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선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 1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차 컷오프 탈락명단과 단수, 전략 공천지역 등을 발표한 뒤 자료가 든 태블릿피시를 꼭 끌어안은 채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의겸의 우충좌돌]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28일 새롭게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렸으나 기존 비대위원들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선대위와 비대위는 별도의 조직이고, 전원 사의를 표명한 비대위원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시점에 김종인 대표가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게 당의 공식적인 해명이다. 하지만 선대위 구성을 계기로 비대위원들을 완전히 물갈이 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동안 비대위는 김 대표를 포함해 박영선 변재일 우윤근 의원과 이용섭 전 의원, 표창원 김병관 후보로 구성돼 활동해왔다. 김 대표와 비대위원들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른바 ‘비례공천 파동’을 둘러싼 김 대표와 비대위원들 사이의 갈등을 시간 순으로 추적해봤다.
힘있는 비대위원들, 자기 사람 3~4명 ‘심기’ 성공
김종인 “괜찮겠나” 묻자 “걱정말라…저희가 책임” #3월19일(토) 심야 비대위 이날 비대위는 특별한 날이었다. 비례대표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위원장 홍창선)가 비례대표를 신청한 200여명 가운데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40여명을 추린 뒤 성적까지 매겨 명단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안은 크게 흔들렸다. 갓 영입된 표창원 김병관 비대위원을 제외하고는 비대위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미는 비례 명단을 추가로 집어넣으려고 한 것이다. 힘 있는 비대위원은 3~4명까지 ‘새치기’ 하는 데 성공한다. 대부분 비례대표 신청조차 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 결과 당선권인 20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낙하산’이 차지하게 됐다. 김종인 대표도 자신과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를 당선 안정권에 넣었다. 그래도 김종인 대표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거 이대로 가도 괜찮겠어요?” 비대위원들은 답했다. “대표님 걱정마십시오. 저희들이 책임지겠습니다.” 40여명의 명단은 다시 A B C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다음날 중앙위원회 투표에서 비대위원들의 의중이 잘 반영되도록 칸막이를 친 것이다. 애초 칸막이는 15명 단위로 치는 방안이 검토됐다. 그럴 경우 당선안정권인 A 그룹 15명은 비대위원들이 전적으로 결정하는 모양새가 되고 중앙위원회 투표는 더욱 무의미해진다. 그게 부담스러워 10명 단위로 칸막이가 쳐졌다. 김 대표는 다시 물었다. “괜찮겠어요?” 비대위원들은 답했다. “이미 실무진 차원에서 당헌 당규를 다 검토했습니다.” 김종인 대표의 비례대표 순번이 화제에 올랐다. 한 비대위원은 “상위 순번은 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고 건의를 했다. 김 대표는 짧게 “알았다”고 답했다. 다른 비대위원이 “2번 하십시다”고 말하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2번 김종인’은 결정됐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회의는 자정을 훌쩍 넘어 12시40분까지 이어졌다. 다들 귀가길을 서둘렀다. 아무도 다음날 중앙위원회에서 ‘반란’이 일어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비례2번 김종인’ 등 중앙위원회서 문제 제기
공동책임 진 비대위원 누구도 설명않고 입 닫아 #3월20일(일) 오후 중앙위원회
중앙위원회가 열리자 난리가 났다. 칸막이, 비례대표 후보 자격, 2번 김종인 모두 문제가 됐다. 맨 앞자리에서 중앙위원들의 비판을 듣던 김 대표의 표정이 점점 심하게 일그러졌다. 공동책임을 지고 있는 비대위원 누구도 나서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비대위원 2명 정도가 중앙위원회에 참석하고 있었으나 꿀먹은 벙어리였다. 심지어 어느 비대위원은 김 대표가 찾았으나 ‘행방불명’이었다. A B C 세 그룹으로 나눈 게 당헌 당규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검토한 비대위원이었다. 중앙위원들의 항의가 거세지다 어느 중앙위원이 “김종인 대표는 2번이 아니라 17번을 받고 배수진을 치라”고 하자 김 대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김병관 후보 개소식에 간다는 게 이유였으나 사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행사였다. 일요일 밤 김 대표는 이례적으로 언론사에서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받았다. “중앙위가 자기네들 권한을 행사해 자기네들 마음대로 정하고 선거 관리도 해서 선거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라. 그러면 해결 된다”고 말했다. 가까운 사람 몇이 자리를 함께 하며 다독였으나 김 대표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비대위 ‘김종인 비례 14번’ 등 중재안 마련
김종인 “비대위가 알아서 하라” 역정뒤 칩거 #3월21일(월) 중앙위원회 그리고 칩거
비대위원들은 21일 아침 일찍부터 국회에서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가 길어지자 여의도 메리어트 호텔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비례대표 2번이었던 김종인 대표를 14번으로 미루고, 당선 안정권의 20%인 7명을 대표 전략공천 몫으로 하되 칸막이를 없애는 것으로 중재안을 마련했다. 그렇게 모아진 중재안을 들고 이종걸 원대대표가 김종인 대표를 만나러 하이야트 호텔로 갔다.
그런데 그 중재안이 김 대표의 화를 돋구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분노의 대상은 중앙위원회였으나 중재안 때문에 화가 비대위로 옮겨붙었다. 결정적인 건 자신을 2번에서 14번으로 밀어낸 것이다. 자존심을 건드렸다. 김 대표는 중앙위원들의 요구 사항이 주로 ‘칸막이를 허물라’는 것이었는데 비대위원들이 ‘2번 김종인’으로 쟁점을 몰아갔다고 여겼다. 김종인 대표 순번을 14번으로 돌리자고 처음으로 주장한 어느 비대위원은 나중에 자신에게 화살이 집중되자 “아니, 김 대표가 스스로 번호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억울해 했지만 김종인 대표의 눈밖에 나버린 상태였다.
전략공천 7명도 심기를 건드렸다. 자신은 3명만 지명했는데 비대위원들이 자신의 이름을 팔아 은근슬쩍 4명을 끼워넣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4명은 김숙희 서울특별시의사회회장, 문미옥 전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기획정책실장, 이수혁 전 6자회담수석대표, 김성수 대변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이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김종인 대표는 이런 중재안에 대해 “비대위원들이 다 알아서 하라”고 역정을 냈고, 김 대표의 수락이 떨어지지 않자 중앙위원회는 오후 3시에서 5시, 다시 저녁 8시로 미뤄졌다. 그리고 애초 비대위안은 사실상 휴지가 되고 새로 투표가 이뤄졌다.
김종인, 비대위원 전원 해임으로 불신 드러내
제일 큰 책임 김종인이지만 비대위원 욕심도 한몫 #3월22일(화) 석고대죄 그리고 23일(수) 당무 복귀
김종인 대표가 사퇴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낮에는 문재인 대표가 다급하게 김 대표 집을 찾았다. 비대위원들은 밤 늦게 김 대표 집을 방문해 2시간 가량 기다리다 가까스로 김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비대위원들은 “저희가 잘 못 모셔 죄송하다”고 석고대죄의 예를 갖췄으나, 김 대표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김 대표는 23일 오후 “고민 끝에 이 당에 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대표직 유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그는 김 대표는 자신의 사퇴를 만류하기 위해 전원이 사퇴의사를 밝힌 비대위원들의 거취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내가 임명한 사람들이지만 비대위원들 행동에 대해 100% 신뢰하는 게 아니다”라고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불신이 닷새만인 28일 ‘비대위원 전원 해임’으로 나타난 것이다.
‘공천 파동’을 평가할 때 제일 큰 몫의 책임은 김종인 대표에게 돌아간다. 누가 뭐라고 해도 ‘비례 2번 셀프 지명’과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인 박경미 교수를 1번에 공천하기로 한 것은 김종인 대표의 선택이었다. 결정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이 오랫동안 지켜온 정체성과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태가 악화된 데는 비대위원들의 ‘욕심’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과거 당의 최고위원들이 자기 몫으로 지역구나 비례대표 공천권을 행사하려 한 구태를 더민주 비대위원들도 똑같이 반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의 비대위원들은 과거 최고위원들과 달리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데도 그랬다. 서로 이질적인 김종인 대표와 중앙위원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지는 못할망정 자기 몫만 챙기고는 ‘나 몰라라’ 한 건 비대위원들의 두 번째 죄목이다. 태만이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김종인 “괜찮겠나” 묻자 “걱정말라…저희가 책임” #3월19일(토) 심야 비대위 이날 비대위는 특별한 날이었다. 비례대표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위원장 홍창선)가 비례대표를 신청한 200여명 가운데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40여명을 추린 뒤 성적까지 매겨 명단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안은 크게 흔들렸다. 갓 영입된 표창원 김병관 비대위원을 제외하고는 비대위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미는 비례 명단을 추가로 집어넣으려고 한 것이다. 힘 있는 비대위원은 3~4명까지 ‘새치기’ 하는 데 성공한다. 대부분 비례대표 신청조차 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 결과 당선권인 20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낙하산’이 차지하게 됐다. 김종인 대표도 자신과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를 당선 안정권에 넣었다. 그래도 김종인 대표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거 이대로 가도 괜찮겠어요?” 비대위원들은 답했다. “대표님 걱정마십시오. 저희들이 책임지겠습니다.” 40여명의 명단은 다시 A B C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다음날 중앙위원회 투표에서 비대위원들의 의중이 잘 반영되도록 칸막이를 친 것이다. 애초 칸막이는 15명 단위로 치는 방안이 검토됐다. 그럴 경우 당선안정권인 A 그룹 15명은 비대위원들이 전적으로 결정하는 모양새가 되고 중앙위원회 투표는 더욱 무의미해진다. 그게 부담스러워 10명 단위로 칸막이가 쳐졌다. 김 대표는 다시 물었다. “괜찮겠어요?” 비대위원들은 답했다. “이미 실무진 차원에서 당헌 당규를 다 검토했습니다.” 김종인 대표의 비례대표 순번이 화제에 올랐다. 한 비대위원은 “상위 순번은 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고 건의를 했다. 김 대표는 짧게 “알았다”고 답했다. 다른 비대위원이 “2번 하십시다”고 말하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2번 김종인’은 결정됐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회의는 자정을 훌쩍 넘어 12시40분까지 이어졌다. 다들 귀가길을 서둘렀다. 아무도 다음날 중앙위원회에서 ‘반란’이 일어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비례2번 김종인’ 등 중앙위원회서 문제 제기
공동책임 진 비대위원 누구도 설명않고 입 닫아 #3월20일(일) 오후 중앙위원회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앞줄 가운데)가 2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례대표후보선출을 위한 중앙위원회에서 비례대표 후보선출과 관련한 의사진행 발언이 잇따르자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종인 “비대위가 알아서 하라” 역정뒤 칩거 #3월21일(월) 중앙위원회 그리고 칩거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후보 선출을 위한 중앙위원회가 21일 밤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로 열려 김종인 비대위 대표에게 중재안을 전달하고 설득에 나섰던 이종걸 원내대표가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제일 큰 책임 김종인이지만 비대위원 욕심도 한몫 #3월22일(화) 석고대죄 그리고 23일(수) 당무 복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구기동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면담한 뒤 자택을 나서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