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플라톤의 형상이나 이데아 이론
I
플라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비하여, 헤라클리투스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시대보다 훨씬 더 불안정한 전쟁과 정치적 갈등의 시대 속에서 살았다. 그가 성장하는 동안 그리스인들의 종족적 생활이 붕괴되면서 그가 태어난 도시인 아테네에는 참주의 시대, 나중에는 참주정치나 과두정치, 다시 말해서 유력한 귀족 가족이 다스리는 정치를 재도입하려는 시도에 대항하여 열정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민주정치가 나타났다. (10장에서 그 정치적 배경이 자세하게 검토되는데 그 전쟁은 간혹 주장되는 바와 같이 기원전 404년의 아테네 함락으로 끝나지 않았음이 밝혀질 것이다.) 그가 소년이던 시절에 민주적이던 아테네는 펠로폰네스 반도의 유력한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와 생사를 건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스파르타는 고대 종족적 귀족정치의 법과 관습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펠로폰네스 전쟁은 한 번만 중단된 채 28년 간 계속되었다. 플라톤은 그 전쟁 중에 태어나서 전쟁이 끝났을 때 약 24세였다. 그 전쟁은 무서운 전염병을 몰고 왔으며, 전쟁 마지막 해에는 기근과 아테네의 함락, 내전, 그리고 보통 30인 참주 정치라고 불리는 공포정치가 일어났다. 이것들은 플라톤의 삼촌 두 명이 주도하였는데, 그 두 명은 민주주의자들에게 대항하여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려다가 실패하고 생명을 잃었다. 민주정치가 다시 수립되고 평화가 찾아왔지만 플라톤에게는 휴식이 아니었다. 플라톤이 사랑했던 스승 소크라테스는 나중에 플라톤에 의하여 플라톤 대화의 주요 연사가 되는데, 재판을 받고 사형 당했다. 플라톤 자신은 위험에 빠졌던 듯하다; 그는 다른 소크라테스의 동료들과 함께 아테네를 떠났다.
나중에, 그가 시실리를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플라톤은 시라큐스의 참주 디오니시우스 1세의 궁전에서 벌어진 정치적 음모에 관여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그는 아테네에 돌아와 아카데미를 설립한 후에도 자신의 제자 몇 명과 함께 시라규스 정치의 주류를 이루었던 음모와 혁명에 계속해서 활동하여 결과적으로 운명적인 역할을 다했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이 간단한 설명은 헤라클리투스의 글에서와 같이 플라톤의 작품에서 플라톤이 자신 시대의 정치적 불안정과 불안 속에서 큰 고통을 당했다는 징표를 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헤라클리투스처럼 플라톤도 왕족의 피를 받았다; 적어도 전설에 따르면 그의 부계는 아티카의 최후 부족 군주인 코드러스의 자손이다. 플라톤은 자신의 대화편(카르미데스Charmides와 티마이우스Timaeus)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아테네의 입법가인 솔론과 친척이던 모계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의 삼촌인 크리타스와 카르미데스도 30명의 참주 중 중심적 위치에 있었는데 플라톤의 모계에 속했다. 그러한 가족적 배경을 지니고 있어서 플라톤이 공적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의 작품 대부분은 이런 짐작을 증명한다. 그 자신은 (만약 일곱 번째 편지가 진짜라면) '처음부터 정치적 활동을 갈망했지'만 젊은 시절의 갈등이 어린 경험이 가로막았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흔들리고 목적도 없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나는 현기증과 절망을 느꼈다.' 사회와 실제로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느낌으로부터 헤라클리투스의 철학뿐만 아니라 플라톤 철학의 근본적인 충동이 나왔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플라톤은 역사주의자자 선배가 했던 바와 꼭 마찬가지로 역사적 발전법칙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경험을 요약했다. 이 법칙에 따르면, 다음 장에서 완전하게 토론하겠지만, 모든 사회적 변화는 타락이나 부패, 또는 퇴보이다.
이 근본적인 역사적 법칙은 플라톤이 생각하기에 우주법칙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 - 모든 피조물과 생성된 사물에 적용되는 법칙의 한 부분. 변화하는 만물, 모든 생성된 사물은 운명적으로 부패한다. 플라톤은 헤라클리투스처럼 역사에서 작동하는 힘은 우주적인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플라톤이 이 생성의 법칙이 전부는 아니라고 믿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우리는 헤라클리투스에게서 발전법칙을 순환적 법칙으로 상상하는 경향을 발견하게 된다; 발전법칙은 계절의 순환적 계승을 결정하는 법을 모방하여 이해된다. 유사하게 우리는 플라톤의 작품 중에서 상상컨대 봄과 여름에 상응하는 개선과 생성의 기간과, 가을과 겨울에 상응하는 퇴보와 부패의 기간을 지닌 위대한 해(그 길이는 일반적인 한 해의 36,000 년에 해당한다)라는 제안을 발견한다. 플라톤의 대화 중 한 편에 따르면 (정치가), 황금시대인 크로노스 시대 - 크로노스 자신이 세상을 지배하고 인간이 지구에서 출현하던 시대 - 는 우리 자신의 시대인 제우스의 시대로 이어지고 그 시대에는 세상이 신(神)들에 의하여 버려지고 자신의 자원을 사용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점증하는 부패의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가 이야기 속에는 완전한 부패가 이루어진 가장 낮은 단계에서 신이 다시 우주라는 배의 키를 잡고 사물들이 개선되기 시작한다는 제안이 있다.
플라톤이 얼마나 정치가 이야기를 믿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자신이 그 이야기의 전부가 쓰여진 대로 사실이라고 믿지 않았다는 것을 플라톤 자신이 분명히 밝혔다. 다른 면에서 플라톤이 우주적 환경에서 인간의 역사를 생각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신의 시대가 깊은 타락의 시대 - 아마도 가장 깊은 타락의 시대 - 라고 그가 믿었다는 것과 앞선 역사 기간 전체가 부패를 향한 내재적 경향, 역사발전과 우주발전 모두를 지닌 경향에 의하여 지배된다는 것을 그가 믿었다는 것. 이러한 경향이 최악의 부패가 이룩되고 이 경향이 반드시 끝나는지를 그가 또한 믿었는지 아닌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인간에 의하여, 아니 초인간적 노력에 의하여 운명적인 역사적 경향을 돌파하여 부패의 과정을 끝내는 일이 우리들에게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믿었다.
II
플라톤과 헤라클리투스 사이의 유사성이 크지만,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한다. 플라톤은 역사적 운명의 법칙, 즉 부패의 법칙은 인간 이성의 힘이 뒷받침이 되어 인간의 도덕적 의지에 의하여 붕괴될 수 있다고 믿었다.
플라톤이 이 견해를 자신이 믿는 운명의 법칙과 어떻게 절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 문제를 설명할 몇 가지 징표가 있다.
플라톤은 퇴보의 법칙은 도덕적 퇴보를 포함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의 견해로는 정치적 퇴보란 아무튼 주로 도덕적 퇴보(그리고 지식의 부족)에 달려있다; 또 도덕적 퇴보는 결국 주로 종족적 퇴보에 기인한다. 이것이 인간사라는 분야에서 일반적인 부패와 관련된 우주적 법칙이 출현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우주적 전환점이 인간사 분야 - 도덕적 및 지식적 분야 - 에서, 그리고 그로 인하여 인간의 도덕적 및 지식적 노력에 의하여 그 전환점이 야기되는 듯 보이는 것은 이해될 수 있다. 플라톤은 부패의 위대한 일반 법칙이 정치적 부패를 야기하는 도덕적 부패에서 출현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주적 전환점의 도래가 그의 논리적 힘과 도덕적 의지가, 이 정치적 부패 시기를 끝내는 위대한 입법가의 탄생 속에서 출현하리라고 믿었던 것은 분명하다. 정치가라는 글 속에서 황금기, 즉 새 천년의 복귀를 예언한 것은 신화를 그렇게 믿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부패를 향해 나아가는 일반적인 역사적 경향과, 우리는 모든 정치적 변화를 중단시킴으로써 정치분야에서 부패를 중지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 양쪽을 분명히 믿었다. 따라서 이것은 그가 애써 찾으려던 목표였다. 그는 쇠퇴하지 않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모든 국가가 지닌 악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를 설립함으로써 이 목표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변화와 부패가 없는 국가는 최상의 완전한 국가이다. 그 국가는 변화를 모르는 황금기의 국가다. 그 국가는 정체된 국가이다.
III
변화하지 않는 그런 이상적인 국가를 믿으면서 플라톤은 우리가 헤라클리투스에게서 발견하는 역사주의의 원칙에서 급격하게 이탈한다. 그러나 이 차이점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이 차이점은 플라톤과 헤라클리투스 사이의 유사점을 한층 더 밝혀준다.
헤라클리투스는 자신의 추리가 대담함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혼돈으로 대체하는 생각을 삼갔던 듯 싶다. 헤라클리투스는 변화는 불변하는 법칙에 의하여 지배당한다는 견해에 집착함으로써 안정된 세계를 상실한 것에 대하여 자신의 위안을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주의의 최후 결과로부터 몸을 사리는 이 경향은 많은 역사주의자들의 특징이다.
플라톤에게 이 경향은 뛰어나다. (그는 여기서 헤라클리투스에 대한 위대한 비판자인 파메니데스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 헤라클리투스는 자신의 사회 변혁에 관한 경험을 '삼라만상'의 세계까지 연장함으로써 일반화했고, 플라톤은 내가 암시한 바와 같이 똑같이 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변화하지 않는 완전한 국가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삼라만상'의 영역까지 확대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종류의 평범하거나 부패하는 것들에는 부패하지 않는 완전한 것이 상응한다고 믿었다. 완전하고 불변하는 것들에 대한 이 믿음은 보통 형상이나 이데아 이론이라고 불리는데 플라톤 철학의 중심 원칙이 되었다.
우리가 운명의 철칙을 부수는 일이 가능하며, 모든 변화를 중지시킴으로써 부패를 피할 수 있다는 플라톤의 신념은 그의 역사주의적 경향이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타협적이고 완전히 발달한 역사주의는 인간이 심지어 역사적 운명의 법칙을 발견한 다음에도 어떤 노력에 의하여 그 법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 역사주의는 모든 인간의 계획과 행동이 발전의 불변적 법칙에 관한 인간의 역사적 운명을 실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 법칙에 대항하여 노력할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오디푸스가 예언과 조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예언과 그 운명을 피하려고 자신의 아버지가 취한 조치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맞이한 것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역사주의적인 이 자세를 더 이해하고 플라톤이 자신의 운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었던 정반대 경향을 분석하기 위하여 나는 우리가 플라톤에게서 발견하는 역사주의를 역시 플라톤에게서 발견되는 완전히 반대가 되는 접근방식을 대조하겠는데, 그 완전히 반대가 되는 접근방식은 사회공학적 자세(사회공학: 사회를 조직하고 변혁시키고 운영하는 학문- 역자 주)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IV
사회공학가는 인간의 역사적 경향이나 역사적 운명에 관하여 질문하지 않는다. 사회공학가는 인간이란 자기 운명의 주인이고, 우리가 지구 표면을 변화시킨 것과 같이, 우리의 목적에 따라 우리는 인간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거나 인간의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공학가는 이 목적들이 우리의 역사적 배경이나 역사적 경향에 의하여 우리에게 부과된 것이라고 믿지 않고 그 목적들이, 우리가 새로운 사고나 새로운 예술품이나 새로운 주택, 새로운 기계류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우리 자신에 의하여 선택되거나 심지어 창조된다고 믿는다. 역사의 미래가 먼저 결정되어야만 합당한 정치적 행동이 가능하다고 믿는 역사주의자와 반대로 사회공학가는 정치의 과학적 기초는 매우 다른 것이라고 믿는다; 정치의 과학적 기초는 우리의 소원과 목적에 따라, 사회제도의 건설이나 변환에 필요한 사실적 정보로 구성된다. 그런 과학은 예를 들어 우리가 불경기를 피하거나 불경기를 만들어내기를 바란다면 어떤 조치를 우리가 취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또는 우리가 부의 분배를 더 공평하게 하거나, 덜 공평하게 만들고자 한다면. 다시 말해서 사회적 기술을 불변하는 역사적 경향의 과학으로서 이해하는 역사주의자와 반대로, 사회공학가는 사회적 기술 같은 것을 정치의 과학적 토대로서 간주한다 (나중에 알게되지만 플라톤은 사회적 기술을 의술의 과학적 배경과 비교한다).
내가 사회공학가의 자세에 관하여 언급한 것으로부터 사회공학가의 진영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반대로, 내가 '점진적 사회공학'과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의 차이점은 이 책의 중요한 주제의 하나이다. (내가 전자를 옹호하고 후자를 거부하여 내놓는 이유를 특히 9장에서 비교하라.) 그러나 현재 나는 역사주의와 사회공학 사이의 대립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 대립은 사회제도, 다시 말해서 보험회사나 경찰, 정부나 아마도 식료품 가게 따위를 향하여 역사주의자가 취하는 태도와 사회공학가가 취하는 태도를 우리가 생각할 때 아마도 훨씬 더 명백해질 것이다.
역사주의자는 사회제도를 주로 그 제도의 역사적 관점, 다시 말해서 제도의 근원, 발달,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중요성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역사주의자는 제도의 근원이 분명한 계획이나 의도, 그리고 인간이나 신의 입장에서 분명한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아마도 주장할 것이다; 아니면 역사주의자는 제도가 어떤 분명하게 의도된 목적에 부합하도록 고안된 것이 아니고 어떤 본능과 열정의 즉각적 표현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아니면 역사주의자는 제도는 예전에 분명한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으로 역할을 했지만 이 특성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공학가나 기술자는 제도의 근원이나 설립자의 초기 의도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회공학가나 기술자가 '사회제도 중 소수만이 의도적으로 고안되었고 대다수는 인간 행동의 미필적 결과로서 "성장"하기만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할지라도). 오히려 사회공학가나 기술자는 자신이 지닌 문제를 이렇게 표현할 것이다. 만약 이러저러한 것이 우리의 목표라면 이 제도는 잘 고안되어 그 목적에 부합되도록 조직되었는가? 예를 들어서 우리는 보험제도를 생각할 수 있다. 사회공학가나 기술자는 보험이 이윤추구 사업으로 시작되었는지 혹은 보험의 역사적 임무가 공공의 복지를 위한 것인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많이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마도 보험제도가 어떻게 이익을 증대하는지, 또는 매우 다른 것이지만 공중에게 보험제도 제공하는 이익을 어떻게 증대할 것인지를 보여주면서 특정 보험제도에 대한 비판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보험제도가 이런저런 목적에 부합하도록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할 것이다. 또 다른 사회제도의 본보기로서 우리는 경찰력을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역사주의자들은 경찰을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 도구로 묘사하고, 다른 역사주의자들은 경찰을 계급지배와 압제의 도구로 묘사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공학가나 기술자는 아마도 경찰력을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데 적절한 도구로 만드는 조치를 제시할 것이고, 또한 경찰력이 계급지배의 강력한 무기로 변환될 수 있는 조치를 고안해낼 것이다. (자신이 믿는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시민으로서의 자기 역할에서 그는 이 목적에 적합한 조치들이 채택되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자로서 그는 목적들과 그 목적들의 선정 문제와 사실과 관련된 문제, 다시 말해서 취해질 조치들의 사회적 효과를 신중하게 구별할 것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공학가나 기술자가 어떤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으로서 제도에 이성적으로 접근하며, 기술자로서 그는 제도를 제도의 적합성과 효율성 그리고 단순성, 기타 등등에 따라 전체적으로 판단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역사주의자는 역사 전개에서 이 제도들이 한 '진정한 역할'을 평가하기 위하여 이 제도들의 근원과 운명을 찾아내려고 시도할 것이다 - 예를 들어 '신에 의하여 의도된'이나 '운명에 의하여 정해진'이나 '중요한 역사적 조류에 부합하는' 것, 기타 등등으로 그 제도들을 평가하면서. 이 모든 것은 사회공학가나 기술자가 제도란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이다 라고 고집하는 것과 관계없다; 사회공학가나 기술자는 제도란, 여러 가지 중요한 점에서, 기계적인 도구나 기계와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제도는 유기체의 성장과 유사한 (전혀 동등하지는 않을지라도) 방식으로 성장한다는 것과 이 사실은 사회공학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사회제도에 대한 '도구주의적' 철학에 매어 있지 않다. (오렌지를 도구이거나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오렌지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오렌지를 먹고자 하거나 아마도 오렌지를 판매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고자 할 때.)
역사주의와 사회공학은 때때로 전형적인 결합체로서 나타난다. 최초의 그리고 아마도 가장 강력했던 사례는 플라톤의 사회 및 정치 철학이다. 플라톤의 철학은, 말하자면, 전형적인 역사주의적 특징을 정교하게 전시한 배경을 지니고 전면에서는 상당히 명백한 기술적 요소를 결합한다. 이 결합은 나중에 유토피아 체제라고 묘사되는 것을 만들어낸 상당수의 사회, 정치 철학자들을 특징이다. 이 모든 체제는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항상 현실적인 제도적 수단은 아니지만, 특정 제도적 수단을 채택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사회공학을 추천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목적들을 고려하려고 하면 우리는 이 목적들이 역사주의에 의하여 결정됨을 자주 발견한다. 특히 플라톤의 정치적 목적은 상당 부분 자신의 역사주의적 원칙에 의존한다. 첫째로 사회 혁명과 역사적 부패 속에서 출현하는 헤라클리투스의 무상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플라톤의 목적이다. 둘째로 플라톤은 완전하기 때문에 역사전개의 일반적 경향에 영향을 받지 않는 국가를 설립함으로써 이것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세 번째로 플라톤은 자신의 완전한 국가의 모형이나 원형이 역사의 여명기에 존재했던 황금 시대인 먼 과거에서 발견되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세계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부패한다면 우리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점점 완성을 발견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완전한 국가란 후세대 국가의 최초의 조상, 선조 같은 것인데, 후세대 국가란 말하자면 이 완전하거나 최고, 또는 '이상적' 국가의 타락한 자손이다; 귀신도 아니요, 꿈도 아니고 '우리 생각 속의 아이디어'도 아니지만 그 안정성을 고려할 때 변화 속에 놓여 어느 순간에라도 사라질 운명인 저 모든 부패하는 사회보다 더 현실적인 이상적인 국가.
그래서 심지어 플라톤의 정치적 목적인 최상의 국가도 주로 자신의 역사주의에 의존한다; 그리고 국가에 대한 자신의 철학은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플라톤 자신의 '삼라만상'에 대한 일반적 철학인 형상이나 이데아 이론까지 펼쳐진다.
V
무상한 만물, 쇠퇴하고 부패하는 만물은 (국가처럼) 말하자면 완전한 것의 자손이자 자식이다. 그리고 자식들처럼, 그것들은 자신의 원래 조상의 복사판이다. 무상한 것의 아버지나 원형을 플라톤은 '형상'이나 '모형' 또는 '이데아'라고 부른다. 예전처럼 우리는 형상이나 이데아가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우리 생각 속의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것은 귀신도 아니고 꿈도 아니며 실제적인 것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무상의 것이자, 분명한 실체성에도 불구하고 운명적으로 부패하는 모든 평범한 물체보다 더욱 현실적이다; 그 까닭은 형상이나 이데아는 완전하고 멸망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형상이나 이데아는 멸망하는 것들처럼, 시공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될 수는 없다. 그것들은 공간의 외부에 존재하며 또한 시간의 외부에 존재한다 (그것들이 영원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들은 시공과 접촉하고 있다; 그 까닭은 그것들이 생성된 것, 그리고 시공에서 발전하여 부패하는 것들의 선조이거나 모형들이기 때문에 태초부터 공간과 접촉하여 왔음이 틀림없다. 그것들이 시공에서 우리들과 함께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감각과 상호 작용하는 평범한 것들이 감지될 수 있어서 '감각되는 사물'로 불리는 것처럼, 그것들은 우리의 감각으로 감지될 수 없다. 저 감각되는 것들은, 동등한 원형이나 원형의 모조품이나 자손인데, 같은 가족의 자손들이 그러한 것처럼 원형인 형상이나 이데아뿐만 아니라 서로 닮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손들이 이름을 받는 것처럼 감각되어지는 것들 또한 그러해서 형상이나 이데아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그것들은 형상이나 이데아의 이름을 따서 불리고 있다'.
아이가 아버지에게서 이상과 고유한 모형, 그리고 자신의 열망을 신과 같이 의인화된 것; 완결과 지혜, 안정, 명예, 그리고 미덕의 구현; 아이의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자신을 만들어낸 힘; 지금은 자신을 보존하고 부지하는 힘; 그리고 그 힘에 의하여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과 같이 그렇게 플라톤은 형상이나 이데아를 바라본다. 플라톤의 이데아란 사물의 원본이자 근원이다; 그것은 사물의 결정 원인이요, 사물의 존재 이유이다 - 사물이 '의지'하여 존재하는 안정되고 지속적인 원칙이다. 그것은 사물의 미덕이자 이상이요 완결이다.
감지되는 사물의 한 종류에 대한 형상이나 이데아와, 아이들로 구성된 한 가족의 아버지를 비교하는 일은 플라톤에 의하여 자신의 최후 대화편 중의 하나인 티마이우스에서 전개되었다. 이 비교는 플라톤의 많은 이전 작품과 일치하는데, 그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나 티마이우스에서 플라톤은 자신의 비유를 확대하여 형상이나 이데아를 시공에 접촉시킴으로써 자신의 초기 가르침을 한 걸음 뛰어 넘었다. 그는 추상적인 '공간'을 설명하는데 그 공간 속에서는 감지되는 물체들이 용기(容器)로서 움직이며 (원래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 그리고 그는 사물의 어머니와 그 추상적 공간을 비교하는데 사물의 어머니 안에서는 태초에 감지되는 물체들이, 자신들을 순수한 공간에 각인시키고 그리하여 자손에게 모습을 부여하는 형태에 의하여 창조된다. 플라톤은 '우리는 세 종류의 사물을 생각해야 한다: 우선, 생성을 경험하는 것과; 두 번째로는, 그 안에서 생성이 발생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로, 그 유사성으로 생성된 물체들이 태어나는 모형. 그리고 우리는 수용적 원칙을 어머니에게, 모형을 아버지에게, 그리고 그들의 생산물을 아이에게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는 첫 번째인 모형을 더 자세하게 - 아버지, 창조되어 파괴가 불가능한 불변의 형태,.. 감각에 의하여 보이지 않고 감지되지도 않는, 그리고 단지 순수한 사고에 의해서만 관조될 수 있는 불변의 형태.'라고 설명한다. 이 형상이나 이데아의 하나에 감지되는 것들의 자손이나 종족이 속하여, '물체의 또 다른 종류로 자신들의 형상의 이름을 지니고 그 형상을 닮았지만 감각에 반응하며, 항상 무상에서 창조되고 장소에서 생성되어 다시 그 장소로부터 사라지고, 감각에 기초를 둔 의견에 의하여 이해된다'. 그리고 추상적인 장소는 어머니에 비유되는데 그러므로 이렇게 묘사된다: '세 번째 종류가 있는데 공간으로 영원하며 파괴되지 않고 모든 생성된 물체들에게 집을 제공한다...'
우리가 플라톤의 형상이나 이데아의 이론을 특정 희랍 종교의 신앙과 비교하면 그 이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많은 원시종교에서처럼, 적어도 희랍 신의 몇 명은 단시 이상화된 종족 조상과 영웅일 뿐이다 - 종족의 '미덕'이나 '완결'의 의인화. 따라서 어떤 종족이나 가족은 자신의 족보를 이런저런 신에게까지 연결시킨다. (플라톤 자신의 가족은 그 뿌리를 포세이돈 신에게까지 가지고 간다고 전해진다.) 이 신들이 플라톤의 형상이나 이데아의 이론이 그들의 모조품 (또는 플라톤의 완전한 국가가 현재 존재하는 다양한 국가와 관련되어 있다는)인 감각되는 물체와 관련되어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보통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일반인들이 만물의 무상 속에 포함되어 있어서 부패할 운명인 (진실로 그것은 모든 인간 개인의 궁극적 운명이다) 반면 이 신들은 불멸이고 영원하며 완전하다 - 또는 그런 상태에 매우 근접해 있다 -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희랍신화와 플라톤의 형상이나 이데아 이론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희랍인들은 많은 신을 다양한 종족이나 가족의 선조로 경배한 반면, 이데아 이론은 인간에 대하여 단 하나의 형태나 이데아만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까닭은 모든 '종'이나 '종류'의 사물에는 단 하나의 형태만이 존재한다는 것이 형상이론의 중심 원칙이기 때문이다. 선조의 고유함과 일치하는 고유함이란 그 이론이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를, 즉 유사한 것들은 한 가지 형태의 모조품이나 인쇄물이라는 것을 제시함으로써 감각되는 것들의 유사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수행해야 한다면 그 이론의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만약 두 개의 동등하거나 유사한 형태가 있다면, 그것들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우리는 둘 다 세 번째 원형의 복사판이어서 그 세 번째 원형은 유일하게 진실하고 하나 뿐이 형태로 나타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플라톤이 티마이우스에서 표현한 바와 같이: '그러므로 유사성은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여 둘 사이의 하나로서가 아니라 그것들의 전형인 우수한 것을 참조해야 한다.' 티마이우스보다 일찍 쓰여진 국가에서 플라톤은 보기로서 '본질적 근거', 즉 근거로서 형상이나 이데아를 사용하여 자신의 요점을 더 명백하게 설명했다: '신은.. 하나의 본질적 근거를 만들었다, 오직 하나; 신은 둘 이상을 만들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신이 두 개만 만들고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면 또 다른 하나가 밝혀지게 되는데 이름하여 이 둘에 의하여 전시되는 형상이다; 저 두 개가 아닌 이것이 그렇다면 본질적 근거가 될 것이다.'
이 주장은 형상이나 이데아가 플라톤에게 시공에서의 (그리고 간혹 인간역사를 위하여) 모든 전개에 대한 근원이나 시발점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종류의 감지되는 물체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설명 또한 제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물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미덕이나 특징, 예를 들어 백색이나 딱딱함, 또는 선함 때문에 유사하다면 이 미덕이나 특징은 그 사물 모두에게서 똑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 미덕이나 특징은 사물들을 유사하게 하지 않는다. 플라톤에 따르면, 그 사물들이 희다면 그 사물 모두가 흰색이라는 한 가지 형상이나 이데아에 참가한다; 사물들이 딱딱하다면, 딱딱함이라는 한 가지 형상이나 이데아에 참가한다. 사물들은 아이들이 아버지의 소유물과 재능에 참여하는 의미로 참여한다; 동일한 판으로부터 나와서 서로 유사한 모든 암각이 되는 유리조각의 많은 특정한 재생산품이 원본의 아름다움에 참여하는 것처럼.
이 이론이 감지되는 것들의 유사성을 설명하도록 고안되었다는 사실은 처음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역사주의와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사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와 같이 플라톤으로 하여금 이데아 이론을 개발하도록 유혹한 것은 바로 이 연결고리이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과 함께 플라톤 자신의 글에 있는 몇 가지 암시를 이용하여 이러한 전개를 간단히 설명하겠다.
만물이 끊임없이 변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면 그 만물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만물에 대하여 사실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고 기껏해야 모호하고 불안한 '견해'만 가질 수 있다. 우리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점이 헤라클리투스의 많은 추종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플라톤의 선배로 플라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파메니데스는 이성과 관련된 순수한 지식은, 경험과 관련된 불안한 견해와 반대로, 순수한 지식의 대상물로서 단지 변하지 않는 세계를 가질 수 있으며, 이성과 관련된 순수한 지식은 사실상 그런 세계를 밝혀준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파메니데스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부패하는 세상 뒤에서 발견했다는 불변하고 분할되지 않는 현실은 우리가 살고 죽는 이 세상과는 완전히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그 현실은 이 세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것으로 플라톤은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이 무상의 경험적 세상을 많이 싫어하고 멸시했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이 세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세상의 부패와 급격한 변화 그리고 불행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었다. 그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을 발견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 유령 같은 세상의 뒤에 있는 파메니데스의 불변하고, 사실적이며, 구체적이고 완전한 세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개념이 감각되는 물체의 세상과 관계가 없는 한 자신의 문제를 풀 수 없었다. 그가 찾던 것은 의견이 아니고 지식이었다; 이 변하는 세상을, 그리고 특히 이 변하는 사회를 탐구하는데 사용될 순전히 이성적인 지식; 정치적 변화와 그 기묘한 역사적 법칙. 플라톤은 정치에 대한 왕족들의 지식과 사람을 다스리는 기술의 비밀을 발견하려고 목표를 정했다.
그러나 정확한 정치학은 무상의 세상에 대한 어떤 정확한 지식만큼 불가능해 보였다; 정치분야에서 고정된 목표물은 없었다. '정부'나 '국가' 또는 '도시' 같은 단어의 의미가 역사적 발달에서 새로운 단계마다 변하는데 어떻게 사람이 정치적 문제를 토론할 수 있을까? 정치이론은 헤라클리투스 시대에 살던 플라톤에게 정치적 행위만큼 불안하고 요동치며 이해 불가능하게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와 같이 플라톤은 매우 중요한 암시를 소크라테스로부터 받는다. 소크라테스는 윤리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윤리 개혁가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동 원칙을 생각하고 설명하며, 근거를 대라고 요구하여 괴롭히던 도덕주의자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는 그들의 대답에 쉽게 만족하지 않았다. 그가 받은 전형적인 대답은 -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지혜롭다'거나 혹은 아마도 '효율적'이거나 '정당하다'나 '신성'하다, 기타 등등 때문에 특정 방식으로 행동한다 이었는데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지혜란 무엇인가; 또는 효율이란; 정의란: 또는 신성함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서 자신의 질문을 계속하도록 만들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사물의 '미덕'에 대하여 사실을 조사하려는 유혹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다양하고 변화하는 행동과 관련된 '지혜로운' 방식에 공통적인 것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실제로 '지혜'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표현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 위하여 예를 들어 다양한 직업에서 나타나는 지혜를 토론하였다. '소크라테스가 본질을 탐구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다시 말해서 사물의 미덕이나 결정 요인과 용어의 불변적이고도 본질적인 의미를 탐구했다는 것. '이런 관계에서 그는 보편적 정의(定義)라는 문제를 제기한 최초 인간이 되었다.' '정의'나 '겸손' 또는 '신성'과 같은 윤리적 용어를 토론하려는 소크라테스의 시도는 당연히 자유에 관한 현대적 토론 (예를 들어 밀에 의하여)이나 권위에 관한, 혹은 개인과 사회에 관한 (예를 들어 캐틀린에 의하여) 토론과 비교되었다. 소크라테스가 그런 용어들의 불변적이고 본질적인 의미를 탐색하면서 그 용어들을 의인화했거나 그 용어들을 마치 사물과 같이 취급했다는 것은 상상할 필요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보고서에는 적어도 소크라테스가 그러지 않았다는 것과, 소크라테스의 의미나 본질 탐구 방식을 실제적 성질인 사물의 형상이나 이데아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개발한 것은 플라톤이었다 것이 나타난다. 플라톤은 '감각되는 사물 모두는 항상 무상의 상태에 있으며 그 사물들에 대한 지식은 없다라는 헤라클리투스의 원칙'을 유지했지만 소크라테스의 방식에서 이 어려움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길을 발견했다. '감지되는 사물들은 늘 변하기 때문에 정의를 내릴 수 없다'할지라도 다양한 사물들에 대한 정의와 진실한 지식을 있을 수 있다 - 감지되는 사물의 미덕에 대한 지식. '지식이나 사고가 대상을 가지려면, 감지되는 것들과는 별도로 어떤 다르고 불변하는 존재가 있어야만 한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며 플라톤에 대하여 '이 다른 종류의 것들을 플라톤은 형상이나 이데아라고 불렀으며 플라톤은 감지되는 사물들은 형상이나 이데아와는 구분된다고 말했으며 모든 사물은 형상이나 이데아에 따라서 불리며, 특정 형상이나 이데아와 동일한 이름을 지닌 많은 사물들은 그 형상이나 이데아에 참여함으로써 존재한다라고 보고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설명은 티마이우스에 제시된 플라톤 자신의 주장과 밀접하게 일치하며, 그 설명은 플라톤의 근본적 문제가 감지되는 사물을 다루는 과학적 방법을 찾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단지 견해가 아닌 순전히 이성적인 지식을 얻고자 했다; 그리고 감지되는 사물에 대한 순수한 지식은 습득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전에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감지되는 사물에 어떤 정도로든 관련되고 적용이 가능한 적어도 그런 순수한 지식을 습득할 것을 고집했다. 형상이나 이데아에 대한 지식은 형상이 미성년자인 자식들에 대한 아버지의 관계와 같은 감각되는 사물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 요구를 충족했다. 형상은 감각되는 사물에 대하여 설명될 수 있는 대표자이기 때문에 무상의 세상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에서 참고될 수 있었다.
우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형상이나 이데아 이론은 적어도 세 가지 다른 기능을 플라톤의 철학에서 지니고 있다. (1) 그 이론은 순수한 과학적 지식, 심지어 우리가 즉각적인 어떤 지식을 얻을 수 없고 단지 견해만 얻을 수 있는 변하는 사물의 세상에 적용될 수 있는 지식도 가능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방법론적인 장치이다. 그러므로 변하는 사회의 문제를 조사하여 정치학을 세우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2) 그 이론은 화급하게 필요한 변화의 이론과 부패의 이론, 생성과 쇠퇴의 이론, 특히 역사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3) 그 이론은 사회적 분야에서 어떤 종류의 사회공학을 향한 한 가지 방법을 열어 놓는다; 그리고 그 이론은 국가에 대한 형상이나 이데아와 밀접하게 닮아서 부패할 수 없는 '최상의 국가'를 설계할 것을 제안하기 때문에 사회적 변화를 중단시키는 도구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도록 한다.
문제 (2), 변화와 역사에 대한 이론은 다음 4장과 5장에서 다루어질 것인데 그 장에서는 플라톤의 사회학이 취급된다, 즉 그가 살았던 변하는 사회상에 대한 그의 묘사와 설명이다. 문제 (3), 사회변화 중단은 6장에서 9장에 걸쳐서 다루어지는데 플라톤의 정치 프로그램을 다룬다. 문제 (1)인 플라톤의 방법론적 문제는 플라톤 이론의 역사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으로 도움을 받아 현재 장에 간단하게 개괄되었다. 이 토론에 나는 여기서 몇 가지 비평을 덧붙이고 싶다.
VI
나는 플라톤과 그의 많은 추종자들에 의하여 주장되는 사물의 진정한 본질 즉, 사물의 숨겨진 실제나 본질을 발견하여 설명하는 것이 순수 지식이나 '과학'의 임무라는 관점을 지적하기 위하여 방법론적 본질주의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그것은 감지되는 사물의 본질은 다르고 더 현실적인 것들에게서 - 그 사물들의 선조나 형태에서 - 발견될 수 있다는 플라톤의 기묘한 믿음이었다. 플라톤 이후의 많은 방법론적 본질주의자들은,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식으로 완전히 플라톤을 뒤따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순수한 지식이 하는 일이란 사물의 형상이나 본질의 숨겨진 성질을 찾는 것이라고 결정을 내리는데 모두 플라톤과 의견일치를 이루었다. 이 모든 방법론적 본질주의자들은 또한 그 본질들이 지적(知的) 직관의 도움을 받아 발견되고 감지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서 플라톤과 동일하다; 모든 본질은 그에 고유한 이름을 가진다는 것, 즉 감지되는 것들이 따라 불리는 이름; 그리고 그 본질은 언어로 묘사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물의 본질에 대한 묘사를 그들 모두는 '정의(定義)'라고 불렀다. 방법론적 본질주의에 따르면 사물을 아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그 변하지 않는 실제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본질의 정의(定義)도 알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이름도 알 수 있다고. 따라서 사실적인 물체에 관하여 두 가지 질문이 나타날 것이다...: 사람은 이름을 내놓고 정의(定義)를 요구할 것이다; 혹은 그는 정의(定義)를 내고 이름을 요구할 것이다.' 이 방식의 보기로 플라톤은 '짝수'('홀수'의 반대로)라는 본질을 사용한다: '숫자는.. 동등한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만약 숫자가 그렇게 나누어질 수 있다면 숫자는 "짝수"라고 불린다; 그리고 "짝수"라는 이름의 정의(定義)는 "동등한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 수"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정의가 주어지고 이름을 말하라고 하면 "짝수"나 "동등한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숫자"라고 하든, 우리는 동일한 본질을 말한다... 이 사례에 따라 플라톤은 이 방식을 영혼의 사실적 본성에 관한 '증거'에 적용하며, 나중에 우리는 이것을 듣게 될 것이다.
방법론적 본질주의, 다시 말해서 본질을 밝히고 그 본질을 정의로 설명하는 일이 과학의 목적이라는 이론은 그 반대인 방법론적 유명론(唯名論)과 대조하면 더 잘 이해된다. 사물이 실제로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 진짜 본질을 정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신 방법론적 유명론은 다양한 환경에서 사물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그 사물의 행동에서 어떤 규칙성이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방법론적 유명론은 과학의 목적을 사물묘사와 우리의 경험적 사건, 그리고 이 사건들을 '설명하는데'서, 즉 보편적인 법칙의 도움을 받아서 사물들을 묘사하는데서 찾는다. 그리고 방법론적 유명론은 우리의 언어에서, 특히 단어 더미에 지나지 않는 것과 올바르게 작성된 문장과 결론을 구별하는 언어규칙에서 과학적 설명이라는 위대한 방식을 본다; 방법론적 유명론은 단어를 본질에 대한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이 임무를 위한 부차적 도구로 간주한다. 방법론적 유명론자는 '에너지란 무엇인가?'나 '운동이란 무엇인가?' 혹은 '원자란 무엇인가?' 따위의 질문이 물리학을 위하여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질문에는 중요성을 부여할 것이다: '태양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할까?' 또는 '행성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혹은 '어떤 상황에서 원자는 빛을 발하는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는 자신은 '어떻게'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철학자들에게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이룩할 수 있는 작은 정도의 정확함을 그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이룩한 과장된 잡동사니보다는 선호한다고 지적하여 대답할 것이다.
사례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방법론적 유명론은 오늘날 자연과학에서 상당히 일반적으로 수용된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과학의 문제는 아직도 대부분 본질주의적 방식으로 다루어진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사회과학이 발전하지 못한 주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 상황을 주목한 많은 사람들은 상황을 다르게 판단한다. 그들은 방법에서의 차이점이 필요하며 그 차이점은 이 두 가지 연구분야의 '성질' 사이의 '본질적' 차이점을 반영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여 보통 제시되는 주장은 사회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역사주의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주장에 따르면 물리학자는 변한다할지라도 어느 정도 불변성을 지닌 원자나 에너지 같은 물체를 다룬다. 물리학자는 비교적 변하지 않는 이 존재들이 마주치는 변화를 설명할 수 있고, 자신이 분명하게 선언할 수 있는 항구적인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본질이나 형상 또는 유사한 불변하는 존재를 구성하거나 탐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회학자의 위치는 매우 다르다. 그가 흥미를 가진 전체 분야는 변화한다. 사회적 영역에서는 항구적인 존재란 없고 그 영역에서 모든 것은 역사적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어떻게 우리는 정부를 연구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다양한 역사시기에 놓인 다양한 국가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통치제도 속에서 그 제도가 본질적으로 공통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상정하지 않고 정부를 확인할 것인가? 우리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정부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말해서 그것이 정부라는 우리의 직관에 맞는다면, 즉 우리가 정의 속에서 형성할 수 있는 직관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떤 제도를 정부라고 부른다. '문명'과 같은 다른 사회학적 존재도 같은 방식으로 부른다. 역사주의적 주장은 결론을 내리기를 우리는 그것들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정의의 형태로 규정해야 한다.
이 현대적 주장은 내가 생각하는 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플라톤을 그 자신의 형상이나 이데아의 원리로 이끌었던 위에 설명한 것들과 매우 비슷하다. 유일한 차이점은 플라톤(원자론을 인정하지 않았고 에너지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었다)은 자신의 원리를 물리학 영역에 또한 적용하여 전 세계에 적용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회과학에서 플라톤의 방식에 대한 토론이 심지어 오늘날에도 논제가 될 수 있다는 암시를 받는다.
플라톤의 사회학과 그가 그 분야에서 방법론적 본질주의를 이용한 것으로 나아가기 전에 나는 플라톤의 역사주의와 그의 '최상의 국가'만을 다루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독자들에게 플라톤 철학의 전부가 다루거나 플라톤 주의를 '공정하고 올바르게' 다루는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해야겠다. 역사주의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역사주의란 무용하며 그보다 더 심하다는 믿음에 근거를 두고 솔직하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플라톤 주의의 역사주의적 특징을 내가 연구함에 있어서 그러므로 나는 강력한 비판을 가한다. 내가 소크라테스에게서 나왔다고 믿는 부분들을 멀리 넘어서 나는 플라톤의 철학 속에서 많은 것을 찬양하지만 그의 천재성에 보내진 수많은 찬사에 내가 찬사를 덧보태는 것은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이 철학에서 내 의견으로는 해악인 것을 파괴하는데 열중한다. 내가 분석하여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플라톤의 정치 철학에서 나타나는 전체주의적 경향이다.
-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칼 포퍼 -
CHAPTER 3: PLATO'S THEORY OF FORMS OR IDEAS
I
Plato lived in a period of wars and of political strife which was, for all we know, even more unsettled than that which had troubled Heraclitus. While he grew up, the breakdown of the tribal life of the Greeks had led in Athens, his native city, to a period of tyranny, and later to the establishment of a democracy which tried jealously to guard itself against any attempts to reintroduce either a tyranny or an oligarchy, i.e. a rule of the leading aristocratic families. During his youth, democratic Athens was involved in a deadly war against Spart, the leading city-state of the Peloponnese, which had preserved many of the laws and customs of the ancient tribal aristocracy. The Peloponnesian war lasted, with an interruption, for twenty-eight years. (In chapter 10, where the historical background is reviewed in some detail, it will be shown that the war did not end with the fall of Athens in 404 B.C., as is sometimes asserted .) Plato was born during the war, and he was about twenty-four when it ended. It brought terrible epidemics, and, in its last year, famine, the fall of the city of Athens, civil war, and a rule of terror, usually called the rule of the Thirty Tyrants; these were led by two of Plato's uncles, who both lost their lives in the unsuccessful attempt to uphold their regime against the democrats. The re-establishment of the democracy and of peace meant no respite for Plato. His beloved teacher Socrates, whom he later made the main speaker of most of his dialogues, was tried and executed. Plato himself seems to have been in danger; together with other companions of Socrates he left Athens.
Later, on the occasion of his first visit to Sicily, Plato became entangled in the political intrigues which were spun at the court of the older Dionysius, tyrant of Syracuse, and even after his return to Athens and the foundation of the Academy, Plato continued, along with some of his pupils, to take an active and ultimately fateful part in the conspiracies and revolutions that constituted Syracusan politics.
This brief outline of political events may help to explain why we find in the work of Plato, as in that of Heraclitus, indications that he suffered desperately under the political instability and insecurity of his time. Like Heraclitus, Plato was of royal blood; at least, the tradition claims that his father's family traced its descent from Codrus, the last of the tribal kings of Attica. Plato was very proud of his mother's family which, as he explains in his dialogues (in the Charmides and the Timaeus), was related to that of Solon, the lawgiver of Athens. His uncles, Critias and Charmides, the leading men of the Thirty Tyrants, also belonged to his mother's family. With such a family tradition, Plato could be expected to take a deep interest in public affairs; and indeed, most of his works fulfil this expectation. He himself relates (if the Seventh Letter is genuine) that he was 'from the beginning most anxious for political activity', but that he was deterred by the stirring experiences of his youth. 'Seeing that everything swayed and shifted aimlessly, I felt giddy and desperate.' From the feeling that society, and indeed 'everything', was in flux, arose, I believe, the fundamental impulse of his philosophy as well as of the philosophy of Heraclitus; and Plato summed up his social experience, exactly as his historicist predecessor had done, by proffering a law of historical development. According to this law, which will be more fully discussed in the next chapter, all social change is corruption or decay or degeneration.
This fundamental historical law forms, in Plato's view, part of a cosmic law - of a law which holds for all created or generated things. All things in flux, all generated things, are destined to decay. Plato, like Heraclitus, felt that the forces which are at work in history are cosmic forces.
It is nearly certain, however, that Plato believed that this law of generation was not the whole story. We have found, in Heraclitus, a tendency to visualize the laws of development as cyclic laws; they are conceived after the law which determines the cyclic succession of the seasons. Similarly we can find, in some of Plato's works, the suggestion of a Great Year (its length appears to be 36,000 ordinary years), with a period of improvement or generation, presumably corresponding Spring and Summer, and one of degeneration and decay, corresponding to Autumn and Winter. According to one of Plato's dialogues (the Statesman), a Golden Age, the age of Cronos - an age in which Cronos himself rules the world, and in which men spring from the earth - is followed by our own age, the age of Zeus, an age in which the world is abandoned by the gods and left to its own resources, and which consequently is one of increasing corruption. And in the story of the Statesman there is a suggestion that, after the lowest point of complete corruption has been reached, the god will again take the helm of the cosmic ship, and things will start to improve.
It is not certain how far Plato believed in the story of the Statesman. He made it quite clear that he did not believe that all of it was literally true. on the other hand, there can be little doubt that he visualized human history in a cosmic setting; that he believed his own age to be one of deep depravity - possibly of the deepest that can be reached - and the whole preceding historical period to be governed by an inherent tendency towards decay, a tendency shared by both the historical and the cosmical development. Whether or not he also believed that this tendency must necessarily come to an end once the point of extreme depravity has been reached seems to me uncertain. But he certainly believed that it is possible for us, by a human, or rather by a superhuman effort, to break through the fatal historical trend, and to put an end to the process of decay.
II
Great as the similarities are between Plato and Heraclitus, we have struck here an important difference. Plato believed that the law of historical destiny, the law of decay, can be broken by the moral will of man, supported by the power of human reason.
It is not quite clear how Plato reconciled this view with his belief in a law of destiny. But there are some indications which may explain the matter.
Plato believed that the law of degeneration involved moral degeneration. Political degeneration at any rate depends in his view mainly upon moral degeneration (and lack of knowledge); and moral degeneration, in its turn, is due mainly to racial degeneration. This is the way in which the general cosmic law of decay manifests itself in the field of human affairs.
It is therefore understandable that the great cosmic turning-point may coincide with a turning-point in the field of human affairs - the moral and intellectual field - and that it may, therefore, appear to us to be brought about by a moral and intellectual human effort. Plato may well have believed that, just as the great general law of decay did manifest itself in moral decay leading to political decay, so the advent of the cosmic turning-point would manifest itself in the coming of a great law-giver whose powers of reasoning and whose moral will are capable of bringing this period of political decay to a close. It seems likely that the prophecy, in the Statesman, of the return of the Golden Age, of a new millenium, is the expression of such a belief in the form of a myth. However this may be, he certainly believed in both - in a general historical tendency towards corruption, and in the possibility that we may stop further corruption in the political field by arresting all political change. This, accordingly, is the aim he strives for. He tries to realize it by the establishment of a state which is free from the evils of all other states because it does not degenerate, because it does not change. The state which is free from the evil of change and corruption is the best, the perfect state. It is the state of the Golden Age which knew no change. It is the arrested state.
III
In believing in such an ideal state which does not change, Plato deviates radically from the tenets of historicism which we found in Heraclitus. But important as this difference is, it gives rise to further points of similarity between Plato and Heraclitus.
Heraclitus, despite the boldness of his reasoning, seems to have shrunk from the idea of replacing the cosmos by chaos. He seems to have comforted himself, we said, for the loss of a stable world by clinging to the view that change is ruled by an unchanging law. This tendency to shrink back from the last consequences of historicism is characteristic of many historicists.
In Plato, this tendency becomes paramount. (He was here under the influence of the philosophy of Parmenides, the great critic of Heraclitus.) Heraclitus had generalized his experience of social flux by extending it to the world of 'all things', and Plato, I have hinted, did the same. But Plato also extended his belief in a perfect state that does not change to the realm of 'all things'. He believed that to every kind of ordinary or decaying thing there corresponds also a perfect thing that does not decay. This belief in perfect and unchanging things, usually called the Theory of Forms or Ideas, became the central doctrine of his philosophy.
Plato's belief that it is possible for us to break the iron law of destiny, and to avoid decay by arresting all change, shows that his historicist tendencies had definite limitations. An uncompromising and fully developed historicism would hesitate to admit that man, by any effort, can alter the laws of historical destiny even after he has discovered them. It would hold that he cannot work against them, since all his plans and actions are means by which the inexorable laws of development realize his historical destiny; just as Oedipus met his fate because of the prophecy, and the measures taken by his father for avoiding it, and not in spite of them. In order to gain a better understanding of this out-and-out historicist attitude, and to analyze the opposite tendency inherent in Plato's belief that he could influence fate, I shall contrast historicism, as we find it in Plato, with a diametrically opposite approach, also to be found in Plato, which may be called the attitude of social engineering .
IV
The social engineer does not ask any questions about historical tendencies or the destiny of man. He believes that man is the master of his own destiny and that, in accordance with our aims, we can influence or change the history of man just as we have changed the face of the earth. He does not believe that these ends are imposed upon us by our historical background or by the trends of history, but rather that they are chosen, or even created, by ourselves, just as we create new thoughts or new works of art or new houses or new machinery. As opposed to the historicist who believes that intelligent political action is possible only if the future course of history is first determined, the social engineer believes that a scientific basis of politics would be a very different thing; it would consist of the factual information necessary for the construction or alteration of social institutions, in accordance with our wishes and aims. Such a science would have to tell us what steps we must take if we wish, for instance, to avoid depressions, or else to produce depressions; or if we wish to make the distribution of wealth more even, or less even. In other words, the social engineer conceives as the scientific basis of politics something like a social technology (Plato, as we shall see, compares it with the scientific background of medicine), as opposed to the historicist who understands it as a science of immutable historical tendencies.
From what I have said about the attitude of the social engineer, it must not be inferred that there are no important differences within the camp of the social engineers. on the contrary, the difference between what I call 'piecemeal social engineering' and 'Utopian social engineering' is one of the main themes of this book. (Cp. especially chapter 9, where I shall give my reasons for advocating the former and rejecting the latter.) But for the time being, I am concerned only with the opposition between historicism and social engineering. This opposition can perhaps be further clarified if we consider the attitudes taken up by the historicist and by the social engineer towards social institutions, i.e. such things as an insurance company, or a police force, or a government, or perhaps a grocer's shop.
The historicist is inclined to look upon social institutions mainly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ir history, i.e. their origin, their development, and their present and future significance. He may perhaps insist that their origin is due to a definite plan or design and to the pursuit of definite ends, either human or divine; or he may assert that they are not designed to serve any clearly conceived ends, but are rather the immediate expression of certain instincts and passions; or he may assert that they have once served as means to definite ends, but that they have lost this character. The social engineer and technologist, on the other hand, will hardly take much interest in the origin of institutions, or in the original intentions of their founders (although there is no reason why he should not recognize the fact that 'only a minority of social institutions are consciously designed, while the vast majority have just "grown", as the undesigned results of human actions' ). Rather, he will put his problem like this. If such and such are our aims, is this institution well designed and organized to serve them? As an example we may consider the institution of insurance. The social engineer or technologist will not worry much about the question whether insurance originated as a profit-seeking business; or whether its historical mission is to serve the common weal. But he may offer a criticism of certain institutions of insurances, showing, perhaps, how to increase their profits, or, which is a very different thing, how to increase the benefit they render to the public; and he will suggest ways in which they could be made more efficient in serving the one end or the other. As another example of a social institution, we may consider a police force. Some historicists may describe it as an instrument for the protection of freedom and security, others as an instrument of class rule and oppression. The social engineer or technologist, however, would perhaps suggest measures that would make it a suitable instrument for the protection of freedom and security, and he might also devise measures by which it could be turned into a powerful weapon of class rule. (In his function as a citizen who pursues certain ends in which he believes, he may demand that these ends, and the appropriate measures, should be adopted. But as a technologist, he would carefully distinguish between the question of the ends and their choice and questions concerning the facts, i.e. the social effects of any measure which might be taken .)
Speaking more generally, we can say that the engineer or the technologist approaches institutions rationally as means that serve certain ends, and that as a technologist he judges them wholly according to their appropriateness, efficiency, simplicity, etc. The historicist, on the other hand, would rather attempt to find out the origin and destiny of these institutions in order to assess the 'true role' played by them in the development of history - evaluating them, for instance, as 'willed by God', or as 'willed by Fate', or as 'serving important historical trends', etc. All this does not mean that the social engineer or technologist will be committed to the assertion that institutions are means to ends, or instruments; he may be well aware of the fact that they are, in many important respects, very different from mechanical instruments or machines. He will not forget, for example, that they 'grow' in a way which is similar (although by no means equal) to the growth of organisms, and that this fact is of great importance for social engineering. He is not committed to an 'instrumentalist' philosophy of social institutions. (Nobody will say that an orange is an instrument, or a means to an end; but we often look upon oranges as means to ends, for example, if we wish to eat them, or, perhaps, to make our living by selling them.)
The two attitudes, historicism and social engineering, occur sometimes in typical combinations. The earliest and probably the most influential example of these is the social and political philosophy of Plato. It combines, as it were, some fairly obvious technological elements in the foreground, with a background dominated by an elaborate display of typically historicist features. The combination is representative of quite a number of social and political philosophers who produced what have been later described as Utopian systems. All these systems recommend some kind of social engineering, since they demand the adoption of certain institutional means, though not always very realistic ones, for the achievement of their ends. But when we proceed to a consideration of these ends, then we frequently find that they are determined by historicism. Plato's political ends, especially, depends to a considerable extent on his historicist doctrines. First, it is his aim to escape the Heraclitean flux, manifested in social revolution and historical decay. Secondly, he believes that this can be done by establishing a state which is so perfect that it does not participate in the general trend of historical development. Thirdly, he believes that the model or original of his perfect state can be found in the distant past, in a Golden Age which existed in the dawn of history; for if the world decays in time, then we must find increasing perfection the further we go back into the past. The perfect state is something like the first ancestor, the primogenitor, of the later states, which are, as it were, the degenerate offspring of this perfect, or best, or 'ideal state' state ; an ideal state which is not a mere phantasm, nor a dream, nor an 'idea in our mind', but which is, in view of its stability, more real than all those decaying societies which are in flux, and liable to pass away at any moment.
Thus even Plato's political end, the best state, is largely dependent on his historicism; and what is true of his philosophy of the state can be extended, as already indicated, to his general philosophy of 'all things', to his Theory of Forms or Ideas.
V
The things in flux, the degenerate and decaying things, are (like the state) the offspring, the children, as it were, of perfect things. And like children, they are copies of their original primogenitors. The father or original of a thing in flux is what Plato calls its 'Form' or its 'Pattern' or its 'Idea'. As before, we must insist that the Form or Idea, in spite of its name, is no 'idea in our mind'; it is not a phantasm, nor a dream, but a real thing. It is, indeed, more real than all the ordinary things which are in flux, and which, in spite of their apparent solidity, are doomed to decay; for the Form or Idea is a thing that is perfect, and does not perish.
The Forms or Ideas must not be thought to dwell, like perishable things, in space and time. They are outside space, and also outside time (because they are eternal). But they are in contact with space and time; for since they are the primogenitors or models of the things which are generated, and which develop and decay in space and time, they must have been in contact with space, at the beginning of time. Since they are not with us in our space and time, they cannot be perceived by our senses, as can the ordinary changing things which interact with our senses and are therefore called 'sensible things'. Those sensible things, which are copies or children of the same model or original, resemble not only this original, their Form or Idea, but also one another, as do children of the same family; and as children are called by the name of their father, so are the sensible things, which bear the name of their Forms or Ideas; 'They are all called after them', as Aristotle says .
As a child may look upon his father, seeing in him an ideal, a unique model, a god-like personification of his own aspiration; the embodiment of perfection, of wisdom, of stability, glory, and virtue; the power which created him before his world began; which now preserves and sustains him; and in 'virtue' of which he exists; so Plato looks upon the Forms or Ideas. The Platonic Idea is the original and the origin of the thing; it is the rationale of the thing, the reason of its existence - the stable, sustaining principle in 'virtue' of which it exists. It is the virtue of the thing, its ideal, its perfection.
The comparison between the Form or Idea of a class of sensible things and the father of a family of children is developed by Plato in the Timaeus, one of his latest dialogues. It is in close agreement with much of his earlier writing, on which it throws considerable light. But in the Timaeus, Plato goes one step beyond his earlier teaching when he represents the contact of the Form or Idea with the world of space and time by an extension of his simile. He describes the abstract 'space' in which the sensible things move (originally the space or gap between heaven and earth) as a receptacle, and compares it with the mother of things, in which at the beginning of time the sensible things are created by the Form which stamp or impress themselves upon pure space, and thereby give the offspring their shape. 'We must conceive', writes Plato, 'three kinds of things: first, those which undergo generation; secondly, that in which generation takes place; and thirdly, the model in whose likeness the generated things are born. And we may compare the receiving principle to a mother, and the model to a father, and their product to a child.' And he goes on to describe first more fully the models - the fathers, the unchanging Form which is created and indestructible,.. invisible and imperceptible by any sense, and which can be contemplated only by pure thought.' To any single one of these Forms or Ideas belongs its offspring or race of sensible things, 'another kind of things, bearing the name of their Form and resembling it, but perceptible to sense, created, always in flux, generated in a place and again vanishing from that place, and apprehended by opinion based upon perception'. And the abstract space, which is likened to the mother, is described thus: 'There is a third kind, which is space, and is eternal, and cannot be destroyed, and which provides a home for all generated things...'
It may contribute to the understanding of Plato's theory of Forms or Ideas if we compare it with certain Greek religious beliefs. As in many primitive religions, some at least of the Greek gods are nothing but idealized tribal primogenitors and heroes - personifications of the 'virtue' or 'perfection' of the tribe. Accordingly, certain tribes and families traced their ancestry to one or other of the gods. (Plato's own family is reported to have traced its descent from the god Poseidon .) We have only to consider that these gods are immortal or eternal, and perfect - or very nearly so - while ordinary men are involved in the flux of all things, and subject to decay (which indeed is the ultimate destiny of every human individual), in order to see that these gods are related to ordinary men in the same way as Plato's Forms or Ideas are related to those sensible things which are their copies (or his perfect state to the various states now existing). There is, however, an important difference between Greek mythology and Plato's Theory of Forms or Ideas. While the Greeks venerated many gods as the ancestors of various tribes or families, the Theory of Ideas demands that there should be only one Form or Idea of man ; for it is one of the central doctrines of the Theory of Forms that there is only one Form of every 'race' of 'kind' of things. The uniqueness of the Form which corresponds to the uniqueness of the primogenitors is a necessary element of the theory if it is to perform one of its most important functions, namely, to explain the similarity of sensible things, by proposing that the similar things are copies or imprints of one Form. Thus if there were two equal or similar Forms, their similarity would force us to assume that both are copies of a third original which thereby would turn out to be the only true and single Form. Or, as Plato puts it in the Timaeus: 'The resemblance would thus be explained, more precisely, not as one between these two things, but in reference to that superior thing which is their prototype.' In the Republic, which is earlier than the Timaeus, Plato had explained his point even more clearly, using as his example the 'essential bed', i.e. the Form or Idea of a bed: 'God.. has made one essential bed, and only one; two or more he did not produce, and never will... For.. even if God were to make two, and no more, then another would be brought to light, namely the Form exhibited by those two; this, and not those two, would then be the essential bed.'
This argument shows that the Forms or Ideas provide Plato not only with an origin or starting point for all developments in space and time (and occasionally for human history) but also with an explanation of the similarities between sensible things of the same kind. If things are similar because of some virtue or property which they share, for instance, whiteness, or hardness, or goodness, then this virtue or property must be one and the same in all of them; otherwise it would not make them similar. According to Plato, they all participate in the one Form or Idea of whiteness, if they are white; of hardness, if they are hard. They participate in the sense in which children participate in their father's possessions and gifts; just as the many particular reproductions of an etching which are all impressions from one and the same plate, and hence similar to one another, may participate in the beauty of the original.
The fact that this theory is designed to explain the similarities in sensible things does not seem at first sight to be in any way connected with historicism. But it is; and as Aristotle tells us, it was just this connection which induced Plato to develop the Theory of Ideas. I shall attempt to give an outline of this development, using Aristotle's account together with some indications in Plato's own writings.
If all things are in continuous flux, then it is impossible to say anything definite about them. We can have no real knowledge of them, but, at the best, vague and delusive 'opinions'. This point, as we know from Plato and Aristotle , worried many followers of Heraclitus. Parmenides, one of Plato's predecessors who influenced him greatly, had taught that the pure knowledge of reason, as opposed to the delusive opinion of experience, could have as its object only a world which did not change, and that the pure knowledge of reason did in fact reveal such a world. But the unchanging and undivided reality which Parmenides thought he had discovered behind the world of perishable things was entirely unrelated to this world in which we live and die. It was therefore incapable of explaining it.
With this, Plato could not be satisfied. Much as he disliked and despised this empirical world of flux, he was, at bottom, most deeply interested in it. He wanted to unveil the secret of its decay, of its violent changes, and of its unhappiness. He hoped to discover the means of its salvation. He was deeply impressed by Parmenides' doctrine of an unchanging, real, solid, and perfect world behind this ghostly world in which he suffered; but this conception did not solve his problems as long as it remained unrelated to the world of sensible things. What he was looking for was knowledge, not opinion; the pure rational knowledge that could be used to investigate this changing world, and especially, this changing society; political change, with its strange historical laws. Plato aimed at discovering the secret of the royal knowledge of politics, of the art of ruling men.
But an exact science of politics seemed as impossible as any exact knowledge of a world in flux; there were no fixed objects in the political field. How could one discuss any political questions when the meaning of words like 'government' or 'state' or 'city' changed with every new phase in the historical development? Political theory must have seemed to Plato in his Heraclitean period to be just as elusive, fluctuating, and unfathomable as political practice.
In this situation Plato obtained, as Aristotle tells us, a most important hint from Socrates. Socrates was interested in ethical matters; he was an ethical reformer, a moralist who pestered all kinds of people, forcing them to think, to explain, and to account for the principles of their actions. He used to question them and was not easily satisfied by their answers. The typical reply which he received - that we act in a certain way because it is 'wise' to act in this way or perhaps 'efficient', or 'just', or 'pious', etc. - only incited him to continue his questions by asking what is wisdom; or efficiency; or justice; or piety. In other words, he was led to enquire into the 'virtue' of a thing. So he discussed, for instance, the wisdom displayed in various trades and professions, in order to find out what is common to all these various and changing 'wise' ways of behaviour, and so to find out what wisdom really is, or what 'wisdom' really means, or (using Aristotle's way of putting it) what its essence is. 'It was natural', says Aristotle, 'that Socrates should search for the essence' , i.e. for the virtue or rationale of a thing and for the real, the unchanging or essential meaning of the terms. 'In this connection he became the first to raise the problem of universal definitions.'
These attempts of Socrates to discuss ethical terms like 'justice' or 'modesty' or 'piety' have been rightly compared with modern discussions on Liberty (by Mill , for instance), or on Authority, or on the Individual and Society (by Catlin, for instance). There is no need to assume that Socrates, in his search for the unchanging or essential meaning of such terms, personified them, or that he treated them like things. Aristotle's report at least suggests that he did not, and that it was Plato who developed Socrates' method of search for the meaning or essence into a method of determining the real nature, the Form or Idea of a thing. Plato retained 'the Heraclitean doctrines that all sensible things are ever in a state of flux, and that there is no knowledge about them', but he found in Socrates' method a way out of these difficulties. Though there 'could be no definition of any sensible thing, as they were always changing', there could be definitions and true knowledge of things of a different kind - of the virtues of the sensible things. 'If knowledge or thought were to have an object, there would have to be some different, some unchanging entities, apart from those which are sensible', says Aristotle , and he reports of Plato that 'things of this other sort, then, he called Forms or Ideas, and the sensible things, he said, were distinct from them, and all called after them. And the many things which have the same name as a certain Form or Idea exist by participating in it'.
This account of Aristotle's corresponds closely to Plato's own arguments proffered in the Timaeus , and it shows that Plato's fundamental problem was to find a scientific method of dealing with sensible things. He wanted to obtain purely rational knowledge, and not merely opinion; and since pure knowledge of sensible things could not be obtained, he insisted, as mentioned before, on obtaining at least such pure knowledge as was in some way related, and applicable, to sensible things. Knowledge of the Forms or Ideas fulfilled this demand, since the Form was related to its sensible things like a father to his children who are under age. The Form was the accountable representative of the sensible things, and could therefore be consulted in important questions concerning the world of flux.
According to our analysis, the theory of Forms or Ideas has at least three different functions in Plato's philosophy. (1) It is a most important methodological device, for it makes possible pure scientific knowledge, and even knowledge which could be applied to the world of changing things of which we cannot immediately obtain any knowledge, but only opinion. Thus it becomes possible to enquire into the problems of a changing society, and to build up a political science. (2) It provides the clue to the urgently needed theory of change, and of decay, to a theory of generation and degeneration, and especially, the clue to history. (3) It opens a way, in the social realm, towards some kind of social engineering; and it makes possible the forging of instruments for arresting social change, since it suggests designing a 'best state' which so closely resembles the Form or Idea of a state that it cannot decay.
Problem (2), the theory of change and of history, will be dealt with in the next two chapters, 4 and 5, where Plato's descriptive sociology is treated, i.e. his description and explanation of the changing social world in which he lived. Problem (3), the arresting of social change, will be dealt with in chapters 6 to 9, treating Plato's political programme. Problem (1), that of Plato's methodology, has with the help of Aristotle's account of the history of Plato's theory been briefly outlined in the present chapter. To this discussion, I wish to add here a few more remarks.
VI
I use the name methodological essentialism to characterize the view, held by Plato and many of his followers, that it is the task of pure knowledge or 'science' to discover and to describe the true nature of things, i.e. their hidden reality or essence. It was Plato's peculiar belief that the essence of sensible things can be found in other and more real things - in their primogenitors or Forms. Many of the later methodological essentialists, for instance Aristotle, did not altogether follow him in this; but they all agreed with him in determining the task of pure knowledge as the discovery of the hidden nature or Form or essence of things. All these methodological essentialists also agreed with Plato in holding that these essences may be discovered and discerned with the help of intellectual intuition; that every essence has a name proper to it, the name after which the sensible things are called; and that it may be described in words. And a description of the essence of a thing they all called a 'definition'. According to methodological essentialism, there can be three ways of knowing a thing: 'I mean that we can know its unchanging reality or essence; and that we can know the definition of the essence; and that we can know its name. Accordingly, two questions may be formulated about the real thing...: A person may give the name and ask for the definition; or he may give the definition and ask for the name.' As an example of this method, Plato uses the essence of 'even' (as opposed to 'odd'): 'number.. may be a thing capable of division into equal parts. If it is so divisible, number is named "even"; and the definition of the name "even" is "a number divisible into equal parts"... And when we are given the definition and asked about the name, we speak, in both cases, of one and the same essence, whether we call it now "even" or "a number divisible into equal parts".' After this example, Plato proceeds to apply this method to a 'proof' concerning the real nature of the soul, about which we shall hear more later .
Methodological essentialism, i.e. the theory that it is the aim of science to reveal essences and to describe them by means of definitions, can be better understood when contrasted with its opposite, methodological nominalism. Instead of aiming at finding out what a thing really is, and at defining its true nature, methodological nominalism aims at describing how a thing behaves in various circumstances, and especially, whether there are any regularities in its behaviour. In other words, methodological nominalism sees the aim of science in the description of the things and events of our experience, and in an 'explanation' of these events, i.e. their description with the help of universal laws . And it sees in our language, and especially in those of its rules which distinguish properly constructed sentences and inferences from a mere heap of words, the great instrument of scientific description ; words it considers rather as subsidiary tools for this task, and not as names of essences. The methodological nominalist will never think that a question like 'What is energy?' or 'What is movement?' or 'What is an atom?' is an important question for physics; but he will attach importance to a question like: 'How can the energy of the sun be made useful?' or 'How does a planet move?' or 'Under what condition does an atom radiate light?' And to those philosophers who tell him that before having answered the 'what is' question he cannot hope to give exact answers to any of the 'how' questions, he will reply, if at all, by pointing out that he much prefers that modest degree of exactness which he can achieve by his method to the pretentious muddle which they have achieved by theirs.
As indicated by our example, methodological nominalism is nowadays fairly generally accepted in the natural sciences. The problems of the social sciences, on the other hand, are still for the most part treated by essentialist methods. This is, in my opinion, one of the main reasons for their backwardness. But many who have noticed this situation judge it differently. They believe that the difference in method is necessary, and that it reflects an 'essential' difference between the 'natures' of these two fields of research.
The arguments usually offered in support of this view emphasize the importance of change in society, and exhibit other aspects of historicism. The physicist, so run a typical argument, deals with objects like energy or atoms which, though changing, retain a certain degree of constancy. He can describe the changes encountered by these relatively unchanging entities, and does not have to construct or detect essences or Forms or similar unchanging entities in order to obtain something permanent on which he can make definite pronouncements. The social scientist, however, is in a very different position. His whole field of interest is changing. There are no permanent entities in the social realm, where everything is under the sway of historical flux. How, for instance, can we study government? How could we identify it in the diversity of governmental institutions, found in different states at different historical periods, without assuming that they have something essentially in common? We call an institution a government if we think that it is essentially a government, i.e. if it complies with our intuition of what a government is, an intuition which we can formulate in a definition. The same would hold good for other sociological entities, such as 'civilization'. We must grasp their essence, so the historicist argument concludes, and lay it down in the form of definition.
These modern arguments are, I think, very similar to those reported above which, according to Aristotle, led Plato to his doctrine of Forms or Ideas. The only difference is that Plato (who did not accept the atomic theory and knew nothing about energy) applied his doctrine to the realm of physics also, and thus to the world as a whole. We have here an indication of the fact that, in the social sciences, a discussion of Plato's methods may be topical even to-day.
Before proceeding to Plato's sociology and to the use he made of his methodological essentialism in that field, I wish to make it quite clear that I am confining my treatment of Plato to his historicism, and to his 'best state'. I must therefore warn the reader not to expect a representation of the whole of Plato's philosophy, or what may be called a 'fair and just' treatment of Platonism. My attitude towards historicism is one of frank hostility, based upon the conviction that historicism is futile, and worse than that. My survey of the historicist features of Platonism is therefore strongly critical. Although I admire much in Plato's philosophy, far beyond those parts which I believe to be Socratic, I do not take it as my task to add to the countless tributes to his genius. I am, rather, bent on destroying what is in my opinion mischievous in this philosophy. It is the totalitarian tendency of Plato's political philosophy which I shall try to analyse, and to criticize.
'칼포퍼 원전+번역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린사회와 그 적들 제 8장 철학자 왕(王) (0) | 2010.07.31 |
---|---|
열린사회와 그 적들 제 7장 지도력의 원리 (0) | 2010.07.31 |
열린사회와 그 적들 제 4장 변화와 정지 (0) | 2010.07.31 |
열린사회와 그 적들 2장 헤라클리투스 (0) | 2010.07.31 |
열린사회와 그 적들 -서문 및 1장 역사주의와 운명의 신화 (0) | 2010.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