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험을 통과한 이론에 미래의 시험 통과가
보장되지 않는다
간혹 나는 입증 등급을, 문제의 이론이 ‘시험을 견디어냄으로써 생존하는 자체의 적합성을 증명할 수 있었던’ 등급으로서 또한 기술했다. 그러나 그런 구절의 문맥에 의하여 밝혀지는 바와 같이, 그것에 의하여 이론이 엄격한 시험들로부터 생존한 과거의 적합성에 대한 보고서만을 내가 의미했다: 시험들로부터 생존함으로써 시험들로부터 생존한 자체의 적합성을 밝힌 것이 (동물이든 이론이든), 미래의 시험 모두나 대부분 혹은 여하한 시험으로부터 생존하는 적합성을 밝혔다고 나는 다윈처럼 전제하지 않았다. 사실상 이론이란 아무리 잘 시험되었을지라도 내일 반증될지도 모른다고 내가 믿는다 ㅡ 특히 어떤 사람이 그 이론을 반증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그리고 특히 그 사람이 그 이론의 시험에 관하여 새로운 관념을 지닌다면.
그러나 입증 등급이 이론의 과거 업적에 대한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면, 귀납 문제가 내일의 문제라는 형태로 다시 나타나지 않는가? 이유인즉 이론의 입증 등급에 ㅡ 다시 말해서 이론의 과거 업적 ㅡ 의하여 그 이론의 미래 업적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결정되지 않는가? 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나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론의 과거 업적을 토대로 미래의 시험으로부터 생존할 성향을 이론에 잘못 귀속시키지 않는가?
내 편에서 그런 귀속이 내 이론의 붕괴에 해당할 터라고 나는 동의한다: 그것은 귀납적 추론일 터이다. 그 쟁점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이미 진전된 논증을 어느 정도라도 초월할 필요가 나에게 없다.
요점은 이렇다. 고도로 입증된 이론이 특별히 미래 시험들로부터 생존할 것 같거나 생존할 개연성이 있거나 기타 등등이라고 내가 믿지 않는다; 또한 고도로 입증된 이론이 덜 입증된 이론보다 더 그럴 것 같다고 내가 믿지 않는다. 반대로 이론이 생존하는 가능성은 다른 요인 가운데서 과학의 저 특정 분야에서 진보 속도에, 혹은 다른 말로 연구자들이 이 특정 분야에 지닌 흥미에 그리고 새로운 시험을 고안하려는 연구자들의 노력에 주로 의존할 것이다. 그러나 진보 속도는 비판과 시험의 표준이 매우 높은 분야에서만 ㅡ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론들을 고도로 입증한 분야에서 ㅡ 매우 클 것이다.
따라서 더 고도로 입증된 이론이 통상적으로 덜 입증된 이론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고 내가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론의 기대수명은 그 이론의 입증 등급과 비례하여 혹은 그 이론이 시험들로부터 생존하는 과거의 힘과 비례하여 늘어나지 않는다고 내가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나는 질문받을 것이다) 태양이 내일 뜰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나의 예측을 운동법칙에 근거하지 않는가? 그 법칙들이 위에서 자세하게 토론된 바와 같이, 이용될 수 있는 법칙들이기 때문에 나는 물론 그렇게 한다. 심지어 내가 이론적 의심을 지닌 곳에서도 나는 나의 행동의 근거를 (내가 행동을 ㅡ 다시 말해서 선택을 ㅡ 해야 한다면) 이용될 수 있는 최고의 이론을 선택하는 데 두겠다. 그리하여 내일 태양이 뜨는 데 내가 내기 걸 (내기는 실제적 행동이다)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비록 입증 등급이 덜할지라도 (또는 입증 등급이 덜하게 보일지라도) 가령 신경 접합부 전달에 관하여 이용될 수 있는 최고의 이론보다 미래의 비판으로부터 생존하거나 더 오래 비판으로부터 생존하는 뉴튼 (혹은 아인슈타인) 역학법칙에 내기를 걸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 실제적 행동에 (이 이론들에 의하여 이룩된 예측들에 내기를 거는 것과 같은) 관하여, 최고의 이론이 잘 시험되었다면 나는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그 실제적 행동의 근거를, 그 분야에서 최고인 이론에 둘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문제는 또한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이론의 생존 문제는 그 이론의 역사적 운명과 관련된 문제이어서 과학의 역사와 관련된 문제이다. 다른 한편 예측을 위한 이론 사용은 이론의 적용과 연결된 문제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연관되어 있지만,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지 않다. 이유인즉 이론들이 죽었을지라도 ㅡ 다시 말해서 오류로 판정되었을지라도 ㅡ 그 이론들이 수중에 있는 목표를 위하여 충분히 훌륭한 근사치라면 우리가 흔히 그 이론들을 망설이지 않고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동일한 이론의 생존에 내기의 거부와 결합하여 한 가지 이론을 적용하는 데 내기를 걸 나의 각오에 모순점이 없다.
잘 입증된 이론의 부활에 나의 내기 거부로 인하여 과거의 생존으로부터 미래의 생존으로 내가 귀납적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다고 밝혀진다.
IV
그러나 내가 과거의 업적으로부터 미래의 업적으로 실제로 귀납적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가? 러셀은 ‘우리의 과거 지식에 의하여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한, 운동법칙이 작동에서 남을 것이라고 믿는 유일한 근거는 그 법칙이 지금까지 작동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하여 옳지 않은가? 이 귀납적 관점은 자체의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틀렸다.
먼저 운동법칙의 작동을 관찰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운동법칙은 우리 자신이 창안한 것이고 특정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ㅡ 특정 사건들을 설명하려고 ㅡ 창안되었다. 그 법칙이 성공적으로 그렇게 했다면 우리는 덜 성공적인 경합하는 법칙들보다 그 법칙들에 의존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새로운 이론을, 새로운 운동법칙의 집합 하나를 제시하여 그 이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옛 이론이 해결하여 통과한 모든 시험을 통과할 뿐 아니라 또한 새로운 결정적 시험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결정적인 시험은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하고 남아있던 옛 법칙들로부터 이탈을 우리에게 제시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은 그 후 한 번 이상 발생했다 ㅡ 사실상 러셀의 저서가 발간되고 일 년 안에 한 번 발생했다. 러셀이 ‘운동법칙’에 의하여 로렌츠 불변량[a Lorentz invariant set]을 의미했다고 나는 여기서 전제하고 있고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심지어 그가 서술하기 전에 발생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과거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의하여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한, 지금까지 작동했던’ 저 운동법칙들이 ‘작동 상태로’ 남아있지 않아서 그 법칙들이 작동 상태로 남아있다고 기대할 근거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우리의 현재 지식에 의하여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한, 그 법칙들이 결코 ‘작동 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 2000년, 64-6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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