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제 10장 조국의 독립을 논함
앞의 제 8장과 제 9장에 있어서, 서양 여러 나라와 일본의 문명을 논하여, 그 전체의 형편을 살피고 이것을 비교하면, 일본의 문명은 서양의 문명보다도 뒤진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명에 전후가 있으면 앞선 자가 뒤진 바를 억제하고, 뒤진 자는 앞선 자에게 억제당하는 이유가 있다. 옛날 쇄국의 시절에 있어서는, 우리 국민은 본디 서양 여러 나라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라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미 그 나라들이 있음을 알고, 또 그 문명의 상황을 알고, 그 상황을 우리에게 비교하여 전후의 차이가 있음을 알고, 우리 문명으로써 저들에게 미치지 못함을 알고, 문명적으로 뒤진 자는 앞선 자에게 억제당하는 이유까지도 알 때는, 그 국민의 마음에 우선적으로 느끼는 바의 것은, 자국의 독립이 어떤지의 한 가지 일에 있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문명이라는 것이야, 극도로 광대하여, 대개 인류의 정신이 도달하는 바는 모두 그 영역에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외국에 대하여 자국의 독립을 도모하는 것과 같은 것은, 본디 문명론의 한 가운데 있어서 사소한 한 가지 조항에 불과해도, 본서 제 2장에 언급한 것과 같이, 문명의 진보에는 단계마다 정도가 있는 것이어서, 그 진보의 정도에 따라서 상응하는 조치가 없을 수 없다. 지금 우리 국민의 마음에 자국의 독립이 어떤지를 느껴 이것을 우려하는 것은, 곧 우리나라의 문명의 정도가 지금 바로 자국의 독립에 관하여 심려하는 지위에 있어, 그 정신이 도달하는 바, 흡사 이 한 국면에 한정되어, 아직 다른 것을 되돌아 볼 여유가 없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문명론의 마지막 장에 있어서 자국의 독립이라는 한 가지 조항을 거론하는 것도, 생각건대 국민의 일반적인 지향에 따라, 그 정신이 틀림없이 도달하는 바에 관하여 논의를 세운 것이다. 진력하여 문명의 심오함을 펼쳐서 그 상세함을 연구함과 같은 것은, 이것을 훗날 후배 학자에게 맡길 따름.
옛날 봉건시대에서는, 인간의 교류에 군주와 신하 및 주인과 종의 관계라고 하는 것도 있어서 세상의 중심을 지배하고, 막부와 여러 번(藩)의 무사가문이 각각 그 시대의 주군에게 진력함은 물론, 멀리 선조의 유래를 잊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주군의 이익을 생각하고, 그 밥을 먹는 자는 그 섬김에 죽는다고 하여, 자기가 한 생명까지도 완전히 주군가에 속하는 것으로서, 감히 스스로 이것을 자유롭게 하지 않고, 주군은 국가의 부모라고 칭하고, 신하를 아들과 같이 사랑하여, 은혜와 의리(은의[恩義])라는 두 글자로써 위와 아래 사이를 원만하고 견고하게 다스려, 그 관계의 아름다운 것 혹은 선망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다. 혹은 진실로 충신과 의사(義士)가 아니라도, 일반적으로 의(義)를 존중하는 풍속이므로, 그 풍속에 따라 스스로 몸의 품행을 고상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비유건대 무사족속 간에도 그 자제를 훈계함에는, 반드시 신분 또는 가문 등의 말을 사용하여, 사무라이 신분으로서 비열함은 안 된다고 하고, 혹은 선조 이래의 가문에 대하여 라고 하고, 혹은 주군님에게 면목이 없다고 하여, 신분 가문 주군님은 정말로 무사족속이 의지할 수 있는 대도(大道)여서, 일생동안의 품행을 유지하는 벼리와 같다. 서양의 말에 소위「모럴・타이 <moral・tie>: 도덕적 결속」라는 것이다.
이 풍속은 다만 무사족속과 국가군주의 사이에 시행될 뿐만 아니고, 일반적으로 일본 전국의 민간에 스며들어, 상인의 동류에게서도 시행되고, 농부의 동료에게서도 시행되고, 에타(穢多: 천민)의 동료에게 있어서도, 히닌(非人: 천민의 일종)에게서도, 대체로 인간의 교류가 있으면 지극히 큰 것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는 바가 없다. 비유건대 상인과 농부에 종가와 분가의 의리가 있고, 에타(穢多: 천민)과 히닌(非人: 천민의 일종)에서 오야붕(親分: 부모 같은 사람)과 고붕(子分: 자식 같은 사람)의 차별이 있어, 그 의리가 견고함은 여전히 저 군주와 신하와 같이 그러하다.
이 풍속을 일컬어 혹은 군주와 신하의 의리라고 하고, 혹은 선조의 유래라고 하고, 혹은 상하의 명분이라고 하고, 혹은 본말(本末)의 차별이라고 하여, 그 명칭은 어느 것에도, 어쨌든 일본의 역사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교류를 지배하여, 오늘날까지의 문명을 달성하는 것은, 이 풍속과 관습의 힘에 있지 않은 것이 없다.
근래에 외국인과 교역을 맺는 데 이르러, 우리나라의 문명과 저 나라의 문명을 비교함에, 그 외형에 나타나는 기술과 공예가 저들에 미치지 못함은 본디 논할 게 못되고, 사람의 마음 내부에 이르기까지도 그 취향을 달리하였다. 서양 여러 나라의 국민은 지혜의 힘이 활발하여, 스스로 잘 그 신체를 통제하고, 그 인간의 교류는 정돈되어 사물의 순서를 마련하여, 크게는 한 나라의 경제에서 작게는 한 가족 한 몸의 처신에 이르기까지, 도저히 지금의 형편에서는 우리 일본인이 계획하여 도달하는 바가 아닌 것이다. 대체적으로 말하면, 서양 여러 나라는 문명적이고 우리 일본은 아직 문명에 이르지 못한 것, 오늘날에 이르러서 비로소 분명하여,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인가, 세상의 지식인, 우리 일본이 문명화되지 못한 근거의 원인을 구하여, 우선 첫째로 이것을 우리 고풍과 습관의 부적당함에 귀속시키고, 즉 이 옛 습관을 일소하고자 하여 오직 그 개혁에 착수하여, 폐번치현(廃藩置県: 번을 폐지하고 현을 세움)을 시작으로 하여 모조리 옛 것을 폐지하여, 다이묘(大名)는 귀족이 되고, 사무라이는 관속(貫属: 지방자치의 관할에 속함)이 되어, 언로를 열어 인물을 등용하는 시절이므로, 옛날 5000석의 대신(大臣)도 병졸이 되고, 하루 5홉의 현미를 급여를 받던 아시가루(足軽: 하급무사)도 현령(県令)이 되고, 여러 세대에 걸쳐 환전을 생업으로 하던 큰 상인이 집달리가 되고, 무일푼인 도박꾼은 관청의 납품업자가 되고, 절은 신사(神社)가 되고, 승려는 신관(神官)이 되고, 부귀와 복록(福禄)은 다만 사람마다의 노력에 따르고, 소위 공적과 명성은 자유자재, 마음을 다잡아 취할 수 있는 시절이 되어, 역사 이래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스며든 은혜와 의리와 유서(由緒)와 명분과 차별 등의 생각은 점차 사라지고, 노력이라는 한 편에 중심을 기울여, 무리하게 잘 이것을 표현하면 인심이 활발하여, 지금의 세속에서 말하는 바의 문명이 빠르게 진보하는 형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공적과 명성이 자유자재이고 문명이 빠른 형편이어서, 지식인은 주문한 대로의 목표를 달성하고, 이 문명의 빠름으로써 정말로 빠름이 되어 달리 구하는 바가 없느냐고 질문하는 데, 결코 그렇지 않다. 지식인은 지금의 문명으로써 스스로 만족하는 자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사물의 상황에서 우리 국민의 품행에 영향을 미치는 바의 내용을 보는 데, 국민은 흡사 조상 전래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아직 대신할 짐을 지지 않고서 휴식하는 자와 같기 때문이다. 그 형편은 매우 명백하다. 폐번(廃藩) 후에는 다이묘(大名)와 번(藩)에 속하는 무사 사이에 이미 군신의 의리가 없다. 굳건히 은밀하게 이 의리를 힘쓰고자하면, 혹시 우회적이라고 말을 듣는 것도 변명이 있을 수 없다. 아시가루(足軽: 하급무사)가 부대의 우두머리가 되어 전년의 우두머리를 지휘하면, 그 지시에는 거역할 수 없다. 위와 아래, 처지를 달리하고, 법도가 엄격한 것 같아도, 우두머리도 다만 돈 정도 내면 병졸의 소임을 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시가루(足軽: 하급무사)도 득의양양하여 부대의 우두머리일 수가 있고, 우두머리도 역시 득의양양하여 한가하게 지낼 수 있다. 도박꾼이 관청의 납품업자가 되어 뽐내면, 집달리가 된 상인은 시대의 추세를 나무라면서 자신을 나무라지 않고, 역시 편안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신관(神官)이 때를 얻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면, 승려도 공공연하게 아내를 거느리고 역시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지금의 시절은 위와 아래 귀천 모두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어서, 가난이라는 한 가지 일을 제거하는 외에는 전혀 심신을 괴롭히는 것이 없다. 전사하는 것도 손해고, 복수도 허망하고, 전쟁에 나가면 위험하고, 할복을 하면 아프다. 학문도 벼슬도 다만 돈을 위해서일 뿐, 돈 정도만 있으면 어떤 일도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금전이 향하는 곳에는 천하에 적이 없다고 하여, 사람의 품행은 돈으로써 값을 매기는 것과 같다. 이런 상황으로써 옛날의 답답한 시대와 비교하면, 어찌 이것을 마음이 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므로 말하는데, 지금의 국민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정말로 휴식하는 자이다.
그렇다할지라도, 휴식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시대의 이야기이다. 일을 마치거나, 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휴식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것이라도,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을 보면 결코 편안한 날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일을 옛날과 비교하여 더욱 곤란한 시절이다. 세상의 지식인도 여기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틀림없이 휴식할 수 없는 추세를 알고, 노력하여 인심을 소용이 되도록 인도하고자 하여, 학자는 학교를 세워 사람을 가르치고, 번역가는 원서를 번역하여 세상에 널리 퍼뜨리고, 정부도 백성도 오직 학문과 기예에 힘을 다하여 이것을 시험하는 것도, 백성의 품행에 있어서는 아직 뚜렷한 효능을 보지 못한다. 학문과 기예에 몸을 맡기는 자의 취향을 보는 데, 그 과업이 분주하여도, 한 조각의 본심에 있어서 사유재산까지 생명까지 던질 수 있는 장소로 정한 중요한 각오에 이르러서는 혹은 잊은 것 같아서 하여튼 마음 쓰는 것 없이, 편안한 세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주목하여, 현대인의 소행을 판단하여 경박함이라 하여, 그 죄를 망고(忘古: 옛날을 잊음)라는 두 글자에 귀속시켜, 더욱 대의명분을 확장하여, 그로써 옛날로 복귀하고자 하여, 곧 그 가르침을 익혀, 신화시대의 옛날에서 증거를 찾아 국체론(国体論)이라는 것을 부르짖어, 이 논의로써 인심을 유지하는 것을 계획하였다. 이른바 황학(皇学: 일본학)이라는 것, 이것이다. 이 가르침도 역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왕정국가에 있어서 군주를 받들어 존경하고, 행정권을 이 군주에게 부여하는 것은, 본래 사리에서 당연하여, 정치상에 있어서도 최대한 긴요한 것이므로, 천황을 존경하라는 주장을 결코 반박할 수 없다할지라도, 저 황학자(皇学者: 일본학 연구자) 부류는 더욱 한 걸음을 나아가, 군주를 받들어 존경함에, 그 받들어 존경하는 이유를 정치상의 득실에서 구하지 않고, 백성이 지닌 회고의 충정(衷情)에 귀속시켜, 그 잘못됨이 심하기에 이르러서는, 군주로 하여금 명분뿐인 지위를 지니게 하는 것도 꺼리지 않고, 실제를 망각하고 허식을 기뻐하는 폐단이 없을 수 없다. 대체로 인정이 지향하는 바는 한 때의 행동으로써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현대인의 충정에 의지하여 군주를 받들어 존경하라는 가르침을 성취하려는 것에는, 우선 그 인정을 변화시켜, 옛것을 잊고 새로움을 따르도록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백성은 수백 년간, 천황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것을 구전(口傳)으로 전할 따름. 유신이라는 일거로써 정치적 체제가 수백 년의 옛날로 돌아갔다고 칭할지라도, 왕실과 국민 사이에 밀접한 교분이 있은 것이 아니고, 그 교류는 정치상의 관계뿐이어서, 교분의 얕고 깊음을 논할 때는, 지금의 국민은 가마쿠라(鎌倉) 정권 이래 봉건 군주에게 양육되었던 것이므로, 왕실에 대해서보다도 봉건적 옛 주군에 대해서 친밀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 하늘의 아래, 다만 하나의 주군의 대의(大義)라 하여, 그 주장을 세울 수 있다할지라도, 실제적인 사실에 관하여 이것을 보면 반드시 실행되지 않는 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에 추세에서는 백성도 옛날을 잊고 봉건적 주군을 생각하는 정은 차츰 사라지는 것 같다할지라도, 새롭게 왕실을 그리워하는 지극한 정을 조성하여, 이것으로써 정말 백성처럼 되겠다고 함은, 현대의 인심과 문명의 형편에 있어서 대단히 어려운 것이어서, 거의 능히 할 수 없는 일로 돌아가야 한다. 혹은 사람들의 주장에, 전제정치로의 혁신은 백성이 지닌 회고의 정에 기초한 것이어서, 사람들의 정서가 막부를 싫어하고 왕실을 그리하는 것이라고 하는 자가 있어도, 결국 사실을 살피지 않은 주장일 뿐. 만약 과연 이 주장과 같이, 사람들의 정서가 진실로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이라면, 수백 년 이래 민심에 스며든 막부의 정치를 그리워함은 당연하다. 대체로 현대의 무사족 외의 자로서 선조의 유래 등을 부르짖음은, 대개는 가마쿠라(鎌倉) 이후의 세태에 관계가 있는 것이다. 막부의 정치의 유래도 역시 오래되어 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혹은 또 사람들의 정서는 옛날을 잊고 새로운 것을 그리는 것이라면, 왕정이 시행됨은 막부 정치 이전의 일이어서 가장 오래된 것이므로, 왕정과 막부의 정치 두 가지 형태에 관해서 어느 것을 잊을 것인지, 반드시 최고로 낡은 것을 잊는 것이 이치이다. 혹은 또 인심이 왕실을 향함은 시대의 새로움과 낡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의명분이 그렇게 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어도, 대의명분이라는 것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올바른 도리이리라.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이치는 인간이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가마쿠라(鎌倉) 막부 이래 백성이 왕실을 알지 못한 것이 거의 700년에 가깝다. 이 700년의 세월은 어떤 시간인가? 이 주장에 따르면 700년간은 백성 모두가 방향을 잘못 알고, 대의명분도 완전히 사라져 소진된 야만과 암흑의 세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디 사람에 관한 일의 편안함과 그렇지 못함은 1년 또는 수년의 과정을 보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할지라도, 적어도 인심을 갖추고 스스로 방향을 오판한 것으로 알면서, 어찌 700년이나 길게 잘 견딜 수 있는가? 게다가 실제에 관해서도 역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실제로 이 700년간은 결코 혼란만의 세상의 아니다. 현대 문명의 근원을 찾으면, 10의 7, 8은 이 년간에 성장하여 지금에 전해진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형편으로써 생각하면, 왕정으로의 유신한 원인은 백성이 막부를 싫어하고 왕실을 그리워함에 의해서가 아니고, 새로운 것을 잊고 옛 것을 생각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백 천년의 사이, 망각한 대의명분을 갑자기 기억했기 때문이 아니고, 다만 당시 막부의 정치를 개혁하고자 하는 인심에 의하여 이루어지 것이다. 유신하는 과업이 이미 이루어져, 천하의 정권, 왕실에 귀속되면, 일본국민으로 하여금 이것을 받들어 존중함은 본디 의무적인 직분이어도, 백성과 왕실 사이에 있는 것은 다만 정치상의 관계뿐. 그 사귀는 정에 이르러서는 결코 급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굳이 이것을 만들고자 하면 그 목적까지는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세간에 가짜 군자의 부류가 생겨 더욱 사람들의 정서를 경박함으로 인도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말하는 바, 황학자(皇学者: 일본학 학자) 부류의 국체론(国体論)은, 지금의 인심을 유지하여 그 품행을 고상한 지경까지 인도하는 도구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또 일종의 학자는, 지금의 인심이 경박함을 우려해, 이것을 구원함에 국체론(国体論)으로써 하여도 공적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을 알고, 곧 사람의 영혼에 의뢰하여, 기독교를 실시하여 사람 마음의 잘못을 규명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천명에 따르는 지위를 부여하여 서민의 방향을 통일하여, 인류가 당연히 따를 수 있는 큰 목적을 결정하려고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도 결코 경솔한 마음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 주장의 뿌리를 찾음에, 학자들이 생각건대, 지금의 국민을 보면 100인이면 100인, 모두 그 지향하는 바를 달리하여, 정치적인 일에 관하여 서민에게 일정한 주장이 없음은 물론, 종교에 이르러도 신도(神道)인지 불교인지 정할 수 없고, 심지어는 무종교라고 지칭할 수 있는 자도 있어, 인류에 있어서 최대로 중요한 영혼이 머무르는 곳까지도 모르고, 어찌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볼 여유가 있으랴, 하늘의 길을 알지 못하고, 인륜을 알지 못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없고, 남편과 아내가 없고, 흡사 이것이 현재의 지옥이므로, 적어도 세상을 우려하는 자는 이 상황을 구원하지 않을 수 없고, 또 한편에서 생각하면, 종교로써 한번 사람들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면, 서민이 머무르는 곳, 처음에 여기에 정하여, 널리 이것을 정치적으로 실시하면, 역시 그로써 한 국가의 독립의 터전도 될 수 있다는 취지이다. 결코 이것을 경솔한 거짓말이라고 할 수 없다. 실제로 이 길로써 현재의 무사와 백성을 교화하여, 그 마음의 잘못을 규명하여 덕행의 문으로 들어가도록 하여, 가령 하늘의 길의 극도에 도달하지 않아도,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부인의 인륜을 분명히 하여 효도와 절개의 마음을 권하여, 자제교육이라는 의무임을 알게 하여, 축첩과 황음(荒淫)이 나쁜 일임을 분간하게 하는 등과 같은 것은, 세상의 문명에 관련하여 그 효과가 최고로 큰 것이므로, 본디 흠잡을 것이 없다할지라도, 바로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형편에 관하여 득실을 논할 때는, 나는 전혀 그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왜인가하면 저 학자의 억측에, 기독교를 확대하여 이것을 정치적으로 미치게 하여, 그로써 한 국가의 독립의 터전을 세우고자 하는 주장에 이르러, 조금 소견을 달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기독교는 영원무궁(永遠無窮)을 목적으로 하여, 행복과 안전도 영원을 기약하고, 불행과 질병도 영원을 약속하여, 현재의 죄보다도 미래의 죄를 두려워하여, 이번 생애의 심판보다도 다음 생애의 심판을 중요시하고, 결국 지금의 이 세상과 미래의 저 세상을 구분하여 논의를 세워, 그 주장하는 바, 항상 매우 커서, 다른 학문과는 완전히 내용을 달리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고 세상 안에서 모두 형제라고 하면, 이 지구는 흡사 한 가족과 같고, 지구상의 백성은 평등하고 형제와 같아서, 그 서로 사귀는 정에 두터움과 얇음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온 세상이 이미 한 가족과 같이 되면, 또 어떻게 가족 안에 경계선을 만드는 것에 이르겠는가? 그런데 지금 이 지구를 몇 개로 나누어, 다양한 국경을 세워, 국민이 각각 그 경계선 안에 무리를 결성하여 한 나라의 국민으로 칭하여, 그 무리의 편리만을 궁리하기 때문이라고 정부를 세워, 심지어는 흉기를 휴대하고 국경 밖의 형제를 죽이고, 국경 밖의 땅을 빼앗고, 상업의 이익을 다투는 것과 같은 것은, 결코 이것을 종교의 취지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악업을 보면 영원함과 다음 생애의 심판은 잠시 중단하고, 현재 이번 생애의 심판도 아직 부주의하다고 할 수 있다. 예수는 죄인이다.
그렇다할지라도, 현재 세상 한 가운데의 상황을 보면 장소로 하여 건국함이 없는 것이 없고, 건국으로 하여 정부가 없는 것이 없다. 정부는 충분히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은 충분히 상업에 종사하고, 정부는 전쟁을 잘하고, 국민은 이익을 얻기에, 이것을 부국강병이라고 칭하여, 그 국민이 스스로 자부함은 물론, 타국인도 이것을 부러워하여, 그 부국강병을 본받고자 하여 노력함은 왜인가? 종교의 교설에는 등을 돌린다할지라도, 세계적 추세에 있어서 부득이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문명에서 세계 각국 상호간의 관례를 물으면, 그 국민, 사적인 사귐에는, 혹은 만 리 바깥의 사람을 친구로 하여 일견 아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할지라도, 나라와 나라의 교류에 이르러서는 다만 두 가지 조항이 있을 뿐. 이르건대, 평시에는 물건을 매매하여 서로 이익을 다투고, 사태가 발생하면 무기로써 서로 죽이는 것이다. 말을 바꾸어 말하면, 지금의 세계는 상업과 전쟁의 세상 한 가운데라고 이름 짓는 것도 가능하다. 본디 전쟁에도 종류가 많아서, 혹은 세상에서 전쟁을 중지하기 위하여 전쟁하는 전쟁도 있으리라. 무역도 본디 천지간의 있음과 없음을 서로 통하게 하는 것이어서 최고로 공정한 일이므로, 두 가지 양상이라도 그 소질에 있어서 일률적으로 이것을 나쁜 일이라고만 할 수 없을지라도, 지금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각국의 전쟁과 무역의 실정을 찾으면, 종교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심오함으로부터 유래하여 온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위와 같이 종교라는 한 편에서 조명하여 일을 판단하여, 다만 무역과 전쟁을 말하면 그 일이 심히 거칠어서 천시할 수 있는 것 같이 보여도, 지금의 사물의 형편에 따라서 이것을 보면 또 크게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왜인가하면 무역은 이익을 다투는 일이라고할지라도, 완력만으로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지혜에 관련된 일이기에, 지금의 국민을 향해서는 이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국외로 무역하고자 함에 국내에서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무역이 번성함은 국내 국민의 식견을 열어, 학문과 기예를 번창하게 실시하여 그 여광(余光)을 외부에 발산하는 것이므로, 국가 번영의 징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도 역시 그러하다. 단지 이것을 살인의 기술이라고 하면 혐오할 수 있는 것과 같아도, 지금 곧바로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가령 지금의 불충분한 문명의 상황에서도, 불충분은 불충분한 채로, 혹시 조약의 조항이 있고, 혹은 담판의 흥정이 있고, 국제법도 있고, 학자들의 논의도 있어서, 쉽게 그 분별없는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또 혹시 다만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국가의 영욕 때문에, 도리 때문이라고 하여 일으키는 전쟁도 없지 않다. 그러므로 살인과 이익 다툼의 명분은 종교의 취지에 대하여 더럽고, 종교의 적이라는 명칭을 면하기 어렵다할지라도, 현재 문명의 상황에 있어서는 부득이한 추세여서, 전쟁은 독립국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방법이며, 무역은 국가의 빛을 발산하는 징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국의 권리를 신장시키고, 자국민을 부유하게 만들고, 자국의 지혜와 덕행을 닦고, 자국의 명예를 빛내고자 하여 노력하는 자를, 보국민(報国民)이라 칭하고, 그 마음을 칭하여 보국심(報国心)이라고 한다. 그 안목은 다른 나라에 대하여 자기와 타인의 구별을 만들어, 가령 타인을 해치려는 뜻이 없어도, 스스로 두텁게 하고 타인을 박하게 하여, 조국은 조국이어서 스스로 독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국심(報国心)은 한 개인의 몸에 사사로움에는 아니라도, 한 국가에 사사로운 마음이다. 곧 이 지구를 몇 개로 구분하여 그 구역 안에 당파를 결성하여, 그 당파의 편리를 도모하여 스스로 사사로운 편파적인 마음이다. 그러므로 보국심(報国心)과 편파심은 이름을 달리하되 사실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1단계에 이르러,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과 사해형제(四海兄弟)의 대의(大義)와 보국진충(報国尽忠) 건국독립(建国独立)의 대의(大義)는, 서로 어긋나고 양립할 수 없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를 확대하여 정치상에 미치게 하고, 그로써 일개 국가의 독립의 터전을 세우고자 하는 주장은, 생각의 사리를 그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는 일신의 사사로운 덕행에 관련될 뿐이어서, 건국독립의 정신과는 그 지향하는 바를 달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사 이 종교로써 백성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어도, 그 백성과 함께 나라를 지키는 한 가지 일에 이르러서는 역시 큰 효과가 있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지금의 세계 각국의 형편과 종교의 취지를 비교하면, 종교는 매우 큼에 지나치고, 선량하고 아름다움에 지나치고, 고상함에 지나치고, 공평함에 지나치고, 각국이 대립하는 형편은 편협함에 지나치고, 비열함에 지나치고, 천박한 견해에 지나치고, 편파적임에 지나쳐, 양쪽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일종의 한학자(漢学者: 중국학 학자)는 그 소견을 점차 확대하여, 일본학 학자 부류와 같이 다만 회고의 정에 의지할 뿐만은 아니라도, 결국 그 안목은 예악(礼楽)과 정벌로써 하층민을 통제하는 방식이어서, 실정과 법률이 반반이 되어 민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도저히 오늘날의 세상 형편과 맞을 수가 없다. 만약 그 주장으로 하여금 실시되도록 하면, 백성은 다만 정부가 있음을 알고 백성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관청이 있음을 알고 민간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비굴함에 빠져, 마침내 일반적인 품행을 고상하게 하는 경지에는 이를 수 없다. 이 일에 관해서는 본서 제 7장 및 제 9장에 논의된 바가 있기에 지금 여기서 군말을 하지 않는다.
이상 논의한 바와 같이, 방금 우리나라의 사정이 곤란하다할지라도, 백성은 도무지 이 곤란함을 깨닫지 못하여, 흡사 원래의 속박을 벗어나 오히려 안락함과 같은 형편이므로, 뜻은 지닌 군자들은, 깊이 이것을 우려해, 어떤 일본학 학자는 국체론(国体論)을 부르짖고, 어떤 서양학 학자는 기독교를 도입하고자 하고, 또 어떤 한학자(漢學者: 중국학 학자) 요순(堯舜)의 길을 주장하여, 어떻게 해서도 민심을 유지하여 그 지향하는 바를 통일하여, 그로써 우리나라의 독립을 지키고자 하여, 각각 노력하는 바 있다할지라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공적을 이룩한 것이 없고, 또 후일에 이르러서도 조금도 공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 어찌 장탄식을 할 수 없을까? 이것에 있어서인가 나도 역시 조금 평생의 소견을 진술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사물을 논하는 것에는, 먼저 그 사물의 이름과 성질을 상세히 하여, 그런 후에 이것을 다루는 기술을 얻을 수 있다. 비유건대 화재를 방지하는 것은, 먼저 불의 성질을 알고, 물로써 이것을 끌 수 있음 상세히 하여, 그런 후에 소방의 기술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태가 곤란하다고 한다할지라도, 그 곤란이라 함은 원래 역시 어떤 항목을 가리켜 말하는가? 법령이 시행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조세가 납부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백성이 갑자기 무지에 빠진 것이 아니고, 관리가 모두 어리석어 정직하지 않음이 아니다. 이러한 조목들을 열거하면 일본은 의연한 옛날의 일본이어서 도무지 변동이 있는 것이 없고, 도무지 우려할 수 있는 것이 있음을 보지 못하고, 혹시 전일의 형편과 비교하면 새로이 면목을 고쳐서 잘 진보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태를 전년과 비교하면 더욱 곤란하여 한층 더 우환을 증가시켰다고 함은, 과연 어떤 조항을 지칭하여 어떤 곤란한 일을 우려하는 것인가, 이것을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건대 이 곤란한 일은 우리 조상부터 전래한 것이 아니고, 틀림없이 근래 갑자기 생긴 병이어서, 이미 우리나라의 생명의 기본적인 부분을 침범하여, 이것을 제거하려 하여도 제거할 수 없고, 이것을 치료하고자 하여도 약품이 부족하고, 도저히 우리나라의 종래의 생명력으로써 저항할 수 없는 것이리라. 왜인가 하면, 의연한 일본국으로서 옛날과 다른 것이 없으면 이것에 안심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여도, 특별히 이것을 우려함은 틀림없이 특별히 새롭게 이것을 우려할 수 있는 병을 야기했다는 증거이다. 세상의 지식인이 우려하는 바도 틀림없이 이 병에 있다는 것을 단정하여 알 수 있다할지라도, 지식인은 이 병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이름 짓는가? 나는 이것을 국제교류라고 명명한다.
세상의 지식인은 분명히 이 병에 이름을 부여하여 국제교류라고 하지 않는다 하든, 그 우려하는 바는 바로 나와 같기 때문에, 지금의 국제교류의 곤란함을 우려하는 것이므로, 우선 여기서 사물의 이름은 정해졌다. 그 다음 또 그 사물의 성질을 상세히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외국인이 우리 일본에 오는 것은 다만 무역을 위해서일 뿐. 그런데 지금 일본과 외국 사이에 시행되는 무역의 형편을 보는 데, 서양 여러 나라는 물건을 만드는 국가인데, 일본은 물건을 생산하는 국가이다. 물건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천연자원에 인공을 가하는 것이어서, 비유하면 면(綿)을 바꾸어 직물이 되고, 철을 제조하는 날이 있는 물건으로 되도록 하는 것과 같다. 물건을 생산한다 함은 자연의 힘에 의지하여 재료를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 생사(生糸)를 생산하고, 철광석을 채굴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잠정적으로 이름을 붙여, 서양 여러 나라를 제조국이라 칭하고, 일본을 생산물의 나라라고 칭한다. 본디 제조품과 생산물은 그 구획을 명확히 나누기가 어렵다할지라도, 갑(甲)은 인력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을(乙)은 자연력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써, 명칭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의 길에 있어서, 한 나라의 빈부는 자연에서 나는 산물의 많고 적음에 관계되는 것이 의외로 적어서, 기실은 오로지 인력을 이용함이 많고 적음과 익숙함과 서투름에 인하는 것이다. 토지가 비옥한 인도가 가난하고, 산물이 없는 네덜란드가 부유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제조국과 생산물의 나라의 무역에 있어서는, 갑(甲)은 무형이고 무한한 인력을 이용하고, 을(乙)은 유형이고 유한한 산물을 이용하여, 힘과 물품을 서로 교역하는 것이다. 자세히 이것을 말하면, 생산물 나라의 국민은 애쓸 수 있는 수족과 지혜를 애쓰지 않고, 제조국의 사람을 해외에 고용해 두고, 그 수족과 지혜를 빌려 써서 이것을 애쓰게 하여, 그 노력의 대가로서 자국에서 생산되는 천연자원을 주는 것이다. 또 이것을 비유하면 급여 300석, 가족 10명의 사무라이가, 안락하게 하는 일 없이 지내면서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음식은 맞춤요리 집에서 시켜먹고, 여름과 겨울 의복은 포목점에서 사서, 세대에 필요한 것은 하나에서 열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중에서 제조된 물품을 마구 사들여, 그 대가로서 매년 300석의 쌀을 소비해버리는 것과 같다. 300석의 쌀은 흡사 자연적인 산물이라도, 매년 소비해버리는 것이어서, 도저히 축재의 목적은 있을 수 없다. 방금 우리 일본과 외국의 무역 상황을 논하면, 그 대략은 이와 같다. 결국 우리나라의 손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서양 여러 나라는 제조품으로써 이미 그 부유함을 이루고, 매일 새롭게 공적에 의하여 인구가 해마다 늘어나, 영국 같은 나라는 지금 바로 그 극도에 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카합중국의 국민도 영국인의 자손이고,「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백인도 영국에서 이주한 사람이고, 동인도에도 영국인이 있고, 서인도에도 영국인이 있어, 그 숫자 대략 계산할 수 없다. 만약 지금 세계의 한 가운데에 산재한 영국인과, 수백 년 이래 영국에서 온 사람의 자손을 모아, 그 본국인 지금의 그레이트 브리튼 및「아일랜드」땅에 돌아가게 하여, 현재의 영국인 3000여만의 국민과 같은 장소에 거주하게 하는 일이 생기면, 전국에서 생산하는 물품으로써 의복과 식량에 불충분함은 말할 필요가 없고, 과반의 평지는 집을 짓기 위하여 점령되는 것이리라. 문명이 점차 진보하여 사람에 관한 일의 형편이 적합하게 되면 인구가 번식하는 것으로써 알 수 있다. 자식을 낳은 한 가지 일은 사람도 쥐도 다른 것이 없다. 쥐는 그 몸을 보호하는 것을 할 수 없어서, 혹은 굶주림과 추위에 죽고 혹은 고양이에게 잡히는 것에 의해, 그 번식도 심하지 않다할지라도, 사람에 관한 일의 형편이 적합하여 굶주림과 추위와 전쟁과 전염병의 우려가 적으면, 사람의 번식은 소위 기하급수의 비율로 증가한다는 이치여서, 유럽 가운데 오래된 국가에서는 이미 그 형편에서 곤란함이 있었다. 저 나라의 경제가의 주장에, 이 우려를 방지하는 방책은, 먼저, 자국의 제조품을 수출하여, 토지가 풍요로운 나라로부터 의복과 식량을 수입하는 것이다. 두 번째, 자국의 국민을 해외의 땅에 이주시켜 식민하는 것이다. 이 첫 번째 방책은 한계가 있는 일이어서 아직 완전히 우려를 완화함에 부족하고, 두 번째 방책은 크게 자본을 소비하는 일이어서 혹시 공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 번째 방책은, 외국에 자본을 빌려주어 그 이익을 취하여, 그로써 자국의 용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생각건대 사람을 해외의 땅에 이주시킴에는 이미 열린 지방이 가장 좋다할지라도, 열린 땅에는 스스로 건국정부가 있어, 그 국민에서도 일종의 습관과 풍속을 갖추어, 타국에서 와서 그 중심에 들어가 이들과 섞여 거주하여 편리를 얻고자하는 것도,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일한 실마리는 그 해외의 국가라는 것, 아직 공업을 권하는 방책을 알지 못하여 부유할 수 없고, 자본이 부족하고 노동력이 많아, 이 때문에 돈의 이자가 높아서, 본국에서 여유가 있는 원금을 가져와서 이 가난한 나라에 대부하여, 애를 쓰지 않고 이익을 취한다는 방책이다. 말을 바꾸어 하면, 사람들을 섞여 거주하도록 하지 않으면서 돈을 섞여 거주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사람은 관습과 풍속에 따라 그 섞여 거주함이 쉽지 않다할지라도, 돈이라면 자국의 돈이어서도 타국의 돈이어서도 그 목격하는 바에 차별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쓰는 자는 다만 이자의 높고 낮음을 물어, 만족하여 타국의 돈을 융통하여, 알게 모르게 타국인에게 금리를 지불하는 것이다. 돈의 주인의 뛰어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방금 일본에서도 이미 약간의 외채가 있어, 그 이해득실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문명국과 미개국을 비교하면, 생계의 조건, 완전히 그 내용을 달리하여, 문명이 점차 진보하는 것에 따라 그 비용도 역시 커지기 때문에, 만약 인구번식의 우려는 예외로 한다하여도, 평소의 생계에 있어서 그 비용의 일부는 반드시 다른 곳에서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구하는 곳은 곧 하류의 미개국이기에, 세계의 빈곤은 모두 하류에 돌아간다고 할 수 있다. 문명국의 자본을 차용하여 그 이자를 지불함은, 빈곤이 바로 하류에 돌아가서 그 형태에 드러난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을 빌려주고 빌리는 것은 반드시 인구번식의 한 가지 일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도, 지금 특히 이 일을 거론함은, 다만 학자의 양해에 편리하도록, 서양인이 이익을 다투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명확한 원인을 제시할 뿐.
이상은 외국과의 교류의 성격에 관한 그 이재(理財)에 관한 손익을 논한 것이다. 지금 또 이 교류에 의하여 우리 국민의 품행에 영향을 미치는 바의 것을 제시하리라. 근래 우리나라 사람도 크게 면목을 바꾸어, 국민 평등권은 거의 세상에 보편적이어서 이것에 이론을 내는 자가 없는 것과 같다. 생각건대 국민 평등권이라 함은 다만 한 국가 내의 사람마다 서로 권리를 같이한다고 하는 의미뿐만 아니다. 이 나라의 사람과 저 나라의 사람을 상대해서도 이것을 같이하고, 이 나라와 저 나라에 대해서도 이것을 같이하여, 그 형편의 빈부와 강약에 구애되지 않고, 권리는 바로 동일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통상을 시작한 이래, 그 조약서의 서면에는 저쪽과 우리 쪽이 동등하다는 조약문이 있어도, 교류의 실제에 관하여 이것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게이오의숙 동문 오바타(小幡)군의 저술, 민간잡지(民間雑誌) 제8편에 말한 것이 있다. 앞은 생략, 미국이 우리나라에 통신을 열어서야, 해군제독「페리」로 하여금 한 부대의 군함을 인솔하여 우리의 내해에 갑자기 들어오게 하여, 우리에게 강요하여 통신과 교역의 일로써, 그리하여 그 구실로 하는 바는, 동등하게 하늘을 머리에 이고, 동등하게 땅을 밟고 더불어 이것이 4해(四海)의 형제이다. 그런데 홀로 사람을 거부하여 서로 수용하지 않는 것은 하늘의 죄인이기 때문에, 만약 이들과 싸워도 통신과 무역을 개방하지 않을 수 없다는 취지이다. 왜 그 말이 훌륭하되 그 행위는 추잡한가? 언행이 어긋남이 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상황을 제외하고 그 사실만을 직언하면, 나와 상거래를 하지 않는 자는 죽인다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지금 시험적으로 수도 안의 상황을 보자. 말을 타고 수레에 타고 의기양양, 사람을 피하게 하는 자는, 대개 이 바다 바깥의 사람이다. 때때로 나졸이고 행인이고, 혹은 마부나 인력거꾼의 무리이고, 이들과 언쟁을 벌이는 일이 생기면, 서양인은 옆에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이,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도, 겁이 많고 약하고 비굴한 백성은 이들에 대응하는 기력이 없고, 외국인은 어떻게도 할 수 없다고 하여, 분노를 삼키고 법정에 가지 않은 자도 역시 적지 않다. 혹은 장사와 거래 등의 일에 따라 이들을 소송하는 일이 있어도, 다섯 개항지에 가서 결국 저 나라 사람의 재판에서 판결이 난다는 추세이므로, 결과적으로 그 원한을 고소할 수 없고, 이로써 사람마다 서로 말하여 이르기를, 차라리 소송하여 원한을 쌓기보다, 분노를 삼키는 수월함이 상책이라 하여, 그 상황이 흡사 약하고 작은 신부가 늙고 사나운 시어머니 옆에 있는 것과 같다. 외국인은 이미 이와 같이 세력을 쌓고, 또 재화가 풍부한 나라에서 재화가 부족한 나라에 와서 그 비용으로 하는 바가 많기 때문에, 이익을 쫓는 무리는 모두 다투어 이들에게 아첨하고, 그로써 주머니 속을 채우려고 한다. 그러므로 외국인이 다다르는 곳은 온천장도 역참도 찻집도 주점도 일종의 경박한 인정을 양성하여, 사리의 곡직을 돌아보지 않고 돈의 많고 적음을 물어, 이미 방약무인한 외국인으로 하여금 더욱 그 경망한 오만을 떨게 하도록 하는 것과 같음은, 흘낏 보아도 혐오스러움이 심하다고. 이상 오바타(小幡) 군의 논의에서 진실로 내가 마음을 이해한 것이다. 이외에 외국인과의 교류에 관해서는, 거류지의 관계가 있고, 내지여행의 관계가 있고, 외국인 고용의 관계가 있고, 출입항의 세금 관계가 있다. 이 여러 건에 관하여, 가령 표면적으로는 각국 대립 피아 평등의 체제가 있어도, 기실은 평등권의 내용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외국에 대하여 이미 평등권을 잃고, 이것에 주의하는 자가 없다면, 우리 국민의 품행은 날마다 비굴함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앞에 말한 바와 같이, 근래는 세상에 국민 평등권이라는 주장을 부르짖는 자가 많고, 혹은 귀족과 무사족의 명칭까지도 폐지하여 전국에 평등권의 취지를 분명히 하고, 그로써 백성의 품행을 고양하여 그 비굴한 구습을 일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자가 있다. 그 논의가 씩씩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상쾌하게 할지라도, 오직 외국과의 교류에 관해서는 이 평등권의 주장을 부르짖는 자가 적은 것은 왜인가? 귀족과 무사족이라 하고 평민이라 해도, 동일하게 일본국내의 백성이다. 그런데도 그 사이에 권력의 불균형이 있으면, 여전히 또 이것을 해롭다 하여 평등의 지위에 둘 것을 노력했다. 그런데 지금 이해를 달리하고, 인정을 달리하고, 언어와 풍속, 얼굴색과 골격에 이르기까지도 서로 같지 않은, 만 리 바깥의 외국인에 대하여, 권력의 불균형을 걱정하지 않음은 도대체 역시 어떤 이유인가? 쯧쯧 괴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가 틀림없이 가지각색일 것이라 할지라도, 나의 소견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 두 개 조항을 얻었다. 곧 제 1조는 세상에서 평등권이라는 주장을 부르짖는 자, 그 논설에 관하여 아직 깊은 사고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것이다. 제 2조는 외국과의 교류가 일천하여, 아직 그 폐해가 큰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아래에서 이것을 논하겠다.
제 1조 지금의 세상에 국민 평등권의 주장을 부르짖는 자가 적지 않다할지라도, 이것을 부르짖는 자는 대개 모두 학자 부류의 사람이어서, 곧 무사족이고, 국내 중간 계층 이상의 사람이고, 일찍이 특권을 지녔던 사람들이고, 일찍이 권력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고, 권력을 쥐고 사람들을 괴롭히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 평등권이라는 주장을 부르짖는 때를 맞아, 혹시 핵심을 찌르지 못하는 탄식이 없을 수 없다. 비유건대 스스로 먹지 않으면 음식물의 진미를 이해하여 알 수 없고, 스스로 감옥에 갇힌 자가 아니라면 감옥의 진짜 고생은 이야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지금 가령 국내의 농부와 상인으로 하여금 지혜의 힘을 갖도록 하여, 일찍이 권력을 쥔 자들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여 골수에 맺힌 분노의 내용을 말하게 하여, 당시의 세밀한 사정을 듣는 일이 있으면, 비로소 진실로 평등권 주장이 절실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할지라도, 무지하고 용기가 없는 백성, 혹은 일찍이 분노할 수 있는 일을 만나도 그 분노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고, 혹은 마음에 분노해도 입으로 이것을 말하는 것을 알지 못하여, 곁에서 그 사정을 상세히 할 수 있는 실마리가 매우 드물다. 게다가 오늘날에 있어서도, 세상의 한 가운데는 권력의 불균형 때문에 분노와 원한의 심정을 품는 자가 틀림없이 많다할지라도, 분명하게 이것을 알 수 없다. 다만 나의 마음으로써 그 속사정을 살필 따름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평등론은 도저히 사람의 추측과 억측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자가 만약 평등권의 본뜻을 찾아 그 논의의 확실한 것을 얻고자 한다면, 이것을 달리 구할 수 없고, 반드시 스스로 몸으로 돌아가서, 소년의 시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당시 국면의 경험을 반성하여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어떤 신분을 지닌 사람에게서도, 어떤 귀족과 무사족에게서도, 상세히 그 몸소 겪은 경험을 음미하면, 생애 가운데는 반드시 권력편중의 국면을 맞아 일찍이 불평을 품었던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불평과 원한의 실정은 다른 사람에게서 구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에게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근래에 내가 몸소 느끼는 것으로써 한 가지 사례를 밝히리라. 나는 본래 태어나면서 막부시대에 무력한 후다이(譜代: 도쿠가와의 가신)가 다스리는 작은 번(藩) 안의 변변치 못한 신하이다. 그 번(藩) 안에 있을 때, 높은 대신과 무사족을 접하면, 항상 멸시를 당하여, 어린이의 마음에도 불평이 없을 수 없다할지라도, 이 불평의 진짜 실제 정황은 변변치 않은 신하인 나의 동료가 아니라면 알지 못한다. 저 대신과 무사족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혹은 이것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혹은 또 번(藩)의 땅을 여행할 때, 공경(公卿: 3품 이상의 조정 관리)과 막부의 관리와 고산케(御三家: 도쿠가와 쇼군의 일족인 오와리[尾州], 기이[紀州], 미토[水戸] 가문)의 하인과 마주치면, 역참에서 가마를 빼앗기고, 나루터에서 순서를 빼앗기고, 혹은 여관방에서 같이 숙박함을 허락받지 못하여, 밤중에 돌연히 쫓겨하는 일도 있다. 이때의 사정, 바로 지금에 이르러서는 다만 하나의 웃음거리에 속한다할지라도, 실제로 그 일을 당하는 때의 분노와 고통은 지금도 여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분노와 고통은 다만 후다이(譜代: 도쿠가와의 가신) 다이묘의 가신인 나의 신분으로 느끼고 있을 뿐이어서, 이 분노와 고통을 일으킨 공경(公卿: 3품 이상의 조정 관리)과 막부의 관리와 고산케(御三家: 도쿠가와 쇼군의 일족인 오와리[尾州], 기이[紀州], 미토[水戸] 가문)의 하인은 막연하게 이것을 알지 못한다. 설사 막연하지 않아도 겨우 다른 사람의 분노와 고통을 추측하고 억측하는 데 지나지 않을 따름. 그렇다할지라도 결국 나도 역시 일본이라는 나라의 한 가운데 있어서는 중인 이상의 무사족의 반열에 드는 자이기에, 자신의 신분보다 높은 자에 대해서야 불평을 품는 것을 알아도, 이하의 농부와 상인을 향해서는 틀림없이 불평을 품게 했다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스스로 이것을 알지 못할 따름. 세상에 이런 종류의 일은 매우 많다. 아무튼 그 국면을 당하지 않으면 그 사건의 진정한 실상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의하여 생각하면, 지금의 평등론은 논하는 바가 혹시 정확한 것 같아도, 본인이 스스로 논하는 논리가 아니고, 사람들을 위해 추측하고 억측한 쓸데없는 논리이기 때문에, 자세한 사정에 관한 치밀함을 다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권력 불균형의 폐해를 서술함에 있어서, 스스로 조잡하고 어리석고 번잡한 폐단이 없을 수 없다. 국내에서 이것을 논함에 있어서도 여전히 또한 조잡하고 어리석어 누락되는 곳이 많다. 하물며 이것을 확대하여 외국과의 교류에 미쳐, 외국인과 권력을 다투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야. 아직 이것을 도모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훗날 만약 이 무리로 하여금 실제로 그 국면을 맞이하게 하여, 널리 서양 여러 나라의 사람과 접하여 직접 권력을 다투는 때가 되어, 그 멸시를 받는 일이 우리 농부와 상인이 무사족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과 같고, 후다이(譜代: 도쿠가와의 가신)가 다스리는 작은 번(藩)의 온 집안 식구가 공경(公卿)과 막부의 관리와 고산케(御三家: 도쿠가와 쇼군의 일족인 오와리[尾州], 기이[紀州], 미토[水戸] 가문)의 하인에게 모욕을 당하는 것과 같은 경우에 이르면, 비로소 지금의 평등론의 무익함을 알고, 권력의 불균형을 혐오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고 분노할 수 있고 슬퍼할 수 있음을 깨달으리라. 게다가 옛날의 공경(公卿: 3품 이상의 조정 관리)과 막부의 관리와 무사족의 무리는 설령 무례하고 망령되고 오만하여도, 동일하게 내국인들이고 또 지혜의 힘이 결여된 사람들이므로, 평민은 이들을 만남에 존경하면서 멀리하는 재주를 이용하여, 겉으로는 이들을 존경하여 받들되 몰래 그 돈을 빼앗는 등의 책략이 없지 않다. 본디 나쁜 책략이라 할지라도, 약간 불평을 위로하는 수단이라는 것이 있어도, 지금의 외국인이 교활하고 표한함은 공경(公卿: 3품 이상의 조정 관리)과 막부 관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지식으로써 사람을 속일 수 있고, 그 변설로써 사람을 유혹할 수 있고, 논쟁에서 용감하고, 싸움에서 힘이 있고, 지식과 변설과 용기와 힘을 겸비한 일종의 무법적 귀족과 무사족이라 할 수도 있다. 만약, 이들이 통제하여 속박을 당하는 일이 생기면, 그 잔학함이 치밀한 것은 흡사 공기의 흐름을 막는 것까지도 허용하지 않은 것과 같아서, 우리 일본 국민은, 이것에 질식하는 데 이를 수 있다. 지금부터 이 형편을 상상하면, 온몸이 갑자기 오싹하여 모발이 서는 것을 느끼지 않는가?
여기에 우리 일본의 실패의 교훈으로서 인도의 한 사례를 밝히겠다. 영국인은 동인도 지방을 지배함에 그 조치가 무정하고 잔혹함을 실제로 말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그 한두 가지를 들면, 인도의 정부에서 인물을 채용함에는 영국인도 현지인도 같은 형편의 권리를 지녀, 재주와 학문을 시험보아 채용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 현지인을 시험함에는 18세 이하인 자에 한하고, 그 조사하는 항목은 본디 영어책을 읽고 영국의 사정 정통하지 않으면 적당하지 않은 것이 되기에, 현지인은 18세의 연령에 이르기까지에, 우선 자국의 학문을 끝내고 겸하여 영국 학문을 공부하여, 그 영국 학문의 실력으로써 영국인과 상대하여, 영국인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합격할 수 없다. 혹은 1년이 지나 19세 때에 학업을 이르는 자가 있어도, 연령에 제한이 있어서 재주와 학식을 묻지 않고 인물을 묻지 않고 이 사람을 고용하는 데 합당하지 않은 자로 하여, 일절 벼슬길에 올라 지방의 사무에 참여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영국인은 이 무정하고 가혹한 법률로써 아직 만족하다고 하지 않고, 시험을 보는 장소를 반드시 영국 본국의「런던」에 정하여, 일부러 현지인으로 하여금 만 리의 파도를 넘어「런던」까지 출장하는 하는 법을 제정했다. 그러므로 현지인은 18세 때 이미 시험을 치르고 합격할 수 있는 학력을 지녀도, 많은 돈을 써서 먼 길을 왕래하지 않으면 벼슬길에 오를 수 없다는 장치에 억제되어, 학력의 깊고 얕음에 구애되지 않고, 재산이 풍부하지 않으면 벼슬길에 오를 방법이 없다. 혹시 드물게 분발하는 자가 있어 여비를 내놓고 「런던」에 가서 시험을 치러도, 불행하게도 불합격하면 헛되이 재산을 파괴할 따름이다. 그 불편한 것을 비교할 것이 없다. 영국의 폭정, 절묘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인도의 정부에서 재판함에, 참석하는 자는 현지인을 고용하지 않고, 반드시 영국인에 제한하는 법률로 한다.《「주리[jury: 배심원단]이라고 하는 것이다」서양사정 제 3권 영국의 조항 제 9쪽에 나옴.》어느 때, 한 명의 영국인이, 인도의 지방에서 총으로써 현지인을 학살한 것에 관하여 재판을 했는데, 피고인의 주장에, 뭔가 한 마리의 동물을 언뜻 보고 이것을 원숭이로 알고 발포했는데, 원숭이가 아니고 사람이었던 것이리라는 답변이어서, 참석자 모두도 조금도 이의 없이, 피고인은 무죄라고 평결했다고 한다.
근래「런던」에서 여러 명의 학자가, 사사로이 단체를 결성하여 인도의 상황을 개혁하고자 진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앞 조항의 소송은 1874년 봄, 어떤 인도인으로부터 이 단체에 제출한 편지 속에 기록된 것이라 하여 나의 옛 친구, 당시「런던」에 있던 바바 타츠이(馬場辰猪) 군의 보고이다. 바바 씨는 실제로 그 단체에도 출석하여 친히 그 사정을 견문하고, 이런 종류의 일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제 2조 외국인이 우리나라와 통신하는 것이야 이제 겨우 20년, 다섯 항구를 열었다할지라도 수출입품도 적어서, 외국인이 몰려드는 곳은 요코하마(横浜)를 제일로 치고, 고베(神戸)가 그 다음으로 뒤따르고, 그 밖의 세 항구는 헤아릴 필요가 없다. 조약의 서면 약속에 따라, 각 항구에 거류지를 설치하고, 내외 국민의 주거에 경계를 한정하여, 외국인의 여행지는 개항지로부터 각 방향의 10리로 정하여, 이 정해진 한계 밖은 특별한 허가가 없으면 왕래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이 밖에 부동산의 매매, 금과 은의 빌려줌과 빌림 등에 관해서도, 법을 제정하여 내외의 차별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쌍방의 교류는 점차 번창을 지향할지라도, 내외 국민이 서로 접촉하는 경우가 매우 적고, 설사 혹시 그 교류에 관하여 우리 국민이 부정한 일을 당하여 불평을 품은 자가 있어도, 그 사람은 대개 모두 개항장 근방의 백성에 그치지, 세간의 일반적인 풍문에 전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또 개항 초기부터 정치적으로 관계되는 교류의 사무는 정부가 독점적으로 관여하는 바로서, 백성은 일찍이 그 상황을 아는 일이 없다. 나마무기(生麦) 사건에 관하여 10만「파운드」, 시모노세키(下の関) 배상금이 300만「달러」, 옛 막부의 시대에 미국에 군함을 주문하고, 프랑스인과 조약을 맺어 요코스카(横須賀)에 조선소를 열고, 유신 이후에도 포함을 구입하고, 등대를 설치하고, 철도를 부설하고, 통신선을 설치하고, 외채를 모집하고, 외국인을 고용하는 등, 그 교류가 매우 번잡하였기에, 그 사이에는 혹시 전혀 내가 부정한 일을 당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담판의 기회에 돈을 잃은 일도 있으리라. 결국 저쪽 편에선 전혀 손해의 우려가 없음이 명백하고, 우리 편에 충분한 이익과 체면을 얻었는가 아닌가는 극히 의심스러운 일이어도, 정부가 독점적으로 관계하는 바이기 때문에 백성은 아직 이것을 알지 못하여, 다만 밑의 천한 백성의 무리는 이것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학자와 학식이 높은 군자, 또는 정부의 관리라 할지라도, 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이것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백성은 외국과의 교류에 관하여, 내외의 권력이 과연 평등한지 아닌지를 알지 못하고, 우리가 부정한 일을 당하는지 아닌지를 알지 못하고, 이해(利害)를 알지 못하고, 득실을 알지 못하고, 태연하게 다른 나라의 일을 보는 것과 같다. 이것이 곧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대하여 권력을 다투지 않는 한 가지 원인이다. 생각건대 이것을 알지 못하는 자는 이것을 우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외국인 우리나라에 오는 것은 아직 일천하다. 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두드러지게 큰 해악을 가하여 우리의 체면을 빼앗은 사건도 없기 때문에, 백성의 마음에 느낌을 주는 것이 적다할지라도, 적어도 나라를 우려하는 진심이 있을 자는, 견문을 넓혀 세계의 옛날과 오늘날의 역사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아메리카는 원래 누구의 나라인가? 그 나라의 주인인「인디언」은, 백인 때문에 추방당하여,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지금의 아메리카 문명은 백인의 문명이지, 아메리카의 문명이라고 할 수 없다. 이외 동양의 모든 나라 및 대양주 여러 섬의 형편은 어떤가, 유럽인이 접촉하는 곳에서는 충분히 그 본국의 권리 및 이익을 온전히 하여 진짜 독립을 지키는 것인가? 「페르시아」는 어떤가, 인도는 어떤가, 샴(태국)은 어떤가, 루손과 자바는 어떤가? 「샌드위치」섬은 1778년 영국의 「캡틴 쿡」이 발견한 장소여서, 그 개화는 근방의 여러 섬에 비하여 매우 빠른 것이라고 칭했다. 그런데 발견 당시 인구가 3, 40만이던 것이, 1823년에 이르러 겨우 14만을 남겼다고 한다. 50년간에 인구가 감소하는 것이 대체로 매년 100분의 8이다. 인구의 증감에는 여러 가지 원인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잠시 이것을 중단하고, 그 개화라고 칭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다만 이 섬의 야만인들이 인육을 먹는 추악한 일을 멈추고, 충분히 백인의 노예에 적당하였던 것을 지적하여 말할 뿐. 중국과 같은 것은 국토도 매우 크기 때문에, 아직 그 내륙에 침투할 수 없어서, 유럽인의 족적은 다만 해안에만 있다할지라도, 차후의 과정을 짐작하면, 중국제국도 바로 유럽인의 전원임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인이 접촉하는 곳은 흡사 토지의 생명력을 끊어, 풀과 나무도 그 성장을 완수할 수 없다. 심지어는 그 인종을 섬멸함에 이르는 것도 있다. 이것들의 흔적을 명백히 하여, 우리 일본도 동양의 한 나라임을 알면, 가령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외국과의 교류에 관하여 심한 피해를 입는 경우가 없어도, 후일의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 기록한 바의 것이 과연 옳다면, 우리 일본에 있어서 외국과의 교류의 성질은, 이재(理財)에 관하여 논하는 것도 권리에 관하여 논하는 것도 지극히 곤란하고 지극히 어려운 큰 사건이어서, 국가 생명의 주요한 부분을 침범하는 고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고질이 우리의 전국 백성의 전체적인 환부이므로, 백성이 일반적으로 스스로 그 치료법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병이 심해지는 것도 자기의 일이고, 병이 물러감도 자기의 일이다. 이해득실 모두 나에게 있는 것이어서, 추호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이 천박한 사람은 최근 세상의 형편이 옛날과 다름을 보고 이것을 문명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우리 문명은 외국과의 교류 덕택이기 때문에, 그 교류가 번성할수록 세상의 문명도 함께 진보할 수 있다고 하여, 이것을 반기는 자가 없지 않아도, 그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만 외형의 체제뿐. 본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가령 혹시 그 문명으로 하여금 조금 고상한 것이 되도록 하는 것도, 전국 국민 사이에 한 조각의 독립심이 있지 않으면 문명도 우리나라에 소용이 되지 않고, 이것을 일본의 문명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이다. 지리학에 있어서는 토지와 산천으로써 국가라고 지칭하여도, 내가 논하는 바에서는 토지와 국민을 아울러 이것을 국가라고 칭하고, 그 국가의 독립이라고 하고 그 국가의 문명이라고 함은, 그 국민이 서로 모여 스스로 그 국가를 보호하고 스스로 그 권리와 체면을 온전히 하는 것을 가리켜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국가의 독립과 문명은 다만 토지에 관해서고 사람에게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하면, 지금의 아메리카 문명을 보고「인디언」을 위하여 축하해야 하는 이치가 된다. 혹은 또 우리 일본에서도, 정치와 학술 등의 여러 조건을 들어 이것을 문명화된 유럽인에게 부여하여, 우리 일본인은 노예가 되어 노역을 당해도, 일본의 토지에 영향이 있는 것이 없어서, 그런데도 지금의 일본 형편보다도 수백 등급이 앞선 독립된 문명국으로 되겠지. 부적절함이 지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어떤 학자의 주장에 말하여, 각 나라의 교류는 천지의 공도([天地の公道]: 국제법을 의미하기도 함)에 토대를 둔 것이고, 반드시 서로 해를 끼친다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게 무역하고, 자유롭게 왕래하여, 다만 자연에 맡길 수 있을 뿐. 만약 혹시 우리의 권리를 손해보고 우리의 이익을 잃는 경우가 있으면, 그런 까닭의 원인은 나에게서 구하지 않을 수 없고, 스스로 수양하지 않고 남에게 많은 것을 구하는 것은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 이미 여러 외국과 평화롭게 교류하는 것에 관해서는 만족할 때까지 성의를 다하여 그 교분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고, 추호도 의심을 품을 수 없다고. 이 주장 정말로 그렇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사사로운 교류에 있어서는 진실로 그와 같을 수 있다할지라도, 각 나라의 교류와 사람마다의 사사로운 교류는 완전히 내용을 달리하는 것이다. 옛날 봉건시대에 시행된 여러 번(藩)의 교류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각 번(藩)의 백성은 반드시 부정한 사람이 아니라도, 번(藩)과 번(藩)의 어울림에 있어서는 각자 스스로 사사로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사사로움이야 번(藩) 밖에 대해서는 사사로워도, 번(藩) 안에 있어서는 공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각 번(藩)의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 사사로운 실정은 천지의 공도([天地の公道]: 국제법을 의미하기도 함)을 주장하여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번(藩)이 존재하는 한에는 번(藩)과 함께 존재하여 영원히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수년 전 번(藩)을 폐지한 거사로써 이것을 제거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는 여러 번(藩)의 백성도 점차 옛날의 번(藩)에 대한 정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다할지라도, 번(藩)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결코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겨우 일본 안의 여러 번(藩)에 있어서도 아직 또한 이와 같다. 그런데 동양과 서양의 격차, 특수한 지역의 외국인에 대하여, 그 교제에 천지의 공도([天地の公道]: 국제법을 의미하기도 함)에 의존한다고 함은 과연 어떤 마음인가? 물정에 어두움도 역시 심하다. 속되게 소위 어리석은 사람의 논의라고 할 수 있을 따름. 천지의 공도([天地の公道]: 국제법을 의미하기도 함)는 본디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이고, 서양 여러 나라는 충분히 이 법에 따라 우리에게 접촉하거나, 우리 역시 감수하고 이것에 응할 수 있어서, 결코 이것을 사절하는 게 아니다. 만약 그것이 과연 그렇다면, 먼저 전 세계의 정부를 폐지하는 것 우리의 옛 번(藩)을 폐지한 것과 같지 않을 수 없다. 학자들 여기에 가망이 있는가? 만약 그 가망이 없으면, 전 세계에 국가를 세워 정부가 있을 한에는, 그 국민의 사사로운 감정을 없앨 방법이 있을 수 없다. 그 사사로운 감정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나도 역시 이것들에게 접촉함에 사사로운 감정으로써 하지 않을 수 없다. 곧 이것이 편파심과 보국심이 명칭은 다르되 같은 것인 이유이다.
위와 같이 외국과의 교류는 우리나라의 한 가지 큰 난치병이어서, 이것을 치료함을 맞아, 자국의 국민에게가 아니라면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임무가 크고 그 책무가 무겁다고 할 수 있다. 곧 이 장의 처음에 말한, 우리나라는 편안한 시기가 아니고, 게다가 그 일은 옛날과 비교하여 더욱 곤란한다 함은, 바로 외국과의 교류의 이 고질병이라는 것이다. 한 조각의 양심에 있어서 사유재산까지도 생명까지도 내던질 수 있는 장소라 함은, 바로 외국과의 교류의 이 장소이다. 그렇다면 곧 지금의 일본인으로서 어찌 편안히 세월을 없앨 수 있는가, 어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휴식할 수 있는가? 역사 이래 임금과 신하의 의리, 선조의 유래, 상하의 명분, 본말의 차별이라고 했던 것,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는 조국의 의리로 되고, 조국의 유래로 되고, 내외의 명분도 되고, 내외의 차별도 되어, 더욱 몇 배 중대함을 증가시켰지 않은가? 옛날 봉건시대에, 사츠마(薩摩)의 시마즈(島津) 씨와 휴가(日向)의 이토(伊東) 씨가 오래된 원한이 있어, 이토(伊東) 씨와 신하들은 깊이 사츠마(薩摩)를 적대하여, 매년 설날에 신하들이 성을 지키려 가면 우선 서로 경계하여, 사츠마(薩摩)에 대한 원한을 잊지 말라고 하여, 그런 후에 설날을 경축하는 것으로써 관례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유럽에서 프랑스의 황제「나폴레옹」1세의 시절, 프러시아는 프랑스 때문에 패배하여 미증유의 치욕을 당하여, 이후 프러시아인은 깊이 원한을 품고 복수하려는 생각을 항상 끊은 적이 없고, 이것 때문에 국민이 노력하는 것은 물론, 특히 국내의 교회와 기타 군중이 무리지어 모이는 장소에서는, 전년에 프러시아 사람들이 대패하여 치욕을 당하고, 그 분노해야 하고 슬퍼해야 하는 형편을 그림으로 그려 액자에 게시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다하여 인심을 격려하게 만들어, 그 지향하는 바를 통일하여 복수를 도모하여, 마침내 1870년에 이르러 옛날의 원한을 갚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일들은 어느 것도 모든 원한과 불량한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어서, 직접 그 일을 훌륭하다고 칭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도, 국가를 지키기 어렵고 국민이 고심하는 형편은 그로써 알 수 있다. 우리 일본도 외국과의 교류에 있어서는 아직 이토(伊東) 씨 및 프러시아의 고통을 겪은 경우가 없다할지라도, 인도 기타의 선례를 보고 이것을 경계하는 것은 이토(伊東) 씨와 같고 또 프러시아와 같지 않을 수 없다. 혹은 설날에 한 번이 아니고, 국민인 자는 아침마다 서로 경계하여, 외국과의 교류에 방심할 수 없다고 하고, 그런 후에 아침식사를 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이것에 따라서 생각하면, 일본인은 조상이 전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대신할 짐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니고, 그 짐은 현재 머리 위에 걸려서, 게다가 옛날의 짐보다 더욱 몇 백배 무거워서, 바로 이것을 짊어질 수 있는 책임을 맞이하여, 옛날에 비하면 역시 몇 백배의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에 담당한 것은 다만 답답하게 견딜 뿐인 경우였지만, 지금 담당하는 것은 답답하게 게다가 또 활발함이 필요하다. 백성의 품행을 높인다 함은, 곧 이 답답한 수신의 도덕과 의무 및 매우 활발한 지위의 노력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짐을 인수하여 아직 또 몸에 안락함을 느끼는 자는, 다만 그 물건의 성질과 경중을 알지 못하여 이것을 유념하지 못했을 따름. 혹시 이것을 유념해도, 이것을 짊어지는 방법을 그르친 자이다. 비유건대 세상에 외국인을 혐오는 자가 없지 않고, 그렇지만 외국인을 혐오하는 취지를 오해하여, 혐오해야 하는 것을 혐오하지 않고 혐오해서는 안 되는 것을 혐오하여, 시기와 질투의 생각을 품고 눈앞의 자질구레한 일에 분노하고, 적게는 암살 크게는 양이(攘夷), 그로써 자국에 커다란 해악을 조장하는 자가 있다. 이런 부류는 일종의 미치광이어서, 흡사 큰 병에 걸린 나라 가운데의 환자라고 부를 수 있을 따름.
또 일종의 우국지사는 양이(攘夷)를 주장하는 자와 비하면 조금 소견을 고상히 하여, 망령되게 외국인을 제거하고자 함은 아니라도, 외국과의 교류에서 곤란함을 보고 그 원인을 다만 병력의 부족으로 돌려, 우리에게 군비만 증강시키면 대립의 형세를 얻는다 하여, 혹은 해군과 육군이라는 자본을 늘리고자 하고, 혹은 큰 함정과 대포를 구매하자고 하고, 혹은 포대를 설치하고 하고, 혹은 무기고를 건설하자고 하는 자가 있다. 그 의도가 있는 바를 살피는 데, 영국에 1,000척의 군함이 있고, 우리에게도 1,000척 군함이 있으면, 반드시 영국에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틀림없이 사물의 비율을 알지 못하는 자의 생각이다. 영국에 1,000척의 군함이 있음은, 다만 군함만 1,000척을 보유한 것이 아니고, 1,000척의 군함이 있으면 10,000척의 상선도 있을 것이고, 10,000척의 상선이 있으면 100,000명의 선원도 있을 것이고, 선원을 양성함에는 학문도 없을 수 없고, 학자도 많고 상인도 많고, 법률도 정비되고 상업도 번창하여, 인간 교류에 필요한 사물을 모두 구비하여, 마치 1,000척의 군함에 상응할 수 있는 형국에 이르러, 비로소 1,000척의 군함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무기고도 포대도 모두 이와 같고, 다른 제반 조건에 비하여 비율이 없을 수 없다. 비율에 맞지 않으면 이로운 기계도 쓸모가 없고, 비유건대 안팎으로 문단속도 없어서 집안이 난잡한 그 집의 문전에, 20「인치」의 대포 1문을 설치해도 도적을 방어함에 적당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무력이 편중된 국가에 있어서는, 자칫하면 전후의 분별도 없어서, 헛되이 군비에 돈을 소비하여, 빚 때문에 스스로 국가를 무너뜨리는 일이 없지 않다. 생각건대 거대한 군함과 대포는 그것으로써 거대한 군함과 대포를 지닌 적에 대적할 수 있어도, 돈을 빌린 적에게는 대적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도 군비를 갖춤에, 포함(砲艦)은 물론, 소총과 군복에 이르기까지도, 100에 99는 외제품을 우러러보지 않는 것이 없다. 혹은 우리의 제조기술이, 아직 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할지라도, 그 제조기술이 아직 피어나지 않음은, 곧 국가의 문명이 아직 구비되지 않은 증거이기 때문에, 그 구비되지 않은 상황 중에, 홀로 군비만을 구비하겠다고 하는 것도, 사물의 비율을 잃고 실용에는 적합하지 않은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외국과의 교류는 병력을 충당하는 것으로써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와 같이, 암살과 양이(攘夷)는 본래 문제 삼을 만한 것이 아니고, 더욱 한 걸음 나아가 군비에 대한 궁리도 실용에 적합하지 않고, 또 위에 기술된 바의 국체론, 기독교론, 유교론도 역시 사람의 마음을 유지하는 데 부족하다. 그런즉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하여, 목적을 정하여 문명으로 진보하는 한 가지 일이 있을 따름. 그 목적이라 함은 무엇인가? 내외의 구별을 명확히 하여 우리 일본의 독립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독립을 지키는 방법은 문명 밖에서 구할 수 없다. 지금의 일본인을 문명으로 진보시킴은 이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함 뿐. 그러므로 국가의 독립은 목적이고, 국민의 문명화는 이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다. 대체로 인간의 사물에 관하여, 그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을 헤아리면, 이 일 저 일 한계가 있는 것이 없다. 비유건대 면화를 방적함은 실을 만드는 수단이고, 실을 만듦은 무명을 짜는 수단이고, 무명은 의복을 제조하는 수단이 되고, 의복은 바람과 추위를 막는 수단이 되고, 이 몇 단계의 여러 수단은, 상호 수단도 되고 또 상호 목표도 되어, 결국은 인체의 온도를 보호하여 몸을 건강하게 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같다. 나도 이 1장의 논의에 있어서는, 결국 조국의 독립을 목표로 세운 것이다. 본서의 앞머리 처음 부분에, 사물의 이해득실은 그 목표하는 바를 정하지 않으면 논의할 수 없다고 한 것도, 생각건대 이와 같은 논의에 적용하여 참고할 수 있다. 사람들은 혹시 말하여, 인류의 약속은 다만 자국의 독립뿐임으로써 목적으로 삼을 수 없고, 역시 특별히 영원하고 고상한 극점에 착안해야 한다고. 이 말은 진실로 그러하다. 인간의 지혜와 덕행의 극점에 다다름은, 그 기약하는 바, 본래 높고 멀어서, 한 국가의 독립 등의 자질구레한 일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 겨우 다른 국가의 경멸을 면하는 것을 보고, 직접 이것을 문명이라고 부를 수 없음은 논할 필요가 없다할지라도, 지금 세상의 형편에 있어서, 국가와 국가의 교류에는 아직 높고 먼 사건을 논의할 수 없고, 만약 이것을 논의하는 자가 있으면 그를 비현실적이고 아득히 멀리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당장 일본의 상황을 살피면, 더욱 사태가 시급함을 이해하고 또한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우선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국민을 존속시키고 역시, 그런 후에 여기서 문명에 관한 일까지도 말할 수 있다. 국가가 없고 국민이 없으면 이것을 우리 일본의 문명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이 곧 내가 이론의 영역을 좁혀, 단지 조국의 독립으로써 문명의 목표로 삼는 논의를 부르짖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이 논의는 현재 세상의 상황을 살펴, 현재 일본의 이익을 도모하여, 현재의 일본의 다급함에 대응하여 주장을 낸 것이기에, 본래 영원하고 미묘한 심오함이 아니다. 학자는 갑자기 이것을 보고 문명의 본 뜻을 오해하여, 이것을 경멸시하여 그 글자의 뜻의 체면을 욕되게 하지 말라. 그리고 또 나에게 있어서 독립으로써 목표를 정했다할지라도,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논객이 되어, 항상 정치이야기에 매달리게 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 일터를 달리하고, 역시 이것을 달리하지 않을 수 없다. 혹은 고상한 학문에 뜻을 두어 담천조용(談天彫竜: 하늘을 논의하고 용을 조형한다는 의미로 고담준론[高談峻論]과 비슷한 말)에 빠져, 따라서 끝까지 연구하고 따라서 진보하여, 이것을 즐겨 식사하는 것도 잊는 자도 있으리라. 혹은 활발한 영업에 종사하여 밤낮으로 조금도 여가를 얻지 못하고, 동서분주, 집안일을 잊는 자도 있으리라. 이들을 비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문명 중의 한 가지 큰 사업으로서 이들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원하는 바는 식사도 잊고 집안일도 잊는 때에서, 국가의 독립이 어떻게든 관련되는 바의 일에 마주치면, 곧 감동하여 흡사 벌 꼬리의 침에 찔린 것과 같이, 몸과 마음 함께 예민해질 것을 바랄 따름.
어떤 사람들은 말하여, 앞의 주장과 같이 다만 조국의 독립만을 바라는 것이라면, 외국과의 교류를 중지하는 편리에 필적하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에 외국인이 아직 오지 않았던 시대에 있어서는, 국가의 상황이 문명적이지 못했다할지라도, 이것을 순수한 독립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독립으로써 목표로 삼으면 옛날의 쇄국으로 돌아감을 상책으로 한다. 오늘날에 이르면 역시 독립에 대한 우려도 있을 수 있어, 가에이(嘉永: 에도시대 후기의 연호) 이전에서는 사람들이 몰랐던 것이다. 나라를 개방하고 나라의 독립을 우려함은, 스스로 병을 구하여 스스로 이것을 우려함과 다르지 않다. 만약 병을 우려해야 함을 알면, 무병의 시절로 돌아감이 상책이라고. 내가 답변하여 말하여 그렇지 않다, 독립이라 함은 독립할 수 있는 세력을 지적하여 말하는 것이다. 우연히 독립한 형태를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일본에 외국인이 아직 오지 않고도 국가가 독립했던 것은, 진실로 그 세력을 지니면서 독립한 것이 아니다. 다만 외국인과 접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연히 독립의 체제를 이루었을 뿐. 이것을 비유하면, 아직 바람과 비를 겪지 않은 가옥과 같아서, 과연 바람과 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일찍이 바람과 비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증명할 수 없다. 바람과 비가 오느냐와 아니냐는 외부의 일이고, 가옥이 견고하느냐 아니냐는 내부의 일이다. 바람과 비가 오지 않은 것을 보고, 가옥의 견고함을 증명할 수 없다. 바람도 없고 비도 없이 가옥이 존재함을 물론, 어떤 큰 바람과 큰 비를 겪어도 우뚝 솟아 움직이지 않은 것은 역시, 진실로 견고한 가옥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이른 바 조국의 독립이라 함은,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외국과의 교류를 맞이하게 하여, 천백번 갈고 닦아. 마침내 그 세력이 떨어지지 않고, 흡사 이 큰 바람과 비를 감당할 수 있는 가옥과 같이 되게 하려는 취지이다. 어째서 스스로 위축되어 후퇴하여 옛날로 돌아가, 우연한 독립을 요행으로 하여 득의의 표정을 짓겠는가? 게다가 지금 외국과의 교류는, 적절히 이것을 처리하면 우리의 민심을 진작할 수 있기 때문에 마치 적당한 자극이 될 수 있어서, 오히려 이것에 의지하여 크게 우리 문명을 이롭게 할 수 있다. 결국 내가 취지로 하는 바는, 진보하여 독립의 열매를 따는 데 있다. 물러나 그 헛된 명분을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은 구태여 좋아하지 않은 바이다.
그러므로 또 앞의 주장으로 돌아가 말하겠다. 국가의 독립은 목표이다, 지금 우리의 문명은 이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이다. 이 지금이라는 글자는 특별히 의미가 있어 사용한 것이므로, 학자는 등한히 간과하지 말라. 본서의 제 3장에는, 문명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광대하여 인간 만사 모두 이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여, 인류가 당연히 도달해야 하는 문명의 본뜻을 목표로 하여 논의를 세운 것이라도, 여기에는 나의 위치를 현재의 일본에 제한하여, 그 논의도 역시 스스로 영역을 좁혀, 다만 조국의 독립을 얻게 하는 것에 주목하여, 임시로 문명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일 뿐.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문명이라고 한 것은 문명의 본뜻은 아니고, 우선 사태의 첫걸음으로서 조국의 독립을 모색하고, 기타는 두 번째 걸음에 남겨두고, 훗날 할 바가 있을 것으로 한다는 취지이다. 생각건대 이와 같은 논의를 제한할 때는, 국가의 독립은 곧 문명이다. 문명이 아니라면 독립을 지킬 수 없다. 독립이라고 하는 것도 문명이라고 하는 것도, 함께 구별이 없는 것과 같아도, 독립이라는 문자를 쓰면, 사태를 상상함에 한층 더 한계를 명확히 하여, 이해를 쉽게 하는 편리함이 있다. 다만 문명이라고만 할 때는, 혹시 조국의 독립과 문명에 관계가 없으면서, 문명인 것이다. 심지어는 조국의 독립과 문명을 해치면서, 여전히 문명과 유사한 것이 있다. 그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말함에, 지금 우리 일본의 여러 항구에 서양 각국의 함선을 정박시키고, 육지에는 거대한 상관(商館: 외국인 상점)을 건설하여, 그 상황은 거의 서양 여러 나라의 항구와 다르지 않고, 번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리에 어두운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번창한 상황을 목격하고, 지금이야 세계 각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법률이 관대함을 그리워하여, 다투어 일본으로 몰려들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무역이 날마다 번창하고 우리의 문명도 달마다 진보함은, 여러 항구의 상황을 일견하여 알 수 있다고 하여, 득의양양한 자가 없지 않다. 큰 오해가 아닌가? 외국인은 일본에 몰려든 것이 아니고, 일본의 차와 명주실에 몰려든 것이다. 여러 항구가 번창함은 문명적인 것이 틀림없다할지라도, 항구의 배는 외국의 배이고, 육지의 상관(商館: 외국인 상점)은 외국인의 주거지이고, 우리의 독립과 문명에 조금이라고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혹시 또 자본이 없는 모험가가 외국인의 자본을 이용하여 국내의 거래를 확대하여, 그 소득까지 모두 자본가의 이익으로 돌리면서 상업의 번창과 호경기를 보이는 것도 있다. 혹은 외국에서 돈을 빌려서 그 돈으로써 외국으로부터 물건을 매입하여, 그 물건을 국내에 진열하여 문명의 외양을 이루는 자가 있다. 석조건물과 철교와 함선과 총포 같은 것이 이것이다. 우리 일본은 문명의 고향이 아니면서, 그 머무르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따름. 결국 이 상업의 호경기, 이 문명의 외관은, 국가의 가난을 초래해 오랜 세월 뒤에는 틀림없이 조국의 독립을 해칠 수 있는 것이다. 생각건대 내가 여기서 문명이라 하지 않고 독립이라는 문자를 사용한 것도, 이러한 오해를 방지하려는 것의 취지일 뿐.
이와 같이, 결국 목표를 조국의 독립으로 정해, 마치 지금의 인간 만사를 녹여서 하나로 귀속시켜, 모두 이것을 저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으로 할 때는, 그 수단이 번거로운 것 제한이 있을 수 없다. 제도이든 학문이든, 상업이든 공업이든, 하나로서 이 수단이 아닌 것이 없다. 비단 제도와 학문 등의 부류뿐만 아니라, 혹은 비속하고 경박한 일, 오락물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그 내부 사정을 살펴 그 귀착하는 바의 효능을 살피면, 역시 그로써 문명 한 가운데의 조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과 죽음의 반복에 관한 사물에 대하여, 그 이해득실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일일이 사건의 부분을 보고 쉽게 결정할 수 없다. 비유건대 옛날부터 학자의 논의가 매우 많다. 혹은 검소함과 소박함을 중심으로 하는 자가 있고, 혹은 우수함과 아름다움 및 청아함을 즐기는 자가 있고, 전제와 독재를 편리하다고 하는 자가 있으면, 큰 아량과 자유를 주장하는 자가 있어, 의견이 백출, 서쪽이라 하면 동쪽이라 부르짖고, 왼쪽에서 논하면 오른쪽에서 반박하고, 도저히 그 끝에 이르는 바를 알지 못한다. 심지어는 이미 정해진 소견도 없고, 다만 일신의 지위에 따라 논의를 만들어, 일신과 논의는 그 출세와 낙향 및 영예와 쇠퇴를 함께하는 자가 있다. 더욱 이보다도 심한 것은 정부에 의지하여 몸을 보호하는 지위가 되어, 다양한 정권에 의지하여 다만 자기의 오랜 주장을 펴고자 하여, 그 주장의 이해득실에 이르러서는 망각하는 것과 같은 자가 있다. 비열하기도 역시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표현하면, 과녁 없이 활을 쏘는 것과 같고, 재판소 없이 소송하는 것과 같다. 어느 것을 옳다고 하고 어느 것을 그르다고 할 수 있는가? 다만 이것은 어린 아이의 장난일 따름. 시험적으로 보자, 천하의 사물, 그 부분에 관해서 논하면, 하나로 하여 옳지 않은 것이 없고, 하나로 하여 그르지 않은 것이 없다. 검소함과 소박함은 야만 및 난폭과 비슷하여도, 한 사람의 몸에 관해서는 이것을 권장하지 않을 수 없다. 우수하고 아름다움과 청아함은 사치와 황당함과 같다고 하여도, 전국 백성의 생계를 도모하면 매일 우수함과 아름다움으로 진보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없다. 국체론(国体論)의 완고함은 민권(民権)을 위해서는 크게 불편한 것과 같을지라도, 지금 정치의 중심을 정하여 행정의 순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역시 크게 편리하다. 민권(民権)의 발흥이 난폭하다는 주장은 왕정국가를 위해서는 크게 해로운 것 같아도, 백성이 비굴한 옛날의 악습을 일소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면 역시 매우 편리하다. 충신과 의사(義士)에 대한 주장도 기독교에 대한 주장도, 유교론도 불교론도, 어리석다 하면 어리석고, 지혜롭다 하면 지혜롭고, 다만 이것을 시행하는 곳에 따라, 어리석음도 되고 지혜도 될 수 있을 따름. 게다가 저 암살과 양이(攘夷)를 주장하는 무리라 할지라도, 다만 그 하는 일을 역시 비난할 수 있으나, 충분히 그 사람들의 마음씨를 해부하여 검사하면, 반드시 한 조각의 보국심(報國心)이 있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본 장의 처음에 말한, 임금과 신하의 의리, 선조의 유래, 상하의 명분, 본말의 차별 등과 같은 것도, 인간 품행의 중심에 있어 귀중할 수 있는 조항이어서, 곧 문명의 방편이라면, 일반적으로 이것을 배척할 이유가 없다. 다만 이 방편을 사용하여 세상에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는, 그 용법이 어떤가에 놓여있을 뿐. 대체로 사람으로서 국가를 팔아먹겠다는 악심을 품지 않는 것 이상의 사람이라면, 반드시 국가의 이익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자가 없다. 만약 그렇지 않아서 국가에 해를 끼치는 일이 있으면, 그 죄는 다만 지향하는 바의 목표를 알지 못하여 우연히 범하는 죄이다. 대체로 세상의 사물은 여러 수단을 모아 공적을 이루는 것이라면, 그 수단은 노력하여 많기가 필요하고, 또 많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천백의 수단을 사용할 때에 그 용법을 그르치는 일이 없고, 이 수단은 과연 이 목표에 관련되는 것인지, 만약 관련되면 어떤 길로 해서 이것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인지, 혹시 직접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인지, 혹시 간접적으로 또 특별한 수단을 두어 이 수단을 거쳐 나중에 달성하는 것인지, 혹은 두 가지 수단이 있으면 어느 것이 중요하여 먼저 해야 하는지, 어느 것이 가벼워 뒤로 할 수 있는지 하여, 다양하게 궁리하여, 결국 그 최후와 최상의 큰 목표를 잊지 않는 것이 긴요할 따름. 또한 저 장기를 두는 자가, 천 가지 만 가지 수가 있어도, 결국 그 목표는 자기의 궁(宮)을 지키고 적의 궁(宮)을 포위하는 한 가지 일에 놓인 것과 같다. 만약 그렇지 않고 궁(宮)보다 차(車)를 중요시하는 자가 있으면, 이것을 서투른 장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이 장(章)이 착안하는 조국독립이라는 네 글자를 내걸어, 내외 구별을 분명히 하고, 그로써 대중이 따를 수 있는 길을 적시할 수 있다면, 사물의 경중도 비로소 여기서 헤아릴 수 있고, 사물의 완급도 비로소 여기서 정할 수 있고, 경중과 완급이 분명하면, 어제 분노했던 일도 오늘은 기쁠 수 있는 것이 되고, 작년에 즐긴 일도 올해는 염려해야 하는 것이 되고, 득의양양함이 변하여 걱정이 되고, 천국이 변하여 고통의 세상이 되고, 원수도 친구가 되고, 타인도 형제가 되고, 기쁨과 분노를 함께하고, 걱정과 즐거움을 동일시하고, 그로써 동일한 목표를 지향할 수 있지! 나의 소견에서 지금의 일본 인심을 유지함에는 다만 이 한 가지 방법만 있을 따름.
巻之六
第十章 自国の独立を論ず
前の第八章第九章に於て、西洋諸国と日本との文明の由来を論じ、其全体の有様を察して之を比較すれば、日本の文明は西洋の文明よりも後れたるものと云はざるを得ず。文明に前後あれば前なる者は後なる者を制し、後なる者は前なる者に制せらるゝの理なり。昔鎖国の時に在ては、我人民は固より西洋諸国なるものをも知らざりしことなれども、今に至ては既に其国あるを知り、又其文明の有様を知り、其有様を我に比較して前後の別あるを知り、我文明の以て彼に及ばざるを知り、文明の後るゝ者は先だつ者に制せらるゝの理をも知るときは、其人民の心に先づ感ずる所のものは、自国の独立如何の一事に在らざるを得ず。抑も文明の物たるや極て広大にして、凡そ人類の精神の達する所は悉皆其区域にあらざるはなし。外国に対して自国の独立を謀るが如きは、固より文明論の中に於て瑣々たる一箇条に過ぎざれども、本書第二章に云へる如く、文明の進歩には段々の度あるものなれば、其進歩の度に従て相当の処置なかる可らず。今我人民の心に自国の独立如何を感じて之を憂ふるは、即ち我国の文明の度は今正に自国の独立に就て心配するの地位に居り、其精神の達する所、恰も此一局に限りて、未だ他を顧るに遑あらざるの証拠なり。故に余輩が此文明論の末章に於て自国独立の一箇条を掲るも、蓋し人民一般の方向に従ひ、其精神の正に達する所に就て議論を立たるものなり。尽く文明の蘊奥(うんあう)を発して其詳なるを究るが如きは、之を他日後進の学者に任ずるのみ。
昔し封建の時代には、人間の交際に君臣主従の間柄と云ふもの有て世の中を支配し、幕府並に諸藩の士族が各其時の主人に力を尽すは勿論、遠く先祖の由来を忘れずして一向一心に御家の御ためを思ひ、其食を食む者は其事に死すとて、己が一命をも全く主家に属したるものとして、敢て自から之を自由にせず、主人は国の父母と称して、臣下を子の如く愛し、恩義の二字を以て上下の間を円く固く治めて、其間柄の美なること或は羨む可きものなきに非ず。或は真に忠臣義士に非ざるも、一般に義を貴ぶの風俗なれば、其風俗に従て自から身の品行を高尚に保つ可きことあり。譬へば士族の間にて其子弟を誡(いましむ)るには、必ず身分又は家柄等の言葉を用ひ、侍の身分として鄙劣は出来ずと云ひ、或は先祖以来の家柄に対してと云ひ、或は御主人様に申訳けなしと云ひ、身分家柄御主人様は正しく士族の由る可き大道にして、終身の品行を維持する綱の如し。西洋の語に所謂「モラル・タイ」なるものなり。
此風俗は唯士族と国君との間に行はるゝのみに非ず、普ねく日本全国の民間に染込みて、町人の仲間にも行はれ、百姓の仲間にも行はれ、穢多の仲間に於ても、非人の仲間に於ても、凡そ人間の交際あれば至大より至小に至るまで行渡らざる所なし。譬へば町人百姓に本家別家の義あり、穢多非人にも親分子分の別ありて、其義理の固きこと猶かの君臣の如く然り。
此風俗を名けて或は君臣の義と云ひ、或は先祖の由緒と云ひ、或は上下の名分と云ひ、或は本末の差別と云ひ、其名称は何れにても、兎に角に日本開闢以来今日に至るまで人間の交際を支配して、今日までの文明を達したるものは、此風俗習慣の力にあらざるはなし。
輓近外国人と交を結ぶに至て、我国の文明と彼の国の文明とを比較するに、其外形に見はれたる技術工芸の彼に及ばざるは固より論を俟たず、人心の内部に至るまでも其趣を異にせり。西洋諸国の人民は智力活潑にして、身躬からよく其身を制し、其人間の交際は整斉にして事物に順序を備へ、大は一国の経済より小は一家一身の処分に至るまで、迚も今の有様にては我日本人の企て及ぶ所に非ざるなり。概して云へば、西洋諸国は文明にして我日本は未だ文明に至らざること、今日に至て始て明にして、人の心に於て之を許さゞるものなし。
是に於てか、世の識者、我日本の不文なる所以の源因を求めて、先づ第一番に之を我古風習慣の宜しからざるに帰し、乃ち此古習を一掃せんとして専ら其改革に手を着け、廃藩置県を始として都て旧物を廃し、大名も華族と為り、侍も貫属と為り、言路を開き人物を登用するの時節なれば、昔時五千石の大臣も兵卒と為り、一人扶持の足軽も県令と為り、数代両替渡世の豪商は身代限と為り、一文なしの博徒は御用達と為り、寺は宮と為り、僧侶は神官と為り、富貴福禄は唯人々の働次第にて、所謂功名自在、手に唾して取る可きの時節と為り、開闢以来我人民の心の底に染込たる恩義由緒名分差別等の考は漸く消散して、働の一方に重心を偏し、無理によく之を名状すれば人心の活潑にして、今の世俗に云ふ所の文明駸々乎(しんしんこ)として進むの有様と為りたり。
扨この功名自在文明駸々乎たるの有様にて、識者は注文通りの目的を達し、此文明の駸々乎を以て真の駸々乎と為して他に求る所なきやと尋るに、決して然らず。識者は今の文明を以て決して自から満足する者には非ざる可し。如何となれば、今の事物の有様にて我人民の品行に差響く所の趣を見るに、人民は恰も先祖伝来の重荷を卸し、未だ代りの荷物をば荷(にな)はずして休息する者の如くなればなり。其次第甚だ明なり。廃藩の後は大名と藩士との間に既に君臣の義なし。強ひて窃に此義を務めんとすれば、或は迀遠と云はるゝも申分けある可らず。足軽が隊長と為りて前年の支配頭を指揮すれば、其号令には背く可らず。上下、処を異にして、制法厳なるが如くなれども、支配頭も唯銭をさへ出せば兵卒たるの役は免かる可し。故に足軽も得意にして隊長たる可し、支配頭も亦得意にして閑散たる可し。博徒が御用達と為て威張れば、身代限に為りたる町人は時勢を咎めて其身を責めず、亦気楽に世を渡る可し。神官が時を得たりとて得意の色を為せば、僧侶も公然と妻帯して亦得意の色を為せり。概して云へば今の時節は上下貴賎皆得意の色を為す可くして、貧乏の一事を除くの外は更に身心を窘るものなし。討死も損なり、敵討も空なり、師に出れば危し、腹を切れば痛たし。学問も仕官も唯銭のためのみ、銭さへあれば何事を勉めざるも可なり、銭の向ふ所は天下に敵なしとて、人の品行は銭を以て相場を立たるものゝ如し。此有様を以て昔の窮屈なる時代に比すれば、豈これを気楽なりと云はざる可けんや。故に云く、今の人民は重荷を卸して正に休息する者なり。
然りと雖ども、休息とは何も為す可き仕事なき時の話なり。仕事を終る歟、又は為す可き仕事なくして、休息するは尤のことなれども、今我邦の有様を見れば決して無事の日に非ず。然も其事は昔年に比して更に困難なる時節なり。世の識者も爰に心付かざるに非ず、必ず休息す可らざるの勢を知て、勉て人心を有為に導かんとし、学者は学校を設て人に教へ、訳者は原書を訳して世に公布し、政府も人民も専ら文学技芸に力を尽して之を試れども、人民の品行に於て未だ著しき功能を見ず。学芸に身を委(ゆだぬ)る者の趣を見るに、其科業は忙はしからざるに非ざれども、一片の本心に於て私有をも生命をも抛つ可き場所と定めたる大切なる覚悟に至ては、或は忘れたるが如くして兎角心に関するものなく、安楽世界と云はざるを得ず。
或る人々は爰に注意し、今人の所業を認めて之を浮薄と為し、其罪を忘古の二字に帰して、更に大義名分を興張し、以て古に復せんとして、乃ち其教を脩め、神世の古に証拠を求めて国体論なるものを唱へ、此論を以て人心を維持せんことを企てたり。所謂皇学なるもの、是なり。此教も亦謂れなきに非ず。立君の国に於て君主を奉尊し、行政の権を此君に附するは、固より事理の当然にして、政治上に於ても最も緊要なることなれば、尊王の説決して駁す可らずと雖ども、彼の皇学者流は尚一歩を進めて、君主を奉尊するに、其奉尊する由縁を政治上の得失に求めずして、之を人民懐古の至情に帰し、其誤るの甚しきに至ては、君主をして虚位を擁せしむるも之を厭はず、実を忘れて虚を悦ぶの弊なきを得ず。抑も人情の赴く所は一時の挙動を以て容易に変ず可きものに非ざれば、今人の至情に依頼して君主奉尊の教を達せんとするには、先づ其人情を変じ、旧を忘れて新に就かしめざる可らず。然るに我国の人民は数百年の間、天子あるを知らず、唯これを口碑に伝ふるのみ。維新の一挙以て政治の体裁は数百年の古に復したりと称すと雖ども、王室と人民との間に至密の交情あるに非ず、其交際は政治上の関係のみにて、交情の疏密を論ずるときは、今の人民は鎌倉以来封建の君に牧せられたるものなれば、王室に対するよりも封建の旧君に対して親密ならざるを得ず。普天の下、唯一君の大義とて、其説は立つ可しと雖ども、事の実際に就て之を視れば必ず行はれざる所あるを知る可し。今の勢にては人民も旧を忘れて封建の君を思ふの情は次第に消散するに似たりと雖ども、新に王室を慕ふの至情を造り、之をして真に赤子の如くならしめんとするは、今世の人心と文明の有様とに於て頗る難きことにて、殆ど能す可らざるに帰す可し。或は人の説に、王制一新は人民懐古の情に基きしものにて、人情霸府を厭ふて王室を慕ひしことなりと云ふ者あれども、必竟事実を察せざるの説のみ。若し果して此説の如く、人情真に旧を慕ふものなれば、数百年来民心に染込たる霸政をこそ慕ふ筈なれ。凡そ今の世の士族其外の者にて先祖の由緒など唱るは、多くは鎌倉以後の世態に関係するものなり。霸政の由来も亦旧くして広きものと云ふ可し。或は又人情は旧を忘れて新を慕ふものとすれば、王政の行はれたるは霸政以前のことにて最も旧きものなれば、王霸両様に就て孰れを忘れんか、必ず其最も旧きものを忘るゝの理なり。或は又人心の王室に向ふは時の新旧に由るに非ず、大義名分の然らしむるものなりとの説あれども、大義名分とは真実無妄の正理ならん。真実無妄の理は人間の須臾も離る可らざるものなり。然るに鎌倉以来人民の王室を知らざること殆ど七百年に近し。此七百年の星霜は如何なる時間なるや。此説に従へば七百年の間は人民皆方向を誤り、大義名分も地を払て尽きたる野蛮暗黒の世と云はざるを得ず。固より人事の泰否は一年又は数年の成行を見て決定す可きに非ずと雖ども、苟も人心を具して自から方向を誤つと知りながら、安ぞよく七百年の久しきに堪ゆ可けんや。加之実際に就ても亦証す可きものあり。実に此七百年の間は決して暴乱のみの世に非ず。今の文明の源を尋れば、十に七、八は此年間に成長して今に伝へたる賜と云ふ可し。
右の次第を以て考れば、王制一新の源因は人民の霸府を厭ふて王室を慕ふに由るに非ず、新を忘れて旧を思ふに由るに非ず、百千年の間、忘却したる大義名分を俄に思出したるが為に非ず、唯当時幕府の政を改めんとするの人心に由て成たるものなり。一新の業既に成て、天下の政権、王室に帰すれば、日本国民として之を奉尊するは固より当務の職分なれども、人民と王室との間にあるものは唯政治上の関係のみ。其交情に至ては決して遽に造る可きものに非ず。強ひて之を造らんとすれば其目的をば達せずして、却て世間に偽君子の類を生じて益人情を軽薄に導くことある可し。故に云く、皇学者流の国体論は、今の人心を維持して其品行を高尚の域に導くの具と為すに足らざるなり。
又一種の学者は、今の人心の軽薄なるを患ひ、之を救ふに国体論を以てするも功を奏す可らざるを知り、乃ち人の霊魂に依頼し、耶蘇の宗教を施して人心の非を糺し、安身立命の地位を与へて衆庶の方向を一にし、人類の当に由る可き大目的を定めんとするの説あり。此説も決して軽率なる心より生じたるものに非ず。其説の本を尋るに、学者以為(おもへ)らく、今の人民を見れば百人は百人、皆其向ふ所を異にし、政治上の事に就て衆庶一定の説なきは勿論、宗教に至ても神か仏か定む可らず、甚しきは無宗旨と名く可き者もあり、人類に於て最も大切なる霊魂の止まる所をも知らず、安ぞ他の人事を顧るに遑あらん、天道を知らず、人倫を知らず、父子なく、夫婦なし、恰も是れ現在の地獄なれば、苟も世を憂る者は此有様を救はざる可らず、又一方より考れば、宗教を以て一度び人心を維持するを得ば、衆庶の止まる所、始て爰に定り、拡て之を政治上に施さば、亦以て一国独立の基とも為る可しとの趣意なり。決して之を軽率なる妄説と云ふ可らず。実に此道を以て今の士民を教化し、其心の非を糺して徳の門に入らしめ、仮令ひ天道の極度に達せざるも、父子夫婦の人倫を明にして孝行貞節の心を励まし、子弟教育の義務たるを知らしめ、蓄妾淫荒の悪事たるを弁へしむる等の如きは、世の文明に関して其功能の最も大なるものなれば、固より間然す可きものなしと雖ども、目今現に我国の有様に就て得失を論ずるときは、余は全く此説に同意するを得ず。如何となれば彼の学者の臆測に、耶蘇の教を拡て之を政治上に及ぼし、以て一国独立の基を立てんとするの説に至て、少しく所見を異にする所あればなり。
元来耶蘇の宗教は永遠無窮を目的と為し、幸福安全も永遠を期し、禍患疾苦も永遠を約し、現在の罪よりも未来の罪を恐れ、今生の裁判よりも後生の裁判を重んじ、結局今の此世と未来の彼の世とを区別して論を立て、其説く所、常に洪大にして、他の学問とは全く趣を異にするものなり。一視同仁四海兄弟と云へば、此地球は恰も一家の如く、地球上の人民は等しく兄弟の如くにして、其相交るの情に厚薄の差別ある可らず。四海既に一家の如くなれば、又何ぞ家内に境界を作るに及ばん。然るに今この地球を幾個に分ち、区々たる国界を設け、人民各其堺内に党与を結て一国人民と称し、其党与の便利のみを謀らんがためにとて政府を設け、甚しきは兇器を携へて界外の兄弟を殺し、界外の地面を奪ひ、商売の利を争ふが如きは、決して之を宗教の旨と云ふ可らず。是等の悪業を見れば永遠後生の裁判は姑く擱き、現在今生の裁判も未だ不行届と云ふ可し。耶蘇の罪人なり。
然りと雖ども、今世界中の有様を見れば処として建国ならざるはなし、建国として政府あらざるはなし。政府よく人民を保護し、人民よく商売を勤め、政府よく戦ひ、人民よく利を得れば、之を富国強兵と称し、其国民の自から誇るは勿論、他国の人も之を羨み、其富国強兵に傚はんとして勉強するは何ぞや。宗教の旨には背くと雖ども、世界の勢に於て止むを得ざるものなり。故に今日の文明にて世界各国互ひの関係を問へば、其人民、私の交には、或は万里外の人を友として一見旧相識の如きものある可しと雖ども、国と国との交際に至ては唯二箇条あるのみ。云く、平時は物を売買して互に利を争ひ、事あれば武器を以て相殺すなり。言葉を替へて云へば、今の世界は商売と戦争の世の中と名くるも可なり。固より戦争にも種類多くして、或は世に戦争を止るがために戦争する戦争もあらん。貿易も素と天地間の有無を互に通ずることにて最も公明なる仕事なれば、両様とも其素質に於て一概に之を悪事とのみ云ふ可らずと雖ども、今の世界に行はるゝ各国の戦争と貿易との情実を尋れば、宗教愛敵の極意より由て来りしものとは万々思ふ可らざるなり。
右の如く宗教の一方より光を照らして事を断じ、唯貿易と戦争と云へば其事甚だ粗野にして賎しむ可きに似たれども、今の事物の有様に従て之を見れば又大に然らざるものあり。如何となれば貿易は利を争ふの事なりと雖ども、腕力のみを以て能す可きものに非ず、必ず智恵の仕事なれば、今の人民に向ては之を許さゞる可らず。且外に貿易せんとするには内に勉めざる可らざるが故に、貿易の盛なるは内国の人民に智見を開き、文学技芸の盛に行はれて其余光を外に放たるものにて、国の繁栄の徴候と云ふ可ければなり。戦争も亦然り。単に之を殺人の術と云へば悪む可きが如くなれども、今直に無名の師を起さんとする者あれば、仮令ひ今の不十分なる文明の有様にても、不十分は不十分のまゝに、或は条約の明文あり、或は談判の掛引あり、万国の公法もあり、学者の議論もありて、容易に其妄挙を許さず。又或は唯利のために非ずして、国の栄辱のため、道理のためにとて起す師もなきに非ず。故に殺人争利の名は宗教の旨に対して穢らはしく、教敵たるの名は免かれ難しと雖ども、今の文明の有様に於ては止むを得ざるの勢にて、戦争は独立国の権義を伸ばすの術にして、貿易は国の光を放つの徴候と云はざるを得ず。
自国の権義を伸ばし、自国の民を富まし、自国の智徳を脩め、自国の名誉を燿かさんとして勉強する者を、報国の民と称し、其心を名けて報国心と云ふ。其眼目は他国に対して自他の差別を作り、仮令ひ他を害するの意なきも、自から厚くして他を薄くし、自国は自国にて自から独立せんとすることなり。故に報国心は一人の身に私するには非ざれども、一国に私するの心なり。即ち此地球を幾個に区分して其区内に党与を結び、其党与の便利を謀て自から私する偏頗(へんぱ)の心なり。故に報国心と偏頗心とは名を異にして実を同ふするものと云はざるを得ず。此一段に至て、一視同仁四海兄弟の大義と報国尽忠建国独立の大義とは、互に相戻て相容れざるを覚るなり。故に宗教を拡て政治上に及ぼし、以て一国独立の基を立てんとするの説は、考の条理を誤るものと云ふ可し。宗教は一身の私徳に関係するのみにて、建国独立の精神とは其赴く所を異にするものなれば、仮令ひ此教を以て人民の心を維持するを得るも、其人民と共に国を守るの一事に至ては果して大なる功能ある可らず。概して今の世界各国の有様と宗教の趣意とを比較すれば、宗教は洪大なるに過ぎ、善美なるに過ぎ、高遠なるに過ぎ、公平なるに過ぎ、各国対立の有様は狭隘なるに過ぎ、鄙劣なるに過ぎ、浅見なるに過ぎ、偏頗なるに過ぎて、両ながら相接すること能はざるなり。
又一種の漢学者は其所見稍や広くして、皇学者流の如く唯壊古の情に依頼するのみには非ざれども、結局其眼目は礼楽征伐を以て下民を御するの流儀にて、情実と法律と相半して民心を維持せんとするものなれば、迚も今の世の有様に適す可らず。若し其説をして行はれしめなば、人民は唯政府あるを知て民あるを知らず、官あるを知て私あるを知らず、却て益卑屈に陥て、遂に一般の品行を高尚にするの場合には至る可らず。此事に就ては本書第七章及び第九章に所論あれば今爰に贅せず。
以上所論の如く、方今我邦の事情困難なりと雖ども、人民は更に此困難を覚へず、恰も旧来の覊絆を脱して却て安楽なるが如き有様なれば、有志の士君子、深く之を憂ひ、或る皇学者は国体論を唱へ、或る洋学者は耶蘇教を入れんとし、又或る漢学者は堯舜の道を主張し、如何にもして民心を維持して其向ふ所を一にし、以て我邦の独立を保たんとて、各勉る所ありと雖ども、今日に至るまで一も功を奏したるものなし、又後日に至ても一も功を奏す可きものなし。豈長大息す可きに非ずや。是に於てか余輩も亦聊か平生の所見を述べざるを得ず。都て事物を論ずるには、先づ其事物の名と性質とを詳にして、然る後に之を処分するの術を得べし。譬へば火事を防ぐには、先づ火の性質を知り、水を以て之を消す可きを詳にして、然る後に消防の術を得べきが如し。今我国の事態困難なりと云ふと雖ども、其困難とは抑も亦何等の箇条を指して云ふや。政令行はれざるに非ず、租税納めざるに非ず、人民頓に無智に陥りたるに非ず、官員皆愚にして不正なるに非ず。是等の件々を枚挙すれば日本は依然たる旧の日本にして更に変動あることなく、更に憂ふ可きものあるを見ず、或は前日の有様に比較すれば新に面目を改めて善に進たりと云ふも可なり。然るに我国の事態を前年に比すれば更に困難にして一層の憂患を増すとは、果して何等の箇条を指して何等の困難事を憂ることなるや、之を質さゞる可らず。按ずるに此困難事は我祖先より伝来のものに非ず、必ず近来俄に生じたる病にて、既に我国命貴要の部を犯し、之を除かんとして除く可らず、之を療せんとして医薬に乏しく、到底我国従来の生力を以て抗抵す可らざるものならん。如何となれば、依然たる日本国にして旧に異なることなくば之に安心す可き筈なれども、特に之を憂るは必ず別に新に憂ふ可き病を生じたるの証なり。世の識者の憂患する所も必ず此病に在ること断じて知る可しと雖ども、識者は此病を指して何と名るや。余輩は之を外国交際と名るなり。
世の識者は明に此病に名を下だして外国交際と云はざるにもせよ、其憂る所は正しく余輩と同様にして、今の外国交際の困難を憂るものなれば、先づ爰に物の名は定りたり。次で又其物の性質を詳にせざる可らず。抑も外国人の我日本に来るは唯貿易のためのみ。而して今日本と外国との間に行はるゝ貿易の有様を視るに、西洋諸国は物を製するの国にして、日本は物を産するの国なり。物を製するとは天然の物に人工を加ることにて、譬へば綿を変じて織物と為し、鉄を製して刃物と為すが如し。物を産するとは天然の力に依頼して素質の物を産するを云ふ。日本にて生糸を産し、鉱品を掘出すが如し。故に今仮に名を下だして、西洋諸国を製物の国と名け、日本を産物の国と名く。固より製物と産物とは其分界明に限り難しと雖ども、甲は人力を用ること多く、乙は天力に依頼すること多きを以て、名を異にするものなり。扨経済の道に於て、一国の貧富は天然に生ずる物産の多寡に関係すること思の外に少なくして、其実は専ら人力を用るの多少と巧拙とに由るものなり。土地肥饒なる印度の貧にして、物産なき荷蘭の富むが如し。故に製物国と産物国との貿易に於ては、甲は無形無限の人力を用ひ、乙は有形有限の産物を用ひて、力と物とを互に交易するものなり。細に之を云へば、産物国の人民は労す可き手足と智恵とを労せずして、製物国の人を海外に雇ひ置き、其手足と智恵とを借用して之を労せしめ、其労の代として自国に産する天然の物を与ふることなり。又これを譬へば宛行(あてがひ)三百石、家族十人の侍が、安楽逸居して何事をも為さず、朝夕の飲食は仕出し屋より取り、夏冬の衣服は呉服屋より買ひ、世帯に入用なるものは一より十に至るまで悉く市中に出来上りたる物を買立てゝ、其代として毎年三百石の米を遣払ふが如し。三百石の米は恰も天然の物産なれども、年々の遣払ひにて迚も蓄財の目途はある可らず。方今我日本と外国との貿易の有様を論ずれば、其大略斯の如し。結局我国の損亡と云はざるを得ず。
又西洋諸国は製物を以て既に其富を致し、日新文明の功徳に由て人口年に繁殖し、英国の如きは今正に其極度に達したるものと云ふ可し。亜米利加合衆国の人民も英人の子孫なり、「アウスタラリヤ」に在る白人も英より移りたるものなり、東印度にも英人あり、西印度にも英人あり、其数殆ど計る可らず。仮に今世界中に散在せる英人と、数百年来英国より出たる者の子孫とを集めて、其本国たる今の大不列顛及び「アイルランド」の地に帰らしめ、現在の英人三千余万の人民と同処に住居せしむることあらば、全国に生ずる物を以て衣食に足らざるは固より論を俟たず、過半の平地は家を建るがために占めらるゝことならん。文明次第に進て人事の都合宜しければ人口の繁殖すること以て知る可し。子を生むの一事は人も鼠も異なることなし。鼠は其身を保護すること能はずして、或は飢寒に死し或は猫に捕るゝに由て、其繁殖も甚しからずと雖ども、人事の都合宜しくして飢寒戦争流行病の患少なければ、人の繁殖は所謂鼠算の割合に増すの理にて、欧羅巴中の古国にては既に其始末に困却せり。彼の国経済家の説にて、此患を防ぐの策は、第一、自国の製造物を輸出して、土地の豊饒なる国より衣食の品を輸入することなり。第二、自国の人民を海外の地に移して殖民することなり。此第一策は限ある仕事にて未だ十分に患を救ふに足らず、第二策は大に財本を費す仕事にて或は功を奏せざることあり。故に第三策は、外国に資本を貸して其利益を取り、以て自国の用に供することなり。蓋し人を海外の地に移すには既に開けたる地方を最も良とすと雖ども、開けたる地には自から建国政府ありて、其人民にも一種の習慣風俗を備へ、他国より来て其中心に入り之と雑居して便利を得んとするも、容易に成す可きことに非ず。唯一の手掛りは其海外の国なるもの、未だ勧工の術を知らずして富を得ず、資本に乏しくして力役の人多く、之がために金の利足貴ければ、本国に余ある元金を齎らして此貧国に貸付け、労せずして利益を取るの術なり。言を替へて云へば、人を雑居せしめずして金を雑居せしむるの法なり。人は習慣風俗に由て其雑居容易ならずと雖ども、金なれば自国の金にても他国の金にても其目撃する所に差別なきが故に、之を用る者は唯利足の高下を問ひ、甘んじて他国の金を融通し、識らず知らずして他国の人に金利を払ふことなり。金主の名案と云ふ可し。方今日本にても既に若干の外債あり、其利害得失を察せざる可らず。抑も文明の国と未開の国とを比較すれば、生計の有様、全く其趣を異にし、文明次第に進むに随て其費用も亦随て洪大なれば、仮令ひ人口繁殖の患は之を外にするも、平常の生計に於て其費用の一部は必ず他に求めざる可らず。其これを求る所は即ち下流の未開国なれば、世界の貧は悉く下流に帰すと云ふ可し。文明国の資本を借用して其利足を払ふは、貧の正に下流に帰して其形に見はれたるものなり。故に資本の貸借は必ずしも人口繁殖の一事のみに関係するものに非ざれども、今特に此事を挙げたるは、唯学者の了解に便ならしめんがために、西洋人の利を争はざる可らざる一の明なる源因を示したるのみ。
右は外国交際の性質に就き其理財上の損徳を論じたるものなり。今又此交際に由て我人民の品行に差響く所のものを示さん。近来我国人も大に面目を改め、人民同権の説は殆ど天下に洽ねくして之に異論を入るゝ者はなきが如し。蓋し人民同権とは唯一国内の人々互に権を同ふすると云ふ義のみに非ず。此国の人と彼国の人と相対しても之を同ふし、此国と彼国と対しても之を同ふし、其有様の貧富強弱に拘はらず、権義は正しく同一なる可しとの趣意なり。然るに外国人の我国に来て通商を始めしより以来、其条約書の面には彼我同等の明文あるも、交際の実地に就て之を見れば決して然らず。社友小幡君の著述、民間雑誌第八編に云へることあり。前略、米国の我国に通信を開くや、水師提督「ペルリ」をして一隊の軍艦を率ひて我内海に驀入(ばくにふ)せしめ、我に強るに通信交易の事を以てし、而して其口実とする所は、同じく天を戴き同じく地を踏て共に是れ四海の兄弟なり、然るに独り人を拒絶して相容れざるものは天の罪人なれば、仮令ひ之と戦ふも通信貿易を開かざる可らずとの趣意なり。何ぞ其言の美にして其事の醜なるや。言行齟齬するの甚しきものと云ふ可し。此際の形容を除て其事実のみを直言すれば、我と商売せざる者は之を殺すと云ふに過ぎず。中略 今試に都下の景況を見よ。馬に騎し車に乗て意気揚々、人を避けしむる者は、多くは是れ洋外の人なり。偶ま邏卒なり行人なり、或は御者車夫の徒なり、之と口論を生ずることあれば、洋人は傍に人なきが如く、手以て打ち足以て蹴るも、怯弱卑屈の人民これに応ずるの気力なく、外人如何ともす可らずとて、怒を呑て訴訟の庭に往かざる者も亦少なからず。或は商売取引等の事に付き之を訴ることあるも、五港の地に行て結局彼国人の裁判に決するの勢なれば、果して其冤を伸る能はず、是を以て人々相語て云く、寧ろ訴て冤を重ねんより、若かず怒を呑むの易きにとて、其状恰も弱少の新婦が老悍の姑側に在るが如し。外人は既に斯の如き勢力を蓄へ、又財貨饒なる国より財貨乏しき国に来て其費用する所多きがため、利に走るの徒は皆争て之に媚を献じ、以て其嚢中を満たさんとす。故に外人の到る所は温泉場も宿駅も茶亭も酒店も一種軽薄の人情を醸成し、事理の曲直を顧みずして銭の多寡を問ひ、既に傍若無人なる外人をして益其妄慢を逞ふせしむるが如きは、一見以て厭悪するに堪へたりと。以上小幡君の議論にて真に余が心を得たるものなり。此他外国人との交際に付ては、居留地の関係あり、内地旅行の関係あり、外人雇入の関係あり、出入港税の関係あり。此諸件に付き、仮令ひ表向は各国対立彼我同権の体裁あるも、其実は同等同権の旨を尽したりと云ふ可らず。外国に対して既に同権の旨を失ひ、之に注意する者あらざれば、我国民の品行は日に卑屈に赴かざるを得ざるなり。
前に云へる如く、近来は世上に人民同権の説を唱る者多く、或は華士族の名称をも廃して全国に同権の趣旨を明にし、以て人民の品行を興起して其卑屈の旧習を一掃せざる可らずと云ふ者あり。其議論雄爽(ゆうさう)、人をして快然たらしむと雖ども、独り外国の交際に就ては此同権の説を唱る者少なきは何ぞや。華士族と云ひ平民と云ふも、等しく日本国内の人民なり。然るも其間に権力の不平均あれば、尚且これを害なりとして平等の地位に置かんことを勉めり。然るに今利害を別にし、人情を異にし、言語風俗、面色骨格に至るまでも相同じからざる、此万里外の外国人に対して、権力の不平均を患へざるは抑も亦何の由縁なるや。咄々怪事(とつとつくわいじ)と云ふ可し。其由縁は必ず種々様々なる可しと雖ども、余輩の所見にて其最も著しきもの二箇条を得たり。即ち第一条は世に同権の説を唱る者、其論説に就き未だ深切なる場合に至らざることなり。第二条は外国の交際日浅くして、未だ其害の大なるものを見ざることなり。左に之を論ぜん。
第一条 今の世に人民同権の説を唱る者少なからずと雖ども、其これを唱る者は大概皆学者流の人にして、即ち士族なり、国内中人以上の人なり、嘗て特権を有したる人なり、嘗て権力なくして人に窘められたる人に非ず、権力を握て人を窘めたる人なり。故に其同権の説を唱るの際に当て、或は隔靴の歎なきを得ず。譬へば自から喰はざれば物の真味は得て知る可らず、自から入牢したる者に非ざれば牢内の真の艱苦は語る可らざるが如し。今仮に国内の百姓町人をして智力あらしめ、其嘗て有権者のために窘められて骨髄に徹したる憤怒の趣を語らしめ、其時の細密なる事情を聞くことあらば、始て真の同権論の切なるものを得べしと雖ども、無智無勇の人民、或は嘗て怒る可き事に遭ふも其怒る可き所以を知らず、或は心に之を怒るも口に之を語ることを知らずして、傍より其事情を詳にす可き手掛り甚だ稀なり。加之今日に於ても、世の中には権力不平均のために憤怒怨懣の情を抱く者必ず多からんと雖ども、明に之を知る可らず。唯我輩の心を以て其内情を察するのみ。故に今の同権論は到底これを人の推量臆測より出たるものと云はざるを得ず。学者若し同権の本旨を探て其議論の確実なるものを得んと欲せば、之を他に求む可らず、必ず自から其身に復して、少年の時より今日に至るまで自身当局の経験を反顧して発明することある可し。如何なる身分の人にても、如何なる華族士族にても、細に其身の経験を吟味せば、生涯の中には必ず権力偏重の局に当て嘗て不平を抱きしことある可ければ、其不平憤懣の実情は之を他人に求めずして自から其身に問はざる可らず。近く余が身に覚へあることを以て一例を示さん。余は元と生れながら幕府の時代に無力なる譜代の小藩中の小臣なり。其藩中に在るとき、歴々の大臣士族に接すれば、常に蔑視せられて、子供心にも不平なきを得ざりしと雖ども、此不平の真の情実は小臣たる余輩の仲間に非ざれば之を知らず。彼の大臣士族は今日に至ても或は之を想像すること能はざる可し。或は又藩地を出でゝ旅行するとき、公卿幕吏御三家の家来等に出逢へば、宿駅に駕籠を奪はれ、川場に先を越され、或は旅籠屋に相宿を許されずして、夜中俄に放逐せられたることもあり。此時の事情、目今に至ては唯一笑に属すと雖ども、現に其事に当たる時の憤懣は今尚これを想像す可し。而して此憤懣は唯譜代大名の家来たる我輩の身に覚へあるのみにて、此憤懣を生ぜしめたる公卿幕吏御三家の家来は漠然として之を知らず。仮令ひ漠然たらざるも僅に他の憤懣を推量臆測するに過ぎざるのみ。然りと雖ども結局余も亦日本国中に在ては中人以上士族の列に居たる者なれば、自分の身分より以上の者に対してこそ不平を抱くことを知れども、以下の百姓町人に向ては必ず不平を抱かしめたることもある可し。唯自から之を知らざるのみ。世上に此類の事は甚だ多し。何れにも其局に当らざれば其事の真の情実は知る可らざるものなり。
是に由て考れば、今の同権論は其所論或は正確なるが如くなるも、主人自から論ずるの論に非ずして、人のために推量臆測したる客論なれば、曲情の緻密を尽したるものに非ず。故に権力不平均の害を述るに当て、自から粗鹵迀遠の弊なきを得ず。国内に之を論ずるに於ても尚且粗鹵にして洩らす所多し。況や之を拡て外国の交際に及ぼし、外人と権力を争はんとするの事に於てをや。未だ之を謀るに遑あらざるなり。他日若し此輩をして現に其局に当らしめ、博く西洋諸国の人に接して親しく権力を争ふの時節と為り、其軽侮を蒙ること我百姓町人が士族に窘めらるゝが如く、譜代小藩の家中が公卿幕吏御三家の家来に辱しめらるゝが如き場合に至らば、始て今の同権論の迀遠なるを知り、権力不平均の厭ふ可く悪む可く怒る可く悲む可きを悟ることならん。加之昔の公卿幕吏士族の輩は仮令ひ無礼妄慢なるも、等しく国内の人にして且智力乏しき者なれば、平民は之に遇するに敬して遠くるの術を用ひ、陽に之を尊崇して陰に其銭を奪ふ等の策なきに非ず。 固より悪策なりと雖ども、聊か不平を慰るの方便たりしことあれども、今の外人の狡猾慓悍なるは公卿幕吏の比に非ず。其智以て人を欺く可し、其弁以て人を誣ゆ可し、争ふに勇あり、闘ふに力あり、智弁勇力を兼備したる一種法外の華士族と云ふも可なり。万々一も、これが制御の下に居て束縛を蒙ることあらば、其残刻の密なること恰も空気の流通をも許さゞるが如くして、我日本の人民は、これに窒塞するに至る可し。今より此有様を想像すれば、渾身忽ち悚然(しようぜん)として毛髪の聳(そばだ)つを覚るに非ずや。
爰に我日本の殷鑑として印度の一例を示さん。英人が東印度の地方を支配するに其処置の無情残刻なる実に云ふに忍びざるものあり。其一、二を挙れば、印度の政府に人物を採用するには英人も土人も同様の権利を有し、才学を吟味して用るの法なり。然るに此土人を吟味するには十八歳以下の者を限り、其吟味の箇条は固より英書を読て英の事情に通ずるに非ざれば叶はざることなるゆゑ、土人は十八歳の年齢に及ぶまでに、先づ自国の学問を終り兼て英学を勉強して、其英学の力を以て英人と相対し、英人の右に出るに非ざれば及第するを得ず。或は一年を過ぎて十九歳の時に成業する者あるも、年齢に限あれば才学を問はず人物を論ぜずして之を用に適せざる者と為し、一切官途に就て地方の事に参与するを許さず。英人は此無情なる苛法を以て尚足れりとせず、吟味を行ふの場所を必ず英の本国「ロンドン」に定め、故さらに土人をして万里の波濤を越へて「ロンドン」まで出張せしむるの法を設けたり。故に土人は十八歳の時既に吟味を受けて及第す可き学力を有するも、多分の金を費して遠路を往来せざれば官に就く可らざるの仕掛に制せられて、学力の深浅に拘はらず、家産に富まざれば官途に由なし。或は稀に奮発する者ありて旅費を抛ち「ロンドン」に行て吟味を受るも、不幸にして落第すれば徒に家産を破るのみ。其不便利なること譬へんに物なし。英の暴政、妙を得たりと云ふ可し。○又印度の政府にて裁判するに、参坐の者は土人を用ひず、必ず英人に限るを法とす。《「ジュ-リ」のことなり。西洋事情第三巻英国の条第九葉に出。》或る時、一の英人、印度の地方に於て鉄砲を以て土人を打殺したるに付き訴訟と為りしかば、被告人の申分に、何か一個の動物を見掛け、之を猿と認めて発砲したるが、猿には非ずして人なりしことならんとの答にて、参坐一列の面々も更に異議なく、被告人は無罪に決したりと云ふ。
近来「ロンドン」にて数名の学者、私に社を結て印度の有様を改革せんとて尽力する者あり。前条の愁訴は千八百七十四年の春、或る印度人より此社へ呈したる書中に記せしものなりとて、余が旧友、当時在「ロンドン」馬場辰猪君の報告なり。馬場氏は現に此会社にも出席して親しく其事情を聞見し、此類の事は枚挙に遑あらずと云ふ。
第二条 外国人の我国に通信するや玆に僅に二十年、五港を開くと雖ども輸出入の品も少なくして、外人の輻輳する所は横浜を第一とし、神戸之に亜ぎ、自余の三港は計るに足らず。条約面の約束に従ひ、各港に居留地を設けて、内外人民の住居に界を限り、外人旅行の地は港より各方に十里と定めて、此定限の外は特別の許可あらざれば往来を得せしめず、此他不動産の売買、金銀の貸借等に就ても、法を設けて内外の別を限ること多きが故に、今日に至るまで双方の交際は漸く繁盛に赴くと雖ども、内外人民の相触るゝこと甚だ少く、仮令ひ或は其交際に付き我人民に曲を蒙て不平を抱く者あるも、其者は大概皆開港場近傍の人民に止まりて、世間一般の風聞に伝るものは甚だ稀なり。且開港の初より政治上に係る交際の事務は政府一手の関する所にて、人民は嘗て其如何の状を知ることなし。生麦の一件に付き十万「ポンド」、下の関の償金三百万「ドルラル」、旧幕府の時代に亜国へ軍艦を注文し、仏国人に条約を結て横須賀の製造局を開き、維新以後も砲艦を買入れ、灯明台を建て、鉄道を造り、電信線を掛け、外債を募り、外人を雇ふ等、其交際甚だ煩はしくして、其間には或は全く我に曲を蒙らざるも無拠(よんどころなく)談判の機にて銭を損したることもあらん。結局彼の方に万々損害の患なきは明にして、我方に十分の利益と面目とを得たるや否は極て疑はしきことなれども、政府の独り関する所なれば人民は未だ之を知らず、啻に下賎の群民これを知らざるのみならず、学者士君子、又は政府の官員と雖ども、其事に与らざる者は之を知る可きの手掛りある可らず。故に我国の人民は外国交際に付き、内外の権力果して平均するや否を知らず、我に曲を蒙りたるや否を知らず、利害を知らず、得失を知らず、恬として他国の事を見るが如し。是即ち我国人の外国に対して権力を争はざる一の源因なり。蓋し之を知らざる者は之を憂るに由なければなり。
抑も外人の我国に来るは日尚浅し。且今日に至るまで我に著しき大害を加へて我面目を奪ふたることもあらざれば、人民の心に感ずるもの少なしと雖ども、苟も国を憂るの赤心あらん者は、聞見を博くして世界古今の事跡を察せざる可らず。今の亜米利加は元と誰の国なるや。其国の主人たる「インヂヤン」は、白人のために逐はれて、主客処を異にしたるに非ずや。故に今の亜米利加の文明は白人の文明なり、亜米利加の文明と云ふ可らず。此他東洋の国々及び大洋洲諸島の有様は如何ん、欧人の触るゝ処にてよく其本国の権義と利益とを全ふして真の独立を保つものありや。「ペルシャ」は如何ん、印度は如何ん、邏暹(しやむ)は如何ん、呂宋(るそん)呱哇(じやわ)は如何ん。「サンドウヰチ」島は千七百七十八年英の「カピタン・コック」の発見せし所にて、其開化は近傍の諸島に比して最も速なるものと称せり。然るに発見のとき人口三、四十万なりしもの、千八百二十三年に至て僅に十四万口を残したりと云ふ。五十年の間に人口の減少すること大凡そ毎年百分の八なり。人口の増減には種々の源因もある可ければ姑く之を擱き、其開化と称するものは何事なるや。唯此島の野民が人肉を喰ふの悪事を止め、よく白人の奴隷に適したるを指して云ふのみ。支那の如きは国土も洪大なれば、未だ其内地に入込むを得ずして、欧人の跡は唯海岸にのみありと雖ども、今後の成行を推察すれば、支那帝国も正に欧人の田園たるに過ぎず。欧人の触るゝ所は恰も土地の生力を絶ち、草も木も其成長を遂ること能はず。甚しきは其人種を殲(ほろぼ)すに至るものあり。是等の事跡を明にして、我日本も東洋の一国たるを知らば、仮令ひ今日に至るまで外国交際に付き甚しき害を蒙たることなきも、後日の禍は恐れざる可らず。
以上記す所のもの果して是ならば、我日本に於ける外国交際の性質は、理財上に論ずるも権義上に論ずるも至困至難の大事件にして、国命貴要の部分を犯したる痼疾と云ふ可し。而して此痼疾は我全国の人民一般の所患なれば、人民一般にて自から其療法を求めざる可らず。病の進むも自家の事なり、病の退くも自家の事なり。利害得失悉皆我に在ることにて、毫も他を頼む可らざるものなり。思想浅き人は輓近世の有様の旧に異なるを見て之を文明と名け、我文明は外国交際の賜なれば、其交際愈盛なれば世の文明も共に進歩す可しとて、之を喜ぶ者なきに非ざれども、其文明と名るものは唯外形の体裁のみ。固より余輩の願ふ所に非ず。仮令ひ或は其文明をして頗る高尚のものならしむるも、全国人民の間に一片の独立心あらざれば文明も我国の用を為さず、之を日本の文明と名く可らざるなり。地理学に於ては土地山川を以て国と名れども、余輩の論ずる所にては土地と人民とを併せて之を国と名け、其国の独立と云ひ其国の文明と云ふは、其人民相集て自から其国を保護し自から其権義と面目とを全ふするものを指して名を下だすことなり。若し然らずして国の独立文明は唯土地に附して人に関せざるものとせば、今の亜米利加の文明を見て「インヂヤン」のために祝す可きの理なり。或は又我日本にても、政治学術等の諸件を挙て之を文明なる欧人に附与し、我日本人は奴隷と為て使役せらるゝも、日本の土地に差響あることなくして、然も今の日本の有様よりも数百等を擢(ぬきん)でたる独立の文明国と為らん。不都合至極なるものと云ふ可し。
又或る学者の説に云く、各国交際は天地の公道に基きたるものなり、必ずしも相害するの趣意に非ざれば、自由に貿易し、自由に往来し、唯天然に任す可きのみ。若し或は我権義を損し我利益を失ふことあらば、其然る所以の源因は我に求めざる可らず、自から脩めずして人に多を求るは理の宜きものに非ず、今日既に諸外国と和交する上は飽まで誠意を尽して其交誼を全ふす可きなり、毫も疑念を抱く可らずと。此説真に然り。一人と一人との私交に於ては真に斯の如くなる可しと雖ども、各国の交際と人々の私交とは全く趣を異にするものなり。昔し封建の時代に行はれたる諸藩の交際なるものを知らずや、各藩の人民必ずしも不正者に非ざれども、藩と藩との附合に於ては各自から私するを免かれず。其私や藩外に対しては私なれども、藩内に在ては公と云はざるを得ず。所謂各藩の情実なるものなり。此私の情実は天地の公道を唱て除く可きに非ず、藩のあらん限りは藩と共に存して無窮に伝ふ可きものなり。数年前廃藩の一挙を以て始めて之を払ひ、今日に至ては諸藩の人民も漸く旧の藩情を脱するものゝ如しと雖ども、藩の存する間は決して咎む可らざりしことなり。僅に日本国内の諸藩に於ても尚且斯の如し。然るに東西懸隔、殊域の外国人に対して、其交際に天地の公道を頼にするとは果して何の心ぞや。迀闊も亦甚し。俗に所謂結構人の議論と云ふ可きのみ。天地の公道は固より慕ふ可きものなり、西洋各国よく此公道に従て我に接せん乎、我亦甘んじて之に応ず可し、決して之を辞するに非ず。若し夫れ果して然らば、先づ世界中の政府を廃すること我旧藩を廃したるが如くせざる可らず。学者こゝに見込あるや。若し其見込なくば、世界中に国を立てゝ政府のあらん限りは、其国民の私情を除くの術ある可らず。其私情を除く可きの術あらざれば、我も亦これに接するに私情を以てせざる可らず。即是れ偏頗心と報国心と異名同実なる所以なり。
右の如く外国交際は我国の一大難病にして、之を療するに当て、自国の人民に非ざれば頼む可きものなし。其任大にして其責重しと云ふ可し。即ち此章の初に云へる、我国は無事の日に非ず、然も其事は昔年に比して更に困難なりとは、正に外国交際の此困難病のことなり。一片の本心に於て私有をも生命をも抛つ可き場所とは、正に外国交際の此場所なり。然ば即ち今の日本人にして安ぞ気楽に日を消す可けんや、安ぞ無為に休息す可けんや。開闢以来君臣の義、先祖の由緒、上下の名分、本末の差別と云ひしもの、今日に至ては本国の義と為り、本国の由緒と為り、内外の名分と為り、内外の差別と為りて、幾倍の重大を増したるに非ずや。在昔封建の時代に、薩摩の島津氏と日向の伊東氏と宿怨ありて、伊東氏の臣民は深く薩摩を仇とし、毎年の元旦に群臣登城すれば先づ相互に戒めて、薩の仇怨を忘るゝ勿れと云て、然る後に正を賀するを以て例と為すとの話あり。又欧羅巴にて仏国帝第一世「ナポレオン」の時、孛魯士は仏のために破られて未曾有の恥辱を蒙り、爾後孛人は深く遺恨を抱て復讐の念常に絶ることなく、之がために国民の勉励するは勿論、就中国内の寺院其他衆庶の群集する場所には、前年孛人が大敗を取て辱を蒙り、其忿る可く悲む可き有様を図画に写して額に掲る等、様々の術を尽して人心を激せしめ、其向ふ所を一にして以て復讐を図り、遂に千八百七十年に至て旧怨を報じたりと云ふ。是等の事は何れも皆怨恨不良の心より生ずるものにて、直に其事柄を美として称誉す可きには非ざれども、国を守るの難くして人民の苦心する有様は以て知る可し。我日本も外国の交際に於ては未だ伊東氏及び孛国の苦を嘗たることなしと雖ども、印度其他の先例を見て之を戒ること伊東氏の如く又孛国の如くせざる可らず。或は元旦一度に非ずして、国民たる者は毎朝相戒めて、外国交際に油断す可らずと云て、然る後に朝飯を喫するも可ならん。是に由て考れば、日本人は祖先伝来の重荷を卸して、代りの荷物を得ざるに非ず、其荷物は現に頭上に懸て、然も旧の物より幾百倍の重さを増して、正に之を担ふ可きの責に当り、昔日に比すれば亦幾百倍の力を尽さゞる可らず。昔の担当は唯窮屈に堪るのみのことなりしが、今の担当は窮屈に兼て又活潑なるを要す。人民の品行を高くするとは、即ち此窮屈なる脩身の徳義と活潑々地の働とに在るものなり。るに今この荷物を引受け尚且身に安楽を覚るものは、唯其物の性質と軽重とを知らずして之に心を留めざりしのみ。或は之に心を留るも、之を担ふに法を誤りたるものなり。譬へば世に外国人を悪む者なきに非ず、されども其これを悪むや趣意を誤り、悪む可きを悪まずして悪む可らざるを悪み、猜疑嫉妬の念を抱て眼前の細事を忿り、小は暗殺大は攘夷、以て自国の大害を醸す者あり。此輩は一種の癲狂にて、恰も大病国中の病人と名く可きのみ。
又一種の憂国者は攘夷家に比すれば少しく所見を高くして、妄に外人を払はんとするには非ざれども、外国交際の困難を見て其源因を唯兵力の不足に帰し、我に兵備をさへ盛にすれば対立の勢を得べしとて、或は海陸軍の資本を増さんと云ひ、或は巨艦大砲を買はんと云ひ、或は台場を築かんと云ひ、或は武庫を建てんと云ふ者あり。其意の在る所を察するに、英に千艘の軍艦あり、我にも千艘の軍艦あれば、必ず之に対敵す可きものと思ふが如し。必竟事物の割合を知らざる者の考なり。英に千艘の軍艦あるは、唯軍艦のみ千艘を所持するに非ず、千の軍艦あれば万の商売船もあらん、万の商売船あれば十万人の航海者もあらん、航海者を作るには学問もなかる可らず、学者も多く商人も多く、法律も整ひ商売も繁昌し、人間交際の事物具足して、恰も千艘の軍艦に相応す可き有様に至て、始て千艘の軍艦ある可きなり。武庫も台場も皆斯の如く、他の諸件に比して割合なかる可らず。割合に適せざれば利器も用を為さず、譬へば裏表に戸締りもなくして家内狼藉なる其家の門前に、二十「インチ」の大砲一坐を備るも盗賊の防禦に適す可らざるが如し。武力偏重なる国に於ては、動もすれば前後の勘弁もなくして、妄に兵備に銭を費し、借金のために自から国を倒すものなきに非ず。蓋し巨艦大砲は以て巨艦大砲の敵に敵す可くして、借金の敵には敵す可らざるなり。今日本にても武備を為すに、砲艦は勿論、小銃軍衣に至るまでも、百に九十九は外国の品を仰がざるはなし。或は我製造の術、未だ開けざるがためなりと云ふと雖ども、其製造の術の未だ開けざるは、即ち国の文明の未だ具足せざる証拠なれば、其具足せざる有様の中に、独り兵備のみを具足せしめんとするも、事物の割合を失して実の用には適せざる可し。故に今の外国交際は兵力を足して以て維持す可きものに非ざるなり。
右の如く、暗殺攘夷の論は固より歯牙に留るに足らず、尚一歩を進めて兵備の工夫も実用に適せず、又上に所記の国体論、耶蘇論、漢儒論も亦人心を維持するに足らず。然ば則ち之を如何んして可ならん。云く、目的を定めて文明に進むの一事あるのみ。其目的とは何ぞや。内外の区別を明にして我本国の独立を保つことなり。而して此独立を保つの法は文明の外に求む可らず。今の日本国人を文明に進るは此国の独立を保たんがためのみ。故に、国の独立は目的なり、国民の文明は此目的に達するの術なり。都て人間の事物に就て、其目的と、之に達するの術とを計れば、段々限あることなし。譬へば綿を紡ぐは糸を作るの術なり、糸を作るは木綿を織るの術なり、木綿は衣服を製するの術と為り、衣服は風寒を防ぐの術と為り、此幾段の諸術、相互に術と為り又相互に目的と為りて、其結局は人体の温度を保護して身を健康ならしむるの目的に達するが如し。我輩も此一章の議論に於ては、結局自国の独立を目的に立てたるものなり。本書開巻の初に、事物の利害得失は其ためにする所を定めざれば談ず可らずと云ひしも、蓋し是等の議論に施して参考す可し。人或は云はん、人類の約束は唯自国の独立のみを以て目的と為す可らず、尚別に永遠高尚の極に眼を着す可しと。此言真に然り。人間智徳の極度に至ては、其期する所、固より高遠にして、一国独立等の細事に介々たる可らず。僅に他国の軽侮を免かるゝを見て、直に之を文明と名く可らざるは論を俟たずと雖ども、今の世界の有様に於て、国と国との交際には未だ此高遠の事を談ず可らず、若し之を談ずる者あれば之を迀闊空遠と云はざるを得ず。殊に目下日本の景況を察すれば、益事の急なるを覚へ又他を顧るに遑あらず。先づ日本の国と日本の人民とを存してこそ、然る後に爰に文明の事をも語る可けれ。国なく人なければ之を我日本の文明と云ふ可らず。是即ち余輩が理論の域を狭くして、単に自国の独立を以て文明の目的と為すの議論を唱る由縁なり。故に此議論は今の世界の有様を察して、今の日本のためを謀り、今の日本の急に応じて説き出したるものなれば、固より永遠微妙の奥蘊に非ず。学者遽に之を見て文明の本旨を誤解し、之を軽蔑視して其字義の面目を辱しむる勿れ。且又余輩に於て独立を以て目的に定むと雖ども、世人をして悉皆政談家と為し、朝夕之に従事せしめんことを願ふに非ず。人各勤る所を異にせり、亦これを異にせざる可らず。或は高尚なる学に志して談天彫竜に耽り、随て窮め随て進み、之を楽て食を忘るゝ者もあらん。或は活潑なる営業に従事して日夜寸暇を得ず、東走西馳、家事を忘るゝ者もあらん。之を咎む可らざるのみならず、文明中の一大事業として之を称誉せざる可らず。唯願ふ所は其食を忘れ家事を忘るゝの際にも、国の独立如何に係る所の事に逢へば、忽ち之に感動して恰も蜂尾の刺蠆(したい 小さなトゲ)に触るゝが如く、心身共に穎敏ならんことを欲するのみ。
或人云く、前説の如く唯自国の独立をのみ欲することならば、外国の交際を止るの便利に若くものなし。我国に外人の未だ来らざりし時代に在ては、国の有様は不文なりと雖ども、之を純然たる独立国と云はざるを得ず。されば今独立を以て目的と為さば古の鎖国に返るを上策とす。今日に至ればこそ独立の憂もある可けれ、嘉永以前には人の知らざりしことなり。国を開て国の独立を憂るは、自から病を求めて自から之を憂るに異ならず。若し病の憂ふ可きを知らば、無病の時に返るに若かずと。余答て云く然らず、独立とは独立す可き勢力を指して云ふことなり。偶然に独立したる形を見て云ふに非ず、我日本に外人の未だ来らずして国の独立したるは、真に其勢力を有して独立したるに非ず。唯外人に触れざるが故に偶然に独立の体を為したるのみ。之を譬へば、未だ風雨に逢はざる家屋の如し、其果して風雨に堪ゆ可きや否は、嘗て風雨に逢はざれば証す可らず。風雨の来ると否とは外の事なり、家屋の堅牢なると否とは内の事なり。風雨の来らざるを見て、家屋の堅牢なるを証す可らず。風なく雨なくして家屋の存するは勿論、如何なる大風大雨に逢ふも屹立動かざるものこそ、真に堅牢なる家屋と云ふ可けれ。余輩の所謂自国の独立とは、我国民をして外国の交際に当らしめ、千磨百錬、遂に其勢力を落さずして、恰も此大風雨に堪ゆ可き家屋の如くならしめんとするの趣意なり。何ぞ自から退縮して古に復し、偶然の独立を僥倖して得意の色を為さんや。加之今の外国交際は、適宜にこれを処すれば我民心を振起するがために恰も的当したる刺衝と為る可きが故に、却て之に藉て大に我文明を利す可し。結局我輩の旨とする所は、進て独立の実を取るに在り。退て其虚名を守るが如きは敢て好まざる所なり。
故に又前説に返て云はん。国の独立は目的なり、今の我文明は此目的に達するの術なり。此今の字は特に意ありて用ひたるものなれば、学者等閑に看過する勿れ。本書第三章には、文明は至大至洪にして人間万事皆これを目的とせざるなしとて、人類の当に達す可き文明の本旨を目的と為して論を立たることなれども、爰には余輩の地位を現今の日本に限りて、其議論も亦自から区域を狭くし、唯自国の独立を得せしむるものを目して、仮に文明の名を下だしたるのみ。故に今の我文明と云ひしは文明の本旨には非ず、先づ事の初歩として自国の独立を謀り、其他は之を第二歩に遺して、他日為す所あらんとするの趣意なり。蓋し斯の如く議論を限るときは、国の独立は即ち文明なり。文明に非ざれば独立は保つ可らず。独立と云ふも文明と云ふも、共に区別なきが如くなれども、独立の文字を用れば、事の想像に一層の限界を明にして、了解を易くするの便あり。唯文明とのみ云ふときは、或は自国の独立と文明とに関係せずして、文明なるものあり。甚しきは自国の独立と文明とを害して、尚文明に似たるものあり。其一例を挙て云はんに、今我日本の諸港に西洋各国の船艦を泊し、陸上には洪大なる商館を建て、其有様は殆ど西洋諸国の港に異ならず、盛なりと云ふ可し。然るに事理に暗き愚人は、此盛なる有様を目撃して、今や五洲の人民、我国法の寛大なるを慕ひ、争て皇国に輻湊せざるはなし、我貿易の日に盛にして我文明の月に進むは、諸港の有様を一見して知る可しなどゝて、得色を為す者なきに非ず。大なる誤解ならずや。外国人は皇国に輻湊したるに非ず、其皇国の茶と絹糸とに輻湊したるなり。諸港の盛なるは文明の物に相違なしと雖ども、港の船は外国の船なり、陸の商館は外国人の住居なり、我独立文明には少しも関係するものに非ず。或は又無産の山師が外国人の元金を用ひて国中に取引を広くし、其所得をば悉皆金主の利益に帰して商売繁昌の景気を示すものあり。或は外国に金を借用して其金を以て外国より物を買入れ、其物を国内に排列して文明の観を為すものあり。石室鉄橋船艦銃砲の類、是れなり。我日本は文明の生国に非ずして、其寄留地と云ふ可きのみ。結局この商売の景気、この文明の観は、国の貧を招て永き年月の後には必ず自国の独立を害す可きものなり。蓋し余輩が爰に文明と云はずして独立の文字を用ひたるも、是等の誤解を防がんとするの趣意のみ。
斯の如く、結局の目的を自国の独立に定め、恰も今の人間万事を鎔解して一に帰せしめ、悉皆これを彼の目的に達するの術とするときは、其術の煩多なること際限ある可らず。制度なり学問なり、商売なり工業なり、一として此術に非ざるはなし。啻に制度学問等の類のみならず、或は鄙俗虚浮の事、盤楽遊嬉の物と雖ども、よく其内情を探て其帰する所の功能を察すれば、亦以て文明中の箇条に入る可きもの多し。故に人間生々の事物に就き、其利害得失を談ずるには、一々事の局処を見て容易に之を決す可らず。譬へば古より学者の議論甚だ多し。或は節倹質朴を主とする者あり、或は秀美精雅を好む者あり、専制独断を便利なりとする者あれば、磊落自由を主張する者あり、意見百出、西と云へば東と唱へ、左より論ずれば右より駁し、殆ど其極る所を知らず。甚しきは嘗て定りたる所見もなく、唯一身の地位に従て議論を作り、一身と議論と其出処栄枯を共にする者あり。尚これよりも甚しきは政府に依頼して身を掩ふの地位と為し、区々の政権に藉て唯己が宿説を伸さんとし、其説の利害得失に至ては忘れたるが如き者あり。鄙劣も亦甚しと云ふ可し。是等の有様を形容すれば、的なきに射るが如く、裁判所なきに訴るが如し。孰れを是とし孰れを非とす可きや。唯是れ小児の戯のみ。試に見よ、天下の事物、其局処に就て論ずれば、一として是ならざるものなし、一として非ならざるものなし。節倹質朴は野蛮粗暴に似たれども、一人の身に就ては之を勧めざる可らず。秀美精雅は奢侈荒唐の如くなれども、全国人民の生計を謀れば日に秀美に進まんことを願はざる可らず。国体論の頑固なるは民権のために大に不便なるが如しと雖ども、今の政治の中心を定めて行政の順序を維持するがためには亦大に便利なり。民権興起の粗暴論は立君治国のために大に害あるが如くなれども、人民卑屈の旧悪習を一掃するの術に用れば亦甚だ便利なり。忠臣義士の論も耶蘇聖教の論も、儒者の論も仏者の論も、愚なりと云へば愚なり、智なりと云へば智なり、唯其これを施す所に従て、愚とも為る可く智とも為る可きのみ。加之彼の暗殺攘夷の輩と雖ども、唯其事業をこそ咎む可けれ、よく其人の心事を解剖して之を検査せば、必ず一片の報国心あること明に見る可し。されば本章の初に云へる、君臣の義、先祖の由緒、上下の名分、本末の差別等の如きも、人間品行の中に於て貴ぶ可き箇条にて、即ち文明の方便なれば、概して之を擯斥するの理なし。唯此方便を用ひて世上に益を為すと否とは、其用法如何に在るのみ。凡そ人として国を売るの悪心を抱かざるより以上の者なれば、必ず国益を為すことを好まざる者なし。若し然らずして国害を為すことあらば、其罪は唯向ふ所の目的を知らずして偶然に犯したる罪なり。都て世の事物は諸の術を集めて功を成すものなれば、其術は勉めて多きを要し、又多からざるを得ず。唯千百の術を用るの際に其用法を誤ることなく、此術は果して此目的に関係あるもの歟、若し関係あらば何れの路よりして之に達す可きもの歟、或は直に達す可き歟、或は間に又別の術を置き此術を経て後に達するもの歟、或は二の術あらば孰か重くして先なる可き歟、孰か軽くして後なる可き歟と、様々に工夫を運らして、結局其最後最上の大目的を忘れざること緊要なるのみ。猶彼の象棋を差す者が、千種万様の手はあれども、結局其目的は我王将を守て敵の王を詰るの一事に在るが如し。若し然らずして王より飛車を重んずる者あれば、之を下手象棋と云はざるを得ず。故に今この一章の眼目たる自国独立の四字を掲げて、内外の別を明にし、以て衆庶の由る可き道を示すことあらば、物の軽重も始て爰に量る可く、事の緩急も始て爰に定む可く、軽重緩急爰に明なれば、昨日怒りし事も今日は喜ぶ可きものと為り、去年楽みし事も今年は憂ふ可きものと為り、得意は転じて心配と為り、楽国は変じて苦界と為り、怨敵も朋友と為り、他人も兄弟と為り、喜怒を共にし、憂楽を同ふし、以て同一の目的に向ふ可き乎。余輩の所見にて今の日本の人心を維持するには唯この一法あるの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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