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은 사람의 자질을 따질 때 능력을 우선시하는 쪽이었다. 그 사람이 어느 지역 출신인지, 아니면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느 부모 밑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를 따지기보다는 능력을 우선 살폈다.
한국인 각료나 공무원 또는 이 대통령과 자주 상대했던 미국의 고위급 인사나 장성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대통령은 가끔 상대방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는 했다. 경무대 응접실에서 손님을 만난 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따금씩 인물평을 들려줬던 것이다. 대통령이 상대방을 보는 기준은 한결같았다. 대부분 “저 사람은 와이즈(wise: 현명)하지 못해”라거나 “저 사람 제법 와이즈해”였다.
대통령이 사용했던 영어 단어 ‘와이즈’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지혜롭다’ ‘현명하다’였다. 이는 당시 80세를 바라보는 이승만 대통령이 인물을 보는 데 늘 따랐던 기준이었다. 그 사람의 학식이나 출신 지역 등 다른 조건보다는 사물이나 현상을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먼저 따지는 식이었다.
상대를 그런 식으로 가늠하는 대통령 스스로는 따라서 매우 노련한 전략가이자, 자신 앞에 놓인 상황을 꼼꼼히 살핀 뒤 행동으로 옮겨가는 사세(事勢)의 날카로운 관찰자였다. 대통령의 그런 성격은 현실적으로 소용이 닿지 않는 이야기, 공리공담(空理空談)을 피하는 쪽으로 나타나고는 했다.
남들은 이 대통령이 무척 까다롭다는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 대통령이 걸어온 발자취 자체가 범인(凡人)들이 함부로 흉내 내기는 어려운 것이었고, 그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쌓아온 학식의 높이와 경륜의 깊이는 남다른 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통령 앞에 가면 대부분 주눅이 들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은 따지고 보면 매우 합리적인 인물이었다. 결코, 무리한 생각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늘 현실 감각을 유지하면서 시세(時勢)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따져 거기에 판단의 기준을 맞추는 식이었다.
나는 육군참모총장이었다. 군을 이끌고 있던 내가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그런 대통령의 성격과 통치 철학의 근간을 잘 읽어야 했다. 대한민국은 출범 2년 뒤에 혹심한 동족상잔의 전화(戰禍)를 겪었고, 당시에는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나온 중공군과 한반도의 중간지대에서 격렬한 고지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그때의 대한민국이 가장 핵심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안보의 초석(礎石)인 국군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일이었다. 나는 대통령의 사명감, 일선을 전전하면서 늘 적과 싸웠던 군인으로서 내가 유지해야 할 소명(召命)의식에 충실해야 했다. 대통령은 그런 점에서 군을 무척 아꼈다. 불과 2년 전, 느닷없이 당한 6월 25일의 아픈 기억이 늘 대통령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국군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80을 바라보는 노구(老軀)를 이끌고 사단 창설식 등에 분주하게 다녔다.
이 대통령은 몇 차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데서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다. 대표적인 게 6·25가 발발한 뒤 서울을 내주고 후퇴할 때였다. 대통령은 기차 편으로 서울을 빠져나가 대전에 도착했다. 그때의 참담한 심정이야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통령은 “이대로 후퇴만 할 수는 없다”면서 대전에서 버틸 각오를 보였다.
그 참담한 여건 속에서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자이자 국군의 통수권자인 이 대통령이 창설식에 참석했다. 무너지는 전선,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전쟁국면, 퇴로를 가늠할 수 없는 답답한 심정의 대통령은 그 창설식을 지켜보면서 내내 눈물을 흘렸다고 동생 인엽이 말해 줬다.
그 뒤로 대통령이 국군에 보여준 애정은 남달랐다. 그는 군인들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전쟁 뒤에는 군인들이 쓸데없이 경무대나 그 주변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군인들이 이런 데 자주 나타나는 것은 좋지 않아. 나라 지킬 생각에만 몰두하는 게 군인이야”라면서 자주 호통을 쳤다.
나는 다른 것은 몰랐다.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이 어떤지를 따져볼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저 강한 국군을 육성해 대한민국의 기반을 단단하고 반듯한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게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그 밑에서 실무를 책임져야 할 나의 시대적인 사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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