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관찰하기

중국의 훈계를 듣는 한국의 국회의원/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9. 12. 14:56
 

사설.칼럼칼럼

[편집국에서] 한국 국회의원은 왜 중국의 훈계를 들었나 / 박민희

등록 :2015-09-09 18:26수정 :2015-09-09 20:09

 

지난달 18일 중국 베이징. 한-중 청년지도자 포럼에 참석한 한국 대표들과 차오웨이저우 전국인민대표대회 외사위 부주임이 마주 앉았다. 먼저 한국의 한 국회의원이 질문을 던졌다. “한국과 중국의 번영에 북한이 최대 위협 요소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차오 부주임의 훈계에 가까운 답변이 이어졌다. “가장 아쉬운 것은 남북한 형제지간에 서로를 위협으로 생각하는 현실이다. 국회의원이라면 발언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한국의 국력이 북한의 몇십배인데 북한을 왜 위협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남북한 형제관계에는 상호 신뢰가 부족하다. 상호간에 선의, 동심(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마음), 인내심이 필요하다.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원하는 공동 목표를 가지고 문제가 있으면 대화로 풀어야 한다. 형제가 원수가 되면 남끼리 원수가 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대화를 듣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남북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중국이 북한을 비난하고 우리 편에 서주기를 바라온 한국 정치인들의 태도가 중국의 이런 훈계를 불러온 것 아닌가. 남북관계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풀어가지 못하고 중국 또는 미국에 기대려는 태도는 강대국의 영향력만 키울 뿐이다.

9월3일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성루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선 장면은 미국 일변도 외교를 넘어 한국 외교의 독자적 공간을 여는 역사적 순간일 수도 있다. 물론 역사적 평가는 박 대통령이 이를 기초로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 현안들을 내실있게 풀어 가고, 독자적 외교 공간을 넓혀 가면서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에 따라 내려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중국과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며 뜬금없는 ‘통일외교론’을 들고나온 것은 걱정스런 신호다. 청와대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한반도의 조속한 평화통일에 대한 중국의 협력 약속을 받아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최종적으로 자주적·평화적 통일을 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은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의 일관된 원칙이다. 중국으로선 현상유지가 가장 좋지만 미국의 개입 없이 통일을 한다면 막지는 않겠다는 판단일 것이다. 이 경우에도 중국은 통일 이후 주한미군 주둔과 북핵 처리에 대해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답을 받아낸 뒤에야 동의할 것이다.

현재의 북-중 관계가 북핵 문제 등으로 차가워진 것이 사실이지만, 중국이 ‘북한 길들이기’를 넘어 대북정책의 틀을 바꾸려 한다는 신호는 없다. 북-중 관계는 문화대혁명 시기, 한-중 수교 직후의 최악의 시절을 거치고도 전략적 필요 때문에 유지돼 왔다.

박 대통령이 방중 외교의 진정한 결실을 맺으려면 근거 없는 통일외교나 대박론에 매달리지 말고 남북한의 경제, 미래, 삶에 도움이 되는 조처들을 착실히 실행해 나가야 한다.

박민희 국제부장
박민희 국제부장
지난달 20일 찾아간 중국 칭다오의 훙링그룹이란 의류회사는 온라인으로 고객의 주문을 받아 ‘세상에 한벌밖에 없는 옷’을 만들고 있었다. 중국도 대량생산 저가 의류로는 경쟁력을 갖기 힘들게 되자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고급 맞춤 의류를 제값에 팔고 재고도 남기지 않는 새로운 실험에 나선 것이다. 이런 공정에는 수작업이 많이 필요한데 이 회사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월 3500위안(약 65만원) 정도다. 함께 이곳을 둘러본 한국 기업인은 “우리가 개성공단에서 이런 시도를 한다면 훨씬 더 좋은 성과가 나올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개성공단의 월 최저임금은 73.87달러(약 8만9천원)다. 우선 개성공단에서 이런 남북 경제협력을 확대해 갈 수 있다면 진정한 통일준비이자 창조경제 아닌가.

박민희 국제부장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