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빌렌베르크기 세상을 떠난 날
세상에 태어나서
도발하지 않은 멜로스를 공격하여
남자어른들을 모두 죽이고 아녀자는
노예로 삼았다는 아테네의 반인류적 역사를 읽었고,
중국에서 아이를 대검에 꽂은 일본군의 사진도 보고
전두환 부하에게 고문당하여 창자가 빠져나온 이야기도
읽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폴란드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마지막 생존자인
빌렌베르크가 죽은 오늘, 그의 증언으로 제작한
가스실로 들어가는 어린 아들의 구두를 벗기는
아버지의 동상을 보고 울고 말았다.
인간이 무심하게 살인할 수 있다는 것,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가스실로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사랑만을 외치는 자들의 무지와
인내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뻔뻔함과
게르만 혈통을 고수하는 독일인에게
도리질을 치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누가 너에게 살인할 권리를 주었느냐고
심문할 권한이
하느님 따위에게 있는 게 아니라
신(神)을 만든 인간에게 주어진 까닭은
인간만이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인데
침묵만 하는 하느님에게 의지하는
저 얼빠진 살기는 가스실의 밸브처럼
기계로서 작동하지.
“나는 전쟁규칙에 따라야만 했다,”
“나는 지금까지 신을 믿으며 살아왔고,
신을 믿으면서 죽어갈 거요"라며
후회 없이 죽은 아돌프 아이히만이
기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리하여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날이 오리라는
영화는 영화일 뿐 인간은 인간으로 남고
트레블링카 수용소에 가스실로 들어간 아이들은
자기가 죽어 비누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신발을 벗기는 아버지의 고통을
아비를 죽인 시지포스의 고통에 견줄까,
삶을 충분히 살아본 아비를 모르고 죽인 것과?
눈물이라도 흘릴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오늘밤 술에 취하지 않고 잠들 수 없는데
지랄 같은 역사를 교실에서 가르친다는 이유는
나폴레옹이니 알렉산더니 하는 생명체들이
영웅으로 둔갑하여 살아나기 때문인데
히틀러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지지율이 70%가 넘었다지.
호모사피엔스여,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호모 마키날리스(Homo machinalis)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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