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이정우 경북대 교수 퇴임 인터뷰
바른 말은 안하고 오로지 ‘지당하옵니다’
관료에 제동걸 수 있는 ‘폴리페서’ 필요
정치 썩었다고 기피하면 정치에 보복당해
이정우 교수 연구실에는 탁자까지 책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청와대 근무와 미국 하버드대 유학 시절을 빼면 대구 경북대에서만 30년 넘게 한 교수 생활이다. 이 교수는 “8월까지 방을 비워야 하는데 짐 옮기는 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6월11일 마지막 정년퇴임 고별 강연을 앞두고 이 교수를 만났다. 경제학 박사인 이 교수는 평생 불평등을 연구한 학자다. 그의 마지막 강연 주제 역시 ‘한국의 불평등’이었다. 연구만 한 게 아니라 현실에도 뛰어들었다. 노무현 정부 초기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아 일했고, 2012년 대통령 선거 때는 문재인 후보의 정책을 책임지기도 했다.
약자와 공감할 수 있는 의리!
이 교수는 자신을 “의리를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개혁·진보로 불리는 이에게 ‘정의’ 대신 ‘의리’는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저서인 <약자를 위한 경제학> 서문을 보면 “약자를 도와줄 경제학자가 드물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건 주로 약자들인데, 이들은 문제 해결은커녕 하소연조차 어렵다. 이런 불균형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썼다. 그가 말하는 의리는 ‘약자와의 연대’를 뜻하는 것 같다. 불평등에 공감하는 연대 말이다.
오랜 세월 분배 문제를 화두로 삼았는데, 한국 사회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불평등에 관심을 가졌는데 (대학에 온 지) 38년이 지나도 더 (불평등이) 심해진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신분 상승의 기회도 있고 (계층 간) 사회적 이동성도 컸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였다.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보이지 않는다. 불평등이 고착화됐다. 특히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이후 심해졌다. 그때가 분수령이다. IMF와 미국이 한국에 요구한 게 시장만능주의였다. 우리나라의 성장지상주의는 박정희 정권 때 시작됐으니 50년 된 강고한 철학이다. 이것 자체가 불평등에 무관심하다. 여기에 시장만능주의 17년이 가세하니 견제할 방법이 없어졌다. 이 추세를 막을 국가의 역할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불평등을 심화하는) 신자유주의가 유입됐다는 비판도 있다.
일리가 있긴 하다. IMF 사태가 와서 어쩔 수 없이 구제금융을 빌려야 하니까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면이 있다. 일으킨 사람은 저쪽(새누리당)이고 그걸 떠안은 정권은 이쪽인데. 수백 년 만에 진보·개혁 정권이 들어선 때가 불평등이 심해지고 시장만능주의의 압박이 제일 심할 때였다. 진보의 불운인데 무능해서가 아니다. 진보 정권을 무능으로 모는데 인과관계를 보면 너무 심한 비판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다.
이정우 교수가 미국과 IMF 이야기를 하며 영미형 자본주의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말할 때 연구실 위로 군용기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경북대 근처 대구공항에는 미군기지가 있다. 보수 정당이 득세하는 대구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이 교수는 “그나마 대학은 자유분방한 게 있어서 오아시스 같았다”고 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박근혜 정부는 불통과 오만도 문제지만 제일 큰 문제는 무능이다. 어떤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어야 할지 아무런 개념이 없다.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더 심하다. 그때는 바른말을 할 것 같은 사람이 정부 내에 한두 명은 보였는데 지금은 아예 없다. 한 명이라도 있으면 얘기해보라. 오로지 ‘지당하옵니다’ 하는 ‘지당파’들만 눈에 보일 뿐이다.
허송세월 5년, 한국 경제 중병
정책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성장도 안 되고, 분배도 안 되고, 고용도 안 되고, 경제의 세 분야가 다 어렵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권 출범하고) 2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소득 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을 이야기하는데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정권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나서 너무 늦었다. 중요한 일은 이미 했어야 했다. 그러니까 무능하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의 ‘시한폭탄’은 째깍째깍 돌아가는데 5년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 시기를 허송세월하면 회생 불능이지 않을까. (한국 경제는) 이미 중태로 가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 등 한국이 저성장의 늪에 빠진 일본을 따라간다는 얘기도 많다
한국은 일본을 많이 모방했는데 그래서 토건국가가 됐다. 한국과 일본은 세계 최고의 토건국가다. 다른 말로 하면 복지를 멀리했다. 아베노믹스를 보면 복지나 노동이 빈약하다. 양적완화나 재정확대는 일시적이고 한시적인데 그걸로 일본을 살릴 순 없다. 한국은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데 그대로 전철을 밟고 있다.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정치가 중요하다. 국민이나 대학생의 정치 혐오감이 심한데, 그래서는 안 된다. 더 비판하고 바른 길로 가도록 해야 한다. 정치가 썩었다고 기피하면 정치가 보복한다. 보복당하는 것은 시민이다.
불평등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오나, 민주주의의 위기가 불평등을 부르나.
둘 다 맞다. 상호작용이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나오고, 그러면 미국에서 공화당이 득세하고 한국에서는 새누리당이 득세한다. 이들은 다시 불평등 개선에 관심이 없고 악순환에 빠진다. 이것을 탈출해 인간이 인간을 대접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게 유럽형이다. 유럽은 투표율도 높고 잘못하는 정부를 바로 응징한다. 북유럽식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큰 정부, 고세금·고복지로 고생산성을 만들고, (이것이) 고성장으로 이어지면 다시 고세금이라는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민주주의와 불평등의 상관관계
‘정치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 교수는 자신이 ‘폴리페서’(Polifessor·현실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교수를 일컫는 말)라고 떳떳이 말한다. 그는 후배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관료들이 부처 이기주의에 따를 때 객관적으로 볼 사람은 학자”라는 것이다. 그도 청와대를 경험한 뒤 알았다고 했다. “청와대에 있을 때 한 게 없는 거 같지만 막상 나와보니 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막는 것도 중요했다. 내가 청와대를 나간 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됐다. 정부 내에는 액셀레이터도 있어야 하지만 브레이크도 있어야 한다.”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있다가 퇴진했을 당시의 기사를 보면 이를 두고 참여정부의 개혁 후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얼마 전 우연히 그때 기사를 다시 보고 우리 집사람하고 웃었다. 내가 있을 때 실제 그런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정우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한다면서 이정우를 빨리 내보내야 한다고들 했다. 내가 뭐라고 재벌들이 투자를 안 하겠나. 나를 쫓아내기 위한 보수언론의 공작이라고 본다. 보수언론 말고도 쫓아내려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악소문을 퍼뜨렸다.
2003년 참여정부 초기의 인터뷰를 보면 “관료들의 경험과 노하우는 우리가 충분히 존중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정권 교체 뒤 인터뷰에서는 “참여정부에 잘못이 있다면 경제관료들을 프로라고 보고 그 사람들에게 경제를 맡긴 잘못이 크다”고 이야기했다. 관료는 어떤 존재인가.
그 두 가지 양면을 다 가지고 있다. 관료의 오랜 전문성을 따라갈 집단이 없다. 대통령이 질문하면 관료는 바로 대답하거나 다음날 아침까지 보고서가 한두 페이지로 올라온다. 학자들은 그렇게 못한다. 답이 나올 때까지 일주일 정도 걸린다. 어느 쪽이 맞느냐를 보면 학자가 맞을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대통령은 대체로 성격이 급하다. 빨리 답을 하는 관료가 유능하구나 생각한다. 학자는 전문성이 떨어진다. 대신 크고 넓게 보는 방향감각이 있다. 관료의 전문성은 살리되 방향까지 맡겨서는 안 된다.
정치에 참여하라는 것 외에 조언을 더 한다면.
실력을 쌓아야 한다. 한국은 앞 주자가 끊임없이 넘어진다. 한국의 특징이다. 자신이 처음에 중간 정도 간다고 생각하는데 얼마 안 가서 선두주자가 된다. 전문가 집단에서 특히 그렇다. 어느 사이 중요한 자리에 간다. 문제는 평소 공부를 했느냐 안 했느냐다. 평소 공부를 해두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나조차 청와대에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니 후배들에게 평소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교수들 정치 참여 나서야
인터뷰 뒤 이정우 교수는 경북대 종합강의동에서 고별 강의를 했다. 강의 전반부는 ‘한국의 불평등’에 대한 자신의 지론을 정리했다. 불평등을 축소하려면 △노조 활성화와 경영참여 도입 △기업 공개와 종업원지주제 확대 △임금 격차 축소 △불로소득 중과세(종합부동산세) △서민주택 개선 △교육제도 개혁 △사회보장 확충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가 10년 전 청와대에 있었지만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왜 더 커졌을까. 이 교수는 자신의 실적이 “초라하다”고 회고했다. 여전히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받은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헌법재판관 9명 모두 종부세 대상이었다. 위헌 의견을 낸 7명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강의 후반부는 학교 생활을 되짚었다. 이 교수는 원래 자신의 강의엔 잡담이 많다며 웃었다. “1977년에 교수가 되고 나서, 전기 20년은 칠판에 적는 판서 위주였고 후기 20년은 말을 많이 했다. 어느 날 솔밭에 학생들이 보이는데 선배들이 몽둥이를 들고 후배들에게 기합을 주고 있더라. 창문을 열고 호되게 꾸짖어 쫓았다. 그러고 나서 경제학을 열심히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이 교수는 ‘먼저 인간이 되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후배들 ‘빠따’ 때리는 애들에게 수학과 공식, 그래프를 가르치는 것보다 전인교육을 해야겠다 해서 수업 방식을 바꿨다. 그 뒤로 수업 시간에 역사 이야기 등 잡담을 많이 했다.”
‘인간’이 된 학생이 내 수제자
그가 말한 ‘의리’와 ‘인간이 되라’는 것은 경제학 수업 시간에 분명 낯선 이야기다. 경제학 수업은 보통 사람을 포함한 상품의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점을 그리고, 최소 비용으로 만드는 최대의 효과 등을 공부한다. 이 교수는 강연 말미에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학생들을 향해 들려줬다. 강연 전 이 교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가 누구냐’고 물었는데, “얘기하면 섭섭해할 사람이 많아서, 한 명을 기쁘게 하면 수백 명을 슬프게 하니까”라고 눙쳤던 뒤였다.
“15년 전쯤 사은회를 할 때 학생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일어나서 어디 취직했다고 이야기하고 소감을 한마디씩 말했다. 그중에 어떤 학생이 ‘나는 1학년 때 이정우 교수에게 경제학 원론을 들었다. 교수님이 노상 인간이 먼저 되라고 하기에 경제학보다 다른 책을 많이 읽었다. 그래서 아직 취직도 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 학생을 내 수제자로 삼으려 한다.”
대구=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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