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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국회법 폐기 결정에…학자들 “헌법정신 외면”/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28. 05:32

정치정치일반

새누리 국회법 폐기 결정에…학자들 “헌법정신 외면”

등록 :2015-06-26 20:07수정 :2015-06-26 23:38

 

헌법상 재의 상정은 당연
여 불참땐 정족수 미달해
본회의 자체 열수 없게돼

국회 스스로 권한 포기 비판
“재의결 부치는게 국회 책무”
“국회가 대통령의 시녀 자임”

국회법 개정안 재의에 대한 학자들 견해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재의요구)에 따라 국회로 되돌아온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하지 않고 자동폐기 시키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많은 헌법학자와 정치학자들은 ‘헌법 정신을 외면한 처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이라는 헌법상의 권리를 행사했다면, 국회도 당연히 재의 표결이란 헌법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6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 “개인적으로 재의 표결(에 참여하는 것)이 헌법이 정한 원칙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어제 의총에서 (자동폐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국회의장이 본회의를 소집하더라도 표결에 참여 않는 것으로 결론 났다”고 말했다.

헌법 상에는 대통령이 법률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하면 국회는 이를 재의에 부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재적 의원 과반이 출석해야 하기 때문에 과반 의석을 지닌 새누리당이 불참하면, 의사정족수 미달로 본회의 자체를 열수가 없게된다. 이렇게 되면 국회법 개정안은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자동 폐기된다.

헌법학자와 정치학자들은 재의 표결을 부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53조 4항에는 ‘재의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회는 재의에 부치고’라고 그 요구를 이행하도록 돼 있다”며 “재의결에 부치지 않고 임기만료 자동폐기 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조처”라고 지적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는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을 행사해 재의를 요구한 것이라면 국회는 국회대로 헌법에 명시된 권한과 절차에 따라 재의에 붙이면 된다”며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어떠한 논의나 입장표명 없이 중재안까지 마련한 법안을 폐기시키는 것은 공당으로서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이 국회의 권한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그 취지와 이유가 적합한 지 재의과정에서 국민들의 여론을 모아 검토해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211명이라는 의원들의 압도적 찬성표로 통과시킨 법을 ‘대통령이 거부하니 자동 폐기시키겠다’는 것은 의회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하고, 의회주의에도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비교정치학)는 “국회법 개정안 재의를 포기하는 것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위상과 자존심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국회가 대통령의 시녀를 자임하고 거수기 역할만 하겠다는 처사다”라고 말했다.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 절차에 부치는 것이 ‘3권 분립을 제대로 구현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택시법’, ‘사면법’, ‘지방자치법’ 등 주로 어느 한쪽이 양보하면 되는 정책과 관련한 법안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헌법적 권한을 다투는 문제이기 때문에 재의에 부쳐 국민들과 그들을 대표하는 의원들의 뜻을 모으면 ‘제왕적 대통령제’란 비판이 제기되는 통치구조의 틀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여야를 떠나 입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행정부와의 관계를 조정하려면 거부권을 압도하는 국회 재의결이 필요하다”며 “국회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국회와 정부의 관계가 결정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