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의 품에 안겨 날자, 날자고
절망적으로 외치던 김해경은
강대국들에 매달려 살던
조국의 현실을 한탄했겠지만
그래도 남아로서 죽지 못했고,
태종무열왕 자손이 옹기장이로
김수환 추기경을 낳았는데
한국의 양반이란 침 뱉는 타구까지
종에게 들고 다니게 하는 존재들로
나라를 말아먹었다고 중국의 양계초는
권력유지에만 취해버린 고종과 대원군을
하류인간으로 취급하지.
알렉산더 이후 인류의 역사는 제국주의의
역사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과
로마는 우리에게 족쇄를 주었지만 법률을 주었고,
최초의 왕은 군인이었다는 볼테르의 말처럼
살인하고 정복하고, 약탈하는 자들이기에
솔로몬은 전승하고 다윗은 일격에 살인하지.
군인은 살기 위하여 싸울 뿐,
순교자는 도그마로 죽는데
그 사이에서 민중은 생명을 보듬어,
이념이든 용기든 내팽개치는데
인간의 본연이 아니라 해도
대부분 인간의 본성일 터.
아하, 타협이란 무엇인가,
양보란 왜 중요할 수 있는가?
정권은 사라져도 사람은 살아남는데
몰살해도 식민지 사람들이 생존하는
세상의 신비함을 어떻게 설명할까?
“천하를 취하려는 것, 나는 불가능함을 안다.”
“천하는 신비로운 그릇, 억지로 되지 않는다.”
절망의 끝에서 외침은 투쟁 아니면 망각일 텐데
투쟁하기 위하여 망각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뇌 속의 혈관이 막히거나 심장혈관이 졸아들겠지.
소박한 민주주의란 무턱대고 국민이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일 뿐 패각추방의 의미는 없지,
유명하다는 이유로만 추방당했던 아테네의 진실을
철없는 민주주의에 알렉산더가 말아먹었지.
민주주의는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이라던 처칠은
영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히틀러의 죽음을 보고
그게 가장 효율적인 정치임을 알기나 했을까?
20세기의 불가사의는 미국의 민주주의인데
200년을 훨씬 넘기고도, 베트남에게 지고도
계속 번성하는 까닭은
애초부터 귀족 없이 독립전쟁을 시작한 때문,
노예제도란 본질적으로 인간을 나태하게 만들어
남부 연방이 링컨의 군대에게 망하는 게 아닌지?
아니, 베트남에게 진 게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는
시민들의 반발 때문에 외국을 침공할 수 없다는
공산주의 중국인들이 미국을 종이호랑이로
판단했던 아름다운 피드백이 아니었던지.
잊자, 잊지 않으면 어찌할 것인가?
과거로 여행할 수 없는 것은
몸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초월할 수 없고,
빛의 속도로 여행할 수 없다.
하루의 마지막을 온 세상 물들이는 황혼처럼
그렇게 사라지는 것은 너와 나에게 축복이지.
왜냐면 삶은 죽음이 있기에 귀중하기 때문,
영원한 것이란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그런 것은 변화가 없는, 가치가 없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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