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관찰하기

남북관계의 착각과 착시/ 김연철/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9. 14. 08:12

사설.칼럼칼럼

[세상 읽기] 남북관계, 착각과 착시 / 김연철

등록 :2015-09-13 18:25

 

 

남북관계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면 지난 3년을 돌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마치 연속극의 재방송처럼 반복될 뿐이다. 주연은 북한이고 조연은 남한이다. 위기를 고조시킨 것도 북한이고 대화를 먼저 제안하고 합의를 주도한 것도 북한이다. 2013년 3월 전쟁 위기가 조성되고 개성공단의 문을 닫았다가 겨우 수습된 6개월의 과정도, 2014년 2월의 고위급 회담도 최근의 남북 합의도 아주 많이 닮았다.

북한은 위기에서 대화국면으로 전환할 때 언제나 남쪽이 거부할 수 없는 카드를 내민다. 바로 이산가족 상봉이다. 2014년 2월과 2015년 8월을 비교해보면 전망이 보인다. 북한의 입장에서 이산가족 상봉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큰 그림이 없으니 회담 전략이 없고, 북한의 무릎을 꿇리는 것이 ‘원칙’이라고 주장하나, 무릎을 꿇려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잃을 것이 많은 우리가 약자의 무기인 벼랑 끝 전술을 마다하지 않는 현실도 낯설다.

대화국면은 북한이 원하는 만큼만 지속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에서, 혹은 10월 미국에 가서 흡수통일 발언을 계속해도 북한은 참을 필요가 있으면 참는다. 정세를 관리할 필요성이 있고, 현재 그들에게는 남한 카드 말고는 없다. 미국 카드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완전히 끝났고, 중국도 일본 카드도 소강상태다.

물론 정세는 살아있는 생물이고, 언제든지 변화한다. 잃을 것이 없는 북한은 손쉽게 벼랑 끝 전술로 돌아설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대화국면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기에 전술적으로 얼마든지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 작전통제권이 없는 한국군의 군사적 대응이 제한적이고 미국은 전쟁을 원하지 않기에, 북한은 위기가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잘 안다.

교착-위기-대화-불신-교착-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남북 합의는 북한이 8·24, 남한이 8·25 합의라고 날짜를 달리 말할 정도로 합의 수준이 미흡하고 이행 전망이 불투명하다. 남북관계의 역사에서 날짜가 다른 합의문은 처음 봤다. 이산가족이 만나기 위해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북한이 아니라 우리가 주연이 될 때,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전망은 비관적이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가 아니라 국내정치로 접근하고, 회담 운영 체계의 문제 때문이다. 유순한 언론과 비루한 야당 때문에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1951년 7월 휴전협상이 처음 열린 적진인 개성에서도 기자들이 취재를 했다. 1971년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남북대화를 할 때도 언론이 함께했다. 그런데 광복 70년을 맞이한 오늘날, 회담이 열리는 곳에 언론이 접근조차 못하는 현실은 부끄럽다. 며칠 동안 밤을 새워도 회담 전개 과정을 설명하지 않는 정부도 처음 봤다. 언론은 정부가 어떻게 회담 전략을 세우고 어떻게 회담을 운영했는지, 회담 전후의 대차대조표를 알릴 의무가 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야당은 어떤가? 대북정책에서 초당적 협력이란 올바른 방향에 대한 합의를 추구하는 것이지, 쇼를 하는 데 들러리를 서라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언론을 통제하고 언론은 착시를 유도하는데, 야당은 그렇게 만들어진 여론에 올라타서 ‘중도’니 ‘보수’니 착각에 빠져 있다. 여론은 점점 더 타락하고, 야당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라간다. 선거가 다가오는데, 정부와 여당이 이 꽃놀이패를 마다하겠는가? 착시 너머의 세계는 각자 제 갈 길을 가는데, 비루함을 배경으로 착각의 모래성이 쌓여간다. 한반도는 길을 잃었고 이렇게 세월은 흘러간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