하는 물의 실재(實在)에 앞서서 직관될 수 없
고, 따라서 선천적[선험적]으로 직관될 수 없기 때문이
다.”(A26/B42, 한글판 78이하)
둘째, ‘공간’은 ‘외감’(äußere Sinne)에 주어지는 모든 현상들
칸트『순수이성비판』109
의 형식이다. 따라서 ‘공간’이라는 ‘감성의 주관적인 조건’(die
sub- jektive Bedingung der Sinnlichkeit) 아래에서만 ‘외적직
관’은 가능하게 된다. 요컨대 대상에 의해 인식 주체가 촉발되어
짐을 의미하는 ‘감성의 수용성’(die Rezeptivität der
Sinnlichkeit)이 이러한 대상에 관한 모든 직관에 앞서 필연적으
로 선행해야 하고, 이것은 모든 현상의 형식으로서의 ‘공간 표상’
이 대상에 관한 모든 지각에 앞서 선험적으로 우리 심성 속에 주
어져야 함을 말한다.
이상의 결과로부터 칸트는 이제 중요한 결론에 이른다. 우리 감
관(Sinne)에 외적으로 나타나는(erscheinen) 것, 즉 모든 ‘현상’
(Erscheinung)은 ‘공간’ 중에 있다. 따라서 ‘공간 표상’은 경험의
대상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이 모든 외적 현상과 관계해서만 자
신의 ‘실재성’(Realität)을 이야기할 수 있고, 이러한 한에서만 ‘객
관적 타당성’(objektive Gültigkeit)을 갖는다. 반면에 ‘사물 자
체’(Dinge an sich)에 대해서, 즉 대상을 받아들이는 인식 능력인
‘감성’(Sinnlichkeit)을 통해 주어짐 없이 단지 추론하는 능력인
‘이성’(Vernunft)을 통해 사유되기만 하는 그러한 대상에 대해서
‘공간’은 단지 관념적인(ideal)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공간’의 이
중적인 성격을 칸트는 ‘공간의 경험적 실재성’(die empirische
Rea- lität des Raums)과 ‘공간의 초험적 관념성’(die
transzendentale Idealität des Raums)이라 부른다.
따라서 우리의 구명은, 대상으로서 외적으로 우리에게 현상하는 일
체(一切)에 관해서는 공간이 실재성(즉 객관적 타당성)임을 가르쳐 준
다. 그러나 우리의 구명은 동시에 이성이 물 자체 그것을 고려(考慮)할
때에는 즉 인간 감성의 성질을 돌보는 일이 없다고 한다면, 이러한 물
자체 그것에 관해서는 공간이 관념성임을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우리
는 (가능한 전 외적 경험에 관해서는) 공간의 경험적 실재성(die
110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empirische Realität)을 주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공간의 선험
적[초험적] 관념성(die transzendentale Idealität)을 주장한다. 즉 우
리가 모든 경험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라는〔의미를〕 내어버리고 공간
을 물 자체 그것의 근저에 있는 그 어떤 것으로 가정하자마자, 공간은
없는 것이다.(A27f./B43f., 한글판 79 이하, 글쓴이 강조)
‘공간 표상’이라는 것이 비록 ‘사물 자체’(Dinge an sich)와 관
련해서는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감각적 인식
과 관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연적 조건이다. 따라서 우리 경
험의 대상은 반드시 ‘공간’중에서 우리에게 나타나고(erscheinen)
설사 공간 밖에 그 어떤 것이 만나진다 해도 그것을 우리가 경험
으로 표상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공간의 이중
적 특성, 즉 ‘공간의 경험적 실재성’과 ‘공간의 초험적 관념성’을
통해 이야기하는 바이다.
2.3. ‘시간’(Zeit)
‘시간 표상’에 관한 칸트의 논증은 ‘공간’의 경우와 그 구조와
내용에서 동일하다. 따라서 칸트가 ‘시간’(Zeit)에 관해 논의하고
있는 ‘초월적 감성학’의 ‘두 번째 절’(Zweiter Abschnitt) 역시 1.
‘시간 개념에 관한 형이상학적 구명’(A30~32/B46~48, 한글판
81~82), 2. ‘시간 개념에 관한 초월적 구명’(B48~49, 한글판
82~83), 3. ‘이상의 논의된 시간 개념에서부터 생기는 결
론’(A32~36/ B49~53, 한글판 83~85)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
만 ‘시간 표상에 관한 형이상학적 구명’이 ‘공간’의 경우와 달리 5
개의 논증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내용상 ‘형이상학적 구명’에
해당하는 3번째 논증이 ‘공간’의 경우 재판(再版)에서 제외된 반
면 여기서는 재판에도 여전히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용
110
칸트『순수이성비판』111
상으로 볼 때, 시간 표상에 관한 칸트의 형이상학적 구명은 공간
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4개의 논증으로 이루어져 있
다.
2.3.1. 시간 개념에 관한 형이상학적 구명(究明)
2.3.1.1. 시간 표상의 첫 번째 논증
‘시간 표상’은 ‘공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선험적 표상’(eine
Vorstellung a priori)이다. 즉 ‘시간’이란 것은 경험으로부터 추
상해낼 수 있는 ‘경험적 개념’(empirischer Begriff)이 아니다.
‘시간 표상’이 전제될 때에만 ‘동시에 있음’(das Zugleichsein)과
‘잇닿아 생겨남’(das Aufeinanderfolgen)이 표상 되어 질 수 있
다는 점에서 ‘시간 표상’은 경험에 앞서 근저에 놓여 있어야 하는
‘선험적 표상’이다.
시간은 어느 경험에서 유도(誘導)된 경험적 개념이 아니다. 왜냐하
면 시간의 표상이 선천적[선험적]으로 밑바닥에 없다면, 동시존재(同
時存在)니 계기(繼起)니 하는 것이 지각되지도 않기에 말이다. 약간의
사물이 동일한 시간에 (동시적으로) 있다거나, 다른 시간에 (계기적으
로) 있다고나 하는 것은 시간을 전제(前提)해서만 표상될 수 있다.
(A30/B46, 한글판 81)
2.3.1.2 시간 표상의 두 번째 논증
‘시간 표상’은 경험에 앞서 주어지는 ‘선험적 표상’ 이면서, 동
시에 모든 ‘현상’(Erscheinungen)이 실재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
해야 하는 ‘필연적 표상’(notwendige Vorstellung)이다. 비록 시
간에서 모든 현상을 제거해 냄을 상상할 수 있다 해도 현상과 관
계해서 ‘시간’ 자체가 없음을 표상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시간’은
112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선험적이면서 동시에 필연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시간은 모든 직관의 기초에 있는 필연적 표상이다. 우리는「현상 일
반」에 관해서 시간 자신을 없앨 수가 없다― 비록 시간으로부터 현상을
없앨 수는 있지만. 그러므로, 시간은 선천적[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
현상이 실재하는 것은 모두 시간 중에서만 가능하다. 현상들은 예외 없
이 제거될 수 있으나 (현상들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 조건으로서의)
시간 자신은 없앨 수가 없다.(A31/B46, 한글판 81)
2.3.1.3 시간 표상의 세 번째 논증
앞서 이야기했듯이 ‘시간 표상’에 관한 형이상학적 구명의 세
번째 논증은 내용상 ‘초월적 구명’에 해당한다. 따라서 내용상으
로는 여기에 나타나는 시간 표상의 네 번째 논증이 ‘공간’의 세
번째 논증에 해당한다.
선험적이며 필연적인 ‘시간 표상’은 그것의 본성이 ‘직관’(Anschauung)
인 한 ‘개념’(Begriff)의 특성을 가질 수는 없다. 이것은
‘시간’이 흔히 말하는 ‘일반 개념’(allgemeiner Begriff)의 경우처럼
상이한 부분 시간들을 포섭하는 더 보편적인 상위의 표상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을 통해 주어지는 직관적인 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
간은 따라서 ‘추론된 개념’(diskursiver Begriff)이 아니라 ‘감성적
직관의 순수 형식’(reine Form der sinnlichen Anschauung)이다.
시간은 추리된 개념이 아니다. 흔히 말하듯이 일반개념도 아니다.
그것은 감성적 직관의「순수 형식」이다. 각종 시간들은 바로 동일한
시간〔전체 시간〕의 부분들일 뿐이다. 단지 유일한 대상에 의해서만 주
어질 수 있는 표상〔시간 형식〕은 직관이다. 또 서로 다른 시간들은 동
시적(同時的)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명제는 일반개념에서 이끌어 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명제는 종합적이요, 개념에서만 발생할 수는 없
다. 그러므로 이 명제는 시간의 직관과 시간의 표상 중에 직접 포함되
112
칸트『순수이성비판』113
어 있다.(A31f./B47, 한글판 82)
2.3.1.4. 시간 표상의 네 번째 논증
‘무한하게 주어진 양’(eine unendliche gegebene Größe)으로
서의 ‘공간’이 ‘개념’(Begriff)일 수 없고 ‘직관’(Anschauung)이어
야 하듯이 ‘무한한 시간’(unendliche Zeit) 또한 ‘개념’을 통해 주
어질 수 없다. ‘시간이 무한하다’라는 것은 ‘부분 시간’들의 합을
통해 얻어 질 수 있는 표상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근원적인
시간 표상’(die ursprüngliche Vorstellung der Zeit)이 ‘부분 표
상으로서의 개별적 시간들’의 근저에 놓여있을 때에만 가능한 표
상이다. 이러한 ‘전체 표상’(eine ganze Vorstellung)으로서의
‘하나의 유일한 시간’은 오로지 ‘직접적 직관’(unmittelbare
Anschauung)을 통해서만 주어진다.
모든 한정된 시간량(時間量)은 그 기초에 있는 유일한 시간을 제한
하여서만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시간의 무한성」의 의미이다. 따라서
시간이라는 근원적 표상은 무제한의 것으로 주어져 있어야 한다.〔시
간의〕부분들 자신과, 한 대상의 각 시간량은 제한을 통해서만 규정된
것으로 표상될 수 있고 보면, 전체적〔시간〕표상은 개념에 의해서 주
어져 있지 않고 (개념은 부분표상만을 포함할 뿐이기에 말이다), 그것
의 근저에는 직관이 직접 있어야 한다.(A32/B47f., 한글판 82)
2.3.2. 시간 개념에 관한 초월적 구명(究明)
‘공간 개념의 초월적 구명’에서와 마찬가지로 칸트는 ‘시간 개념
에 관한 초월적 구명’에서 ‘감성의 선험적 형식’으로 밝혀진 ‘시간
표상’이 이제 ‘선험적 종합 인식의 가능성을 위한 조건’이 됨을 증
명하고 있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칸트는 내용상 시간 표상에 관한
114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초월적 구명에 속하는 것을 ‘시간 개념에 관한 형이상학적 구명’의
세 번째 논증에서 이미 언급하였다. ‘시간 개념에 관한 초월적 구
명’을 시작하면서 칸트는 이제 그 내용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
“나는 여기서〔시간의 형이상학적 구명 중의〕 3.[세 번째 논증]
을 원용(援用)할 수가 있다. 거기서 나는 간결(簡潔)을 위해서 원
래는 선험적[초월적]〔구명〕인 것을 형이상학적 구명의 항목에
넣었다.” (B48, 한글판 82) 칸트가 이 세 번째 논증에서 이야기하
고 있는 바는 한마디로 시간의 원칙들이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
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인식 능력
으로부터 비롯한 ‘선험적 원칙들’(apriorische Grundsätze)이라는
점이다.
시간 관계에 관한 절대당연(絶對當然)한 원칙들의 가능성 혹은 시
간 일반의 공리들의 가능성도 시간 자신의 선천적[선험적] 필연성에
기인하고 있다. 시간은 일차원(一次元)만을 갖는다. 즉 서로 다른 시
간들은 동시적으로 있지 않고 계기적(繼起的)으로 있다(서로 다른 공
간들이 계기적으로 있지 않고 동시적으로 있듯이). 그러한 시간의 원
칙들은 경험에서 이끌어내질 수 없다. 경험은 엄밀한 보편성도 절대
필연적인 확실성도 주지 않기에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겠는 말은
보통의 지각〔경험〕이 이때까지는 그렇다고 가르친다는 것 뿐이요 반
드시 그러한 상태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
다. 시간의 원칙들은 규칙들로서 타당하고 이러한 규칙들 아래서 일
반적으로 경험들이 가능하다. 따라서 시간의 원칙들은 경험들 이전에
우리에게 가르침이 있고 경험들을 통해서 가르침이 있는 것이 아니
다.(A31/B47, 한글판 81 이하)
‘순수 직관 형식’인 공간 표상으로 인해 ‘기하학’(Geometrie)이
가능하였듯이 칸트는 이제 ‘시간 표상’에 근거해서 ‘역학’(Mechanik)
이나 ‘운동론’(Bewegungslehre)이 성립함을 보여준다. 즉 ‘변
화’(Veränderung)의 개념이나 장소의 이동을 의미하는 ‘운
114
칸트『순수이성비판』115
동’(Be- wegung)의 개념은 시간 표상 내에서만 가능하고 이것은
바로 ‘시간’이라는 순수 형식이 ‘역학’에서의 ‘선험적 종합 인식
들’(synthe- tsiche Erkenntnisse a priori)을 가능하게 해주는
‘선험적 원칙들’임을 의미한다.
여기서 나는 조금 더 부연해 둔다. 즉〔1〕변화 개념과 동시에 (장소
의 변화로서의)운동의 개념은「시간」표상에 의해서 또「시간」표상
안에 있어서만 가능하다.〔2〕시간 표상이 선천적[선험적] (내적) 직관
이 아니었다고 하면, 어떠한 개념이든 간에 그것은 동일한 객관에서의
변화 가능성을 이해시킬 수 없다. 즉 모순대당(矛盾對當)의〔두〕객어
가(가령 동일한 사물이 한 장소에 있고 또 그 동일한 장소에 있지 않
다고 하듯이) 동일한 객관에 결합함을 이해시킬 수 없다. 서로 모순대
당인 두 규정은 오직 시간 중에서만 같은 한 사물에서 발견될 수 있다.
즉 계시적(繼時的)으로 발견될 수 있다. 이리하여 우리의 시간관념은
정말 효용이 많은 일반 역학〔즉 運動Q〕이 표시하는 한의, 많은 선천
적[선험적] 종합인식이 가능한 까닭을 설명하는 것이다.(B48f., 한글
판 82 이하)
2.3.3. 시간 개념에 관한 논의의 결과
‘공간’에 관한 논의에서처럼 이상의 ‘시간 표상’에 관한 논의의
결과를 칸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로 ‘공간’과 마찬가지
로 ‘시간’은 사물 자체에 속한 어떤 것이거나 혹은 우리 ‘감
성’(Sinnlichkeit) 바깥에 따로 존재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일 수
없다. 즉 ‘시간’은 칸트에 의하면, “자기 자신만으로 있는 것이 아
니요, 사물의 객관적 특성으로서 사물에 속해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사물을 직관하는 모든 주관적 조건〔직관형식〕을 무시(無
視)할 때에도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자기 자신
만으로 있는 경우에는 그것은 현실의 대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재(實在)하는 것이 되겠기에 말이다” (A32/B49, 한글판 83).
116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둘째로 ‘시간’은 ‘외적현상’(äußere Erscheinung)에 속한 ‘규
정’(Bestimmung)이 아니라 ‘현상의 형식’이며 그것도 ‘내감의 형
식’(Form des ineren Sinnes’, 즉 우리의 내적 상태를 직관하는
형식이다. 셋째로 ‘시간’은 내감에 주어지는 현상들 뿐 아니라 모
든 현상들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현상일반의 선험적 형식의 조
건’(die formale Bedingung a priori aller Erscheinung
überhaupt)이다.
시간은 내감(內感)의 형식 즉 우리 자신과 우리의 내적(內的) 상태
와를 직관하는 형식임에 틀림이 없다. 시간은 외적 현상에 관한 어떤
규정일 수 없기 때문이다.(A33/B49, 한글판 83)
시간은 모든「현상 일반」의 선천적인 형식적 조건이다. 공간은 모
든 외적 직관의 순수 형식이요, 선전적[선험적] 조건으로서는 외적 현
상에만〔그 타당성이〕제한되어 있다. 이와 반대로 모든 표상은 그것
이 외적 사물을 대상으로서 가지건 안 가지건 간에, 그자신 심성의 규
정으로서 내적 상태에 속하고, 이 내적 상태는 내적 직관의 형식적 조
건에 속하며, 따라서 시간에 속하기 때문에, 시간은 모든 현상 일반
〔내외의 현상 전반〕의 선천적[선험적] 조건이다.(A34/B50, 한글판
83 이하)
끝으로 칸트는 ‘시간 표상’의 이중적인 특성을 언급한다. ‘공간’
과 마찬가지로 ‘시간 표상’이 모든 대상에 대해 ‘객관적 타당
성’(objektive Gültigkeit)을 갖는다는 점에서 ‘시간의 경험적 실
재성’(empirische Realität der Zeit)은 성립한다. 또한 우리 ‘감
성의 조건’을 넘어서서 주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물 자체’에
대해서 ‘시간’은 ‘관념성’(Idealität)만을 갖는다. 따라서 우리 감성
의 주관적 조건을 도외시하고 ‘시간’을 마치 그 자체로 절대적인
것이나 사물 자체의 성질로 여기는 데에서 ‘시간의 초험적 관념
성’(transzendentale Idealität der Zeit)은 생겨나게 된다.
116
칸트『순수이성비판』117
이에 우리의 주장은 시간의 경험적인 실재성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즉 언제나 우리의「감관」에 주어질 수 있는 만상(萬象)에 관한 시간
의 객관적 타당성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우리의 직관은 항상 감성적
이기 때문에 시간의 조건에 일치하지 않는 대상은 경험 중에 주어질
수가 없다. 타방 우리는 시간의 절대적 실재성에 대한 모든 요구를 거
부한다. 즉 우리의 감성적 직관의 형식을 돌봄(顧廬)이 없이, 시간이
절대적으로 조건이나 혹은 성질로서 물 자체에 속한다고 하는 것을 거
부한다.「물 자체」에 속하는 성질을 우리의 감관이 우리에게 줄 수가
없다. 시간의 선험적[초험적] 관념성〔주관성〕은 이 점에 존립한다. 이
관념성에 의하면 만약 우리가 감성적 직관의 주관적 조건들을 무시한
다면 시간은 전혀 없는 것이요, 실체로서건 속성으로서건 간에 우리의
직관에 대하는 관계가 없는「대상 자체 그것」에 우리는 시간을 귀속
시킬 수가 없다.(A35f./B52, 한글판 84 이하, 글쓴이 강조)
칸트는 시간에 관한 논의를 마치면서 다시 한번 ‘시간의 경험적
실재성’과 관계해서 생겨날 수 있는 오해에 대해 해명한다.(재판의
§7; A36-41/B53-58, 한글판 85-88 참조) 자신의 시간 이론에
대해 비난하는 이들은 시간이 실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주장한다.
칸트는 자신도 이점에는 동의함을 분명히 한다. 다만 시간의 실재
함이 ‘시간의 절대적 실재성’(die absolute Realität der Zeit)을
의미하게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우리 인식 주체와는 무관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칸트에 의하면 “시간은 대상 자신에 속해 있지
않고 대상을 직관하는 주관에만 속해 있는 것이다.” (A37f./B54,
한글판 86) 그리고 이러한 전제 하에서만 ‘수학의 자명한 확실
성’(die apodiktische Gewißheit der Mathematik)이 보장될 수
있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의 ‘경험적 실재성’과 ‘초험적 관념성’이
라는 이중적 특성을 부인하고 단지 시간의 ‘절대적 실재성’을 주장
하는 한, “선천적[선험적]인 수학적 인식의 가능성게 관한 근거를
줄 수도 없고, 경험적 명제들을 수학의〔선천적[선험적]인〕주장
118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과 필연적으로 일치시킬 수도 없다.(A40f./B57, 한글판 88)
2.4. 초월적 감성학의 일반적 주석들
‘초월적 감성학’을 마치기전 ‘초월적 감성학에 대한 일반적인
주석들’(allgemeine Anmerkungen zur transzendentale
Ästhetik)이라는 제목으로 칸트는 그간의 논의에서 생겨날 수 있
었던 오해를 피하고 명확한 이해를 돕기 위한 몇 가지 설명들을
덧붙이고 있다.(A41-49/B59-72, 한글판 88-95 참조) 우선 칸
트는 ‘감성적 인식’(sinnliche Erkenntnis)의 독자성을 분명히 한
다. 이는 ‘지성’(Verstand)을 통한 인식’만을 주장하여 감성의 인
식마저 ‘지성화’(intellektuieren)시켜 버렸던 라이프니츠(Leibniz)
와 볼프(Wolff) 철학에 대한 비판을 의미한다 (A271/B327, 한글
판 250 참조). 이러한 비판에 근거해서 칸트는 이제 다음과 같은
가르침으로 초판(初版)의 ‘초월적 감성학’을 끝맺고 있다.
이에 시공은 모든(외적 또 내적) 경험의 필연적 조건으로서, 우리의
모든 직관의 순 주관적 조건이라는 것, 이 조건과 상관해서 모든 대상은
한갓 현상일 뿐이요, 대상자신은 이러한 방식에서 주어진 사물이 아니라
는 것, 그러므로 현상의 형식에 관해서는 많은 선천적[선험적] 주장을
할 수 있으나 현상의 근저에 있겠다는「물 자체 그것」에 관해서는 사소
한 주장도 할 수 없다는 것 등등은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고, 단지 가
능한 것도 아니요 또 그럴싸한 것도 아니다.” (A48f./B66, 한글판 92)
재판(再版)에서 칸트는 ‘초월적 감성학에 대한 일반적 주석들’
에 추가로 ‘세 개의 절’(II~IV; B66~72, 한글판 92~95)과 ‘초
월적 감성학의 맺음말’(B73, 한글판 95)을 덧붙이고 있다. 칸트
는 이 추가된 ‘두 번째 절(II)에서 ‘사물 자체’는 결코 감성을 통해
인식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세 번째 절(III)에서는 시
간과 공간이라는 직관을 통해서 주어지는 ‘현상’(Erscheinung)이
118
칸트『순수이성비판』119
라는 것과 이러한 감성의 조건들을 무시할 때 생겨나는 ‘가
상’(Schein)과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네 번째 절(IV)은 초월적
감성학의 가르침인 ‘시간과 공간의 경험적 실재성’을 인정할 때
오히려 ‘자연 신학’(natürliche Theologie)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즉 ‘시간과 공간’이 ‘사물 자체’의 형식이 아니
라 우리 감성적 인식의 형식일 때에만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
에서 자유로운 우리의 경험 저편의 ‘신’(神)을 비로소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칸트는 ‘초월적 감성학’을 끝마치며 ‘맺음
말’을 통해 지금까지 밝혀진 ‘시공 이론’이 자신의 초월 철학의
일부를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었는지에 관해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즉 ‘시간’과 ‘공간’이라는 순수직관의 형식은 감각 중에 우
리에게 주어지는 대상들에 관해 우리가 선험적인 종합 판단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감성의 조건들이며 동시에 그러한 선험적 종합
판단들의 가능성의 근거가 되는 우리 인식의 원리들이다.
그런데 이상에서 순수한 선천적[선험적] 직관 즉 시공을 통해서 우
리는 선험철학[초월철학]의 일반 과제― 어떻게 선천적[선험적]인 종합
판단이 가능하냐?― 의 해결을 위해서 필요한 부분들의 하나를 논술한
셈이다. 우리가 선천적[선험적] 판단에 있어서 주어진 개념의 외부로
넘어가려고 할 때에, 개념에 있어서가 아니라, 개념에 대응하는 직관에
있어서 선천적[선험적]으로 발견될 수 있고, 또 개념과 종합적으로 연
결되어질 수 있는 것을 공간과 시간 중에서 우리는 발견한다. 〔순수한
직관들은 우리 감성의 조건들로서 모든 경험 이전의 선천적[선험적] 판
단에서 객관의 성질을 규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허나 이러한 판
단들은〔종합적 연결의〕이유에서 감관의 대상 이상(以上)에 달할 수가
없고, 가능한 경험의 객체에만 타당할 수 있다.(B73, 한글판 95)
3. 범주(Kategorie)
3.1.『순수이성비판』의 체계와 ‘범주’
120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칸트에게서 ‘범주’(Kategorie)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하는 것
은『순수이성비판』의 의미와 체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칸
트에 따르면 우리의 인식은 심성의 두 기본 원천, 즉 표상을 받아
들이는 능력인 ‘감성’(Sinnlichkeit)과 표상자신을 자발적으로 만들
어 내는 능력인 ‘지성’(Verstand)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리고 이 두
인식의 원천은 서로 우열이 없을 뿐 아니라 혼돈되어서도 안 되는
독자적인 인식 능력이다.(A50ff./B74ff., 한글판 96 이하 참조) 따
라서 칸트는『순수이성비판』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초월적 원리론’
(transzendentale Elementarlehre)에서 이러한 근원적인 두 인식
원천에 관한 이론인 ‘초월적 감성학’(transzendentale Ästhetik)과
‘초월 논리학’(transzendentale Logik)을 각각 구별하여 다루고 있
다.
우리 감관의 모든 대상들은 그것들이 공간 시간을 통해서 선험
적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나타난 ‘현상’(Erscheinungen)
일 뿐이라는 ‘초월적 감성학’의 가르침은 어떤 점에서 객관적
대상이 인식 주체의 주관적 조건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초월 논리학’에서 칸트는 이러한 ‘초월적 감성학’의 생각을
더욱 강화시킨다.(Höffe, 1988, S. 88 참조) 즉 ‘초월 논리학’에
서 칸트는 어떤 근거에서 ‘감성’에 주어지는 것으로서의 ‘현상’,
즉 칸트의 표현대로 “경험적 직관의 무규정적 대상”(der
unbestimmte Gegenstand einer empirischen Anschauung)”
(A20/B34, 한글판 73)이 하나의 대상으로 규정될 수 있는지, 다
시 말해 ‘범주’라는 ‘순수 지성 개념’아래에 포섭될 수 있는지를,
또한 그로 인해 비로소 대상에 관한 선험적인 인식이 가능한지를
탐구한다. 이는 칸트에게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
식’(Erkenntnis)은 결코 하나의 인식 원천을 통해서만 생겨날 수
없는 종합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칸트가 ‘직
120
칸트『순수이성비판』121
관’(Anschauung)을 통한 대상의 주어짐이 없는 사고는 ‘공허
한’(leer) 것이고 ‘개념’(Begriffe)을 통한 사고가 결여된 인식은
‘맹목적’(blind)이라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A51/B75, 한글판
97)
‘초월적 감성학’이 우리 ‘감성’(Sinnlichkeit)의 선험적인 형식으
로서의 ‘공간’과 ‘시간’을 다루고 있다면 ‘초월 논리학’이 다루고
있는 대상은 우리 ‘지성’(Verstand)의 순수 형식, 혹은 ‘순수 지
성 개념’(reine Verstandesbegriffe)인 ‘범주’이다. 칸트는『순수
이성비판』중 ‘초월적 분석론’(transzendentale Analytik)의 1편
에 해당하는 ‘개념의 분석론’(Analytik der Begriffe)에서 전통적
인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판단표’(Urteilstafel)를 실마리로
하여 범주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소위 말하는 ‘범주
표’(Kategorienta- fel)를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찾아낸 범주들
은 이제 ‘초월적 분석론’의 2편에 해당하는 ‘원칙의 분석
론’(Analytik der Grundsätze)에서의 ‘순수 지성의 원칙
들’(Grundsätze des reinen Verstandes)의 체계뿐 아니라 ‘초
월 논리학’의 2부, ‘초월적 변증론’에서 ‘이성의 이념
들’(Vernunftideen)의 체계를 형성하게 된다.(Brandt, 1991, S.1
참조) 이처럼『순수이성비판』의 중요 부분들은 자신들의 체계의
근거를 바로 이 ‘범주’의 체계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범주’가『순수이성비판』의 체계 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
유는 칸트가『순수이성비판』의 근본 질문의 해결을 본격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초월 논리학’의 가능성이 바로 이 ‘범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순수한 직관도 아니요 감성적 직관도 아닌, 순수한
사고의 작용인 개념들이 있어서, 따라서 경험에서도 감성에서도 유래
122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하지 않은 개념들이 있어서, 선천적[선험적]으로 대상에 관계할 것을
기대한다. 이처럼 기대해서 순수한 오성[지성]의 인식과 순수한 이성
의 인식에― 이런 인식을 통해서 우리는 대상을 전혀 선천적[선험적]
으로 사고〔또 추리〕하거니와― 관한 학문의 이념을 우리는 미리 형성
한다. 이러한 인식들의〔원리적〕근원․범위․객관적 타당성을 정하는 학
문〔비판적 인식론〕을 선험적 논리학[초월 논리학]이라고 불러야 하겠
다.(A57/B81, 한글판 100)
칸트에게서 ‘초월 논리학’(transzendentale Logik)은 한마디로
‘지성’(Verstand)을 통한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즉 그러한 인식
의 기원과 범위, 그 객관적 타당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초월 논리학’은 ‘순수 지성 인식’을 통해 대상이 온전히 선험적으
로 사유되어 지는 한에서 ‘순수 지성 인식의 학문’(die Wissenschaft
der reinen Verstandeserkenntnis)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은 대상과 선험적으로 관계 맺는 순수 지성 개념, 즉 범주의
존재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초월 논리학’이 단지 ‘이
념’(Idee)으로서 존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완성된 학(學)
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범주’의 존재가 증명되어져야 한다. 즉,
‘초월 논리학’의 ‘이념’은 우선 ‘순수 지성 개념의 발견을 위한 실
마리’(A66~83/B91~116, 한글판 105~118)에서 그리고 ‘순수
지성 개념의 연역’(A84~130/B116~169, 한글판 118~163)에
서 각각 증명되어져야 한다. 전자(前者)가 ‘지성의 논리적 기능’으
로부터 ‘범주’를 찾아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
역’(meta- physische Deduktion der Kategorien)이라 불린다면
후자(後者)는 형이상학적 연역을 통해 발견된 순수 지성 개념들,
즉 범주들이 대상과 선험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 주는 ‘범주의 초월적 연역’(transzendentale
Deduktion der Kategorien)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초월 논리
122
칸트『순수이성비판』123
학’은 순수 지성 개념들의 ‘기원’(Ursprung)과 ‘범위’(Umfang) 그
리고 그것의 ‘객관적 타당성’(objektive Gültigkeit)을 다루는 학문
인 것이다.
3.2.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
3.2.1. ‘범주’의 ‘기원’(Ursprung)
‘초월 논리학’의 학(學)으로서의 가능성이 이제 이 ‘순수 지성
개념’의 존재에 달려 있다면 이 개념들을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
서 찾을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이 ‘순수 지성 개념’은 어디에서부
터 생겨나는가? 이것이 ‘순수 지성 개념’의 ‘기원’(Ursprung)에
관한 물음이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본격적인 답은 ‘순수 지성
개념의 발견을 위한 실마리’(Von dem Leitfaden der
Entdeckung aller reinen Verstandesbegriffe)라는 제목 아래에
서 범주의 ‘기원’과 ‘범위’를 다루고 있는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
역’의 전체 결과에 근거해서만 충실하게 주어질 수 있다. 물론 여
기에는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을 다루고 있는 ‘범주의 초월적 연
역’과의 연관성 또한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칸트는 ‘순수
지성 개념의 발견을 위한 실마리’라는 장(章)에서 본격적으로 ‘범
주’를 찾아가는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순수 지성 개념’의 ‘기원’
에 관한 그의 근본 생각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내가「개념의 분석」이라고 하는 것은 제시된 개념들의 내용을 분해
하여 판명(判明)하게 하는, 소위 개념들의 분석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런 분석은 철학 연구에 있어서 보통 하는 절차(節次)다. 내가 의미하는
개념의 분석은 이때까지 기도(企圖)한 바 없었던 오성[지성] 능력 자신
의 분해다. 이래서 선천적[선험적] 개념들의 출생지(出生地)인 오성[지
성] 중에서만 그런 개념들을 탐구함에 의해서 또 오성[지성]능력의 순
124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수한 사용을 일반적으로 분석함에 의해서, 우리는 선천적[선험적] 개념
들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선험 철학[초월 철학]의
진정한 과업이다. 그 외의 일은, 철학 일반에 있는 개념들을 논리적으로
처리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수한 개념들의― 인간 오성[지
성]에 있어서의― 원초적 싹과 소질을 더듬어 보겠다. 이런 싹과 소질
중에 순수한 개념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고, 이러한 개념들은 드디어 경
험을 기연으로 해서 발전한다. 그리고 바로 동일한 오성[지성]을 통해
서 순수한 개념들은 자신에 붙어있는 경험적 조건에서 해방되어 그 순
수한 모습 중에서 전시(展示)된다.(A65f./B90f., 한글판 104 이하)
칸트는 ‘개념의 분석론’(die Analytik der Begriffe)이라 이름 붙
인 자신의 철학적 작업을 기존의 철학자들이 행하던 ‘개념을 분석
하는 철학적 절차’와 구분함으로써 초월철학의 고유성을 드러낸다.
기존의 철학자들― 예를 들어 라이프니츠(Leibniz)와 볼프(Wolff)―
이 ‘개념의 분석이라는 절차’를 통해 행한 것이 ‘주어진 개념들을
내용에 따라 분해하여 명확하게 만드는 일’이었다면 이제 칸트의 ‘
초월적 분석론’은 ‘지성 능력 자체의 분해’(die Zergliederung des
Verstandes selbst)를 기도(企圖)한다. 왜냐하면 ‘순수 지성 개념’
의 ‘출생지’(Geburtsort)가 바로 ‘지성’(Verstand) 자체이기 때문이
다. 다시 말해 선험적 개념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위해서는, 즉
초월 논리학에서 해명하려는 과제, 지성 개념들의 순수한 사용일반
을 분석하여 어떻게 선험적인 우리 순수 지성 개념이 대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순수 지성 개념
들을 찾아내어야 하고, 그것도 이 순수 지성 개념이 생겨나는 진정
한 ‘근원’(Ursprung)에서 찾아야만 하는데 칸트에 따라면 이 순수
지성 개념의 근원지가 바로 ‘지성’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수 지성 개념의 기원으로서의 ‘지성’ 자체에 대한 칸트
의 이러한 연구는 로크(Locke)가 행한 지성 능력 일반에 대한 반성
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순수 지성 개념을 가질 수 있
124
칸트『순수이성비판』125
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여 인간 인식 능력 일반에 대한 비판적
인 검토를 시도한 로크는 칸트의 평가에 의하면 ‘우리 인식 능력의
최초의 활동을 탐색하는 일’(ein Nachspüren der ersten
Bestrebungen unserer Erkenntniskraft)에 처음으로 문을 연 사람
이었다.(A86/ B1 18f., 한글판 119 참조) 비록 이러한 긍정적인 면
이 있기는 하지만 개개의 지각에서 출발하여 일반 개념에 도달하려
는 로크의 시도는 결국 순수 지성 개념을 경험 중에서 찾으려고 했
다는 점에서 칸트의 눈에는 ‘일관성이 없는’(inkonsequent) 연구로
전락하고 만다(B127, 한글판 124 참조). 이와는 달리 칸트는 순수
지성 개념의 기원을 단지 ‘지성 능력’안에서만 찾는다. 이런 이유에
서 칸트는 “그러므로 우리는 순수한 개념들의― 인간 오성[지성]에
있어서의― 원초적 싹과 소질을 더듬어 보겠다.”(A66/B91, 한글판
105)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칸트에게 있어 이 순수 개념들은 태어나
면서부터 주어진 ‘본유 관념’(angeborene Vorstellungen)을 의미하
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성’ 안에 이러한 싹과 소질로서 순수한 개념
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고, 이러한 개념들은 드디어 ‘경험을 기회로
해서’(bei Gelegenheit der Erfahrung) 자신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제 자신에 붙어있는 경험적 조건에서 해방되어 그 순수한
모습을 드러내게 될 순수 지성 개념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통한 선험
적 인식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 바로 칸트가 설정한 초월 철학의
‘진정한 과업’(das eigentü- mliche Geschäft)인 것이다.
3.2.2.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의 기준들
칸트에게서 ‘순수 지성 개념’의 ‘기원’(Ursprung)이 ‘지성’(Verstand)
이라는 말의 의미는 이 순수 지성 개념들이 지성 속에 이미
주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경험의 기
126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회’(occasione experientiae)에 자신을 드러내는 인간 지성 활동
의 산물이다.(「교수취임논문」§8 : AA II 395 참조) 따라서 칸트
는 ‘순수 지성 개념’을 ‘지성’ 활동 자체를 분석하여 찾아내려고 한
다. 그래서 칸트는 자신의 이러한 작업을 ‘분석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칸트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분석론’(Analytik), 즉 초월
논리학의 한 부문으로서의 ‘초월적 분석론’(transzendentale
Ana- lytik)은 인식의 내용을 도외시하는 ‘일반 논리학’의 ‘분석
론’과는 달리 대상 규정의 원칙을 다루는, 다시 말해 대상에 대한
선험적 인식의 원칙에 관한 이론이다. 따라서 이 ‘분석론’은 이미
주어진 개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성’의 전(全) 능
력을 그것의 요소들로 분해하여, 즉 ‘지성’의 능력을 ‘순수 지성 인
식의 요소들’(die Elemente der reinen Verstandeserkenntnis)
인 ‘순수 지성 개념’(reine Verstandesbegriffe)과 ‘순수 지성의 원
칙들’ (Grund- sätze des reinen Verstandes)로 분해하여 그것을
각각 ‘개념의 분석론’(Analytik der Begriffe)과 ‘원칙의 분석
론’(Analytik der Grundsätze)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다룬다. 그리
고 순수 지성 개념들의 기원과 범위, 그리고 그 타당성을 탐구하
는 초월 논리학의 이념은 이제 ‘개념의 분석론’이라는 이름 아래에
서 보다 구체적으로 행해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먼저 이
‘개념의 분석론’이 어떤 기준에서 이루어져야 할지에 관해, 요컨대
이 ‘개념의 분석론’에서 다루어야 할 ‘개념’은 어떤 ‘개념’이어야
할지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분석론은 우리의 선천적[선험적] 전(全)인식을 순수한 오성[지
성]의 〔자발성에 기본한〕 인식 요소들로 분해하는 데에 존립한다.
이 무렵에 다음의 네 가지 점이 중대하다. 1. 개념은 순수한 개념이요,
경험적 개념이 아니라는 것. 2. 개념은 직관과 감성에 속하지 않고, 사
고와 오성[지성]에 속한다는 것. 3. 개념은 기본적 개념이요, 파생적
126
칸트『순수이성비판』127
개념에서 구별되고 혹은 이것에서 합성된 개념에서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 4. 개념에 관한 우리의 표(表)는 완전하고, 순수한 오성[지성]의
전범위와 완전히 합치해야 한다는 것이다.(A64/B89, 한글판 104)
여기에 나타난 4가지 기준은 모두 ‘순수 지성의 개념’, 즉 ‘범
주’에 관한 것이다. 첫째, ‘분석론’에서 다루어야 할 ‘개념’은 그것
이 ‘순수 지성 인식의 요소’에서 구해진다는 점에서 그 개념은 경
험적이지 않고 순수해야 한다. 둘째로 그것은 지성의 사고와 관
계하는 ‘개념’(Begriff)이지, 감성에 주어지는 ‘직
관’(Anschauung)이 아니다. 셋째, 이러한 ‘순수 지성 개념’은 또
한 합성되거나 파생된 개념이 아닌 ‘기본 개
념’(Elementarbegriffe)이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개념
들에 관한 표(表)인 ‘범주표’는 임의적이거나 불완전해서는 안 되
고 지성의 전 사유 범위와 일치하는 완전한 것이어야 한다.
이상의 기준들은 순수 지성 개념들을 찾아내는 일이 하나의 원
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함을 암시해 준다. 특히 이 네 번째 기준은
‘순수 지성 개념’의 체계가 단지 개념들의 임의적인 결합에 의해
서 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말해 준다. 따라서 칸트는 ‘순
수 지성 개념’의 완전한 체계의 가능성은 ‘단지 시험적으로 모아
본 개념들을 어림잡아 봄에 의해서는 확실하게 승인될 수가 없
다.’(A64/B89, 한글판 104)라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
은 결코 하나의 ‘체계’(System)를 보장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식 능력을 활동시킬 경우에, 그 기연(機緣)이 다름에 따라
서 각종의 개념이 나타나서, 이런 개념들이〔우리의 인식〕능력을 알
도록 한다. 개념들의 고찰이 아주 오래이거나 아주 날카로우면, 그것들
은 다소간 안전하게 수집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계적〔수집적〕
방식에 의해서 언제 우리의 연구가 끝장을 맺게 될지 확정할 수가 없
다. 또 이처럼 우연적으로만 발견되는 개념들은 질서와 체계적 통일을
128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보이지 않고 필경 유사성(類似性)에 좇아서만 서로 결합되고, 내포량
(內包量)을 좇아서 (단순한 개념에서 복잡한 개념에 이르는 식으로) 정
돈될 뿐이요, 이런 정돈은 어느 정도까지 방법적으로 성취된다 하더라
도 도저히 체계적인 것이 못된다.(A66f./B91f., 한글판 105)
칸트는 비체계적인 지성 개념 탐구의 예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서 찾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서처럼 귀납적인 방법에 의
해 찾아진 범주들의 체계는 왜 어떤 개념들은 순수 지성 개념에
속하고 어떤 개념들은 속하지 않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것일 뿐이다.
만약 그 분류가 귀납적으로만 추리된 것이라면 순수한 개념들을 완
전하게 매거(枚擧)했다고 우리가 보증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바로 이상
의 개념들이 순수한 오성[지성]에 내재하고, 그 외의 개념들이 내재하
지 않는 까닭도 발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기본개념들을 탐구
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총명한 사람에게 적절한 기도(企圖)
였으나, 그러나 원리[원칙]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마주치는 대
로 주어 모았고, 우선 열 개를 손에 넣어서 범주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음에 또 따로 다섯 개를 발견했다고 믿었고, 이것을 후범주(後範疇)
라는 이름 아래서 첨가하였다. 허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표는 여전히 불
완전하다.(A81/B106f., 한글판 114, 글쓴이 강조)
그렇다면 무엇이 ‘순수 지성 개념’의 ‘체계’(System)를 보장해
주는가?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앞서 이야기된 기준들에 합치하는
‘순수 지성 개념들’을 찾아내어 ‘학’(學)의 완전성’의 요구를 충족
시킬 수 있는가?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패가 ‘원칙’(Prinzip)
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앞서 이야기된
기준들에 합치하는 순수 지성 개념들을 찾아내어 ‘학의 완전성’의
요구를 이루기 위해서는 ‘순수 지성 개념’을 찾아내는 ‘원
128
칸트『순수이성비판』129
칙’(Prinzip)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의 원칙에 따라’(nach einem
Prinzip) 순수 지성 개념들을 찾아내는 것, 그것은 칸트에 의하면
초월 철학이 가진 장점이자 동시에 ‘의무’(Verbindlichkeit)인 것
이다.
선험철학(先驗哲學)[초월철학]은 개념들을 원리[원칙]에 따라 탐구
하는 장점을 갖고 의무도 갖는다. 왜냐하면, 개념들을 절대적 통일체로
서의 오성[지성]에서 순수하게 또 무구(無垢)하게 발생하며, 따라서
그 자신 하나의 개념 즉 이념에 의해서 서로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이
다. 이러한 연결은 오성[지성]의 각「순수 개념」〔범주〕에 대해서 그
위치를 정하게 하고 순수 개념 전부에 완전성을 선천적[선험적]으로
정하게 하는 하나의 규칙을 준다. 만약 이러하지 못하다면 만사(萬事)
가 임의나 혹은 우연에 의거한 것이 되겠다.(A67/B92, 한글판 105,
글쓴이 강조)
3.2.3.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의 원칙
‘초월 논리학’의 ‘학’(學)으로서의 가능성은 철저히 ‘순수 지성 개
념’의 존재에 달려있다. 즉 그 자신 선험적인 기원을 가지면서도
대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개념들,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대상에
대한 온전한 선험적 인식이 가능한 그러한 개념들인 순수 지성 개
념들의 원천과 범위와 그 객관적 타당성을 밝히는 일이 초월 논리
학의 이념이다. 이런 점에서 순수 지성 개념을 찾아내는 과정을 의
미하는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은 초월 논리학의 근본 과제이다.
그러나 순수 지성 개념들을 임의적인 방법에 의해, 즉 ‘광시적으로’
(rhapsodistisch)나 혹은 ‘요행에 기대어 시도된 방법에 의해
서’(aus einer auf gut Glück unternommenen Aufsuchung) 찾으
려는 것은 ‘순수 지성 개념들이 체계’를 요구하는 ‘학의 완전성’의
이념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의 원칙에 따라’(nach
130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einem Prinzip) 순수 지성 개념들을 찾으려는 것은 초월 철학의 장
점이며 동시에 의무이다. 이제 순수 지성 개념들을 ‘하나의 원칙’에
따라 찾아내야 한다면 그 ‘원칙’(Prinzip)은 무엇이어야 할까? 칸트
는 순수 지성의 개념들은 ‘절대적 통일체로서의 지성으로부터’(aus
dem Verstand als absoluter Einheit) 생겨나야 함을 분명히 한
다. 이 지성으로부터 생겨난다는 말은 바로 지성의 능력인 바로
‘판단하는 능력’(Vermögen zu urteilen)이 하나의 원칙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지성’(Verstand)이 선험적으로 자기 자신 속에 가
지고 있는 순수 개념들, 즉 ‘종합하는 것으로서의 모든 근원적인
순수 개념들’(alle ursprünglichen reinen Begriffe der
Synthesis)인 ‘범주들의 체계’는 ‘판단하는 능력’(Vermögen zu
urteilen)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원칙으로부터’(aus einem
gemeinschaftlichen Prinzip) 생겨난다. 이것이 칸트가 ‘판단에서
지성의 논리적 기능’(logische Funktion des Verstandes in
Urteilen)에 해당하는 ‘판단표’(Urteilstafel)로부터 ‘범주
표’(Kategorientafel)를 도출해 내는 까닭이다.
이상이 종합에 관한 모든 근원적인「순수 개념」의 표다. 오성[지
성]은 이러한 개념들을 선천적[선험적]으로 내포한다. 그리고 선천적
[선험적]으로 내포하는 까닭에 오성[지성]은 한갓「순수한 오성[지
성]」이라고도 불리운다. 오성[지성]은 이러한「순수한 개념」에 의해
서만 직관의 다양 중에 있는「그 무엇」을 이해(理解)할 수가 있기 때
문이다. 즉 직관되는 객관을 사고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분류
는 하나의 공통적인 원리에서 즉 판단하는 능력(이것은 사고하는 능력
과 같은 것이거니와)에서 체계적으로 전개된 것이요, 순수한 개념들을
방침 없이 탐구한 결과로 광시적(狂詩的)으로 생긴 것이 아니
다.(A80f./B106, 한글판 113이하, 글쓴이 강조)
선험 철학[초월 철학]은 개념들을 원리에 따라 탐구하는 장점을 갖
130
칸트『순수이성비판』131
고 의무도 갖는다. 왜냐하면, 개념들은 절대적 통일체로서의 오성[지
성]에서 순수하게 또 무구(無垢)하게 발생하며, 따라서 그 자신 하나의
개념 즉 이념에 의해서 서로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A67/B92, 한
글판 105, 글쓴이 강조)
3.2.4.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의 ‘실마리’(Leitfaden)
순수 지성의 개념인 범주를 찾아내는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
의 원칙은 바로 ‘지성’ 자체였다. 따라서 이 ‘절대적 통일
체’(absolute Einheit)로서의 ‘지성’으로부터 범주를 찾아내는 일
은 ‘지성’의 능력 자체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지
성’은 도대체 어떤 능력인지가 밝혀져야 한다. 칸트는 ‘지성’의 능
력에 대한 반성을 통해 ‘지성의 기능들’(Funktionen des
Verstandes)이 바로 ‘판단에서의 통일의 기능들’(Funktionen
der Einheit in den Urteilen)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칸트에 의하
면 이 ‘판단에서의 통일의 기능들’을 완전히 찾아내어 밝히는 일
이 바로 ‘지성의 전 기능’을 밝히는 일이고 이런 점에서 ‘판단에
서의 통일의 기능들’은 ‘지성 능력’ 자체로부터 순수 지성 개념들
을 찾아내려는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의 ‘실마리’(Leitfaden)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 대한 칸트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3.2.4.1. 개념을 통한 인식 능력으로서의 ‘지성’
칸트는 먼저 ‘지성’의 능력이 대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인 ‘감성’
과는 달리 표상을 만들어내는 자발적인 능력임을 밝힌다. 그리고
이 지성의 자발성은 ‘지성’이 바로 ‘개념’을 통한 인식, 즉 ‘기능’
(Funktion)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인식과 관계한다는 점에서 분
명히 드러난다. ‘지성’을 ‘부정적’(negativ)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비감성적 인식 능력’(ein nichtsinnliches Erkenntnisvermögen)
132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이다. 그러나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지성이라는 인식 능
력은 바로 ‘개념’(Begriff)을 통한 인식, 즉 ‘직관적’(intuitiv)인 인
식이 아닌 ‘추론적인’(diskursiv) 인식 능력이다. 그리고 이 개념을
통한 인식이라는 것은 ‘직관’이 ‘촉발’(Affektion)을 통해 생겨나듯
이 ‘기능’(Funktion)을 통해 생겨난다. 그리고 이 ‘기능’이라는 것
은 바로 ‘개념’을 만들어내는 일, 즉 ‘하나의 공통적인 표상 아래에
서로 다른 표상을 정돈시키는 행위의 통일성’(die Einheit der
Handlung, verschiedene Vorstellungen unter einer
gemeinschaftlichen zu ordnen)을 의미한다.
위에서 우리는 오성[지성]을 한갓 소극적으로 설명하였다. 즉 비
(非)감성적인 인식 능력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감성을 떠나서는
우리는 어떠한 직관도 가질 수가 없고 따라서 오성[지성]은 직관의 능
력이 아니다. 허나 직관 외에는 개념에 의한「인식 방식」밖에 없다.
따라서 전(全) 오성[지성]의 인식, 적어도 인간오성[지성]의 인식은
「개념」에 의한 인식이요, 직관적이 아니고 논증적이다. 모든 직관은
감성적인 것으로서 촉발(觸發)에 의존하지만, 개념은 기능에 의해서
생긴다. 나는「기능」을 서로 다른 표상들을 하나의 공통적 표상 아래
로 귀착시키는 통일작용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개념은 사고의 자발
성에 기본한다. 이것은 감성적인 직관이 인상의 수용성에 기본하는 것
과 같다.(A67f./B92f., 한글판 105 이하, 글쓴이 강조)
3.2.4.2. ‘판단’(Urteile)에서 성립하는 개념의 사용
그런데 ‘지성’이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판단’을 할 때이다. 즉
개념의 사용은 ‘판단’(Urteile)에서만 성립한다. 그리고 ‘개념’은
‘직관’(Anschauung)과는 달리 결코 대상과 직접적으로 관계 맺지
못하고 그 대상에 관한 다른 표상과 관계 맺을 수밖에 없다. ‘판
단’이라는 것은 대상에 대한 간접적인 인식이기에 ‘대상에 관한 표
132
칸트『순수이성비판』133
상에 대한 표상’이라고 불린다. 판단에서 대상에 관한 한 인식을
위해서는 ‘하나의 직접적인 표상’(eine unmittelbare Vorstellung)
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 하나의 직접적인 표상 외에 동시에
여러 개의 표상을 자기 자신 아래에 포함하고 있는 더 상위의 간
접적인 표상이 사용되기에 모든 ‘판단’이라는 것은 ‘우리 표상들간
의 통일의 기능들’(Funktionen der Einheit unter unseren
Vorstellungen)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성[지성]은 개념들을「판단」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을 뿐
이다. 직관 이외의 어떤 표상도 대상에 직접 관계하지 않기 때문에, 개념
〔가능적 객어〕은 대상에 직접적으로 상관하지 않고, 대상에 관한 어떤
딴 표상에 상관한다(이 표상이 직관이건 혹은 그것 자신이 이미 개념이
건 간에). 이에 판단은 대상의 직접적인 인식이요, 따라서 대상에 관한
「표상〔직관〕의 표상」〔개념〕이다. 모든 판단에는 하나의 개념〔범
주 혹은 모형〕이 들어있다. 이것은 많은 표상들에 타당하고, 이런 많은
표상 중에서 대상에 직접 관계하는 표상 즉 주어진 표상〔주어〕도 포함
한다. […] 따라서 모든 판단들은 우리 표상들 간(間)의 통일 기능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직접적인 표상 대신에 이런 표상과 그 외의 여러 표상
을 포괄(包括)하는 하나의 보다 더 높은 표상〔개념〕이 대상을 인식하
고자 사용되고 이 때문에 많은 가능한 인식이 하나의 인식〔類槪念〕에
로 집약(集約)되기 때문이다.(A68f./B93f., 한글판 106 이하)
3.2.4.3. ‘판단에서의 통일의 기능’
(Funktionen der Einheit in den Urteilen)
‘지성’이 ‘사고하는 능력’(ein Vermögen zu denken)인 한에서,
그리고 이 ‘사고’(Denken)라는 것이 ‘직관’을 통한 직접적 인식과
는 달리 개념을 통한 간접적인 인식을 의미하는 한에서, 지성은
개념을 통한 인식 능력을 의미한다. 또한 지성이 가능한 판단의
술어인 개념을 통해 인식하는 능력이라는 것은 그 자신 ‘판단하는
134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능력’(ein Vermögen zu urteilen)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지성의
모든 작용들’(alle Handlungen des Verstandes)은 ‘판단
들’(Urteile)로 환원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만약 ‘판단에서의 통
일의 기능들’(die Funktionen der Einheit in den Urteilen)을 모
두 밝혀 낼 수 있다면 ‘지성의 기능’(die Funktionen des
Verstandes)은 모두 찾아진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바로 이 ‘판
단에서 통일의 기능들’이 바로 ‘지성’ 자체에서부터 ‘지성의 순수
개념들’인 ‘범주’를 찾아내는 실마리이다.
우리는 오성[지성]의 모든 작용을 판단들로 환원(還元)할 수 있다.
그 때문에「오성[지성]은 일반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다」고 생각될
수 있다. 무릇 오성[지성]은 앞서 말한 바에 의하면 사고하는 능력이
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고는 개념에 의한 인식이다. 그러나 개념은
가능한 객어(客語)로서 아직 미규정인 대상의 어떤 표상〔주어〕에 상
관한다. […] 이에 판단들에 있어서의 통일의 기능〔종류〕을 우리가
완전히 표시할 수 있다면, 오성[지성]의 기능들은 전부 알려질 수 있
다.(A69/B94, 한글판 107, 글쓴이 강조)
3.2.5. ‘판단표’(Urteilstafel)
‘순수 지성 개념들’인 범주를 임의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체계를 가지고서 찾아내려는 칸트의 시도는 필연
적으로 ‘우회적인 길’을 가게 된다. 범주의 체계의 완전성을 보장
해 줄 수 있는 범주의 연역의 원칙이 판단 능력으로서의 지성 자
신이었기에 범주를 찾아내는 실마리는 ‘판단에서의 통일의 기능
들’이다. 칸트는 이제 이 판단에서 내용을 무시하고 지성의 형식
에 주목하여 이 ‘판단에서 지성의 논리적 기능들’에 해당하는 ‘판
단표’(Urteilstafel)를 제시한다. 이러한 지성의 논리적 사용의 기
134
칸트『순수이성비판』135
능은 다음과 같이 각각 세 개의 세부 항목을 그 아래에 가지고
있는 네 항목으로 분류되어 진다. 첫째, 전칭 판단(allgemeine
Urteile), 특칭 판단(besondere Urteile), 단칭 판단(einzelne
Ur- teile)을 포함하는 ‘판단들의 양’(Quantität der Urteile), 둘
째, 긍정 판단(bejahende Urteile), 부정 판단(verneinende
Urteile), 무한 판단(unendliche Urteile)으로 이루어진 ‘판단들의
성질’(Qualität der Urteile), 셋째, 정언 판단(kategorische
Urteile), 가언 판단(hypo- thetische Urteile), 선언 판단
(disjunktive Urteile)을 포괄하는 ‘판단들의 관계’(Relation der
Urteile), 마지막으로 개연 판단(pro- blematische Urteile), 실
연 판단(assertorische Urteile), 필연 판단(apodiktische
Urteile)을 말하는 ‘판단의 양상’(Modalität der Ur- teile)이 그
것이다.
만약 우리가「판단 일반」의 전 내용을 무시하고, 판단에 있어서의
「오성[지성]의 형식」만을 주목한다면, 판단에 있어서의 사고의 기능은
각각 세 다리(肢)를 포함하는 네 항목(項目)아래 개괄될 수 있음을 발견
한다. 그리고 네 항목은 다음의 표(表)로 적당히 나타내질 수 있다.
판단들의
1. 분량 2. 성질 3. 관계 4. 양상
전칭(全稱)판단 긍정(肯定)판단 정언(定言)판단 개연(蓋然)판단
특칭(特稱)판단 부정(否定)판단 가언(假言)판단 실연(實然)판단
단칭(單稱)판단 무한(無限)판단 선언(選言)판단 필연(必然)판단
(A70/B95, 한글판 107)
3.2.6 ‘범주표’(Tafel der Kategorien)
3.2.6.1 범주표 도출의 근거
136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칸트는 범주를 찾아내는 실마리에 해당하는 ‘판단에서의 통일
의 기능들’의 체계인 ‘판단표’로부터 이제 ‘범주표’를 이끌어낸다.
그런데 이러한 범주표의 ‘도출’(Ableitung)에는 해결되어야 하나
의 문제가 있다. 즉 어떤 근거에서 한갓 논리적 사유의 순수 형식
인 ‘판단 형식’(Formen der Urteile)으로부터 경험적 대상 인식
에 관계하는 ‘범주’(Kategorien)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이다. 범주표를 제시하기 앞서 칸트는 ‘범주의 초월
적 연역’의 내용을 그 속에 함축하고 있는 ‘종합’(Synthesis)의
개념과 관련된 설명을 통해 이 문제에 관한 한 가지 답을 암시하
고 있다.(A76-79/B102-105, 한글판 111-113 참조) 이 텍스트
에 대한 해석은 칸트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분석적 통
일’(analytische Einheit)과 ‘종합적 통일’(synthetische Einheit)
의 개념에 관한 이해와 관련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기는 하
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유의 형식인 판단의 순수 형식들에
서부터 순수 지성 개념들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이들
이 ‘지성의 동일한 기능’(dieselbe Funktion des Verstandes)이
라는 점이다. 즉 ‘한 판단에서 상이한 표상들에게 통일을 주는
것’과 ‘하나의 직관에서 서로 상이한 표상들의 종합에 통일을 제
공해 주는 것’은 동일한 지성의 기능이라는 것이다. ‘판단의 논리
적 형식’(die logische Form eines Urteils)을 완성시키는 ‘지성
의 동일한 행위’(dieselbe Handlung des Verstandes)가 바로
‘대상에 선험적으로 관계하는 순수 지성 개념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판단이 포함하는 각종 표상들에 통일을 주는〔개념의〕동일한 기능
이, 직관이 포함하는 각종 표상들의 단순한 종합에도 통일을 주고 있
다. 이런 통일이 보편적으로 말해서「오성[지성]의 순수한 개념」이라
는 것이다. 즉 오성[지성]은 분석적 통일에 의해서 개념들에서 판단이
136
칸트『순수이성비판』137
라는 논리적 형식을 산출했지마는, 이 동일한 오성[지성]이〔이제야〕
그 동일한 작용을 통해서 직관 일반 중의 다양을 종합적으로 통일함에
서 자신의 표상들에다〔대상성을 구성하기 위한〕선험적 내용을 만들
어 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오성[지성]의 표상들을「오성[지성]의 순
수한 개념들」이라고 한다. 하기에 이러한 개념들은 객관〔의 직관〕에
선천적[선험적]으로 상관하되, 일반 논리학은 이러한 상관을 할 수가
없다.(A79/B104f., 한글판 112 이하)
3.2.6.2 ‘종합하는 근원적 순수 개념의 표’
칸트에게서 ‘순수 지성 개념’을 찾아가는 실마리는 바로 ‘판단에
서의 통일의 기능들’(die Funktionen der Einheit in den
Urteilen)을 완전히 제시할 수 있다면 ‘지성의 기능 전체’를 발견
해 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동일한 지성의 종합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판단에서의 통일의 기능들’로부터 ‘순수 지성 개념들’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면 이제 지성의 순수 개념의 수효 역시 판단에
서 지성의 논리적 기능의 수만큼 생겨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얻
어진 순수 지성의 개념들, 즉 ‘종합하는 모든 근원적인 순수 개념
들’(alle ursprünglichen reinen Begriffe der Synthesis)을 칸트
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에 따라 ‘범주’(Kategorie)라고 부르고
‘양의 범주’ (Kategorien der Quantität), ‘질의 범주’(Kategorien
der Qualität), ‘관계의 범주’(Kategorien der Relation), ‘양상의
범주’(Kategorien der Modalität)로 이루어진 ‘범주표’(Tafel der
Kategorien)를 완성하게 된다.
이래서「직관 일반」의 대상에 선천적[선험적]으로 관계하는「오성
[지성]의 순수한 개념」의 수효는 모든 가능한 판단의 〔일반〕논리적
인 기능들이 상술한 표에서 보였던 그 수효만큼 생긴다. 왜냐하면 상
술한 판단의 〔일반〕논리적인 기능들은 오성[지성]의 작용을 세목(細
目)으로 완전히 들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오성[지성]의 능력을 주도
138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3권 제16호
(周到)하게 조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순수한 개념들을 아리
스토텔레스에 따라 범주(範疇)라고 부르고자 한다. […]
범주표
1. 분량 : 단일성(單一性), 수다성(數多性), 전체성(全體性)
2. 성질 : 실재성(實在性), 부정성(否定性), 제한성(制限性)
3. 관계 : 속성과 자존성(실체와 우유성), 인과성과 의존성(원인과
결과), 상호성(작용자와 수동자간의 상호작용)
4. 양상 : 가능성-불가능성, 현존성-비존재성, 필연성-우연성
이상이 종합에 관한 모든 근원적인「순수 개념」의 표다.(A79f./
B105f., 한글판 113)
138
칸트『순수이성비판』139
연․구․문․헌
원전
Kant, I. , Kritik der reinen Vernunft, hrsg. von Raymund
Schmidt, Hamburg, 1971(1930).
한국어본
『순수이성비판』, 최재희 역, 박영사, 1977(1972).
참․고․문․헌
Baum, M., Deduktion und Beweis in Kants Transzendentalphilosophie,
Königstein/Ts.,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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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4년 6월 10일
발행인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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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판 도서출판 관악 02) 871-2118, 878-2117
김 재 호(金載浩)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서양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
았으며 독일 마부륵 대학과 지겐 대학에서 수학. 지겐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학위 논문 제목 Substanz und Subjekt, Eine Untersuchung der
Substanzlehre in Kants “Kritik der reinen Vernunft”, 2003)를 받았다. 서
울대, 카톨릭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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