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황교안이 그저 메르스 덕만 본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그는 매우 ‘창조적’으로 청문회에 대응했고, 그럼으로써 청문회의 성격마저 ‘창조적으로’ 바꾸어버렸는데, 그것이 더 중요한 성공 요인이었던 것 같다. 이 점은 지난해 총리 후보로 지명되었다가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안대희 전 대법관(이하 직함 생략)과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
황교안은 삼성 임원 성매매 사건이나 삼성 엑스파일 사건 수사에서 보듯이 형편없는 검사였다. 이에 비해 검사 안대희는 16대 대선자금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를 벌여 팬클럽마저 만들어졌던 ‘국민검사’였다. 법무장관 시절과 대법관 시절을 비교해도 그렇다. 안대희의 판결이 보수적이었다고 하지만 그것과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에 개입하고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을 주도한 황교안의 활동은 차원이 다르다. 안대희는 황교안과 달리 병역 문제도 깨끗했다. 물론 부동산과 세금 문제에 관한 한 둘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 전관예우와 관련해서 대법관 출신인 안대희의 5개월 16억원과 고검장 출신인 황교안의 17개월 17억원 사이에 우열을 가리기도 쉽진 않다. 하지만 사건 수임이 아닌 수상한 자문들 특히 사면 자문을 고려하면, 전관예우인 점은 같아도 황교안 편이 더 질이 나빠 보인다.
종합적으로 보면 안대희가 훨씬 나은 총리후보였다. 그런데도 안대희가 낙마한 것은, 그가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그러함을 청문회에서 입증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직자 후보 청문회를 후보자가 자신이 자격 있는 좋은 사람임을 대중에게 입증하는 자리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제기된 의혹을 해명하려 했고 밝혀진 허물에 대해서는 대중의 용서를 빌고자 했다. 물론 대중은 용서하지 않았고, 그래서 낙마했다. 하지만 그의 경우, 청문회 자체는 고위 공직자 후보가 자신의 자격 있음을 입증하려 애쓰는 자리로서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안대희와 대조해서 말했지만 따지고 보면 황교안 이전까지 청문회는 그럭저럭 이런 성격을 유지했다. 하지만 황교안은 그런 청문회의 성격을 바꿔버렸다. 그는 청문회를 의원-검사들이 공직후보자-피고의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장소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의원-검사에겐 수사권이 없고 공직후보자-피고는 자료를 입맛대로 제출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언론은 어리석게도 황교안의 프레임 조작에 휘말려 야당 의원들의 “한방 없음”을 꾸짖어댔다. 그런 중에 청문회라는 제도 자체가 망가진 것이다. 대한민국엔 제도가 취지와 어긋나 망가진 사례가 허다하지만 황교안으로 인해 그런 사례가 하나 더 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럽고 위안이 되는 것은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청문회는 살아온 생애를 손금처럼 환히 드러내온 세속적 최후심판대였다. 황교안은 그런 청문회를 우롱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 그는 자신의 신앙이 예고한 그대로 그리스도의 최후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아마 그때도 자료 제출을 미루거나 일부를 지운 자료를 제출할지 모르겠으며, 총리 청문회 관련 자료도 대충 제출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마지막 추수의 날 전능하신 그리스도는 알곡과 가라지를 어렵지 않게 가려내시고 또 거리낌 없이 가라지를 풀무 불에 던지실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